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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발전원,

얼마 전부터 아내가 유럽 프로축구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축구선수들, 특히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손흥민 선수가 2015년부터 뛰기 시작해 최근 주장이 된 토트넘 훗스퍼 축구 클럽은 런던 북쪽을 연고지로 같은 지역의 아스날 축구 클럽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두 팀이 맞붙게 되는 경기를 ‘북런던 더비’라고 하며, 항상 뜨거운 응원 속에서 치열한 경기를 치른다. 이 외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 맨체스터씨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맨체스터 더비’, 그리고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전 등이 유럽 축구 경기에서 유명한 라이벌 경기다. 스포츠 세계에서의 라이벌은 경쟁을 통해 서로의 능력을 높여주는 존재로, 이런 라이벌이 있기에 오히려 서로를 빛나게 해주고 흥미를 돋군다. 실제로 라이벌전을 치를 때에 공격 또는 수비 능력이 평소보다 높게 나온다는 통계 분석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라이벌(rival)’이라는 말은 라틴어 시내,개천을 의미하는 ‘리부스(rivus)’에서 유래했다. 같은 물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같은 분야 또는 같은 목적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 즉 서로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관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문학가이자 시대의 석학으로 유명한 故 이어령 교수는 라이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같은 물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물이 다 마르거나 어느 한쪽에서 상대에게 해를 주려고 독을 타게 되면 같이 죽게 되는 관계로, 미워도 협력해야 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이를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관계인 적(enemy)과 구분하면서, 라이벌 관계는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는 것이고, 더 나아가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한다고 봤다.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을 담당하는 전원들 간의 관계도 이런 라이벌의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발전량을 생산하기 위해 서로 경쟁의 관계에 있지만, 상대를 없애고 단 하나의 전원으로만 100%를 생산하는 것은 궁극적 목적인 전기에너지의 원활한 공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일방적인 ‘단일 전원 밀어주기’가 주요 선거 때마다 에너지 정책 공약으로 나오지만 에너지 트릴레마로 알려진 경제성, 안보성, 그리고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는 단 하나의 전원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각 발전원 간의 특성들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있다. 오랫동안 기저발전을 담당해 온 원자력은 경직성을 갖고 있지만, 다른 발전원들에 비해 발전효율이 높아 경제적이다. 석탄발전기나 가스발전기는 연료비가 원자력보다 높지만, 자동 부하추종운전 기능이 있어서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연료비가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는 간헐적 특성으로 전력망 변동성을 높이기는 하지만, 환경친화적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분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달성을 위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장단점이 있는 에너지원의 조합을 통해 전기에너지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의 포트폴리오는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한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라이벌은 서로의 장점을 배우며 같이 성장하는 관계를 이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탄소 발생이 상대적으로 높은 발전원은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 힘쓰고, 경제성이 낮은 발전원은 발전원가를 낮추고 효율을 높여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힘쓴다. 이러한 발전원이 경쟁하는 장(場)이라고 할 수 있는 전력시장과 전력망은 각 전원의 특성들을 고려해 최대한 수용하고 운영하기 위해 제도적 및 기술적으로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혁신 방향을 지속하고 에너지 트릴레마(3대 딜레마)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발전원을 포함한 포트폴리오 구성은 계속해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여름에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한국원자력학회 및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와의 공동 특별 좌담회는 그 의의가 크다. 앞으로도 미래 에너지 비전과 전략을 염두에 두고 발전원 간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마련되기를 기대한다.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EE칼럼]에너지 믹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부문 만큼 사상검증을 많이 받는 직군도 없을 것이다. 철저한 자유시장주의자라 하더라도, 기후위기의 극복을 위한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순간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까지 한꺼번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식이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좌우 구분 없이 일관되고 분명해야 한다. 첫째로 온실가스 감축 등 국제적 합의에 의한 의무를 다하고, 둘째로 최소 비용으로 국가 살림살이에 큰 부담이 가지 않은 전원 선택을 해야 하며, 셋째로 기왕 에너지 전환을 하는 김에 향후 산업화를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이다. 재생이니 원자력이니 하는 것은 이런 원칙을 달성하기 위한 검은 고양이니, 흰 고양이니 하는 선택일 뿐이지 일개 수단의 선택이 목표의 정체성을 흔들 수는 없다. 일방적인 ‘원전 죽이기’ 혹은 ‘재생에너지 죽이기’가 마치 공존을 불허하는 영역싸움으로 인식되면서 결국에는 대선 판국에 정책공약으로 까지 들어가는 지경이 됐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약은 늘 그렇듯 지지층의 결집으로 이용되기 때문에,수단의 문제가 마치 금과옥조처럼 받들여지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물론 정책 결정권자가 그렇게까지는 의도한 바가 아닐 수도 있으나 실무선으로 갈수록 ‘알아서 기는’ 현상이 나타난다. 