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칼럼] 프리고진 사후의 바그너그룹 운명은](http://www.ekn.kr/mnt/thum/202308/2023082901001446900070141.jpg)
지난 6월 러시아 군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방식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중도에 포기했던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프리고진이 8월 23일 항공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러시아 정부에 대한 반란을 "정의의 행진"이라고 미화한 프리고진과 바그너 부대는 단 하루 만에 수도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격하며 푸틴에 굴욕을 안겼다. 바그너의 반란은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모스크바 입성 직전에 극적으로 진화됐다. 그리고 프리고진이 사면되며 반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것으로 보였다. 프리고진은 푸틴과 면담하고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도 참석하는 한편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오가는 등 건재를 과시하며 바그너그룹 재건에 힘썼다. 사망 며칠 전에는 바그너의 아프리카 지역 교두보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순방하기도 했다.그러나 전형적인 권위주의 지도자인 푸틴에게 반란을 일으켜 권위와 체면을 손상한 프리고진이 곱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푸틴은 반란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프리고진을 사면하고 바그너 그룹 활동 재개를 묵인했지만, 지금까지 본인의 권위에 타격을 주거나 도전한 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던 그에게는 프리고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느라 배신자를 용서해 주는 척 했을 뿐이다.프리고진의 사망으로 바그너그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프리고진과 함께 탑승한 바그너 주요 지휘관들도 사망했기 때문이다. 바그너그룹은 반란 이후 주둔지를 벨라루스로 옮기고 존재 가치를 부각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바그너가 폴란드 북부 지역을 교란하거나 침공을 계획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에 폴란드는 최근 한국에서 공급받은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벨라루스와의 국경 지역으로 이동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도 벨라루스에 있는 자국민들에 대피령을 내리는 등 긴장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지휘관을 잃은 바그너 병력의 운명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바그너는 민간군사회사, 즉 민간용병업체다.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용병업체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거나 해외 주둔 병력에 식사나 병참을 공급하는 등 일반적인 지원 임무를 수행한다. 같은 임무에 정규군을 투입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바그너의 주요 임무는 국제 분쟁과 전쟁에 정부 대신 개입하거나 직접 참전하는 것이다. 러시아나 미국같이 중소규모 분쟁에 자주 개입하는 국가는 정치적 부담과 희생을 최소화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용병은 다양한 형태의 국제 분쟁에 정치적인 부담 없이 빠르게 투입할 수 있는 유용한 대안이다. 용병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해도 무시할 수 있고 때로는 국가는 할 수 없는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더러운 일’을 대신 해 주기도 한다.바그너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시리아 내전이다. 러시아는 정규군을 파병했지만, 바그너도 함께 참전해 큰 활약을 했다. 바그너는 시리아 군벌과 결탁해 정적 제거 등 불법행위와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전쟁 범죄도 저질렀다. 이후 바그너는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중앙아프리카는 다이아몬드, 금, 석유 등 자원 부국이지만, 오랜 내전과 종교 갈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가 됐다. 바그너는 현지에서 정부군과 함께 반군 소탕 등 임무를 수행하며 다이아몬드 및 금광 등을 손에 넣었다. 바그너는 많은 잔혹 행위를 자행했다.바그너는 니제르 쿠데타에도 직접 관여했다. 니제르와 주변국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아직도 프랑스 영향권 안에 있으며, IS 등 테러단체의 아프리카 거점이다. 니제르는 우라늄 등을 대량 보유한 천연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된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서방을 견제하는 시도의 하나로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를 대신해 앞장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처럼 바그너는 러시아 정부의 묵인 아래 정책을 보조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이 푸틴의 용인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방증이다. 프리고진과 지휘부가 사망했다고 바그너가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는 러시아 정규군으로 흡수되겠지만, 벨라루스나 아프리카 지역에 남은 병력은 푸틴이 지명하는 새로운 인물이 수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간판을 바꿔 다는 방법으로다. 반란이라는 큰 사고를 쳤지만, 바그너는 푸틴에게 매우 유용한 정치 도구이기 때문이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