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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에너지 정책,소프트파워로 전환할 때

에너지 시장형성 과정에서 ‘하드파워’(Hard-Power·강한 물리적인 힘)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믿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본다. Hard-Power의 대표 사례로는 1970년대 이래 OPEC의 금수조치 등 각종 행태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이후 전개된 유럽,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와 중국을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 간 천연가스, 석유 규제와 반발 등이 새로운 ‘Hard-Power’로 등장했다. 에너지 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동·서간 냉전(冷戰) 구도가 형성됐다. 여기서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 G2 국가로 등장한 중국은 러시아 편을 들면서 미국과의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새로운 분란을 초래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러시아와 확장된 산유국 카르텔(OPEC+)을 결성하고 산유국 주도 에너지 시장 구도의 영속화를 기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친(親)미국 전략을 포기한 것이다. 바야흐로 석유 등 에너지가 세계질서의 분절화(分切化· Fragmentation)와 블록(Block) 대결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이런 Hard-Power 대결은 지속될까? 그렇지 않을 조짐이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래 50여 년의 에너지 시장 왜곡 역사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 사례로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OPEC+ 분열과 석유 시장의 반응이다. 이달 초 OPEC회의에서 사우디는 7월부터 자발적으로 하루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발표했다. 지난 4월 하루 50만 배럴 감산 조치에 추가한 것이다. 내년 말까지 감산 연장도 가능하단다. 그러나 러시아는 추가 감산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우크라 전쟁 후유증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의 자발적 추가 감산에 대한 국제원유가격 변화는 미미하다. 북해 브렌트유의 경우 지난 4월 70달러 후반 수준에서 지금은 75달러 안팎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WTI도 비슷한 수준이다. 국제경기 불확실성과 미국 석유 재고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빈 살만이 주도하는 ‘네옴시티’ 사업 등의 대규모 투자비 조달을 위해서는 석유 가격이 80달러 이상 유지돼야 한다. 다급하다. 산유국 Hard-Power의 끝물의 씁쓸함을 대변하는 것인가? 학계에서는 이미 Hard-Power의 시대가 끝나고 소프트파워(Soft-Power)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미국 하버드대의 조셉 나이 (Joseph Nye) 교수는 그의 명저 ‘Do Morals Matter? 2020’에서 Soft-Power 시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Soft-Power란 ‘강압보다 매력 발산으로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개념은 놀랍게도 2007년 중국 후진 따오 주석이 2007년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외교 전략의 중심 논리로 채택했다고 나이 교수는 말했다. 중국은 마오쩌뚱 정권 출범 이래 강한 인민 통제 정책을 지속했고 외교에서는 영토에 관해 인접국들과 충돌을 불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부 경제사회 성장에 필수적인 국제 선린관계 증진은 불가능했다. 이때 중국 실무진은 나이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또 다른 Soft Power 전략의 주요 사례로는 기후변화대응을 꼽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UN 당사국총회보고서(IPCC 2021)다. 지구 문명 유지를 위해서는 2040년 대기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하 상승으로 유지를 권고했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과 보급이라는 전형적 Hard Power 전략이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대기 온도는 지난 2년간 이미 0.07도나 올랐다. 이는 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1.14도가 올랐음을 의미하며, 2040년 허용목표에 근접한다. 따라서 1.5도 이하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이에 긴급하게 온실가스감축 기술개발이라는 전형적 Hard Power 전략보다 변화에의 적응(Adaptation)능력을 높이는 Soft Power 정책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는 추세다. 정부보다 민간과 지역사회의 자발적 추진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다. 에너지분야 최대 현안인 우리나라 전기요금 조정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전기요금은 명목상 한전이 공지하는 것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 유관 부처들과 그 산하 기구들이 개입한다. 각종 NGO와 학계 등도 제 몫을 챙기려 한다. 상위 의사결정권자의 명확한 지침이 없으면 아예 논의가 시작되지 않는다. 늦장 전기요금 조정으로 한전 경영 적자는 올해만 7조원에 달하고 누적분은 40조 원을 넘는다.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나이 교수 등 관련 학자들은 Soft Power전략 추진을 위해서는 ‘심층-중간 단계의 즉각적 이행’을 강조한다. 이는 정부 주도 전략에서는 불가능하다. 입법, 재원 조달, 이해 당사자들 간의 조정, 이행기구 설립 및 평가 등 각종 이행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료제 형식주의(Red Tape)의 전형인 셈이다. 특히 에너지와 같이 시장실패 가능성이 큰 부문에서 소비자 보호와 국익 증진을 핑계로 극성이다. 시장경제 논리 강화 등 기존 처방으로는 안 된다. 경제와 공학 논리로 해결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는 사회비용, 개인 행복의 폭 등 많은 미지의 영역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 참에 모든 에너지 관련 정책체계를 Soft Power 관점에서 재점검하는 것은 어떨까?최기련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

[EE칼럼]유엔 안보리 재진입, 한반도