처음엔 그저 좀 밝은 색의 고양이를 원했다 해도, 현장에선 순백색의 고양이를 알아서 갖다 바치는 식이다. 다들 밥줄을 걸고 업무에 임하기 때문에 이런 과잉충성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나, 여기에 편승해 한몫 잡아보려는 특정 에너지원 카르텔은 이런 과도한 쏠림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는 특정 정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계속 반복되는 문제다. 과도한 쏠림은 역풍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일선의 정책 실무진들은 사상전향을 강요당하는 모양새다. 물론 이들이 정책 방향의 판단까지 해야 하는 영혼이 있어야 하는 존재인지는 역사적으로도 이견이 있어 왔다. 하지만 엽관주의(獵官主義·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에 따라 공직자를 임명하는 인사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급격한 방향 전환은 일선 실무진으로 하여금 극도의 피곤함을 줄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담당자들은 유체이탈 식의 업무태도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 국가 인프라인 송전망 건설 방향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예컨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위주 기조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 일관성이 있을 수가 없다.그동안 이전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과속’으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구입 비용이 눈덩이가 되었고, 많은 이러한 지원의 상당 부분이 세금계산서 부정 발행 혹은 신재생에너지의무화제 가중치 확대를 노린 부정행위로 점철되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진즉에 밝혀졌어야 할 어두운 면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대안으로 힘을 주고 있는 원자력은 주민수용성 및 분산에너지 측면에서, 수소는 경제성 측면면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00% 충당해 줄 완벽한 해결책은 아직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한 기후변화 극복을 위한 사다리론을 들으며 많은 관계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정책은 주춤하고 있는데 해외 원조라니? 이전 문재인 정부당시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외치며 신고리 원전을 연장을 불허하면서, 한편으로 해외에서는 한국형 원전 세일즈를 떠밀던 기억과 판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권 스스로도 한쪽으로 쏠리는 정책의 부작용을 알 것이다. 부디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이-팔 전쟁과 석유파동 50년 주기설

지난 6일 유대교 축제일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발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1973년 10월 전쟁 발발 50주년인 이날 기습 도발했다. 더 많은 중동 나라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고 석유 전쟁에 협조하기를 유도한 것 같다. 전쟁 상황은 수시로 변하지만 일단 이스라엘의 전면 반격이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궤멸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위해 30만 명 이상의 예비군을 동원한다. 미국은 핵추진 항공모함을 이스라엘 앞바다로 전진 배치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완전히 사악한 행위’라고 언급했다. 미국과 서방 주도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시도 등 지역 긴장해소 노력이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단 부인하고 있지만 이란과 하마스의 연계가 밝혀지면 향후 확전이 불가피할 것 같다. 양측 사상자는 이미 2000명을 넘어서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제유가는 당연히 지정학적 위험을 반영하여 미국(서부 텍사스유)이나 유럽(브렌트유) 선물 시장에서 배럴당 80달러 후반으로 4% 가량 올랐다. 이는 금리 인상과 경기 부진으로 원유 수요 증가의 한계가 반영된 9월 마지막 주의 90달러 중반 수준에서 약 7∼8% 하락한 수준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산유국이 아니라서 원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이 원유 생산량 유지 정책을 견지할 것이어서 급변 상황은 진정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으로 원유·가스 감산을 시행할 처지가 못 된다. 1973년 석유 파동 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주요 아랍 국가들이 일제히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면서 강력한 석유 감산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그런 움직임은 아직 없다. 결국 산유국들의 동시다발적 감산과 수출통제 가능성은 거의 없어 50년 전 상황과는 다를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종래와 전혀 다른 다음의 에너지-석유 위기 대응 전략을 심각하게 그리고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 사실 1970년대 아랍 석유 금수조치의 충격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에너지 및 외교 정책의 주요 기반을 형성했다. 석유의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 가능성은 모두에게 ‘에너지 독립’에 대한 강박적인 탐구로 이어지게 했다. 미국은 셰일 붐으로 인해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독립’의 필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더욱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필요성으로 인해 에너지정책 수립 기반은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한 기술적-경제적 여건에 직면해 효율적 정책 구도 정립 방안이 혼돈 속에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해 많은 나라에서 이미 국민적 지지가 어느 정도 입증된 1970년대 식의 에너지정책을 주저 없이 채택하고 있다. 가격을 통제하고 에너지 독립을 중시하며 수입 감축을 추구한다. 이는 지금과 1970년대와 에너지 위험의 성상과 구조가 매우 달라졌다는 사실을 일정 부문 간과한 것이다. 지금 세계 에너지정책 기조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 심화, 분열과 보호주의 강화, 화석 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의 다소 ‘무질서한’ 전환 시도, 기후 변화의 영속적 폐해 가능성과 같은 종래와 다른 정책 수요가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결국 석유파동 5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1973년의 교훈을 냉철하게 되새겨야 한다. 