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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칼럼] 딜레마에 빠진 거시경제정책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 마자 온갖 대외 리스크가 줄을 이으면서다. 코로나19발 완와정책이 몰고온 인플레이션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고금리발 고금리·고환율에 이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에다 중국 디플레이션 션까지 겹치며 ‘신 4고’가 갈 길 바쁜 한국경제를 덮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리스크 요인들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한국경제에 미치는 경로를 단순하게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 시장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정책, 특히 통화와 재정 등 거시경제정책 방향은 총수요를 확대해 경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유동성을 공급하는 완화적이고 팽창적인 통화정책 기조와 함께 지출을 대규모로 확대하고 수입(조세수입)을 줄여 큰 폭의 재정적자를 만드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거시경제정책에는 제약요인이 적지않아 당국으로서는 딜레마다. 통화정책은 고물가, 재정정책은 재정건전성의 악화가 발목을 잡는다. 먼저 통화정책의 딜레마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지난 2020년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인하됐다. 통화정책에서 금리 인하가 의미하는 바는 시장 수요의 급격한 위축에 대응해 시중에 유동성을 확대하면서 실물 경제가 빠르게 침체를 극복하고 회복 국면으로 돌아서기를 바라는 중앙은행의 기대다. 그리고 실제 그러한 저금리 정책은 한국 경제가 코로나 위기를 버티게 할 수 있게하는 힘이 됐다. 그러나 이런 완화적 통화정책은 공통의 위기를 겪고 있던 모든 나라들의 주된 거시경제정책이었고, 그러다 보니 글로벌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부채가 늘고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여전히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은 완화적 통화정책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고금리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재정정책도 급격하게 늘어난 국가부채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면서 경기진작을 위한 확장적 기조를 가져가긴 불가능하다. 국가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2018년 흑자였던 (통합)재정수지가 코로나 기간 여러 차례의 추경을 거쳐 대규모의 적자 재정을 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GDP에서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37.6%에서 불과 4년만인 2023년 50.4%에 달할 전망이다. 2024년에도 여전히 부진한 경기 진작을 도모하기 위해 재정수지를 44조8000원의 적자로 편성해 올해(13조1000억원 적자)보다는 적자폭이 더 커지고 이것이 다시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올해에만 59조원의 세수입이 덜 걷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세수 부족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정건전성 악화가 정부 재정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완화와 재정건전성 유지가 최우선 목표가 된 상황에서 최소한 내년까지는 민간이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민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다가오는 불황을 버텨야 한다. 성장보다는 이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내년 경영의 키워드를 ‘수성(守城)’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리스크가 큰 사업은 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보릿고개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도 준비 해야 한다. 바로 핵심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핵심 인재의 확보, DX(디지털 전환), GX(그린 전환) 등의 미래 먹거리 사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해야 한다. 정부도 미래를 위한 국가 성장잠재력을 확충에 주력해야 한다. 미국이 고금리 속에서도 신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기업투자가 활성화되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버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자만이 가능하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슈&인사이트] 가짜뉴스 차단, 결국은 소비자의 몫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가짜뉴스,허위왜곡 정보로 인한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같은 SNS의 폐해는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이 된 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정보보다 가짜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실제로 요즘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이나 유행적인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팩트는 없고 단지 해석만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과 함께 어떤 사실도 확인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하고 있다.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개개인의 플랫폼을 통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매일 생산되는 데, 이 중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넘쳐난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이른바 가짜뉴스는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누군가에게는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유발한다. 