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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에너지 위기시대, 국가 차원 LNG 비축 강화가 해법이다

에너지 안보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해외 주요국들은 가스 등의 자원안보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의 파장을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유럽연합은 동절기 가스비축과 공급망 다변화 등의 전략을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주요 실천과제로 천명하고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천연가스 비축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 시점에서 천연가스는 건물의 난방취사 연료로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이며,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믹스에서도 주요한 발전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자력수력재생에너지석탄발전을 기저발전으로 놓고, 천연가스발전을 첨두발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저발전의 불시고장 및 이상기온 등 발전시장 내 변동성을 천연가스가 맡는다. 발전원으로서 천연가스의 특성은 천연가스 수급위기 시 그 여파가 민수용 난방·취사에 한정되지 않고, 전력시장과 연계되어 에너지 시장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한다. 유럽연합 등의 주요국이 천연가스 비축 제도를 강화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천연가스의 광범위한 활용성과 파급성 때문이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직후 유럽연합은 가스안보 강화의 일환으로 2022년 11월 1일까지 저장시설용량의 최소 80%, 2023년 11월 1일까지는 최소 90%의 가스비축의무를 법제화 하고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시 가스비축제도를 운영 중인 주요국가 중 액화천연가스(LNG) 도입량이 많으며, 1차 에너지소비 및 발전믹스 내에서 천연가스의 비중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스페인의 비축 사례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크 할 만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산업 구조 한국과 유사한 스페인, 시장참여자 모두 동등하게 천연가스 비축의무 가져스페인은 유럽에서 천연가스를 LNG 형태로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2022년 천연가스가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7%(한국 17.5%)이며,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4%(한국 27.9%)나 된다. 이 같이 스페인은 천연가스가 국가 에너지 시장에서 자리한 위치와 역할이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하다. 또한 스페인의 2022년 LNG 수입량은 약 2100만톤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LNG를 수입했다. 천연가스 소비량에서 LNG 수입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90%(한국 100%)로 천연가스 수입형태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스페인은 LNG 수입 외 나머지 약 10%를 배관망을 통해 PNG(파이프라인가스) 형태로 수입하고 있으므로 천연가스 수입의존도가 100%라는 점도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천연가스 수입 및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지만, 천연가스 비축제도에서는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비축관리주체와 비축의무자의 범위에서 큰 차이가 발견된다. 스페인은 천연가스를 포함한 석유류의 공급 안정성(비축관리, 도입선 다변화)을 2013년부터 정부산하 중앙비축기관인 CORES를 통해서 통합 운영·관리하고 있다. 또한 1998년부터 판매자/공급자, 직소비자 모두에게 비축의무를 법적으로 부여했다. 즉, 천연가스를 수입하여 공급하는 사업자든, 수입하지 않고 내수 시장에서 구입하는 직소비자든 구분하지 않고 시장 참여자 모두가 비축의무를 동등하게 부담한다. 정부에서는 국가 전체 비축을 비롯한 공급안정성을 통합적으로 운영·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직 가스공사만 비축의무자로 지정돼 있다. 비축의 운영·관리도 가스공사가 수행하고 있다. 양국은 천연가스 의무비축량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스페인의 의무비축량은 현재 국가 총수요의 최소 27.5일분이다. 최소 안전재고 10일분, 최소 운영재고 10일분, 사용자 운영재고 7.5+a일분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사용자 운영재고의 비축일수는 최소 7.5일에서 천연가스 수요, 저장시설의 가용 용량, 사용자 운영재고 외의 비축량 등을 고려해 매년 다르게 계산된다. 2023년의 사용자 운영재고는 11.1일분으로 확정돼 2023년 스페인의 총 의무비축량은 31.1일분으로 강화됐다. 스페인의 의무비축 형태별 차이점은 안전재고는 방출 권한을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으며, 운영재고의 방출 권한은 관할 부서장관이 가진다는 점이다. 사용자 운영재고량은 동계비축 의무량으로 유럽연합차원에서 부과되는 동계비축 의무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11월 1일까지 비축해야 하는 물량이다. 스페인에서는 특별히 LNG를 도입돼 사용하는 기업에게는 11월 1일부터 익년 3월 31일까지 LNG 형태로 비축의무를 부여한다. 이러한 LNG 비축은 스페인의 동계비상계획(Winter Action Plan)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시행됐으며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다. 2021년 9월 비축의무일수는 3.5일에서 5.5일로 상향 조정됐다. 이 시기는 유럽의 풍력발전량 감소, 코로나-19 이후 에너지 수요 증가 등의 원인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점차 증가하고 변동성 또한 확대되는 시기였다. 스페인 동계비상계획에서는 LNG 비축 강화 이유가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시장 변화로 동계 수급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고, 동절기 예외적 공급 부족 사태의 결과를 시장이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LNG 비축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은 지하저장시설용량이 부족하며, 물리적인 특성상 LNG 저장시설 만이 유일하게 갑작스런 천연가스 수요 증가에 따른 즉각적인 공급을 보증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 에너지 위기와 천연가스 가격 폭등 사태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한 여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2021년 9월 LNG 비축강화제도를 시의적절하게 추진한 스페인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2021년 9월 일평균 유럽 현물가격(TTF)이 22.8달러/mmbtu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2022년 8월 69.9달러/mmbtu로 3배 이상 상승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페인의 2021년 LNG 비축의무 강화는 매우 적절한 사전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스페인에서 동계 LNG 비축물량을 방출할 수 있는 조건으로는 △한파로 인한 기온 급감 △발전시장 수급불안에 따른 가스발전량 급증 △가스공급자의 불가항력 선언 △가스 공급 인프라 혹은 상류부문 사고 등의 경우다. LNG의 도입·공급 단계에서의 위기뿐만 아니라 국내 도시가스·발전 소비단계의 수급불균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위기관리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은 비축의무제도 외에도 천연가스 공급안정성 보장 관련 의무를 판매자/공급자, 직소비자에게 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한 수입국의 의존도가 국가 천연가스 소비량의 50%를 초과하는 경우 국내 수요의 7%를 초과하는 판매자/공급자, 직소비자는 해당 국가의 수입 비중을 50% 미만으로 조정하도록 도입포트폴리오 조정의무가 부여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국가 전체 수요의 절반 이상을 한 국가에서 수입하는 일이 쉽게 발생하지는 않으나, 가스시장 참여자들의 도입선 다변화를 유도하고 국가 수급의무에 동참하게 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스시장 참여자들은 매년 4월 30일까지 도입관련 세부 정보를 정부기관에 제출하는 의무가 있고, 담당기관은 국가 도입 포트폴리오 정보를 반기별로 업데이트하고 공개하도록 돼 있다. 