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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한국 국민의 과학불신은 정치 지향적인 일부 과학자들이 정치와의 야합을 통해 과학의 정치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댐 사건이다. 1986년 11월 서울대 공과대학의 모 교수는 "금강산댐과 같은 사력댐은 물이 넘치면 순식간에 파괴된다. 1분당 50~60㎝씩 균열이 계속되면 높이 200m의 댐은 4~5시간이면 파괴된다. 저수량 200억 톤의 댐이 무너지면 하류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라며 대응댐 건설을 주장했다. 여기에 당시 KBS는 금강산댐 붕괴를 가정해 여의도 63빌딩의 21층까지 물이 차 오르는 섬뜩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전국에 중계했고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그 이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정치과학자는 10년 후 서울대 총장이 됐고 명지대 총장도 맡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국민에게 해명이나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념적인 정치와 논리적인 과학이 야합할 때 무서운 결과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소련의 생물학자 리센코다. 리센코는 시험장에서 종자를 개량하는 생물학자였다. 그는 가을밀을 봄에 파종하면 싹이 나오지 않는데 영하에서 수십일 간 종자를 보관하는 ‘춘화처리’를 거치면 봄에 파종해도 싹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리센코는 이렇게 개량된 종자가 형질이 완전히 변해 후대의 종자도 봄 파종용 밀이 된다는 기존의 멘델이론과 충돌하는 ‘획득형질 유전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은 당시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 창조’라는 당의 정치적인 이념의 기본이 됐다. 더욱이 공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념에도 들어맞았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과학을 극복한 사회주의 과학의 탄생’을 선언하고 기존의 멘델이론에 기초한 부르주아 과학을 퇴출했다. 그러나 구소련은 리센코의 이론에 의한 곡물 증산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구소련 붕괴에 리센코의 형질유전이론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과학과 정치의 상생 관계를 말할 때 인용되는 대표적인 모델이 1911년 설립된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회다. 이 연구 모임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빌헬름 2세는 부국강병을 위해 연구소가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연구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지원만 할 뿐 아돌프 하르나크에게 연구회 운영의 전권을 맡겼다. 이렇게해서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과학기술계의 성공모델이 만들어졌다. 이 연구모임은 지금은 자연과학연구소 세계 1위, 광학연구소 3위로 평가받는다. 이 연구모임은 30여 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을 정도로 독일의 자랑이 됐다.
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자신들의 편향된 이념의 합리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과학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런 유혹에 말려들기 않기 위해서 과학은 정치와의 불가원(不可遠),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과학의 정치와의 불가원은 연구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정치와의 불가근이 지켜지지 않는 과학의 정치화는 과학에 대한 불신을 낳을 뿐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집단 이익보다 객관적 진실을 더 중시해야 한다. 광우병 사태,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과 같이 국민의 과학에 대한 불신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