이같은 가짜정보는 언론사들을 통해 인용되거나 확산되는 경우 파급력이 엄청나게 커진다. 실제로 일부 미디어는 사실 확인이나 진실 추구를 소홀히 하고, 자극적인 정보를 흘려 부수와 조회 수를 늘리면서 탈진실 사회 가속화에 공조하고 있다. 요즘의 디지털 환경은 가짜뉴스 확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많은 디지털 콘텐츠는 원본과 사본을 식별하기 힘들고, 콘텐츠 작성의 주체와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이른바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인터넷은 잘못된 개념이나 음모에도 충분한 정보와 논리를 제공 해 주는 거대한 정보의 원천이 되고 있다. SNS 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강화한다. SNS 에서는 왜곡되고 황당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상호 정보와 신념을 공유하면서 기존의 태도를 강화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강화해 줄 뉴스나 사실을 찾게 되고, 가짜 뉴스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 들게 되는 것이다. 정보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자신의 생각과 상반되는 견해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가 훨씬 쉬워지고 있다. 결국 탈진실 현상은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신뢰 붕괴와 사회적 소통 단절을 가져 온다. 우리나라는 물론 여러 나라에서 각종 법규와 처벌을 강화해 의도적 허위 정보나 가짜 뉴스 근절을 위한 여러 시도가 진행 중이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짜 뉴스나 탈 진실 문제를 법이나 규제로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짜 뉴스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무엇보다 미디어 소비자들의 정보인지 능력과 함께 미디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 역량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에 대한 이해, 판단, 평가, 활용 등의 활동을 포괄한다. 미디어 역량은 자신의 정보 생산과 유통이 가정,직장, 사회, 국가에까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뉴스를 해독하는 능력은 민주 시민 교육의 필수 요소다. 미디어 소비자는 눈과 귀를 열고 비판적 감시와 능동적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좀 더 나은 언론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람들에게 가짜와 실제 뉴스를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전문 웹사이트, 팩트 체크(Fact Checker) 매체나 기관이 많아져야 한다. 또한 미디어 매체들은 디지털 정보 및 뉴스에 대한 사실확인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미디어 소비자들은 미디어 소비자는 모든 정보나 뉴스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확인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서민 주거대책, 공공분양 중심으로 확 바꿔야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지속가능과학회장 전국 자가보유율이 2019년 61.2%에서 2020년에는 60.6%로 떨어졌다. 정부는 이후 2021년과 2022년에는 자가보유율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2020년 수준에서 별반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은 2021년 자가보유율이 43.5%에 불과하다. 무주택자 문제는 단순히 주택 문제 넘어 사회적 문제로 국가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역대 정부마다 서민 주거안정을 선거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서민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낸 정부는 아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국정의 전면에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가보유율이 되레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가보유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중국은 자가보유율이 95%에 달하고 대만과 싱가포르도 90%를 넘는다.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에 비해 집값 급등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다. 집값이 급등하면 이들 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내집이 있어 자산 증식효과로 이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자가보유율이 낮은 우리나라는 주택 유무에 빈부의 양극화가 극명해진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자산 중에서 부동산 비중이 매우 높아 그 심각성은 배가된다. 일본의 경우 가계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41%(자가보유율 61%), 미국은 35% 수준(자가보유율 65%)이다. 이들 나라에 비해 부동산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집값 급등이나 또는 급락은 ‘재앙’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자가보유율은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주택보급률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집값 대비 소득의 비율인 PIR이 무주택자들에게 부담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94%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이러한 정체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서울의 민간 주택은 PIR가 20에 육박한다. 이는 최소 20년을 모아야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부담가능한 주택’은 뭘까. 유엔은 PIR기준으로 5로 본다. 5년치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2인가구 기준 중위소득(연 4147만3860원)을 기준으로 5배인 2억원 수준이다. 적어도 서민에게 부담가능한 가격은 3억원 미만이어야 한다. 