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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아트] 용산 개발사업, 공공성 강화해야

고지도를 보면 서해 바닷물이 용산 앞까지 들어온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용산은 ‘용의 산’을 뜻하여, 옛 사람들은 용산지역의 산을 최고의 동물로 상징되는 ‘용’으로 보았다. 용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모악 정상에 도달하게 되고 이어 인왕산과 연결된다. 용산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길지이다. 용산 지역은 신 서울청사 부지로 논의된 적이 있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이 이전했다. 용산정비창은 배산임수의 명소로서 그 잠재력이 서울에서 독보적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용산정비창을 용산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용산정비창은 경부선이 개통된 1905년부터 2012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아치 형태의 정비 창고들을 철거하고 현재 대규모 나대지인 49만3000㎡의 터가 남아 있다. 용산역은 KTX, GTX B노선과 D노선이 만나는 전국토 및 수도권 미래 교통의 중추로서의 가능성이 크며, 미래 유라시아 협력시대 그 역할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용산정비창의 개발 성공여부는 지역 주민들과 서울시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토지 소유주와 관련 행정청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가 높기 때문에 국가적 프로젝트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6년 처음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부터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세계적 금융 위기 등 내적·외적 요인으로 이 사업은 2013년에 무산되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삼성동 한전부지와 잠실운동장을 중심으로 한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용산정비창 개발사업은 정지되었다. 10년간 방치되어 온 이 터를 개발한다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2022년 현시점에서 서울시의 발표 내용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보자. 첫째, 공공성에 관한 문제이다. 공공주도 개발 사업인데, 서울시의 발표를 보면 오히려 공공성에 대하여 염려가 된다. 부지 중앙부에 국제업무기능을 배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문화복합기능을 경부선 철로 남동측의 작은 부지에 떨어져 배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중앙부에 외국 기업들의 본사가 들어설 수도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한류 테마 공간 등과 같은 공적인 기능이 더 낫지 않을까. 민간에 의하여 2003년에 건설된 일본 도쿄 록본기힐스를 보자. 부지 중앙부에 전통 일본식 정원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전시관, 영화관, 호텔, 아파트, 사무실 등의 컴팩트시티를 창조했다. 21세기 신도시의 전례로 평가받으면서 세계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용산정비창을 대기업 사옥의 집단 집적지로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컴팩트시티의 고층화는 공원이나 공공장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개발 구상을 컴팩트시티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서울시가 미리 전체 부지를 구획하고 국제공모전은 구획된 부지별 추진한다고 한다. 부지 구획부터가 중요하다. 부지 전체를 대상으로 국제공모전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의 상상력을 모아 전체 부지의 개발 컨셉과 비전, 도입 기능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둘째, 과연 공공에서 100층이상을 발표해야 하나. 서울시가 제시한 조감도에는 100층이상 건물과 마천루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할 더 나은 미래 도시인지 묻고 싶다. 현대차 그룹의 삼성동 신사옥인 글로벌비지니스센터는 원래 105층 1개 동으로 계획했으나, 경제성 등을 이유로 50∼70층의 2-3개 동으로 변경하여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기업도 이러한데 초고층 마천루가 과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디자인인지 의문이다.셋째, 한강과의 접합 여부가 매력도를 결정한다. 현재 한강과 정비창 사이에는 있는 아파트단지와 주택 구역에서는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 사업들이 추진 중에 있다. 이들 사업들이 완료되면 거대한 장벽이 될 것이다. 이들 사업을 중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난제이다. 남북 관계로 폐쇄된 한강 수로가 개방될 때, 이 한강변에 상하이, 도쿄로 가는 항구인 ‘용산항’을 건립할 수 있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지속가능과학회장

[EE칼럼]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아무도 책임 없나

