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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톡톡] 공학입국과 지방대학의 역할

미국의 대표적인 AI 기업인 오픈AI는 최근 7조달러(약 9300조원) 투자 펀딩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올해기준 우리나라 예산(656조6000억원)의 14.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국부펀드, UAE 국부펀드, 마이크로 소프트, 소프트뱅크 등의 여러 국부펀드와 민간기업에서 투자를 협의 중에 있다. 실제로 9300조원 투자가 이루어질런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세계적으로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AI 분야 투자확대에 따라 연관산업인 반도체산업은 구조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고 각 국은 이공계 인재육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르네상스'를 기치로 내걸고 전문학과 개설, 고등학교 연계교육 등을 통해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이번에 TSMC 구마모토 공장 건설에 따라 지자체, 지역기업, 대학 및 연구기관, 상공회의소 등 100여 개 단체로 '큐슈 반도체 인재육성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지역내 이공계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은 매년 약 1만명의 반도체 전문인력을 배출하고 있고, 최근에는 해외인력 유치까지 나서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인력은 임금 300만 대만달러(1억3000만원) 이상의 초과분의 절반에 대해서는 과세에서 제외하고 비자조건도 완화했다. 중국은 매년 20만명의 반도체 전문인력을 배출하겠다고 발표하고 관련 정책과 교육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있다. 일본, 대만, 중국 등 우리의 경쟁국가들은 이공계열 전문인력 배출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 인력양성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방안'에 의하면 반도체 계약학과 및 특성화대학을 8개교에서 18개교로 확대하고, 반도체 아카데미 등의 교육과정을 통해 학사급 실무인재 약 3만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아울러 연구개발 기반의 인력양성과정을 확대해 석·박사급 인재도 3700명 육성하려 한다. 이를 통해 2031년까지 반도체분야 청년인재 15만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공계 학생의 의대쏠림에 따라 상대적으로 반도체 학과 위축이 심각하다. 2024년 정시모집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등은 이탈자가 발생해 3차 이상 추가합격자를 통해 인원을 충원했다. 대기업 취업이 가능한 이들 학과들조차 메디컬 학과에 밀려 추가충원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니 여타 일반 이공계열 학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물론 메디컬 계열 학과에도 우수인재가 필요하지만 특정분야의 지나친 쏠림은 사회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다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전문인력 배출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대학을 특성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대학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종로학원의 집계결과 수시모집 미충원인원은 3만7332명으로 전체 선발인원의 14%에 달한다. 그리고 수시모집 인원의 40%도 채우지 못한 대학이 지난해에 비해 2배 늘었고 특히 지방소재 대학은 미충원률이 수도권 대학보다 4배 많다고 한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대학 선호현상에 따라 지방대학은 기로에 선 것이다. 그러나 부산대(기계), 경북대(전기전자) 등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는 대학이 지역에 포진됐다. 이들 대학의 이공계열 특성화에 집중지원하고 특화발전시켜야 한다. 아울러 졸업생은 지역내 취업, 창업 등과 연계하는 생태계 구축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이공계열 육성을 위한 대학간 연계협력이다. 일본 교토는 '대학컨소시엄 교토'라는 이름으로 50여개 지역대학의 연합체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대학간 연계교육, 공동 조사연구, 산관학지역 연대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드레스덴은 시정부, 지역대학(드레스덴 공대), 연구기관(프라운호퍼연구소, 막스프랑크연구소), 상공회의소 등이 산학협력네트워크를 구축 및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드레스덴은 최근 독일의 주요 성장지역 중 하나로 발돋움하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개별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공유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동교육, 공동학위과정, 신기술 혁신공유대학, 모듈형강좌, 현장기술형 대학원생 육성, 컨소시엄 운영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고등학교 등에서 우수한 이공계열 인재가 배출되지만 대학에서는 이들 인재의 특성화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공계열 인재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범재가 되는 상황이다. 지방대학 특성화를 통한 공학입국(工學立國)을 기대한다. 안성조

