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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
대만은 50여 년 전까지는 ‘포모사(Formosa)’라고 불렸다. 포모사라는 지명은 포르투갈, 서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 기니 등에서도 발견된다.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Ilha formosa’에서 유래했다.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 중에서 대만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교역을 위해 일본으로 항해하는 도중에 대만을 발견하고 대만의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숲을 보고 ‘포모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지도에 대만은 포모사라는 이름으로 표기됐고 20세기 중반 유엔 등의 국제기구 회의에서도 포모사가 단독으로 쓰이거나 대만과 병행해서 사용됐다.
대만은 원래 중국인들이 살던 땅은 아니었다. 이스터섬의 거대 석상인 모아이로 유명한 태평양 원주민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살았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은 기원전 1만8000년 쯤에 중국 남부에서 시작해 기원전 5000년 무렵 대만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이들은 발달한 항해기술을 이용해 태평양 일대로 퍼져 나갔다. 원주민이 아닌 민족이 대만을 처음 차지한 것도 중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스페인이다. 북쪽은 스페인, 남쪽은 네덜란드가 요새를 만들어 점령했다. 이후 1642년에 네덜란드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대만 전체를 차지했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활약한 밀수무역 상인이자 해적인 정지룡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연회에서 큐슈의 한 사무라이 딸과 결혼해 아들 정성공을 얻었다. 청나라 정부군에 쫓기던 정지룡은 청에 사로잡혀 죽고, 아들 정성공은 900척의 배와 2만5000명의 병력과 함께 대만으로 이동해 네덜란드군을 쫓아내고 대만에 정씨 왕국을 건국했다. 이후 한족의 본격적인 이주에 따라 대만 원주민들은 서부의 평야지역을 떠나 동부의 산악지대로 쫓겨났고, 높은 산에서 산다고 해서 이들 16개 원주민 종족들을 모두 고산족이라고 부른다.
대만은 여러모로 우리와 닮았다. 우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가 있고 대만에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1위 업체인 TSMC가 있다. 1인당 GDP도 3만2000달러 수준으로 서로 비슷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7%를 넘는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점도 닮았다. 우리처럼 제조업이 발달하고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섬나라인 대만은 중국이 해상을 봉쇄하면 에너지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탄소중립과 더불어 국가 안보를 위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절실하다.
대만은 우리처럼 전체 면적의 3분의 2가 산지다. 거대 산맥이 섬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봉우리의 평균 고도가 3000m를 넘고 가장 높은 위산은 3997m에 달한다. 산이 많고 인구밀도가 높아 육상풍력은 2021년 말 기준으로 796MW만에 불과하다. 4면이 바다인 대만이 해상풍력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서는 대만해협은 태풍과 거친 풍랑으로 유명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최대 난관이 대만해협이라는 얘기도 있다. 거친 바다 때문에 중국이 폭 170㎞쯤 되는 대만해협을 건널 수 있는 기간은 연중 두어 달밖에 안된다.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이 탄 스페르베르호는 대만해협에서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다 제주도에 상륙했다.
필자는 2019년 11월에 120MW 규모의 포모사 1 해상풍력 단지 준공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타이페이시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어촌마을인 먀오리현 주난에서 2~6km 떨어진 바다 위에 세워진 대만 최초의 상업용 풍력단지이다. 수심 15~30m 바다 위에 6MW 터빈 20기를 설치했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올해 5월에 포모사 2 해상풍력 단지가 완공됐다. 포모사 1 단지 뒤쪽으로 8MW 터빈 47기를 설치해 총 발전용량이 376MW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를 조성했다. 1년에 7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로써 대만은 단기간 내에 해상풍력 설치 용량이 504MW로 늘었다.
대만의 해상풍력 단지 조성은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포모사 3단지는 최대 2GW 규모로 2025년 운전을 목표로 건설이 추진 중이다. 이어 포모사 4단지는 최대 1.1GW 규모로 예정됐고 포모사 5는 기존의 고정식이 아닌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로 1.5GW 규모로 계획하고 있다. 대만이 해상풍력 단지에 포모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그 것 들에 이름을 지어주셨다. 사물의 본질과 특성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지혜가 발휘된 사례다. 풍력 터빈은 사람마다 미적 기준에 따라 갈린다. 아름다운 풍광이 될 수도 있고,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인공조형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름이 사물의 시작을 알린다는 점에서 대만은 자신들의 과거 이름처럼 해상풍력 단지를 아름답다고 규정한 것이 아닐까? 내러티브의 힘이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