몇 주 전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흥미로운 칼럼을 시리즈로 게재했다. ‘나는 틀렸습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는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글이었다. 그는 2021년에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필요 없다고 단언하였지만 1년도 안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판단이 오류로 드러난 점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 것이었다. 당시 이미 천문학적 재정지출과 물류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의 경고수위가 높아진 상황이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려던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에 힘을 보태려는 의도에 눈이 가려져 판단이 잘못됐음을 밝힌 것이다.이 시리즈 칼럼에서 ‘세계는 평평하다’는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 역시 중국에 관한 자신의 견해가 오류였다고 인정하였다. 프리드먼은 전 세계가 연결된 하이퍼 커넥티드 세상을 주장하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는 본인의 견해를 톤다운하기도 하였다. 지식사회는 외부로부터의 비판에는 자유로울 필요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부로는 엄격한 자기평가와 비판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설정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 작년 NDC 목표 상향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는 ‘선언적, 권고적’인 목표일뿐이므로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틀린 관점인데, 기본법과 시행령에 감축목표가 수치로 제시된 이상 우리나라의 법체계 상 이는 구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이 들어오면서 지금은 근거가 없어진 에너지기본계획은 물론이거니와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등 수많은 정부계획이 이 감축목표에 의해 수정되어야 한다. 기본계획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의 거버넌스 특성 상 이렇게 정부목표가 정해지면 공적섹터와 민간섹터,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까지 일산불란하게 그 목표를 향해 정책이 재정렬된다. 결코 선언이나 권고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는 ‘Build Back Better’를 구호로 호기롭게 시작하였지만 예산확보에 실패함으로써 난항을 겪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통해 2050 탄소중립 목표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게 되었다. 분권주의(Federalism) 하의 미국에서는 감축목표가 우선이 아니라 양당 합의를 통한 예산이 먼저 확보된 후 그 목표는 자율적으로 맞춰 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탑다운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최근 영국 대법원은 영국 정부가 2030 NDC 목표달성을 위한 상세한 감축목표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판결을 내렸다. 환경단체가 영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이 소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골조로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산업부문과 발전부문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그것도 소수점 단위까지 찍어서 법적 구속력까지 갖춘 형태로 제시한 우리나라는 COP26 개최국인 영국보다 너무 앞서간 셈이다. 작년부터 이어져온 그린플레이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후위기로 인한 열파와 가뭄, 홍수, 식량가격의 폭등, 코로나 등 100여년 만에 한 번 터질만한 이슈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시점에서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정책을 재정비하고 있다. 해외발 주요 뉴스를 보면 각국의 원자력, 석탄, 재생에너지, 수소 정책이 연일 수정되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NDC 목표달성과 탄소중립을 주제로 한 행사가 많다는 점은 비단 필자만 우려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연금고갈, 소득분배, 잠재성장률 제고, 에너지 안보와 국방안보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자기반성이 절실한 때이다. 우선 지식사회가 반성해주길 바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100%를 주장하던 이들이 지금 와서는 원자력 이용 내지 심지어 확대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 역시 자기오류를 인정하는 하나의 제스처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소모적 논쟁으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였다. "나는 틀렸습니다"라는 고백은 용감한 행위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데스크 칼럼] 일개의 툰베리, 일국의 환경부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다. 지난 주말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의 출품작 <그레타 툰베리(I am Greta)>를 TV로 시청했다.스웨덴의 10대소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기성세대와 선진국 정부를 향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 작품이었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6차례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으나,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6월 4주간 개봉돼 2296명 관객이라는 ‘미미한 관심’을 끌어모으는데 그쳤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기준).영화는 툰베리의 기후변화 위기 호소와 행동, 환경보호주의자와 좌파진영의 열렬한 호응과 연대시위, 우파진영의 폄하와 인신공격을 가감없이, 차분하게 보여주었다. 