필자는 ‘에너지 독립’이라는 개념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 (Chimera)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느 국가이든 오래 에너지 독립을 추구하지만, 깊이 통합되고 상호 연결된 세계 시장에서 그 독립 가능성은 매우 제약된다. 어떤 특정 산유국에서든 석유 공급 장애가 발생한다면 시장이 연료 가격을 결정하는 모든 국가의 유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순 석유 수출국의 지위를 가진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각종 연구에서 입증됐다. 따라서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단지 수입을 줄이거나 국산 생산증대보다 덜 사용하고 효율화하는 것에서 달성할 수 있다. 세계는 연비 기준을 부과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석유 사용감축 조치를 통해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에너지수입국의 경우 석유 위기에 따라 국가 차원의 원유 확보 장애 뿐 아니라 소비자 차원 적정가격의 휘발유 부족 사태에서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이는 유가 통제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채택된 복잡한 위험 할당 정책 때문이다. 석유 회사들은 정부 지침 등에 따라 원유 수입을 줄인 이후에 주유소 등 소매점에 대한 판매를 제한하는 시장 실패를 자초했다. 소비자 희생을 바탕으로 한 관-민 정책 야합으로 매도해도 할 말이 없다. 되돌아보면 1973년 당시 대부분의 석유는 장기 계약 형태였기 때문에 계약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대체공급원 확보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 현물 시장과 함께 다양한 대체에너지 시장, 그리고 청정 전환 시장이 잘 준비되고 갈수록 그 작동 효율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유럽의 러시아 가스 및 원유 가격 상한제 실시는 정책 실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격 신호 기능 약화는 항상 나쁜 선택이다. 더 많은 공급을 촉진하고 수요 억제를 통해서만 시장 및 정책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 그 대신 정책 당국은 시장 주도자 위치를 고수하기보다 저소득층과 취약 가구 지원과 보호에 더 큰 관심을 둬야 한다.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EE칼럼] 난이도 높아진 전력망 운영 해결사로 등장한 AI

1902년 6월부터 스위스 특허국에서 특허 신청 서류를 검토하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을 하던 아인슈타인은 이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1905년 여름, 아인슈타인은 다섯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중 하나가 <빛의 발생과 변환에 관한 하나의 모색적 관점에 대하여>라는 다소 모호한 제목의 논문이다. 광전효과를 다룬 이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탔다. 이 논문은 한 세기가 지나서 등장한 태양광 산업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태양광 발전이 태양 빛을 전기로 바꾸는 빛의 연금술이 된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바람을 이용한 배의 돛대는 노예와 함께 주요한 동력원이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풍차를 이용해 곡물을 빻았다. 네덜란드는 풍차를 제방 뒤쪽의 습지나 호수에서 물을 빼내 농경지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유럽의 풍차는 밀을 빻는 것부터 용광로의 풀무를 돌리는 등 다양한 산업적 용도로 활용됐다. 19세기에 증기기관이 발명되기까지 수 백년 간 유럽 산업에너지의 4분의 1은 바람에서 나왔다. 우리는 수시로 전등과 TV를 켜고 끈다. 전력망은 수시로 변하는 전력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급전가능(dispatchable)’한 발전원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를 켜는 순간 바로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태양이 얼마나 강렬하고 바람이 어느 정도 부는지에 따라 발전량이 수시로 달라진다. 이런 변동성은 태양광과 풍력 산업 성장에 장애로 작용한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많은 국가의 전력망은 에디슨과 테슬라가 살았던 100여 년 전 전력망을 처음 도입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게 작동한다. 날씨, 시간대, 요일, 계절에 따라 전력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대규모 송전 또는 발전 시설의 예기치 않은 손실과 같은 우발적 상황에 대한 관리도 중요해진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이런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는 발전소, 전력망, 수요 측 대응, 에너지 저장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70% 이상을 차지할 때 기후 조건에 따라 비용 최소화를 위해 유연성 자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이 최적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에 따라 온대, 열대, 건조, 대륙성 기후와 같은 네 가지 기후로 구분해 살펴보자.여름이 무더운 ‘온대 기후’에서는 여름에 냉방 수요로 인해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고, 겨울에 난방 수요로 인해 이 보다는 작은 피크가 발생한다. 겨울에는 평균적으로 풍속이 높아 풍력이 피크 수요 대응에 도움이 되고, 일사량과 강수량이 많은 여름은 태양광과 함께 수력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 기후’에서는 연중 전력 수요가 일정하다. 그러나 계절별로 풍속이 크게 달라지므로 건기에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 우기에는 발전량이 떨어져 수력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조 기후’에서는 계절별 전력 수요가 일정한 편이다. 태양광 발전량도 연중 균일하지만, 풍력 발전은 연초의 짧은 우기 동안에는 크게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성 기후’에서는 여름에 일사량이 최고조에 달하고, 겨울에 강한 바람이 분다. 태양광과 풍력이 상호보완적이므로 계절적 변동성에 대응하는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는 7년 만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엘니뇨로 인해 일반적으로 겨울에 아시아 대부분과 캐나다 서부의 날씨가 따뜻해지고, 중국 남부와 미국에 강수량이 늘어난다. 여름에는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특히 중미에 건조한 날씨를 일으킨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인 파나마 운하에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배가 산을 넘어야 해서, 갑문에 물을 채워 배를 높이 띄워 운하를 지나가게 한다. 가뭄으로 인해 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가툰호(Gatun Lake)의 수위가 낮아졌다. 