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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AI 시대에 걸맞은 새 제도 설계해야

인공지능 열풍의 진원지가 된 챗GPT- 3.5는 무려 1750억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해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실제 정보와 일치하는 정보를 출력하는 과정을 거치는 초거대 AI다. 챗GPT-4는 이 보다 더 많은 매개변수에, 텍스트는 물론 영상과 이미지까지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복합 정보처리) 모델로 그 활용도가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미세 조정(Fine-tuning)만 하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해 전이 학습이 가능하다. 이른바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이 본격 출현했다. 최근 인터넷에 챗GPT-4를 이용하면 이용자가 제시한 내용을 알아서 정리해 발표 자료를 작성해준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발표 자료 준비가 한결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 며칠 후에는 챗GPT 이용자들이 입력한 내용에 회사 기밀이나 민감한 개인정보도 많은 데, 이런 내용을 운영사인 오픈AI가 볼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청이 유럽연합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 위반 조사를 위해 챗GPT 접속을 일시 차단한다고 발표해 챗GPT 이용 관련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 국가별로 개인정보로 보호하는 데이터의 범위나 규제 정도는 다르지만,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수집·활용하는 많은 데이터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2020년 개인정보의 식별이 어려운 가명정보 개념이 도입됐지만, 실무에서는 가명 처리 비용이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재식별 위험성으로 인해 애초 기대보다 활용도가 낮다. 정보주체의 권리의식이 강해지면서 개인정보 보호 규제 역시 강화되고 있지만, 개인정보를 활용한 사회적 편익과 비례성도 유지돼야 한다. 허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라면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피하고자 원본 데이터의 통계적 변수 분포와 상관관계만 모방한 재현 데이터(합성 데이터)를 만들어 새롭게 생성된 가상의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재현 데이터를 주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해 제공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다만 여러 데이터 항목이 조합되거나 원본 데이터 자체 분포가 편중된 경우에는 아직 정보 주체의 재식별률이 높은 편이라 재현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학습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데이터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GPT 개발사인 오픈AI에서 내놓은 DALL-E 2나 스태빌리티AI사의 스테이블 디퓨전은 이용자가 텍스트로 지시하면 그 내용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학습한 데이터 세트에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이미지 중에는 저작권이 인정되는 이미지가 있고, 심지어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미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이미지 제공업체인 게티이미지는 스테이블 디퓨전이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스테이블 디퓨전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이런 법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국회에서도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저작물에 적법하게 접근해 창작성을 향유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있는 개인정보의 침해 문제나 저작권 위반 문제는 그런 법 제도가 현재처럼 인공지능이 발달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정보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출판업자들이 독점 출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장했던 저작권의 기원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규범이 만들어진 취지를 감안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이슈&인사이트] 한·EU 외교 60년, 향후 과제는

한국과 유럽연합(EU)의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시작된 지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EU는 유럽의 평화와 경제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럽국가 통합기구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시작된 이 통합체는 냉전 시대와 경제위기를 거치며 변화를 거듭했다. 한국전쟁 이후 유럽의 중립국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관여하고 있으며 서울과 평양에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도 있다. 한국과 EU는 1963년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협력을 확대하며 정치·경제·안보와 같은 핵심 분야에서 ‘전략적동반자관계’로 발전했다. 