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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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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K-반도체, 길을 묻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12 10:22

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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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중국 정부는 지난 2008년 발효된 기업소득세법(법인세법)에서 외국인투자기업이 입주한 경제개발구에 대한 우대세율을 없애고 첨단업종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15%의 기업소득세율을 적용했다. 일반기업의 기업소득세율이 25%인 점을 감안하면 첨단기업을 유치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통신장비,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뒤늦게 미국은 자국에서 첨단 제조업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갖추기 위한 정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한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 구축에서 시작되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3사는 모두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은 배터리에 이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칩4)과 함께 중국의 반도체 굴기(부상)에 대한 통제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약속(MOU 체결)하고 일부는 공장건설에 들어갔다. 미국은 더 나아가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통제를 통해 단순히 중국 무기의 첨단화는 물론 첨단 제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첨단공정에 사용되는 극 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물론이고 한 세대 이전 장비인 심 자외선(DUV) 노광장비마저 공급을 끊기로 했다.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견제는 반도체 장비 뿐 아니라 반도체 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중국에 대한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하는 이른바 ‘칩4 협의체’ 참여를 요구받고 일단 1년간 유예를 받았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비중이 55%(우회 수출 포함)나 되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를 하기로 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운 ‘반도체지원법’을 내놨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이 법의 ‘가드레일(안정장치)’에 근거해 미국 내에서 초과이익 공유, 영업기밀 제공, 군사 협조 등의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더불어 중국에서 10년 동안 생산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고 기술적 업 그레이드만 허용했다. 한국이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고 하지만 거의 차악 수준의 조건을 제안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보조금을 받아야 하느냐, 미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느냐’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이유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며, 미국의 보조금도 받아야 한다. 우선 미국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이다. 미국 반도체 규모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차량용 반도체 수요와 AI 등 ICT 산업의 발전에 따른 반도체 수요로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를 멈출 경우 보조금을 받은 경쟁기업에게 시장을 빼앗기게 되고 미국에서 한국 반도체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중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일단 버티기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생산시설 확장이 5%로 제한된 상황에서 기술적 업 그레이드를 통해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10년 플랜을 체계적으로 짜야한다. 미국 반도체 보조금 수령 조건은 10년 후에 종료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이 10년만 버티면 중국 내 시설 확충 제한에서 풀린다.

국내에서의 반도체 투자전략은 해외 투자와 차별화해야 한다. 적어도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모두 자유무역의 원리보다는 보호무역의 원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반도체 기업은 기존의 칩 제조 역량을 넘어 설계 기술, 장비제조 능력 등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2042년까지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면 대만에 크게 뒤져있는 시스템반도체에서 크게 약진하는 것은 물론 주기적으로 겪는 메모리 반도체 불황으로 인한 산업 및 경영의 불확실성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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