이는 정부가 천연가스 시장 참여자들의 도입관련 시장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해 정보 부족이나 정보비대칭으로부터 야기되는 가스시장의 수급 불안 문제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내서도 정부 주도 통합 LNG 비축 강화방안 마련해야국내에서도 핵심 자원안보의 중요성이 공론화돼 관련 법안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최근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안(대안)’(‘자특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그간 가스공사가 오롯이 국가 전체 가스시장의 비축의무를 전담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금번 법안 추진을 통해서 직수입자의 비축의무 필요성을 인식하고 법제화하려는 노력 그 자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특법’ 안에 담긴 직수입자의 비축의무는 위기 시 한시적인 부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들 뿐만 아니라, 비축 물량 처분을 국내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되면서 핵심 자원안보에 대한 효과적인 위기 대응이라는 자특법의 근본 취지가 퇴색될 것이 우려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및 ‘천연가스 비축의무에 관한 고시’를 통해 가스공사 판매량의 9일분을 가스공사가 비축하도록 법제화 돼 있다. 또한 가스공사 저장탱크 용량의 5%는 불용재고로 비축의무량인 9일분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에 2023년 가스공사의 실제적인 비축의무량은 가스공사 판매량의 11.6일분이 된다. 이는 2021년에 강화된 규정으로 이전에는 가스공사가 불용재고를 포함한 7일분만을 비축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스공사가 가스공사 판매량뿐만 아니라 민간 직수입사의 물량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비축의무와 수급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우리나라의 2023년 천연가스 비축일수는 명시된 9일분(불용재고 포함 11.6일분)보다 적은 7.6일분(불용재고 포함 9.8일분)으로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 수요 기준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비축일수는 직수입사의 도입량에 따라 증감하는 함수형태가 되는데, 직수입사의 도입 변동성은 국제 LNG시황과 현물가격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국가 비축일수의 변동성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비축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가스공사의 비축의무를 통한 국가 수급 안정성의 효용을 공유하는 직수입자의 무임승차 이슈이다. 가스공사가 부담하는 비축의무 비용(비축물량 확보비용, 저장탱크 이용비용, 기타 부대비용)은 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주택용 소비자, 산업용 소비자, 발전용 소비자에게로 전가돼 분담하는 구조이다. 각 소비자들은 직수입자를 대신해 국가 비축의무에 대한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가스공사가 2022년도 비축의무의 80%를 부담하고 직수입자가 나머지 20%를 부담했다고 가정하면, 가스공사는 상당량의 금액을 요금 인하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직수입자는 비축의무와 자가소비에 대한 수급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장기도입 비중을 낮게 가져가면서 국제 LNG시장 시황에 따라 현물도입을 통한 수익극대화 전략을 추구한다. 문제는 이러한 직수입자의 행태가 풍선효과로 돌아와 가스공사의 도입 및 가스공사로부터 공급받는 발전사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인용하며 직수입자가 선택적으로 도입물량을 감소시키면서 가스공사가 계획 밖의 고가의 추가 LNG현물을 구매하게 됐고, 이에 따른 발전시장의 SMP(계통한계가격) 상승이 유발돼 전기료 인상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도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그 결과, 전 세계 에너지 격랑 속에서도 주요 민간 발전 3사는 2022년 국내 SMP 상승에 따른 수혜로 2020년 대비 영업이익이 약 3.3배 상승한 1조8877억원을 실현했다. 반면 가스공사는 미수금 약 15조원(2023년 2분기 기준), 한전은 누적 적자 약 45조원(2021년~2023년 기간)이라는 실적과 에너지요금 폭탄의 주범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자특법’에서는 위기 경보 시에만 직수입자에게 비축의무를 한시적으로 명할 수 있기 때문에 상기에서 언급한 △직수입물량에 따른 국가 비축일수의 증감현상 △직수입자의 무임승차 이슈 △에너지 기업 간 수익양극화 현상 중 어떤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최근의 에너지 위기와 급작스런 에너지 가격 급등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위기 경보에 대한 판단과 그 시점이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페인의 동계비상계획에서는 ‘시장이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 발생’에 대해 명시하며 국가차원의 통합 비축의무를 강화한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위기 경보 발령 후 직수입자에게 비축의무 명령이 실제로 내려 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든다. 현재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에서도 수급 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직수입자에게 도입물량 규모·시기 등의 조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 돼 있지만, 2022년 에너지 위기 기간을 포함해 단 한 번도 직수입자에게 수급 조정명령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직수입자를 포함한 국가 전체의 소비물량으로 비축의무의 대상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LNG 비축강화의 세부방안은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해봐야 할 테지만, 스페인의 사례와 같이 국가 주도의 통합적 비축·운영 방안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국가 전담비축기관을 지정하면 전담비축기관은 국가 비축의무를 통합적으로 수행 및 운영·관리하며, 비용은 가스시장의 참여자인 가스공사와 직수입자 그리고 정부가 분담하면 된다. 통합비축은 비축제도의 효율적 운영 및 관리 측면에서 이점이 있기 때문에 국가수급 위기 발생 시 기민한 대처가 가능하며, 현재 ‘자특법’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제3자 판매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에서도 천연가스의 역할이 여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EI(舊 BP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천연가스가 국내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5%, 발전량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9%이다. 특히, 발전부문에서 천연가스는 원자력석탄과 함께 주요 발전원으로서 중추역할과 발전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흡수하는 유연성 전원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천연가스의 수급위기 대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는 정부 주도의 국가 통합비축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법 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서 국가 에너지 안보강화와 국민 편익 증진의 초석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한국가스공사 인천LNG생산기지 전경.

