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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주택시장 자금위기, 특단의 대책을

주택을 건설하려면 땅을 사고, 공사비를 마련해야 한다. 땅을 사기 위해 빌리는 돈을 브릿지론(Bridge Loan)이라고 하고,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빌리는 돈을 ‘본 PF(project financing)’라고 한다. 최근 브릿지론과 본 PF를 조달하는 과정에 상당한 문제가 쌓이고 있다.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조달한 브릿지론은 단기자금이다. 그리고 은행보다는 주로 증권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신협 등 2차 금융기관에서 빌려주다 보니 금리가 높다. 따라서 시행사 입장에서는 고금리의 브릿지론을 빨리 상환하고, 금리가 낮은 본 PF로 바꿔야 한다. 토지매입이 마무리되고, 시공사도 결정되면 주택사업 위험이 많이 해소되기 때문에 은행들이 참여하면서 대출금리가 낮아진다. 결국 주택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려면 브릿지론이 제대로 공급되고, 브릿지론이 차질 없이 본PF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금융기관에서 브릿지론 공급을 중단하고, 기존 브릿지론을 본 PF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전환되더라고 금리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사업자체에 위협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토지매입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사업구조에 위험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갑작스런 금융환경 변화로 인해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기면서 주택사업 자체에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자금조달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우량 사업장 조차도 자금경색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원인은 주택시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격한 금리인상에 따른 결과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상황은 위험을 분산해서 함께 극복해야 한다.멈춰있는 주택건설자금을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연구원에서 매달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를 조사해서 발표한다. 주택사업을 하는 기업에게 향후 주택사업 전망이 좋아질지, 나빠질지 물어서 지수화 하는 작업이다. 지수값이 100이상이면 주택사업경기 전망이 좋아질 것이라고 해석하고, 100이하면 나빠질 것이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올 11월 전망치가 서울 48.9, 수도권 37.0, 지방 38.4다. 주택사업경기가 매우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러한 흐름은 올 하반기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더니 11월들어서며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시장이 매우 어려웠던 2012년 수준이다. 위기인 것이다. 특히 주택사업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11월 주택사업자금조달지수가 37.3이다. 7월 이후 50~60을 횡보하더니 30선으로 떨어졌다. 2012년 수준이다. 금융위기를 겪었던 그 시절만큼 지금 주택사업경기와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크다.지금의 자금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 되면, 주택사업자는 토지매입을 포기하고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브릿지론이나 본 PF를 일부 해준 금융기관도 피해가 발생한다. 기 대출자금에 대한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연체가 늘어나고 부실채권이 된다. 분양을 진행한 사업장이라면 준공이 되지 않고 부실사업장이 되면서 입주가 어려워져 수분양자 피해가 불가피하다. 결국 국민의 주거불안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최근 금융환경 급변에 따른 자금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민간이 주택사업을 포기하면 국민의 주거안정 실현을 위해 지난 8월에 발표한 정부의 주택공급 270만호 공급(인허가)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주택건설기업의 자금조달 문제를 단순히 건설사만의 문제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지금은 국가적 위기다. 주택시장과 주택건설사업자만의 위기가 아니다. 거시적 차원에서 주택시장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주택건설기업의 자금조달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법 마련을 금융당국에 기대해 본다.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

