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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경제위기 돌파도

"기대 이상으로 주문이 몰려 숨 쉴 틈도 없지만 이제야 좀 장사된다 싶어요."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조별예선 두번째 경기인 가나전이 있던 지난달 28일 저녁 동네 치킨가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해들은 가게 사장님의 말이다.치킨집 입구에는 우루과이 첫 경기의 선전 여파로 포장 주문을 하려는 사람들로 꽤 북적였다. 반죽을 입힌 치킨 재료를 연신 튀김조리기구에 넣다뺐다 하느라 분주했음에도 가게 주인은 ‘행복하다’는 말을 되뇌이며 밀려드는 손님들 맞이에 바빴다.원·부자재 가격 급등으로 치킨 판매가격도 올라 ‘소비자 저항’을 우려하던 차에 카타르 월드컵이 치킨업계를 포함한 외식업계 전반에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치킨·햄버거·피자·아이스크림 등을 다루는 주요 프랜차이즈업체들은 월드컵을 겨냥한 한정판 신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고객잡기에 바빴고, 실제로 치킨업계는 대한민국팀이 포르투갈을 이기고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짓던 이달 2일 가장 큰 재미를 보았다. 이날 BBQ·교촌치킨·BHC 등 치킨프랜차이즈 빅3의 매출액은 일주일 전과 비교해 나란히 100%, 75%, 180%씩 증가했다.물론, 8강 진출이 좌절되면서 월드컵 매출이 ‘반짝특수’에 그쳐 아쉬움이 컸지만 동네 치킨가게에겐 ‘가뭄 속 단비’나 다름없었다.그동안 외식업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고물가·고금리 기조까지 더해져 식자재 비용부담에 시달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이태원 ‘10.29 참사’에 따른 애도 분위기는 영세 소상공인의 장사에 더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듯 했다. 다행히 대한민국팀의 선전으로 월드컵 호재가 작용해 어려움을 다소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 반짝 특수도 내년 경제가 ‘무척 힘들 것’이라는 국내외의 부정적 전망 소식에 묻혀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근심을 키우고 있다.곧 2022년의 해가 지고, 2023년의 새 해가 떠오를 것이다.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와 온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다. 월드컵 16강 진출 ‘도하의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붉은악마 응원단의 ‘중꺾마’ 자세로 닥쳐올 위기의 파고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inahohc@ekn.kr

[이슈&인사이트] 中企 죽이는 대기업 기술탈취 근절해야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수출이 주도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대기업의 역할이 과도하게 강조되다 보니 경제의 뿌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 겪는 대기업의 갑질·기술유출·기술탈취 등의 문제는 간과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지금도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기술탈취 등의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대기업에 의한 기술탈취와 기술유용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보여주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발생한 기술침해로 인한 피해액은 189억4000만 원에 이르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피해액은 총 2827억 원에 달한다. 이 같은 조사는 발생한 모든 사례를 반영한 것이 아니므로 실제 피해는 훨씬 더 클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등 문제에 대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을 지난해 개정하여 시행하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기술침해 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대기업에게 부담시키도록 전환했고,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하였다. 이 외에도 하도급법·특허법·부정경쟁방지법 등에서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정들을 두어 중소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그러나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의 피해가 줄어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 또는 경영상의 정보 침해 이후에 중소기업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에 대해 별도의 조치가 없었다는 답변이 10.5%에 이르고,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에 노력하였다는 답변도 15.8%에 이르기 때문이다.중소기업은 왜 기술침해 등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합의 정도의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까. 이유는 소송이나 법률적 조치를 취한다고 하여도, 그 결과를 받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법률적 비용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그 기간동안 이미 중소기업은 빼앗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여 파산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특허침해심판에서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75%에 달했는데,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결과적으로 자본이 충분치 못한 중소기업은 피해보상마저 대기업에게 구걸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본이 충분하여 법률서비스의 접근이 용이한 대기업은 기술탈취의 방법을 더욱 고도화 한다. 실제로 기술자료의 공개를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것에 대해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되자, 모 대기업은 독점적인 용역계약을 줄 것처럼 달콤한 말로 접근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처럼 꾸미고, 중소기업의 독자적인 기술을 공동으로 연구 개발한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해 특허등록까지 마쳤다.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용역계약을 주지 않았고, 그 중소기업은 결국 회생절차에 들어가 도산의 위기를 겪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몰려 있다.