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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안중근 의사 사상적 배경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단지(잘린 손가락)’ 그림을 들고 ‘굴종 외교 중단’, ‘강제동원 해법 무효’ 등을 요구하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사상적 배경을 폄훼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대부분은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폄훼하지만 한편으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아는 일본인들의 추모 열기도 대단하다. 매년 안 의사 서거 기념일에는 십 수명의 일본인 추모객이 참여한다. 2010년 서거 100주기 행사에는 안중근연구회 소속의 일본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안중근연구회는 안도도요로쿠(安藤豊祿) 오노다시멘트 회장 등이 1979년 창설했으며 현재 회원이 2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안 의사를 추모하는 것은 안 의사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는 추호도 나쁜 생각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처형 직전까지 한일 친선과 동양평화를 강조했다. 안 의사의 유묵 ‘일한교의선작소개(日韓交誼善作紹介·일한 친선은 서로를 잘 아는 데서 생긴다)’처럼 그 내용뿐 아니라 어순에서도 ‘일한’이라고 일본을 앞세워 일본을 배려하는 포용성을 보여줬다.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안중근의 재판-안중근과 칸트의 사상 비교연구’ 논문에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한·중·일 동양 3국의 평화에 있었으며, 이토의 저격은 이토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핑계로 동양평화의 공적이었기에 제거한 것이지 반일의 동기는 아니다"고 했다. 안 의사의 동양 평화론 구상은 서구의 침략에 대응해 한·중·일 동양 3국이 ‘평화회의’를 조직, 공동화폐를 주조하고 공동의 군단을 구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는 게 골자다. 그래서 칸트의 ‘평화연맹’과 유사하면서도 그 구상을 넘어선 현재의 EU에 가까운 형태다. 1909년 10월 26일 거사 이후 1910년 3월 26일 처형될 때까지 4개월 동안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보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안 의사를 직접 접한 일본인들은 모두 안 의사의 동양 평화론에 감화됐다. 담당 교도관인 치바 토시치는 고향인 미야기현 다이린사에 안 의사를 가신으로 모셨다. 이후 가신의 전통은 장년인 우에노 도시코(上野俊子)에게 전승됐다. 뤼순 감옥 형무소장 쿠리하라(栗原貞吉)의 딸 이마이(今井房子)도 안 의사를 가신으로 모신다. 검사 야스오카 세이시로는 안 의사의 인품과 신앙심에 감화돼 안 의사와 같은 가톨릭교도가 됐다. 안중근을 직접 심문한 미조부치 타카오도 안 의사를 살인범이 아닌 지사(志士)로 존경했다. 교도소의 교화 승 츠다 카이준, 통역관 소노키 스에요시 등 거의 모든 일본인 관헌들이 안 의사에게 감화되었다. 안 의사는 이들에게 총 200여 편의 유묵을 기증했는데, 그들은 대부분을 한국에 반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 의사가 반일이었다면 이들의 감화는 불가능했다. 안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 변호사의 수첩에 쓴 친필 4행시가 오사카 마이니치신문(1910년2월22일 자)에 소개됐다.내용은 ‘곡돌사신무견택(曲突徙薪無見澤·곡돌에 섶을 제거한 이는 혜택을 바라지 않는데)/ 초두난액위상객(焦頭爛額爲上客·머리를 태우며 이마가 짓무른 이가 상객이 되는구나)/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네)/ 위일비위한(爲日非爲韓·일본을 위한 것이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네)’이다. 안 의사는 한서 곽광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자신이 이토를 저격한 것은 큰 재앙을 미리 내다보고 화근을 없앤 선각자적인 위업으로 일본을 위한 것이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적시했다. 안 의사의 사상적 배경은 반일이 아니라 동양 평화론에 기초한 상호 선린의 한일관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창업역량 강화로 산업 활력 키워야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발표한 ‘한국산업 역동성 진단과 미래 성장기반 구축’ 보고서에서 "다이나믹 코리아는 옛말"이라며 한국의 산업 역동성이 위기라고 경고했다. 국내 산업은 성장잠재력 약화, 일자리 창출 능력 저하, 사회갈등 심화와 같은 이유로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필자는 사회계층 이동의 역동성이야말로 그 사회의 역동성을 견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이전 시대에 비해 사회계층의 이동이 활발했다. 조선은 신분상승에 있어서 이전 고려와는 다른 혁신적인 사회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노비를 제외한 양인은 누구나 과거시험을 통해 양반이 될 수 있었다. 원로 역사학자인 한영우 교수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양인의 문과급제비율이 40.4%에 달했다. 이후 선조 때 16.72%까지 낮아졌다가 다시 꾸준히 올라 고종 때는 58%에 이르렀다. 공부만 잘 하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국가가 조선이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신분이동이 역동적이었다는 점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계층 이동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분기점을 만들었다. 사회계층이동은 때로는 급진적으로 이루어졌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귀족계급이 누리던 자리를 부르주아계급이 차지했고, 볼셰비키혁명은 공산주의자들이 지배계급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대,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혁명보다는 개인의 노력을 통해 사회계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계층 이동성이 그 사회의 역동성을 대변한다. 미국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현대사회에서의 사회계층이동성을 상징한다. 필자는 최근 전 세계의 여러 대학을 방문하고 대학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국가의 대학들이 스타트업 교육 및 육성에 열성적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미국 등의 대학들은 이미 IT, AI와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창업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여겼던 필자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태국의 한 대학에 창업관련 시설과 활동을 보고는 우리나라 창업교육에 대해 ‘우려’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발전한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한다. 이런 저력은 바로 뜨거운 교육열에서 나왔다. 