[EE칼럼]  RE100도 벅찬데 아예

요즘 에너지 분야에서 RE100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더불어 CF100도 최근들어 언급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RE100은 대중들에게 제법 많이 알려져 있지만 CF100에 대해서는 아직 생소하게 느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우선 CF100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24/7 Carbon Free Energy’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24/7 CFE라고 하겠다. 이미 2017년에 RE100을 달성한 구글에서 새롭게 제시한 개념이다. 2020년 9월, 구글은 2030년까지 자사의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사무실을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해당 지역의 전력망에서 생산되는 무탄소 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RE100이 기업의 1년간 전기 사용량에 대해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24/7 CFE는 각각의 사업장마다 해당 지역의 전력망에서 실시간으로 무탄소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글은 모든 데이터센터에서 1년간 사용하는 전력량 만큼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더라도, 실제로는 바람이 불지 않거나 태양이 비치지 않는 장소나 시간대에는 데이터센터 운영에 소요되는 전기를 석탄이나 가스 발전소와 같은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원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모든 장소와 시간대에서 무탄소 에너지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한 것이다.구글은 이를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표현한다. 구글은 2017년부터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기 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지만, 24/7 CFE 기준으로는 2019년 61%, 2020년 67%, 2021년 66% 만을 무탄소 에너지로 공급했다고 밝혔다.24/7 CFE의 목표 달성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업장의 시간대별 전기 사용량, 해당 전력망에서 자사가 계약한 청정 발전원의 시간대별 전기 생산량, 해당 전력망의 에너지 믹스를 파악해야 한다. 구글에서 제시하는 계산과정을 살펴보자. 11월 21일 오전 10시에 100MWh를 사용했는데, 그 중 계약한 청정 전기 생산량이 40MWh이고 전력망에서 60MWh를 조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전력망의 무탄소 에너지 비중이 50%라고 하면, 해당 시간대의 무탄소 에너지 사용 비중은 70%(= (40MWh + 60MWh × 50%) / 100MWh × 100)가 된다. 만약 계약한 청정 에너지 전기 생산량이 120MWh라고 하더라도 최대 100%까지만 인정한다. 그리고 시간대별 비율을 가중평균하여 1년간의 비율을 산정한다.구글은 2021년 9월 UN-Energy, 지속가능에너지기구(Sustainable Energy for All) 등과 함께 ‘24/7 Carbon Free Energy Compact’를 출범했다. 현재 이 콤팩트는 자발적 약속이며, 보고 요건도 별도로 없다. 시간을 할애해서 24/7 CFE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주요 요청사항이다. 향후 운영을 위한 거버넌스, 성과 산정 기준, 목표 등에 관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여기에는 에너지 수요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투자사, 에너지 공급사, 협회, NGO 등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다. 현재 100개 기관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데, 에너지 수요기업으로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IT기업 네 곳이다. 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데 전력을 소비하는 이들 IT기업들은 시간대별 전기 사용량이 일정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참여가 용이해 보인다. 전력사용 패턴이 일정하지 않거나 수요를 조정하기 어려운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경우, 모든 사업장의 전기를 실시간으로 무탄소 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은 도전적인 목표가 될 것 같다.전력망의 탈탄소화를 위해 구글은 최신형 원자력과 지열, 그린수소, 장주기 저장장치, CCS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전력 수요를 보다 지능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면, 데이터센터에서 시급을 요하지 않는 작업들을 풍력,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별, 지역별 전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AI와 IoT 기술을 이용하여 실시간 에너지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39개나 되는 솔루션 제공 기업이 24/7 CFE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REC와 같은 공급인증서도 현재는 해당 재생에너지가 어느 연도 또는 월에 생산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24/7 CFE를 위해서는 어느 시간대에 생산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미국 바이든 정부도 2021년 12월, 2030년까지 연방정부기관들이 무탄소 전기를 연간 기준으로는 100%, 실시간 기준으로는 50%를 조달하도록 하는 행정명령 제14057호를 내렸다. 이의 이행을 위해 미 연방조달청(GSA)은 제27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기간 중인 지난 11월 15일에 전력회사인 Entergy Arkansas와 MOU를 체결했다. 유럽에서도 유럽전력산업협회(Eurelectric)에서 24/7 CFE 촉진을 위해 European 24/7 Hub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력망의 탈탄소화를 위해 실시간 청정에너지 조달 전략을 소개하면서 24/7 CFE를 위해서는 청정 에너지, 에너지 저장장치, 수요반응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2030년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다른 대안에 비해 24/7 CFE 달성에 소요되는 비용이 가장 많지만 전력망의 탈탄소화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데스크 칼럼] 부산 세계박람회인가? 사우디 오일머니인가?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두고 사실상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치열한 경쟁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주제로 인류의 발전적 삶의 기록, 기술의 진보, 포용과 공유 등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부산 지역에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에 위해 윤석열 정부와 주요기업들이 함께 뛰고 있다.‘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에 따르면 부산엑스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약 50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되며, 행사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3480만 명 이상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4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함께 18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상당한 경제적 이익과 함께 대한민국은 올림픽, 월드컵, 세계박람회(등록박람회) 등 글로벌 대형 3대 행사를 모두 개최한 7개국에 안에 들어가는 위상을 갖게 된다.지금까지 ‘한다면 한다’라는 정신으로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달려 왔다.부산은 현대사회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수도로서 30만명의 도시가 100만명의 피난민을 품은 포용성과 개방성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이 교차하는 공간으로서 전 세계 환적 2위, 물동량 7위의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도시이다. 또한 부산아시안게임, 부산국제영화제, 국제게임전시회(G-STAR), 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치른 경험과 전시회 및 숙박시설 인프라를 갖춘 국제도시임을 인정 받고 있다. 세계박람회를 유치할 명분과 비전, 능력을 갖춘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2030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한다면 한국은 전 세계 국민들에게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커다란 울림을 전달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한국과 세계박람회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는 2030 비전의 한 축으로 5000억달러를 투입하는 신개념 도시 ‘네옴시티’를 조성하려고 한다.네옴시티 조성 과정에 한국기업과 정부에게 참여 기회를 보정하고 금전적 이득을 제공할 것을 내비쳤다. 무려 40조원에 달하는 26개의 계약 및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면서 빈 살만 왕세자는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국내 주요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등이 참여했다.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주요기업 총수들이 만남을 갖고 난 후 항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협을 위해 부산엑스포 유치를 양보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이러한 소문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국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빅딜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우디 하고는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관계이고, 네옴시티라든지 인프라 건설, 경제·통상 관계는 별도로 국익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정부 입장에선 사우디와 경협도 하고 부산엑스포도 유치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분명하다면, 기업들도 움츠려들 필요가 없다. 사우디와의 경협은 경협대로, 부산엑스포 유치는 유치대로 두 가지 모두 얻기 위해 민관이 협력해 성사시킴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길 기대해 본다. 이런 성과가 전세계 국민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기자의 눈] 규제와 관심이 필요한 코인