이처럼 대기업의 기술탈취 등 방법은 고도화되고 지능화되어 가는데 현실적인 제도는 변형된 형태를 방지하거나 구제해주기 어렵다. 물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적극적인 행정조사 또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적극적인 조사를 통한 협의유도 또는 처벌이 나름 ‘중소기업 수호천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H중공업과 SY기계 사이의 기술침해 분쟁을 행정조사를 통해 해결한 사례가 있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는 법률분쟁에 비해 조속히 협의점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대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하청업체들의 단물을 빨아먹는 기형적인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법률 규정은 그런대로 잘 갖춰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제도들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90.1%(2020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자료)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경제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 보다 능동적인 정부의 개입과 역할을 기대한다.가뜩이나 경제환경이 어려운데 기술탈취까지 당해 억울하게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적극적인 행정 조사를 진행하여 중소기업을 보호하여야 한다.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의 용역 계약 제안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기 앞서 계약서에 대한 사전적 법률적 자문 등을 통해 기술탈취 등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예방조치에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E칼럼] 자원안보 외치면서 해외광산 졸속 매각 할건가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적폐’로 찍혔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민간 기업이 중심이 되고, 공기업이 지원하는 형태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에너지를 포함 원자재 공급망 위기에서 출발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 10년의 해외 자원개발 정책 잘못을 바로 잡고 실행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김대중 정부때 시작된 해외 자원개발은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때 대대적인 드라이브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광물의 자원개발률 목표 달성에 급급해 투자 성과가 부실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아예 ‘적폐’로 낙인 찍어 보유하고 있던 해외 광산을 헐값 매각하기도 했다.이에 따라 지난해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신규 사업은 전무했다. 우리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에서 손을 놓은 사이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은 해외에서 핵심 자원 확보에 속도를 내며 우리를 멀쩍이 따돌리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핵심 광물을 대부분 장악하다시피 한 상태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인 양극재에 쓰이는 리튬과 코발트의 경우 중국의 제련 의존도가 60% 정도 된다. 특히 전기차 성능을 결정하는 양극재 핵심 소재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등으로 만드는 전구체의 중국산 비중은 99.99%나 된다. 중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광물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중국이 2000년대초부터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한데 따른 결과다. 일본도 중국 못지 않게 해외 자원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8월 튀니지에서 개막된 아프리카개발회의(TLCAD)에서 앞으로 3년 동안 아프리카에 민관 합동으로 총 300억 달러(약 4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우리나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캐나다를 공식 방문하여 캐나다 총리와 배터리 핵심 소재 광물에 대한 협력 강화를 이끌어 냈다. 캐나다는 니켈 매장량 세계 5위, 정련 코발트 생산 3위 등 배터리 원자재가 풍부한 광물 수출 국가다. 지난 4일에는 응우엔 쑤언 푹 베트남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베트남 희토류 개발 및 다양한 핵심 광물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현재 글로벌 에너지.자원시장은 하루가 멀게 변하고 있다. 미중 갈등 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천연가스와 석탄 등 에너지 가격 뿐만 아니라 반도체, 이차전지용 핵심 광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에너지와 광물자원 대부분(92.5%)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광물 수입액 급증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작년보다 5% 늘어나 6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사상 최대 수출에도 불구하고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수입액이 1741억달러로 1년전보다 75%(748억달러) 급증했다. 이처럼 에너지 가격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올 들어 11월까지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최대인 426억달러에 달했다. 여기에 철광석, 니켈, 구리 등 광물 수입액을 합치면 그야말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할 것이다. 석탄 수입액만도 198억달러(약 28조30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연간 평균 1억톤 정도를 수입해 쓰고 있는 유연탄의 경우 12일 기준 호주 뉴캐슬 현물가격이 톤당 440달러로 연초 대비 118%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가 보유하고 있는 호주 나라브리 유연탄 광산을 매각키로 했다. 나리브리 광산은 1억 6900만톤 규모의 유연탄이 매장된 ‘알짜광산’이다. 매년 약 600만톤의 고품질 발전 및 제철용 유연탄을 생산 하고 있다. 나라브리 광산은 광물자원공사 해외 자산 중 거의 유일하게 매년 꾸준히 수익을 낸 광산이다. 2017년 3255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낸데 이어 지난해에도 664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광물자원공사가 어쩔수 없이 지분을 매각할 수 밖에 없다면 유연탄을 필요로 하는 국내 발전사가 인수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과 중국 기업이 우리 지분을 가져갈 공산이 높다. 