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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트위터·푸르밀의

MZ세대인 기자에겐 낯선 표현이지만 부모님이나 직장 상사로부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전까지 ‘직원은 한 가족’,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됐다고 한다.그러나, 전 지구적 금융패권주의를 일컫는 ‘세계화’와 최첨단 IT기술 발달에 따른 초격차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는 21세기에서 이런 말들은 구시대적, 몰가치적 언어 유물로 전락해 버렸다.가장 비근한 대표사례로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인수 직후 대규모 감원에 나선 SNS플랫폼 ‘트위터’, 전 직원 일방적 해고통보로 논란을 일으켰던 유제품기업 ‘푸르밀’을 꼽을 수 있겠다.실제로 머스크는 지난달 약 60조원을 들여 트위터를 품에 안은 뒤 일주일여 만에 ‘대량 해고’의 칼날을 휘둘렀다. 트위터 한국법인에도 불똥이 튀어 이달 초 임직원 30여명의 절반 가량이 ‘You are fired’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자직군은 물론 홍보(PR) 조직은 통째로 사라졌다고 한다. 머스크는 트위터로 "회사가 하루 400만달러(약 54억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다가, 돌연 일부 직원에는 "실수였다"며 복귀를 요청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국내기업 푸르밀도 지난달 17일 오너가의 사업종료 선언과 함께 전 직원 정리해고를 일방통보해 트위터와 닮은꼴을 연출했다. 회사 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 대리점주, 화물 운송 기사, 낙농가 모두 하루아침에 직장과 납품처를 잃게 된 처지에 놓이며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푸르밀의 행태에 일각에선 ‘꼼수 폐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업종료가 아닌 법인청산을 밟을 경우 영업손실에 따른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반납해야 하기에 오너가가 이를 피하려 일방적 폐업 발표를 했다는 주장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푸르밀은 ‘직원 30%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사업종료 방침을 철회했다. 정리해고 날벼락은 면했지만 사실상 직원들이 오너 대신에 회사회생의 책임을 떠안은 꼴이 됐다.트위터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푸르밀은 경영 파탄의 고비를 넘겼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난제들이 많아 앞길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규제를 뚫고 기업 성장을 이끄는 혁신경영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적자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행태는 지탄의 대상이다. 21세기에 평생직장은 언감생심으로, 가족 대접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동고동락해 온 동반자로 인식해 주는 기업풍토가 조성되길 바래본다.inahohc@ekn.kr조하니 성장산업부 기자.

[기자의 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출근길 서울지하철 탑승 시위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9월 5일 태풍 ‘힌남노’ 북상 때와 지난달 하순 이태원 10.29참사 때 한 주씩 중단했고,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을 앞두고 이달 14일부터 17일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잠정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5일 중단 결정은 당일 아침 탑승 시위 직전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전격 발표됐고, 10.29참사 애도기간이 끝난 뒤 종전까지 매주 월요일에 하던 시위를 이달 7∼11일 매일 시위로 늘렸다.그동안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시민과 당국은 ‘대체로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 소송도 민사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이 피고인 전장연이 사회약자라는 점을 감안해 지난달 양자 합의를 유도하는 ‘조정’ 절차에 회부했고, 경찰 역시 업무방해 등 범죄 여부를 아직 ‘수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10.29참사 이후 시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분위기다. 애도기간이 끝난 뒤 전장연이 시위 재개를 예고했을 때 전장연의 SNS 계정에는 시위를 강하게 비판하는 댓글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참사 이후 밀집공간 안전사고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하철 시위를 강행하는 전장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급격히 싸늘해진 것이다. 태풍 피해자, 10.29참사 유가족, 수능 수험생을 배려한다면서 일반시민의 안전사고 위험은 외면하겠다는 이중적 태도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갈수록 시민들로부터 공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전장연은 수능일까지 시위를 유보하는 또다른 명분으로 지난 10일 국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가 장애인 활동지원비 등 정부 예산안을 6000억원 이상 증액하기로 의결한 것에 환영의 의미라고 밝히기도 했다.그러나 국회의 장애인 활동지원비 증액은 절차상 정부 동의 과정이 남아있다. 정부가 동의하지 않거나 삭감할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전장연은 또다시 지하철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전장연이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장애인 권리증진에 나서는 전장연의 의도에 손가락질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전장연은 이제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근 1년간 이어지고 있는 출근길 시위를 접고 다른 시민과 함께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kch0054@ekn.kr김철훈 성장산업부 기자