양측은 2011년 발효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주요 무역파트너가 됐고 이제는 공동 군사작전을 실시하며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개발도상국을 돕는 일에 협조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U는 한-EU FTA를 계기로 아시아 지역에서 특혜를 제공하는 통상 규범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019년에 싱가포르, 2020년에는 베트남과 각각 FTA를 발효한 것이 대표적이다. EU는 중국과 일본 등과 투자협정 또는 경제적동반자관계협정(EPA) 등을 체결해 특혜를 제공하는 통상법 인프라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EU 집행위원회는 2018년 12월 한국이 한-EU FTA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며 제13장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조항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규정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EU FTA 제13장에 반영됐다. 이후 EU는 캐나다, 싱가포르, 일본, 베트남 등과의 통상조약에서도 유사한 규정들을 반영했다. 한국에 대한 EU의 조치는 이 규정을 근거로 한 첫 번째 사례다. 이후 한국은 2021년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에 가입했고 결과적으로 양측에 관련된 국제법과 국내법 질서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 EU와 영국은 ‘영국의 회원국 탈퇴’(브렉시트)로 유럽 단일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고 새로운 조약을 체결했다. EU와 제3국 및 영국과 제3국의 특혜무역 관계도 새롭게 설정돼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한국과 영국 정부는 한-EU FTA에 기반한 특혜를 지속하고 안정적인 무역환경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빠르게 한-영 FTA를 체결했다. EU가 한-EU FTA 체결이후 아시아 국가들과 특혜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영 FTA도 영국과 아시아 국가들에게 비슷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한국과 EU의 관계가 확대되는 동안 국제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졌고, EU도 냉전 종식으로 인한 동유럽 회원국의 참여나 브렉시트와 같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는 COVID-19 확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한국과 EU의 관계 및 국제사회에 주요한 도전이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U가 FTA와 같은 특혜협정을 체결하면서 ‘유럽의 가치’를 상대방에게 강조하고 많은 특혜 협정들이 한-EU FTA의 기준들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EU FTA 개정 논의와 같은 미래의 과제들은 양측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수교 60주년이 흐르는 동안 국제사회에 새로운 지형이 형성됐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사회의 지형에서 양측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EU의 관계는 둘 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제사회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협력해야 한다. 양측은 새로운 6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법학박사 EU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산림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자

올해는 1973년 시작된 산림녹화(국토녹화)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개인적으로는 산림청과 인연을 맺고 산림정보화와 산림정책 등의 자문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4월5일 식목일을 맞아 산림과 탄소중립,산림과 ESG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산림청은 국토녹화 50주년을 맞아 올해부터 2027년까지 5개년 계획인 ‘선진국형 산림경영관리를 통한 산림르네상스 추진 전략’을 통해 ESG를 실천하고 있다. 산림청이 지난 5년간 추진한 주요 정책을 살펴보자. 먼저 산림자원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산림자원을 조성하고, 목재이용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산림의 가치향상을 위해 7만5000ha의 경제림 조성과 109만ha에 달하는 숲 가꾸기를 실시했다. 2020년에 목조건축의 높이ㆍ규모 제한 규제를 폐지하고 제천과 춘천 등에 목재산업단지를 조성해 국산목재 활용을 촉진하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평소 "목재를 이용하는 것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건축과 실생활에서 목재 사용을 늘리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다음은 기후변화 분야로,산림청은 산림탄소중립전략 마련과 생태복원 등을 통해 산림건강성을 증진에 힘쓰고 있다. 민관협의회 합의로 ‘2050 산림부문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도출했다.산림의 순환경영과 보전ㆍ복원으로 2050년 탄소중립에 2670만tCO₂를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리왕산, 섬숲 등 산림생태 복원을 추진하고, 산림복원ㆍ황폐화 방지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열대림 보전·복원 ‘글로벌산림재원서약’ 동참, 황사ㆍ미세먼지 저감 한·몽협력 등 국제산림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안전 분야에서는 지능형 대응체계 구축, 안전관리 강화로 산림재해에 대비하고 있다. 산불 대응에 드론, 산불확산예측시스템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고 산불진화 헬기,산불재난 특수진화대 등 정예 진화자원을 신속하게 투입하고 있다. 산지태양광시설의 허가기준 강화와 전문기관 점검 의무화로 안전을 확보하고 산사태 취약지역 조사 및 사방댐 조성을 확대하고 있다. 산림복지 분야에서는 코로나19 회복 지원과 산림복지서비스 다변화를 추진했다. 코로나19 대응인력과 자가격리자 등 총 1만4556명을 대상으로 372차례에 걸쳐 산림치유를 실시하고 반려식물 4000그루를 제공해 ‘코로나 블루’ 극복을 지원했다. 도시숲의 체계적 조성ㆍ관리를 위한 ‘도시숲법’ 제정과 국가숲길 도입, 국가정원 지정(태화강) 등을 통해 산림복지 저변을 확대했다. 산림청은 윤석열 정부의 비전인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를 ‘산림 르네상스’ 비전을 통해 산림에도 구현하고 있다. 