해외 자원개발은 탐사-개발-생산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평균 수십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자원 가격 급등락에 일희일비해서는 일관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더구나 정치 논리로 접근해 자원개발의 맥과 생태계를 끊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제품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을 에너지와 광물 수입에 다 쓰고도 부족해 기록적 적자를 내고 있다. 수출이 줄고 에너지를 포함 원자재 수입이 늘어나는 현상을 잘 살펴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간 총성 없는 자원전쟁이 벌이지고 있다. 정부가 자원안보를 외치면서 그나마 보유하고 있는 알짜광산을 내다 파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부득히 팔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면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원자재 가격 인상을 우리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해외 자원개발을 통한 공급망 확보에 보다 세밀한 대책이 요구된다.강천구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기자의 눈]

또다른 팬데믹이 오더라도 경마·말산업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핵심 제도인 ‘온라인 마권 발매’ 법제화가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 8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담은 ‘한국마사회법 개정안’ 정부안을) 올해 중에는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내년에 법안소위 일정이 잡히는 대로 통과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차관은 "(온라인 발매 매출 목표와 그에 비례해 줄여나갈 장외발매소의 수를 둘러싼 농식품부와 마사회 간) 이견 딱 하나만 남았다"고 말해 법안 통과까지 단 하나의 ‘관문’만 남아있음을 강조했다.앞서 지난달 9일 농해수위 법안소위에 참석했던 김 차관은 "준비가 좀더 필요한 부분이 두 개 남았다"고 말한 바 있었다. 농식품부와 마사회 간 ‘이견’ 외에도 ‘불법 온라인 경마 처벌 수준’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 불법 온라인 경마 처벌 과제가 해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온라인 발매 도입 필요성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 2019년부터 제기돼 왔다. 마사회와 경마업계는 해외 선진 경마시행국의 사례를 들어 도입 필요성을 줄곧 촉구해 왔다. 결국 국회는 4명의 여야 의원들이 2020년 저마다 총 4건의 온라인 마권 발매 법안을 개별발의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시절 농식품부는 ‘시기상조’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제도 도입 자체를 가로막았다. 윤석열 정부의 농식품부도 이전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준비 중’이라는 말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경마·말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온·오프라인 융합 발매 시스템 구축은 농식품부와 마사회가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 기간에 드러났던 오프라인 발매 제도의 취약성과 말산업 붕괴 위기가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양대 주축기관이다. 내년 1월께 농해수위 법안소위가 다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끄는 모습으로 말산업계 종사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kch0054@ekn.kr

[이슈&인사이트] 금융위기 위험 일깨운 레고랜드 사태

지난 몇 달 사이에 우리는 두 차례의 기이한 ‘사태’를 경험했다. 하나는 영국의 리즈 전 총리의 대규모 감세 정책이 불러온 영국 파운드화의 폭락과 금융시장의 혼란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명 ‘레고랜드 사태’로, 지방 공기업 채권의 채무불이행이 가져온 채권시장의 급작스러운 경색 현상이었다. 결국 영국의 감세 정책은 철회되었고 리즈 총리는 영국의 최단임 총리로 50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레고랜드 사태를 촉발한 지방 공기업 채권은 전액 다시 상환하기로 했으며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은 43조 원의 유동성 지원을 공표하며 우선 급한 대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두 차례의 사태에서 놀라운 점은 정책당국의 일반적인 정책 발표에도 발작에 가까운 시장의 반응이었다. 레고랜드 사태를 촉발한 공기업 채권 금액은 불과 2050억 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왜 시장은 이렇게 발작을 일으킨 것일까. 이럴 때는 숲에서 빠져나와 먼 산을 바라보듯이, 좀 더 긴 통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태의 기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유로 재정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위기까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불과 10여 년의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세 차례의 국제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세 차례의 위기 대처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했으며 정부는 지출확대를 통해 경제성장률의 급격한 하락을 방어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대부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및 사회보장기구를 합한 일반정부 기준으로 2021년 말 영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146%로 매우 높은 수준을 기록하였다. 특히 2008~2021년 기간에 영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92%포인트 상승했는데, 이 증가 속도를 넘어선 나라는 자료 이용이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가운데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세 나라였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나라는 모두 유로재정위기의 당사국으로서 실제 금융위기를 겪었다. 리즈 전 총리는 고요한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그 연못 밑에서는 지난 십여 년에 걸쳐서 정부 부채의 급격한 누증 등 금융 기초여건의 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어떠한가. 