[기자의 눈] 다시 돌아온 반도체 치킨게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올해 가을 시작된 한파에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침체로 D램과 낸드플래시를 탑재하는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판매가 줄어들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꺾인 탓이다. 당장 D램과 낸드 가격은 곤두박질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선두 업체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수를 겪은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에 가까운 영업이익이 증발했다. 겨울이 오고 있다지만 한겨울은 아직 멀었다는 전망까지 있다. 조사기관마다 다르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반도체 시장은 계속 얼어붙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실적이 기온만큼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 ‘치킨 게임’이라는 말이 신문 지면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고전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이 그랬듯, 마주보고 서로를 향해 달리는 싸움을 말한다. 잠깐 초호황이 끝나고 다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치킨 게임 구도가 명확해진 시점은 삼성전자가 투자를 축소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면서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마이크론 등이 설비투자를 축소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홀로 핸들을 돌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삼성전자가 기존 생산 계획을 유지하려는 이유로 중장기적 수요 회복에 대비할 필요성을 꼽았다. 데이터센터 증설이 확대되는 등 향후 시장이 반등했을 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속내는 선두 업체로서 확보한 강력한 원가경쟁력을 활용해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타격을 어느정도 감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생산량 조정 뿐만 아니라 설비 투자 계획도 그대로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치킨게임을 알기 쉽게 바꾸면 ‘이판사판’이라고 한다. 막다른 데 이르러 던지는 일종의 승부수다. 삼성전자는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경쟁사와 다른 길을 택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추운 겨울을 지나 봄, 여름이 왔을 때 웃을 자가 누구일지, 귀추가 주목된다jinsol@ekn.kr

[기자의 눈] 21세기 COP, 온실가스 감축 책임 걷어차는

유엔 당사국들은 해마다 기후변화협약 이행방안을 잘 지키고 있는 지 부족한 부분은 없는 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다. 이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라 부른다. 올해 27번째를 맞은 COP는 지난 주부터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진행되고 있다. COP는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사국들은 이로부터 3년 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전 세계 국가들은 30년 전부터 환경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이제서야 탄소중립이나 지구온난화 이슈가 화끈해진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꽤나 오래전부터 거론됐던 셈이다. 매년 진행돼 벌써 27차를 맞이하는 만큼 많은 내용들이 오갔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동안 COP에서 파리기후협약 등 중요한 내용들이 채택되거나 결의된 건 맞다. 하지만 말 뿐인 협약에 그쳤다는 꼬리표도 따라 붙는다. 올해 이집트에서 열리는 COP에서 주요 의제는 ‘손실과 피해’, ‘온실가스 저감’, ‘기후변화 대응’ 등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받는 이슈는 온실가스는 적게 배출하면서 그 피해를 더 크게 받는 기후 취약국의 손실과 피해 보상 문제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해수면이 올라 국토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 섬나라 정상들과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 피해를 본 파키스탄 등 기후 취약국 정상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 취약국의 손실과 피해 보상 문제는 이번에만 거론된 문제점이 아니다.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던 COP3부터 선진국들의 책임이 요구됐다. 그래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도 선진국에만 부여됐고 이를 원활하게 진행하고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공동 이행 제도, 청정 개발 제도 등이 마련됐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중국과 인도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자 이에 반발한 미국이 당사국 총회를 탈퇴했다. 곧이어 다른 선진국들도 줄줄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선진국의 모습이다. 이후 지구온난화는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히면서 전 세계 국가들이 다시 손을 맞잡기 시작한다. ‘지구 온도 상승 1.5도 억제’라는 공동 목표를 두고 국가별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COP가 열리는 건 지난 2016년 열린 COP22 이후 6년만이다. 그만큼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총회 일주일이 지난 지금 뚜렷한 진전은 없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히려 협상장의 관심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요 20개국(G20) 계기 회담에 쏠려 있어서다. 선진국들은 이미 기후변화협약 초창기 때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걷어차 버린 ‘흑역사’가 있다. 21세기에 열리는 COP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claudia@ekn.kr오세영 기자수첩