[EE칼럼] 분산에너지 활성화, ‘그림의 떡’ 될 수도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다. 대형 발전소 중심의 중앙집중식 전력 공급 체계를 전력을 소비하는 곳에서 직접 생산하는 분산형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분산에너지는 연료전지·신재생에너지·중소형 원전(SMR)·집단에너지발전과 같은 무탄소 또는 환경친화적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말한다. 송·배전 인프라 등 전력 계통망 구축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환경정책기본법에 규정된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에도 부합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의 취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보기 흉한 고압 송전 철탑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오염과 사고의 위험을 남에게 떠넘기는 윤리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분산에너지 활성화가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부과하고 있는 전기요금 체계를 지역별 차등제로 전환해야 한다. 전기의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거래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전기 거래절차 개선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전기를 저장하는 현실적인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전기는 실시간 생산과 실시간 소비를 원칙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활용이 가능한 분산에너지로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현재의 기술로는 100% 완전한 분산에너지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분산에너지 시스템은 현재의 중앙집중식 전력의 보조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모든 소비자가 중앙집중식 송전망과 분산에너지를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기술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압과 주파수의 안정성을 요구하는 정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쨌든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하더라도 완전한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불가능하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분산에너지의 양을 중앙집중식 전력 사용량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관리하는 복잡한 스마트그리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전국의 모든 송전망을 첨단 스마트그리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시설 투자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송전망 관리에 필요한 기술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진다. 현재는 한국전력이 교류를 생산하는 25기의 원전과 50여 기의 석탄화력을 비롯한 대형 발전사와 일부 대형 민간 LNG 발전사만 관리하면 된다. 매일 시간대별 전력 수요를 전망해서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국의 발전사에 전력 공급을 요청하고, 실시간으로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모니터링하면서 발전량을 조정해야만 한다. 잠시라도 공급이 부족하거나 넘치면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분산에너지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미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 사업자의 수가 5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영세 발전 사업자의 기술력·관리력은 물론 사회적 책무성도 신뢰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한전이 분산형 전원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극단적인 수도권 분포도 분산에너지 활성화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 인구의 50.6%에 해당하는 2600만 명이 서울·인천·경기를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전력 수요도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수도권에 수요에 걸맞는 수준의 분산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분산에너지시설을 갖추기 위한 공간적인 제약과 발전설비는 물론이고 물론 오염 방지와 사고 예방을 위한 시설을 갖추기 위한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발전단가도 높아진다. 그런 현실은 이미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의 발전 현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의 발전량의 43%가 호남 지역에서 생산된다. 그렇다고 태양광이 호남지역의 분산에너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남 지역의 전력 소비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12%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호남에서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고압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분산에너지라고 모두 장거리 송배전 투자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특별법에 명시된 대부분의 분산에너지가 아직은 기술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분산에너지 발전사는 필연적으로 영세할 수밖에 없다. 대형 원전이나 석탄화력이 챙길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영세한 미래 에너지의 발전단가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쌀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값이 지나치게 비싸면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E칼럼] 새해 기후변화 대응 과제와 해법

2024년 갑진년이 밝았다. 새해 초부터 우리나라의 폭설을 비롯해 지구촌에는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기상이변이 잇따르고 있다. 지구촌 모두가 힘을 합쳐서 기후위기에 대응을 해도 충분하지 않은데 올 한해 전개될 각국의 상황은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계속될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은 파리협정 아에서 국가적 기여 (NDC)로 알려져 있는 회원국별 또는 EU와 같은 지역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계획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올해는 우리나라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을 비롯해서 74개국에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유권자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의 선거라 치러진다. 