정책당국의 유동성 공급 및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 등으로 채권시장은 일단 한숨을 돌렸으나 그 파장이 지방 중견 건설사 등 부동산프로젝트 사업 전반에 걸친 자금 경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미국 등 OECD 주요국보다 정부 부채비율도 낮은 편인데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보다는 민간 부채비율의 누증이 금융 불안의 기저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십여 년 동안 가계를 중심으로 차입투자(레버리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특히 2019~2021년 기준 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이 14.1%포인트 증가하는 등 자료 이용이 가능한 28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였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1950~2016년 기간에 대해 가계와 기업의 직전 3년간의 부채비율과 해당 자산가격이 동시에 크게 상승하는 경우 향후 3년 이내에 금융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40%로 예측된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평상시의 7% 금융위기 도래 가능성과 큰 대비를 이루는 결과이다. 여기서 기업부문의 자산가격은 주식가격, 가계부문의 자산가격은 주택가격을 각각 의미한다. 특히 직전 3년간의 레버리지 상승 및 자산가격 증가율이 국가그룹에서 상위 20% 이내에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를 레드존(R-zone)에 진입했다고 진단하였다. 동일한 방법론을 우리나라 가계부문에 적용하는 경우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OECD 28개 국가 중 부채비율 증가와 실질 주택가격 증가율 모두 상위 20% 이내에 속해 레드존에 포함되는 유일한 나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경제 기초여건을 벗어나 높아진 민간 레버리지가 금융위기로 종종 이어졌던 사례를 볼 때, 레고랜드 발 채권시장의 경색에는 이러한 금융 기초여건의 악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가계 부채비율의 누증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다시 찾아온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과 주택가격의 하락이 이어지며 이제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내년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국내외 주요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1.7~2.0%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 초반 정도라고 한다면 이 정도 성장률이 실제 실현된다면 여러 하방 리스크가 혼재하는 대내외 여건 속에서 비교적 선방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경제 전망의 전제는 제2, 제3의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며, 발생하더라도 금융위기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따라서 향후 잠재성장률 경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금융 불안 요소의 완화 등 금융 기초여건을 더욱 튼튼히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민간 부채비율이 적절한 수준으로 안정화되는 것이 긴요한 이유이다. 가계를 중심으로 민간 부채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고려할 때 향후 가계 레버리지의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이와 밀접히 관련된 자산가격의 안정에도 함께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금융 불안 요소가 해소될 때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금융기관의 자금공급이 원활해지고 기업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도 제고될 것이다.손종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E칼럼] 전력수급계획 개편, 전력시장과 연계성 높여야

조만간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될 예정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수급계획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수급계획의 역할과 기능전환에 대한 검토는 이미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구조개편 이후 발전진입이 허용되고 시장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전원을 개발하여 산업에 필요한 동력을 제공하던 국가주도 전원개발계획은 이미 역할을 다 한지 오래다. 지금은 재원조달의 어려움도, 기술적 제약도, 비용최소화라는 전원선택 기준도 유효하지 않다. 10여년 전부터는 에너지계획이라는 또다른 국가계획이 만들어지면서 계획간의 중복성, 정합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수급계획의 순기능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수급계획은 공급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계획이다.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계획기간 중 최대수요를 만족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발전설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비확보의 충족이 에너지믹스의 적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책과 시장간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계획을 보면 피크설비인 가스발전의 이용율이 턱없이 낮은 경우가 많았다. 설비와 에너지가 제각기 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용율이 낮은 설비는 결국 수익성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적자 발생시 수급계획이라는 규제를 빌미로 정부 책임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수급계획은 최근들어 에너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계획이라고 해봐야 수요증가 둔화로 10년 이후에나 예정된 원전 등 소수의 설비가 전부다. 이 또한 2년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바뀔수 있다. 그럼에도 수급계획이 만들어질 때마다 적지 않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수요전망 수준과 전원믹스의 문제로 정치적 공방과 논란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제 과거의 시각에서 벋어나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때다. 