극중 툰베리의 발언 중 가장 인상 깊고 필자의 폐부를 찔렀던 말은 기성세대와 선진국 정부들이 미래세대들에게 기후변화 위기 관련 거짓말을 하고 장밋빛 ‘희망고문’을 가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즉, 현재의 기후변화가 심각하지 않다거나 기후 위기 개선을 구두로 밝혀놓고는 실제 행동으로 나서지 않고 있으며,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로 ‘죽어가는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낙관론을 심어주고 있다는 주장이었다.툰베리 주장의 설득력 여부를 떠나 기후위기의 피해가 갈수록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현실 삶 속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현상은 부인할 수 없다.전체 유럽의 3분의 2 지역이 500년만의 최악 가뭄에 시달리며 강 바닥이 드러나고, 1500명 이상이 숨졌다. 미국은 서부에서 불난리(산불), 동부에서 물난리(홍수)를 겪었다.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도 올해 폭염 시기가 빨라지면서 수도권에 6월 열대야가 첫 발생하고 폭염일수도 길어진 반면, 장마철이 지난 뒤 수도권에선 2~3주간 기록적 폭우 피해가 발생했다.문제는 이같은 기후변화의 시계침이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툰베리는 부모세대들이 저질러 놓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왜 자식세대가 떠안아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항변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온난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달라고 호소한다.그러나, 이같은 툰베리의 간청도 과학자들은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기후 재앙이 미래가 아닌 현세대로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지난 5월 세계기상기후(WMO)는 2021년 보고서를 내고 지구가 온난화뿐 아니라, 해수온도와 해수면 상승, 해양 산성화를 가져와 지구의 기후변화 자정능력을 심각하게 상실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이같은 기후 위기를 전지구적 문제로 인식해 선진국 중심으로 파리기후협약을 체결했지만 이행 속도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지난 26일 우리 환경부는 대구 성서산업단지 입주기업에서 제1회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어 ‘환경규제혁신방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환경부 보고 내용 중 핵심은 ‘금지된 것 말고 다 허용하는 열린(네거티브) 규제로 전환’이었다.윤 정부 출범으로 환경부의 정책도 변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우려스러운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를 경제부처라고 보았듯이 환경부도 경제지원 부처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이날 환경부 장관은 "과거에 추진되었던 환경규제 혁신은 환경개선에 대한 국민 기대를 고려하지 않고 기업이 원하는 규제완화에 치중하다보니 사회적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국민과 기업이 함께 바라는 환경규제 혁신임을 강조했다. 논리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환경정책의 최후보루여야 할 부처가 자연환경과 인간다운 삶의 환경을 보호하는 정책을 ‘규제’라고 보는 인식 자체부터가 잘못이다. ‘일국의 정부부처’가 일개 십대소녀보다 얕은 환경 가치관을 가진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에너지경제 이진우 성장산업부장.

[기자의 눈] ‘삼성 지라시’가 이재용에게 던진 메시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과 맞물려 정체 불명의 지라시가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돌아다녔다. 내용인즉슨 이 부회장이 복권 이후 삼성을 새롭게 탈바꿈하고자 과거 미래전략실에 버금가는 컨트롤타워를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에 나선다는 게 골자다. 이외에도 개편이 이뤄질 시점과 인력 감축 규모, 본사 이전 등 꽤 구체적인 정보가 담겼다. 하지만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큰 비용을 들여 본사를 옮기고 인력을 감축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가 명확되지 않은데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에 사실상 올인하는 삼성디스플레이가 해당 사업 부문을 축소한다는 둥 회사가 밝힌 사업전략과 배치되는 내용이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측에서도 공식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지만 취재 결과 사실무근이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대체로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정말로 거짓에 불과한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뜬소문이 확산한 이유는 있다. 약 5년 가량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면된 이유는 ‘경제 활성화’다. 이 부회장도 사면 복권 이후 입장문을 통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며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고,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정부 배려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지라시는 이 부회장 복귀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선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이 부회장이 회사를 고치는 범위와 강도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로 유명한 지난 1993년 ‘신경영’보다 강할 것이라고 짚으면서다. ‘삼성 제2 창업’을 선언하며 회사를 세계 1위로 도약한 이 회장처럼, 여론이 이 부회장에게 과감한 결단을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재용의 삼성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냐는 질문이다.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게 됐지만 ‘재벌 특별 사면’이라는 꼬리표를 지우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600만 명에 육박하는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경제 위기 극복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이재용의 삼성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jinsol@ekn.kr

