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부 나유라 기자.
최근 은행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보이스피싱이다. 우리은행은 보이스피싱 예방전문기업과 손잡고 우리WON뱅킹을 통해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지원한다. KB국민은행은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체계를 전면 강화해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인원을 기존 11명에서 25명으로 늘렸다. AI가 스스로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를 분석해 수상한 거래 패턴을 미리 찾고, 신속하게 계좌 지급정지 등 예방조치를 할 수 있도록 기능을 고도화한다. 국민은행이 모니터링을 통해 8월 한 달 동안 예방한 보이스피싱 사기계좌만 1306건, 피해액은 약 225억원이다.
은행권이 앞다퉈 보이스피싱 예방책을 강화하는 것은 지난주 정부가 보이스피싱을 근절하고자 금융권의 대응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연내 금융사 등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이 있는 주체가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책임' 법제화를 추진한다. 금융사가 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 등 고도의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췄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 피해에도 책임감을 갖고 적극 대응하라는 취지다.
정부의 해당 지침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어 당연히 이득이다. 그러나 이는 범죄자에게도 이득이다. 범죄자 입장에서는 은행권의 배상책임을 믿고 역발상 전략으로 또 다른 범죄수법을 모색할 수 있다.
대체 은행권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을 색출하고 정부가 책임지는 것보다 은행권이 배상하는 게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건가. 은행권이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이 있는 주체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100% 책임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은행권이 정부 지침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이 때,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발언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 나와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 상황을 회고하며 “비상계엄은 보수 대 진보 문제가 아니다. 상식이냐 비상식이냐의 문제다"고 짚었다.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입은 금융소비자, 금융사, 가해자, 신종 범죄를 막지 못하는 정부 가운데 보이스피싱 예방과 배상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정부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1000%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까지 부담하는 것은 상식일까, 비상식일까.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펴는 지금도 보이스피싱 범죄 시계는 바쁘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