이에 최근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 수가 줄었다. 전체 LNG 거래의 약 20%를 차지하는 아시아로 향하는 미국 LNG 선박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 발전소는 신속하게 켜고 끌 수 있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변동성에 대한 백업 발전으로 유용한 데, 엘리뇨의 영향 때문에 가스 가격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기후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쳐왔고 지금도 그렇다. 농경사회의 농민은 갈라진 논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도했고, 따뜻한 햇볕으로 벼가 익기를 소망했다.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시 기후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그러나 우리는 천수답 앞에서 기우제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산초 판자가 ‘아무리 봐도 풍차가 틀림없다’며 말렸지만, 30개가 넘는 거대한 괴물을 향해 창을 겨누고 돌격한 돈키호테가 될 필요도 없다. 발달한 인공지능과 모델링 기법을 토대로 기후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기후를 예측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EE칼럼] 도시가스 사각지대 농촌 난방, 해법은 바이오 매스

작년 겨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 고유가로 난방비가 폭탄을 맞았다. 국민들은 전년보다 50% 정도 늘어난 도시가스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난방비 걱정은 도시보다 시골이 더 심하다. 지금은 읍단위까지는 도시가스(LNG)가 들어오지만 그 외 대부분의 농촌 지역은 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취사에는 석유가스(LPG)를 쓰고 난방은 석유나 LPG, 심야전력을 이용한다. 그래서 보통 때도 농촌지역의 난방비는 도시 가정보다 많이 든다.요즘 필자의 고향 인근 담바우마을인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는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난방 공사가 한창이다. 약 50억원의 국·도비 지원을 받아 방치된 초등학교 폐교부지에 목재칩 보일러와 가스화 발전설비를 갖추고,인접한 장암리와 신대리 50여가구에 열배관을 연결하는 한편 가구마다 열교환기를 설치해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공사다. 여기에 쓰이는 연료(목재칩)는 괴산군에서 군유림 간벌 등을 통해 공급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이오매스가 가정의 주 연료였다. 60대 이상에겐 어린 시절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결과 당시 우리나라 마을 주변의 산은 모두 민둥산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정의 연료는 연탄과 석유로 대체됐다. 부엌에는 석유곤로가 취사를 담당하고 아궁이에선 구공탄이 장작을 대신했다. 1986년 평택 인수기지에 첫 입항한 천연가스(LNG) 보급은 늘어나는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단독주택까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제 가정 연료의 총아는 명실상부 도시가스의 시대가 됐다. 가정 연료의 변화는 황토빛으로 먼지를 날리던 민둥산을 푸르른 숲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제 동네 야산은 우거진 잡목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밀림이 됐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타다가 자칫 벗어나면 산중에서 헤매기 일쑤다. 잡목 숲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산림청에서는 해마다 벌목을 통해 수종을 개량하기도 하고 잡목을 걷어내는 간벌을 한다. 새롭게 연료로 복귀하고 있는 바이오매스는 이전과 활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래식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아궁이나 화덕에 바로 나무나 짚 등을 태워서 용기를 데우거나 방을 덥히는 방식이라 열효율이 5~8%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목재칩을 만들어 보일러 연료로 쓰거나 가스화해 연료로 사용하므로 열효율이 높고 배기 중의 오염물질 관리도 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적인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분류한다. 그렇다고 바이오에너지가 항상 재생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연간 재생산 범위 내에서 채취가 이뤄져야 한다. 해마다 자라는 식물량이 채취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예전처럼 민둥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생에너지로 분류한 중요 근거인 기후변화 저감 연료라는 점은 전주기 탄소배출을 평가해 인정해야 한다. 바이오매스는 성장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고 분해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므로 ‘탄소중립적’이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목재칩은 해상 운송 에너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탄소중립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국제바이오에너지파트너십(GBEP)에서는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과 임산자원의 수확 수준 등 24개 환경·사회·경제적 요인을 고려해 바이오 에너지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것을 권고한다.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바이오매스의 중요한 장점의 하나는 바로 ‘자립에너지’라는 점이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94%, 연간 250조원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자립에너지의 수입대체 효과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즉시 대응이 가능한 에너지라는 점도 장점이다. 담바우 마을의 지역난방과 발전은 마을 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에너지 소비의 핵심 시설을 주민이 직접 소유, 운영하는 것은 지역경제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한다. 일방적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에너지를 사용하던 소비자에서 에너지 생산자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로 유출되던 재화가 지역경제 내에서 순환하게 된다. 지역난방의 운영이 정착되고 경험이 쌓이면 지역에서 다른 에너지 산업으로 확대할 수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축산농가의 폐기물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다. 축산폐기물의 해양 투기가 금지된 2012년 이후 폐기물 처리는 축산농가와 정부의 비용이다. 하지만 축산폐수의 가스화를 통해 에너지를 추출하고 나머지로 액비를 만들면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협동조합이 주체돼 공공시설이나 공유지에 태양광 설비를 운영하면 안정적인 농가 수입은 물론 자립에너지 증가로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촌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은 전기농사와 다름없다.담바우마을을 비롯해 횡성, 완주, 양평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림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주민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운영돼 지역 에너지 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EE칼럼] 국제감축 활성화를 위한 그린ODA의 역할

