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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K-반도체, 길을 묻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8년 발효된 기업소득세법(법인세법)에서 외국인투자기업이 입주한 경제개발구에 대한 우대세율을 없애고 첨단업종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15%의 기업소득세율을 적용했다. 일반기업의 기업소득세율이 25%인 점을 감안하면 첨단기업을 유치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통신장비,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뒤늦게 미국은 자국에서 첨단 제조업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갖추기 위한 정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한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 구축에서 시작되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3사는 모두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은 배터리에 이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칩4)과 함께 중국의 반도체 굴기(부상)에 대한 통제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약속(MOU 체결)하고 일부는 공장건설에 들어갔다. 미국은 더 나아가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통제를 통해 단순히 중국 무기의 첨단화는 물론 첨단 제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첨단공정에 사용되는 극 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물론이고 한 세대 이전 장비인 심 자외선(DUV) 노광장비마저 공급을 끊기로 했다.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견제는 반도체 장비 뿐 아니라 반도체 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중국에 대한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하는 이른바 ‘칩4 협의체’ 참여를 요구받고 일단 1년간 유예를 받았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비중이 55%(우회 수출 포함)나 되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를 하기로 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운 ‘반도체지원법’을 내놨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이 법의 ‘가드레일(안정장치)’에 근거해 미국 내에서 초과이익 공유, 영업기밀 제공, 군사 협조 등의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더불어 중국에서 10년 동안 생산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고 기술적 업 그레이드만 허용했다. 한국이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고 하지만 거의 차악 수준의 조건을 제안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보조금을 받아야 하느냐, 미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느냐’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이유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며, 미국의 보조금도 받아야 한다. 우선 미국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이다. 미국 반도체 규모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차량용 반도체 수요와 AI 등 ICT 산업의 발전에 따른 반도체 수요로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를 멈출 경우 보조금을 받은 경쟁기업에게 시장을 빼앗기게 되고 미국에서 한국 반도체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중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일단 버티기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생산시설 확장이 5%로 제한된 상황에서 기술적 업 그레이드를 통해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10년 플랜을 체계적으로 짜야한다. 미국 반도체 보조금 수령 조건은 10년 후에 종료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이 10년만 버티면 중국 내 시설 확충 제한에서 풀린다. 국내에서의 반도체 투자전략은 해외 투자와 차별화해야 한다. 적어도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모두 자유무역의 원리보다는 보호무역의 원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반도체 기업은 기존의 칩 제조 역량을 넘어 설계 기술, 장비제조 능력 등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2042년까지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면 대만에 크게 뒤져있는 시스템반도체에서 크게 약진하는 것은 물론 주기적으로 겪는 메모리 반도체 불황으로 인한 산업 및 경영의 불확실성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기자의 눈]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의