[김성우 칼럼] 역대급 이상기후 대응과 美 인플레이션 감축법

8월은 기후위기 측면에서 역대급 달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등 주요 국가들이 겪고 있는 사상 최악의 가뭄과 폭우 그리고 폭염 등은 이상기후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실감케 하고 있다. 미국은 1000년 만의 최악의 폭우로 중남부 일리노이는 시간당 평균 약 200mm(참고로 지난 8월초 서울을 마비시킨 80년 만의 폭우가 시간당 141mm)의 물폭탄이 12시간 쏟아졌고, 유럽의 3분의 2는 5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 신음하고 있다. 중국도 청두가 섭씨 43도를 비롯해 전국 200곳 이상에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이런 이상기후가 막대한 피해를 수반하고 점차 일상화된다는 전망은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이미 코로나 등으로 위험해진 공급망 및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켜 경제에 2차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 내륙 동서간 물류의 젖줄로 세계 3대 강인 양쯔강은 물론이고 서유럽 내륙 수상운송의 80%를 담당하는 라인강에도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물건을 실은 배가 다니기 어려울 지경이다. 내륙 수상운송에 문제가 생기면 대안이 마땅치 않아 물류비 증가가 불가피하다. 프랑스의 경우 100여개 마을에 식수가 끊길 정도로 물이 부족한 마당에 원자력발전소 냉각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찬 물은 더 구하기 어려워, 물 부족은 에너지 공급난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고 있다. 물이 부족하니 수력발전소의 가동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고, 강 수위 저하로 인한 석탄 운송 차질이 화력발전소의 가동에도 지장을 주어, 전력 공급과 가격에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물과 전력의 공급 차질로 인한 제조업 영향도 심각하다. 수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쓰촨성에 위치한 도요타 자동차는 공장 가동을 일시 중지했고, 애플 공급사인 폭스콘도 청두 공장을 멈춰 세웠다. 테슬라 공급사인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CATL도 마찬가지다. 일부지역내 일부 업종이라도 조업 중단이 조기에 해소되지 않으면, 타 지역과 타 업종에 필요한 물건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지장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미 8월의 단기 조업중단으로 상하이의 테슬라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생겼고, 충칭의 무기한 단전 조치로 중국내 자동차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해진 상황으로, 유사한 기후위기가 지속되면 글로벌로의 영향 확산은 자명하다.반면 기후대응 측면에서도 8월은 역사적인 달이다. 지난 7일과 12일 미 상하원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와 법인세 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Inflation Reduction Act(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가결했고,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서 공포됐다. 온실가스 감축 지원 등 기후변화 대응에 3693억 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로, 최소 법인세율 적용 및 자사주매입시 부과금 징수 등 재원마련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 보면, 태양광, 풍력, 배터리, 지열, 원자력, 바이오가스건설시 300억 달러로 10년간 세제지원하고, 에너지공급회사의 청정에너지 전환에도 추가로 300억 달러를 금융지원한다. 또한 60억 달러로 화학, 철강, 시멘트 등 고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을 돕고, 105억 달러는 수소, 바이오연료, 친환경항공유 및 대체연료를 세제지원한다. 특히 전기차나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제조공장 건설에도 100억 달러를 세제지원하고, 270억 달러는 지붕태양광 등 청정에너지사업 금융지원을 위한 녹색은행에 할당한다. 탄소포집저장시 이산화탄소 톤당 50~85 달러의 탄소가격이 보조되고, 친환경 자동차(중고차포함)구매나 고효율로 집 개보수시에도 개별 지원된다.이와같은 미국 역사상 청정에너지 및 기후프로그램 관련 최대 투자 규모의 기후대응 법안은 작년부터 의회내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후위기에 에너지 안보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교착 상태였던 법안 가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법안의 이름은 인플레이션을 잡아 11월 중간선거에 대비해야 하는 정치적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에 따르면, 이번 법의 시행으로 미국의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2005년, 66억톤)의 약 10%인 5.5억톤~7억톤을 2030년까지 감축해 총 40%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 봤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50~52% 감축을 달성하기 위한 절대적인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115년 만에 최악의 물폭탄이 쏟아져 역대급 기후위기의 8월을 겪은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을 이행할 역사적 동력을 시급히 마련할 시점이다.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기자의 눈] 김상협 새 탄소중립 민간 위원장에 바란다