과거에 경제가 연 10% 이상씩 성장하던 시기에는 대학만 나오면 쉽게 취업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소위 일류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백필규 박사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달라졌고, 지식습득 환경이 바뀐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과거처럼 대학 서열대로 기업에 취업이 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산업화 시대에는 업무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성실하게 일하는 인재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습득한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고 환경변화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기회를 발견하는 능력이 중시된다. 이런 능력은 창업역량을 강화하는 데서 길러진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에서 창업 공부를 하고 창업 시도를 해 보는 근본적인 이유다. 대학 재학 중 창업역량을 키움으로써 기업이 찾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공적인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창업역량을 기르고 창업시도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일부 모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창업정신을 기르고 역량을 키워서 취업과 창업의 기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창업교육에 대한 관심은 선진국이나 개도국 할 것 없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선진국 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창업교육 수준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창업교육에 대한 투자가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을 인정하고 국가가 정책적으로 더욱 지원해야 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감동 없는 전경련의

"사마란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불어로 ‘쎄울 꼬레아!’를 선언했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얼싸안았다. 얼싸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득표는 나의 예상 46표에 여섯 표나 추가된 52표였다." 현대(차)그룹 창업주 정주영이 쓴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나오는 얘기다. 1981년 한국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일본(나고야)을 52대 27로 꺾고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그 맨 앞에 정주영 유치준비위원장, 아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있었다. 국민들은 기적을 만든 정 회장과 기업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재계의 ‘맏형’ 전경련의 전성기였다. 박근혜정부 아래서 전경련은 암흑기를 맞았다. 국정농단의 조력자로 전락했고, 존폐의 기로에 섰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줄줄이 탈퇴했다. 몇 몇 총수는 홍역을 치렀다. 후임을 찾지 못해 허창수 회장이 여섯 차례 연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적폐 청산을 외친 문재인 정부는 전경련을 대놓고 패싱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전경련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김병준이 지난 2월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경련은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회장 대행은 지난주 혁신안을 내놨다. 단체명을 62년 전 창립 당시 이름인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합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김 회장 대행은 "그동안 정부 관계에 치중하는 가운데 역사의 흐름을 놓쳤던 부분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혁신안을 총평하자면, 미안하지만,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간판 바꿔다는 건 우리나라 정당이 늘 하는 일이다. 그런다고 달라진 건 없다. 윤리경영위원회를 두면 과거 미르재단 모금처럼 회원사 등을 떠미는 일이 과연 사라질까? 전경련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다는 말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검은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당연히 탈정치화가 돼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과 가까운 외부인사가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차기 기업인 회장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변신이 진심이라면 전경련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 기업을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경제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김 회장 대행은 "경실제민(經實濟民) 철학에 입각해 국가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실 경제라는 말 자체가 경국제민 또는 경세제민에서 나왔다. 제민이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돈 벌고 일자리만 만들면 된다고? 30년 전이라면 맞는 얘기다. 지금은 다르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 워런 버핏은 부자한테 세금을 더 물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그래야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소득 양극화 고질병을 앓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외면하면 존경받는 기업, 기업인이 될 수 없다. 노조에 대해서도 좀더 대범한 자세가 바람직하다. 불법을 용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전경련이 매양 노조와 으르렁대는 모습은 보기에 민망하다. 노조 대응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맡기는 게 낫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단체라면 무게감이 남달라야 한다. 전경련은 지난주 집권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해 정책을 건의했다. 내용은 안 봐도 비디오다. 상속·법인세 등 세금 내려달라,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을 재검토해달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범위를 명확하게 해달라 등 모두 10개 항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경련이 정부와 정치권에 대고 하는 소리는 오십보백보다. 오로지 기업 이익만 내세우면 자잘한 이익단체와 다를 바 없다. 김 회장 대행은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진심이라면 삼성 등 4대 그룹에 재가입을 압박해선 안 된다. 행여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에 출연을 강요해선 더더욱 안 된다. 국민과 야당, 심지어 노조가 깜짝 놀랄 전경련 연구보고서를 보고 싶다. "이 보고서가 전경련에서 나온 거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는 돼야 한다. 그래야 진짜 재계의 맏형답다.▲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이슈&인사이트]전기차 시대 현대차·기아가 사는 법

