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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잇따라 비판하자 학원가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라틴어 카르타(Charta)는 종이, 서류라는 뜻이다. 여기서 이탈리아어 카르텔로(Cartello)가 나왔다. 카르텔로는 중세 프랑스에서 카르텔(Cartel)로 바뀌었고, 이는 다시 영어로 스며들었다. 카르텔은 당초 나라 사이에 맺은 협약, 특히 포로협약을 뜻했으나 점차 기업 간 협정을 뜻하는 말로 진화했다.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맨큐의 경제학’에서 기업들이 가격과 수량을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을 담합(Collusion)으로 정의한다. 카르텔은 담합 행위에 참여한 기업들을 말한다.
#중세 유럽의 상인 또는 수공업자들은 동업자 조합인 길드를 통해 이권을 확보했다. 전형적인 카르텔이다. 국가 차원으로 범위를 넓힌 예도 있다. 1960년에 출범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대놓고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가격을 높이는 전략을 쓴다. 13개 회원국을 상대로 생산량을 분배하는 게 OPEC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카르텔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진하게 풍긴다. 중남미에서 기승을 부리는 마약(Drug) 카르텔을 보라. 이들은 소매가격을 올리기 위해 짬짜미를 일삼는다. 그러다 수틀리면 서로 총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장경제는 카르텔을 엄하게 다룬다. 담합은 독과점으로 이어지고, 독과점은 결국 자유로운 경쟁에 족쇄를 채우기 때문이다. 1890년 미국 의회는 존 셔먼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셔먼법을 제정했다. 근대적인 반독점법의 효시다. 한국은 1981년부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을 시행 중이다.
카르텔은 내부 구성원끼리 똘똘 뭉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정부는 이탈자를 유도하는 전략을 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한다. 담합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맨 처음 제공한 1순위 기업엔 과징금, 시정명령, 고발을 면제한다. 2순위 기업엔 과징금을 50% 깎아주고, 시정명령을 감경하며, 고발을 면제한다. 리니언시 제도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등 60여개국에서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도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이권 카르텔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사교육에서 시작해 지금은 국정 전반으로 번지는 추세다. 대학 수능에서 출제되는 킬러 문항에 대해 "국민들은 이런 실태를 보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6월15일). 신임 차관들을 만나선 "우리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라며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7월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는 "특정 산업의 독과점 구조, 정부 보조금 나눠 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 이득을 예산 제로베이스 검토를 통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7월4일). 특정 산업은 금융과 통신, 보조금 나눠먹기는 태양광을 지칭한 듯하다.
엄밀히 볼 때 교육 당국과 사교육 업체를 카르텔로 묶는 건 무리다. 둘이 학원비를 올리자고 짬짜미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과 통신의 과점을 이권 카르텔로 부르면 해당 기업들은 억울하다. 사실 그런 구조를 짠 건 정부다. 워낙 중요한 산업이라 아무한테나 면허(라이선스)를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정부는 금융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수시로 간섭하고 통제한다.
#이권 카르텔이라고 통칭하면 해당 기업이나 집단을 때리는 데 편하다. 그러나 자칫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교육개혁을 보자.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획일적인 대학 평가 방식을 대학별 특성을 살리는 평가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지역대학에 대한 행정·재정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하고, 가칭 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지방대학 시대를 열겠다는 내용이 있다. 공약과 과제를 실천하는 게 진짜 개혁이다.
국세청과 공정위를 앞세운 사교육 때리기는 본질이 아니다. 사교육은 결과다. 원인은 평생 따라다니는 학벌 딱지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살 만한 사회, 어떤 대학을 나와도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면 사교육은 절로 사그라든다.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진부하지만 옳은 말이다. 교육개혁은 요란스럽게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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