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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된 전기료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요약> 전기료가 정치가 됐다. 연료비 연동제는 유명무실하다. 한전은 역대급 적자 수렁에 빠졌다. 이러다 국가 에너지 경쟁력마저 추락할 판이다. 연동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게 해법이다.전기료가 정치가 됐다. 전기는 대표적인 공공재다. 따라서 정부의 간섭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전기 회사가 적자 수렁에 빠졌다면? 더구나 그 회사가 증시 상장기업이라면? 투자자들로선 정부의 지나친 간섭에 뿔이 날 수밖에 없다. 한전은 지난해 32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최악이다. 올해도 수조원 적자가 예상된다. 법이 정한 사채 발행 한도도 목까지 찼다. 이러다 한전이 이끌어가는 전력시장 생태계마저 흔들리까 걱정이다. 한전이 진 빚은 결국 국민이 갚아야 할 몫이다. 폭탄은 언젠가 터지게 돼 있다. 정치가 된 전기료, 뭐가 문제이고 해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 콩보다 싼 두부2018년 7월 당시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페이스북에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라는 글을 올렸다. "수입 콩값이 올라갈 때도 그만큼 두부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이제는 두부값이 콩값보다 더 싸지게 됐다"는 것이다. 콩은 전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연료, 두부는 전기를 말한다. 콩과 두부는 역대 한전 사장의 단골 레퍼토리다. 2008년 당시 김쌍수 사장은 "콩값이 올라가면 두부값도 오르는 것이다. 가스와 유가가 50~100%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동결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기요금은 선진국처럼 연료비 가격 변동을 반영해 조정하는 연동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갑은 정통 관료, 김쌍수는 LG 부회장 출신이다. 관 출신이든 사기업 출신이든 전기료 책정에 문제가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셈이다. ◇ 정부는 넘사벽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부 정책은 손바닥처럼 쉽게 뒤집힌다. 하지만 전기료 정책만은 일관성이 있다. 보수든 진보든 그저 꾹꾹 누른다. 겉으론 물가가 올랐다거나 서민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를 댄다. 속으론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 그 바람에 한전만 골병이 든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쌍수 사장은 소액주주들한테 소송을 당했다.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싸게 책정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후임 김중겸 사장은 전기료 인상을 놓고 정부와 티격태격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지만 소용없었다. 한전은 2012년 전기료 두자릿수 인상을 지식경제부(현 산업부)에 요청했으나 두차례 반려당했다. 한전이 인상률을 4.9%로 낮춘 뒤에야 정부는 승인 도장을 찍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가 큰 이슈가 됐다. 요금폭탄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2016년 12월 누진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가구당 연평균 11.6%의 인하 효과가 예상된다고 홍보했다. 한전 입장에선 수익 감소다. ◇ 무늬만 연료비 연동제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료가 올랐다는 말이 나올까봐 노심초사했다. 되레 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을 여름(7~8월)에 깎아주는 개편안을 2019년에 내놨다. 한전으로선 연간 3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떠안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한전 이사회가 개편안에 제동을 걸었다. 이사들이 배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진통 끝에 개편안은 이사회를 통과했으나 조건이 붙었다. 2020년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그 개편안이 바로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연료비 연동제다. 전기 생산에 쓰이는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유류 등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주기적으로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한전의 오랜 숙원이 풀리는 듯했다. 웬걸, 연동제는 디테일의 벽에 가로막혔다. 기름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면 정부는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한전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정부가 ‘유보’하면 그만이다. 또 요금을 올리더라도 kWh당 직전 요금 대비 1회당 3원까지만 변동이 가능하게 했다. 정부는 유보 카드를 수시로 내밀었다. 동시에 한전은 적자 수렁에 빠졌고, 주가는 뚝뚝 떨어졌다.보수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전기료 인상을 단행하는 등 기세좋게 나갔다. 작년 6월 추경호 부총리는 "누적된 적자 요인이 워낙 심화하고 있어 (전기료를) 동결하기엔 회사(한전) 자체의 경영 존립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정부가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갔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국내 물가 역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겨울철 난방비 폭탄을 다룬 뉴스가 줄줄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올 상반기 공공요금 인상을 동결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3월 말 당정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보류했다.◇ 왜 자꾸 되풀이될까한전은 1989년 국내 증시에 상장됐다. 이어 1994년 주식예탁증서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다. 겉으로 봐선 민간기업이다.그러나 속을 보면 다르다. 최대주주는 여전히 정부다. 산업은행이 32.9%, 기획재정부가 18.2%의 지분을 쥐고 있다. 