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화석연료 공급망의 취약성과 에너지 전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4.02 10:58

황민수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조합 전문위원/ 에너지전환포럼 이사

황민수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조합 전문위원/ 에너지전환포럼 이사

▲황민수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조합 전문위원/ 에너지전환포럼 이사

최근 중동 분쟁이 재차 격화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와 LNG 대부분을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전환을 적극 추진한 유럽 국가들과 달리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국가일수록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타국 주도의 전쟁, 특히 석유와 가스를 둘러싼 에너지 전쟁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3이 순 화석연료 수입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구조적인 에너지 안보 위기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부터 걸프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번 중동 분쟁에 이르기까지, 화석연료 공급망의 취약성은 수차례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단기적 대응에 머무를 뿐,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미뤄왔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와 영국 엠버(Ember)의 최신 자료는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024년 전 세계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585GW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2025년에는 태양광·풍력 만으로 814GW(태양광 647GWdc-AC환산 시 498GW, 풍력 167GW)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태양광·풍력만으로 지난해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을 크게 넘어서는 것은 물론, 2025년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생산한 전력량만 연간 약 1,046TWh로 추산되어 카타르 LNG 연간 수출량의 1.8배를 대체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2025년 한 해 태양광 315GW(전 세계 절반 이상), 풍력 119GW(70% 이상)를 설치하며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년 전 1GW 태양광 설비를 추가하는 데 1년이 걸렸던 것이 이제는 반나절 만에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에너지 전환 성적은 여전히 초라하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1995년 97.7%에서 2024년 93.7%로 30년 동안 4%밖에 줄지 않았고, 석유 의존도 역시 2015년 38.4%에서 2024년 37.6%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2025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점유율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10.9%(Ember 기준 9.8%)로 OECD 최하위이며, OECD 평균(36.8%)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태양광·풍력 발전량 점유율도 7.4%로 OECD 평균(20.4%)의 절반 이하다. 2025년 재생에너지 점유율 증가 폭도 OECD+중국·인도·브라질 평균 1.3%에 비해 한국은 0.4%에 그쳐 OECD 평균과의 간극을 좁히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엠버 보고서 '전기 기술 혁명(Electrotech Revolution)'은 물리학·경제·지정학의 삼중 축으로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75% 이상을 전기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의 93.7%를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에 이는 위기이자 기회다. 화석연료 수입을 약 70% 줄일 수 있는 기술적·경제적 기반이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를 실천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화·전력 소비 절감을 병행해 2017년 644TWh였던 발전량을 2025년 500TWh로 22.3% 줄였으며, 지난 3월에는 '화석연료 수입 대폭 감축을 위한 80억 유로 규모 기후 패키지'를 추가로 발표했다. 영국은 풍력·태양광 15GW 신규 설비를 통해 LNG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를 거두었고, 특히 지난 3월 25일에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중동 분쟁으로 인한 전력 가격 충격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


영국 NESO에 따르면, 수요일 정오 무렵 태양광과 풍력 설비는 약 34GW를 생산했고, 가스 발전량은 1GW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2024년 4월 이후 최저치이며, 전체 전력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 2.4%에 불과했다(석탄 발전은 2024년에 모두 폐쇄). 유럽연합 REPowerEU 정책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45%에서 19%로 낮췄고, 스페인은 3월 14일 주말 전기 가격이 MWh당 14유로까지 떨어졌지만, 이탈리아·독일·프랑스에서는 100유로 수준이었다. 이는 스페인이 지난 8년간 재생에너지 보급과 전력망 투자에 적극 나선 결과다. 호주는 2005년 90%에 달하던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지난 2월 50% 이하로 떨어졌으며, 인도는 태양광·풍력 보급 확대 덕분에 2025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0.7%에 그치며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파키스탄 역시 태양광 발전 점유율이 10년 만에 0%에서 25%로 급증했다.


이번 사태로 주요국들은 화석연료와의 결별을 서두르고 있다. 화석연료 공급망의 취약성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한국 정부는 이번 중동 분쟁을 계기로 “에너지 전환이 곧 에너지 안보"라는 인식 아래, 재생에너지 전환, 전기화, 에너지 효율화를 국가 최우선 전략으로 삼아 과감하고 체계적인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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