[EE칼럼] 에너지 전문가의 국회 비례대표 입성을 희망한다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역구 진영은 대부분 결정되었고 비례대표가 확정될 시간이다. 비례대표는 지역의 대표성보다는 사회 각층의 국민과 전문적인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자는 것이 그 의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환경과 산업부문의 전문가는 있었어도 에너지 전문가가 비례대표로 선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AI가 발달하고 정보통신과 반도체가 각국의 주된 경쟁력으로 떠오르는 이 때에도 전 세계와 한국에서 에너지가 갖는 중요성과 의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기술과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에너지가 있어야 전자장치와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으며, 에너지가 있어야 냉난방을 통해 인간이 체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1세기들어 그 속도와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모빌리티 혁명도 결국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20세기의 냉전에 이어 등장한 21세기의 미중 대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중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지적 분쟁의 원인과 결과에도 에너지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에너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현대의 국제정치와 국가 관계 그리고 첨단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와 설비를 미리 구축하고 준비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입법부에는 에너지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 이러한 전문성의 부족은 에너지 분야에 대한 국회 기능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들여 매번 정권과 국회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에너지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부족이다. 일례로 국회의원과 많은 정치인들이 에너지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것이 그 가장 큰 문제이다. 에너지는 공짜가 아니며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재화도 아니다. 에너지는 수익자가 돈 내고 사야 하는 재화이다. 다만, 에너지는 국민생활의 필수품이고 많은 경우 자연독점적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배달되는 상품이어서 가격 등 공급조건에 대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또한 이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국가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상품이다. 둘째는 정부의 행정과 공기업을 감시할 수 있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회의 감사내용은 예산 및 기금 집행현황, 주요 정책사업의 계획과 그 추진실적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정책 및 예산 집행에 대한 '꼬투리'를 잡아내는데 그치고 전문성에 기초한 정책감사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정책에 대한 비판적 안목과 분석적 디테일을 갖춰야 한다. 일례로 에너지 분야에 나타나는 여러 계획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계획이 왜 필요한지 또 계획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셋째로 에너지 부문은 입법 만능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경제개발기의 에너지 인프라 건설과 독점 공기업 중심의 운영이라는 전통적 레거시에 갇혀 창의적 역동성과 기업가적 정신이 발휘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에너지관련 법이 규제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제 법으로 에너지 사업을 규정하고 그 테두리를 정하기보다는 현재의 규제와 틀을 벗어나서 에너지산업을 보다 자유화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법과 규정을 만들기보다 기존 법의 규제를 완화하고 법을 슬림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법규정을 만드는 데에 착안했다면 바람직한 국회의 역할은 소비자 같은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의 장기적인 이해가 반영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도 지향적인 입법보다는 성과 지향적인 입법을 추진해서 에너지 관련법을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입법과정은 전문성과 정치력이 함께 요구된다. 소비자 등 일반 국민의 광범위한 이해가 에너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치과정(political process)을 고민할 수 있는 지혜로운 에너지 전문가가 국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여야가 에너지 전문가를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배치하기를 희망한다. 조성봉