둘을 합치면 51.1%로 절반이 넘는다. 자본주의에선 지분이 왕이다. 상장사 한전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법원도 정부 권한을 인정한다. 2012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전 소액주주들이 국가와 김쌍수 사장을 상대로 낸 10조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지식경제부는 물가 등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을 기초로 전기요금을 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산정하더라도 법령을 위반했다거나 임무를 게을리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해법은 뭔가단기 해법은 애써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를 원래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다. 정부의 ‘유보’ 권한은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게 맞다. 근본 해법은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10대 국정과제에서 제시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전력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을 강화하고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을 구축한다."전기료 변동을 심의하는 전기위원회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현재 전기위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에 설치된다(53조). 위원장을 포함해 비상임위원 8인과 상임위원 1인(산업부 관료 겸임)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과 위원들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산업부의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기위는 전기요금 심의만 할 뿐 인가권은 정부에 있다. 전기위의 판단을 정부가 함부로 거부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전법은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1조)으로 명시한다. 회사가 튼튼해야 주어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물가 또는 선거 핑계를 대며 정부와 정치권이 자꾸 할 일을 미루면 언젠가 사달이 나게 마련이다. 한전 직원 또는 한전 투자자들을 위해 전기료를 정상화하자는 게 아니다. 에너지는 국가 대계다.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한전이 튼튼해야 우리나라 에너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미래형 전력망 구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공룡 한전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전기료 인상으로 타격을 입을 에너지 취약 계층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다만 싼 전기료에 집착한 나머지 에너지 산업의 기초를 흔드는 어리석음은 피하자는 얘기다. <경제칼럼니스트>▲전기료 인상은 민감한 정치 이슈가 됐다. 역대 정부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전기료 인상을 억누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물가가 뛰면 정부는 전기료 등 공공요금부터 동결한다. 이런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한전은 적자 수렁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전력망·시장 부분. 출처=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의 눈] 부동산PF, 증권사에 여전한 시한폭탄

"은행이든 건설사든 연쇄 부도 사태는 막았지만 언제 또 터질지 모릅니다."지난해 레고랜드발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분위기에 모 건설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금융당국이 위험 관리에 돌입하면서 한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란 거다.최근 시장의 관심은 부동산PF 문제를 떠났다. 은행과 증권, 건설사들이 위험 관리에 돌입하면서 위기를 넘겼다고 자평하고 있어서다. 또 4거래일째 이어지고 있는 SG증권발 상장사 무더기 하한가 사태도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유명 연예인도 관여된 것으로 거론되면서 시장에서 부동산PF 부실 우려는 점차 잊혀지는 듯하다.하지만 현 상황은 심각하다는 게 문제다. 주요 증권사 PF대출 연체율은 위험수위로 일컫는 10%를 넘어섰고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증권사 35곳의 대출 잔액은 4조5000억원, 연체율은 10.38%로 집계됐다. 2021년 말 연체율이 3.71%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급격하게 오른 셈이다.부동산PF 우발부채 리스크는 업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 등 악재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은 만큼 부동산PF 부실화도 위험 수위에 올랐다. 대구를 필두로 지방 부동산 시장은 거의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지방에서 주로 많이 이용하는 제2금융권에 비상이 걸렸고 새마을금고는 최근 ‘위기론’까지 급부상했다.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도 피해 지원에 돌입한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특별 금융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저측은행의 대출 문턱을 높여 위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수준으로는 충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지원을 기본으로 증권사와 대형 은행이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브릿지론이 제2금융권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며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건설업계부터 금융업계까지 연쇄적으로 붕괴할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말했다.부동산PF 리스크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기업들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뿐더러 금융당국도 의지 표명에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연쇄 도산의 위기를 넘겼다고 자평할 때가 아니다.