최근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 두 번째 민간위원장으로 김상협 위원장이 임명됐지만 마냥 기쁜 자리는 아닐 것 같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최전방에서 이끌어 갈 수장이 됐지만 축하보다는 무거운 짐을 안게 됐을 터다. 탄녹위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탄소중립 이행 방안을 설정하고 추진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기구로 출범했다. 정계, 학계, 기업계, 산업계, 시민사회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활동했지만 ‘편향된 조직’, ‘전문가 없는 위원회’라는 비판의 화살이 난무했다. 비판이 쇄도하는 가운데 1기 탄녹위는 탄소중립 초석을 다지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등을 마련하는 업적도 남겼다. 하지만 산업계의 목소리를 담지 않은 로드맵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 위원으로 몸 담았던 전문가 중 일부는 탄녹위를 향한 이같은 비판을 수긍하기도 했다. 김상협 위원장의 전문성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이명박(MB) 정부시절 녹색성장을 주도한 ‘저탄소 녹색성장 전도사’로 꼽힐 정도이니 말이다. 당시 MB정부의 ‘녹색성장’으로 대표되는 ‘4대강 사업’과 ‘원전 르네상스’ 등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이었다. 김상협 위원장 임명 소식을 전해들은 한 취재원은 실제로 "녹색성장에 관심도 많았고 관련된 업무를 많이 진행했으니 탄녹위를 잘 이끌어 갈 것 같다"고 호평을 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시민사회의 설득을 잘 이끌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MB정부가 주도한 ‘4대강 사업’과 ‘원전 프로젝트’ 등은 추진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시민사회의 비판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협 위원장의 남은 임무는 ‘편향되지 않은 위원회’, ‘합리적인 탄소중립 계획’이라는 신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는 점이다. 산업계나 시민사회 등 누구나 ‘유명무실’ 해진 탄녹위에 탄소중립 방향키를 믿고 맡길 수 있게 위원들을 이끌고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내각 구성부터 ‘MB 인사 되풀이’, ‘친분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상협 위원장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 하지 않도록 탄소중림 목표를 이끌어 가야 한다. 또 다시 ‘유명무실’ 한 위원회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말이다. claudia@ekn.krclip20220825155422

[EE칼럼] 반시장적 전기요금 체계, 획기적 개혁 필요

우리나라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5조 9000억원에 달했던 영업수지 적자는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7조 8000억원, 6조 5000억원을 기록했다. 올 여름 폭염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 등으로 한전의 전력구입비를 결정짓는 계통한계가격(SMP)이 급등해 올해 연간 영업수지 적자는 최대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전 적자 누적의 근본 원인은 전력구입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전기요금에 있다. 지난해 전력구입단가는 kwh당 103.2원으로 전년 85.0원에 비해 21.4% 상승했으나 판매단가는 108.1원으로 전년 109.8원에 비해 1.5% 하락했다. 올해도 전력구입단가는 급등하고 있으나 판매단가는 연료비연동제의 경직적 운용으로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오르고 있다. 결국 한전의 적자 누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이 전력구입단가 변동에 맞춰 신축적으로 조정되도록 하는게 해법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뭔가. 당장은 연료비연동제를 실효성 있게 운용하는 것이다. 한전의 전기요금은 지난해부터 연료비 연동제가 적용돼 주기적으로 조정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분기별 연료비 조정단가가 직전 분기 대비 최대 ±5원/kWh으로 제한돼 연료비 급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전력 판매단가가 구입단가 상승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4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각각 kWh당 6.9원, 5월 전기요금이 인상됐고, 10월에 추가적으로 5원 인상될 예정이다. 하지만 분기별 연료비 변동에 따른 연료비 변동분은 7월에 인상된 5원 뿐이고 4월과 10월의 요금인상은 기준연료비(직전 1년간 연료비의 평균치) 상승에 따른 것이다. 결국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연료비 조정 단가의 변동폭을 확대하고 정부가 국민부담을 고려해 행사하는 ‘유보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력회사의 연료비 조정액 상한은 기준 연료비의 1.5배다. 우리보다 운신의 폭이 훨씬 크다. 변동비반영시장(CBP)을 가격입찰시장(PBP)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현 CBP시장에서는 연료비만 반영해 급전순위를 정하지만 배출권비용 등 환경비용이 급증하고 있으므로 이를 포함한 PBP시장으로 전환해 급전 순위를 정하는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석탄에서 가스로의 연료전환도 원활하게 이루어져 온실가스 감축에도 도움이 된다.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 산업용, 교육용 등 용도별 전기요금 차이로 인한 교차보조 문제 해결과 전압별 요금제 도입도 필요하다. 