[이슈&인사이트] ‘규제 개선’ 빠진 기업 밸류업 지원정책

지난 2월26일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Value-up)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1차 발표에 따르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주요 포인트는 '기업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있다. 자발적 기업가치 제고 지원, 기업가치 우수기업에 대한 투자 유도, 밸류업 지원체계 구축 등 3가지가 핵심 내용이다. 이에 따라 향후 기업들의 자율적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과 그 실행과정을 공시하도록 권장하는데,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및 PBR, 배당성향/수익률 등을 기업이 스스로 공시하도록 할 것이 권장된다. 한국 주식시장이 얼마나 침체돼 있으면 정부가 나서서 이런 고육지책을 내놓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정책 당국 조차도 손 놓고 나몰라라 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지 않겠나. 자신의 몸값을 낮추고 싶어하는 기업과 기업인이 있겠는냐마는, 아무런 환경 변화가 없는데 기업가치를 높일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열심히 공시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지는 의문이다.일종의 채찍은 제공했지만, 당근이 빠진 것이다. 여기서 당근이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의 개선이다. 규제개선 없이 자발적 노력으로 갑자기 기업가치가 높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경제 5단체(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가 '글로벌 스탠더드 규제개선 공동 건의집'을 냈다. 그 중 공감이 가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다중대표소송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모자회사 관계에서 독립된 법인격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한국은 계열회사 주식 50%를 초과하여 보유하는 회사의 주주에게 이를 허용한다. 한국도 100% 완전 모자회사 관계에 한정해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해야 한다. 신주인수선택권(poison pill)제도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G7 국가에서 전부 도입해 활용 중이다. 주요국 대비 M&A 법제와 관련해 우리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신주인수선택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국내 기업집단 규제다. 한국의 대규모 기업집단 법제와 각종 지주회사 관련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 대기업집단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은 지주회사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목적으로 각종 사전규제(부채비율, 증손회사, 금산분리, 자회사 지분율 규제 등)를 시행 중이다. 이러한 사전규제는 오로지 한국만이 시행 중이며, G5 국가는 사후규제만 시행하고 있다. 사전규제는 산업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한국은 경영판단원칙을 수용하지 않고 형법상 배임 및 업무상 배임에 더하여 회사법상 특별배임죄 처벌규정을 두고,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죄 가중처벌 규정까지 두고 있는 형벌만능공화국이다. 배임죄에 따른 위험이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세제 측면에서도 법인세는 OECD 회원국 다수가 단일세율 체계를 취하는 반면 한국의 법인세는 4단계의 복잡한 과표구간을 유지하고 있다. 최고세율의 경우 한국 법인세는 26.4%(지방세 포함)로 OECD 평균과 G7 평균을 웃돈다. 상속세는 OECD 회원국 다수가 각자 상속받은 재산을 과세기준으로 삼는 유산취득세 방식인 데 반해 한국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유산총액을 기준으로 삼는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최고세율의 경우 한국 상속세는 50%로 일본 다음으로 높은 데다 최대주주의 지분 상속시 상속세율이 60%에 달해 기업승계 부담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 단기적으로는 현행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자본이득과세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이 외에도 무수한 규제가 존재한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후진적이고 설득력 없는 이들 주요 규제 중 하나라도 뿌리 뽑고 밸류업을 외쳐주면 좋겠다. 최준선

[기자의 눈] 22대 국회, 산업경쟁력 향상 도울까

글로벌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22대 국회가 '경제성장'이라는 발언을 뛰어넘는 현실적인 지원사격을 바라는 모양새다. 특히 노동시장 문제 해결이라는 숙원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는 6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이 39위라고 발표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분석한 미국 싱크탱크 해리티지 재단의 '2024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노동시장 순위는 184개국 중 87위로 나타났다. 등급으로는 '부자유'에 해당한다. 과도한 정규직 보호를 비롯한 경직적인 제도 등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어려운 해고는 사회안전망의 측면도 있으나,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근로자들의 재취업이 힘들어지고, 경력단절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강성노조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도 거론된다. 국내에서는 '파업 스케줄'을 짜놓고 시행하는 노조의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 사업장을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비롯한 보완입법이 이뤄지길 바라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법 시행에 따른 부담이 있는 만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헌법소원 제기를 시사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근로시간도 더욱 유연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설비를 보수해야 하는 장치산업의 경우 특정 분기에는 업무량이 몰리고 다음 분기에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지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시행이 어렵다. 기업과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정해야 할 사안을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맞냐는 원론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상속세·법인세 인하 및 연구개발(R&D) 지원 확대 등 세제개편도 필수적인 항목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의 명목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 수준으로, 대주주 할증이 더해지면 65%에 달한다. 상속세 자체가 이중과세의 성격이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비율까지 책정된 셈이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추진 중이지만, 기업 규모별로 차등지원하는 것도 지적을 받고 있다. 대규모 설비투자 등으로 탄소저감을 이끄는 대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신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도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다. 경영과 무관한 오너 일가가 지분을 매도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세율과 무관치 않다. 이 과정에서 재산 손실도 발생한다. 어차피 팔아야 할 지분을 매수하는 입장에서 '제 값'을 쳐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총선이 치러질 때마다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유사한 문제가 이어지는 흐름이 지속되는 것은 경제성장 뿐 아니라 청년세대 등 근로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고 산업경쟁력 향상이라는 과제를 달성하는 22대 국회가 되길 바란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데스크 칼럼] 다시 찾아온 역성장의 그늘