[이슈&인사이트] AI 시대를 사는 법

우리는 최근 몇 개월 동안 AI가 이룬 놀라운 발전을 목격하고 있다. 챗GPT라는 최첨단 AI 언어모델이 보여준 의사소통(communication)과 문제 해결(problem-solving)을 위한 혁신적인 힘은 개인의 일상적인 삶은 물론이고 조직의 전문적인 일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런 혁신 기술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챗GPT 기술의 가장 큰 성과는 인간과 AI시스템 간의 원활하고 직관적인 의사소통이다. 챗GPT가 인간 언어의 맥락과 뉘앙스를 이해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응답을 제공한다. 사용자 만족도와 AI 기술에 대한 신뢰를 높여 간다면 인간과 AI와의 연결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챗GPT는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고 대안을 탐색하고 여러 출처의 정보를 종합하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돕는 도구라는 점이다. 질문에 답하고 설명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창의적인 통찰력을 제공해 사용자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고 고질적인 인지 편향도 줄여 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AI 언어모델이 제공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 우세하다. 최근 퓨 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는 AI가 근로자 일반에 대해 영향을 미칠 것 이라면서도 자신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근로자는 28%에 불과하다. 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직장에서 AI의 영향이 유익하기 보다는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조사가 작년 말 이뤄졌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AI기반 Bing, 구글의 챗봇 Bard, OpenAI의 새로운 모델 GPT-4 그리고 여타 기업과 독립개발자가 수많은 AI기반 도구를 내놓은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몇 달 전이 아니라 몇 년전 이야기로 느껴질 만큼 진부하다. 분명한 것은 현 상황에 대한 판단과 앞으로의 기대와 상관없이 AI 기반 의사소통 및 문제 해결 접근은 우리가 AI와 함께 상호작용하고 솔루션을 찾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자연어 처리(NLP)를 통한 실시간 번역은 언어 장벽을 허물고, 문화간 연결을 촉진하고, 기업은 감정 분석을 통한 실시간 피드백으로 고객 서비스 개선을 도모할 것이다. AI는 데이터 처리와 패턴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어 금융과 보안 및 환경 부문에서 더 나은 정보에 입각한 의사 결정과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AI의 자동화 및 최적화 기능은 생산성을 높이고 제조, 운송 및 의료 비용을 줄인다. 인간도 고유의 공감과 감성 지능을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소통하는 데 우월하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는 엔터테인먼트, 예술 및 신기술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 공감과 사회적 스킬은 의료, 교육 및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 복잡하거나 모호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인간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한다. 특히 인간의 판단과 도덕적 가치는 데이터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편향, 일자리 대체와 같이 AI가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마법은 AI와 인간의 능력이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에 있어 서로를 보완하면서 협업을 촉진할 때 나타난다. AI의 데이터처리 기능과 인간의 직관 및 판단을 결합하면서 한때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AI로 증강된 창의성은 영감을 제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기존 개념을 개선함으로써 인간을 도울 것이다. 이 강력한 시너지 효과는 의사 소통과 문제 해결의 전례 없는 발전을 열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줄 것이다. AI와 인간 능력 간의 협업을 통해 AI의 혁신적인 잠재력을 활용하고 그것이 제시하는 과제를 탐색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결국 AI와 인간이 함께 혁신적인 솔루션의 새로운 시대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이 협업을 수용하고 점점 더 AI 중심의 세상에서 탐색하고 번성하는 열쇠를 찾아야 한다. 이런 협업을 통해 우리는 AI 기술의 놀라운 가능성을 실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EE칼럼]뒤늦게 드러나는 탄소중립의 민낯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탄소중립의 덫에 단단히 잡혀버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해야한다는 목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의지를 무작정 탓 할 수는 없다. 인류가 위태롭게 올라서서 버티고 있는 얇은 얼음판이 빠르게 녹고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무거운 경고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의 멋진 ‘막춤’을 국제사회에 자랑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재작년에 어설프게 내놓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부끄러운 민낯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환경사회학자의 어설픈 억지에 우리 사회가 발목을 잡혀 주저앉게 될 판이다. 우리 사회가 무한정 쏟아지는 햇빛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깨끗한 전기를 공짜로 생산한다는 유아적인 유혹에 혼을 빼앗겨 버렸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시작일 뿐이었다. ‘탄소 없는 섬’을 꿈꾸며 재생에너지에 올인했던 제주도가 뒤늦게 마주한 현실은 암울하다. 황금알을 낳아줄 것이라던 태양광·풍력 설비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공짜’ 전기가 오히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출력 제한’이 전남·전북(새만금)으로 번질 기세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섰던 경북·경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적자의 늪에서 빠져 제 코가 석 자인 한국전력이 선뜻 나서서 영세 태양광·풍력 사업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가능성도 없다. 