[에너지경제신문 조하니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파격적인 디자인 리뉴얼을 이어가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지속된 실적 부진을 타개하고자 화장품 대표 브랜드의 대대적인 리브랜딩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번 디자인 리뉴얼에서 눈에 띄는 아쉬움이 있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모레퍼시픽 대표 브랜드들이 온통 ‘영어 일색’인 탓에 K-뷰티 정체성이 실종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설화수 스테디셀러 제품 윤조에센스 6세대만 봐도 그렇다. 특유의 한자와 붓칠로 그린 듯한 로고가 사라지고 주황색 영문 로고 Sulwhasoo가 새로 자리잡았다. 한방화장품으로 알려진 설화수는 고급미와 고풍미로 비교적 높은 가격대임에도 부모나 어르신에게 선물하는 효도 화장품으로 꼽힌다. 해외시장을 겨냥해 글로벌 이미지를 강조하고, 중장년 중심의 고객 타깃층을 젊은층까지 넓히겠다는 취지에서 리뉴얼과 함께 젊은 감각을 입혔다지만 설화수라는 한국적인 이름과 달리 제품 어디에도 한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에 로고 변경을 단행한 이니스프리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제주도 비자림에서 착안한 초록색 폰트를 버리고 알파벳 대문자·소문자를 섞은 그래피티 스타일로 새로 입힌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세련된 이미지는 살렸을지 몰라도 이니스프리 하면 떠올리는 ‘자연친화’의 브랜드 정체성이 퇴색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제품 디자인이 통째로 바뀌면서 패키지 겉면마저 전부 ‘영어 범벅’이다. 이달 초 출시한 그린티 씨드 히알루론산 세럼 제품만 살펴봐도 한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색색깔 용기에 화사한 꽃 그림으로 유명했던 바디케어 브랜드 해피바스의 바디워시도 로고와 패키지 모두 갈색 계열 투명한 용기에 영문 로고와 제품명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 리뉴얼 결과, 최소한의 한글 표기가 사라져버려 영어를 잘 읽지 못하는 고객이 구매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리뉴얼 이전에는 아모레퍼시픽 대표 제품의 향과 성분에 따라 형형색색의 패키지와 관련 그림과 이미지를 적용해 고객에게 제품 디자인의 직관성을 높여줬기 때문이다. 심미성 제고와 해외마케팅 확대를 위한 외관 개선도 중요하지만 제품 정보를 잘 알려주는 가독성과 같은 요소도 배려해야 한다. 국내 소비자들이 줄곧 애용해 오던 제품에 한글 표기를 지워냄으로써 디자인 효과를 거둘 지 모르지만, 아모레퍼시픽이 가진 K-뷰티 정체성을 포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inahohc@ekn.kr조하니 기자 조하니 유통중기부 기자.

[EE칼럼]에너지 분산정책,공급 뿐 아니라 수요도 손 봐야

지난달에 분산에너지특별법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상정된 지 약 1년 6개월 만이다. 법안에는 기본계획수립 및 시행, 사업자 요건 및 시장 참여 범위, 분산에너지 의무화 등을 포함해 계통 운영 측면에서 배전망의 관리와 감독, 계통영향평가 실시와 이행 뿐 아니라 지역별 차등 요금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다. 기존에도 분산에너지에 대한 목표와 계획 등은 국가 차원의 에너지 분야 상위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 및 전력수급계획에 일부 포함돼 꾸준히 관리해 왔다. 하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목표와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발전설비의 분산 효과가 크지 않는 등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분산에너지특별법의 제정은 의미가 크다. 이 법이 제정됨에 따라 분산에너지 확산 및 활성화를 통해 국내 에너지 수급을 다원화하고 에너지 분야의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등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분산에너지특별법 제정의 근본적인 배경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지역별 전력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냉각용수가 풍부한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평균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로 발전소가 지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도시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장거리 송전망을 갖춰야 하는 데 이 과정에서 많은 송전망 구축비용은 물론이고 송전탑 및 송전선로 설치 과정에서의 주민 반발 및 갈등,송전망 설치지연 등으로 인한 많은 기회비용이 소요됐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기회비용 등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수요지 인근에 발전소를 설치해 전력을 공급하는 분산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분산형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공급 측면으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전력공급원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은 재생에너지 보급·촉진을 통해서도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특히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을 통해 매입하는 과정에서 가중치를 도입하여 다양한 재생에너지원 간의 차이나는 발전원가에 대해 비슷한 수준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다양한 에너지의 균형적인 보급을 유도해 왔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전원 포트폴리오는 결과적으로 총사업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전원 중심으로, 사업비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토지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고 해당 자원의 잠재량이 높은 지역에 편중돼 나타났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과연 전력수요가 높은 수도권 인근에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수도권의 토지비용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당히 높고, 밀집도가 높은 주거 형태상 지붕의 면적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따라서 수도권에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제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편익 요소들이 발굴 및 적용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일정규모 이상의 건물에 대해 재생에너지 설비 의무화를 통해 강제적으로 확대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성 및 설치의 용이성 등의 측면에서 분산에너지에 속하는 다른 에너지원들의 경쟁력이 재생에너지보다 더 높게 여겨지는 현실을 고려해 보면 탄소중립이라는 큰 목표에 대한 기여도는 생각보다 낮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분산에너지특별법의 제정은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에너지수급 다원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공급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아쉽다. 