올해 내내 찬 기운만 감돌던 증시에 모처럼 따뜻한 바람이 느껴진다.최근 공개된 11월 FOMC 회의록에 드디어 금리인상 속도 조절이 거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기준금리는 이날 0.25%포인트 인상돼, 벌써 속도를 늦추는 모양새다. 2100선까지 떨어졌던 증시는 어느새 2400대에 안착했고, 코스피 지수 20일선이 120선을 골든 크로스 한 것도 고무적이다. 작년 8월경 데드크로스 이후 무려 1년 3개월 만의 일이다.비슷한 시기 내리막길을 탄 가상화폐(코인) 투자자들은 그저 증시가 부럽기만 하다. 코인 시장은 루나-테라 사태부터 FTX 파산까지 시장 신뢰를 깨뜨리는 사건이 계속되며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한다. 업계에서는 탈중앙화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신뢰와 구조 취약성을 해결하는 것이 시장의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다.정부와 금융당국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만 해도 신개념 다단계 취급을 받던 코인이지만, 인제 와서 허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장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특히 계층 간 사다리가 자꾸만 좁아져 집 한 채 마련하기도 어려운 젊은 세대들은 아직도 코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얼마 전 코인 업계 관련 기사를 출고했을 때가 떠오른다. 워낙 민감한 사항을 다룬 이슈라 나름대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투자자들의 주의감을 일깨우기 위해 준비한 발제였다. 취재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적었고 이슈의 중심이 된 업체의 입장도 존중해 최대한 온건하게 썼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출고 직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 오며 본문, 부제, 헤드라인까지 수정요청이 계속됐다. 선택한 단어의 수위가 너무나 강해, 자칫 투자자의 오해를 불러 업체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들을 죽이려는 ‘악의적 감정이 담긴’ 기사가 아니냐는 강한 어조의 항의까지 있었다.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돼 별다른 악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민감한 반응도 결국은 제도 틈바구니에서 붕 떠버린 코인 시장의 현주소 때문 아닐까 한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투자자들이 믿고 의지할만한 제도가 있었다면 고작 기사 한 편 때문에 담당자가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을 것이고, 연이은 사건으로 시장이 흔들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소중한 투자자산들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채 가라앉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suc@ekn.kr