아직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엉터리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태양광·풍력 설비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해줄 ESS 설치비용이 최소 787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루 고작 2.5시간 가동하는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규모다. 정밀 전자설비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ESS의 화재·폭발 위험도 심각하다. 전문성과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자가 그런 ESS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도 의문이다. 바이오연료에 대한 기대도 황당하다. 온실가스 1180만톤을 줄이기 위한 바이오 나프타를 생산하려면 전 세계 생산량의 78배에 해당하는 캐슈넛이 필요하다. 남한 면적의 22배가 넘는 경작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떠들썩하게 내놓았던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사실은 바이오 나프타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엉터리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을 모아놓은 셈이다. 지난 8년 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지구촌 기후 위기의 현실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왔던 이회성 의장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포함한 온실가스 대책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집에 반드시 불이 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총수입을 넘어서는 일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을 포기한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과연 앞으로 7년 안에 포스코 규모의 산업현장 4개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 탄소중립에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서 매달려야 하는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놓은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원전은 탄소중립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유일한 ‘현재 기술’이다. 그런 원전을 빼놓은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 음주운전의 피해가 무섭다고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패배주의로는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한전에게 26조 원의 손실을 떠안긴 탈 원전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탄소중립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IPCC가 우리에게 탄소중립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배출량의 1.51%를 배출하는 우리가 탄소중립을 통해서 지구촌의 기후 위기 극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탄소중립은 이념적인 탈 원전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시급하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커뮤니케이션

[기자의 눈] 실패할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20일(현지시간) 스페이스 X의 대형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이 첫 지구궤도 시험비행에 나섰다. 결과는 실패. 수직으로 솟아오른 비행체는 약 4분만에 폭발했다. 2단 발사체가 계획대로 분리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게 쉬울 리 없다. ‘실패’ 이후 현장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스페이스 X 직원들은 탄식 대신 환호성을 질렀다. 발사 현장 주변에 모인 수천명의 인파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4분간 성공’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몇 달 뒤 있을 다음 시험을 위해 많이 배웠다"고 적었다. 머스크가 2002년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실패할 것을 알지만 스페이스 X를 세웠다." 혹자는 미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실패’에서 찾는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 큰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4차례 파산 경험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게 해고됐을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회상했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실패가 곧 낙인이다. 몸집이 조금만 커져도 신사업 진출에 두려움을 느낀다. 적자라도 났다가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숫자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CEO들은 혁신을 두려워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은 공허하게 들린다. 반도체 분야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기술력이 대만에 뒤진 이유로 "실패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은 정부 차원에서 기술 개발을 독려·지원하며 실패를 유도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게 요지였지만 유독 "많은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실패한다"는 말이 귀에 박혔다. 바야흐로 ‘복합위기’ 시대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다양한 형태로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정치·경제·기업 모두 변화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실패할 줄 알아야’한다.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달 24일 오후 6시24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로 향한다. 성패를 떠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yes@ekn.kr산업부 여헌우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이슈&인사이트]AI로봇시대,G4 진입 지렛대 삼자