[기자의 눈]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라는 책은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았다.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금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책의 저자인 마이클 셸런버거는 지난 2일 열린 국내 최대 에너지전시회로 꼽히는 ‘에너지대전’에서 기조연설자로 초청될 만큼 무시할 만한 인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 주는 교훈은 재생에너지를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에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지난 정부서는 재생에너지를 당연히 늘려야 한다는 논리 속에 보급됐다고 보인다.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를 2030년까지 해마다 9기가와트(GW)씩 늘리겠다는 지난 정부의 목표를 5GW로 44%(4GW) 줄였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목표였다는 평가에서다.업계와 세상이 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최근 수서역 주차장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둘러싼 협동조합과 강남구청의 소송에서 강남구청이 최종 승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태양광 빛 반사와 전자파 등으로 지역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협동조합의 수서역 태양광 설치 허가를 거부한 강남구청의 손을 들어줬다.그동안 태양광에서 빛과 전자파가 나온다는 주장은 ‘가짜뉴스’라고 강조해온 업계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 판결이었다. 전력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 상한선을 두는 SMP 상한제에 반대하는 태양광 업계를 불편해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발전업계의 반발로 최근 SMP 상한제의 상한선을 기존보다 완화해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SMP 상한제는 최근 SMP의 급격한 상승으로 발생하는 전기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됐다.액화천연가스(LNG) 발전사업을 하는 사업자들은 이에 타협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하지만 태양광 관련 협·단체에서는 SMP 상한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같은 태양광 업계 종사자라 하더라도 이를 꼭 반기는 건 아니다. 모든 태양광 사업자의 주장처럼 비칠 수 있어서다. 에너지 업계에서 홀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모습이 태양광 산업 전체의 이기심으로 보일 것을 염려한다.태양광 산업은 SMP와 함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통한 정부 지원에 의존해 성장해온 것도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다.현재 재생에너지 업계 여론을 주도하는 협·단체들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이 국민과 에너지 업계 종사자는 물론 같은 재생에너지 업계 종사자의 시각과도 동떨어진 것은 아닌지 말이다.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누가 기업의 입을 막았을까.

"정부 정책이나 지원에 대한 요청요? 대답하기 좀.. 이건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해를 거듭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 관계자들은 곤란한 질문 또는 내용에 이렇게 답한다.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준(?)의 질문인데도 답변하기 난처해 한다. 이유도 한결같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으로 비쳐지면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열린 한 포럼에서도 이 같은 그림이 펼쳐졌다. ‘정부가 관련 산업에 대해 지원해줬으면 하는 사항, 혹은 요청이 있다면’ 이라는 질문에 기업은 물론, 학계 전문가들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사회자가 답변을 이끌어 내고자 재차 질문해도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누가 이들의 입을 막았을까. 정부 눈치보기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의 기조는 ‘작은 정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국가는 국가와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정부만 할 수 있는 그 일만 딱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정부론에 따라 민간 기업에 자율을 주겠다고 했다. 윤 정부의 공약에 재계는 출범 직후부터 통 큰 투자를 약속하며 화답했다. 특히 재계 1위 삼성은 향후 5년간 국내외서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전 ‘큰 정부’를 고수하던 문재인 정권 5년간 투자액(330조원)보다 120조원 늘어난 규모다. 삼성 외에도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 롯데그룹, 두산 등 굴지 재계들도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의 목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으면서도 권리와 요구를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약속한 정부인데도 몸을 사리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가 발전했고 민간부문이 정부를 우월하게 앞 선지 한참 됐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진 행정 경제제도는 과거의 정부주도의 기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며 우리 경제에 대해 정확하게 짚었다. 산업을 발전시키고 기술 개발을 일궈내는 주역들은 현장에서 뛰는 실무진이다. 이들이 탁상행정에 막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결국 국가산업의 발전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에선 공약대로 진정한 의미의 ‘작은 정부’를 펼치고 싶다면 기업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김아름23 김아름 산업부 기자