현재 민간 주택 시장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에서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가 ‘주거 천국’으로 칭송받고,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한 바탕은 공공분양주택인 ‘HDB 주택’을 부담가능한 가격대로 대량 공급한 데 있다. HDB 주택은 싱가포르 전체 주택 재고의 80%이상을 차지한다.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단지 5%에도 못미친다. 가뜩이나 부동산에서 ‘소유’ 개념이 강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현행 공공임대주택 중심의 서민주거 정책을 자가보유율 제고에 초점을 맞춘 공공 분양주택 위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특히 현재 주택난에 대한 해법으로 쓰는 공공임대주택 모델은 재정 부담이 커 공급 한계가 있다. 공공분양주택은 공공임대주택에 비하여 재정 투자가 적고, 관리비 부담도 없다. 특히, 내 집을 가진 자립 민주 국민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은 약 200만가구로 전체 주택의 9%를 차지한다. 중장기적으로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5%로 줄이고, 공공분양주택 비중을 10%로 늘여야 한다. 공공분양주택의 의미는 부담가능성과 함께 공공성과 개인 소유권을 동시에 만족하는 것이다. 분양 이후에도 공공주택의 원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개인 소유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올해 사전 청약한 동작구 수방사 아파트(8억원이상, 전용 59㎡)와 같은 고가 공공분양 아파트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분양주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도권 중심으로 공공분양주택 100만호 공급 뉴딜을 추진해도 좋을 것이다. 노후되고 용적률이 낮은 기존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대대적으로 초고층·고밀도로 재건축(용적률 400% 내외)해 공급가구수를 2배 이상 늘릴 필요가 있다. 일반주거지역의 각종 규제를 혁파하고 용도지역의 종을 상향해 늘어난 용적률에서 공공기여분으로 공공분양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녹지가 훼손된 명목상 그린벨트를 과감히 풀어 부담가능한 공공분양 주택을 지을 필요도 있다. 서민 주거문제는 지금과 같은 ‘찔끔대책’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없던 혁신이 필요하다.이영한 서울과기대 교수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지속가능과학회장

[기고] 늘어나는 금융 전산 장애, 제3자 품질 검증이 답이다

금융 분야의 IT 시스템이 날로 고도화되면서 덩달아 전산장애와 이로인한 소비자 피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시스템 불안정으로 장애나 사고가 발생하면 업무 중단으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이용고객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 금융감독원의 ‘국내 금융업권 전산장애 현황’(2022년)에 따르면 시중은행,증권사,저축은행,보험사,카드사 등 전 금융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2020년 198건에서 2021년 228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월까지 253건으로 전년도의 연간 발생건수를 넘어서는 등 꾸준히 늘고 있다. 금융사고가 늘어나면서 업무 중단, 고객 피해 및 VOC(고객 민원) 발생도 급증하는 추세다. 금감원은 2019년 이후 3년여 동안 금융사고로 인한 피해액을 346억원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에서는 모바일 뱅킹 장애 발생으로 몇 시간 동안 타행 송금 및 앱 접속이 제한됐고, 저축은행에서는 차세대 시스템 업데이트 후 하루 종일 대 고객 앱 작동이 마비됐다. 손해보험사에서는 전산 시스템 개편 중 고객 데이터 누락으로 환급이 몇 주 지연되는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산 사고로부터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기관의 규제와 감독 강화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또 다른 금융 환경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는 이 같은 새로운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제3자 관점에서 품질 검증 등 다양한 계획을 철저히 수립해야 한다. 정순영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교수는 "국내외 금융산업은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amtion)의 물결과 핀테크에 의한 금융서비스 혁신,빅테크(BigTech)의 금융업계 진출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IT가 새로운 비즈니스 목적에 부합하면서 빠른 결과를 내 주기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단 한 건의 오류도 없도록 짧은 시간에 대규모 검증을 완료할 수 있는 지속적인 테스트 자동화를 원하는 만큼, 신기술을 활용한 효과적인 품질 검증 계획과 실행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피력한다. 제3자 품질검증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양한 테스팅 기술을 이용해 IT 시스템의 문제를 찾고, 나아가 잠재 결함을 예방하는 투명하고 효과적인 품질 확보 방법이다. 이런 많은 장점에도 그동안 국내 금융권에서는 도입을 외면해 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국내 선두권의 생명보험사가 선제적인 검증 대책 차원에서 3자 품질 검증 컨설팅 사업을 추진해 업계의 주목을 받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다. "프로그램 등록·변경·폐기 내용의 정당성에 대해 제3자의 검증을 받을 것"을 권고한 금융감독원의 전자금융감독 규정 제29조 프로그램통제 정책이 점차 작동하는 모습이다.이렇듯 금융사들이 핵심적 시스템의 점검 항목에 대한 검증 및 보고서 작성, 잠재적 리스크 발생 요인 탐색 및 대응방안 수립, 데이터 품질 향상을 위한 DB 점검 및 성능 개선 등에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이런 노력에는 품질 검증 및 시스템 테스팅 전문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차세대 시스템 구축,클라우드 전환,대 고객 서비스에 대한 AI 적용 등으로 금융권 IT 시스템 검증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환경에 맞춰 제3자 검증의 모범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동시에 금융기관들도 검증기업들과 적극적인 상생 협력에 나서야 한다. 갈수록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는 금융권시스템의 장애와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금융업계와 IT기반 검증전문기업이 힘을 합쳐 튼실한 검증 기반 구축과 대응체계를 확립해야 한다.오선근 아트랩소프트 대표이사금융권 전산장애 발생 추이