전체적으로 보면 수요가 공급지역으로 이전하는 것도 분산의 한 경우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전기요금의 지역별 차등이 수요를 전원에 가까운 지역으로 옮길 수 있게 유인 작용을 할 수도 있지만, 장거리 송전 비용의 절감 부분이 배전망 구축비용으로 상쇄돼 실제 요금에 큰 차이가 없는 등 편익이 크지 않다면 수요 이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공급 측면 뿐 아니라 수요 측면의 분산에너지 정책도 함께 발굴해야 한다.그래야 분산형 에너지시스템 전환으로 인한 탄소저감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슈&인사이트]위기의 한국경제,돌파구는 과감한 구조개혁

한국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수출이 호황을 누리며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장기간 저금리의 덕도 봤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과열로 인한 물가상승, 자산가치의 급등과 같은 저금리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글로벌 경기가 급격하게 식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7%로 0.3%포인트 낮췄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치솟았다. 지난해 9월 전년동기 대비 5.6%까지 오른 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5%대를 유지하다 올해 2월 4.8%로 소폭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기침체기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수출 감소와 생산성 하락이라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제조업 중심의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수출과 생산성은 그 어떠한 경제적 요소보다 중요하다. 수출은 지난해 10월에 전년 동기 대비 -5.8%를 기록하며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올해 1월에는 -16.4%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고 2월에도 -7.5%를 기록한 데 이어 3월에는 다시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이처럼 수출이 맥을 못 추는 것은 글로벌 경기하락과 같은 외부요인과 함께 우리나라 수출구조의 취약성도 크게 작용한다. 우선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지나치다.세계 10대 수출국 가운데 특정 국가에 어느 정도 수출이 집중돼 있는 지를 나타내는 ‘수출 국가집중도’가 우리나라는 캐나다에 이어 2위다. 우리나라는 2020~2022년 연 평균 수출의존도는 중국과 미국이 각각 24.5%, 15.2%로 두 나라에 전체 수출의 약 40%가 편중됐다. 수출 상위 5대 대상국에 대한 수출비중도 한국은 58.6%로, 캐나다(86.1%) 다음이다.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도 높다. 2020~2022년 연 평균 기준으로 전기장치ㆍ기기의 수출 비중이 20.2%, 자동차가 10.5%로,이들 두 품목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전체의 30.7%에 달한다. 수출 상위 10대 품목의 수출 비중은 68.7%로 10대 국가 중 가장 높다. 이 통계치를 보면 우리 수출의 치명적인 약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정 국가의 불경기, 특정 품목의 수출 부진이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흔들 만큼 치명적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산성 마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성 증가율은 2000년대 1.9%에서 2010년대 0.7%로 하락했다. KDI는 생산성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2050년 경제성장률이 0%에 수렴하고, 생산성을 1.0%로 올려도 경제성장률은 0.5%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임금상승률은 2018년 4.3%, 2019년 4.5%, 2020년 1.2%, 2021년 3.9%, 2022년 3.8%로 생산성 증가율을 훨씬 웃돈다. 임금이 생산성보다 높은 현상이 지속되면 기업은 고용을 줄일 수 밖에 없고 경영악화로 이어져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경기 침체기가 도래하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수출감소와 생산성 하락은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이며 이를 방치하면 한국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수출감소와 생산성 하락 문제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정책을 원점에 놓고 구조개혁과 규제 완화라는 근본 처방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면 구조개혁의 당위성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솔직하게 알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미래세대가 산다. 