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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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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탄소시장 동맥경화 근원은 한전의 전력시장 독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7.17 07:42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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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근래 들어 흔히들 탄소 배출권 시장이 온실가스 감축에 제 역할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출권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정부가 대주주인 한국전력이 소매전력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 시장이 경직돼 있다 보니 가격 인상요인이 있어도 적시에 전기요금을 올리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전기요금과 분리시켜 배출권 구매비용을 담은 기후환경요금이란 항목을 신설했지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배출권 구매비용이야 객관적으로 나오지만,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각종 효율 개선 시설투자나 이를 위한 인건비 등 다른 모든 비용 요인은 투명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발전사에게 온실가스를 자체 저감해서 배출권을 판매하도록 유도하기는커녕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배출권을 구매해서 써 버리고 소비자에게 기후환경요금으로 청구하도록 간편한 퇴로를 권장하고 있다. 이것이 배출권 수급 균형 불균형의 근본 원인이다.

한때 4만원 넘게 치솟았던 탄소 배출권 가격이 최근 일부 상품은 1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2050 탄소중립까지는 아니더라도 2030 감축목표도 벅찬 상황인데도 탄소배출권 가격이 이처럼 바닥을 기는 것은 2018년부터 도입된 배출권의 이월제한 (잉여 배출권을 미래 연도 사용을 위해 무제한 저축하는 것을 규제) 정책 탓이다. 기업들은 배출권이 남아도 묵혀두려는 경향이 커서 시장에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월제한 정책이 없으면 배출권 매물 공급이 부족해 가격 폭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니 해당 규제를 풀 수 없는 정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배출권 수급불균형의 근본 해법은 일반인들이 거래하는 주식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보통 주식이라는 자산을 살 때는 가치의 증가, 곧 가격의 상승을 기대하고 산다. 그럼 언제 주식을 매각할까? 전업 투기꾼처럼 가격 하락장에 배팅해 공매도라고 하는 방식으로 투자할 수도 있지만, 그런 방식을 제외한다면 결국 다른 투자처가 있다든가 생필품을 구매하는 등 실질적으로 현금이 필요할 때다.

배출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일단 할당을 받은 배출권을 기업들이 팔려고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첫째로, 전통적 ETS(Emission Trading Scheme)의 개념대로 온실가스 저감 비용이 배출권의 매각대금보다 저렴할 때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부분 에너지 효율이 최고 수준이므로 저감 비용이 배출권 매각대금보다 적기가 힘들어 조건이 성립되기 쉽지 않다. 더구나 향후 고효율 에너지 저감 사업이 진행될수록 추가적인 저감 잠재력이 더욱 줄어들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둘째는, 온실가스 저감 비용이 상품가격에 쉽게 전가될 수 있을 때 배출권 매도수요 창출이 가능하다. 이것이 핵심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에게 모든 저감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탄소집약적인 제품을 쓰는 최종소비자로 하여금 해당 제품에 대한 가격 부담을 늘려 수요를 줄임으로써 궁극적인 저탄소 사회로 나가자는 게 근본 취지다. 물론 일부 산업부문은 값싼 해외 제품들과 가격 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사리 탄소 저감가격을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부도 무상할당 여부를 결정할 때 해외무역집약도를 감안한다. 또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혹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G7을 정상회의에서도 언급한 기후클럽 등도 무역장벽화을 통해 가격 전가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발전전환 부문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해외와 전력 그리드로 연결이 안돼 경쟁에 노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론 가격 전가가 자유로워야 한다. 늘어난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전력 도소매 시장에 온전히 전가시켜 소비자 요금에 반영만 하면 된다. 오히려 발전사는 온실가스를 감축한 만큼 배출권을 매각해 수익 창출도 가능해진다. 발전사 입장에선 어차피 전기 판매가에 얹어 보전받을 수 있으므로 비록 비싸더라도 적극적인 감축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이 소매시장의 독점으로 막혀 있는 것이다.

물론 한전은 태생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지금도 고스란히 온갖 비용인상 요인을 온몸으로 혼자 막고 있는 고충을 100% 이해한다. 최근엔 고용된 근로자일 뿐인 임직원들까지 고통 분담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강요하는 입장인 대주주로서의 정부도, 독점화된 시장이기 때문에 직접 민생을 보듬고 한전 경영합리화까지 감시해야 한다는 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결국 ‘변을 못 봐서 소화도 안되는’ 상황을 두고, 입맛이 까탈스럽다는 둥 표면적인 문제만 지적하는 상황이다. 말단의 전력 소매 시장으로 가격 전가가 막힘 없이 이뤄질 수 있게 관장(灌腸)을 해줘야, 근본적으로 업 스트림에 존재하는 탄소시장도 원활히 소화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근본 원인을 외면하고 엉뚱하게 탄소 배출권 시장 자체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지에서 오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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