[이슈&인사이트] 중산층의 조건

수년 전 뉴스에서 회자됐던 한국의 직장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산층의 기준으로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받는 사람, 30평 이상의 부채 없는 집을 소유한 사람, 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소유한 사람, 예금액 잔고가 1억 원 이상인 사람, 연 1회 이상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 등 주로 소득이나 재산 등 물질적인 측면만을 따진다. 이에 비해 선진국에서의 중산층의 기준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의 퐁피두 전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하는 사람,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하나 이상 있는 사람,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이상 있는 사람, 남과 다른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 ‘공분’에, 즉 공의에 의연히 참여하는 사람,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페어플레이를 하는 사람,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진 사람,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는 사람, 불의·불평·불법에 의연히 대처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미국 중산층의 교육을 책임지는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준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신의 주장에 당당한 사람, 사회적인 약자를 돕는 사람,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사람, 10년 이상 정기적인 비평지를 읽어 보는 사람 등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가치에 방점을 둔다. 미국 명문 시카고대학에서 계층을 다룬 ‘계급(The Class)’이라는 사회학 강좌는 수강 신청이 ‘하늘의 별 따기’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 강좌의 교재내용 중 흥미를 끄는 것은 거실 척도(living room scale)다. 거실의 물건이나 실내장식에 대해 점수를 매겨서 노동자,중산층,상류층 등으로 계급을 측정했다. 1935년에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샤핀(Chapin)이 개발한 이 척도는 당당히 교재 부록에 수록돼 있는데, 오늘날에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아 연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필자가 1990년대 중반 미국 중서부대학에서 이 책의 거실척도를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매 학기 서베이를 해봤는 데 놀랍게도 응답한 학생들조차 이 척도의 정확성에 탄복했던 기억이 난다. 이 척도에 따르면 거실에 새 카펫이 놓여 있으면 마이너스, 낡은 카펫은 플러스로 점수를 매기는데, 이는 졸부가 실내장식을 호화스럽게 장식한다고 사회계층이 상승하지 않으며 자신의 업적, 능력, 소유물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것을 경계하고 겸손한 것을 장려하는 문화를 반영한다. 힙합 문화의 플렉스, 브래깅과 같은 자랑 문화와는 정반대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겸손한 척하면서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 상류층을 비꼬고 일부러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 책꽂이에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기만 하고 바닥이나 테이블 위에 책이 없는 거실은 마이너스다. 오히려 책들이 펼쳐져 있거나 여기저기 놓인 거실이 가점을 받는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지, 장식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잡지구독도 가점 중 하나인데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도 의견을 내놓거나 대화에 끼어들 수 있는 교양이 상류층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재떨이가 없는 것은 마이너스인데,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 배려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배려를 본받아 필자는 재떨이와 함께 담배와 라이터까지 세트로 딸린 손님 접대용 상자를 학교 연구실 테이블에 놓아두었는데, 점심 식사 후 들려서 담배 한 대 태우고 가는 교수님들이 너무 많아 한 달을 못 버티고 치워버렸던 웃지 못할 추억도 있다. 물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것이 용인되던 오래전 일이다. 요즘 시각으로 볼 때 거실척도는 물질로 계급을 구분한다는 지극히 비윤리적인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척도를 통해 계층이나 계급은 물질만능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도덕과 교양 등의 정신적 가치도 함께 평가돼야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은 실내장식에도 반영된다는 데 시사점이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 들어 중산층의 의미가 점점 더 경제적·물질적 가치에만 쏠리고 있다. 물질주의 사상은 매체가 가속화한다. 한 자동차 광고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고급 자동차로 대답했다는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물질만능주의 사상이 팽배하다는 세태를 반영한다. 