우선, 수급계획이라는 틀을 탈피하여 국가 에너지정책으로 변모하여야 한다. 공급력 확보문제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계통운영자의 몫으로 간주한다. 우리도 수급계획의 일부를 계통운영자에게 이전하여야 한다. 공급력 확보는 적정용량(adequacy) 개념으로 용량시장을 통해 조달하면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통합에너지정책(Integrated Energy Policy Report)을 2년마다 수립한다. 여기에는 전력자원계획, 전력가스예측, 에너지효율향상, 신재생에너지, 송전망계획, 기후변화, 원자력 등 다양한 자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에너지정책도 에너지원별로 나누어 접근하기 보다는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에너지 전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사실 에너지수급이 공급력 확보보다 중요하다. 경제여건이나 에너지가격 변동 그리고 재생에너지, 수소에너지, 전기차. ESS(에너지저장시스템) 등 에너지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 수요와 공급변동을 예측하여 정책수단을 대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변동요인을 고려할 수 있는 시나리오접근이 필요하다. 즉, 변동요인에 따른 에너지전망(outlook)을 토대로 에너지 절감, 온실가스 감축, 신에너지자원을 등 다양한 대응수단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에너지원별 전망과 연계된 일관성 있는 국가에너지정책의 수립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력시장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수급계획은 기본적으로 전원선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실제 시장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반영하기 어렵다. 수급계획이 시장과 따로 움직인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 본들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일 뿐이다. 시장이란 본래 상대방의 행태나 전략, 그리고 투자리스크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부가 무한책임을 질 수 없는 투자자의 몫이다. 전력시장에서 가격입찰이 가능하다면 시장신호에 따른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수급계획이 어떤 설비를 누가 언제 어디에다 지을 것인가를 정해주던 과거와는 다른 환경이다. 이제 수급계획을 전력회사, 사업자 등 다양한 시장참여자에게 신뢰성 있는 정책방향과 정보를 제공하는 새로운 기능으로 재편할 때다.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기자의 눈]

지난 6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대만 TSMC 미국 피닉스 공장 기공식은 규모와 투자액뿐만 아니라 참석자 명단을 두고도 화제였다. 세계적인 정·재계 인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는 TSMC 주요 고객사인 애플에서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엔비디아에서는 젠슨 황 CEO가 환영을 위해 직접 모습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참석했다. TSMC는 바이든 대통령 방문에 대한 보답으로 두 번째 반도체 공장 설립과 함께 총투자 규모를 기존 계획에서 3배 늘어난 400억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이날 기공식을 두고 미국이 대만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빼갈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TSMC가 미국 본토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며 중국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보이자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이다.TSMC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은 ‘안보 방패’로 떠오른 첨단 반도체 산업을 상징한다. TSMC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시장에서 점유율 절반을 확보했다. TSMC가 멈추면 첨단 반도체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개인용 컴퓨터(PC), 자동차뿐만 아니라 사실상 대부분 산업이 중단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는 국가안보"라며 TSMC를 아끼는 이유다. 반도체 패권을 쥐면 중국을 물리적 공격 없이도 고사시킬 수 있다.미국은 반도체 인프라에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다. ‘반도체법’을 통해 약 2800억달러를 자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 투자액 대부분은 기업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에 집중될 전망이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계도 국가적 지원에 목마르다. 하지만 우리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은 국회에서 공전을 거듭해왔다.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K칩스법’은 지난 8월 발의됐지만 이후 국회에 표류했다.그러던 중 여야가 K칩스법을 연내 통과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법안 통과가 늦어진 만큼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대기업 특혜’라는 논리에 갇히기보다 반도체는 국가안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유념해야 한다.jinsol@ekn.kr

[EE칼럼] 세계가 직면한 ‘낯선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

지난 6월 29일 유럽중앙은행(ECB) 연례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저금리와 저물가 시대가 끝났다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베일리 총재는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으며 코로나로 인한 고용감소와 임금상승 위험이 노동시장에 구조적 유산을 남겼다고 언급했고 라가르드 총재는 세계가 저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거대한 힘이 우리의 환경과 상황을 바꿀 것이라 말했다. 