최근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전자제품 등 제조 산업 분야의 생산공정을 거의 100%에 가깝게 자동화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로봇의 눈’으로 불리는 머신비전 기술 혁신과 인간 작업자와 함께 작업하는 협동로봇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다. 산업용 로봇은 이제 제조산업을 넘어 식음료 등 전 산업 분야의 자동화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미국, 독일, 일본 등 로봇산업 선진국들은 전 산업을 혁신하고,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보고 로봇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제 로봇연맹(IFR)은 세계 로봇산업 시장이 2021년 기준 282억 달러(약 30조원)에서 2030년에는 831억달러(약 100조원)로 10년간 3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제조용 로봇 비중이 70% 정도고 비제조업 분야인 서비스 로봇 산업의 시장도 그 비중이 점차 커질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고 모자라는 인력의 대부분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서비스도 등장할 것이다. 미래 로봇 시대의 모습은 SF 영화에서 꿈꾸었듯이 AI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런 모습이 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처럼 현실로 다가올 미래 로봇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당연히 사회와 산업전반에 걸쳐 다각적이고 총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로봇의 이동성(mobility) 강화에 따른 안전 규정 등 각종 법제도부터 우선 정비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학습을 시작해야 하고, 기업과 대학·연구기관·전문직 인력 양성기관들도 로봇시대에 맞춰 혁신이 필요하다. 준비 안된 기업에게는 쓰나미 처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생존경쟁의 게임판을 덮칠 것이다. 더욱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기술의 메가트렌드에 걸맞은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를 놀라게 하는 ChatGPT기술은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 수준의 인공지능은 이른바 자아가 없는 매우 약한 인공지능이다. AI 스스로 자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심지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한 마디로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컴퓨터의 자판과 같이 누르는 대로 작동하는 수동기계다. 따라서 모든 명령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수행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탠리큐브릭 감독의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나온 HAL이라는 강력한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가 출현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하는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아(ego)는 자체가 매우 철학적 개념이다. 인공지능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인간과의 연결은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인간의 명령 없이 작동하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 판단이 인간에게 불리해 지는 순간 인간과 기계의 생존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그날 우리는 정말 AI를 통제할 수 있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인간사회 모든 것이 AI를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가 출현하고,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자동차를 기반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같은 상상이 현실화되려면 빨라도 5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AI를 잘 통제하고 사회전반에 윤리, 안전, 민주 등의 시각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AI를 잘 통제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인간세상은 그야말로 유토피아 세상을 맞게 될 것이다. 혹자는 AI 로봇시대가 대한민국에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는 오직 우리의 판단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구한말의 유학자(성리학)들이 서양문물을 거부하고, 수구적·폐쇄적 정책을 펼치다 결국 주변 열강으로부터 강제로 침탈당한 것 처럼 절체절명의 위기를 다시 맞을 수가 있다.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기업이든 나라든 도태되는 세상이다.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IT 기술과 인프라, 우수한 인적 자산을 기반으로 미래세상의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면 미국,일본, 중국에 이어 G4로 등극하는 꿈 같은 미래강국 대한민국이 실현될 것이다.고경철 세종과학포럼 회장/카이스트 로봇공학연구단 연구교수

[EE칼럼]한미동맹, 에너지-그린테크 분야로 확대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한미동맹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지리라는 기대가 높다. 특히 이번 방문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2명의 경제사절단이 함께한 만큼 양국의 경제 협력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전혀 없다시피하지만 제조업과 수출을 기반으로 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세계화 시대에 한국식 경제 발전 모델은 그 꽃을 피웠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의 심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및 곡물 수급 불안정 등에 의해 대한민국호(號)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구조적인 난맥상에 처해 있다. 지경학적으로 복합적인 위기가 계속 발생할 수 있는 이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의 경제 안보 동맹 강화를 기본 정책 기조로 삼고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편승(bandwagoning)하려는 자세를 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시각들도 존재한다. 동맹은 본래 군사적인 의미에서 공통의 적을 상정하고 힘을 합쳐 맞서려는 데에 존재 이유가 있는 데 이런 개념을 경제 분야에까지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에 일정 부분 무리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역사가 반드시 군사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 온 만큼 앞으로도 양국의 경제 협력이 경제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호혜적인 방안들이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비로소 군사 동맹도 안정적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한미 협력의 맥락에서 함께 논의돼야 할 것이 에너지-그린테크 부문이다. 