진정한 사회계층은 이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중산층도 물질적 기준을 넘어서 정신적 기준이 반영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주원 칼럼] 이-팔 전쟁발 중동정세 불안과 한국 경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분쟁은 이미 선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이 협상은 없다고 단언한 가운데 하마스가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로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상군이 투입되면 인명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 속히 평화가 오기를 바래본다. 이-팔 전쟁을 오로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분쟁은 분명 이제 막 코로나 펜데믹을 벗어나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 큰 악재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바이지만, 이번 분쟁이 주변국의 참전을 의미하는 확전으로 번지지만 않는다면 일정 수준의 쇼크에서 악영향이 멈출 것이다. 악영향은 바로 국제유가의 상승이다. 최근 국제 유가는 안정세를 보이다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배럴당 90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50달러까지 갈 가능성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 정도 수준까지 국제 유가가 오르면 한국 경제에는 재앙이다. 한국은 2022년 원유소비량 기준으로 미국, 중국, 인도, 사우디,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7위, OECD 국가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특히 1인당 연간 원유소비량은 20.2배럴로 OECD 국가 중 4위, GDP1만 달러당 원유소비량은 6.3배럴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를 기업이라고 볼 때 국제 유가가 오르면 ‘대한민국’이라는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더 큰 비용 상승 압력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은 제품 가격이 비싸져 수출이 안 되거나 채산성 악화로 경제성장률의 하락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번 이-팔 전쟁이 국제 유가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 유가의 향방을 가늠해 보기 위해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이번 사태와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지구에서 교전(2014년7월8 ~ 8월26일)이다. 이때 개전일 두바이 유가는 배럴당 106.9달러에서 종전 시 100.5달러로 하락했다. 당시 국제 유가는 교전 전후로 100달러 수준을 상당 기간 넘어 있었는데 이는 분쟁 때문이 아니라 ‘아랍의 봄’으로 대변되는 중동 국가들 자체의 전반적인 정치 불안 때문이었다. 둘째, 보다 확전된 개념의 걸프전(1991년 1월17 ~ 2월28일)과 미-이라크전(2003년 3월20 ~ 4월 9일)을 들 수 있다. 이때의 유가 흐름은 오히려 전쟁이 시작되면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동 지역의 분쟁으로 국제 유가가 폭등했던 사례는 1차 오일쇼크를 유발했던 1973년의 4차 중동 전쟁(다수의 산유국 참전)이다. 이 때 국제 유가는 4배가 급등했던 것과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유가가 약 2.5배 상승했던 사례가 있다. 따라서 이번 이-팔 사태가 앞의 어느 사례를 따라갈지가 국제 유가의 향방을 가늠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첫 번째 사례, 즉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지구 내에서의 국지적 교전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또 한 가지 변수는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물론 주변 산유국과 미국까지도 이번 하마스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테러 수준의 공격이 아니고 로켓탄 수천 발을 사용하는 대규모의 공격이다. 즉 많은 준비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각국의 정보기관에서 이를 놓치기 쉽지 않다. 특히 주변 산유국들이 몰랐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어쩌면 이번 사태로 이전부터 관계 개선이 시급한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미국-이란 간 대화 채널에서 협상력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별 고도의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더라도 국제 유가를 크게 올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한다. 빨리 종전이 돼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그럼에도 왠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을 지워버리기는 어렵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슈&인사이트] 온플법, 서두를 일 아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얼마 전 ‘글로벌 디지털 전쟁, 플랫폼 자율규제가 해법’이라는 글에서 "급변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모든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은 국내 플랫폼의 혁신 동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민간 주도의 플랫폼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하고 있으며 …"라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작 단계인 플랫폼 자율규제의 성공을 위해 법ㆍ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플랫폼 자율기구 설립ㆍ지원 근거와 참여 인센티브 등을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같은 자율규제방식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국내 빅테크 기업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미 8월 자율규제 방안 마련을 위한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공정위는 본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라는 단행법을 제정할 계획이었으나 근래에 입장을 바꿔 단행법 제정보다는 기존의 공정거래법 개정과 자율규제 제도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율규제에 초점을 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온플법은 유럽연합(EU)의 DSA(디지털서비스법)과 DMA(디지털시장법)과 유사한 규제방식을 취하기로 해 시장 관계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DSA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대형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사전규제 도입이 목적이고, DMA는 EU 단일 시장의 디지털 부분에서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거나 시장지배력보유가 예견되는 게이트 키퍼에 대한 사전규제 도입이 목적이다. 