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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신축 아파트의 미분양 증가와 대출금리 인상 여파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자금조달이 막히면서다. 더구나 사업성이 좋은 일부 정비사업지를 빼고는 시공사 구하기마저 ‘하늘의 별 따기’ 여서 정비사업추진위와 조합들의 한숨 소리가 갈 수록 커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진위나 조합에서는 직접 사업을 시행하기보다는 자금조달과 시공사 선정이 쉬운 신탁사를 시행자로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려는 곳이 늘고 있다. 신탁사를 통한 정비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대체로 다음을 장점으로 꼽는다. 먼저 추진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고, 조합설립인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빠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조합임원과 용역업체간의 결탁에 따른 비리를 걱정할 필요 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탁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시공사 선정부터 계약,시공 등의 전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가 가능해 사업 과정에서 빚어 질 수 있는 하자나 비리 등의 위험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신탁방식 시행은 현실적으로는 투명하지 못하고, 견제도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신탁사를 시행자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통상 해당 정비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이른바 ‘추진세력’이 개입하게 되고(통상 추진세력이 추후 조합장이나 조합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추진세력과 신탁사가 결탁할 경우 조합은 대응능력을 잃어 무방비 상태에 놓일 수 있어서다. 조합 시행의 경우 조합장이 비리를 저지르거나 업무를 소홀히 할 때 해임결의를 통해 교체할 수 있지만 신탁방식은 정비사업위원장을 해임하더라도 여전히 사업시행권은 신탁사에 있어 사업 운영의 주도권이 바뀌지 않는다. 즉, 비리를 저지른 정비사업위원장을 해임하더라도, 사업의 시행자는 신탁사여서 신탁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사업의 주도권은 신탁사에게 있다. 따라서 해임 후 선임된 새로운 정비사업위원장이 사업시행과정에서의 용역업체 선정과 비용지출 등에 대한 견제를 통해 사업을 정상화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신탁사에서 해임된 정비사업위원장과 협의한 용역업체나 시공자를 선정해 진행한다면, 새로 선임된 정비사업위원장이 용역계약을 해지하도록 해 견제하거나 관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탁방식의 경우 신탁사 소속직원이 그 가족으로 구성된 용역업체를 선정해 전체회의를 진행하도록 용역계약을 맺고, 용역비용을 부풀려서 토지소유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신탁사 직원이 차명으로 설립한 용역업체를 구분해 내는 것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어려워 견제가 쉽지 않다. 결국 그 비용은 고스란히 토지소유자(조합원)들의 부담으로 되돌아 오게된다. 더구나 신탁방식은 정비사업 비용 뿐 아니라 추가적인 신탁수수료도 지급해야 하므로 실제 정비사업의 해산과 청산과정에서 토지소유자들이 부담이 조합의 직접 시행에 비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가급적 조합이 직접 시행하는 것이 더 투명하고 비용부담 측면에서도 더 유리할 수 있다.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토지소유자들이 일단 사업의 진행을 위해 신탁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신탁사와 결탁한 추진세력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견제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과 이 같은 단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신탁방식의 정비사업이 ‘공정·투명·신속’이라는 제 기능을 살리려면 다음의 제도적 보완이 선결돼야 한다. 먼저 용역업체 선정에 있어서 토지소유자들에게 그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사업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비용 내역을 토지소유자 개개인에게 의무적으로 통지하거나 또는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용역금액을 부풀리는 경우 해당 비위를 저지른 담당직원은 물론 신탁사에 대하여도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견제수단도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