에너지-그린테크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간의 쟁점으로 우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관련 부분과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의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간의 소송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피해를 주는 행위를 최소화하고 협력이 원활하게 작동될 때 한국의 그린테크 수출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에너지-그린테크 관련 한미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많이 있다. 중단기적으로는 가스 공급의 안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한국의 1차 에너지 구성에서 천연가스 비중은 20%, 전원구성에서의 비중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화석연료이긴 하지만 석탄에 비해 친환경적인 가스는 에너지 전환의 국면에서도 당분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에너지원이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 전쟁 이후 미국산 LNG의 수출의 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러시아산 도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미국산 LNG가 유럽과 동아시아 시장 모두에게 안정적인 공급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 안정적인 가스도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선진국들이 녹색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 정책 기조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저탄소 환경에서 조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자체적인 노력과 함께 그린수소와 같은 신에너지 분야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도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국토가 넓어 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으면서도 신뢰 가능한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리튬이나 희토류 같이 그린테크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멕시코를 필두로 최근에는 칠레까지도 리튬을 국유화하는 등 자원보유국들의 자원 보호주의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따라서 미국과 힘을 합쳐 협상력을 제고하고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되 한미는 FTA 체결국인 만큼 무역 정책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기술 협력을 통해 새로운 수출 시장 개척에도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다면 한미동맹이 군사 동맹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동맹’으로서 국익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기자의 눈] 전기요금 인상 지연과 한전채 급증, 피해는 대다수 국민

전·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지연하는 사이 한국전력공사가 3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전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의 인기가 높아졌다. 지난해에만 20조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한 한전은 올해 4월까지 7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추가 발행했다. 한전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면서 발전사 전력거래대금지급 등 비용을 채권 발행으로 충당해왔다. 채권 투자자들은 사실상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AAA등급인 한전채 매수로 큰 금융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전기요금 인상 수준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적자 규모가 커졌고 이는 한전채 발행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 최고 5.99%까지 치솟았다. 이후 올해 초 3.5%까지 떨어졌지만 3월 이후 4%에 근접하게 오르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30일 발행된 한전채의 금리는 3.99%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한전채 매수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적자를 봐도 부도 위험이 없는 만큼 고금리로 이자 수익 기대가 높다는 것이다. 한전채는 6개월 주기로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한다. 투자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정상화로 한전 실적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게 되고 기준금리도 상승세가 멈출 경우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정부가 한전에 요금 인상 전에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고통분담과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양상이다. 한전은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확정적이다. 한전 사장도 1분기에만 수조원대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면 올해 말 자본잠식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는 한전이 올해에도 1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적자를 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와 한전은 수년 내에 국제에너지가격 안정화로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현재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에너지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향후 한전채마저 팔리지 않게 되는 상황이다. 요금 폭등 혹은 재정투입, 민영화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정치인과 투자자들이 아닌 대다수 국민들이 지게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clip20230427101231 전지성 정치경제부 기자.