이처럼 DSA와 DMA는 사전규제방식을 취하는데, 온플법 역시 사전규제방식을 취할 예정이다.이에 업계에선 자율규제와 사전규제 원칙이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 내 독과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내 온플법의 도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EU의 DSAㆍDMA 도입 배경이 한국과 한참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EU는 EU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애플, 구글, MS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견제하고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DSA와 DMA를 제정한 것이지, 자국 기업을 규제하려는 목적에서 제정한 게 아니다. 이에 반해 온플법은 한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목적이다.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등 토종 자생 플랫폼이 자국 시장을 선점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들이 국내 시장을 독식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국제사회에서 한국 플랫폼 기업은 스타트업 수준이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온플법 제정은 플랫폼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악화시켜 국가 경제 성장을 발목잡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온라인 플랫폼 관련 글로벌 스탠다드가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온플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가뜩이나 온플법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 규제들은 이미 공정거래법, 대규모 유통법, 전기사업법 등 기존 법령으로도 충분히 제재가 가능해 이중규제 여지도 있다. 지금 이 순간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 소통, 검색, 쇼핑, 문화생활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슈퍼앱’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SNS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고,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보다가 인상 깊었던 OST를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바로 들을 수 있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사업 확장 목적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측면이 크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도 이같은 세계적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한 노력을 규제로 옭아매어 한국형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싹을 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한국 반도체 장비 유예는 윤 정부 외교 성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을 무기한 유예했다. 두 회사의 중국 내 반도체공장을 미국 수출관리 규정에 따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앞으로 별도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전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종전처럼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내 공장에 들여보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 쑤저우에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 다롄에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고, 자국우선주의의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 일련의 정책과 입법을 추진해 왔다. 특히 상무부는 안보 전략 차원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과 기술 절취 등을 막고자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18nm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 등을 초과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multinationals)이 소유한 경우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시 한미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중국에서 운영 중인 삼성반도체, SK하이닉스 반도체 등 한국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1년 동안 수출 통제 유예를 받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조치의 유예 연장을 호소해 왔고 한국 정부도 추가 연장을 목표로 협상을 벌여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출통제 유예 조치가 중국 내 공장의 안정적 운영을 좌우할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장비를 상시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장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반도체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걷히게됐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번 결정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며 "우리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 운영과 투자 관련 불확실성이 크게 완화됐고 장기적으로 차분하게 글로벌 경영 전략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중 대결 과정에서 굳어지고 있는 디커플링과 그에 따른 두 개의 공급망 체제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안보 전략의 중요한 과제다. 