[기자의 눈] 증권사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

최근 증권가에서는 ‘구조조정설(說)’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소문에 휩싸인 증권사들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면서 법적대응을 언급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침체된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이기에 이변이 없는 한 인력 감축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는 예상이 강한 상황이다.증권사 내부에서도 채권운용 부문서 인력이 이탈한지 오래다. 금리 급등으로 평가손실을 크게 입은 탓이다. 리서치센터 등 증권사 영업을 백업하는 부서도 좌불안석이다.특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간 PF 비중이 컸던 증권사들의 계약 직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재계약이 불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설’은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증권사 구조조정과 닮아있다. 2013년 말 증권사 임직원 수는 4만241명에서 2014년 말 3만6615명으로 9%가량 줄었다. 당시에도 기준금리 인상, 증시 거래대금 축소가 주된 이유였다. 2013년과 다르게 증권사 수익 비중에서 브로커리지(위탁매매)가 줄고 투자은행(IB)부문이 늘어났지만, 부동산 PF 부문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만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아직 구조조정이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직원들의 불안감에 증권사 내부는 뒤숭숭한 상태다. 인건비를 줄여 수익성 악화를 최대한 막자는 목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이해된다. 증권사들은 최근 몇 년 새 역대급 실적을 자랑하며, 인력 채용에 힘을 써왔다. 업황이 좋으니, 우수 인력도 이동이 많아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뽑고 싶어도 뽑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번 사태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증권가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구조조정이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자본시장 발전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닌지, 우수 인력 유출로 인한 ‘손해’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할 때다.

[기자의 눈] 유통상인도, 시민도 잘 모르는 ‘코세페’

"슈퍼위캔이 무슨 행사인가요? 처음 듣는데요…."‘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 행사가 열리고 있는 지난 주말 서울 시내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만난 쇼핑객의 말이었다.코로나 19 일상회복에 따른 보복수요 증가와 올들어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이 혼재한 가운데 유통업계는 올해 ‘코세페 효과’를 크게 기대했었다. 그러나 10.29 참사(이태원 참사) 발생으로 코세페 개막식이 취소됐고, 애도 분위기로 정부나 유통업계 모두 행사 홍보와 마케팅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그나마 애도기간이 겹친 지난 4∼6일 대형마트들은 가공식품·생필품 등 주력품목을 초특가 할인판매하는 ‘슈퍼위캔’ 행사를 차분하게 진행했지만, 일반시민은 물론 행사참여 주체인 기업 관계자 상당수도 슈퍼위캔 행사를 모르고 있었다. 애도 기간임을 감안하더라도 코세페 인지도와 존재감이 턱없이 낮았다.코세페는 정부가 지난 2016년부터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모토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국가대표 쇼핑’ 행사이다. 올해로 벌써 7회째다.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코세페 인식은 예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행사 유통점에 만난 시민들은 여전히 "코세페가 뭐냐"며 되물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행사를 거듭함에도 코세페 존재감이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로 해외와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쇼핑 혜택을 꼽고 있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는 기업이 재고상품 장기간보유의 손실을 털어내기 위한 ‘떨이 판매’로 적극 활용하는 만큼 할인 폭이 연중 최대이고, 소비자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다.코세페에 참여하는 기업에도 큰 메리트가 없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만큼 큰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 않고, 자체 쇼핑행사에 집중한다. 당연히 소비자의 코세페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올해로 7주년을 맞은 코리아세일페스타는 10.29 참사 애도와 맞물려 ‘내수 진작’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쉬움이 남지만, 코세페의 인지도를 높여 내년에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 도움이 되는 ‘상생의 코세페’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pr9028@ekn.kr