표를 얻기 위해서,인기를 의식해서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기자의 눈]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의 표류가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근무’ 방안 발표 이후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발과 재 반박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정부의 추가 개선안 발표도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유연근로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불거진 이유 중 하나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정부의 취지가 노동현장에서 가능한가에 고용주와 근로자간의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근로자측은 몰아서 일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휴식은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의심하는 반면, 고용주측은 강제 추가근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입장 충돌은 지극히 소모적인 논란이다. 양측 모두 현실을 간과하고 왜곡된 주장을 펴는 측면이 있어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근로자는 제도 도입 자체를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 현 정부안은 노조대표가 합의하면 개별 근로자가 원치 않아도 유연근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근로자가 각각 사측과 서면 합의해야 효력이 발생하도록 돼 있다. 즉, 정부가 제도를 도입하든, 개별 회사의 노사가 합의하든, 근로자 본인이 원치 않으면 현행 주 52시간제로 근무하면 된다. 사용자의 주장도 억지스런 점이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자에게 "요즘 MZ세대 직원은 연차휴가 등을 철저하게 챙긴다. 추가 근로를 강제하면 사장이 범법자가 된다"며 제도 도입을 걱정할 필요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은 대체인력이 부족한데 몰아서 일한 근로자가 장기휴가를 온전히 쓰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하겠는가"라고 되묻자 "중소기업의 인력부족(인력확충) 문제는 유연근로제와 별개의 문제로 외국인근로자 허용 등 별개의 논의의 장에서 따로 검토해야 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몰아서 일하고도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라는 근로자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고용주도 익히 예상하고 있음을 짐작케 할 만한 반응이었다. 결국 정부가 근로자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휴식 보장장치와 중소기업 인력 확충 방안을 얼마나 현실성 있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근로시간 개편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kch0054@ekn.kr기자의 눈 김철훈 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이슈&인사이트]착한 소비자 울리는 블랙컨슈머

‘내가 하면 정당한 소비자 권리 행사, 남이 하면 블랙컨슈머.’ 소비자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용이 확산되면서 블랙컨슈머로 인한 폐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블랙컨슈머는 보상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악성민원을 제기하고 SNS를 통해 퍼뜨리는 사람을 말한다. 규정에 없는 환불이나 과도한 보상 등 금전적 대가는 물론 공개 사과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행위, 전화나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하거나 장시간 통화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직원을 협박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블랙컨슈머의 행태다. 그동안 악성 소비자나 감정노동자 보호 등의 이슈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왔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 공공기관, 자영업자들이 블랙컨슈머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들은 이미지 추락 등을 우려해서 악의적인 민원인 줄 알면서도 쉬쉬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블랙컨슈머들은 이를 악용해 무리한 금전보상이나 계약 해지 등을 요구한다. 극소수 블랙컨슈머들은 당국에 부당한 민원을 제기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을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사은품이나 상품권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상담원이나 매장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한국소비자원에 고발하겠다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해서도 이들이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올린다거나 평가 별표를 아주 낮게 부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해 기업이나 자영업자를 골탕먹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블랙컨슈머가 판을 치는 이유는 소비자의 높은 기대수준, 왜곡된 소비자권리 의식, ‘소비자는 피해자, 사업자는 가해자’라는 잘못된 인식, 자기 중심적 사고, 관련 법규·규정·계약 내용에 대한 지식 및 이해 부족, 인터넷 등에 떠도는 보상기준에 대한 잘못된 정보, 사회에 대한 불신과 보상에 대한 주위의 부추김 등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에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부 기업들의 상혼과 소비자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 등도 한 몫을 한다. 