올해 4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과 녹색성장 실현을 위한 국가 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는 NDC(국가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전환, 산업, 국제 감축 등 부문별 감축목표를 조정했다. 감축 준비가 안된 산업 부문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목표를 낮췄고,국제 감축 부문은 2030년에 3750만톤을 확보해야 하는 상향 목표치를 부여받았다. 당시 파리협약 6조2항에 기반해 우리 정부와 양자협력을 맺은 국가는 베트남 한 나라 뿐이었다. 오랜 기간 준비해온 덕분에 20개 이상의 국가들과 양자협약을 맺어 국제 감축으로 10년간 1억톤을 NDC 목표에 활용하겠다고 제시한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준비가 안된 건 사실이었다. 양자협력 대상국 확대, 시범사업 추진, 예산 마련 등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항들이 다행히도 매우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외교부의 노력으로 몽골, 가봉, 우즈베키스탄, UAE와 협약을 체결했고 페루, 모로코와는 체결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 20여개국을 우선 협력국으로 정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동시에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는 감축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진출을 지원할 시범사업 추진을 진행하고 있다.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속도감을 반감시키는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6조2항 양자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국과의 상응조정, 즉 온실가스 감축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양국 간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세부 지침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이를 위한 법령이 부재하고, 등록부 등을 마련할 역량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UNFCCC는 6조2항 사업 준비를 위해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가 2018년 기업들과 함께 미얀마에서 UN의 CDM(청정개발메커니즘) 사업을 진행할 때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고효율 쿡스토브 보급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하려면 땔감 사용량을 절감해 산림의 황폐화를 얼마만큼 방지했는지를 입증해야 했다. 당시 미얀마는 UN에 공식적으로 제출할 수 있는 산림 면적에 대한 통계 구축이 안돼 있어 베이스라인 선정이 어려웠다. 결국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 미얀마 산림청과 함께 1여년간 국가 통계작업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사업지연이 발생했다. 지금 6조2항 사업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문제점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도 제도를 준비해 추진하는 상황인데, 개도국 역시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 인프라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결국 역량 강화가 동시에 뒷받침 돼야 한다. 파리협약 6조8항 비시장 메커니즘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6조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ODA등을 활용해 지원하는 모든 것이 포함됨을 의미한다. 미얀마 사업은 기업들과 논의해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ODA는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지원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계획돼 있는, 또는 앞으로 수립할 그린ODA 계획이 국가 NDC달성을 위해 추진하는 국제 감축사업과 전략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 발생한, 앞으로 예상되는 개도국들의 어려움들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시의적절한 역량강화 지원이 ODA를 통해 뒷받침돼야 한다. 당장 베트남 정부는 6조2항 추진을 위한 법령 수립을, 우즈베키스탄은 ITMO 잠재량 파악에 대한 지원을 우리 정부 또는 국제사회에 요청하고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개도국 온실가스 통계 구축 역량지원을 해왔고, 역량강화를 위한 지식공유 사업은 오랫동안 정부가 ODA를 통해 지원해왔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이런 사업들을 잘 취합하여 국제감축 추진을 위해 협의되고 있는 중점협력국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지원해 사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국제감축 사업은 궁극적으로 국내 기업의 기술 협력을 통해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해 글로벌 기후대응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불합리한 관행이 있다면 과감히 깨고 우리와 개도국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개도국의 역량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린ODA의 핵심이다.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EE칼럼] 신규 원전, 해법은 이익공유 모델