국토면적의 63%를 차지하는 산림은 핵심자원으로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경영, 다양한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산림전략의 ‘재탄생(renaissance)’을 추진하고 있다. 산림행정을 경제ㆍ환경ㆍ사회ㆍ문화의 미래 정책수요까지 포괄하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한 융합과 통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산림청의 ‘산림 르네상스’ 정책이다. 산림녹화 5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100년을 준비할 시점이다. 산림에서 100년 지속가능한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다. 고령화, 산촌의 인구 감소,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원자재난 등의 경제위기에서 산림자원을 활용하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민간의 산림부문 투자를 유도하고 산림규제를 풀어 임업경영을 1·2·3차 산업을 아우르는 6차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국제사회 기여차원에서 50년 산림녹화 노하우인 ‘K-Forest’를 한국의 대표 ODA(공적개발원조)로 전략화할 필요도 있다.문형남 숙명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한국AI교육학회 회장

[이슈&인사이트]토지거래 허가제 폐지 검토할 때

최근 들어 서울 압구정과 목동 등 주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어달라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에 강남구와 양천구 등 해당 자치구에서도 서울시에 해당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요청했다. 주택시장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토지(주택)거래가 급감하고 가격이 급락한데다 주민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목동신시가지의 경우 지난해 부동산 거래량이 86건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전인 2020년(707건)의 12% 수준으로 급감했고 가격도 최대 6억6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 1월 신속통합기획(주택재개발) 후보지 16곳과 공모추천지 5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다시 묶었다. 이에 해당 지역 토지소유자들이 강력 반발하며 서울시와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대한 재산권 침해 논란은 1980년대 제도도입 당시부터 이어지고 있다. 정부 당국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다 싶으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고,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며 반발한다. 투기를 방지하고 정상적인 거래질서를 확립한다는 취지로 1979년 1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입된 토지거래허가제는 도입 당시부터 지나치게 사유재산제도의 본질을 침해한다는 위헌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1988년과 1992년 두차례 합헌 결정했다. 합헌 결정 근거는 투기적 거래를 방지한다는 제도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사유재산권 제한이 불가피하고 다른 적절한 방법이 없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토지거래허가제가 무조건 합헌으로 봐서는 안된다. 1988년 위헌심판에서 5대4로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이 많았지만 위헌결정 정족수인 6명에 못미치며 합헌결정이 이뤄졌다. 1992년 심판에서는 앞선 1988년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 별도의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서울시가 재건축 단지 등에 적용하는 주택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제는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 첫째,헌재 판단은 토지거래허가제가 다른 제도보다 강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어디까지나 토지거래허가제를 투기방지를 위한 우선적인 제도로서 활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후적 수단으로, 제한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에 둔 해석이다. 정부가 나서서 대부분의 부동산 규제지역을 풀고,대출을 완화하며,유주택자의 조세 부담을 경감하는 등 부동산 시장 침체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시 취지에 비춰 최소침해성 원칙에 위반된다. 둘째,헌재 판결례에서의 토지거래허가제도의 범위는 ‘토지’ 거래행위에 대한 것이다. 헌재는 1988년 결정에서 "토지거래허가제는 그 주된 목적이 토지의 투기적 거래 억제에 있다"고 봤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토지거래허가제는 재건축·재개발 등을 예고한 ‘주택’에 이를 적용. ‘주택거래허가’의 목적으로 제도를 운용해 개인의 사유재산권이나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현 시장 상황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정말 필요한 지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고 실수요에 따른 정상적인 거래 마저 막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투기적 거래를 방지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토지거래허가제까지 도입해야 할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그러나 시장 상황에 따라 그 필요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가 사유재산권에 대한 지나친 제약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서민들이 합리적으로 거래여부를 판단해 자연스러운 시장경제의 흐름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토지거래허가제를 풀 것을 제안한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슈&인사이트] 중소기업만 잡는 중대재해처벌법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같은 해말까지 이 법률 위반으로 입건된 사건 수는 229건에 달하지만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고작 11건이다. 