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에너지 정책,소프트파워로 전환할 때](http://www.ekn.kr/mnt/thum/202306/2023061301000546200026681.jpg)
에너지 시장형성 과정에서 ‘하드파워’(Hard-Power·강한 물리적인 힘)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믿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본다. Hard-Power의 대표 사례로는 1970년대 이래 OPEC의 금수조치 등 각종 행태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이후 전개된 유럽,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와 중국을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 간 천연가스, 석유 규제와 반발 등이 새로운 ‘Hard-Power’로 등장했다. 에너지 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동·서간 냉전(冷戰) 구도가 형성됐다. 여기서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 G2 국가로 등장한 중국은 러시아 편을 들면서 미국과의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새로운 분란을 초래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러시아와 확장된 산유국 카르텔(OPEC+)을 결성하고 산유국 주도 에너지 시장 구도의 영속화를 기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친(親)미국 전략을 포기한 것이다. 바야흐로 석유 등 에너지가 세계질서의 분절화(分切化· Fragmentation)와 블록(Block) 대결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이런 Hard-Power 대결은 지속될까? 그렇지 않을 조짐이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래 50여 년의 에너지 시장 왜곡 역사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 사례로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OPEC+ 분열과 석유 시장의 반응이다. 이달 초 OPEC회의에서 사우디는 7월부터 자발적으로 하루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발표했다. 지난 4월 하루 50만 배럴 감산 조치에 추가한 것이다. 내년 말까지 감산 연장도 가능하단다. 그러나 러시아는 추가 감산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우크라 전쟁 후유증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의 자발적 추가 감산에 대한 국제원유가격 변화는 미미하다. 북해 브렌트유의 경우 지난 4월 70달러 후반 수준에서 지금은 75달러 안팎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WTI도 비슷한 수준이다. 국제경기 불확실성과 미국 석유 재고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빈 살만이 주도하는 ‘네옴시티’ 사업 등의 대규모 투자비 조달을 위해서는 석유 가격이 80달러 이상 유지돼야 한다. 다급하다. 산유국 Hard-Power의 끝물의 씁쓸함을 대변하는 것인가? 학계에서는 이미 Hard-Power의 시대가 끝나고 소프트파워(Soft-Power)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미국 하버드대의 조셉 나이 (Joseph Nye) 교수는 그의 명저 ‘Do Morals Matter? 2020’에서 Soft-Power 시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Soft-Power란 ‘강압보다 매력 발산으로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개념은 놀랍게도 2007년 중국 후진 따오 주석이 2007년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외교 전략의 중심 논리로 채택했다고 나이 교수는 말했다. 중국은 마오쩌뚱 정권 출범 이래 강한 인민 통제 정책을 지속했고 외교에서는 영토에 관해 인접국들과 충돌을 불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부 경제사회 성장에 필수적인 국제 선린관계 증진은 불가능했다. 이때 중국 실무진은 나이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또 다른 Soft Power 전략의 주요 사례로는 기후변화대응을 꼽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UN 당사국총회보고서(IPCC 2021)다. 지구 문명 유지를 위해서는 2040년 대기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하 상승으로 유지를 권고했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과 보급이라는 전형적 Hard Power 전략이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대기 온도는 지난 2년간 이미 0.07도나 올랐다. 이는 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1.14도가 올랐음을 의미하며, 2040년 허용목표에 근접한다. 따라서 1.5도 이하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이에 긴급하게 온실가스감축 기술개발이라는 전형적 Hard Power 전략보다 변화에의 적응(Adaptation)능력을 높이는 Soft Power 정책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는 추세다. 정부보다 민간과 지역사회의 자발적 추진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다. 에너지분야 최대 현안인 우리나라 전기요금 조정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전기요금은 명목상 한전이 공지하는 것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 유관 부처들과 그 산하 기구들이 개입한다. 각종 NGO와 학계 등도 제 몫을 챙기려 한다. 상위 의사결정권자의 명확한 지침이 없으면 아예 논의가 시작되지 않는다. 늦장 전기요금 조정으로 한전 경영 적자는 올해만 7조원에 달하고 누적분은 40조 원을 넘는다.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나이 교수 등 관련 학자들은 Soft Power전략 추진을 위해서는 ‘심층-중간 단계의 즉각적 이행’을 강조한다. 이는 정부 주도 전략에서는 불가능하다. 입법, 재원 조달, 이해 당사자들 간의 조정, 이행기구 설립 및 평가 등 각종 이행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료제 형식주의(Red Tape)의 전형인 셈이다. 특히 에너지와 같이 시장실패 가능성이 큰 부문에서 소비자 보호와 국익 증진을 핑계로 극성이다. 시장경제 논리 강화 등 기존 처방으로는 안 된다. 경제와 공학 논리로 해결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는 사회비용, 개인 행복의 폭 등 많은 미지의 영역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 참에 모든 에너지 관련 정책체계를 Soft Power 관점에서 재점검하는 것은 어떨까?최기련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