행여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을 하면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후퇴가 있게 되지 않을지 많은 우려가 있듯이, 각국의 선거가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에 미칠 파장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국제 분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을 거쳐서 여러 지역에서 묻혀있던 분쟁의 불씨를 키우는 모양새다. 이러한 지역정세의 불안정은 유럽의 에너지 대란에서 볼 수 있듯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역차원의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촉발되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화석연료와 결별을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회원국 간에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국은 2025년에 제출할 새로운 NDC를 잘 준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미·중 간의 기후변화 협력도 그 모멘텀을 잃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에 어려움에 처한 국가들을 계속해서 지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면 좋겠다. 올해 국내차원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반으로, 국제적으로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리더십 발휘 차원에서 기후위기 대응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 특히, 올해는 2025년에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새로운 NDC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후퇴 없는 전진’의 맥락에서 제2차 NDC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하지만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과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등 다양한 청정에너지를 활용하면서 이를 통해 연구개발과 민간투자가 이뤄지고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한마디로 새로운 탄소중립에 바탕을 둔 제2차 5개년 경제발전계획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기후변화 대응을 통해 해외 일자리 창출과 해외 투자증진과 연계되는 글로벌 규범표준을 만들고, 국가 간의 협력을 주도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이러한 점에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국외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글로벌 전략을 가다듬고 관련 국내정책 정비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산림 분야를 넘어서 에너지 분야에서도 국가나 준국가 단위의 대규모 해외 온실가스 감축활동 추진 메커니즘 개발 및 활용, 개도국과 협력의 전제가 되는 열악한 제도적 역량 강화를 위한 그린 ODA의 전략적 활용, 손실과 피해 기금·녹색기후기금· 다양한 다자 개발은행 등 다양한 공적재원과 민간부문의 투자의 연계,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기구를 통한 글로벌 표준화 추진 등이 구체적인 예들이다. 여기에 더해 국제사회에서 만큼 자발적 시장 활용 여부에 대한 국내 혼란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외감축목표 달성에 민간 참여를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인벤토리 상에서 상응조정, 최상위 환경건정성 확보, NDC 용 국외감축결과(ITMOs)의 확보, 민간이 확보해 국내로 이전하는 ITMOs 중에서 NDC 용 정부분 결정을 위한 분배 기준 마련, 소위 국제감축사업 추진 관련 절차 간소화 등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정책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국내외 기후변화 정책의 성공적인 추진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후변화가 최상위 어젠다의 하나로 대통령의 직접적인 관심과 리더십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SDLAP 소장

[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유연성 제고에 초점 맞춰야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수립 중이다. 현재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겠지만 보고서 작성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동안 전기본은 몇 차례 성격의 변화가 있었다. 1990년대 비용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확정적 계획’(plan)에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에는 전기사업자의 자율적인 발전소 건설 의향을 받아 ‘전망’(outlook) 형태로 바뀌었다. 제 1·2차 전기본은 전력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을 반영했다. 사업자들이 제출한 발전소 건설 의향을 ‘사업별 진척도 및 실현성의 수준’을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고, 건설의 불확실성이 비교적 낮은 등급의 설비가 발전소 건설계획에 반영됐다. 이렇다 보니 수립된 계획은 적정 예비율을 크게 넘어서며 설비과잉문제가 제기됐고 전기본의 성격이 다시 수정됐다. 제3차 전기본 이후에는 적정 설비규모 유도 등 정부 정책기능을 강화하는 형태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 시장기능의 강화, 전기본 이행의 불확실성 제고 등을 이유로 또 다시 전망 형태로의 성격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기본의 성격이 시장중심, 전망 중심으로 전환되면 전력수급의 적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 발전사업을 하려는 사업자는 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 지정 → 환경영향평가 →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 승인 → 전기설비공사계획인가의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11개 중앙부처와 발전소 입지 지역의 지자체, 지역 주민 등과의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은 여기에다 원안위의 건설허가, 운영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1978년 당시 정부는 절차 간소화를 위한 ‘전원개발 촉진법’을 제정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증가, 농어촌 근대화 등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신속하게 위해서다. 법 제정 후 10년 만에 전력설비가 3배로 늘어나며 전력공급 문제 해결과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전기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산업부의 실시계획 승인을 받으면 21개 법률에 대해 허가·인가·면허·결정·지정·승인·해제·협의 또는 처분 등을 받은 것(의제)이 된다. 하지만 실시계획의 승인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설비가 전기본에 포함돼야 한다. 전원개발촉진법 제2조 3항에는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이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전원개발사업의 실시에 관한 세부계획"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전기본에 포함되지 못한 발전소는 전원개발촉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시장 또는 전망 성격의 전기본에 의해 발전사업을 하려는 사업자는 실시계획을 취득하기까지 정부 유관부처와 수많은 관계법령, 지자체와 협의 등 규제과정의 어려움으로 발전소 건설기간이 한 없이 길어질 수 있다. 