파월 의장은 저인플레이션 국면이 사라지면서 중앙은행의 운영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그런데 파월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예측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하며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해가 적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알고 있어야 할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파월이 역대급 물가상승에 대응할 지속적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하게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투자자들에게 30년간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했던 매크로 환경이 끝나고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는 대 격분기The Great Exasperation가 오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자 주식과 채권시장 모두 타격을 입고 투자기관 전략가들의 내러티브를 박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파월이 고백한 ‘낯선 인플레이션’를 유발한 요인 중 하나가 에너지 위기다. 지난해 영국의 풍력발전이 기대했던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에너지 위기로 천연가스 수요는 폭증한 반면 재고는 부족해 이를 사용하는 모든 산업에 전이되면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천연가스로 만드는 비료와 부산물인 이산화탄소가 모자라 식품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치면서 슈퍼마켓 매대는 비어가기 시작했고 식품 가격이 급등했다. 가격이 올라가면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톤당 1만 1000달러의 전력비용을 들여 만든 알루미늄이 시장에서 2800달러에 팔리자 프랑스 알루미늄 공장은 감산과 가동중단을 선택하며 가격은 올라가고 공급은 더욱 악화되었다. 때마침 이중통제로 석탄사용을 줄여가던 중국의 대정전으로 주요공장들이 멈춰 서면서 공급악화가 가중되었고 선진국들은 그해 11월부터 수십 년 만의 물가인상에 직면하게 되었다. 파월은 그 시점에서 ‘일시적’이라던 인플레이션 발언을 철회했고 독일은 2022년 1월부터 25.9% 상승한 생산자 물가가 현재까지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시적이라던 에너지 위기는 구조적 결함으로 지속되고 있다. 유럽은 전쟁 때문이라 러시아를 탓하고 있으나 이들의 위기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것이다. 에너지 위기로 전기와 난방가격이 치솟고 동일 제품 구매에 추가적인 돈을 내야 하는 시민들의 지갑은 얇아져 빈곤층부터 생활비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국민들이 매달 276달러를 추가 지불해야 한다고 추산했으며 G7 국가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영국에서는 6명 중 1명이 끼니를 거른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는데 청년층으로 좁히면 이 수치는 28%로 올라간다. 생활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 되었고 기업들은 에너지비용증가와 함께 추가 비용을 제품에 전가하면서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강화되고 있다. 반면 높은 천연가스 가격을 이기지 못한 유럽 공장들은 감산과 가동중단을 하며 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유럽의 구조조정과 실업이 증가할 것이나 물가상승의 근본 원인이 제거되지 않고 있다.금리 인상도 물가상승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화석연료가 전 세계에 언제 충분히 공급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드 매킨지는 2026년까지 LNG 공급이 타이트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 일본 경제산업성 회의에 참석한 니시자와 준 미쓰비시상사 천연가스부문 최고경영자는 중국 수요회복, 유럽의 러시아산 화석연료 탈피, LNG 프로젝트 투자감소 등으로 몇 년은 고사하고 2030년 이후에도 현물시장의 고공행진이 계속될 것이라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35년까지 에너지 믹스에서 가스발전 비중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통화정책이 없는 화석연료를 만들어낼 수 없고 급등하는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재정정책과 보조금은 금리 인상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파월이 고백한 낯선 인플레이션의 실체다.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이슈&인사이트] ‘우주기술 강국’ 꿈 이루려면

우주항공산업이 우리나라의 미래 유망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수년 전 미래 유망 기술로 알려진 6T(BT, CT, ET, IT, NT, ST)가 있다. 이는 생명공학기술(BT: Bio Technology),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 환경기술(ET: Environment Technology),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 나노기술(NT: Nano Technology), 우주항공기술(ST: Space Technology) 등이다. 6T 중 다섯 가지 기술은 이미 부상했고, 마지막 우주항공기술은 언제 두각을 나타낼지 오랜 기간 지켜봤는데, 대기만성으로 이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본, 러시아 등과 함께 세계 7번째로 무게 1t이상의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자력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7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게 됐다. 누리호는 지난 2010년부터 1조 9572억 원을 들여 국내 연구진이 순수 개발한 로켓으로, 지난 6월 발사에서는 지난해 10월 1차 발사 때와 달리 180kg 급 성능 검증 위성과 1.3톤의 더미 위성을 실었다. 정부가 미국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항공우주국)를 모델로 우주항공청을 신설하는 등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산업이 본격 추진된다. 한편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관련 법 개정안이 12월 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우주개발진흥법 및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시행된 것이다.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에서 벗어나 계약방식, 기술이전 등을 법으로 규정해 우주경제 실현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28일 우주항공청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우주경제 시대에 대한민국이 ‘우주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2045년까지의 정책 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했다.2023년 말 출범할 우주항공청은 우주항공정책을 수립하고 연구개발과 기술확보를 주도할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 중심, 프로젝트 중심으로 구성해서 우주항공산업 육성과 외교·국제협력을 아우르고 대한민국을 ‘우주경제 강국’으로 만드는 중추 역할을 수행해 나가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직접 국가우주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우주경제의 시대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대한민국은 5년 안에 달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발사체의 엔진을 개발하고, 10년 후인 2032년에는 달에 착륙하여 자원 채굴을 시작할 계획이다.