한국은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192개국 중 180국의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11년 만에 다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확보했다. 이로써 한국은 내년부터 2년간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안보리 활동을 하게 된다. 1996~1997년과 2013~2014년에 이어 세 번째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에게 있어 안보리 재진입은 그 의미가 실로 크다. 2년 동안 유엔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안보리의 이사국들과 수시로 만나면서 여러 가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이 안보리에서 최우선시할 수 밖에 없는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No Deal)’ 이후 북한 핵문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더욱 고도화되고 미사일 도발은 일상화됐다. 더구나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서방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에서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실마리를 찾기가 절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핵 없는 한반도’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다음 세대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이를 달성해 내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주변 4강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시야를 확장해 보다 많은 지역의, 보다 다양한 나라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될 만한 것이 바로 ‘그린데탕트’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 함께 대응하기 위해 남북간 ‘그린데탕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110대 국정과제’ 안에 그린데탕트를 포함했다. 한반도가 우리 민족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이상, 한반도 전체의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현 세대의 엄중한 책무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그린데탕트는 가치가 큰 정책 목표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북한의 환경 파괴는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다. 기상청에 의하면 한반도는 온난화가 전 지구의 평균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며 북한의 상황이 남한보다 더 심각하다. 기후위기가 한반도의 생태안보를 위협하고 자연재해의 규모와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재난상황은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하고 경제가 폐쇄적인 북한에게 더욱 위협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반복적인 재난 상황에 의해 노출될수록 북한 사회는 더욱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고, 이런 사회적 불안은 결국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더욱 위협적이고 도발적인 행위를 자행하게 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으므로 한반도 평화에도 부정적이다. 반복적인 자연재해와 재난상황은 북한의 생산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식량안보, 생태안보, 에너지안보는 물론 인간안보까지 위협하면서 북한 당국이 갈수록 위법적이고 국제사회에 위협적인 행위를 반복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도 기후위기에 매우 민감하다. 북한은 2014년 ‘재해방지 및 구조·복구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19년에는 ‘국가재해위협감소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2021년 7월13일에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자발적국가검토보고서’(VNR·Voluntary National Review)를 발간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이행 동향을 유엔에 제출하기도 했다. VNR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보편적인 목표로 여겨지는 SDGs의 달성을 위해 17개 목표와 함께 95개 세부목표를 선별하고 132개 이행지표를 제시한 바 있다. 북한 나름대로 유엔 회원국으로서 책무를 이행하면서도 동시에 SDGs 달성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안보리에서도 북핵 문제와 더불어 북한의 자연재해 및 재난 상황과 이로인한 생산성 저하, 생태안보 및 인간안보의 위협적인 부분 등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상황을 더 많은 국가들이 인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가 확산될수록, 바꿔 말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공고해질수록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그린데탕트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북미, 북중, 북러, 북일 같은 양자 구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지금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신냉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대립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리 활동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국가들이나 북한과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에 있는 유럽 국가들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안보리 내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런 담론을 형성하면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함께 남북한 그린데탕트의 계기를 만들기를 주문한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E칼럼]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분산형 에너지