[기자의 눈] 진짜 데이터 강국이 되는 길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무려 15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데이터의 활용’이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미 도시의 생활 인구 데이터를 취합해 공개하고 있다. ‘서울 생활인구 데이터’는 서울시의 공공 빅데이터와 KT의 데이터를 이용해 일정 시간대에 특정 지역의 인구를 추계한 값이다. 이에 따르면 참사 당일 이태원1동의 생활인구는 약 7만2000여명으로 이 집계가 시작된 2017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사고 발생 직전인 밤 9시 참사 지점 중심 반경 300m 구역에 최대 3만5980여명의 인파가 몰렸던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시는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도 공개한다. 서울시 주요 50개 장소에 대한 분야별(실시간 인구, 도로소통, 대중교통, 날씨·환경, 코로나19) 실시간 정보들이 융합된 데이터라 보면 된다. 데이터는 5분에 한번 씩 갱신되고 누구나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통신사의 빅데이터로 충분히 이 지역에 군중이 몰리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대책을 미리 세우지 못했다는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기자수첩을 위해 서울시의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우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첫째는 이태원 상권의 축소다.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지난 6일 오후 6시께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보면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1동의 예상 혼잡도는 ‘매우 붐빔’이었지만, 실제 인구혼잡도는 ‘여유’로 나타났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라 말을 꺼내기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지역 소상공인을 떠올리면 마음이 착잡하다. 두 번째는 ‘부산 엑스포’ 유치전이다. 전세계가 이태원 참사를 목도한 상황에서 우리의 숙원사업이었던 부산 엑스포 유치가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들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던 것을 상기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데이터엔 답이 있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당국의 의지에 달려있다. 재발방지 조치가 하루빨리 현장에 적용돼 ‘데이터 강국’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를 바란다. hsjung@ekn.kr

[기자의 눈] "흉흉한 게 꼭 세기말 같아요"

"요즘 부동산 시장 국면을 보고 있자니 세기말 당시 느낌이에요." 최근 건설·부동산 업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A씨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세기말 같다"라는 한 마디로 이 뒤숭숭한 상황을 정의했다. 지난 1999년은 2000년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혼란과 불안의 시기였다. 컴퓨터가 2000년을 표기하지 못해 오작동해서 통신이 마비된다는 ‘Y2K’ 가설에 힘입어 지구 종말론까지 확산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공포에 사로잡혔던 때다. 실제로 세기말은 아니지만 2023년 새해를 두 달 앞둔 건설·부동산 시장 국면은 ‘Y2K’ 공포를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 4년 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은 1년 만에 초스피드로 하락했다. 올해 집값 하락을 전망했던 전문가들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떨어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집값 급락은 부동산 경착륙 우려까지 양산했다. 신고가 경신이 줄을 잇던 지난해 여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거래절벽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공인중개업소 한 집 걸러 한 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이사 수요가 많아야 수입이 발생하는 인테리어업체, 이사·청소업체 종사자들도 매출 감소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레고랜드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더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우발채무 우려로 인한 ‘건설사 부도 임박’이라는 지라시가 지난 2일 증권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대형 건설사 9곳이 자금난에 부도 위기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라시만 보면 ‘조만간 건설사가 다 망하겠다’ 싶을 수준이었다. 결국 지라시에 언급된 건설사들이 모두 내용을 반박하고서야 잠잠해졌다. 하지만 해당 지라시에 언급된 한 건설사는 최근 총력을 다 했던 서울 내 알짜 재개발 사업 수주에 실패했는데 그 원인이 부도설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는 게 기쁘지만은 않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한국은행도 연내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는 한 거래절벽, 영끌족 불안, 건설사 부도 가능성 등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는 다들 어떻게든 버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내년까지 이대로 간다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질 텐데 걱정"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증명사진_김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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