[이슈&인사이트] ESG경영이

필자는 과거 20여 년 전에 국내 유명 대기업에서 해외마케팅 업무를 하던 시절에 상당히 많은 해외 출장을 다니곤 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으나, 당시는 자사 제품을 해외에 잘 팔아야 되는 일을 맡았는데, 소비재가 아닌 산업재 제품이라, 대형 회사들의 구매 담당자들을 만나는 전시회는 필수적으로 가는 일이 많았다. 한때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한 국제 전시회에 우리 회사는 부스를 차려놓고 찾아오는 유럽제국의 잠재 바이어들과 친분도 쌓으며 가격과 물량까지 흥정하며 우리 제품 팔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시 여러 손님 중에서 젊은 영국 아가씨와 한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외모로 보아 말단 신입사원 쯤 되어 보이는 구매 담당자이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당신은 구매할 때 가격이 더 우선이냐. 품질이 더 우선이냐"라는 흔하디 흔한 질문을 던져 보니, 대뜸 하는 소리가 남들과는 전혀 다르게 자기는 "모든 일에 있어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제일 중요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가. 정말 생뚱맞은 답변에 나는 속으로 "어떻게 구매담당자가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고 있을까" 하고 의아해하고 있는데, 이어서 한다는 소리가 "우리들의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 가능성" 이라고 말을 이으면서 다시 필자를 보고 "너희 회사가 ‘좋은 회사(Good company)’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달라" 고도 했다. 그때 만난 각국의 사람들 중에는 가격을 조금 더 깎으려는 사람, 품질이 우수하냐에 대해 의심하는 눈초리로 ISO 인증·CE인증·ASTM 인증 같은 것들을 보자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똑똑한 이 아가씨의 예상치 못한 발언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충격이었다. 필자가 20여년 지나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연구하고 있는 지금 생각하면 이 아가씨는 참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당시 한국 사회는 이러한 말을 처음 들었는데, 전혀 개념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요즘도 듣기는 듣고 하지만 그게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한국의 기업계에서도 강제로 하라니까 하고 있는 ESG 경영을 보니, 이미 유럽 선진국은 20여 년 전에 전 국민을 그렇게 교육시켰고 기업에게도 그런 문화가 확산되고 있었는데, 우리는 너무 늦게 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지속가능성’의 가장 본원적인 개념은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뜻하는 것이며, 지구가 지속해서 존재해야 우리 인류가 지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이 핵심 개념은 간과하고 파생 개념의 지속가능성(Going concern) 으로 간주하는 오류가 나오고 있다. 최근 우리 지구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탄소배출이 과다한 수준을 넘어, 온실 효과와 표면 온도 상승이 당초 대자연이 감당하는 수준을 넘었는 바, 지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이상기후와 천재지변을 내뿜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기후위기 뿐만 아니라 지구위기인데도 이를 이해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사람의 몸이 체온 1℃만 더 올라도 심한 몸살을 앓는 것처럼, 지구도 현재 표면 온도가 1.1℃가 더 올라가 있으니, 이 육중하지만 예민한 몸체도 마치 몸살과 구토를 하듯이 이상기후가 나오건만, 이러다 더 지속되면 사람과 똑같이 생명이 위독할 판인데 우리는 과연 그럴까, 아직은 멀었지 하면서 몇 십 년의 시간만 허비해 왔음이 사실이다. 일부 선각자인 환경 전문가들이 경고하던 이 위기설에 대한 대비책을 이제는 기업계에게까지 동참하도록 반 강제로라도 부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까지 온 것이 바로 ESG 운동의 기본 취지인 것이다. 왜 기업에게 먼저 직접적으로 부과되는가에 대해서는, 1차 산업혁명의 확산된 지 약 200년 동안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한 주범이 바로 기업이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탄소 중립의 의무를 진 정부와 탄소경제 시대의 한 경제주체인 개인도 적극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탈탄소화를 위해 기업부터 먼저 실천하며, 기업들 간에도 ESG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도 하고 거래도 하고 해서 지구환경을 살리자는 노력이 마땅한 것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영국의 한 구매 담당자로부터 ESG를 요구받은 것을 떠올리며,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모든 기업들이 주변의 각종 이해관계자들에게 사회적책임도 다하고, 투명경영도 적극 실천해서 과거보다는 한층 좋은 기업(Good company)으로 거듭나는 시점이 빨리 앞당겨졌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본다.류덕기 고려대학교 혁신공유대학 연구교수/ESG메타버스포럼 사무총장