역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국내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해 연간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인 2020년(-0.7%)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았고, 코로나19를 제외하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후 최저치다. 외환위기인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1.9%)에도 밀렸다. 수년간 사상 최대 실적 스토리를 써내려가던 국내 금융지주사들도 지난해 역성장이라는 역풍을 피하지 못했다. KB금융지주를 제외하고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모두 작년 순이익이 전년보다 크게는 20% 가까이 감소했다. 2023년 한 해 4대 금융지주의 대손충당금 전입액은 무려 9조원 육박(8조9931억원)한다. 상생금융 관련 비용 인식, 대체투자자산 평가손실, 대손충당금전입액 증가 등이 실타래처럼 엉킨 탓이다. 역대 최대 실적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지던 찰나, 4대 금융지주 연간 순이익 총액(14조9682억원)의 절반이 넘는 각종 비용들이 실적을 잠식한 셈이다. 올해도 만만치 않다. 당장 올해 하반기께 기준금리 인하가 선행될 경우 대출금리가 하락하면서 순이자마진(NIM), 이자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은행권을 향해 취약차주 고통분담에 나서라는 정치권과 정부의 요구는 실적 둔화와 관계없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1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은행권 수익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가계대출 성장은 요원하다. 국내 경기는 어떠한가. 내수 부진은 차치하고서라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언제까지고 '우려'에만 그칠지 알 수 없다. 올해 경영 환경을 '비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비용 절감과 보수적 관점에서의 성장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실적 턴어라운드는 요원할 것이 자명하다.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마저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작금의 경영 악조건 속에서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과거 경영전략을 곱씹게 된다. 이익관리 능력과 함께 미래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했던 상황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과거 저성장, 저금리 시대 금융사들의 생존 키워드는 단연 인수합병(M&A)이었다. 특히 금융지주사의 경우 은행 중심의 수익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M&A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고, 미래를 위한 베팅이었다. 은행, 증권, 카드, 보험 등 금융을 일구는 사업 영역의 사이클이 수년간 흥망성쇄를 반복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판단한 것이다. 은행이 좋지 않을 땐 증권사가 두각을 보였고, 증권사가 좋지 않을 땐 다른 사업군이 빛을 보였다. 거액을 투입해 금융회사를 인수하고, 인수 후 통합작업(PMI),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리스크 관리 등을 적재적소에 가동한 덕에 당시 인수를 완료했던 금융사들은 현재 금융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금융사들은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포화상태인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금융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룹의 중장기비전 기반인 성장 동력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성장세가 둔화된 시점에서의 이들 금융사의 과거행보가 주는 시사점은 비교적 간결하고 명쾌해 보인다. 현재의 두려움보다 앞으로의 성장성에 베팅한 CEO의 눈썰미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역사가 증명한다는 것이다. 금융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눈은 위기라는 단어에 더욱 익숙해진 듯하다. 불황이 걷힐 때쯤 되면, 불황 속에 분주히 움직이던 기업들의 행보는 진가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고금리, 고물가 시대, 우리나라 각 금융사들이 펼칠 위기 속 해법은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리더십의 대가 데일 카네기의 말이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주원 칼럼] 도전받는 글로벌 탄소중립 정책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주범은 탄소이다. 