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말산업계의 숙원이던 ‘온라인 마권 발매’가 오는 12월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 마권 발매가 법제화된 데에는 그동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던 정부와 시민단체 등을 만나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설득해 온 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의 역할이 컸다. 개인마주제가 시작된 1993년부터 ‘원년 마주’로 활동해 온 조 회장은 코로나 팬데믹과 경마중단으로 국내 말산업계가 최대 위기를 맞았던 지난 2021년 3월 서울마주협회장에 취임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회장직을 맡은 조 회장은 국내 말산업의 지속성장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제 국내 경마·말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는데 필요한 해결과제를 모색 중이다. 본지는 최근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 내 서울마주협회 회장실에서 조용학 회장과 대면 인터뷰를 갖고, 우리나라가 세계 5대 말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선결과제를 들어봤다.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온라인 마권 발매 제도가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다.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온라인 마권 발매 제도는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해 한국마사회와 말산업계가 재무지속성을 갖게 됐다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경마 고객에게 새로운 편리한 발매 수단을 제공하게 됐다는데 의미가 있다. 비록 법제화 과정에서 구매 연령을 다른 사행산업의 구매 연령이나 투표권 연령보다도 높은 21세 이상으로 정한 것이나, 첫 회원가입은 현장 방문해 가입하도록 하는 등 지나친 규제가 추가된 것이 아쉽지만, 처음 법제화됐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각종 고객 편의를 위한 서비스 개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마 고객에게 훌륭한 품질의 경주를 보여줄 수 있도록 국산 경주마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최고의 고객 서비스일 것이다. 1990년대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골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국내 골프 대중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일본의 경우 최근 세계 최대상금의 경마대회인 사우디컵과 두바이컵 등 주요 국제경마대회의 우승을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 경주마들이 휩쓸고 있는데, 덕분에 일본에서 경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일본 경주마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산 경주마가 세계 경마대회에서 선전하면 경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경마산업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국산 경주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우수한 종마(씨수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주마들을 보유하게 된 데에는 1990년 당시 1000만달러(약 130억원)의 파격적인 금액을 들여 미국에서 들여온 씨수말 ‘선데이 사일런스’가 계기가 됐다. 또한, 경주마 육성을 위한 시설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은 경마 인프라 투자가 세계적 수준이다. 국내에 경주마 훈련용 실내언덕주로는 전북 장수목장 1개 뿐이지만 일본에는 60여개나 된다. 일본의 경우 전국 각지의 대규모 목장에 각각 경주마 트레이닝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경주마는 평소 이곳에서 생활하고 훈련하다가 경기에 출전할 때에만 경마장에 오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경주마가 경마장 안에서 살고, 훈련하고, 경기를 뛴다. 한국의 경주마 육성 인프라 수준은 일본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국산 경주마 육성을 위한 인프라 투자는 경마산업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이는 말 생산농가·운송업체·사료농가·마필관리사·장제사·승마업계 종사자 등 연관산업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국제경마연맹(IFHA)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마산업(마권판매액) 규모는 총 1154억유로(약 164조원)이다. 여기에 말 생산·운송·사료·마필관리·장제·승마 등 연관산업을 포함한 전체 세계 말산업 규모는 약 360조원으로 추산된다. 경마를 제외한 연관 말산업 규모만 약 200조원으로 경마산업 규모보다 그 밖의 말산업 규모가 더 큰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마산업(마권매출액)이 49억5000만유로(약 7조원)로 세계 7위 수준까지 성장했으나, 경마산업을 제외한 전체 말산업 규모는 5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연간 총 45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경마 이외의 말산업은 낙후돼 있고 규모도 미미하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국내 말산업이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마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말산업 규모를 키우려면 예산 확보가 관건일텐데. "마사회는 매년 수익의 70%를 축산발전기금에 납입해야 하고, 나머지 수익도 적립금 등에 지출해야 해 인프라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 예산 확보가 힘든 실정이다. 이는 정부나 지자체도 마찬가지이다. 인프라 투자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법경마에 유입되는 매년 수 조원의 자금을 합법경마로 흡수하는 것이다. 이는 경마 환급률을 높여 불법경마 이용자에게 합법경마를 불법경마만큼 매력적으로 만듦으로써 가능하다." ◇우리나라 경마 환급률은 73%로 이미 로또·토토 등보다 높다. 경마 환급률을 높이려면 반대급부로 세율을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세수입이 줄지 않겠나. "우리나라 경마 환급률은 주요 경마 시행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경마 종주국 영국은 93%, 호주 90%, 일본 75%로 모두 우리나라보다 높다. 로또, 토토 등에 비해 환급률이 높더라도 환급률 인상이나 세율 조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로또, 토토 등과 달리 경마는 후방산업이 있기 때문이다. 말산업육성법을 보듯이 말산업은 정부가 육성해야 하는 산업이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내 말산업은 성장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스포츠 토토의 경우, 프로스포츠를 토토의 후방산업이라 보긴 어렵다.) 특히, 환급률을 높이면 불법경마에 유입되는 자금을 흡수해 세율을 낮춰도 오히려 세수입은 증가한다. 이는 홍콩의 사례에서 입증됐다. 홍콩은 지난 2006년 경마 환급률을 81%에서 84%로 높이고 도박세율을 낮추는 ‘경마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홍콩 정부는 세율을 낮추면 세수입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개혁을 주장한 홍콩 경마시행체인 홍콩자키클럽은 오히려 세수입이 증가할 것을 확신, 홍콩 정부에게 향후 5년간 기존에 내던 만큼의 세금을 그대로 납부하겠다고 보증했고, 홍콩 정부는 개혁을 승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개혁 직전인 2005년에 비해 2012년 합법경마의 매출은 60% 늘었고, 홍콩 정부의 세수입은 42% 늘었으며, 홍콩자키클럽의 수익은 28% 증가했다. 특히, 환급률 인상과 함께 도입한 리베이트(고액 베팅 고객에게 제공하는 현금 위로금) 제도는 불법경마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불법경마가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높은 환급률과 리베이트 때문이다. 현재 홍콩에는 불법경마가 거의 사라졌으며, 그동안 불법경마에 유입되던 자금은 합법경마로 흡수됐다. 덕분에 홍콩자키클럽은 매년 세금 납부 외에 학교, 병원, 문화센터, 테마파크 등 연간 6000억원을 사회공헌사업에 쓰고 있다. 마사회 사회공헌사업 예산의 수 십배 규모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경마 매출에서 원천징수하고 있는 레저세 중 지방교육세(4%)를 폐지하고, 이 중 2% 정도를 환급률 인상에, 나머지 2% 정도를 마사회의 인프라 투자 재정에 쓰이는 식으로 세제를 개편한다면 불법경마는 분명히 줄어들 것이고 정부·지자체의 세수입 증가와 인프라 투자금 확보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레저세 안에 지방교육세 항목이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 국회,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정책결정자들조차 경마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말산업이 가지는 산업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홍콩 역시 과거에 ‘경마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경마가 사회공헌에 기여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홍콩 경마개혁은 우리가 벤치마킹하기 매우 적합한 사례이다. 환급률 인상과 세제개편의 궁극적 목적은 경마 고객의 주머니를 불려주자는 것이 아니라 국내 말산업을 키우자는 것이다. 온라인 발매 법제화로 말산업의 지속가능성 토대를 갖추게 된 지금이 세제개편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kch0054@ekn.kr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 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 사진=서울마주협회 서울마주협회장배 조용학 서울마주협회 회장(오른쪽 세번재)이 지난 6월 18일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서울마주협회장배 경주에서 우승마 ‘쏜살’(기수 다실바)과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철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