전남 신안군의 인구가 증가했다. 1004개 섬을 보유하며 인구 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 고위험군에 포함됐던 신안군의 인구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 증가는 전국 최초로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효과다. 쏠라시티발전소가 자리잡은 안좌면은 38명, 이웃한 지도읍은 51명의 인구가 순 유입됐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태양광 이익공유 정책이 인구 유입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만 30세 이하는 전입 때 바로 태양광 배당금을 지급받을 수 있어 청년층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경제적 인센티브와 인구유입의 인과관계를 설명했다. 신안군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는 다른 지역 재생에너지 발전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군산시와 서부발전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새만금육상태양광 2구역 사업, 지역 번영회와 이익공유 및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지원하는 한국난방공사의 강원도 정선 태양광발전소, 적극적인 지역사회 참여를 이끌어낸 남동발전의 ‘해창만 수상태양광’ 등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이제는 지역상생 모델이 재생에너지 사업의 기본이 됐다. 이익 공유제는 지역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한 공기단축과 금융비용 절감, 지역업체의 사업참여 확대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익공유 약속이 없는 양수발전소도 비슷하다. 전체 인구가 1만6000명으로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경북 영양군은 양수발전소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범 군민 유치위원회가 설립됐고, 지난 8월에는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한 릴레이 캠페인을 벌였다. 수 백억원의 지역발전 지원금 확보, 연간 14억원의 지방세 수입등 직접적인 혜택과 함께 장기적으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10여년 전 영양댐 건설이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옛날 얘기’가 됐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이익 공유, 지역상생 컨셉트의 효시는 아니다. 십 수년 전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원전사업의 민간 참여를 추진했었다. 전문인력을 스카웃하고 회사 내에 원전사업 조직을 만들었으며, 민자원전 타당성 용역을 발주하는 등 대대적으로 투자를 단행했다.2030년까지 신규원전 규모가 400여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던 시기였다. 당시 필자가 정부에서 위탁 받아 수행한 과제가 ‘원전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간참여 타당성 연구’다. 몇 가지 방안이 검토됐지만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호응을 받았다. 대안의 핵심 중 하나가 원전사업을 개방해 SPC에 지자체(주민)를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지자체가 부지 제공 등의 투자를 통해 주주가 되고 발전소 운영기간 동안 이익을 공유할 수 있게 하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로 이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후쿠시마 사고 후 12년이 흘렀다. 기후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에너지안보와 탄소배출 저감,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보완 수단으로서 원전이 재평가되고 있다. 우리도 ‘실행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믹스 재정립’을 목표로 원전을 중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조기착수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원전이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11차 전기본에 신규원전이 반영되면 당장 착수해야 하는 일이 지역의 수용성을 전제한 원전입지확보다. 원전 수용성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지역 이장협의회의 원전유치 플래카드가 걸리고 자생적 친 원전시민단체가 생겼으며 반원전 시위에 맞불 집회가 열리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혁신형 SMR 국회포럼은 SMR 선두주자와의 격차를 해소하고 조기에 사업화를 추진하려면 SPC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10여 년 전 필자의 구상과 같다. 굳이 이익공유, 상생 등의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도 원전 소유형태는 국영, 공영, 민간 또는 혼합형태가 혼재 할 뿐 아니라 소유와 운전이 분리돼 민간 또는 지자체가 원전사업에 지분참여할 수 있다. 과제 수행 당시 에너지 전문변호사의 자문보고서 중 일부이다. "현행 전기사업법 하에서 전력산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는 동법이 정하는 허가의 요건을 구비하는 한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그밖에 원자력안전법 등에서도 발전용 원자로 등의 건설허가는 공기업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는 법률적 관점에서 지자체나 민간의 원전산업 참여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익 공유, 지역상생 모델이 재생에너지 사업의 전유물은 아니다.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EE칼럼] 영화로 본 에너지 이야기

타노스(Thanos)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미국 영화 시리즈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인물로 마법의 돌 여섯 개를 구해 손가락을 튕겨서 전 세계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버린 악당이다. 타노스에 맞서는 어벤져스는 타노스가 마법의 돌들을 모으지 못하게하려고 힘을 합친다. 이를 위해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고 자신의 희생도 불사한다. 타노스 같은 악당들은 여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해괴한 과학기술을 사용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으로 몰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악당들이다. 007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킹스맨 시리즈의 악당들도 이런 부류다. 그런데 문제는 타노스가 왜 이렇게 무자비하게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려고 하였는가이다. 그 원인은 타노스가 살던 고향별이 다름이 아닌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인해 망했기 때문이다. 