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으려고 한다.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기술을 개발할 것이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가려 한다. 이를 위해 5년 내에 우주개발 예산을 2배로 늘리고, 2045년까지 최소 100조 이상의 투자를 이끌어 내려 한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우주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고, 세계 시장을 선도할 민간우주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전용펀드를 만들어서 지원한다.개정된 우주개발진흥법은 우주개발 기반시설 민간개방 확대, 우주개발 사업에 계약방식 도입, 우주신기술 지정 및 기술이전 촉진, 우주분야 인력양성 및 창업촉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6월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1월 29일 국무회의에서는 관련 시행령이 의결됐다.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30∼40년 늦게 우주 개발에 나섰지만, 단기간 내 놀랍게 성장해 현재 세계 7위 수준의 경쟁력을 갖게 됐다. 민간 우주여행이 시작됐고,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가 재개됐으며, 화성 등 더 먼 우주를 향한 발걸음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우주는 더 이상 개척의 대상이 아니라 개발의 대상이 됐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고갈, 자원·식량 안보, 재난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우주 기술은 필수적이다. 우주항공청이라고 정부조직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해결해야 난제가 산적해 있다. 정부조직 구성보다 앞서 우주개발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비전이 먼저인데, 우리나라는 이게 부족한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우주항공산업 관련 공공기관과 군(공군)이 보유한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는 문제, 공공기관·군·민간의 역할 분담도 잘 조정해야 한다.[이슈&인사이트] ‘우주기술 강국’ 꿈 이루려면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대한경영학회 회장

[기자의 눈] 韓, 에너지전환 진행 속도는

옛날 중국의 황하강 중류에 머물던 물의 신 장하백은 자신이 머무는 곳에 금빛 물결을 보며 ‘이리 큰 강은 없을 것’이라며 감탄하고 있었다. 마침 늙은 자라 한마리가 나타나 해가 뜨는 쪽에 엄청 큰 바다가 있다고 알려준다. 하백은 훗날 여행을 떠나 북해를 발견하고는 북해의 신 ‘약’에게 고백한다. "내가 주인인 황하가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인 줄 알고 있었는데 당신의 바다에 비하면 내 황하는 참으로 보잘것 없군요."해외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구나’ 싶다. 특히 에너지전환에 있어 말이다. 지난해 취재 차 덴마크를 방문한 일이 있다. 마침 시기가 들어맞아 유럽 풍력협회 기자 간담회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인근 유럽 기자들과 함께 글로벌 풍력기업인 오스테드와 베스타스 등 기업들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실무자들의 설명을 들었다.두 기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미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내용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사업 내용과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상황에서 가장 크게 격차가 느껴졌던 지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베스타스의 미래 사업 계획이었다. 풍력 터빈 기업 베스타스는 지속가능성을 구현하고자 터빈에 쓰이는 자재를 친환경 소재로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풍력발전기 폐기물 문제를 줄이고자 유지보수 시스템을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사업이 추진돼가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여전히 주민수용성 문제나 인허가 문제 등으로 계획된 발전사업이 첫 삽도 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발전기를 세우는 것부터 어렵다보니 우리나라 기업들은 유지보수나 부품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단계 조차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그 사이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시장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여름부터 한화큐셀이 미국에 태양광 관련 대규모 생산시설을 짓기 위해 실사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틈을 타 현지 생산량을 높여 점유율을 올린다는 목표다.국내 전선업계들도 재생에너지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해상 풍력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해상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운반할 해저케이블 생산을 늘릴 준비를 다져가고 있다. LS전선은 잇따르는 해외 수주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대한전선도 세계 각 국과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협력에 나서고 있다.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 즉 돈이 되는 곳으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국내 기업들이 향하는 해외 시장이 어떤 분야인지만 파악해도 미래 먹거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다툼에 비롯한 에너지전환 제동걸기에 바쁘다.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구나. 이만큼이나 앞서 생각하고 있구나’를 느껴야 한다니, 그야말로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하는 ‘망양지탄’이 아닐 수 없다.claudia@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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