[EE칼럼]‘고준위’ 처분장, 특별법보다 현행 법 개정으로 풀라

원자력분야 현안으로 떠오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에 대한 국회 예산 심사가 기술개발 실효성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후변화와 탄소대응을 위해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교섭단체간 의견 차이로 보류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산업자원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도 원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먼저 전기출력 300 메가와트(MWe) 이하인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개발 예산을 보면, 원자력 생태계 회복차원에서 두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원자로 노형 개발의 국내용·수출용 구분 여부와 함께 원자력연구소(KAERI)가 개발한 스마트(SMART) 원전의 수출경쟁력에 대한 질문에 원자력계가 ‘국회’와 ‘대통령실’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제기된 두가지 질문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예측 가능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한다.첫째, SMR은 대형 원전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제 펌프와 가압기 등의 일체화를 통해 하나의 용기에 담아내는 크기로 줄일 수 있다는 잠재적 장점이 있다. 그러나 SMR에 대한 정의 자체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중소형과 미국의 모듈타입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의 확인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MR이 미래의 대세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다. 둘째, SMR의 선두주자인 뉴스케일(NuScale)은 지난 2020년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SMR 모델중 최초로 설계 인증을 취득했다. 특히 미국은 확실하게 SMR에만 정부차원의 관심을 가지고 밀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사업환경은 소형모듈원자로를 건설하고 운영할 최초의 업체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SMR 부지에 대한 평가를 마친 정도이다. 셋째, 원자력연구소(KAERI)가 개발한 스마트(SMART) 원자로는 물론이고 모듈화되는 SMR도 아직까지 인허가 규제요건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 아직까지 다양한 설계개념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규제요건을 도출해서 법제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넷째, 원자력연구소는 자신들이 개발한 스마트(SMART) 원전을 SMR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스마트의 설계와 인허가 기준이 대형 원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대목에서 대통령실은 원전 수출경쟁력 검증 차원에서 원자력연구소가 왜 20년 이상 초지일관 SMART 뿐인지, 그 이외의 혁신적인 모듈형은 왜 없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다섯째, 스마트(SMART)는 가압경수로(PWR)를 축소한 모델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원자로 개발의 핵심인 핵연료 연소 실험을 할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핵연료 개발이 어렵고, 기술사용 측면에서 검증된 기술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여섯째, 연구개발(R&D)과 직접 연관된 기술혁신은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으로 구분된다. 특히 SMR과 같이 원자력분야 공정혁신에 해당하는 새로운 노형 개발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재원투자가 동반된다. SMR의 경우 최소 10조원 이상의 재원 소요가 예상되는 사업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일곱째, 한국의 원전수출은 UAE처럼 바다가 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전력수요가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주력상품인 1400MW급 대형 원전에 올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프랑스 등 유럽지역의 가뭄에서 볼 수 있듯이 내륙 국가의 경우 냉각수 문제로 대형 원전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사계절 수량이 풍부한 강과 호수가 있어 대형 냉각탑을 세운다면 대형 원전 수출 가능성은 높아진다.‘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한 상태에서 원자력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파이로 프로세스(pyroprocess)’ 재활용연구 근거를 법에 명시하려는 이해관계 활동이 관찰되고 있다. 반면에 원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임시저장시설’의 형태로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하려는 행위로 보고 특별법안 수용을 반대하고 있다. 필자가 과거 직접 경험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초안 작성 과정을 복기해 살펴본 결과 위 특별법안들의 특징은 전반적인 구성체계와 내용에서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유사한 법안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필자는 법률 제정의 양산을 지양하고, 현행 ‘방사성폐기물 관리법’과의 혼선을 방지하고, 관리위원회·관리정책·관리사업자 등의 중복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을 제정하는 대신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을 전부개정해 ‘중·저준위 및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함께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전부개정안의 세부내용은 이 방안을 확정한 뒤 작성 및 검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복합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생태계 활성화 정책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원자력 연구개발과 원전 수출은 우리의 경쟁력이 검증된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국회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할 수 있는 올바른 입법과 시행을 위한 좋은 기회로 활용되기를 연구자의 입장에서 요구하고 기대한다.강기성 (사)전력경제연구회 회장