또 건설허가를 취득한 사업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적정 전력수급이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행 전기본 수립 체계를 유지하되 보고서 내용에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식은 제한적으로 적용된 사례도 있다. 2017년 말 수립된 제8차 전기본(35페이지)에는 참고표시(※)로 "월성 1호기 : 내년 상반기중 경제성, 지역 수용성 등 계속 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폐쇄시기 등 결정 → 원안위에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변경 허가 신청 등 법적 절차 착수"로 조기폐쇄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 2018년 6월 월성1호기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구 정지됐다. 당시에는 전기본의 참고 표시가 훗날, 그리고 현재까지도 파급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탈원전 정책이 폐기된 후 수립된 제10차 전기본에는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이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재개가 반영됐을 뿐 후속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것이 제11차 전기본 조기 수립 이유라는 주장도 있다. "원전 후속기에 대한 검토와 신규사업을 준비한다"는 정도의 언급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제11차 전기본에 i-SMR이 반영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i-SMR은 기술개발 중이므로 전기본에 반영할 수 없다. 그러나 11차 전기본에 "신규원전은 기술개발 진전 상황을 고려하여 i-SMR로 대체될 수 있다"고 기술해 놓으면 문제가 될까? 전기본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계획을 유연하게 수립할 방법이 있다.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EE칼럼] 혁신의 기회

2024년은 용(龍)의 해다. 에너지가 얼마나 많으냐로 따지자면 용은 하늘을 날고 번개를 내리며 불을 뿜으니 십이지 상징 동물 중 으뜸이다. 동양에서는 군주의 상징이자 가장 신성한 동물이며 서양에서는 가장 강력한 악의 상징이다. 2024년은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에 에너지와 혼돈이 넘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국제정세는 제2차 석유 위기와 미·소 냉전으로 정신 없었던 1980년대 이후 40여 년 만에 가장 혼란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해를 넘기며 지속될 전망이다. 미·중 간 무역분쟁 역시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새해에도 지우리나라의 무역 환경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대외 무역환경이 계속 어려워지고 복잡해질 것이 예측되는 만큼 에너지와 자원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GDP 대부분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새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후보자가 국제통상 분야 전문가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기회에 에너지 정책이 국내문제에서 벗어나 국제 변화를 보다 심도 있게 검토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단기적으로는 전통적인 우방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새로운 친한파 국가 확대로 공급망 이슈를 해소해야 한다. 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는 기후변화협약 관련 국제동향을 면밀히 살펴 변화에 적절한 산업 정책을 창출해야 한다. 산업부 에너지 부문 조직에 통상과 국제협력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해 세계 에너지자원 공급망의 변화를 관찰해 필요한 정책을 맡기면 좋겠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산업과 인프라를 혁신해야 한다. 건설된 지 수십 년이 돼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전력망 등 에너지 인프라에 첨단기술을 적용하고 민간이 운영에 참여하게 하는 등의 혁신적인 정책을 수립,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 적자 상태인 공기업의 구성원들을 신산업 및 해외 공급망 해결에 투입해야 한다. 용은 혁신의 상징이다. 십이지 동물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상징한다. 미래 에너지신산업 육성과 활성화를 위해 획기적인 R&D를 투자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기존 공기업 영역에도 과감한 경쟁체제를 도입해 국제경쟁력을 가진 혁신 에너지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민영화니 독과점이니 하는 산업구조논쟁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에너지기업이라면 공기업이건, 민간기업이건 이제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산업군 중 세계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기업이 하나도 없는 부문은 에너지산업이 거의 유일하다. 세계 2위의 가스회사와 세계 10위권의 전력회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람코, 엑손모빌 등 굴지의 세계 에너지기업들과 비교하면 70위권 정도다. 에너지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다른 산업이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다. 경쟁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제공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 해가 가기도 전에 새로운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많은 부분에서 혁신의 기회가 있었지만 공급 업체 간 경쟁을 통한 산업 발전이라는 단순한 기초 레벨에도 들어서지 못해 신산업 창출과 고용 촉진의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혁신을 원한다면 이제는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더욱 집중하여야 한다. 새해는 청룡이라서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우리나라에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환경의 급변은 분명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그 기회를 잡고 새로이 혁신한다면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우리 모두 용이 되는 꿈을 꾸어보자.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EE칼럼] 에너지산업의 새해 화두와 과제

세계적으로 에너지산업은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에너지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대규모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서 분산형 시스템으로, 대량 생산과 소비 중심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화석에너지로부터 청정에너지로의 전환과 전기화가 전 인류의 공통된 과제로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탈탄소화, 분산화, 디지털화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빅 데이터, 3D 프린팅,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에너지산업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가 탄생하고 있다. 현재 기후위기 대응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명분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과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의 상충된 의견으로 인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2050년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 기업, 정부 모두가 사회적 가치에 기반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 결정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일방적인 하향식 방식이 아닌 소통과 협력에 기반한 상향식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정책의 수립 초기 단계부터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미래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토론해 예상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정부는 공정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하며, 토론의 결과를 국가 전략에 담아야 한다. 