한국에서 중국 자동차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인들은 중국 로컬자동차를이 가장 많이 구매한다. 반대로 지난해 기준 중국 시장에서 한국계 자동차는 점유율이 1.7%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범위를 좁혀 전기차 시장만 보면 중국계 전기차가 중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가장 많이 판 자동차 회사도 중국 기업인 비야디(BYD)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중심의 자동차 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을 오랜 기간 지급하면서 중국계 전기차 기업이 급성장 했다. 이렇게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운 중국 전기차는 중국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 중국은 311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해 독일을 제치고 일본에 이어 2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107만대를 수출하며 95만4000대에 그친 일본 마저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중국이 이처럼 선전하는 것은 중국 전기차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중국 시장에서 중국 로컬 기업에 크게 밀리자 미국, 유럽 등 대체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자동차가 어느 정도 이를 커버해준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지난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부문 약진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게 되면서 점유율이 급락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IRA와 유사한 핵심원자재법(CRMA)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부문의 보호주의를 강화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은 2032년 신규 출시하는 자동차 중에서 전기차 비중을 67%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내연기관차에서 경쟁력을 가진 미국과 EU는 세계 자동차 시장이 급격히 전기차 중심으로 바뀌면서 보호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차 중심 자동차 시장에서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들의 순위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자동차 판매 세계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올해 1분기에는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이 세계 1위 토요타를 앞질렀다. 향후 현대차·기아가 토요타와 폭스바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선전은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부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반면, 일본이나 독일은 전기차가 내연차 판매 축소분을 상쇄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폭스바겐과 토요타는 중국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 유지했지만 중국 시장이 빠르게 전기차 시장으로 전환하면서 중국내 판매가 감소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 로컬 자동차 기업이 외국계 기업을 앞서고 있다. 중국 전기차가 이처럼 선전하는 것은 중국의 배터리 경쟁력에 기인한다. 전기차 특성상 배터리가 자동차 가격에서 비중은 매우 높다. 중국의 CATL은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35%가 넘는 독보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차 기업인 BYD는 자체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어 전기차 생산단가를 낮추는 데 유리하다. 유럽과 미국이 전기차에 대한 장벽을 강화하면서 중국 전기차 기업과 배터리 기업은 유럽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유럽 및 미국의 자동차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 자동차 기업과 이차전지 기업의 약진이 기대된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시장 보호주의난관을 넘어야 하고 중국 전기차 기업 및 이차전지 기업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부품의 수직계열화로 내연 자동차의 경쟁력을 크게 높인 경험이 있다. 전기차 시대에서 현대차·기아가 사는 법은 국내 배터리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선제적 대응기술의 진화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도구를 활용한 삶을 살아왔다. 필요한 부분에 적절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했다. 이처럼 기술은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지만 기술을 사용하려면 사용자가 직접 조작하고 제어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사용자의 도움 없이, 기술 스스로 환경을 감지하고 사용자의 요구를 예측하면서 그때마다 필요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사용자가 필요를 깨닫기도 전에 해결방안을 제공해 불편함을 해소시켜주는 기술을 ‘선제적 대응기술’이라고 한다. 선제적 대응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기술적 뒷받침과 고도화된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사용자들의 역량과 이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서비스 모델의 부재로 구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과 사용자들의 기술수용역량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 하기 시작했다. 국내 가전기업에서 선보이고 있는 선제적 대응기술은 고객 서비스의 한 형태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제품의 작동 상태를 사전에 감지하는 기능이다. 이 기술은 제품의 이상 작동이나 고장을 예측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조치함으로써 고객에게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된다. 자동차 수리업체에서는 차량의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고장 예측과 정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기술은 고객과 기업 모두에게 혁신적인 편의와 가치를 제공한다. 그러면 혁신적인 선제적 대응 기술을 어떻게 하면 더 고도화 할 수 있을까? 첫째,제품에 사용자의 맥락을 읽을 수 있는 기술이 적용돼 사용자의 행동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제품과 사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개선하고, 사용자가 더 나은 경험을 느끼도록 지원해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둘째,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정해놓은 동작이 수행되는 기술이 고도화돼야 한다. 