[EE칼럼] 에너지위기 시대 더 꼼꼼히 챙겨야할

올해 2월 러시아는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밀려 국토의 상당부분을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지원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있다. 러시아는 상황타개를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무기화했다. 이로 인해 유럽의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이 전쟁으로 에너지위기는 현실화되었다. 유가는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고 세계 각국의 기업, 가계 등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이중에서도 경제력이 약한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자일 것이다. 또 하나 취약계층에게 무서운 것은 지구온난화에 의한 극심한 기상이변이다. 우리나라는 사계가 뚜렸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로 양분화 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유례없는 폭염과 혹한 등 기상이변이 확대됨에 따라 기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 효율이 떨어지는 오래된 주택, 노후화된 난방기기, 에어컨 등 냉방기기 부족 등으로 인해 취약계층의 고통은 더욱 커 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러한 고유가와 기온변화에 대응하여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먼저 에너지바우처 사업은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수급자 등 취약계층 중 노인· 장애인 등 기후에 민감한 대상자들에게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 등을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비용지원사업이다. 여름에는 전기요금을, 겨울에는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등유·LPG·연탄을 구입할 수 있도록 에너지비용을 지원해 줌으로써 더위와 추위를 잘 극복하여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여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지원액은 세대원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8.5만원이며 지원대상 대상 가구는 올해 약120만 세대에 달하며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수행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경제력이 빈약한 취약계층에 대해 에너지측면에서 주거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고효율보일러로 교체해 주고, 창호를 두꺼운 단열재로 바꿔주며, 바닥난방을 새로이 시공해 주고, 에너지절감형 냉방기기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세대당 약 200만원 내외의 지원을 하고 있으며 연간 약 2만 5000만 가구가 한국에너지재단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 되듯이, 아무리 정부에서 좋은 제도를 만들어 지원한다고 한들 대상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무엇보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등 지자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에너지복지제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상의 보조수단으로 보아야 하며, 에너지바우처 대상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에너지바우처 담당자 뿐 만 아니라, 복지업무 담당자 또한 에너지복지 제도를 숙지하여 동시에 지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바우처의 경우 대상자의 70% 이상이 노인과 장애인으로 상대적으로 에너지복지제도에 대해 말 모르는 경우가 많고 신청과 사용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안내를 통한 대상자 발굴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담당자와 협업을 통한 사각지대 발굴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그 지역에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사회복지를 펼치고 있는 노인복지관 등 복지기관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복지기관들은 각 기관의 특성에 맞게 노인·장애인 등에 대한 특화된 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지역 대상자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지자체에서 이들 기관과 함께 취약계층에게 에너지복지사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게 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흔히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에너지복지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에너지취약계층을 발굴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담당 공무원들도 최선을 다하고, 지역복지기관 들도 노력을 하지만 거기에 더 필요한 것은 주변 이웃들의 관심과 도움이다. 혹시 주변 이웃들 중에 추위와 더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지, 혹시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에너지복지제도를 몰라서 그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살펴보는 관심이 필요하다.사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취약계층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는 생활과 주거·어려움 등에 대해 디테일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들에 대한 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동절기 본격 추위의 시작을 앞둔 요즘, 송파 세모녀 사건과 같은 에너지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슬픈 일들이 발생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최진규 한국에너지공단 에너지복지실장