지구의 온도 상승세를 막지 못하면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로 많은 피해를 볼 것이며, 나중에는 해수면이 높아져 인간이 살 수 있는 땅도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과 탄소 흡수량이 같게 만들어 순(net)탄소 배출량을 제로(0)까지 낮춘다. 여기까지가 알려진 내용이다. 탄소중립을 한발 물러서서 보면 사회 내 여러 가치 판단 기준 중에서 지극히 도덕적이고 온전히 환경적인 이슈이다. 즉 경제적 기준에서는 탄소를 줄이는 것은 고비용-저성장일 뿐이다. 예를 들어 BP(British Petroleum) 통계에 따르면 1965년 이후로 세계 탄소배출량이 전년대비 감소했던 경우는 1974~1975년의 1차 오일쇼크와 1980~1982년의 2차 오일쇼크,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펜데믹 위기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졌던 시기뿐이다. 그런 시기를 제외하고는 탄소배출량은 언제나 증가했다. 2022년 현재 세계 탄소배출량은 343억7410만 톤으로 1965년 111억 8300만 톤의 3배에 달하고 있으며, 57년 동안 연평균 2.0%씩 늘었다. 아직까지도 배출량이 추세적으로 감소한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데 앞으로 약 26년밖에 남지 않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그러한 의구심의 근간에는 글로벌 기후 대응이라는 공공의 선(善)을 위해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회의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주 대두되는 문제로 이미 잘 사는 국가들인 선진국 그룹과 이제 본격적인 성장을 하면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신흥공업국이 탄소중립을 바라보는 입장은 전혀 다르다. 신흥시장은 고성장이 필요하며 고성장은 많은 탄소배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신흥시장에게 탄소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고성장을 포기하게 하고 선진국을 따면 잡으려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2022년 기준으로 선진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탄소배출 비중은 65%에 달한다. 이들 국가의 탄소중립이 없이는 세계 전체의 탄소중립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만약 올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5%의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또 탈퇴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탄소중립은 갈 길을 잃어 방황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을 주도하는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불확실하다. 올해 6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피로감과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입되는 난민으로 인한 사회 불안 등이 이슈가 되면서 극우파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면 이들은 탄소중립에 대해서 지금 유럽연합의 정책 기조와 반대로 갈 가능성이 크다. 탄소중립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은 분명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경제 논리, 사회 논리, 정치 논리 그리고 이념이 끼어들면서, 가는 길이 평야를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큰 산을 만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휘어지고 뒤틀어지거나 아니면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야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탄소중립이 지고의 선(善)이기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잘 살펴 상황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왜냐하면 탄소배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제조업 중심 국가인 한국 경제의 입장에서 탄소 배출이 감소한다는 것은 성장과 삶의 질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시대 상황에 맞추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탄소중립 경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올해 이후 탄소중립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선진국들의 태도 변화가 가져올 기회도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는 선진국들이 느슨한 탄소중립 기조로 전환한다면 관련 기술과 사업화에 대한 그들의 투자가 위축될 것이다. 이때 우리가 그들의 앞선 기술을 따라잡을 기회도 생길 수 있다. 세상은 항상 생각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 도덕적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말고 변화에 맞춘 유연한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원