변전소를 별도로 거치지 않고 고압으로 수전하는 산업용 전기는 낮게, 저압으로 수전하는 주택용이나 일반용 전기는 높게 책정하는 방안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소매시장 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소매시장이 자유화되면 전력판매회사의 서비스와 요금메뉴에 대한 수요자의 선택기가 넓어지고 경쟁에 의한 전기요금 인상 억제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현재 전력 시장은 도매시장에서 한전이 유일한 전력 구매자인 구매독점인 동시에, 판매시장에서도 한전이 유일한 판매자인 판매독점 체제로 돼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전력시장을 자유화하기 위해 한전의 발전 부문을 떼내어 6개 발전자회사로 분할했으나, 노무현 정부 들어 자유화 추진 작업을 중단시켰으며, 지금까지 구매독점, 판매독점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정부가 집권한 만큼 전력시장 자유화 논의를 구체적으로 재개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판매시장에서 한전 외에 새로운 사업자들이 진입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력선물시장 도입도 필요하다. 전력 사업자의 리스크관리, 나아가 금융회사, 에너지기업 등 제3자도 전력시장 참여가 가능한 선물시장을 선진국들처럼 도입해야 한다(예: 유럽EEX?Nasdaq Commodities, 미국Nodal Exchange, 호주ASX, 일본TOCOM). 제3차 배출권거래계획기간(2021~2025년)중 도입예정인 배출권 파생상품(선물, 옵션, 스왑 등)에 맞춰 전력선물거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력 선물시장을 도입하면 거래참여자가 증가해 시장이 보다 효율화되고, 시장참가자들이 미래 전기요금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격발견 기능도 생기게 된다. 선진국의 전력소비량 대비 선물거래량을 보면 독일 6.1배, 북유럽·발트3국 3.7배, 이태리 2.8배, 미국 1.3배, 프랑스 1.2배 등으로 돼 있다. 2019년에 전력 선물시장을 도입한 일본도 최근 선물거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전력선물시장 도입을 위해서는 전력시장 자유화가 선행돼야 한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이슈&인사이트] 4차 산업혁명과 개인정보 보호

영국에서 스마트 계량기 설치 반대 시위가 벌어진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력 생산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전력망 안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위한 계량기 설치에 왜 반대할까 의아했다. 알고 보니 가정에 설치된 계량기에서 전력 사용정보가 기업이나 정부로 전달되면 언제 출퇴근하고, 몇 명이 사는지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에 사로잡혀있던 코로나사태 초기 우리나라는 위치 추적을 통해 선제적으로 확진자와 접촉자를 파악했다. 해외에서는 이에 대해 개인의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된다는 비판적 보도가 나오기도 하고, 동일한 추적 시스템 도입이 좌절되기도 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민감도는 이처럼 사회마다 다르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불과 20년 전에는 학교 졸업앨범에 학생들과 교사들의 성명, 사진은 물론이고, 주소와 연락처까지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젠 주소나 연락처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사들의 동의 없이는 사진도 실을 수 없게 되었다.이처럼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지만,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개발이나 데이터 기반 서비스 산업의 확산은 개인정보에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요구되는 개인정보의 활용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정보주체인 개인들의 정보 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이에 대응해 커지고 있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최근 추가 정보 없이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가명정보를 결합전문기관이 자체 결합하는 범위를 조정하거나 영상·음성 등 비정형 데이터의 가명처리 절차를 마련하는 등 규제 혁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개인들의 영상 데이터 학습을 통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업체에 개인정보보호 관련 자문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법제가 원칙적으로 요구하는 정보주체의 개별적인 동의를 넘어 해당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서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도 비정형 데이터는 명확한 처리 방안이 없으므로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으라는 일반론만 기재되어 있었다.주로 정보주체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개인정보보호 법제에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영상에 대해서 개인에게 정보처리에 대한 개별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목적 외 이용, 제3자 제공을 위해서는 그에 따른 별도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활용의 제약을 정책적으로 완화하고자 한 것이 가명정보이다. 그럼에도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은 실무적으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동의 만능주의에 기울어 있다.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명정보는 데이터 기반 경제 발전을 위해 유용한 수단이다. 