허위·과장광고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 놓거나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와 상호소통 미흡, 합리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소비자는 외면하고 목소리 큰 소비자에게는 과다보상을 하는 소비자 대응 행태 등이다. 심지어 일부기업은 소비자들의 정상적인 권리 요구에 대해서는 이를 무시하거나 처리를 한없이 미루고 상담과정에서 감정노동자보호법을 악용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를 협박해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선의의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로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매를 버는’ 웃지못할 상황이 빚어진다. 문제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해당기업을 거쳐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홈쇼핑이나 백화점 등에서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손실(기회) 비용을 제품가격에 반영한다. 고가의 의류 등에는 업체와 가격수준에 따라 최대 20∼30%까지 기회비용을 얹는다고 알려진다. 선량한 소비자들이 블랙컨슈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셈이다. 더 나아가 기업의 경영의욕 저하와 경쟁력 약화,감정노동자 문제를 유발하는 등 막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한다. 이쯤 되면 ‘정당한 소비자권리 행사’라는 탈을 쓴 블랙컨슈머는 사회악으로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소비자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블랙컨슈머의 심각성과 폐해를 인식하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블랙컨슈머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내 가족이 감정노동자로,자영업자로 블랙컨슈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소비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소비자권리 추구행동이라고 생각되는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감정노동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고, 결국 부메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윤덕균 칼럼]21세기 대한민국 전략 자산은 소프트파워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의 전격 사임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김 실장 사임 전에 김일범 의전비서관,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교체됐다. 공식적 교체 원인은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 등이 함께 공연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는 데, 외교안보 라인이 묵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가는 안보 책임자를 의전 프로그램 문제로 경질하겠느냐는 의심이다. 여기서 미국 일변도 외교의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중국과 미국의 프로토콜을 주장하는 김성한 그룹을 밀친 형태라는 가설이다. 또 다른 가설은 의전이 안보 외교를 흔든 김건희 여사의 개입설이다. 관계자들의 정확한 해명이 없어 모든 추론이 눈이 안보이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평하는 ‘(群盲評象(군맹평상)’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군맹평상은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로 중국의 고사 북송열반경(北宋涅槃經)의 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편에 수록된 이야기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 가운데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무와 같다 하고, 귀를 만져 본 사람은 키와,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절구와, 등을 만져본 사람은 침상과, 배를 만져본 사람은 독과,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새끼줄과 같다고 한다. 각각은 코끼리의 단편만을 말하지만 이를 종합하면 코끼리의 윤곽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김 실장 교체 설을 유추한다.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의전과 안보는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를 안보라인에서 경시했다. 이러한 안보라인의 행태가 문화행사 의전을 중시하는 김건희 여사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김 실장의 정확한 해임 사유다. 김 실장은 미국의 전략자산 특히 하드파워에 익숙하다. 한미 안보 정상회담에서 공연은 도움이 안 된다고 평가한다. 공연을 트집 잡아 안보회담 성과를 폄훼할 야당의 뒤풀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 실장의 소프트파워 인식은 BTS의 병역 문제에서 입증되었다. 김 실장은 전 세계의 1800만의 아미가 BTS 노래를 듣기 위해서 한글을 배운다는 소프트파워의 위력을 형평이라는 이유로 배제했다. 전임 의전비서관이었던 탁현민은 2021년 김정숙 여사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방문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김 여사가 미술품의 기증 의사를 전했을 때 ‘순서를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가 시간이 없다’고 하자 ‘시간이 없으면 다음에 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어쩔 수 없다. 김 여사님과 BTS가 가려고 했는데, 다른 미술관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행사를 하자고 했다가 자기들의 ’루프 가든‘을 내주고, 여사님이 수장고를 보실 수 있게 배려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가 한국의 소프트 파워의 현주소다. 