예를 들어 휴가를 떠나 장기간 집을 비울 때 시간대에 따라 집 안의 조명을 자동으로 켜고 끌 수 있도록 하고 집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외부의 사용자에게 즉시 알림을 보내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제적 대응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공공서비스에 도입할 경우 전기, 수도, 가스 등의 사용 추이나 통신비, 의료비 등의 연체 현황과 같은 정보들을 서로 연계해 위기 상황을 신속하게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령자 거주지에 이 기술을 도입할 경우 일정 시간 동안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호자에게 자동으로 연락이 가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령자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신속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입주민의 수도 사용량 등의 정보를 분석해 이상 징후가 관찰될 경우 관리사무소에 알림을 보내는 서비스를 구현할 수도 있고 누수나 비정상적인 수도 사용 등의 문제를 조기에 감지하고 조치할 수 있다. 선제적 대응기술의 최종 목표는 고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동시에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이나 정부는 궁극적인 사용자 만족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선제적 대응기술은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여 사용자가 기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리한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돼야 한다. 시장에서 성공적인 선제적 대응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의미 있는 데이터 분석결과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즉각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의 분석과 의미 있는 결과의 도출은 선제적 대응기술의 성공적인 구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선제적 대응기술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그 범위와 수준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 편의와 고객만족은 물론이고 각종 위험으로부터 안전과 보안을 지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선제적 대응 기술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내연기관 자동차 vs. 전기차 승자는?

130여년을 이어온 내연기관차가 갖고 있는 재미는 무엇보다 ‘운전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변속기를 이용한 변속의 재미다. 진동과 소음은 물론 노면 소음과 풍절음 이 융합돼 ‘운전’이라는 재미를 준다. 그런데 최근 급속이 확산되는 전기차로 인해 기존의 엔진과 변속기가 배터리와 모터로 대체되면서 운전의 재미가 없다는 이가 적지않다. 한편에서는 기계음(엔진소음) 등의 소음과 진동이 없어진 정숙성 높은 전기차의 등장을 반기기도 한다. 어쨌든 전기차 시대는 오고 있다. 소비자들은 재미냐, 정숙성이냐를 놓고 선택의 폭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만큼 내연기관 자동차업체와 전기차 업체의 주도권 경쟁은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내연기관 자동차업체 입장에서는 전기차의 등장은 달갑지 않을 수 밖에 없고 전기차와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 완성차업체 중 내연기관차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해 온 BMW, 포르쉐, 토요타 등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사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차를 을 중심으로 기존 내연기관차 중심의 사업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업구조 고도화 등을 통해 디젤 차량 생산을 유지하거나 그 밖의 내연기관차로 투자 대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존의 내연기관 엔진체계를 이용하면서 탄소중립 등의 시대조류를 따라가기 위한 해법을 수소에서 찾는다. 수소전기차 또는 수소연료전지차로 불리면서 아예 수소탱크를 싣고 산소와 결합하는 소형발전기인 수소연료전지 스택을 활용해 동력원으로 운용하는 방법이다. 1960년대 우주선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시스템을 자동차로 발전시켜 지금의 수소전기차가 탄생했다. 현대차의 ‘넥소’와 토요타의 ‘미라이’가 이 방식으로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수소로 기존 엔진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수소엔진차를 들 수 있다. 20년 전 BMW가 기존의 엔진 시스템을 활용해 연료로 수소를 넣어 연소하는 방법으로 연소 후 배출되는 가스는 거의 없고 물만 배출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BMW7시리즈를 변형해 ‘하이드로젠7’이라는 브랜드로 100여대를 생산해 글로벌 스타들에게 리스하는 형태로 운영했다. 당시 국내에도 소개돼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후 기술적·경제적 한계에 부딪쳐 생산을 중단했고 수소전기차로 진화했다. 얼마 전 도쿄오토살롱에서 토요타의 전통모델인 86을 기반으로 제작한 AE86 두 가지의 수소전기차가 선보였다, 두 모델 모두 변속기 5단은 그대로 사용하여 운전의 재미를 선사하는 모델이다. 토요타는 항상 언급하는 것이 미래형 모빌리티로 변신하면서 ’운전의 재미‘를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수소탱크를 차량에 싣고 기존 엔진의 인젝터와 점화플러그, 연료파이프 등 부품일부를 교체하여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변속기도 그대로 사용하는 장점도 있고 생산현장, 부품업체 등 모두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갈 수 있다. 최근 또 하나로 부각되는 것이 이-퓨얼(E-Fuel: Electricity Based Fuel· Eletro Fuel)이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고 여기에 이산화탄소와 질소를 혼합해 제작한 특별 연료로 기존 엔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배출되지만 이를 포집해 연료로 다시 사용하는 만큼 탄소중립 실현도 가능하다. 역시 BMW 및 폭스바겐 등에서 언급하는 연료로 폭스바겐에서는 칠레에 이-퓨얼 연료 생산 시설을 만들었다. 다만 가격이 너무 높아 2040년은 돼야 가솔린 등 기존 연료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흠이다. 수소전기차나 수소엔진차 모두 수소의 효율적인 생산이 관건이다. 물에서 수소를 얻는 수전해 방식을 위해서는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해 수소를 얻는 ‘그린수소’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린 수소를 대량으로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가 살 수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자동차와의 경쟁이 흥미진진하다.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식생활에도 ESG와 탄소중립 고려해야