국회가 지난달 25일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무탄소 전원’으로 알려진 소형모듈원자로(SMR)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여당이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야당과 모처럼 뜻을 모든 결과다. 특별법은 기존의 중앙집중형 발전소 건설과 장거리 송전망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지역별 전기요금제도 가능해진다. 인류가 전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벌써 전기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영국이 어디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석탄을 활용해서 산업혁명을 일으키기까지 50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전기는 초지능·초연결의 미래 사회를 실현하고,전 지구적 과제로 자리 잡은 기후 위기 극복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에너지다. 그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사회적으로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혐오시설이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고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력·화력·원자력이 모두 그렇다. 그렇다고 전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인류가 선택한 해결책이 바로 중앙집중형 전원이다. 발전소의 규모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를 세우면 오염 해소와 사고 대응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규모 송전탑의 구축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2005년에 시작된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겉으로는 송전선로에 흐르는 초고압 전류에 의한 위해성을 걱정하지만, 사실은 일방적으로 전기의 혜택을 독점하는 대도시에 대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다. 그런 거부감을 무작정 지역이기주의라고 탓 할 수만도 없다. 결국 이제는 발전소를 짓는 일보다 발전소에 생산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해주는 ‘계통연결’이 훨씬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분산형 전원은 이런 난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대규모 중앙집중형 전원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해왔던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애써 숨겨왔던 분산형 전원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최근 산업부가 확정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2036년까지 무려 56조5000억 원의 시설투자를 해야 한다. 맹목적인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지난 정부가 2021년에 밝혔던 제9차 계획(29조3000억 원)의 2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무시해버린 결과다. 올해 초에 산업부가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4년의 최대전력수요는 116.2GW가 아니라 126GW로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송·변전 설비도 추가로 갖춰야 한다. 설비를 갖추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구축해놓은 송·변전 설비의 운용에 소요되는 비용 문제도 심각하다. 한전이 감당해야 하는 운용비용은 설비의 사용효율에 반비례한다. 효율이 떨어지면 설비운용비용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산형 전원인 태양광·풍력의 하루 가동시간은 연평균 3시간을 넘지 못한다. 그마저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널 뛰듯 출렁거린다. 제주와 호남에서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해주는 해저 초고압직류송전선로(HVDC)의 경우에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제정신을 가진 민간 사업자라면 절대 투자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직도 망국적인 탈 원전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산업통상자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분산에너지 특별법 제정으로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질 대규모 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온전한 착각이다. 산업부가 계통의 안정성을 핑계로 아무 보상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 ‘출력제한 제도’는 힘없는 영세 사업자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분산형 전원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한전의 관리 능력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최첨단 송배전 관리도 최소한의 전문성이나 사회적 책무성조차 기대할 수 없는 수많은 영세 사업자로 구성되는 분산형 시스템에서는 기술적으로도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간헐성·변동성 극복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찾지 못한 재생에너지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분산형은 아직도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이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E칼럼]진정한 ESG 금융 활성화를 위한 트리거

최근 ESG 금융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 부처 합동으로 ESG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ESG 공시와 채권발행 인프라 구축과 함께 일관되고 신뢰 가능한 ESG 평가를 위한 가이던스 운영 계획이 수립됐다. 환경부는 환경 분야의 그린워싱(greenwashing) 방지 및 녹색금융 확대를 위해 녹색분류체계를 개정,공표했다 ESG 금융 제도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필자가 15년 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켜보며 연구해 온 녹색금융이 드디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다. 당시에는 탄소금융, 지속금융, 녹색금융, 기후금융, 환경금융 등 정의도 범위도 알 수 없는 개념들이 난무했고 정작 중요한 실제 시장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 과거에 ESG 금융으로 소개된 금융은 정부의 세제 혜택이나 바라는, 즉 수익성에 기반을 두지 못해 스스로 자리잡지 못하는 금융방식이었다.‘ 지속 가능 경제’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떠받치는 금융수단은 고사하고, 그 금융의 방식 자체도 지속 가능하지 못한 채 15년을 허송했다. 가장 이상적인 ESG 금융의 발전 방식이라면 실물시장을 기반으로 파생된 금융 수요가 스스로 성장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ESG 금융은 그렇지 못했다.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환경(Environmental) 외의 분야는 소액주주권리 찾기 운동, 부실채권 조정, 자산건전성 강화 명분 등으로 일찍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관련 자금수요가 존재했다. 