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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
한국 기업들은 6·25 전쟁으로 산업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이제 세계적인 기업, 세계 속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전자, 반도체, IT 등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뤘다. 최근 한국은 게임, K-팝, 드라마, 영화 등 문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냉정하게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폰이 보급되던 초기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에 비해 중국 게임사들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상품성 있는 게임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당시 게임이 없으면 스마트 폰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관련 회사들은 한국 게임사를 찾아 게임을 구매하기 바빴다. 그 중에 텐센트(Tencent)라는 기업은 한국 게임을 구매해 중국 전역에 배급하면서 고속성장을 이뤘다. 텐센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 게임사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면서 한국 게임사의 대주주로 등극했다. 텐센트는 게임을 단순히 유통하는 배급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접 게임을 제작해 배급하면서 아시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드라마는 중화권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 남미,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까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초기 반짝 흥행에 그칠 것이라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장기간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에 이어 한국 영화가 유럽과 미국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한국에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중 관계가 좋았을 때는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 드라마를 제작했는 데 , 중국 자본 덕분에 한국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아졌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셈을 해보면 중국 투자사는 한국 기획사의 10배 이상 수익을 챙겨갔다. 한한령 이후 새로운 후원자인 미국 넷플릭스가 등장했다. 거액을 투자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마찬가지로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챙겼다.’
한한령 이후 K-팝이 전환위복이 되며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BTS가 빌보드를 석권했지만 과연 누군가 활동을 중단한 BTS를 이어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기우로 만들면서 K-팝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덕분에 기획사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심지어 대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획사들은 아이돌 그룹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무대에서 공연할 때 그 수익금 중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 훨씬 큰 수익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불러들인 현지 기획사들이다.
K-콘텐츠는 언제까지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칠 수 있을까. K-콘텐츠의 대유행이 약해지면 K-콘텐츠 산업은 무너져야 하는가. 이제는 K-콘텐츠로 한국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텐센트, 한국의 넷플릭스, 한국의 세계적 공연기획사를 육성해야 한다. 정부는 일찍이 문화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떠 K-콘텐츠 산업이 잘 성장하도록 지원해 왔다. 이제는 정부가 콘텐츠 개발(제작) 기업을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콘텐츠 배급사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
K-콘텐츠가 언제까지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때는 미국 영화사가 알라딘, 뮬란 등 세계 각국의 소재를 끌어다 자신의 수익을 높이는 것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