이 중 중견기업 1건을 제외하고 10건은 모두 중소기업·중소건설사다.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대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특히 중소건설사가 최악이다. 11건의 사고 중 7곳이 중소건설사인데 이들은 직원수가 10∼40명인 소규모 기업이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이거나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공사 현장의 경우 이 법률의 적용이 내년 1월 27일까지 유예되지만,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이라도 공사대금 50억 원 이상 건설공사 현장은 이 법률이 적용되고 있다.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사고발생 및 사법 리스크가 크다. 이는 일찌감치 예상된 것이었고 전문가들이 이미 누차 지적해 왔던 문제다. 경제적 약자를 돕겠다고 입버릇처럼 호언장담하는 한국 국회가 도리어 여건이 어려운 중소기업, 특히 소규모 건설기업에게 대형 사법리스크를 안긴 셈이다. 더구나 수사 장기화로 이들 기업은 2차 피해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수사기관(노동청ㆍ검찰)이 경영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11건)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237일이다. 노동청 수사가 평균 93일이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다시 144일이 걸렸다. 판결을 받기까지가 아닌, 검찰이 기소하는데 걸린 시간만 이 정도다. 법률 시행 후 1년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판결이 난 사건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건 처리가 이처럼 장기화되는 이유는 우선 누가 과연 경영책임자인가를 가려내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법률에는 ‘사업대표’와 ‘이에 준하는 자’를 경영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중 누가 경영책임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의무를 이행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복수의 대표이사와 사업부문별 대표이사를 둔 경우도 피의자 특정을 위한 조사에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그런데 법률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입건 및 기소된 경영책임자는 모두 대표이사다. 현재까지 CSO(최고안전보건책임자)를 선임한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CSO가 경영책임자로 기소된 사례는 없다. ‘대표이사에 준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만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위반 사실 자체를 확정하기도 어렵다. 사고 발생시 법 위반 사실을 증명하려면 경영책임자의 고의와, 고의와 사고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경영책임자의 관리책임 위반을 발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고를 발생시킬 고의까지 증명해야 하는데, 세상에 어떤 경영책임자가 고의로 사고를 내기를 원하겠는가. 사고의 경우 증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증거 또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로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의 경우에도 일단은 경영책임자가 수사를 받아야만 한다. 더구나 노동청과 경찰의 수사경쟁으로 수사 인력이 방대해지고, 중복수사도 만연한 실정이다. 현장 및 본사 압수수색, 대표이사 입건, 상당한 범위의 관련자 소환조사 진행 등 수사 범위가 넓고, 기존 사건의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사건이 계속 발생ㆍ누적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본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법률이다. 이미 같은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 이 법률을 개정하면 될 일을 국회의원들이 서민들의 표를 긁어모으고자 무리하게 만든 법률이 오히려 서민을 울린다. 요즘 변호사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특수로 작년 로펌들의 매출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접수됐고 검찰 내부 및 법무부 연구용역 결과에서 위헌성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법률 같지도 않은 이 엉터리 법률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국회는 책임지고 조속히 이 법률을 폐기하고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일원화하기 바란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상호 칼럼] 한일관계 정상화의 전략적 의미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을 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관련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 이후 경색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이번 방일은 아무리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지적과 한국이 일본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추진됐다. 정상회담 성과는 가시적이다.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적용된 수출규제 해소, 대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철회,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원복 조치를 합의했다. 