하지만 환경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불과 3년 전부터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국제금융협의체인 NGFS(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 에 가입하며 기후 및 환경 관련 금융리스크 관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기후변화가 거시경제 및 금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이이뤄졌다. EU 등에서 비재무정보 공개지침(NFRD· 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을 통해 ESG 공시 확대를 적용해온 것처럼 한국에서도 국제회계기준(IFRS)을 중심으로 표준화되고 있는 ESG공시를 피할 수 없는 선택인 상황이다. 다만, 에너지·환경 실물시장과 금융 모두를 다뤄온 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ESG 금융의 성장이 실물시장과는 괴리돼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ESG 금융의 급발진은 15년 전의 녹색금융 논의가 그러했듯이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배출권거래제 아래서 규제를 받는 산업부문과 신재생에너지 의무화제도 아래서 매년 엄청난 의무비율을 감당해야 하는 발전사들이 이런 ESG 금융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전의 100% 자회사인 발전공기업들은 상장사가 아니어서 공시 대상도 아니다. 민간발전사라 하더라도 현재 사후적인 전력생산비용 정산 과정으로 묶여 있는 이들이 ESG 금융이란 젖줄이 적용 가능한지도 모른다. 차라리 에너지공단에서 제공하는 관 주도 금융지원사업이 훨씬 심플하고 구미에 당길 것이다. 민간참여가 없어 규모는 초라하지만 말이다. 또 투자의 주체인 산업계가 아닌 금융계 입장에서는 자금 확보 차원에서 녹색채권 발행 수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채권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애초 의도했던 대로 대출에 나선다는 보장도 없고,녹색채권 발행 절차도 까다로워 그럴 바엔 번거롭지도 않은 일반 은행채, 회사채 등으로 발길 돌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세를 봐야 하겠지만 이대로라면 E(환경)의 비중이 클 수 밖에 없는 ESG 금융도 수년 안에 유행 지난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ESG 금융을 다루는 부처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괴리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ESG 금융에 대한 기업들의 피로도를 줄임과 동시에 ESG 금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부처간 조율이 필요하다. 돈은 식물에 주는 물과 같다. 굳은 땅에 갑자기 물을 줘봐야 흡수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헛수고다. ESG 금융이 한때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실물시장 및 금융시장이 동시에 제도적 정비와 함께 자금 수요와 공급의 매칭이 잘 이뤄지도록 해야한다. 그렇게해도 과거 녹색금융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청정 암모니아 국내 도입 위한 제도 정비 서둘러야

지난 1일 국내 수소경제에 반가운 행사가 중국 광저우에서 열렸다. 국내 수소경제에서 수송연료전지에 기반을 둔 모빌리티 사업에 일익을 담당하는 현대차그룹이 2021년 3월 착공한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황푸구에 ‘HTWO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거대한 중국시장에 수소차 및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준공식 이후 한·광동성 수소분야 협력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도 개최됐다. 주된 의제는 상대적으로 앞서 가고 있는 국내 수소 모빌리티 분야의 중국 진출이었지만, 보다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의 청정수소 수출 잠재력, 즉 중국이 풍부한 재생에너지 연계 청정수소 공급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충분히 시장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되면 어제든 중국도 청정수소의 국제교역에 주된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저렴한 청정수소의 대량 조달이 절실한 우리에게는 요긴한 정보다. 이미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천명됐듯이 우리나라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간 2700만 톤 이상의 막대한 청정수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상 이를 국산으로 공급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80% 이상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한다. 한편으로 해외에서 생산된 청정수소를 어떤 운반체로 전환해서 운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한 동안 청정수소 운반체로서 암모니아(NH3), 액화수소(LH2), 메틸사이클로헥산(MCH) 등 3가지 물질이 각축을 벌여왔다. 운반체별 경제성과 환경성을 평가해 본 결과 수소경제 초기 국제적인 밸류체인 구축에 유리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으로 적용가능성이 높은 ‘암모니아’가 주도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 형국이다. 암모니아는 수소에 ‘하버-보쉬(harber-bosch)합성법’을 이용해 질소와 합성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화합물로, 부피당 담을 수 있는 수소량(121 kgH2/㎥)이 높고 무엇보다 끓는점이 -33.34도로 상대적으로 높아 경제적으로 액화운송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더구나 다목적 LPG 운반과 관련 기존 인프라도 활용 가능해 운반선 건조와 인프라 구축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암모니아는 이미 국제적으로 교역 중인 상품이다. 세계적으로 암모니아는 연간 1억 8600만 톤 이상 생산되지만, 80% 이상은 자급자족 형태로 비료생산에 이용된다. 다만 생산량의 약 10% 정도가 국제 교역되며 이를 위한 200개 이상의 암모니아 수출입 터미널과 170척의 운송선도 운용 중이다. 