아울러 절차적 정당성을 토대로 도출된 합의점과 미래 비전을 법제화해 정책의 일관성 확보와 함께 불확실성을 없애 기업의 발전적 참여와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또 전기요금의 현실화, 전력산업구조개편, 에너지공기업의 기능 재조정 등 전 근대적인 에너지시스템 혁신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좌초자산 처리문제, 지역경제 침체 및 일자리 감소문제 등을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화합과 타협을 통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한 예로 해상풍력특별법과 함께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되야 한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CF100’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국제사회의 자발적 탄소감축운동인 RE100 달성은 발등의 불이다. 우리 내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점은 국제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UN의 대북 제재와 러시아 제재 등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에너지협력 가능성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2050년에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먼 미래를 대비해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신재생에너지 잠재력을 적극 활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북아시아 지역 전력망 연계라는 Asia Super Grid 구상 외에도 동북아시아지역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이용하여 그린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운송하여 새로운 수소경제를 구축하는 방안 등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이제는 화석에너지로부터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장 기회이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정부는 다방면에서 혁신을 촉진하고 비용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에너지정책을 수립하고 투자 전략을 주도해야 한다. 기업도 세계적인 변화 추세에 맞춰 혁신적으로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시민(가계) 역시 가치지향적인 소비를 통해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막고, 변화에 따르는 비용과 고통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 ‘겨울은 보이는 것들의 성장을 멈추게 하지만, 보이지 않는 뿌리를 자라게 한다’는 말이 있다. 에너지산업이 직면한 현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불확실성과 위험요소가 크고 이로 인한 불안감과 위기감 역시 치솟고 있다. 하지만 위기(危機)가 곧 기회라는 말 처럼 지금의 위기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기회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갑진년(甲辰年) 올 한해 정부와 기업, 가계가 힘을 합쳐 난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한국경제가 용솟음치기를 기대해 본다.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E칼럼] 수소배관망 구축, 네덜란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면서 우리 조야에서는 때아닌 네덜란드라는 서유럽의 강소국에 관심이 쏠렸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이나 세계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기업 ASML 본사 방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한·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 강화가 주된 목적이었다. 이 밖에도 국사책에서 ‘헤이그 특사’로 배운 ‘이준’ 열사의 기념관 방문 등을 통해 우리와 네덜란드의 역사적 관계를 환기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한편으로 필자와 같은 에너지·자원경제학자에게 네덜란드는 이른다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을 떠올린다. 네덜란드병이란 대규모 유전·가스전이 발견되면, 신기하게도 제조업이나 농업 등이 오히려 쇠퇴하면서 경기침체·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는 독특한 경제 현상을 말한다. 얼핏 대규모 유전·가스전이 발견되면 온 국민이 돈방석 위에 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석유·천연가스를 팔아 벌어드린 대규모 외화가 국내로 유입되면, 상대적으로 자국 통화가 비싸지고 환율이 떨어져, 공산품·농산물 등 다른 품목의 수출길이 막히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상황은 실제로 1960~70년대 네덜란드 제조업에서 발생했다. 1959년 대규모의 ‘흐로닝언(Groningen) 가스전’이 발견되면서다. 2013년 생산량이 약 2조 570억㎥에 달한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지역 최대 규모로, 심지어 일국의 제조업 쇠퇴까지 유발할 정도였다. 흐로닝언 가스전은 수익의 70~95%가 네덜란드 정부에 귀속돼 오늘의 네덜란드 복지 국가시스템을 있게 한 경제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흐로닝언 가스전이 최근 폐쇄됐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원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스 추출로 지반 침하가 심해져 1991년부터 주변 지역에 빈번한 지진을 유발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흐르닝언 가스전은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생산을 줄이기 시작해 올해 10월 1일자로 생산이 완전중단됐다. 이에 따라 가스 배관 네트워크를 통해 네덜란드를 넘어 유럽전역으로 흐로닝언산 천연가스를 실어나르던 네덜란드 가스유통공사 ‘하수니(Gasunie)’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더욱이 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예정된 천연가스 수요 감소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하수니는 결국 가스에서 수소유통공사로 변신했다. 이를 위해 주로 북해의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에서 생산하는 그린수소를 네덜란드 전역으로 유통할 수 있는 연장 1200㎞ 수소 전용배관 네트워크를 2030년까지 구축하는 ‘Hydrogen Backbone’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두 가지 이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먼저 소요예산 15억 유로(약 1조5000억원)의 절반을 정부가 부담한다는 점이다. 전국 단위의 수소 배관 네트워크 구축이 일종의 고속도로처럼 관련 산업발전에 필수적이지만 아직 불확실한 수소 수요로 수익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려워 민간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이냐 논쟁의 늪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네덜란드 정부가 과감히 위험을 분담해준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의 과단성도 본받을 만하지만, 이를 이끌어낸 하수니의 전략도 눈에 띈다. 하수니는 1200㎞의 수소 배관 중 85%를 기존 가스 배관을 개조·재목적화해 수소로 전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구축비용이 신규 배관의 20~25% 정도로 저렴해지면서, 동시에 좌초자산을 재사용해 탈탄소화 정책 실행에 따른 자원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게 했다. 