다만 유럽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규졍)에서도 가명처리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가명정보 자체에 대한 정의는 따로 없다. 식별 가능성이 없는 익명정보와 달리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임에도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그 활용을 확대했기에 더욱 세심한 처리 절차와 보호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정보주체인 개인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동의 없이 가명처리되어 활용되는 경우 혹시 재식별될 수도 있으므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초로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에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으로 구체화되어 있고,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도 인정한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7은 이미 가명처리가 끝난 가명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을 배제하고 있다.결국 개인은 자신의 정보가 가명처리되어 가명정보가 되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만 처리정지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가명정보가 된 후 재식별되어서야 비로소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이러한 권리는 사실상 무용한 것이 된다.우리는 새로운 제도 도입 여부만 두고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거듭하다가 어설픈 제도를 급박하게 시행하곤 했다. 가명정보 관련 제도도 미흡한 제도를 성급하게 시행하다가 가명정보가 재식별되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가명정보를 도입한 취지를 살리되 정보주체인 개인의 정보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미묘한 시소의 균형점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기자의 눈] 재생에너지 위기가 오고 있다

재생에너지 업계에 위기가 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윤 정부가 시작된 지 100일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 최근 나오는 소식들은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23일 전체 발전량에서 비중이 높아진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추진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올해 하반기 감사운영 계획을 확정했다. 전력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 상한성을 두는 SMP 상한제 도입도 추진 중이다. SMP 상한제가 도입되면 재생에너지 전력판매가격에 상한선이 걸려 수익이 줄 수 있다. 올해 상반기 태양광 보급량(설비확인 신청 건수)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24%나 감소했다. 태양광 전력을 판매하는 방법인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고정가격계약은 올해 상반기 역대 처음으로 미달됐다. 경쟁률은 0.69대1로 한참 미달이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사업 중 하나인 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 예산도 지난해보다 26% 감축 예고됐다. 풍력도 올해 보급량이 160MW 정도로 예정돼있지만 2030년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운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기준으로는 해마다 평균 1700MW 규모 수준으로 풍력을 늘려야 한다. 최근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준 것은 각종 규제로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전력을 보낼 송전망 부족 등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재생에너지 보급에 차질이 생기면 재생에너지 의무 목표량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화력과 원자력 등 거대 발전사들은 RPS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전력이 귀해지면 그만큼 신·재생에너지 전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비싸게 사와야 한다. 발전사들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 비용은 한국전력공사가 징수하는 전기요금으로 충당해서 보상해준다. 결국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윤 정부는 2030년 전체 발전량 중 20% 이상은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보인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윤 정부에서 오히려 보급을 확대할 대책이 나와야 한다. 아니면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자체를 더욱 낮춰야 할지도 모른다. wonhee4544@ekn.kr이원희(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 경기불황과 슬기로운 소비생활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 샐러리맨들이 흔히 하는 푸념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고물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리도 치솟고 있다.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2022년 7월 기준)는 86이다. 