우리는 평소에 ESG(환경·책임·투명 경영)를 잘 실천해야 하며, ESG를 고려한 소비를 통해 ESG를 생활화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식생활에 있어서도 탄소배출량을 고려해서 탄소 감축에 도움이 되는 음식 소비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요리 교육기관들도 요리 교육시 ESG와 탄소중립에 대해 교육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음식의 탄소배출량(탄소발자국)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탄소발자국은 개인이나 조직에서 소비하는 모든 것에 대한 원료 채취부터 시작해 만들고, 사고 팔고, 유통되고, 버려지는 데 드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것을 말한다. 탄소발자국 수치가 높을수록 지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음식으로부터 초래되는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의 26%로,이산화탄소 137억톤에 해당한다. 우리가 음식을 소비할 때도 탄소배출량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주요 음식별 탄소배출량은 1kg당 소고기가 60㎏의 가장 많고 양고기 24㎏,치즈 21㎏,초콜릿 19㎏ 순으로 주로 육류에서 많이 배출된다.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도 탄소발자국(1000㎈당 탄소배출량)은 양고기 20.9㎏,소고기 13.8㎏,참치 5.3㎏,칠면조고기와 돼지고기 각 4.5㎏,쌀 2.1㎏,감자 1.5㎏,두부 등 콩류와 토마토 1.4㎏,땅콩버터와 너츠 0.4㎏ 순으로 역시 육류의 탄소배출량이 많다. 따라서 탄소감축을 고려하면 육류보다는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육류를 소비할 때도 탄소중립을 생각한다면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낫다. 요즘 채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채식은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을 뿐만 아니라 ESG 측면에서도 탄소배출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동물성 식품 섭취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섭취하면 당뇨병 발생 확률을 34% 낮출 수 있다. 식이 섬유를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장 활동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탄소는 지구 온난화 현상을 일으켜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이 중 고기를 얻는데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감자, 콩, 두부 등에 비해 10배 이상 많다. 채식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기후 과학자 조셉 푸어와 토마스 네메섹은 가장 보편적인 식품 40종을 가공하는 과정을 포함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소고기는 식품 중 탄소발자국이 가장 크다. 소고기의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았다. 단백질 1g당 소고기의 탄소 배출량은 가금류의 9배, 돼지고기의 6배, 콩의 25배로 집계됐다. 푸어와 네메섹의 분석 결과 단백질 1g당 소고기의 탄소 배출량은 탄소 배출량 2위로 드러난 양고기보다 2배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 소비자들의 식생활에 있어서 ESG와 탄소배출을 고려하는 관심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요리 교육기관들도 요리 교육시 ESG와 탄소중립에 대해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요리 교육기관들의 ESG와 탄소중립에 관심과 교육 역량은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아동요리협회와 세계푸드테라피협회 등은 선도적으로 요리 교육시 ESG와 탄소중립에 대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주목된다.세계아동요리협회와 세계푸드테라피협회는 채식을 교육한다. 스마트팜으로 재배한 채소로 건강한 샐러드를 만들어 당뇨병·비만·고혈압등 성인병 개선을 위한 교육과 ESG경영을 실천한다. 세계푸드테라피협회와 세계아동요리협회는 자체적으로 ESG를 실천하고 있다. 이들 협회는 ESG메타버스발전연구원·대한민국ESG메타버스포럼·K-헬스케어학회 등과 협력해 교육과정 중에 탄소중립과 ESG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ESG 실천에 앞장서기로 했다. 요리교육기관들에 ESG와 탄소중립 실천이 확산되기를 바란다.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SG메타버스발전연구원 원장

[특별기고]윤석열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대북 정책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올해 윤석열 정부가 받아 든 가장 절박한 숙제는 한미동맹 복원과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지난 10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방미성과와 지난 1년간의 대북정책에 대해 여야가 엇갈린 평가로 맞서고 있다. 야당은 "깡통외교, 굴종외교, 호구외교"라고 비판하고 여당은 자화자찬이다. 윤 대통령도 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대통령직에 취임한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안보 만큼 큰 변화가 이뤄진 분야가 없다"고 자평했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댔던 대한민국의 안보도 탈바꿈했다"는 윤대통령의 자신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막연한 선의나 장밋빛 희망에 기댄 외교’ 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중앙일보의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72.2%)은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찬성표를 던졌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천착했던 문재인인 정부의 노력이 빈 손으로 남은 것에 대한 허탈감과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다. ‘북한을 믿을 수 없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 국민은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강화된 한미동맹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지금 몹시 초조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유럽과의 협력,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의체(QUAD ), 나토, 한미일 삼각공조 등으로 중국 봉쇄 고삐를 조이는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하락한 북한의 존재감은 더욱 작아질 수 밖에 없다. 북한은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에서 중국에 더욱 밀착하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만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중국에게도 북한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무시당하는 것과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을 못 참는 북한은 향후 군사적 행동 수위를 높이다가 조만간 핵실험까지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도발이라기보다는 ‘날 좀 보소’라는 관심끌기용 읍소에 가깝다. 