[기자의눈] 한국전력, 경영평가 ‘A’ 등급 마땅한 이유

최근 정부가 자본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상장사의 주가부양과 주주환원에 대한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국민의 노후보장은 부동산이 아니라 자본시장에 의지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증시의 중요성이 '괄목상대'(刮目相對) 되는 것은 자본시장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반면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 정부는 상장 공기업의 주주가치 제고노력을 경영평가 항목에 넣겠다고 밝혔다. 이번 방침은 해당 공기업의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다. 한국전력은 최근 수십조원에 달하는 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전의 적자에 대한 책임은 한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한전은 지난 2021년부터 전기요금에 연료비를 연동하는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하려 했다. 원가연계형 요금제란 전기를 만드는 원가가 오르면 요금도 올리고, 반대로 원가가 떨어지면 요금도 내리는 제도다. 정작 제도 시행은 정부가 막았다. 국민의 사정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유가가 급등한 시기였다. 결국 한전은 원가가 늘어도 요금을 올리지 못해 4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쌓았다. 이 시기 한전은 80조원 규모의 한전채를 찍어내며 버텼다. 그로 인한 채권시장의 혼란도 결국 정치권의 책임인 것이다. 한전의 경영안정과 전기요금 정상화, 주가 회복, 주주환원 등은 동시에 될 일이 아니다. 한전의 최우선 과제는 안정적인 전기공급이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실적이 망가졌지만 2022년 한전의 경영평가가 D등급이라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전은 가정과 기업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다. 심각한 경영난에도 이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 D등급이 아니라 오히려 A등급을 주고 싶다. 넉넉한 집안에서 고액과외를 받으며 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장하겠지만 어려운 집안에서 아르바이트를 뛰며 공부한 고학생 새내기가 더 대견한 법이기 때문이다. 주주환원은 현재 한전에는 무리한 요구다. 오히려 한전에 채운 각종 규제 족쇄를 풀어줘야 할 시기다. 그동안 한전을 희생양 삼아온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EE칼럼] 전력산업기반기금의 합리적 개선방향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함께 한전이 6개 자회사와 전력거래소로 분할되자 그 전까지 전기요금의 일정 분을 재원으로 수행하던 수요관리, 전원개발, 연구개발과 같은 공공·공익적 사업이 지속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경쟁도입을 통해 전력산업의 효율성 개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에너지효율, 전원개발, 보편적 서비스제공 등 공익적 정책사업이 경쟁적 시장에서 적절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전력산업기반기금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전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전력산업의 기반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전기사업법 제48조)하기로 한 것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전기요금의 3.23%를 부담금으로 징수했으나 두 차례 변경을 거쳐 2005년부터 현재와 같은 3.7%의 요율을 부과중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공기업인 한전이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구별하고, 이에 따라 돈을 별도로 걷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력회사는 전력공급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용을 요금으로만 회수한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한전이 대행한 것이라면 누군가가 해당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 전력소비에 따른 요금과는 별개로 별도의 부담금을 소비자로부터 징수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공익사업의 부담 주체는 수혜자인 최종소비자에게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집행하는 각종 사업이 이러한 수익자 부담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집행되는 사업에 대한 정보는 꽤 투명하게 공개되는 편이다. 문제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용도가 원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특정한 목적사업을 위해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계산하고, 필요한 금액만큼을 소비자에게 청구하는 과정이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단 돈을 걷고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방식이다. 이렇다보니 일반인이 보기에는 많이 쌓여 있는 돈을 어떤 형태로든 써야하니 불필요한 사업을 만들거나, 관련없는 사업에 집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도입된지 20년이 지났지만, 기금운영에 대한 지적이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비롯한 각종 준조세에 대한 점검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2년 사이에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오르다보니 올해 기반기금의 규모가 3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폐지가 옳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기반기금이 없으면 집행되기 어려운 사업도 분명히 존재하므로 무조건 폐지를 주장하기보단 제도의 허점을 살펴보고 개선할 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우선 최종 전기요금의 3.7%를 부과하는 현행 기반기금을 사용전력량에 비례해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둘째, 기금으로 집행해야 할 사업의 범위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전기사업법 및 시행령에 지원사업의 종류가 있으나 정치권 및 정부의 필요에 따라 관련 없는 사업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정부에서 한전공대 설립 및 운영을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원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주택용 전기요금 복지할인이나 전력망 보강 관련 비용 등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하는 것이 취지에 맞다. 셋째, 필요한 금액을 산정하고, 필요한 만큼의 금액만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비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기금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서는, 연도별로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필요 예산을 수립한 이후 필요한 만큼만 부담금을 징수하는 구조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기금의 규모 및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을 참고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연제

