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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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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아마추어리즘 조장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01 08:44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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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된 지 1년 9개월이 지났다. 사물에는 양면이 있게 마련이어서 중처법도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을 다 같이 가지고 있겠지만, 중처법은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많다는 점이 문제다. 이곳 저곳에서 부작용이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혹자는 중처법 제정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크게 높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순기능만 보고 부작용과 기회비용은 생각하지 않는다. 중처법 제정 전 잇따른 대형사고로 안전 분위기가 크게 고조된 상황에서 중처법만이 유일한 방안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단견이다. 중처법이 아닌 보다 효과적인 대안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었는데도 가장 바람직한 방안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중처법 때문에 안전 컨설팅, 진단 등이 증가한 것을 이유로 중처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이들에게서 기업의 안전역량 향상에 대한 사명감과 전문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포분위기에 편승해 장삿속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오염시키는 ‘공공의 적’이다. 특히나 안전전문기관이나 교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 중에도 이러한 부류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처법의 내재적 한계에는 안중에 없고 엄벌에 막무가내로 환호한다는 점이다. 중처법이 실효성이 있는지,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실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아마추어리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건설업과 같은 위험업종에서 일하던 유능한 안전관리자가 대거 공공기관, 제조업 등으로 옮겨가는 것도 중처법의 부작용이다. 중처법이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종의 안전관리 여건을 악화시키는 셈이다. 건물 착공면적이 지난해에 비해 40% 가까이 줄었는 데도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줄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안전관리자 부족으로 건설현장에서 아우성이 일자, 정부는 초단기 양성교육으로 안전관리자를 속성으로 배출하고 있다. 이런 땜질식 대책은 건설업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에 대해서까지 안전관리는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아무나 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 안전관리에 미치는 후과가 심각할 것이다. 가뜩이나 안전관리자의 전문성 부족이 심각한 문제인데 정부가 대놓고 이를 조장하는 셈이니 말문이 막힌다.

중처법 시행 이후 실질적 안전보다는 보여 주기식 안전 대응이 심해지고 있다. 이는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심하다. 법 자체에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없다 보니, 대기업마저 정작 해야 할 일보다는 서류작성에 치우치는 모습이다. 체계적으로 안전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중처법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중처법 시행으로 기업과 정부가 어느 때보다도 안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체계적이지 못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피로감과 냉소적 반응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은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잘못된 지도로 기업들은 현업부서의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안전부서의 조직과 인원을 늘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간 안전은 안전부서가 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었는데, 중처법과 고용부가 기름을 끼얹었다. 중처법으로 고용부는 예방보다는 수사에 과도한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지금도 행정자원 배분의 왜곡이 심각한 데 중처법 적용이 내년에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되면 그 왜곡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중처법의 칼날이 중처법 전에도 처벌돼 온 중소기업 경영책임자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전문성과 진정성 없이 현재와 같은 갈팡질팡 정책을 계속한다면 막대한 인원과 예산을 들이면서도 안전수준의 선진화는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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