그렇지만 당장은 한국정부도 미국 바이든 정부도 북한과의 대화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 구도에서 미국의 주된 관심은 대 중국견제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막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넘어서는 ‘중국 경쟁 2.0(China Competition Bill 2.0)’ 법안을 추진 중이고, 대 중국 봉쇄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 간 북한 핵 공격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선언’한 것 자체만으로도 확장 억제력 강화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워싱턴 선언’만으로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확보한 경우 미국 정부가 워싱턴으로 미사일이 날아올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한국 방위에 발 벗고 나서줄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안보는 불안한데 핵무장하겠다고 동맹국인 미국과 각을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의 약속(워싱턴 선언)만 믿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한국의 딜레마다. 그래서 핵 공유까지는 안가더라도 핵우산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내실 있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한미간 ‘워싱턴선언’부터 한일 ‘셔틀외교’ 복원까지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간 가치에 입각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협력 노선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가 한층 강화될 모양새다. 미 국무부는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진정한 리더십 사례"라며 극찬하지만 전략적 명확성을 선택한 윤 정부를 바라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윤 정부에게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2년이 됐다. 이후에도 소형 전술 핵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무기들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 선언’ 이후 북한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달 고체연료 기반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첫 시험 발사한 이후 아직까지 심각한 무력도발은 감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오랜 대북제재와 함께 코로나 시기 동안 국경이 닫혀 국내경제도 어렵고 정치도 불안정하다. 미국이 계속 북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진 북한은 결국 한국정부와의 대화나 협상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한미관계가 좋은 반면 북미관계가 막혀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 이때가 바로 한국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북한도발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양보만이 답이 아니듯 강 대 강 대응도 능사는 아니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북한과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잃을 것이 더 많은 곳은 한국이고 결국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이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튼튼한 한미동맹과 확고한 억제력을 바탕으로 긴장완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도 모색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노력을 펴야 한다. 워싱턴선언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자제하면 한미도 자제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게 인식시킨다면 불필요한 갈등의 증폭을 피할 수 있다. 대북정책 관련한 남남갈등은 그간 상수로 존재해왔다. 대북전단금지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또 다른 남남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 문제 해소에는 진보·보수, 여·야를 떠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납북자 가족을 만나는 등 북한인권 문제를 다시 주목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조지 허버트는 "나쁜 화해라도 화해하는 것이 좋은 판결을 받는 것보다 더 낫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 만큼은 북한 눈치보기나 정치적인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지난 7일 서울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본이 빠진 지난 한미정상회담의 세부적인 내용이 내심 궁금해 기시다 총리가 방한을 서둘렀다는 추측도 있다. 한국의 대일외교도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북핵에 대한 한일 양국 공조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곧 G7, NATO, G20, APEC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과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중요한 외교 이벤트가 줄지어 대기 중이다. 이제는 ‘북핵문제와 불안정한 한반도’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 외교를 펼칠 때다.송문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정치칼럼니스트

[특별기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외교통상분야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외교통상정책 성적표는 ‘미흡’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이념외교를 펼쳐 사실상의 반일·반미 노선을 걸은 것을 수정하는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신 냉전체제와 북핵 위협이 현실화 되고 있고, 신 보호주의가 국제통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다. 그래도 미국과 일본에 성급한 ‘러브콜’을 보내는데 급급하고, 국내적으로 친미세력의 찬사를 받는 수준의 외교에 머물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는 이미 정치적 화해를 넘어 정말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단계까지 악화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판정한 대법원 판결의 강제집행 문제를 이제는 종국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엄연히 대법원의 배상 최종판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우리 정부가 설립한 재단이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대위변제)해 주려하더라도 이들이 변제금을 자발적으로 수령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일본기업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권리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동맹 70주년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대위변제를 해법인양 제시해버렸다. 일본의 반응이 유보적인 이유다. 