수단, 끝없는 내전의 나라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아프리카 수단에 있던 우리 교민 28명이 무사히 탈출했다.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이다. 수단에선 군벌 간 전투가 한창이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싸울까? 앞으로 전망은? 수단과 한국은 어떤 관계인가?◇ 누가 왜 싸우나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이끄는 신속지원군(RSF·Rapid Support Forces)이 싸우고 있다. 부르한과 다갈로는 2년 전 쿠데타 동지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을 두고 한치 양보 없이 싸우고 있다.신속지원군, 곧 RSF는 준군사조직이다. 말이 준(準) 군사조직이지 군대나 마찬가지다. RSF는 잔자위드(Janjaweed)라는 민병대가 모체다. 잔자위드는 2000년대 초반 수단 내전에서 악명을 떨쳤다. 이때 수단 서쪽 다르푸르(Darfur)에서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는 인종학살 범죄가 저질러졌다. 당시 수단 내전은 2011년 수단에서 남수단이 분리 독립하는 계기가 됐다.◇ 수단의 슬픈 역사역사적으로 수단은 늘 이웃 강대국 이집트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엔 영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956년 독립할 당시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였다. 남수단이 떨어져나간 지금도 영토는 아프리카 3위다. 석유와 희귀자원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쿠데타와 장기독재가 나라를 망쳤다. 2021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71달러(국제통화기금 추계)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4800만명이다.수단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마르 알 바시르다. 알 바시르는 1989년 쿠데타를 일으킨 뒤 2019년까지 30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했다. 2018년 기름값, 빵값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2019년 알 바시르는 쿠데타로 쫓겨났다. 이후 수단에도 민주화 바람이 부는 듯 했으나 2021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지금은 그 쿠데타의 주역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어떻게 될까AP통신은 수단 군벌 간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걸로 본다. 주변 국가들의 이해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수단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가 경쟁국 에티오피아를 견제하는 데 수단 군부는 유용한 도구다. 이웃 차드와 남수단은 파장이 국경을 넘을까 전전긍긍한다. 이미 난민들이 걸어서 차드와 남수단, 이집트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특히 주목할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다. UAE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기는커녕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동쪽에 있지만 RSF와 가까운 사이다. AP통신은 RSF가 예멘 후티 반군과 싸우는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천명을 보내 두 나라를 도왔다고 전했다. 25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보네트워크를 가진 UAE가 아니었으면 육로를 통해서 (수단 교민을) 구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UAE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RSF와 긴밀히 소통하는 UAE가 우리 탈출작전을 측면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한국-수단 관계는수단이 한국에 알려진 건 이태석 신부(2010년 작고)의 공이 크다. 성직자 겸 의사인 이 신부는 2001~2008년 당시 수단 남부 톤즈에서 봉사했다. 이 신부의 헌신은 2010년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톤즈는 현재 남수단에 속해 있다.한국과 수단은 1977년에 수교했다. 한국은 1977년, 수단은 1990년에 각각 현지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수출입을 합한 교역액은 1억6600만달러(2021년 무역협회 자료)로 미미하다. 수단은 원래 한국보다 북한과 먼저 수교(1969년)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현지 대사관을 폐쇄한 채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겸임한다. 수단은 한국에만 대사관을 두고 있다.◇ 탈출작전 프라미스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구출작전에서 일본인 몇 명도 같이 수단을 빠져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4일 "한국, UAE를 비롯한 관계국과 유엔의 협력에 감사하다"라며 사의를 표했다. 잘한 일이다. 탈출 러시 속에서 각국은 자국민 외에 외국인이라도 여건이 되면 기꺼이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 ‘모가디슈’에선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한국 대사관이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도와 함께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이탈리아 대사관의 도움이 컸다. 또 2021년 여름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될 때 우리 정부는 군 수송기를 급파해 아프간인 391명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이들은 현지 대사관, 병원 등에서 수년 간 한국 조력자로 일한 이들이다. 이때 작전명이 ‘미라클’이었다. 수단 탈출 작전은 ‘프라미스’로 명명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해외 긴급사태 속에서 대통령과 정부, 군이 일사불란하게 펼친 신속 대응 능력에 칭찬을 아낄 이유가 없다. <경제칼럼니스트>▲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수단에서 철수한 우리 교민이 도착해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캡처]=연합뉴스▲24일(현지시간) 오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수단에서 철수한 우리 교민을 태운 수송기가 도착하고 있다.[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캡처]=연합뉴스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EE칼럼]국가 석유비축 체계, 탄소중립에 맞춰 손질해야