우리도 2021년에만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울산, 여수, 인천 등을 통해 137만 톤의 암모니아를 들여왔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정부는 2021년 11월에 발표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통해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청정수소를 생산 ‘청정 암모니아’로 전환해 국내로 도입하는 민관 합작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 ‘H2STAR’를 시행, 2030년까지 청정 암모니아 약 941만 톤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1년 9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를 통해 국내 석탄, LNG 발전소의 연료전환 및 분산형 수소발전 확산을 통해 대규모 청정수소·암모니아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2027년까지 약 110만 톤, 2030년까지 약 400만 톤 규모의 청정 암모니아 인수기지를 서해, 동해, 남해 등 3개의 기존 석탄 화력발전소 발전소 밀집지역에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당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청정 암모니아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법·제도적 공백을 서둘러 메워야 한다. 현재 암모니아의 법적 지위는 고압가스법상의 ‘독성가스’나 수소경제법상의 ‘수소화합물’ 정도다. 앞으로 몸집이 커질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수소와 함께 청정 암모니아를 규율할 수 있는 독립적 법률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향후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국제교역 및 수입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이들처럼 ‘사업’ 자체를 규율할 수 있는 ‘청정수소·암모니아 사업법’의 제정이 요구된다. 특히 향후 높아질 해외 의존도를 감안해 석유나 천연가스 사업법처럼 사업자에게 비축의무를 부여하는 조항도 반영해야 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 서둘러 관련 사업법 제정 논의를 시작해줄 것을 입법부에 주문한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E칼럼] 현실성 없는 건물 에너지 정책

우리나라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모든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과 건물의 단위면적당 에너지사용량이 전년에 비해 각각 5.9%, 2.7% 증가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기준시점인 2018년의 최대치에 비해 적지만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해 에너지절감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국토부는 지적했다. 국토부는 건물 에너지 사용량 증가의 원인으로 건물 신축에 따른 연면적 증가로 인한 냉방 및 난방 수요를 의미하는 냉난방도일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늘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국토부가 발표한 이유는 우리나라 건물 부문 에너지정책의 숨은 이슈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물과 도로, 자동차 등 교통 부문의 에너지정책은 국토부가 주관하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이를 바탕으로 통합해 정책을 발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주거용, 상업용, 산업체 공장 등 모든 건물의 에너지 등급 기준과 건설방식, 자동차, 비행기, 선박 등의 연비 기준, 연료 기준 등은 국토부가 주관한다. 21세기 들어 지난 20여 년 동안 국토부의 건물 부문 정책은 대부분 스마트시티, 유비쿼터스 도시(U-city), 혁신도시 등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도시 개발에 중점을 두어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과제로 부산과 세종시에 추진한 스마트시티가 대표적이다. 환경친화적 도시, 에너지 자급 도시 등은 주요 과제에 들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재생에너지 조차 스마트시티 선정 과정에서 주요 변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나타난 건물 부문, 특히 주거용 에너지사용 패턴의 변화는 국토부의 정책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난방을 전기로 하는 건물이 많이 늘어나면서 건물 부문에서 천연가스 비중보다 전력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어느 새 20%를 훌쩍 넘어버린 1인 가구는 그야말로 냉방과 난방을 팡팡 틀어놓고 지낸다. 일반 가정과 상업용 건물 및 산업용 공장에서 온난화로 인해 냉방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냉난방도일이 늘어난 것, 즉 지구온난화의 진행으로 인해 건물 부문의 에너지사용량이 증가했다고 에너지사용량의 증가 이유를 발표한 것은 그동안의 건물 에너지 관련 대책이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실토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최첨단 ICT 기술과 최첨단 건설기술로 지은 신축 건물들이 에너지효율 측면에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다. 국토부의 분석은 건물 부문의 구조적인 문제도 비켜갔다. 지금 새로 짓는 건물들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점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기후변화대응 신기술이 미래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고 건설하지 않으면 결국 2050년 근처에 가면 현재의 건물들은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충분히 있어도 설치할 수 없는, 그래서 수명이 남아 있는데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부담은 모두 건물주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많이 양보해 세계 모두의 동의 아래 2050년 기준시점을 그 이후로 늦춘다고 해도 이 문제는 그대로다. 건물의 수명이 30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이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사용량과 국민총생산과의 관계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뒤집혔다는 점이다. 20세기 후반 고도 경제성장 기간에는 에너지사용량이 늘어나면 GDP가 성장하는 구조였다. 즉, 주로 산업부문이 에너지를 사용해 생산을 늘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형태였다. 이 시기에는 따라서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이 적절한 정책이었으며 에너지절약 정책은 오히려 경제성장에 해가 되니 앞세울 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 인과관계가 역전됐다. 이제는 에너지사용이 늘어도 경제성장을 유인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고 오히려 경제성장 덕분에 에너지사용량이 늘어나는 인과관계가 주가 되었다. 즉, 부자가 되었기에 에너지를 더 쓰는, 자동차 하나 더 사고, 냉장고도, 에어컨도 더 설치하고…. 이런 변화가 문제라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 선진국들은 모두 이러니까.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에너지 가격을 높이고 에너지절약을 유도하는 정책을 강력히 시행한다. 