우리가 대일 무역 맞보복을 철회했는데도 일본은 대한 무역보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국제중재에 회부해 구속력 있는 국제재판 판결을 받아내면 된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 3조가 일방당사국의 회부로도 중재절차가 진행되도록 이미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법원 배상판결이 국제법 위반임을 국제판례가 확인해주어야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국회가 특별법을 통과시켜 대위변제를 통해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모두 소멸시킬 수가 있다.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한일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문재인 외교가 무시한 이런 진정한 해법이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에 의해서도 방치되고 있다. 바늘 허리에 실을 꿰어 양국간 민감한 현안들을 바느질해 나가려 하는 셈이다. 지난 4월27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워싱턴선언’을 채택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반도에 실효성 있는 핵억지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최대 현안이다. 미국 정상이 강력한 핵우산을 제공하고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문서로 확인했기에 확장억제 체제가 강화됐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대포장된 것은 문제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고 확장억제 체제를 구축한 것은 이미 오래됐다. 북한의 핵 위협의 심화 정도에 비례해 미군의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횟수도 어차피 늘려야 할 일이었다. 확장억제 강화를 정상간의 합의로 선언한 것이 성과라면, 이를 대가로 한국 정상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을 공식 확인해 준 것은 역사적 부담이다. 가장 확실한 핵억지 수단은 자체 핵무기 개발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리면서라도, 어떻게든 핵 개발 포기라는 약속만은 공식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처럼 핵물질 재처리를 통해 수천 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비축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기존의 확장억제 체제를 재확인하고 어차피 강화해야 하는 핵자산 파견을 증대하는 합의에 그친 상황이 아닌가.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과 안전보장 조약을 체결하고 핵을 포기한 실수의 대가를 오늘날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하고 핵 위협에 직면한 상황으로 치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핵을 암암리에 개발하려 해도 개발단계마다 워싱턴선언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미국은 전기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 수출제품을 차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차별적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급감하고 있고, 반도체 분야는 사실상의 기술이전을 요구받고 대중국 반도체 투자를 제한받고 있다. 유럽과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 규제를 받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나,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처럼 자동차와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나라는 없다.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도 대중국 투자를 통한 생산의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이런 미국의 신 보호주의 정책의 구체적 기준이 마련된 것이 지난 1년 동안인데도 정부는 로비는 커녕 그 정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은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수백 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확약했다. 이러한 투자의 대가로라도 정부가 챙겼어야 할 반대급부는 실종된 상태다. 한미FTA를 통해 경제동맹까지 맺고 있는 국가의 대표자가 백악관과 미 의회를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그 생명줄인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의 차별문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동맹국 간 공급망 협력을 심화해 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나, 상대국 핵심 산업의 축소나 공동화를 초래하면서도 투자를 압박하고 핵심 산업정보 제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 70년을 정리하는 정상회담이니 만큼 ‘호혜의 원칙’이 양국 경제동맹의 기본가치가 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어야 했다. 윤석열 외교는 ‘한미 가치동맹’을 공언하고 워싱턴선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다.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러한 ‘가치의 공유’를 넘어 ‘가치 동맹’을 결성하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배타적 블록에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윤대통령은 직접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고 언급했고,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지원을 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진정한 가치외교는 그걸 대놓고 선언해서 주변 전체주의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처럼 국가책임자가 나서서 이를 외쳐대는 것이 오히려 그러한 가치외교를 정말로 펼쳐나가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의 이념외교의 유산을 떨쳐내려 하면서 또 다른 이념외교를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선린·실용외교의 길이 다시 멀어지고 있다.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특별기고]윤석열 정부 취임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정치분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은 야당이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지배하는 태생적인 한계와 함께 여당 내 당권을 둘러싼 불협화음도 그 어느 정권보다 컸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직선적인 성격이 국정에 그대로 투영된 1년이었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물려받은 유산부터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3분의 2의 압도적인 국회의석을 앞세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틀을 앞두고 ‘검수완박’ 법안까지 처리해 윤 정부의 검찰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만료 직전까지 수많은 공공기관 임원과 기관장들을 민주당 사람들로 가득 채워 사실상 정부가 바뀌어도 2~3년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문재인 사람이 넘쳐나는 정부가 되었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 온 윤석열은 초보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치적 계산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언급함으로써 비판을 자초하기도 한다. 