정부 재원은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다. 그래서 위험부담이 큰 이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좋을 수만은 없다. 이처럼 비용 효과적이면서도 기발한 방안으로 소모적 논쟁을 피하면서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소구력도 가질 수 있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 수소경제도 기존 수송 중심에서 발전·산업 중심으로 중심축이 옮겨가면서, 수소 전용배관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네덜란드처럼 전국단위까지는 아니라도 평택 등 수도권, 광양만권, 부·울·경 권역 등지에서 수소 전용배관 환산망에 대한 검토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나 네덜란드나 대규모 배관 구축에 수반되는 위험부담이나 사회적 논란은 비슷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수니 사례처럼 더 과감한 정부 지원과 함께 이를 정당화해줄 수 있는 비용 효과적인 구축 방안 마련을 위한 이해당사들의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하수니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E칼럼] 산업통상자원부의 문제 나눠 풀기

크고 복잡한 문제를 풀 때, 그것을 다룰 수 있을 만한 작은 문제로 나눠서 푸는 것이 방법이다. 어떤 일이든지 큰 일은 통째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작은 일로 나눠서 푸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비정부기구(NGO)의 인사들은 이런저런 고려사항들을 다 집어넣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이들도 그걸 잘 알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를 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계속 떼를 부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주로 직접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기 보다는 훈수를 두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많다. 계속 훈수를 두려면 판이 끝나지 않아야 하니 말이다.문제를 나눠서 풀 경우와 함께 통째로 풀 경우의 답이 다른 경우도 있다. 예컨대 어떤 기부를 한다고 치자. 작은 기부들을 열거하면서 하나하나 소액을 요구하면 기부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걸 모두 합쳐서 목돈을 요구하면 기부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문제들의 답들을 서로 비교해서 과연 상충되는 점이 있는지 하는 것 들을 검토함으로써 큰 문제의 답과 같도록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작은 문제에 대한 답을 그대로 정답으로 여기면 사실 문제를 풀지 못한 경우보다 못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전력망이 불안해진다. 재생에너지는 햇볕과 바람과 같은 환경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력생산이 일정하지 않다. 햇볕과 바람이 일정하지 않으며 일정하다고 구름이 지나간다거나 하는 다른 조건들이 바뀌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전력생산 일정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은 전압과 주파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전력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것이 전력시장에 큰 과제로 등장했다. 전력망을 안정화하려면 전력생산량 조절이 쉬운 발전소를 늘리는 것이다. 이른바 탄력적 발전원을 늘리는 것이다. 이 경우 탄력적 발전원으로 석탄발전이나 가스발전을 늘린다면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취지가 사라져버린다. 다른 방법으로 전력저장장치(ESS), 즉 배터리를 둬서 전력이 남으면 거기에 넣어두고 부족할 때 보충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EES시설을 갖추고 운영하는 데는 매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생에너지 발전단가 그 자체보다 전력저장장치의 가격이 더 높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에는 국민이 보지 못하는 이런 다른 비용요소를 추가해 고려돼야 하지만 이 비용은 전력망 비용으로 전가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풀어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에너지기본계획도 세워야 한다. 또 2년마다 전력수급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한전의 적자 문제를 다룰 때는 원자력 발전이 줄어들고 재생에너지가 늘어났다는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또 재생에너지가 늘어남으로써 전력망을 보강해야 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마치 한전이 부실 경영을 한 양 한전의 조직을 축소하고, 자산을 매각하며 직원들의 보너스를 줄이거나 반납하는 계획을 세운다. 탄소중립계획이나 전력수급계획을 세울때 가격이라는 시장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빼놓고 계획을 짠다. 한전의 적자는 고려하지 않는다. 전력수급계획을 짤 때는 정책전원이라는 명목으로 재생에너지를 무조건 일정비율을 건설하도록 반영한다. 그리고 나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져 전력망을 안정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나치게 높아진 재생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한 연구소를 설립해서 지원하고 또 한전의 적자 계획은 이들은 고정값으로 놓고 대책을 수립한다. 과연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걸 몰라서 돈 계산을 안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돈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공급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재생에너지를 마구잡이로 공급해놓고 전력망을 강화한다며 또 수요처와 공급처가 다른 문제를 해결한다고 또 돈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값싸게 탄소중립을 하려면 원자력발전소 늘리면 간단히 모든 게 해결되는 데 말이다.산업부는 에너지 문제를 큰 틀에서 정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풀면서 정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얼마 전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로버트 솔로 (Robert Solow) 교수가 별세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의 주 전공분야는 경제성장론이었으며 방법론으로는 동학 모형으로서 필자의 연구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몇 년 전에는 그의 경제성장 모형을 확대해 ‘탄소중립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양립하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바도 있다.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해 2050년 무렵 인구절벽·재정절벽·연금절벽의 ‘트리플 위기’에서 우리나라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산업성장과 기술혁신을 막는 단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기술개발과 자본축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로버트 솔로 교수가 지속가능성 이슈에 동참했던 1970년대는 오늘날과 유사하게 환경이 이슈였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달랐다.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는 빙하기의 도래를 우려하고 있었으며,(독자 중 그 당시 한강이 얼었던 것을 기억할 세대도 있을 것이다), 로마클럽은 인구증가와 자원고갈로 인류의 생존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겁게 경고하던 때였다.