이제는 에너지절약을 해도 경제성장에 큰 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통계치를 발표하면서 국가 건물 에너지사용량 자료와 분석이 탄소중립 달성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계자료이며 에너지 정책 수립 방향의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건물 부문의 에너지절약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건물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과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활방식이 변했는 데도 현실에 맞춰 정책 기조를 변경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EE칼럼]에너지 안보,근본 해법은 다변화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줬다. 에너지 안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고전적 경구는 윈스터 처칠 총리의 영국 의회 연설이다. 36세에 해군 장관에 부임한 처칠은 대영제국 해군의 전투함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기동력과 전투력이 크게 향상됐지만 문제는 석유를 어디서 구하느냐였다. 영국에는 석탄이 풍부해서 공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석유는 달랐다. 당시 영국은 석유를 주로 이란에서 조달했는데 이에 따른 문제점을 의원들이 지적하자 이에 대한 대답으로 처칠은 석유공급의 다변화를 강조했다. 1913년 7월 의회 연설에서 처칠은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원유 타입, 하나의 생산과정, 하나의 국가, 하나의 수입 루트, 하나의 유전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석유공급의 안정성과 확실성을 보장하는 것은 오직 공급의 다변화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에너지 안보에서 위험 분산의 개념을 일깨운 고전적인 명문이다.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은 그의 저서 ‘The Quest’에서 구소련에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비화를 소개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내해인 카스피해의 바쿠 유전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흑해까지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로 한다. 문제는 노선이었다. 북쪽의 러시아를 경유해 ‘노보로시스크항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서쪽의 조지아를 거쳐 숩사항으로 연결되는 노선 중 선택해야 했다. 바쿠∼노보로시스크 노선은 건설이 용이한 평야지역을 거치지만 길게 우회해야 했고 바쿠∼숩사 노선은 길이는 짧지만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험난한 루트였다. 게다가 러시아의 눈치도 봐야하고 조지아의 협력도 필요했다. 몇 달을 토론하고 격론도 거쳤다. 결국 아제르바이잔은 두 노선을 모두 건설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중복처럼 보이지만 루트를 다변화해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의 기본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경구처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위험을 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에너지협의회(WEC)가 발표한 전 세계 92개국의 에너지 안보 순위에서 한국은 82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우리보다 에너지 안보 순위가 낮은 나라는 섬나라 몇 개 밖에 없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1차 에너지도 거의 없고 전력망이나 가스 파이프라인도 다른 나라와 연결돼 있지 않은 독립계통이다. 자랑할 것 이라고는 발전설비, 정유공장, 천연가스 인프라 정도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는 석유,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 신재생 등으로 구성된 우리의 에너지 믹스를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 변화를 꾀하더라도 과속은 금물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탈 원전 정책이 그 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8∼2022년 동안 탈 원전정책은 총 25조8000억원의 전력구입비용을 증가시켰다고 발표했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탈 원전정책이 2017∼2022년 동안 총 22조9000억원의 비용을 유발했고 2030년까지 이에 더해 24조5000억원의 비용을 증가시켜 총 47조4000억원의 비용이 추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의 탈 탄소 속도도 너무 빠르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에서 전력수급기본계획,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 등 정부의 주요 계획을 모두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목표인 40% 감축과 연동되도록 했다. 탄소중립 목표에 맞춰 발전설비를 계획해야 한다는 말이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석탄발전소 비중을 대폭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LNG 발전소 부지확보는 지지부진하다. LNG 발전의 비중은 더 큰 문제다. 2036년의 LNG 발전설비는 원전과 석탄발전 용량보다도 큰 64.6GW(27.0%)로 계획하고 발전량은 겨우 62.3TWh(9.3%)로 잡았다. 그 결과 LNG 발전소의 이용률은 11%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LNG 발전소의 경제성은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목표다. 에너지원 다변화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는 추구하기 어렵다. 복잡한 말이 아니다. 단순한 팩트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후쿠시마 괴담 점입가경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사실과 과학에 기반해야 할 논란이 자칫 상상과 공포를 조장하는 괴담으로 변질돼 과거 광우병 사태처럼 불신과 분열의 상처를 남기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일본 정부는 현재 보관 중인 오염수 133만 톤을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여과한 후 400배 정도로 희석한 뒤 해저터널을 통해 1㎞ 앞 태평양에 30년에 걸쳐 방류한다는 계획이다. 방류 계획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안전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방류수 명칭부터 진영 논리로 대립 중이다. 한쪽에서는 ALPS로 여과했다는 점을 들어 ‘처리수’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ALPS로 여과를 해도 삼중수소를 비롯한 몇 몇 방사성 물질은 여전히 남는다는 이유로 ‘오염수’라고 부른다. 