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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대국민연설에서 연금개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하루 전 마크롱 대통령은 개혁법안을 공포했다.사진=EPA/연합뉴스 |
<요약> 마크롱이 연금개혁을 1년만에 전광석화 처리했다. 고령화가 부른 연금 위기 속에 재빠른 돌파력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 속에 의회를 패싱하면서 고집불통 이미지가 굳어졌다.
마크롱이 마침내 연금개혁을 마무리지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개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유감이지만 이는 필요한 개혁이었다"고 말했다. 하루 전 마크롱은 연금개혁 법안을 공포했다. 마크롱은 작년 4월 대선에서 연금개혁을 공약했다. 그리고 1년만에 전광석화처럼 일을 해치웠다.
이를 두고 평가가 갈린다. 한국 내 보수층은 마크롱의 뚝심에 찬사를 보낸다. 반면 진보층은 마크롱의 불통에 초점을 맞춘다.
진영을 떠나 마크롱의 연금개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년 대선 유세에서 유력 후보들은 입을 모아 국민연금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가오지만 개혁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오히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개혁이 물건너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보인다.
프랑스 연금개혁의 경과를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짚어보자.
◇ 1기 때 실패, 2기 때 재도전
마크롱은 2017년 봄 대선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1977년 12월생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마크롱은 만 39세에 불과했다.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자마자 마크롱은 프랑스 뜯어고치기에 나섰다. 그만큼 저항도 컸다. 2018년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이른바 노랑조끼 운동이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결국 마크롱은 유류세 인상을 취소했다.
그렇다고 마크롱의 개혁 마인드가 꺾인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연금개혁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거대한 반대 여론 속에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개혁은 시나브로 동력을 잃었다.
집념의 마크롱은 2022년 4월 재선에 성공했다. 2기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연금개혁의 칼을 뽑았다. 그러나 의회가 걸림돌이었다. 2022년 6월 의회 선거에서 집권 르네상스당과 연합세력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자 마크롱은 의회를 우회하는 강수를 뒀다. 프랑스 헌법 49조③항은 특정한 상황에서 정부가 국회의 승인 없이 입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의회가 들고 난 것은 당연했다. 여론도 악화됐다. 반대 시위가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다.
그러나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 투표는 부결됐다. 프랑스 헌법위원회(한국의 헌법재판소 격)는 연금개혁 법안의 핵심조항에 대해 대부분 합헌 결정을 내렸다. 마크롱은 지체 없이 법안에 서명하고 관보에 실었다. 이로써 연금개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마크롱은 연금개혁의 불가피성을 재차 강조했다. 야당은 마크롱의 불통을 맹비난했다. 연합전선을 구축한 노조는 "마크롱이 국민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5월 1일(노동절) 프랑스 전역에서 국민의 진짜 분노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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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한 17일 연금개혁 반대 시위대가 불을 붙인 쓰레기통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
◇ 프랑스 연금 어떻게 바뀌나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내가 (2017년 첫 임기)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연금 수급자가 1000만명이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은 1700만명이 됐다"고 말했다. 이대로 두면 국가 재정이 거덜나게 생겼으니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2021년 1월 기준 프랑스 인구는 총 6800만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로 꼽힌다. 장수의 저주는 프랑스라고 예외가 아니다. 연금 지급을 손꼽아 기다리는 은퇴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순식간이다.
가장 확실한 대응책은 연금을 깎는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간 정권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마크롱은 차선책으로 연금을 더 늦게 주는 방법을 택했다.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오는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64세로 높이기로 했다. 자연 연금 수령 나이가 2년 늦춰졌다. 또 연금을 100% 받기 위해 보험료를 내는 기여 기간도 2027년부터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렸다. 현재 42개로 쪼개진 연금 제도를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것도 개혁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교훈1=대통령 주도 아래 속도전을 펴야 성공한다. 프랑스 연금개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크롱 대통령의 작품이다. 마크롱은 손에 피 묻히는 걸 피하지 않았다. 의회나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
심지어 의회를 패싱하는 비상조치까지 동원했다. 사실 헌법 규정이라고는 하나 입법권을 가진 의회를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론이 악화된 데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마크롱의 ‘무리수’에 대한 반발이 작용한 탓도 크다.
그러나 마크롱이 이것저것 고려했다면 연금개혁은 유야무야 끝났을 공산이 크다.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단기적인 여론 조사 결과와 국가의 일반적인 이익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마크롱은 바로 그렇게 했다.
*교훈2=지지율 하락을 각오해야 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모가 죽은 쪽을 더 빨리 잊는 법"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재산을 빼앗기면 죽어도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 물건에 손 대는 걸 싫어하는 건 본능이다. 연금 개혁은 국가가 내 재산에 손을 대는 격이다. 그러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마크롱의 4월 지지율은 28%로 연초 대비 10%포인트가량 떨어졌다. 낮은 지지도가 아예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지지율은 정치인의 자산이다. 그런데 마크롱 자신은 다음 선거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 대통령은 5년씩 두 번, 연임만 허용된다. 마크롱이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데는 이런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기 대선에서 정권이 반대 세력으로 넘어가면 자칫 애써 이룬 연금개혁이 후퇴할 수도 있다.
*교훈3=임기 초반이 적기다. 1기 때 마크롱은 임기 중반에 연금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노랑조끼 시위를 달래느라 정권은 이미 힘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마크롱은 2기 출범과 동시에 연금개혁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정권 초 힘이 있을 때 몰아붙이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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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자문위는 보고서에 뚜렷한 결론을 담지 못했다. 왼쪽부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김용하 공동위원장, 김연명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사진=연합뉴스 |
◇ 국내 연금개혁은 어디까지 왔나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이재명, 안철수 후보는 국민연금 개혁에 공감했다. 그러나 과연 윤석열 정부에서 연금 개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연금개혁 논의는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국회는 작년 11월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아래 민간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한때 자문위는 뭔가 성과를 올리는 듯 했으나 결국 뚜렷한 결론을 내는 데 실패했다.
3월 말 자문위는 그저 보험료율(9%)도 높이고, 가입상한(59세)도 높이고, 수급개시 연령(69년생부터 65세)도 올려야 한다는 원칙만 담은 경과보고서를 특위에 제출했다. 연금개혁은 욕을 바가지로 먹는 작업이다. 어정쩡한 보고서를 받아든 국회가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총대를 멜 리가 없다.
정부도 느긋하긴 마찬가지다. 3월 말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오는 2055년 연금이 고갈될 걸로 내다봤다. 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10월쯤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임기 초반에 속도전을 펴도 힘겨운 작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에 손도 대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를 내세워 복지부가 애써 준비한 개혁안에 퇴짜를 놓기도 했다. 복지부는 2018년 말에 미지근한 수정 개편안을 내놨지만 이조차도 국회 서랍에서 먼지만 쌓였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어야 할 처지다. 공연히 연금개혁 카드를 꺼냈다 여론을 자극하면 선거에서 좋을 게 없다. 이대로 가면 현 정부에서도 국민연금 개혁이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크다.
◇ 마크롱 뚝심 하나는 알아줘야
마크롱식 개혁을 보는 눈은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고집불통, 상처뿐인 영광으로 보는 시각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박수를 치는 연금개혁은 세상에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58년 개띠가 상징하는 베이비 부머들이 대거 은퇴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젊은이들은 노인 부양에 허리가 휜다. 이러다 정작 자신들은 연금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마크롱 스타일은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속에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문제의식과 거침없는 돌파력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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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