[이슈&인사이트] 비정규직, 노동시장 유연화가 해법

민주노총이 총파업·총력투쟁을 선포하며 줄파업에 나선 가운데 25일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와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에 참여한다. 민주노총은 내년에 폐지 예정인 공무직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약속된 정규직 전환을 원칙대로 완료하는 등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진보와 보수 여부를 떠나서 오래된 난제로 남아있는 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극 내지는 차별의 문제이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기업의 모든 업무에 상시 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단기간 동안 브랜드 이미지 쇄신을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한 경우에 이를 수행하기 위한 전문인력이 내부에 있을 가능성은 낮고, 외주 제작을 맡길 경우에는 비용증가 또는 부수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임시적인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된다. 육아휴직이나 병가 등 정규직의 부재로 인한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서도 비정규직이 활용된다. 이 경우 기업은 자유롭게 기간을 설정하고 많은 고정비용을 들이지 않으며 별도의 교육 없이 고급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근무 환경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는 상황 속에서 기업이 고객의 니즈에 따라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기 위해서 유용하게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제도를 막무가내로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다.물론 현실에서는 이상적인 비정규직의 활용보다는 상시적인 업무를 하면서도 고용 불안과 정규직과의 차별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비정규직은 늘 계약갱신의 불안감을 겪으면서 계약 연장을 위한 본인의 가치 증명을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에 비해서 임금이나 복지가 현저히 낮은 경우도 많다. 이런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의 금지나 처우 개선은 당연히 필요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그러나 비정규직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비정규직 문제는 간단히 고용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에서는 더욱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고 기존 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배려, 민간부문으로의 확산 방안 등도 고민해야 한다.특히 민간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가 인건비 절감과 고용조정의 용이성이라는 점에서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아니하면 비정규직의 확대와 차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법률적 의미가 아닌 사회 통념상 고용시장에서 비정규직과 대비되는 정규직의 의미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핵심인력층으로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는 계층이다. 모든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영세 제조업체의 근로자는 정년보장을 약속받기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근속기간뿐만 아니라 임금과 근로조건 복지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월함을 보장받는 핵심인력층에 대해서만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러한 정규직에 대한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업의 선택은 핵심인력층을 최소화하여 줄이고 나머지 인력들을 비정규직화하는 방법뿐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실업의 문제를 손쉽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바람에 기업은 정규직의 고용을 주저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해법은 고용시장의 유연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전체 구직자의 관점에서는 역설적으로 고용시장의 유연화가 오히려 고용안정성을 가져 올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직면한 현실에 따라서 유연하게 고용상황을 변경할 수 있다면 굳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차별 여부를 논할 필요가 없고 개인의 업무능력에 따라 정당한 차이를 두면 되는 것이다. 이는 공공부문과 민간에 모두 적용되어야 한다. 억울한 해고나 실업 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행정적인 구제절차와 국가의 복지정책 등으로 해결하면 된다. 국가가 기업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스스로의 역할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우재원 노무법인 신승 파트너/ 공인노무사

[기자의 눈] 일관되지 않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

부동산 규제완화 기조에도 거래절벽이 허물어지지 않자 추가 규제완화 목소리가 잦다. 집값은 크게 떨어졌는데 종합부동산세는 더 걷히니 국민들 원성도 이만저만 아니다. 부동산업계 및 전문가를 비롯한 국민여론은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출규제 및 세제 완화, 규제지역 추가 해제 등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을 손질하지 않는 선에서 서울과 경기 4개 지역(성남, 하남, 과천, 광명) 조정대상지역 해제 조치 및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 등이 추가 규제완화 카드로 쓰일 전망이다. 즉 서울을 열어야 하는 것이 거래절벽 해소 핵심이다. 다만 지금까지 조정대상지역 지정으로 인해 거래가 되지 않다던 인천 주요 지역과 세종시, 경기 외곽 지역은 규제지역 해제에도 거래절벽이 허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추가 규제완화를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에 집주인들이 시장에 내놓은 급매물을 회수하는 분위기가 이뤄졌다. 재차 거래절벽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규제완화 카드로 DSR 완화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대출한도를 늘리는 것만이 거래활성화를 견인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다만 DSR을 두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주담대 금리상승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현재는 DSR 60%로 완화해줘도 상당히 강한 제약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DSR 40% 적용이 연체율 방지에 큰 기여를 했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됐다. 가계부채 양은 많아졌지만 힘에 부쳐도 차주들이 원리금 상환 능력은 보유하고 있어 연체율이 상승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기조를 유지할 것인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 핵심은 거래절벽 해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일전에 ‘소득대비집값비율(PIR)’ 18배를 언급하며 가격 하향조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은 하향조정보단 현상유지에 가깝다. 이에 대해 최근 원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한쪽에선 빚내서 집 사라는 거냐, 한쪽에선 현금 부자만 ‘줍줍’하라는 거냐" 양쪽 질타를 다 받았다고 했다. 또한 거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규제완화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24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는 25bp만 인상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덩달아 추가 규제완화 기조도 지속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대출 등 추가 규제완화를 통해 거래절벽을 해소할 것인지, 아니면 가격을 시장에 맡기고 급매가 시세가 되는 하향조정을 유지할 것인지 명확한 시그널을 국민에게 제시해서 혼동을 주지 말아야 한다. kjh123@ekn.kr2022102701000962800042881