타노스가 그 해결책, 그러니까 동족의 절반을 없애자는 방안을 제시하였으나 고향별의 지도자들이 듣지 않아 결국 별이 망하게 되자, 이제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세상이 망하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벤져스의 원작이 1950~1960년대에 제작된 마블(Marvel)사가 제작한 만화인 점을 고려하면 그 시절에도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이슈가 주요 이슈였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타노스가 자기가 찾은 여섯 개의 스톤을 사용해 인류의 절반을 죽이는 짓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자원고갈과 환경파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섯 개의 마법의 돌 중 하나인 테서랙트(스페이스 스톤)는 아예 청정한 에너지를 무한에 가깝게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영화에 나온다. 다른 스톤들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마법의 돌들을 잘 사용했다면 얼마든지 모든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대를 옮겨 한국 영화 ‘설국열차’로 가보자. 영화의 배경은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된 지구에서 단 하나의 열차만 생태계가 살아있고 그 열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줄거리다. 그런데 왜 지구가 그렇게 추워졌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방법이 지나쳐 지구의 온도를 너무 낮춰 버렸다는 설정이다. 인공적인 방법으로 너무나 차가워진 지구는 영화의 막바지에 가서야 스스로 생태계가 작동해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해진다. 일본의 대표 만화영화 작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 히트작인 ‘미래소년 코난’은 태양광에너지를 사용해 만든 초자력 무기로 지구가 파괴된 상황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속에 인공위성을 통해 태양 빛을 반사해 높은 밀도의 에너지를 무한정 생산하는 시설인 삼각탑은 현대의 기술로 태양열발전소다. 007 영화의 고전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에도 악당이 비슷한 시설을 사용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다. 그런데 만화영화에서 이 삼각탑을 움직이는 비밀을 알고 있는 라오 박사는 코난 등 주인공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찬양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무서움을 일깨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삼각탑은 악당과의 전투와 지진으로 결국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주인공들은 새로운 마을을 찾아 떠난다. 위의 영화들을 물론 여러 다른 영화들에서도 영화인들은 강력하고 무한한 에너지원은 전쟁과 파괴의 원인으로, 여럿이 협력해 얻을 수 있는 작은 에너지원은 좋게 그리고 있다. 아무리 청정해도 에너지원의 힘이 무한대가 되면 결국 지구를 멸망시키는 동력원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에너지 생산 및 사용 방식만으로는 영화에 나타난 문제들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세상이 모두 영화 같지는 않지만, 인류가 함께 노력해 그 해결책을 찾고 오랫동안 같이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EE칼럼] 멀고도 험난한 원전 정상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한울 2호기가 드디어 내년 4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결국 마음을 바꿔 지난 7일 신한울 2호기의 운영 허가를 승인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 허가를 신청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2018년 4월부터 가동을 시작하려던 당초 계획에서 6년이나 미뤄지면서 한수원은 엄청난 손실을 떠안았다. 신한울 1·2호기의 가동 지연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손실만 9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4500만톤에 달하는 온실가스 저감 효과도 날아갔다. 문재인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인 망국적인 ‘탈원전’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신한울 1호기와 2호기의 가동이 예정보다 각각 68개월과 72개월이나 지연됐고,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3·4호기의 공사도 늦어지고 있다. 원전 건설·가동의 지연은 파국적인 한전 적자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다.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한전이 kWh당 평균 정산 단가가 무려 76.9원이나 더 비싸고, 구입가격도 불안정한 LNG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탈원전을 정당화하려고 의도적으로 축소한 전력 수요 예측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작업’을 기반으로 올해 1월에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6년까지 필요한 전력 설비용량을 143.9GW로 전망했다. 그런데 정부가 기술 패권 시대에 우리의 생존을 걸기 위한 먹거리로 적극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반도체·이차전지 등의 첨단산업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전제로 한다. 삼성전자 등이 용인에 조성할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최대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도 만만치 않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마련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전력수요의 전망을 획기적으로 현실화하고,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신규 원전의 추가 건설은 불가피하다. 원전 추가건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국제 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주민 거부감이 심한 원전 부지를 확보하는 일부터 간단치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지 후보지를 해지한 대진·천지 원전 부지를 다시 확보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주민 설득에 필요한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지만 확보한다고 곧바로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형 원전 APR-1400의 경우 원전 1기를 짓는 데 5조원이 넘게 든다.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도 10년이 훌쩍 넘는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한 시점부터 따지면 원전의 기획·건설 기간은 20년이 넘는다.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처음 담겼던 신한울 3·4호기는 2032년에야 준공 예정이다. 그동안의 물가상승률도 고려해야 한다. 심각한 자본 잠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악화된 한전의 입장을 고려하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노후 원전의 계속 가동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고리 2호기를 비롯해 2030년까지 10기의 설계수명이 종료된다. 