[이슈&인사이트] 금융상품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활성화와 소비자 후생 제고

고물가와 고금리 기조가 국민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우선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민간소비 상승률 전망치를 1.9%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금융거래 비용 증가도 가계의 채무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인상되며, 주택마련을 위한 차주의 이자비용이 늘어나게 됐다. 제2금융권 거래 역시 녹록지 않다. 자동차·전자제품 등 내구재 구입시 이용되는 할부금융 수수료율도 여전히 높은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가계의 금융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다양한 정부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환대출 프로그램과 금융상품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다. 전자가 은행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전세대출 갈아타기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후자는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플랫폼은 금융거래의 주요 접점채널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상품 중에서 의무적으로 매년 갱신해야 하는 자동차 보험은 예상과 달리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이용률이 특히 저조하다. 이 서비스는 당초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가격 비교를 통해 탐색비용 절감과 업계의 경쟁유발을 통한 서비스 가격인하를 기대하게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1월 중순 출범한 자동차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이용률은 최근까지 낮은 편이다. 플랫폼 이용자중 약 5% 정도만이 플랫폼을 통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된다. 주요 원인중 하나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핀테크사에 지급되는 수수료 때문에 대형 보험사의 이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형 보험사는 자체적인 개별 다이렉트 채널을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판매채널 경쟁력이 약한 중소형 보험사들은 플랫폼 수수료를 보험료율에 포함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는 플랫폼을 통한 소비자의 금융비용 절감이란 취지에 벗어나 있다. 더욱이 플랫폼을 통한 보험상품 비교·추천서비스의 이용 저하는 최근 여행수요가 늘며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여행자보험 등 여타 보험상품에 대한 비교·추천 서비스의 기능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 플랫폼 금융거래의 활성화는 혁신금융 시대에 고객 데이터 확보 및 활용을 통한 맞춤형 금융상품 제공을 가능케 함으로써 소비자 후생을 제고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마이데이터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이라는 금융인허가를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금융기관에 분산된 고객의 개인정보를 한 개의 플랫폼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편의성 제고와 금융비용 절감 등 소비자 후생 제고 차원에서 최근 출범한 자동차 보험 플랫폼 금융사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정책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우선 해당 플랫폼이 사업 참여자에게 호혜적 플랫폼으로 기능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자동차 대상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영위를 위해서는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 인허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플랫폼에서 금융상품 비교 및 추천서비스 업무를 영위하는 관계로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 영위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표적인 자동차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캐피탈사의 경우 보험업법 시행령에 따라 보험비교·추천서비스 영위가 불가하다. 보험업법 시행령은 여신전문금융업체 중 신용카드사만 보험대리점 등록이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캐피탈사가 마이데이터 사업자임에도 보험업법 시행령에 근거해 보험비교·추천서비스 사업 영위가 불가한 것은 플랫폼 참여자에 대한 호혜의 원칙 측면에서 어긋난다. 더욱이 금소법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자의 겸영업무로 허용한 보험상품 판매대리·중개업 영위가 보험업법 시행령으로 인해 불가한 점은 금융소비자의 후생을 제고시키기 위해 출범한 금소법의 취지를 퇴색시킨다. 플랫폼 금융서비스 제공시 우려되는 개인정보 노출 및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예방하기 위해 마이데이터 사업자로 인가받은 금융업체들은 고객 데이터 관리에 책임감 있게,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개발을 영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마이데이터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한 금융당국의 면밀한 인허가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한 판단이다. 더욱이 최근 부동산 PF 부실로 인한 캐피탈사의 대손충당금 적립이 강화되며, 캐피탈 업권의 수익성이 큰 폭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는 캐피탈사의 조달비용의 증가와 함께 수익성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캐피탈 업권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고 수익성 보전을 위해 자동차 할부금융·리스 수수료율 인하가 상당기간 지체될 가능성도 있다. 결론적으로 캐피탈 업권에 대한 보험상품 판매대리·중개업 허용은 중고차 플랫폼 등 자동차 판매 채널의 경쟁력을 갖춘 캐피탈사의 다양한 서비스 창출 및 할부·리스 수수료 등 금융서비스의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보험업계의 경우 일반 법인보험 대리점 의존도가 높아 보험료 인상, 불완전판매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캐피탈사에 대한 자동차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사업 허용 등 자동차 보험상품의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금융업권간 문호 확대가 시급하다. 서지용

[기자의 눈] 건설업 외면하는 청년들, K-건설의 위기

“건설현장에서 청년을 찾기가 힘들다. 내가 50대인데 현장에서 막내급이라 심부름을 자주한다." 최근 만난 한 건설근로자의 한탄이다. 그는 이대로라면 10년 후의 한국 건설현장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건설업에서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현장은 보수가 많지 않고 육체 노동이 심한 '막일'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산업 재해도 심각하다.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층에겐 매력이 떨어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최근 5년간 청년층 졸업 후 첫 일자리 산업으로 건설업은 5%대 미만이다. 농림어업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건설업에 취업한 청년들 마저도 '탈건'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건설업계 탈출'을 뜻하는 신조어다. 업종별 직장인들이 가입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서 건설업 코너를 보면 “탈건만이 답일까요?", “정말 궁금한데 왜 건설형들은 다 탈건을 꿈꾸는 거야?" 등 탈건을 주제로 한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건설업은 말 그대로 '사람 장사'다. 인력의 질이 곧 경쟁력이다. 청년층 유입 감소는 생산성 저하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각종 건축·시설물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청년들의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면서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숙련·외국인들이 주로 일하는 건설현장 등에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공기가 늘어나고 부실 공사나 산업 재해의 가능성도 높을 수 밖에 없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대다수가 외국인 근로자"라며 “현장에서 아무리 통역 앱을 돌리고 해도 소통에 한계가 있고 통제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최근 건설업계에서 하자 분쟁과 안전 사고가 늘어난 이유는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청년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기능인 등급제가 있다. 건설근로자의 체계적인 경력관리와 합리적 보수 체계를 위해 근로일수·자격·교육·포상이력 등을 기준으로 초·중·고·특급의 4단계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의무사항이 아니며 신뢰도가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년들이 건설현장을 외면하면서 K-건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K-건설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 유입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직업으로서의 비전 제시와 합리적 보수 체계·산업 안전 강화 등 일자리의 질 개선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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