[이슈&인사이트] ‘계약 자유’ 침해하는 납품단가연동제

근대 민법의 3대 원칙은 사유재산권 존중 원칙·사적(私的) 자치(自治) 원칙·과실책임 원칙이다. 사적 자치 원칙은 ‘계약 자유의 원칙’을 핵심적 요소로 한다. 헌법재판소는 "사적 자치는 계약의 자유ㆍ소유권의 자유ㆍ결사의 자유ㆍ유언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를 그 구성요소로 하고 있으며, 그 중 계약의 자유는 사적 자치가 실현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계약 자유의 원칙은 보통 계약 체결 여부의 자유·상대방 선택의 자유·계약 내용의 자유·계약 방식의 자유를 포함한다. 국회는 바야흐로 계약자유의 원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계약 내용의 자유’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시도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하도급 계약에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납품단가를 올려주도록 하는 제도다. 법안에는 원자재 가격이 10% 이상 상승하거나 하락할 경우 납품대금에 연동해 단가를 올리거나 내리는 내용을 약정서(계약서)에 기재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다고 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제품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 가격은 올랐는데 납품 단가가 그대로면 수익이 그만큼 줄기 때문에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꾸준히 요구해 온 제도다.그러나 사인(私人) 간의 계약서 내용 중에 반드시 어떤 내용을 포함하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계약 내용의 자유’를 침해하여 ‘계약 자유의 원칙’을 침해한다. 나아가 민법의 대원칙인 ‘사적 자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부터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국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우려에 따라 입법화되지 못한 것도 이 제도가 민법의 기본 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제도가 입법화되면 입법 만능의 한국 국회가 나서서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나쁜 제도를 또다시 만들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될 전망이다. 원사업자는 이와 같은 의무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 업체와 수급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국내 수급업체인 중소기업은 해외 업체에 밀려 일감 자체를 얻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크다.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이미 원유가격 연동제에서 경험했다. 원유가격을 원유 생산비에 연동시키는 원유가격 연동제의 시행 결과 원유가격 상승률이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72.2% 폭등했다. 우유는 남아돌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사 먹을 수밖에 없었으며, 같은 기간 유제품 수입은 급증했으며, 정부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폐지할 예정이다. 전경련이 지난 10일 개최한 ‘납품단가연동제 정책토론회’에서도 이 제도 도입은 국내 산업생태계를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고용감소, 정부지출 감소와 무역수지 악화로 GDP가 감소하게 되는 부정적 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이 중점적으로 지적됐다. 계약은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계약 후 사정변경으로 그 계약 이행이 일방당사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계약서상의 ‘하드십조항’(Hardship clause)를 이용하면 된다. 이 조항은 국내 계약서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지만 영미 계약서에는 널리 이용되는데, ‘사정변경조항’ 또는 ‘이행곤란조항’이라고 한다. 이는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양 당사자에게 어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문제가 발생해 계약 이행이 곤란할 경우, 상대방에게 계약 내용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서 조항이다. 정부로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에게 ‘하드십 조항’의 활용을 권고하면 충분하다. 이미 자율적인 납품단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가 모범사례다. 누구보다도 법률을 존중하고 법 원칙을 지켜야 할 국회가 도리어 법의 기본 원칙을 무지막지 파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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