(아이러니하게 지금은 인구감소를 우려하고 자원의 가채 년수도 여전하다)로마클럽의 경고 이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정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UN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수자원, 대기자원, 토양자원이 지구 상에 애초에 형성되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도록 모든 세대가 이들 자원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화석연료는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층 생태중심의 사고를 근거로 당시 선진국의 환경주의자들은 중진국의 인구증가 문제에 심각하게 개입하기도 하였다. 로버트 솔로 교수는 이와 같은 지속가능성 정의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대신 그는 화석연료를 최적의 소비경로를 따라 사용하되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개발과 산업성장으로 연결해 미래 세대가 경제적, 생태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즉, 기술진보를 통한 새로운 성장자본의 축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동시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세대간 형평성, 특히 취약세대에 대한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적 관점과도 부합한다는 연구들도 상당수 있다. 21세기인 오늘날의 탄소중립 논쟁은 필자가 볼 때 1970년대 로마클럽과 1980년대 지속가능성 논쟁의 데자뷔다. 자원 이용률과 인구증가율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넷제로와 유사한 개념이다. 로버트 솔로 교수의 기술혁신 중심의 환경-경제성장 모형에 따르면 넷제로라는 온실가스 감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탄소중립의 기술혁신을 통해 산업역량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중립은 1~2년 추진하고 그만둘 정책이 아니라 수십년 아니 한 세기에 걸쳐 추진해야 할 방향이라면 우리 자체적으로 그 산업적 역량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수입산으로 태양광과 풍력을 다 깔고서 그것으로 탄소중립 달성했다고 하는 주장은 오히려 미래 세대의 경제권을 박탈하는 존 롤스의 정의론에도 위배된다.넷제로를 주장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 또는 그 전신인 Build Back Better(경제인프라 패키지), 탄소국경조정제, 핵심원자재법 등은 온실가스 감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저탄소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 산업자본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정작 산업자본의 육성을 통한 강건한 경제성장 도모보다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도 두들겨 패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내 밸류체인을 강화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과 과학기술의 부흥을 위한 로버트 솔로 방식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특별기고] 후쿠시마 방류수, 과학적 사실은 이렇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8월 24일부터 방류가 시작된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는 지난 11월 30일까지 총 2만3351㎥가 방류됐다. 지금까지 방류된 처리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는 총 3조2000억Bq로 연말까지 예정된 추가 방류량까지 고려하면 올해 배출되는 삼중수소의 총량은 약 4조6000억Bq이다. 4조6000억Bq의 삼중수소를 무게 단위로 환산하면 약 13mg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이후에도 매년 62mg 이하의 삼중수소 배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 수준의 삼중수소는 우리나라는 커녕 일본 후쿠시마 연안에서조차 유의미한 환경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자연 및 인공적으로 배출되어온 삼중수소의 양과 비교한다면 매우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반감기 약 12.32년의 방사성 핵종으로, 자연적으로는 지구 대기 상층부에서 생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삼중수소는 매년 약 150~200g이 빗물을 통해 해양으로 유입되며, 발생량과 반감기에 의한 소멸량을 합쳐 약 3.5~4kg이 해양에서 평형을 이룬다. 인공적 요인의 삼중수소는 전 세계의 원자력 시설에서 매년 약 80g이 배출되는데 이는 올 한해 후쿠시마에서 배출되는 양보다 6000배 이상 많은 양이다. 전 세계의 원자력시설 중 가장 많은 양의 삼중수소를 배출하는 곳은 프랑스 라아그(La Hague) 핵연료 재처리 시설인데, 이곳에서만 매년 30g 안팎의 삼중수소가 배출된다. 후쿠시마와 비교하면 최소 500~수천배의 삼중수소가 배출되고 있음에도 라아그 지역의 방사능 수치는 상당히 낮다. 당연히 라아그 주변 생태계 역시 별다른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는다. 라아그 재처리 시설보다 더 많은 삼중수소를 유출시킨 사례를 살펴보면 어떠할까? 오늘날 지구 바닷속에 존재하는 삼중수소의 대부분은 1960년대 전후로 실시된 대기권 내 핵실험에 의해 발생했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연구소(IRSN)에 따르면 대기권 내 핵실험으로 발생한 삼중수소의 총량은 약 600kg이나 되며 지난 60여년간 약 5차례의 반감기를 거쳐 현재는 약 20kg이 바닷속에 잔존하고 있다. 특히 핵실험이 정점에 도달했던 1963년에는 북반구에 내린 빗물 속 삼중수소 농도가 리터 당 470Bq에 달했다. 당연히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영토·영해에 빗물로 직접 내린 삼중수소의 양은 현재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보관된 총량보다도 수백배 이상 많다. 후쿠시마에서 배출된 삼중수소는 태평양을 비롯한 대양에서 희석된 이후 우리나라에 도달하므로 실질적인 영향력은 냉전시기 우리나라에 직접 비로 내렸던 삼중수소의 수십만분의 일 이하로 볼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 매년 62mg의 삼중수소가 배출된다고 한들, 우리나라에 대한 환경 영향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런데도 특정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방류수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지구가 악영향을 받게 될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방사선 및 방사성 물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 대중에 널리 퍼졌던 뿌리 깊은 공포심과 반일 감정에 기인한다. 일본은 역사적 악연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아직 우리 국민들에게 뿌리깊이 남아있는 국가다. 우리와 경제적·군사적으로 동맹관계인 동시에 경제·문화·외교적 측면에서 서로 아슬아슬한 경쟁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본과 같은 국가를 대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자면 과학적 사실관계에 어긋난 주장을 내세우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한편 원자력 및 방사선 전문가 집단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세를 견지하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으며 투명한 정보 를 전달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이 진영 논리에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가 집단이 일종의 집단 지성체계를 구축해 대중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고범규 (사)사실과과학네트웍 정책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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