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대통령의 한마디에 당정이 수능 ‘킬러 문항’,즉 ‘불수능’을 사교육 주범으로 지적하면서 입시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수능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현 상황에서 대통령의 이번 수능 난이도 관련 발언이 적절했느냐는 지적이다.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킬러문항이란 정상적인 공교육 과정으로는 풀기 어려운 고난이도 문제다. 통상 수능 과목당 한 두개의 킬러 문항을 반영한다. 교육부는 "킬러를 내지 않아도 좋은 문항을 개발하면 변별력은 갖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누구나 쉽게 맞출 수 있게’와 ‘공정한 변별’의 조화가 쉬운 일이라면 교육부는 지금까지 왜 안 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한국 입시 문제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열정 등에 대해 30번 넘게 칭찬했다. 2009년 가나 의회 연설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케냐는 한국 보다 국민 소득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추월당했다. 이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 높은 교육열"이라고 했고, 2011년 새해 국정연설에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교사들을 ‘국가설립자’라고 극찬했다. 한국은 교육을 통해서 양반 중심의 계급사회를 비교적 평등 사회로 바꿨다. 이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하다. 교육동기가 미약한 일본·영국이나 학력이 부에 의해 세습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교육은 대체적으로 공정함과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물수능으로 갈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AI(인공지능)시대에 암기력만으로는 AI와의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자연어 처리능력, 지각능력,학습능력, 추리능력이 있는 시스템이 AI다. 미래의 AI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은 추리능력의 학습가 함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곧 킬러 문제에 익숙해야 한다는 의미다.
불수능으로 가야하는 두번째 이유는 중국과 인도 등의 후발 국가의 도전으로부터 따돌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공계 대학의 연간 졸업생 규모를 보면 한국이 10만 명인데 반해 중국은 470만 명, 인도가 260만 명에 달한다. 인도의 교육열은 학원도시 코타에서 확인된다. 인구 60만 명 중 10만 명의 고교생이 매년 IIT(인도공과대) 진학을 목표한다. 인도에서 IIT 졸업장의 의미는 신분차별을 극복할 수 유일한 신분상승 사다리다. 그래서 입학 경쟁률이 100대 1에 이른다. 중국도 지난해 기준 수능(가오카오) 응시생이 1193만 명에 달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오카오 성적이 신분격차를 결정한다. 한국의 수능의 치열함은 이들 국가에 명함도 못 내민다.
수백 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1타 강사’들의 호화 생활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과외비 부담으로 허리가 휘는 중산층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전두환 정권도 1980년 7월30일 과외 금지를 선언했다. 같은 날 광주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이어 8월15일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 시키는 두가지 큰 이슈가 ‘과외금지’ 조치가 묻혀 버렸다. 이 처럼 역대 정권들이 포퓰리즘으로 과외를 규제해왔다. 그러나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과외 문제가 단순히 교육적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 17명 중 서울대가 10명, 고려대가 4명으로 스카이대 출신 비율이 82%에 달한다. 윤 정부 1년을 맞아 장·차관 109명의 구성을 분석해 보면 서울대 58명(53%), 고려대 13명(12%), 연세대 12명(11%)으로 이른바 ‘SKY’ 출신이 76%다. 이 처럼 학력 계급사회를 심화시키면서 그 책임을 불수능에 떠 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수능으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절심함이 ‘불수능’의 천만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