표를 의식하고 돌아가야 할 길을 무조건 직진하여 불필요한 반발을 초래하기도 한다. 반면 그것이 옳은 길이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치적 이익은 결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인간 윤석열의 특성은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 곳곳에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의해 지배된 분점정부로 출발했다. 분점정부는 협치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기에 어느 쪽이든 양보해야 하지만 서로 양보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직전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대표로 선출했는데, 이 대표는 적어도 7~8개의 의혹과 혐의를 가진 형사피의자 신분으로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도 형사피의자인 이 대표를 만날 생각이 없고, 민주당도 그런 대통령이 원하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의사가 없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민주당은 또 다른 혐의로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될 것이 두려워 단 하루의 공백도 없이 임시국회 회기를 연장해오고 있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 속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제출한 법안은 입법이 무산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년간 국회는 한동훈 법무장관 대 민주당 의원들의 설전이 벌어져 아이들 싸움만도 못한 허접한 일이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국회의 유일한 순기능은 경제적 어려움에 지친 국민을 웃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교육·노동·연금 등 3대 개혁은 이뤄지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운 시급한 사안이지만 제21대 국회의 임기 말까지 어떤 진전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윤 대통령은 이른바 ‘도어스테핑’이라는 출근길 간이 인터뷰 방식으로 기자들과의 즉석 인터뷰를 도입했다. 이는 국정의 주요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어 국민과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발언으로 발목을 잡힐 수도 있고 국정운영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 채택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결국 유엔 방문 때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짧은 만남 직후 실언 파동으로 중단되었다. 주요 정책이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성적표는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문재인 정부에서 많은 덕을 보았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매우 부정적이고, 개혁추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겐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건설노조, 화물연대, 공공운수노조 등의 구조적 악행이나 특권의식에 대한 법치 회복에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전면 투쟁으로 맞서는 식이다. 개혁이나 변화는 기득권을 해체해야 가능하기 에 기존 질서에서 이익을 누리던 기득권 세력의 극심한 반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어떤 개혁이든 찬반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국가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데,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당선이나 정권에 눈이 멀어 국가에 필요한 개혁을 뒤로 미루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국익을 위해 언젠가 (욕을 먹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내가 하겠다’는 입장에서 먼저 일본에 양보한 윤 대통령의 접근은 좋은 예다. 외교적 측면에서의 1년의 성적표는 초반에는 실점이 많았다가 후기에는 만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토정상회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참여, 유엔 방문 등으로 이어진 초기 외교에서는 의전이나 실언이라는 측면에서 점수를 잃었다. 그러나 야권의 반대를 무릅 쓰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했고 국빈 방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공식화한 것은 작지 않은 성과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언급하여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한 것을 두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일각에선 ‘알아서 긴 굴욕 회담’이라고 비난하지만 미중 패권경쟁 속에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가 남은 임기에 성공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인사 문제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정권의 성공과 실패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발굴해 쓰느냐다. 윤 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핵심 자리에 검사 출신들이 과도하게 많다는 비판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대통령실의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이 모두 검사 출신이다 보니 인재를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둘 중 하나는 인사혁신처 국장급이나 민간 헤드헌팅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전문가를 기용하는 것이 좋다. 초보 정치인 윤석열을 도울 정치 자문그룹도 필요하다. 지난 1년 정치적 측면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은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여당 지도부 교체과정의 불협화음이었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력히 외쳤던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독립적으로 조언하기 어렵다. 현실 정치와 무관한, 그래서 자신의 미래와 관계없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황 판단과 대안을 직언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 그들의 조언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최종적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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