영국 잡지 모노클(2020. 11. 27)은 소프트파워는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단언했다. 모노클은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평가했다. 독일과 한국의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 대만, 스위스, 뉴질랜드, 스웨덴, 그리스, 캐나다 순으로 소프트파워 톱10 국가로 평가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영화와 TV, 음악 역시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한국 소프트파워의 기반이 됐다고 모노클은 2위로 평가한 배경을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K-팝을 듣고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본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 혁신은 이 나라의 핵심 자산이며, 이를 통해서 삼성과 LG, 현대 등의 기업이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를 강화한다. 또한 모노클은 한국이 중국의 하드파워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의 돌파구를 중국이 추월할 수 없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의 핵심세력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진정한 전략자산이 소프트파워라는 것을.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1년 남은 총선, 윤 대통령이 이기려면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내년 4·10 총선이 꼭 1년 남았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 여론은 부정적이다. 한국갤럽 조사(4월 4~6일)를 보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6%에 그쳤다. 반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50%나 된다. 대통령 지지율도 저공비행 중이다.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1%에 그쳤다. 부정 평가는 61%로 더블 스코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민주화 이후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지금 총선을 실시하면 야당이 이길 확률이 훨씬 높다.윤석열 정부에 여소야대는 악몽이다.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슈퍼 집권당으로 탄생했다. 초기 코로나 위기 속에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그 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의회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이 쥐고 있다. 이 구도가 내년 4월까지 간다. 만약 민주당이 차기 총선에서 또 이기면 윤 대통령은 5년 임기(2022~2027년) 내내 기를 펼 수 없다. 22대 국회의원 임기(4년)는 2028년까지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아래 세가지를 제안한다.◇ 윤 대통령, 이재명 대표와 소통하길낮은 지지율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소통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유권자들은 ‘검사 윤석열’을 충분히 봤다.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앞으론 ‘정치인 윤석열’을 보여줄 차례다. 싫든 좋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69석을 가진 슈퍼 야당을 대표한다. 이런 사람을 제쳐두고 원활한 국정을 펴기는 어렵다. 행여 대선 후보 시절의 앙금이 남아 있다면 털어버릴 때가 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48.56% 득표했다. 이 중 상당수가 떨어져나갔다. 윤 후보를 찍은, 합리적인 중도층을 다시 내 편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한국 선거판은 보수:중도:진보층이 대략 3:4:3 구도를 형성한다는 게 상식이다. 승패는 중도층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렸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 먼저 손을 내밀면 체면이 깎인다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어떡할 거냐고? 핑계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국민통합과 올바른 정치를 바라는 민심을 맨 앞에 두면 길이 보인다. 굳이 둘이 만나지 않아도 좋다. 과거 일회성, 이벤트성 영수회담은 종종 역효과가 났다. 중요한 건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다. 마음만 먹으면 연금개혁은 얼마든지 정책 공조가 가능하다. 총선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중도층은 윤 대통령의 변신 노력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라윤 대통령은 역대 최강 슈퍼 야당이 맞상대다. 야당이 틀면 법 개정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실제 임기 1년이 가깝지만 ‘윤석열표 정책’ 가운데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게 없다. 노동개혁은 소리만 요란할 뿐 참 개혁에는 손도 못 댔다. 예컨대 낡은 임금체계를 직무급 중심으로 바꾸는 건 입도 벙긋 못했다. 근무시간 개편은 ‘주 69시간’ 논란 속에 탄력을 잃었다. 되레 민주당은 노조 입지를 강화하는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일 태세다. 대선에서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그러나 민주당이란 거대 장벽 앞에 공약은 맥없이 무너졌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공약을 실천하려면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라는 게 썩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국회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침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여론은 좋지 않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민주당이 주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60%로 반대 28%를 압도했다. 