한일관계 정상화 배경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및 서방과 러시아, 중국 등의 관계가 빠르게 경색되었고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앞으로 5년 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과 중국의 군사 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비를 이미 시작했다. 우선 국제사회 편 나누기다. 누가 친구이고 누가 방관자며 누가 적인지 분명이하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도 향후 이 지역에 닥칠 풍파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갈등과 감정 대립을 극복하고 한·미·일 삼각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 역량을 제한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 통제를 위한 칩4 동맹,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빙자한 중국 경제 고립 정책,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 동맹 강화 등 다양한 전략적 포석을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약해진 러시아의 공백을 중국이 메워 더욱 강해지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여 러시아의 전력을 낭비하게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힘 빠진 러시아를 부양하기 위해 국력을 소모하게 되어 위협이 축소될 수도 있다는 거시적 전략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국교 정상화 중재 등 중동지역에서 영향력 확대,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위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재, 대만 및 주변국에 대한 압박 강화, 남중국해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군사 대결 확산 등을 시도하여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고립 및 잠재력 소진 전략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미국의 압박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며 국제사회 영향력을 강화하고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한 중동 지역 등 미국의 전통 우방국을 교란하여 미국의 대중 포위망 구축을 방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여러 정치적 실험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미와 반미 사이를 오락가락 했다. 좌파 정권은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찾는 시도라고 평가하며 노골적으로 반미, 친북·친중 정책을 구사했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었으면 6·25 한국전쟁 때 공산화돼 지금의 신흥 선진국으로 부자 나라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일부 정치 세력은 이 사실이 불쾌하고 이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이 세력은 지금의 한·일 갈등을 초래한 집단이기도 하다. 한미관계 혼란이 한국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한 문제라면 한일관계는 더 원초적이다. 한국은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은 굴욕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은 아직 최근의 기억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간섭을 받으면서 오랜 세월 치욕을 당했지만, 일본에 대한 미움이 크다.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인식과 더불어 독도 분쟁, 일본 정치권의 계속되는 망언, 우파 정서 확산 등의 문제가 한국의 반일 정서를 자극한다.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건 북한과 중국이다. 북한은 한국을 지원하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갓끈’을 제거하여 한국을 고립시켜 적화한다는 ‘갓끈 전술’을 구사했다. 중국은 사드 문제 등을 꼬투리 잡으며 한미관계를 집요하게 이간질했다. 중국 전통의 ‘오랑캐는 다른 오랑캐로 견제한다’는 ‘이이제이( 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해 한국을 괴롭히고 일본과의 관계를 모함하며 한국이 중국에 대한 저항과 대항을 어렵게 조작해왔다. 한일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다양하나 현재 국제 정세하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중 대결의 최전방에 있다. 국제관계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어제의 적도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친구는 아니지만 말이 되는 대상과 아닌 대상이 있다. 냉철하게 누가 내 편인지 구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공동 이익과 번영을 추구하는 미국과 일본은 적어도 한국 편이다. 중국은 한국 편도 아니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북한은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번 관계 정상화는 단지 양국이 지역 평화에 공동 대응하는 동반자 관계 수립만 아니라 충돌하는 미·중 양대 세력 사이에서 한국의 미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첫 번째 의미 있는 걸음이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이슈&인사이트] 시진핑의 3연임과 한국의 대중 전략