어떤 명칭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셈이다. 필자는 ALPS로 여과해 방출한다는 가치중립적 의미로 ‘여과방출수’라고 부르겠다. 양측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와 과학 지식을 동원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편다. "ALPS로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능물질은 여과방출수와 함께 방류돼 해양생태계를 오염시켜 국민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주장과 "해양생태계에 축적되는 방사능물질이 너무 적어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맞선다. 양측 모두 ALPS로 제거할 수 없는 방사능물질은 바닷물에 방류돼 해양생태계에 축적된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렇다면 논쟁의 핵심은 축적된 방사능물질로 수산물이 오염되느냐의 문제와 오염된다면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축약된다. 먼저 여과방출수의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측의 대표적 학자인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여과방출수의 삼중수소 농도는 1500베크렐(Bq)인데, 이것을 그냥 마신다고 가정할 때 예상되는 피폭량은 같은 양의 이온 음료 안에 있는 칼륨에 의한 피폭량과 같다고 주장한다. 방사성 탄소의 농도도 생선이나 고기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농도보다 높지 않고, 뼈에 달라붙어 위험하다는 방사성 스트론튬의 양도 여과방출수 L당 30Bq인데 이 물 1L를 마실 때 피폭량은 바나나 8개를 먹을 때와 같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정교수는 여과방출수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에 의한 피폭량과 평소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피폭량을 숫자로 비교함으로써, 여과방출수의 위험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한다. 따라서 일반인 입장에서는 정교수가 숫자로 제시한 여과방출수 안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의 농도와 식품 섭취에 의한 피폭량의 진위 여부만 따지면 끝날 논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과방류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대표적 학자인 서균열 서울대 명예교수는 "삼중수소가 몸에 들어오면 문제다. 5년, 10년 후 혈액암의 원인이 된다. ALPS는 2류 기술이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올 삼중수소 농도와 혈액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 간의 상관관계 그리고 일본 ALPS가 2류 기술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다. 아쉽게도 서 교수는 객관적 증거 대신 "일본이 예상 피해를 축소하고 정보를 주지 않는다.일본은 못 믿을 나라다"라는 식의 일방적 주장을 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괴담 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국민건강과 식탁안전을 고려해 최대한 검증하고 조심하자는 취지를 괴담으로 치부한다"며 유감을 표한다. 하지만 위험을 부풀려 조심의 단계를 넘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문제다. 유 교수는 유감을 표하기에 앞서 정 교수가 제시한 수치부터 과학적 근거를 들어 반박해야 옳다. 괴담의 위력은 이성이 작동되지 않는 탈 진실의 공간에서 작동된다. 여기서는 거짓일수록 환영받고, 대담한 거짓말쟁이일수록 영웅 취급을 받는다.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은 지구 반 바퀴를 돈다"고 했다. 거짓이 권위를 입으면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진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 과학자라는 권위를 타고 퍼지는 ‘후쿠시마 논쟁’이 걱정되는 이유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초고령 시대,간병·돌봄인력 확충 서둘러야

방준석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웰빙과 삶의 질,그리고 건강수명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이 가운데 건강수명은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3.5세(남자 80.5세, 여자 86.5세)지만 건강수명은 66.3세에 그친다. 남자는 14년,여자는 20년을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말년을 보내는 현실이다. 인체는 34세, 60세, 78세 전후에 급속히 노화가 진행되는 데 50대부터 사망률이 갑자기 높아지다가 80대에 최고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한국인의 1인당 평균 외래진료 횟수는 14.7회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1위, 재원일수는 19.1일로 2위다. 여기에 고령인구의 증가세까지 고려하면 의료자원 확충과 의료비 절감은 물론 ‘노인돌봄’ 문제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준비할 과제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제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건강보험공단 주관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인 생활빈곤자에게 제공되는데, 먼저 건보공단에서 등급을 인정받아야 한다. 두번째는 지자체가 제공하는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로 65세 이상이면서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기초연금수급자 등 재산여건에 따라 차등을 둔다. 중복수혜가 불가하기 때문에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라면 비록 기초수급자라도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셋째는 국민연금공단이 제공하는 장애인활동 지원서비스다. 장애정도를 바탕으로 19세 이상이면 노인이 아니라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65세가 되면 혜택이 종료되며 무조건 노인장기요양보험서비스로 이관된다. 이 제도는 고령자를 위한 이중삼중의 보호막이 아닌 선별적 혜택으로 최소한의 공적부조 성격이다. 빠른 고령화 때문에 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특히 젊을 때 평균소득층으로 분류된 이들의 노후 돌봄은 상대적으로 국가지원상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현행 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은 젊을 때 시작된 수혜의 불평등성이 노년이 돼서는 더 심화되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노인 돌봄 패러다임이 이전 요양원과 요양병원 모델에서 다르게 변하고 있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하지만 별 수 없이 병원·시설에서 지내며, 재가 서비스 제공이 불충분해 가족이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이에 돌봄 불안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내도록 주거·의료·요양·돌봄 서비스 개선 정책으로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 이른바 ’노인커뮤니티케어’ 정책이 2018년 11월에 발표됐다. 