거부권 행사에 대해선 ‘좋지 않게 본다’가 48%로 ‘좋게 본다’ 33%를 웃돌았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함성득 교수는 성공하는 대통령을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로 "국회를 중시하여 원만한 여야관계의 형성에 노력하는 입법 리더십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점을 든다(‘제왕적 대통령의 종언’). ‘입법의 달인’이 되려면 국회와 부지런히 소통해야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선 더욱 그렇다.◇ 검사 중용은 이제 그만유권자들은 끼리끼리 정치에 눈살을 찌푸린다. 한때 군인 출신이 득세했다. 특정 지역 출신이 고위직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민주화 운동권 출신이 큰 세력을 형성했고, 그 바람에 이른바 586세대에 대한 반감을 불렀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를 ‘검찰 공화국’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유능한 전·현직 검사는 예전 정부에서도 늘 중용됐다. 하지만 윤 정부가 검사 출신을 기용하면 입길에 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를 경찰 핵심 보직인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하려던 시도는 학폭 논란 속에 실패로 돌아갔다. 무리한 인사는 여기서 그쳐야 한다. 집권 국민의힘 지도부도 친윤 일색으로 채워졌다. 상명하복이 몸에 밴 검사, 용산 눈치를 보는 친윤계만으론 민심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인위경(以人爲鏡)이란 말이 있다. 사람으로써 거울을 삼는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 당나라 태종이 직언을 서슴지 않던 신하 위징을 두고 한 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이 늘 새겨야 할 경구다.이재명 대표와 소통하고, 민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고, 친윤계 아닌 사람을 쓰는 게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지는 정치가 이기는 정치다. 유권자는 오만한 정당을 심판한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진박 감별사, 옥새 파동 같은 유치한 논란 끝에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한 뒤 민주당에선 20년 집권론이 나왔다. 그러나 단 5년만에 정권을 내주었다.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로 나라가 두 쪽이 나게 생겼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작년 9월3일자 표지에 ‘Dis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제목을 달았다. 미국은 합중국에서 분열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가롭게 미국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우리도 좌우 대립으로 나라가 쪼개질 판이다. 이를 방치하는 건 정치 지도자의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다.강풍은 나무를 쓰러뜨리지만 풀을 뽑지는 못한다. 지금 윤 정부는 딱딱한 나무다. 총선까지 딱 1년 남았다. 여당이 완패한 4·5 재보선은 미리 맞은 매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민심, 그 중에서도 무당파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 게 상책이다. 그러려면 거북하더라도 상대방에 먼저 손을 내미는 포용력을 보이는 게 좋다. <경제칼럼니스트>▲윤석열 대통령이 4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다. 사진=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오후 전남 나주시 노안면 노안농협육묘장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재추진 결의를 위한 현장 농민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데스크 칼럼] 지방에서도 지방, 시민들의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사흘 동안 1만2000여명 방문. 총인구가 10만 정도인 전라북도 정읍에서 열린 최초 1군브랜드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수요자들의 뜨거운 열망이 분출됐다. 정읍 시민 적어도 10명당 1명 이상이 모 대형건설사 분양 견본주택에 방문한 수치여서 업계뿐 아니라 지역 여론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정읍의 면적은 전북 시·군중 4위로 평야가 펼쳐져 경지율이 높지만, 경제·사회·인구적으로 보면 지방에서도 벽지로 분류된다. 이렇다 할 유력 대기업 계열사도 없고 농업 비중이 높은 소도시로 생활인프라도 부족하고 인구 유출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 농업이 주력산업이었던 시절 인구가 27만명을 넘을 만큼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지척에 있는 전주(64만), 익산(27만), 군산(26만) 등 중소도시들과 비교해도 인구는 반의 반토막,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특히 전북 인구 상위 1~4위까지인 전주, 익산, 군산, 정읍 인구를 총망라해도 고작 수도권에 위치한 수원특례시(120만) 수준이다. 경기도 화성시(91만), 성남시(92만), 고양시(107만) 인구를 감안할 때 정읍이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실감이 된다. 참고로 전북 인구는 176만 정도로 이는 서울(942만), 경기도(1360만), 인천(297만)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라남도(181만), 경상북도(259만), 경상남도(327만), 부산(331만), 대구(236만) 등과 비교해도 열위에 있다. 