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성우창 기자]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제기된 ‘자사주 보유 비중 10% 제한’ 안이 증권가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상장사 측에서는 경영에 미칠 부담과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며 난색을 보인다. 투자자 측에서는 국내 시장이 안고 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가운데 하나를 해소하고, 증시를 크게 키울 기회라는 평가다. 이외에도 자사주 보유 제한이 제도화될 경우 시장에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올 초과분 매도 물량을 막기 위해 강제 소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상장사들의 자사주 보유 한도를 10%로 설정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발제자인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독일 등 외국에서 도입된 자사주 보유 한도 사례를 들어 제도 개선 시 경영진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 자사주 보유 한도 10% 설정안의 도입은 아직 정치권에서 정식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벌써 해당 안이 가져올 파급력을 의식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정부가 줄곧 ‘코리안 디스카운트 해소’ 등 주주 권익 개선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도입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상장사, 경영권 방어수단 상실 우려상장사 측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애초에 자사주 보유 비중에 제한을 둔다고 해서 기업들이 매입·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 기업은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가졌지만, 한국은 자사주 보유가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자사주가 기업의 경영자금 확보, 스톡옵션 등 다양한 활용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한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감소로 일시적 단기효과만을 불러올 뿐, 장기적으로 보면 대부분이 이전 주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자사주 보유 제한을 두더라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강제적 소각 의무 부과방식보다 세제 혜택 및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반면 주주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외국의 경우 자사주가 시가총액 합산에서 제외되고, 매각도 기업공개(IPO)·유상증자에 준하는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기업이 자사주를 비교적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어 주가를 억누르는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사주 매입·소각이 활발한 미국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2011년 이후 수익률 중 40%가 자사주 소각 효과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강성부 KCGI 대표는 "이번 자사주 보유 비중 10% 제한 안이 빨리 제도에 반영되고, 초과분도 반드시 소각하도록 해야 한다"며 "애초에 주식은 경영진이 자금 확보 및 경영권 방어에 쓰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미디어콘텐츠본부장은 "실제 제도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서 지금 그 실효성을 쉽게 평가할 수 없다"며 "단 주주환원 정책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그 메리트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과분 대량 매도 막으려면 ‘강제 소각’ 필수만일 자사주 보유 한도 제한이 제도화될 경우, 자사주를 10% 이상 보유한 기업들은 초과분을 매각하거나 소각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 기업이 자사주를 시장에 매도할 경우 기업 측에서는 일시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해당 기업의 주가는 감소해 악재로 평가된다. 반대로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전체 주식 감소에 따른 주가 상승효과로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자본금이나 이익잉여금이 감소한다는 부담이 있다.이 때문에 증권업계에서는 자사주 보유 한도 제한 도입 시 10%를 넘는 자사주 비중을 가진 기업들이 시장에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 커다란 증시 부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9일 기준 전체 주식시장(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10.01% 이상의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은 총 209곳이다. 일성신약(47.77%), 조광피혁(46.57%), 부국증권(42.73%), 텔코웨어(42.01%) 등 네 곳의 자사주 비중은 무려 40%가 넘는다. SK의 경우 물량 1067만6553주(14.59%)의 가치는 전날 종가 기준 1조8257억원에 달해 초과분의 가치가 가장 컸다. KCGI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들의 미소각 자사주 규모는 약 34억주, 74조원 규모에 달해, 이 물량이 절반만 나와도 상당한 규모의 주가 하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시장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자사주 초과분을 반드시 강제 소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상당한 기간을 두고 분할 소각할 수 있도록 한다면 대량 소각에 따른 기업의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일 자사주 비중 10% 제한이 도입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증시 성장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과도기 시장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대신, 상당한 기간을 두고 분할 소각하도록 해서 기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자사주(보통주) 보유 비중 상위 10개사종목명상장주식수(주)자기주식수(주)자사주 비중(%)일성신약13,300,0006,352,99747.77조광피혁6,649,1383,096,21546.57부국증권10,369,8864,430,76442.73텔코웨어9,702,7064,076,07442.01신영증권9,386,2373,397,83636.20모아텍14,331,1855,126,65635.77엘엠에스8,895,7553,111,12734.97코아스템켐온32,870,37611,460,41634.87모토닉33,000,00011,372,37634.46매커스16,163,0925,372,90433.24출처=에프앤가이드suc@ekn.kr사진=픽사베이출처=KC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