경제와 안보가 연결된 상황에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운명을 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벅차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생존과 대한민국의 안녕이 걸린 문제다. 정부가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치열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 이번 반도체 장비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은 정부의 전략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작년 바이든 대통령 방한, 올해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공급망과 수출 통제와 관련, 긴밀한 공조 의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왔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반도체 수출 통제 무기한 유예하는 결실을 보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다방면의 영역에서의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한국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인 만큼 치밀한 전략과 민관협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슈&인사이트] ‘좋은 이모님’ 구하기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논쟁

최근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이 낳은 기쁨도 잠시, 육아 문제로 고통을 겪는 부모들은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나"라고 푸념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1~3년 넘게 기약 없는 대기 줄을 서야 한다. 정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 역시 대기 줄이 긴데다 소득이 높은 맞벌이 부부는 소득 기준에 걸려 언감생심이다. 한국은 기혼 여성 6명 중 1명꼴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웬만한 봉급 생활자의 한 달 치 월급을 전부 바쳐야 할 정도로 육아비 부담이 높기 때문이다.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가사도우미의 도움이 절실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는 내국인과 중국 조선족에게만 허용된다. 다른 나라 출신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내국인은 물론 조선족 가사도우미 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가사도우미 인건비도 치솟고 있다. 출퇴근하는 내국인 가사도우미의 경우 서울 기준 350만~450만원에 달한다. 그나마 조선족 도우미는 내국인에 비해 월 30만~50만원 낮아 맞벌이부부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를 선호한다. 조선족 도우미의 장점은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점과 함께 문화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때로는 담합도 하기에 시세에 맞춰 인건비를 계속 올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 이후 조선족 도우미들이 입국하지 못하면서 임금이 껑충 뛰어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여 명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전망이다. 2024년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이니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월 인건비는 최소 206만740원인 셈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나뉘어 있다. 찬성 쪽은 ‘싼 비용’으로 가사노동 문제와 육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지금보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본국보다 높은 임금으로 만족을 느끼는 ‘윈-윈’ 정책이라는 점을 든다. 이에 비해 반대 쪽은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소통의 문제와 가사도우미를 빌미로 한 불법체류 증가, 내국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여부를 놓고도 견해가 극명하게 나뉜다. 최저임금 적용을 주장하는 쪽은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0호 협약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대 쪽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가사비용 부담을 더는 것인데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도우미 인건비가 200만원대 중반으로 30대 여성 중위소득(271만원) 수준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저출생대책으로서 효과가 있을까? 1970∼1980년대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도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2년 싱가포르 출산율은 1.05명이고 홍콩은 우리보다 낮은 0.68명이다. 그렇다면 저출생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답은 단순 비교가 불가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정책목표는 당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 증가에 초점을 맞췄고 일단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원인 중 육아가 42.