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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점에 가보면 미끼상품이란 게 있다.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전략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통상 원가 또는 일반 판매가격보다 훨씬 싸게 판다. 일단 미끼상품으로 고객들을 불러들인 다음 이들 고객이 값 비싼 다른 상품도 많이 사게 한다. 수익을 올리는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다. 미끼상품에 끌려 해당 소매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객 중엔 소매점에서 미끼상품만 골라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 소매점의 상술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현명하다는 평을 들을 만 하다. 소매점 입장에서 보면 얌체 고객이지만.
하지만 미끼상품만 사는 고객은 드물다. 대체로 미끼상품에 더해 비싼 품목들까지 장 바구니에 많이 담는다. 고객으로선 알뜰 소비를 하려 한 것이겠지만 결국 과소비로 이어지고 만다. 그래서 소매점의 미끼상품 판매 전략은 종종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미끼상품은 정치권이라고 없는 게 아니다. 검찰이 들여다보는 더불어민주당의 과거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도 정치권에 미끼상품이 발붙이지 못했다면 가능했겠는가. 상품이나 정치나 소비자 또는 국민을 상대로 판다는 측면에선 똑같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사는 상품이다. 정치인이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 국민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하다.
민심에 귀 기울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을 의식해 좋은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게 민주정치 원리다. 그 원리가 지지를 받는 것은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 개인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선심 정치를 반드시 나쁘게만 볼 수 없다. 국민의 복지 혜택을 넓히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 미끼상품의 문제는 과도한 선심성에 있다. 개인 또는 정당 지지를 얻기 위해 내건 선심 정책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현실화하지 않으면 사기(詐欺)다. 그런데도 이건 그나마 차라리 낫다. 국민 스스로 "속았다" 생각하고 위로하면 된다. 국민에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오는 경우는 선심 정책의 강행이다. 그 부담이 국민에 고스란히 전가돼서다.
요즘 정치권의 선심 경쟁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4.10 총선을 겨냥해 호객행위에 나섰다. 민심과 표의 향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권이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지율 20~30%를 오르내리며 국정동력을 얻지 못한 윤석열 정권, 현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전 대표까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거대 야당이 이런 선심경쟁을 더욱 부채질한다.
정치권은 최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서두르고 해야 할 일은 꾸물거린다. 우선 여야가 해서는 안 될 선심성 정책을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단적으로 대학생 1000원 아침밥 확대를 놓고 장군멍군하는 게 그렇다. 마치 물건 흥정하듯이 한다. 1000원 아침밥 제공 논의는 당초 학기 중 대상 확대에 그쳤다. 이제는 방학 중에도, 또 점심·저녁까지 주자고 한다. 걱정이 갈수록 태산이다. 여야가 승부처인 청년 표심 잡기의 심산이 아니었다면 이럴까 싶다.
무상급식 논란의 새로운 버전이다. 대상이 586 부모세대를 겨냥한 중등학생에서 MZ 자녀세대를 타겟팅한 대학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무상급식 논란은 2011년 서울시에서 무상급식의 선별지원이냐 보편지원이냐를 놓고 줄다리기하다 주민투표까지 간 것을 말한다. 2012년 4월 19대 총선, 12월 18대 대선을 앞둔 때였다. 급기야 당시 오세훈 시장이 그 책임으로 물러났다. 그 오 시장이 10년 넘게 지나 다시 시민의 지지를 받아 컴백한 것은 아이러니다.
야당이 최근 줄줄이 제안한 정책도 선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 국민 최대 1000만원 기본대출, 대학생 학자금 대출의 졸업 후 취업 때까지 이자 면제, 대중교통 반값 정기권 발행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야는 또 텃밭 표를 겨냥한 입법에 모처럼 손을 맞잡았다. 서로 으르렁대더니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협치가 극적으로 이뤄졌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의 ‘텃밭 사업’이라 불리는 ‘쌍둥이 공항법’을 속전속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안들은 대구·경북(TK) 신공항을 건설하고 광주의 군 공항을 이전하는 내용이다. TK 신공항 건설사업비는 12조 8000억원, 광주 군 공항 이전 사업비는 6조 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치권과 정부는 꼭 해야 할 일엔 팔짱을 끼고 있거나 굼뜬 모습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한 달도 안돼 관련 당정회의를 네 차례나 열었다. 그 자리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요금 인상 결정은 미루었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영악화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전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3조원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루 이자비용만 25억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 적자가 전기요금을 제 때 올리지 않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탓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도 전기요금 인상을 머뭇거린다. 한전의 자구노력이 미흡하다며 핑계를 댔다. 그런 자구노력이 천문학적인 한전 적자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설령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구노력은 나중에 챙기고 요금 인상 먼저 하면 안되나. 한전은 정부 말 잘 듣는 공기업이다. 한전 자구노력 요구는 요금 인상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여야가 국가 재정 관리에 필요한 재정준칙 도입에 뜸을 들이고 국민연금 개혁에 뜨뜻미지근한 것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혜택의 적용 시기를 연장한 것이나 최장 69시간 근로시간제 개편을 놓고 미적거리는 것 역시 전형적인 표 의식 행태로 꼽힌다.
재정을 수반하는 선심 정책은 초콜릿처럼 달콤한 유혹이다. 마약처럼 중독성도 강하다. 한번 돈 풀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다.
그런데 재정은 화수분처럼 한정 없이 꺼내 쓸 수 있는 현금 인출기가 아니다. 재정은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마련된다. 정치인들의 생색용으로 쓰라고 낸 돈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내는 돈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것도 아닌데 표를 얻기 위해 나라 곳간의 바닥까지 박박 긁어, 아니 빚 내고 부도수표까지 발행해 무분별하게 선심 정책을 남발하면 그 책임은 결국 국민이 짊어질 몫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뚝심과 결단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의 지도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의지·추진력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두 사람이 현재 서로 마주하기조차 꺼리는 사이일지언정 적어도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한 가지만이라도 함께 결의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돈 푸는 선심 정치의 중독에서 만이라도 벗어나는 것 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얼마 전 사회 전반에서 들끓은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연금개혁을 밀어붙였다. 우리는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