[이슈&인사이트] 시진핑의 3연임과 한국의 대중 전략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지난 4일부터 13까지 개최된 중국의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시진핑, 미국, 그리고 경제다. 시진핑 주석은 회의에 참석한 전인대 대표 2952명 전원으로부터 만장일치 찬성을 얻어 국가주석과 국가군사위주석에 선출돼 3연임을 확정했다. 자오러지 상무위원과 왕후닝 상무위원도 예상대로 각각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정협 주석이 됐다. 시진핑 주석의 복심인 리창이 국무원 총리로 선출되고, 중앙판공실 주임으로 지근거리에서 시 주석을 보좌해 온 딩쉐샹이 상무 부총리로, 시 주석의 핵심 경제브레인 허리펑이 부총리로 국무원 수뇌부에 진입하며 시진핑의 정부 장악력이 한층 강화됐다. 그리고 중국의 이른바 ‘전랑 외교’를 상징하는 인물인 친강 외교부장이 국무위원으로 한 단계 승격하고 미국 제재 리스트에 올라간 리상푸는 국방부장으로 기용됐다. 미국의 고강도 견제에 대응하기 위한 당 직속 기구의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먼저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됐다. 반도체 수출 금지 등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고 기술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이 직접 챙기겠다는 복안이다. 그리고 ‘중앙금융위원회’를 당내에 부활시키고 중앙금융위원회에 조응할 집행기관으로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을 국무원 직속 기구로 신설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당이 금융 권력마저 거머쥐는 그림으로, 시진핑 주석이 총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시’가 가능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총리의 역할은 더 축소되는 셈이다. 양회는 경제성장률(GDP) 목표를 5% 내외로 잡았다. 이는 코로나 19 봉쇄 충격으로 인한 데미지와 높아진 대외 불확실성, 그리고 정부부채 관련 우려 등을 반영한 보수적인 목표 수준으로 평가된다. 저장성, 장쑤성, 상하이시에서 외국인 투자와 민영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업적을 쌓아온 리창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개혁개방을 흔들림 없이 심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창 총리는 개혁개방 지속 방침이라는 슬로건 아래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경제 즉, 공동부유와 빅테크 기업 규제 등으로 인한 민영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3연임 축하 축전을 보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교류와 협력을 한층 더 심화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직면할 도전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와 장기화로 인해 중국사회가 경성화되고 있어 한중관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상당 기간 동안 시진핑 중심으로 돌아갈 것임을 감안해 시진핑 개인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대중국 대응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둘째, 시진핑 주석이 정협회의에서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만큼 미중간 경쟁과 충돌 양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미중 양국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경제안보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와 함께 한국의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한국의 무역수지가 악화되어 왔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리창 총리는 전인대 폐막식 직후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 경제 전망을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가니 앞날을 기대할 만하다’는 뜻의 ‘장풍파랑 미래가기(長風破浪, 未來可期)’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5% 내외로 정했지만 골드만삭스는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5.5%에서 6%로 상향 조정해 중국경제가 둔화 국면에서 성장 쪽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 대한 투자는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지만, 무역역조 해소를 위해서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시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며 판매자(seller)로서 중국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駐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중국 駐시안 총영사

[이슈&인사이트]주택 미분양 해법은 부담가능한 가격

고금리에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발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국내 주택시장 침체,특히 미분양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주택이 7만5359가구에 달한다. 증가속도는 매우 가파르다. 미분양주택은 지난해 3월과 6월에 각각 2만7000가구, 2만8000가구 수준을 유지하다가 같은 해 7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해 8월 3만3000가구에 이어 6개월만에 127% 폭증했다. 미분양 폭증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주택사업자와 금융기관의 경영악화로 연결돼 금융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미분양 주택은 잠재적인 빈집이다. 빈집이 증가하면 그 지역은 경제적으로 활력을 잃고, 환경적으로 슬럼화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공동체가 와해될 수 있다. 이미 농촌지역은 빈집이나 폐가들로 인하여 회복력(레질리언스)을 거의 상실했으며 이런 현상은 중소도시로 점점 더 확산되며 지역의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비해 미분양 주택은 도시의 빈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도시 빈집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미분양 주택 문제는 경제 문제를 넘어서 지속가능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연이은 주택시장 활성화 조치로 최근 미분양 주택 증가추세가 약간 꺾이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주택시장 활성화 조치의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불투명하다. 