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미혼여성이 꼽은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정책 설문에서도 ‘경력 단절 예방 지원(29.4%)’이 2위에 올랐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도입은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모든 문제의 만능해결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내국인 가사도우미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이 사회적 인식과 낮은 급여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의 가사근로자법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내국인 가사도우미가 어느 정도 늘어날지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 사실상 외국인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경제임에도 외국인에 대한 국민 수용성은 상당히 낮다. 이들에게 빗장을 열기 시작한 만큼 이제는 동반자로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에서 출생률 꼴찌인 한국 부모들이 희망하는 저출생 해법은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긴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 양육에 타인의 도움을 지원받는 것보다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도록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제대로 실천만 된다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이슈&인사이트] 새만금,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전략의 부재다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새만금 SOC 사업 내년도 예산 6626억원에 대해 기획재정부 심사과정에서 1479억 원으로 무려 78%가 삭감됐다. 이 같은 일방적인 예산 삭감에 대해 전라북도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파행에 대한 전북 책임론을 기화로 명백한 보복성 예산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대응에 나섰다. 전북도의회 의원과 김제시의회 의원들의 삭발 투쟁을 시작으로 부안군의회,정읍시의회 의원들이 삭발에 동참했고 군산시의회 의원들도 삭발을 예고했다. 문제의 본질을 보면 이 예산의 결정 라인 상에 기본계획을 승인하는 새만금 위원회 수장인 한덕수 국무총리와 집행부처인 행정자치부의 수장인 이상민 장관이 전라북도 출신이라는 점으로 볼 때 보복성으로만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덕수 총리의 말대로 전북 경제를 위해 새만금의 ‘큰 그림’을 그릴 시점이다. 1971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전북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공약으로 새만금 개발을 제시했다. 당시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간척지 개발이 중요했기 때문에 농어촌개발공사가 주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자 흐지부지됐다. 이후 1987년 노태우 후보가 새만금 사업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된 후 1989년 새만금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세우고, 1991년 기공식을 가졌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새만금 사업은 1995년 환경분쟁으로, 10여 년간 환경단체의 시위와 소송 등에 휘말리며 사회갈등의 대명사가 됐다. 2006년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아 20년간의 대역사 끝에 2010년 준공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이로써 개성공단(100만평)의 80배에 달하는 8000만 평의 간척지와 호소를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의도했던 대로 농지로 사용하기에는 축구장 3만3000개에 달하는 이 간척지가 너무 컸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으로 새만금은 전환점을 맞았다. 새만금 부지가 농업용지에서 산업 중심으로 전환되고, 새만금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새만금 위원회 발족, 새만금 종합실천계획안 최종 확정 등 새만금 개발이 탄력을 받았다. 동북아 경제중심지 발상은 타당하다. 새만금은 일제 강점기에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식량 기지화 정책의 핵심지역으로 검토됐다. 1931년 만주침략 기반으로 1937년 중일전쟁 통해 대륙을 침략하고자 했던 일제는 전쟁물자와 인력 보급의 전초기지를 한반도로 정하고 그 중심에 새만금을 검토했다. 그만큼 새만금은 중국의 경제 공략의 전략적 위치에 있다. 이런 입지여건을 고려할 때 새만금의 문제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먹거리 신산업을 찾는 전략의 문제다. 문제는 그 밑그림을 그릴 인재의 부재다. 동북아 경제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새만금개발청이나 개발공사의 인적 구성으로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동북아 경제중심지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국제감각과 먹거리 산업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필요하다. 최근에 먹거리 산업으로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환경·경제적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하책 중의 하책이다. 더구나 새만금에서 발전된 신재생에너지가 송배전망 부재로 버려지는 현실이다. 최근에 새만금에 이차전지 소재 제조시설 건립이 활성화되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2차 전지산업 자체는 유망산업이지만 금속·화학 산업은 새만금 방조제에 치명적인 공해 배출업종이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농수산 식품클러스터가 제시되고 있다. 새만금이 위치한 익산에 농식품 산업 클러스터가 있는 데를 이를 확장해 새만금에 글로벌 농식품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푸드밸리가 좋은 본보기다. 오에닝겐에 있는 푸드밸리는 반경 30㎞ 달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식품클러스터로 연간 매출이 650억달러에 달한다. 이곳 고용 규모는 70만 명으로 새만금의 계획인구 70만 명과 일치한다. 새만금 글로벌 농식품 클러스터는 중국 인구의 5%인 7000만 명의 프리미엄 시장을 목표로 한다. 할랄 식품은 보너스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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