이렇게 인구 규모면에서 타지역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전북에서도 소외받고 있는 정읍에서 이런 대형건설사 분양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건설업계는 단순히 정읍 시민들의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으며, 지방에서도 청약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첫 1군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바로 정읍시민들 뿐 아니라 전북도민들의 지역 발전에 대한 숙원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1군 브랜드, 그것도 그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 집중됐던 세련된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대도시 못지않게 높다는 반증이다. 수도권, 지방 대도시에서만 공급됐던 1군 건설사 아파트, 소고기로치면 한우 1등급 품질이다. 왜 지방 사람이라고 소고기 맛을 모르겠는가? 1등급 소고기가 수도권, 지방 주요 도시에만 공급되다보니 정읍 시민들, 인근 주민들도 시위하듯 수천명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이 아파트는 청약 결과 975건이 몰리며 정읍 역대 최다 청약 통장 접수 건수를 기록한 바 있다.물론, 1군 브랜드가 최근 전북에서도 잇따르긴 했다. 군산에서는 최근 개발한 택지에 ‘군산디오션시티’ 등 총 6200여가구 대규모 브랜드타운이 형성되며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다. 이는 새만금 개발 본격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전북대병원 건립 추진이 인구유입 전망 등 호재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심화된 부동산 경기 침체, 급격한 금리인상 여파로 지난 1월 말 기준 전북의 미분양 주택 물량은 4086가구로 지난해 12월 대비 1566가구 대비 62.1% 급증했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고장이 돼야 할 것이다. 지역 경제 위기감에 전북은 특별자치도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전북보다 인구가 적은 지자체로 충북과 강원, 제주가 있었다. 항상 충북이나 강원보다 낫다는 얘기를 해왔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전북의 1인당 국민소득은 충북, 강원보다도 낫다"고 지적했다. 또 변화와 혁신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도민들에게 주문했다. 김 도지사의 과감한 지역 발전 정책 추진으로 낙후된 전북에 젊은이들이 자꾸 모여서 1군 브랜드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고 대도시못지않은 청약 열기도 이어지길 고대해본다.

[기자의 눈] 韓 시장 공들이는 애플, 책임의식도 갖춰야

지난달 우리나라에 상륙한 애플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가 보여주는 초반 기세가 놀랍다. 출시 첫날에만 가입자 100만명을 확보했다. 수치는 애플페이를 지원하는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 단말기 보급이 확대되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여지가 크다. 국내 간편결제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애플페이를 들여온 현대카드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애플과 협력설이 흘러나오던 시점부터 신규 가입자가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에만 새로운 회원으로 86만6000여명 확보하면서 국내 전업 카드사 중 증가세 기준 선두를 기록했다. 국내 간편결제 시장 강자인 삼성전자는 애플에 대응하기 위해 네이버와 손잡았다. 또 삼성전자가 애플과 마찬가지로 스마트워치를 이용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애플은 과거부터 국내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펼쳐 왔다. 지난달 출시된 애플페이가 벌써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는 이유다. 애플이 출시하는 신제품이 침투하는 속도도 빠르다. 무선이어폰 ‘에어팟’과 스마트워치 ‘애플워치’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밖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애플이 한국 시장을 흔드는 만큼 책임에는 미흡했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달렸다. 세금 회피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애플 한국지사는 7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음에도 정작 납부한 법인세는 628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매출에 비해 이익이 크게 낮았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매출 대부분을 수입대금으로 지급해 의도적으로 영업이익률을 낮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애플이 자체 앱 마켓인 ‘앱스토어’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을 저질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만 이동통신사에 신제품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과 수리에 필요한 비용을 전가하는 관행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선지 애플을 고객사로 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유독 애플에 관한 질문을 곤란해한다. 애플에 불리한 정보를 흘렸다가는 어떤 불이익이 가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 국내 다섯번째 오프라인 매장인 ‘애플스토어 강남’을 열며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협력업체와 일반 시민을 위한 기업윤리에도 공을 들여야할 시점이다. 국내에서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높아진 책임의식을 기대한다.이진솔 이진솔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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