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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
‘내가 하면 정당한 소비자 권리 행사, 남이 하면 블랙컨슈머.’ 소비자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용이 확산되면서 블랙컨슈머로 인한 폐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블랙컨슈머는 보상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악성민원을 제기하고 SNS를 통해 퍼뜨리는 사람을 말한다. 규정에 없는 환불이나 과도한 보상 등 금전적 대가는 물론 공개 사과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행위, 전화나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하거나 장시간 통화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직원을 협박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블랙컨슈머의 행태다.
그동안 악성 소비자나 감정노동자 보호 등의 이슈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왔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 공공기관, 자영업자들이 블랙컨슈머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들은 이미지 추락 등을 우려해서 악의적인 민원인 줄 알면서도 쉬쉬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블랙컨슈머들은 이를 악용해 무리한 금전보상이나 계약 해지 등을 요구한다. 극소수 블랙컨슈머들은 당국에 부당한 민원을 제기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을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사은품이나 상품권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상담원이나 매장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한국소비자원에 고발하겠다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해서도 이들이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올린다거나 평가 별표를 아주 낮게 부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해 기업이나 자영업자를 골탕먹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블랙컨슈머가 판을 치는 이유는 소비자의 높은 기대수준, 왜곡된 소비자권리 의식, ‘소비자는 피해자, 사업자는 가해자’라는 잘못된 인식, 자기 중심적 사고, 관련 법규·규정·계약 내용에 대한 지식 및 이해 부족, 인터넷 등에 떠도는 보상기준에 대한 잘못된 정보, 사회에 대한 불신과 보상에 대한 주위의 부추김 등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에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부 기업들의 상혼과 소비자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 등도 한 몫을 한다. 허위·과장광고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 놓거나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와 상호소통 미흡, 합리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소비자는 외면하고 목소리 큰 소비자에게는 과다보상을 하는 소비자 대응 행태 등이다. 심지어 일부기업은 소비자들의 정상적인 권리 요구에 대해서는 이를 무시하거나 처리를 한없이 미루고 상담과정에서 감정노동자보호법을 악용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를 협박해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선의의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로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매를 버는’ 웃지못할 상황이 빚어진다.
문제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해당기업을 거쳐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홈쇼핑이나 백화점 등에서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손실(기회) 비용을 제품가격에 반영한다. 고가의 의류 등에는 업체와 가격수준에 따라 최대 20∼30%까지 기회비용을 얹는다고 알려진다. 선량한 소비자들이 블랙컨슈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셈이다. 더 나아가 기업의 경영의욕 저하와 경쟁력 약화,감정노동자 문제를 유발하는 등 막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한다.
이쯤 되면 ‘정당한 소비자권리 행사’라는 탈을 쓴 블랙컨슈머는 사회악으로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소비자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블랙컨슈머의 심각성과 폐해를 인식하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블랙컨슈머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내 가족이 감정노동자로,자영업자로 블랙컨슈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소비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소비자권리 추구행동이라고 생각되는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감정노동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고, 결국 부메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