소비심리지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경기에 대한 판단이나 전망 등을 조사하여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서, 보통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경제에서 소비심리지수가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소비심리지수는 향후 경기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경기선행지표의 역할을 하며, 이는 선진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얼마전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근 들어 모든 소득계층에서 소비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 물가상승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비도 줄어들고 있고, 주식시장의 불황으로 고소득층의 소비 역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계부채와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함으로써 미국 소비자의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이렇듯 불황을 설명하는 다양한 지표들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2016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는 ‘불황기 소비유형’ 이라는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불황기 소비유형은 ‘불황복종형’, ‘불황순응형’, ‘불황자존형’, ‘불황부지형’의 4가지 소비유형으로 분류된다.첫째 유형인 불황복종형은 소비를 최대한 자제하는 소비유형이다. 이 소비유형에 포함된 소비자들은 나보다는 가족을 위한 소비를 지향한다. 두번째 불황순응형은 가성비를 따져 소비하나 작은 사치를 즐기기도 한다. 셋째 불황자존형은 불황이지만 나를 위한 소비를 줄이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고 유행하는 것을 구매한다.넷째 불황부지형은 지금을 불황이라 생각 안하며 따라서 소비에도 변화가 없다. 교육,건강, 식료품 지출은 오히려 더 늘린 것으로 조사되었다.당시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61%는 ‘현재 경기가 불황’이라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조사 당시 MZ세대에 해당되는 10~30대의 응답자들은 현재의 경제상황은 불황이지만 나를 위한 소비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그러나 최근의 고물가는 나를 위해 소비하는 MZ세대의 소비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오히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를 극도로 줄이는 무소비 활동이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아나바다 운동’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짠테크’와 ‘무지출챌린지’가 그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얼마전 까지만 해도 짠내나는 소비를 하면 ‘궁상맞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이는 불과 얼마전까지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YOLO)문화와 플렉스(FLEX)를 외쳤던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들은 지금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SNS를 중심으로 공유하고 있다. 소비의 유행에 중심에 있었던 그들이, 고물가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자구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식비를 아끼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며, 합리적 소비의 일환으로 중고 제품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가까운 거리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6월에 발간된 ‘서울 교통이용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서비스인 따릉이의 5월 하루평균 이용건수는 약 15만 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74.4% 증가했다.기업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물건을 찾는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자사 브랜드의 중고 제품을 직접 구입해 판매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또한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도시락을 구매할 수 있는 ‘도시락 구독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성비 높은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며,기업도 이에 발맞추기 위해 가격파괴 상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가격파괴가 소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투자와 고용이 위축되고 결국 이것은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더욱이 가격을 내려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장기 불황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짠내나는 소비가 길어지면 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멈추는 ‘경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지출을 줄이기 보다는 나에게 맞는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통해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지루한 장마처럼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다. 지치지 않고 슬기로운 지출을 계획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할 때다.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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