주택 미분양의 원인과 실태를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월 대비 변동보다는 좀 더 길게 과거 추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지난해 7월부터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게 된 이유는 뭘까. 공급과잉 탓일까,아니면 고금리 때문일까. 지난해 전국의 공동주택 공급실적은 분양승인을 기준으로 28만7624가구로 전년 대비 14.5% 감소했다. 이전 5년에 비해서는 9.8% 줄었다. 이를 반추어보면 과잉 공급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은 고금리로 귀결된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빠른 속도로 인상하면서 덩달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급상승했다. 이로 인해 급증한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은 신규 분양 열기를 앗아갔다. 문재인 정부들어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 폭등세가 지속되면서 서울의 경우 연 소득에 대한 집값 비율인 PIR이 20배에 육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끼지 않고는 기존 주택이든, 분양주택이든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분양을 줄이고 주택시장을 살릴 수 있는 해법은 뭘까. 고금리가 내린다면 미분양 주택이 줄어들까, 아니면 주택가격이 내린다면 고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분양받으려 할까. 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 치솟은 분양가격은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일반 무주택자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하에서,어떻게 해야 주택구입에 나설까? 주택 구입 목적에 따라 다르다. 실거주와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실수요자들에게는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부담가능한 주택(Affodable Housing)일 때 구입에 나설 것이다. 이에 비해 투자(투기) 목적인 경우는 당장의 대출부담보다는 주택 가격 상승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다. 주택 미분양의 해법은 결과적으로 금리를 내리거나 일반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리는 대외변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낮출 방법은 없다. 금리는 올해 상반기에 정점을 찍은 뒤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나 소비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현 상황에서 결국은 실수요자들의 눈높이에 맞는,부담가능한 분양가 수준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길 밖에 없다.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아파트 분양 전망 지수가 전국 67.8(수도권은 59.0)로 어둡다. 이런 상태라면 2∼3년 후에는 미분양은 물론 준공 후에도 빈집 상태인 악성미분양이 넘쳐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당국과 건설업계가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지속가능과학회 회장

[기고]ALPS 처리수 방류 과학적으론 문제없다

지난해 말 친원전 시민단체인 사실과과학넷 소속의 대표단이 후쿠시마를 다녀왔다. 대표단이 전한 바에 따르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60km 떨어진 후쿠시마시의 공간 선량률은 서울보다 낮은 0.06~0.1마이크로시버트(μ㏜)였다. 물론 아직도 귀환 금지 구역은 유지되고 있고 그 면적은 후쿠시마현의 2.3%에 해당하는 322㎢다. 대표단이 전한 소식 중 놀랄 만한 것은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대부분의 지역에서 방호복 착용이 불필요하고 약 4%의 면적에서만 방호복을 착용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 국토 전부가 오염되어 아무도 살지 못할 것이라는 탈원전 운동원들이 떠오른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처리수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언론을 통하여 전달된 것과 특별히 다른 것이 없었다. ALPS 시스템을 이용하여 대부분의 핵종은 제거하고 삼중수소만 희석해 방출할 예정이다.처리수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복수의 수조를 만들어 방류할 물과 함께 희석한 처리수를 섞은 해수가 들어간 수조와 처리수가 섞이지 않고 해수만 들어 있는 수조에서 광어, 전복, 조개류 등을 400마리씩 대조 양식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후쿠시마에 보관되어 있는 삼중수소는 780테라베크렐(TBq)로 삼중수소 총량으로는 2.2g그램이다. 1년 동안 대기 중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우리나라 동해에 떨어지는 삼중수소 3g과 비슷한 수준이다. 동해에 떨어지는 3g과 태평양으로 배출하는 2.2g을 비교하면 일부에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쿠시마 당국은 이를 매년 22TBq(0.062g)로 나누어 1L당 1500Bq로 희석한 후 길이 1㎞의 지하 배수관을 통해 심해로 방류할 계획이다. 제한치가 1L당 6만Bq이니 40분의 1로 희석돼 아주 미미한 양이 방류된다. 단번에 방류한다는 가정으로 한국원자력학회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7~8개월 후 우리나라에 도달할 때 삼중수소의 양은 1조분의 1로 희석된다고 하니 인체에 전혀 무해한 수준이다. 이와 같이 과학적 데이터가 보여 주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 언론에서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이후 후쿠시마 인근 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선박의 평형수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후쿠시마에서는 1L당 1500Bq로 희석하여 방출한다. 현재 국가별 삼중수소 음용 기준은 호주 7만4103Bq, 핀란드 3만Bq, 미국 740Bq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L당 1만Bq 이하면 마셔도 건강에 해가 없다고 본다. 즉, 1500Bq은 마셔도 되는 기준이다. 