한수원이 설비 안전성을 평가하고, 원안위의 심사를 끝내는 데만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주민 의견을 수렵해서 운영변경 허가를 받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탈원전을 앞세워 백지화한 연장 가동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원전을 완공해도 곧바로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발전소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송전망을 깔아야 하지만 주민수용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현재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이미 송전 선로의 용량인 11.4GW를 훌쩍 넘어선 15.5GW에 달한다. 여기에다 신한울 2호기의 가동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더욱 절박해진다. 동해안과 신가평을 잇는 송전선로는 2025년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으로 15년째 답보상태다. 6년이나 걸린 밀양 송전탑 건설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다.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의 건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안이다. 현재의 습식 저장시설은 2028년부터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월성 원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식 저장시설이라도 서둘러 확대해야 하는 형편이다. 전력 다소비 업종인 제조업이 국가 중추산업인 데다 반도체,바이오,AI 등 첨단산업을 장착해야 하는 한국의 경제 현실에서 전력은 단순한 에너지를 넘어 경제혈류이며 국가안보다. 그 핵심이 바로 원전이다. 원전 확충은 정부와 한전만의 일이 아니다. 원전 생태계 회복과 시설의 적기 확충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E칼럼] 글로벌 녹색 중추 국가 도약을 위한 과제

지난 9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언급하였던 그린 ODA(공적개발 원조)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해 기후변화 개도국 지원 금융기구이자 우리나라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 (GCF)에 3000억 달러의 공여금 지원을 다시 확인했다. 또 그린 ODA를 통해 재생에너지,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 (CFE·Carbon Free Energy)를 국제사회의 누구나 폭 넓게 활용하도록 오픈 플랫폼인 ‘CF 연합 (Carbon Free Alliance)’을 결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녹색항로를 적극 개척하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앞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제사회에 공여금 기여, 녹색기술과 인프라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원을 통한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녹색 사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밝힌 우리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는 국제사회의 녹색 중추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정부의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에서의 선도적인 역할은 과거 녹색성장 정책 추진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 당시 정책-금융-기술의 녹색 트라이앵글을 구축하기 위해, 개도국을 지원하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GGGI) 설립을 주도했고, 유엔 기후변화 금융기구인 녹색기후기금 (GCF)을 유치했으며, 녹색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현재의 국가녹색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개도국 지원을 위해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이라는 ODA 프로그램도 추진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하에서는 10대 기후기술을 정해 지원하고, 다소 급하고 무분별하게 외국사례를 받아들인 면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기후변화가 국내 정책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의 우려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글로벌 녹색 중추국가 추진을 위해서 앞으로 몇 가지를 좀 더 보완해야 한다. 첫째, 현재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분야의 개도국 지원은 정부가 주도하는 ODA의 영역에서 민간부문과의 협업을 강조하는 혼합금융(Blended Finance)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개도국은 정치적, 제도적 위험이 많은 데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시행하기에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교육훈련과 함께 향후 민간부문이 개도국에 진출해 많은 기여를 하고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의 ODA 기관들은 아직 이런 역할을 중심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국제사회의 규범과 연대를 강조하는 중추국가로서 기후변화 분야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의 규범과 연대가 이뤄지는 중심에서 우리 역할을 키워가야 한다. 바로 인류 역사상 뉴욕을 제외하고 가장 큰 정상회의 3개가 모두 열렸던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를 중심으로 G20 등 관련 협력체제를 활용해야 한다. 기후통상 국가인 우리의 글로벌 녹색 중추국가의 실현의 출발과 끝은 이런 유엔 등 다양한 다자체제의 기후변화 관련 다양한 메커니즘을 활용하면서,인도·태평양 전략 등 구체적인 지역 및 소다자 체제를 통해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와 녹색기후기금 등 우리가 주력하는 대상 협력기구들과의 협력의 초점은 우리의 가치와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드는데 두어야 한다. 우리의 가치와 표준이 들어가지 않은 기여금 증액은 공허하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와 표준을 만들어 가는 국제기구에 금전적 기여만 한다면 중추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위상 정립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표준과 가치를 국제사회에서 드높이는 글로벌 녹색 중추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져 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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