추진 로드맵과 함께 주거, 건강·의료, 요양·돌봄, 서비스 통합 제공 등 중점 과제가 제시됐고 이듬해 6월부터 2년간 16개 시·군·구에서 모형도출을 위한 선도사업을 시행했다. 2025년 돌봄 제공 기반 구축을 완성하며 중점 과제로 △주거지원 인프라 확충 △방문건강 및 방문의료 △재가 돌봄 및 장기요양 △서비스연계를 위한 지역 자율형 전달체계 구축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선행사업 성과와 정책방향을 뜯어보면 지역사회 여건에 적합한 모형의 도출보다는 대부분 시설 확충과 시스템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매년 수십 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정책인데도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초고령사회를 위한 연금제도의 개혁도 미진하다. 국가와 가계 부채는 늘고 있고 세수는 부족하다. 노인의료를 위한 원격의료나 돌봄 인력 확충에 필요한 의료법 및 간호사법의 제·개정은 본질보다는 직역간 다툼과 정쟁으로 변질되며 돌봄 정책이 자칫 고비용구조로 왜곡될 수 있다. 커뮤니티 케어 도입 전이라도 최소생계비 보장, 장애인 및 빈곤자를 위한 공적지원 확대, 대소변 처리와 목욕 같은 위생관리, 만성질환 지속관리를 진행하자. 노인을 위한 간병과 돌봄 인력 확보를 서두르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 전가될 것이다.방준석 숙대 약대 교수 방준석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EE칼럼]글로벌 중추국가에 걸맞은 기후외교 펼쳐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가치연대의 중요성과 함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세 가지 분야를 강조했다. 보건과 IT 그리고 그린ODA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강조했듯이 기후변화 문제는 환경의 문제를 넘어 정치의 문제이자 경제의 문제다.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시장과 일자리가 생기고 있다. 다양한 국제표준들을 자국 중심으로 만들고자 하는 국가들의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과 같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구조로 인해 글로벌 중추국가에 걸맞은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국내에서만 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파리협정을 활용해 해외에서 국가 간 협력의 틀을 활용해 온실가스 감축결과(ITMOs)를 확보해 국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활용해야 한다. 문제는 갈수록 협력 대상국을 선정하고 대규모 ITMOs를 국내로 이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전략적인 기후변화 외교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사실, 개도국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와 기후변화 협력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것은 ITMOs를 상품과 같이 일정 가격으로 우리에게 판매하고 수익금을 얻는 것 이상이다.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였던 한·가봉 간의 기후변화 협력이 좋은 예다. 지난해 말 방한해 기후변화 협력협정에 가서명을 한 가봉 외교장관은 가봉이 우리와 기후변화 협력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고도의 인프라 건설 역량과 다양한 기술력을 전수받아서 가봉도 우리와 같이 단기간에 선진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 자국의 최고 수준의 산림관리를 통해 발생한 ITMOs를 우리에게 이전해 줄 수 있다고도 했다. 산림녹화·중화학 공업 활성화를 통해 최단기간 내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의 노하우에 바탕을 둔 기후변화 기술과 산업에 대한 협력 역량은 대한민국만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ODA와 함께 다른 형태의 재원도 같이 활용해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우면서 우리 민간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ITMOs를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전략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파리협정에 따른 절차와 기준을 지키는 범위에서 개도국과의 협력의 틀과 내용에 대한 다양한 포뮬라를 만들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고안해야 한다. 너무나도 일반적인 현재의 포괄적 기후변화 협력협정의 고도화 작업도 이뤄야 한다. 이러한 고도와 작업은 윤석열 정부가 중요하게 추진하는 인·태전략,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등 소다자 회의에서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외교는 선진국과의 신 산업 협력 차원에서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모두 이들의 중요한 기후변화 정책이다. 국내 기후산업을 부흥하고 자국 표준을 세계화하기 위해 미국은 보조금 정책을, EU는 탄소가격정책을 활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외교 전략은 가치와 안보동맹에 기초하면서 기후변화 통상국가로서 기후변화 기술과 자본시장에 대한 선진국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기업의 투자를 ITMOs 활용과 연계하는 최고급 정상 차원의 외교 전략 개발도 구상해 볼 수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의 기후변화 외교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녹색기후기금(GCF)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우리의 기후변화 협력 메커니즘의 세계 표준화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주도해 설립한 GGGI를 잘 활용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부터 잃어버린 우리의 유일한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다른 선진국들의 입맛에 맞게 설정된 프로그램 위주의 국제기구에 대한 적극적인 재정적 조력이 아닌, 우리의 가치와 표준이 국제사회를 위해서 활용될 수 있도록 협력과 감시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적인 기후변화 외교정책 추진이 절실한 때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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