더구나 후쿠시마 인근 항구에서 평형수를 취수할 때는 1500Bq이 상당 수준으로 더 희석된 상태가 된다. 이 물을 선박의 평형수로 사용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을까? 농도에 대한 언급 없이 주장하는 논리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일본이 규정대로 방류하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약속한 기준대로 방류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행히 윤석열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다르게 과학 기술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에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일은 없다. 과학기술이 다시는 이념이나 정치에 오염되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박상덕 서울대학교 원자력연수센터 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일본 자동차 산업의 오판

일본의 자동차산업 수준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일본자동차 업체들은 항상 글로벌 제조업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었다. 필자도 20여 년 전에 토요타의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인 토요타 테크니컬 교육프로그램(T-TEP)을 국내에 처음으로 대림대학교에 유치하면서 일본의 선진 자동차 산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는 토요타의 혁신적인 생산기술인 TPS 등을 기반으로 하는 ‘Just In Time’ 등 다양한 생산 기법이 알려지던 시기였다. 이렇게 해서 당시 ‘토요타 웨이(토요타의 생산방식)’가 세계 자동차 생산의 표준이 됐고 이에 대한 각종 책자가 발간되며 토요타 웨이 열풍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외제차로 벤츠와 BMW가 대세지만 토요타는 아직도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인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양적으로도 1위를 달리고 탄탄한 판매네트워크로 해외에서 프리미엄과 가성비로 무장한 한국산 자동차와도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자동차 시장의 영원한 맹주로 군림할 것 같았던 토요타도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시대변화에는 고개를 숙이는 형국이다.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 등 친환경 산업으로의 구조개편을 독촉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차 시대가 급속도로 저물고 전기차가 대세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지난해 글로벌시장의 전기차 판매량은 1000만대에 달한다. 같은 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800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의 판매비중이 10%를 훌쩍 넘어섰다.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속도는 더 빨라져 2025년에는 2000만대 이상으로 3년만에 2배 넘게 팔릴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늦어지며 산업의 위기감이 감돈다. 토요타는 물론이고 혼다와 닛산도 마찬가지다. 일본 내수 시장에서도 전기차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연간 신차 판매량이 500만대에 달하는 일본에서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는 5만9000대로 겨우 1%를 넘는 정도다. 이에 비해 일본 신차시장의 30% 수준인 우리나라는 지난해 12만대의 전기차가 팔리며 누적 판매량이 40만대에 이른다. 올해는 전기차 판매량이 27만대로 지난해의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한 탓이다. 이렇듯 일본 자동차 산업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중국 등 신흥국에까지 밀리며 침몰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필자도 일본 도쿄오토살롱 참관 등을 통해 현지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서 현재의 일본 자동차 산업을 갈라파고스에 빗대 ‘재팬 갈라파고스’라는 말까지 나온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은 ‘충분한 전기차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식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토요타가 내놓은 신형 전기차 bZ4X의 현대차 아이오닉5에 비해 두 단계는 뒤떨어진다는 평가다. 실제로 아이오닉5는 지난해 3월 일본에 재진출하면서 ‘올해의 수입차’로 선정됐을 정도다. 전기차는 ‘우스갯 소리로 개돼지도 만든다’고 하지만 안전이나 시스템의 안전성, 흑자모델 등 다양성에서 큰 기술적 차이가 난다. 토요타가 큰 소리 치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력도 시장에서 입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샘플모델 출시와 다수의 특허 등을 앞세우지만 현 여건에서 토요타의 전고체 배터리의 대량 생산은 2030년에야 가능하다. 한국의 배터리 3사를 비롯해 중국 등에서 시장 선점에 들어간 데다 자동차 제작사들이 ‘내재화’를 선언한 상태라 제품 생산이 뒤늦은 토요타가 시장을 장악하기란 힘들다.이런 가운데 한국에 이어 중국의 전기차들도 일본 내수시장 공략에 힘을 쓰고 있다. 중국의 BYD가 올해초 도쿄오토살롱에서 완성도와 가성비를 앞세운 전기차를 선보이며 일본 시장 진출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이 차는 주행거리가 400㎞를 넘고 가격과 품질경쟁력도 높다는 평가다. 일본 자동차산업의 쇠퇴는 지난 수 십 년간 세계를 주름 잡은 맹주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이 전기차 시대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제도적·재정적 지원 확대와 민간기업 차원의 연구개발 및 전문인력 육성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순간의 선택이 산업의 흥망을 좌우한다.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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