지난 11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관련 최상위 법정 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됐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지난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그대로 가져와 부문별 감축목표를 일부 조정한데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계획에 대한 기후환경단체의 공격은 거세다. 논란에 가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석유부문에 가한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탄소중립은 땅속에서 채굴,수입하는 석유가 2050년에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를 위해 수소·전기차의 급속한 보급 및 확산, 산업의 연료 및 원료 전환 등이 탄소중립기본계획의 핵심 축을 이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를 반영해 지난 3월 분석,발표한 ‘장기 에너지수요 전망’을 통해 2035년 국내 석유 수요가 2020년 대비 절반 수준(40~46%)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석유산업의 위축은 물론 인적·물적 관련 투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기에 미래가 없는 산업에 투자가 있을 수 없다. 가뜩이나 석유수요가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만으로도 석유부문 투자에 부정적인데, 감소세 마저 너무 가파르다. 불과 10여년 만에 국내 시장규모가 반토막 나는 현실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석유산업 당사자인 정유사와 주유소 등 민간부문은 그 동안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수소·배터리·재생에너지 등 신 산업으로의 사업 다각화나 바이오·청정합성 연료·원료 개발,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국제 에너지기구(IEA)의 지적 처럼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성보다 규범적인 성격이 강해 우려되는 것 만큼의 투자 축소는 당분간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공공부문, 특히 정부 석유관련 시책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는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10년 단위의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14년 수립된 현행 제4차 석유비축계획은 2025년까지 약 1억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도록 돼 있다. 계획이 달성되면 2035년까지 새로운 목표로 다음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다. 이때 민간부문과 같이 최상위 계획인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부정하고 독립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할까? 그 자체가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정부 스스로가 부정,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인데도 말이다.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했다는 비난은 당연지사다. 지난 40년 동안 비축유 확보목표, 즉 적정 비축유 규모는 하루 평균 순 수입(소비)량 기준으로 석유수입 없이 60일간 경제를 지탱할 수 있게하는 물량으로 규정됐다. 석유수요에 비례해 설정됐기 때문에 2035년 석유수요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면 비축유 규모는 반토막이 나고, 절반을 매각해야 한다. 비축유는 일종의 보험 같아서, 가령 자동차를 두 대 가지고 있다가 한 대를 매각한다면 자동차 보험도 한 대에 한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차는 팔았는데 보험만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당장 급격히 비축유 규모를 줄이는 것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직후에서 볼 수 있듯이 석유시장 교란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석유비축이기 때문이다. 비축규모 축소로 우리 경제가 받게 될 단기적 충격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석유 사용을 줄이자는 탄소중립 시대에 맞게 석유비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탄소중립을 추구하는데 석유비축이 왜 필요한지는 물론이고 석유안보의 개념 자체부터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달라질 석유의 위상을 고려해 ‘석유’ 단독보다 수소·암모니아·배터리 소재광물 등 탄소중립 추진에 필수적인 자원들의 안보 논의와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와 공조를 확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불가피하게 비축유를 매각할 경우,형성된 재원의 활용방안까지 검토돼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의 수레바퀴 앞에서 용감한 저항은 부질없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의미를 새겨 당장 석유비축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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