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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뻔뻔한 환경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26 11:48

구동본(정치경제부장/부국장)

칼럼 게재용 사진

▲구동본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수난시기를 보내는 부처를 꼽으라면 여성가족부, 통일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닐까.

여가부는 공중분해 위기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거대 야당의 도움으로 겨우 죽다 살아남았다. 통일부의 경우 남북교류협력 등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 당초 1급 간부자리가 6개에서 4개로 줄었다.

산업부에선 국장 등 공무원 3명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어 해임 징계까지 받아 퇴사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에 총대를 맸다가 험한 꼴을 본 것이다. 전임 정부 코드를 너무 잘 맞추고 오버한 게 괘씸죄에 걸렸다.

세 부처에 비하면 환경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비교적 무사했다. 사실 정책 후퇴 말고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지 않았다. 특별히 고초를 겪은 직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정권 교체 이후 환경부가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건 딱히 없어 보인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환경부 소관 예산 및 기금 총지출은 올해보다 7.3% 늘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전체 살림살이 규모 증가율 2.8%의 두 배가 넘는다.

조직도 전임 정부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 때 환경부는 ‘물관리 일원화’를 이유로 국토교통부의 수자원국을 이관받아 오히려 물관리정책실로 확대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산하기관으로 거느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중 호우로 인명피해를 겪은 지난 7월 환경부 장관에 "물 관리를 제대로 못 할 거 같으면 국토부로 다시 넘겨라"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도 환경부 조직은 끄떡없었다.

환경정책 자체는 보수 정권의 정책방향이나 이념과 다소 거리가 있다. 기후환경은 대체로 규제 등을 통해 산업 활동을 제한한다. 산업 육성 또는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니 보수정권이 들어서거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후환경 정책과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런 때다. 환경부가 시민단체에 좌판 깔아주고 전방위 규제 그물망을 치며 한껏 위세를 자랑하던 진보정권 시기완 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환경부는 윤석열 정부 초반부터 실제 군기 잡혔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환경부의 새해 업무보고 때 변화된 환경정책 노선을 분명히 했다. 임기 중 처음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당시 "환경 분야를 산업화, 시장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환경단체 등에선 당연히 환경부의 정체성을 포기하란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환경부로선 말이 당부지 엄포로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윤석열 정부 들어 핵심 환경 정책들이 줄줄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환경부가 그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들이다. 최근만 해도 음식점·카페 등 손님을 맞는 업소의 일회용 종이컵 등 일회용품 규제가 잇달아 후퇴했다.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는 철회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조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고 편의점 비닐봉지 사용 단속은 중단키로 했다.

일회용품 규제는 지난 정부 때인 2019년 11월 방침이 정해졌고 2021년 말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이 공포돼 시행이 예고됐다. 그 뒤 지난해 11월 24일 시행됐다. 다만 시행일로부터 지난 24일까지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둬 단속을 유예했다. 계도기간이 끝나면 규제 위반 시 과태료를 최대 300만원까지 물릴 예정이었다. 오랜 검토와 준비를 거쳤던 것이다.

환경부는 이미 1년 전 시행까지 한 그 규제들을 지난 7일 느닷없이 백지화하거나 사실상 무력화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이 빠지는 느낌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책이 이처럼 신뢰를 저버려도 되는가. 정책 추진은 대형 마트의 시식코너를 돌면서 이것저것 맛보며 즉흥적으로 물건을 사는 쇼핑이 아니다.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계도기간에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 사용에 대비했던 많은 업소들은 황당해 하고 있다. 컵 씻을 직원을 따로 고용하고 세척시설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은 판이다. 규모가 영세한 업소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일부 업소는 금리가 오르는데도 빚까지 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회용품 퇴출에 속속 동참해왔던 소비자들도 어리둥절했다. 일회용품 줄이기는 생활 속 실천운동으로 점차 자리잡아가는 모습이었다. 기후변화가 심각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니까 여러 불편도 감수했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를 믿고 사업을 벌였던 사람들은 낭패를 봤다. 잘 썩는 생분해 비닐봉지 등 일회용품 대체 상품 개발 및 생산 투자를 늘렸다. 그들은 그 투자비를 어떻게 회수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한숨 짓는다.

일회용품 규제 후퇴 관련 환경부의 배경 설명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서민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크고 불만 목소리도 높았다는 이유를 댔다. "조급하게 도입된 정책"이라고도 했다. 일관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정부가 적어도 4년간 뜸 들이며 추진한 정책 아닌가. 칼을 뽑을 땐 신중하되 일단 칼을 뽑았으면 베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정책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하며 염치는 눈곱만큼도 없이 태연하게 할 말은 아니다. 그 설명대로라면 환경부는 그동안 관련 정책 시행을 위해 여론수렴 등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허송세월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정책 후퇴가 아니고 합리적 규제라고 했다. 그야말로 말장난이다. 정책을 규제 대신 권고와 지원으로 바꿨다는 해명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시행 1년 뒤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 규제 완화가 언제 적 얘기이고 정권 바뀐 지가 언제인가.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런 말을 믿을 바보 천치는 이 세상에 없다.

환경부는 뒤늦게 일회용품 정책 후퇴 후 대체품 제조업체에 경영애로자금을 지원하고 ‘다회용품 우수매장’에 정책자금 지원 시 우대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런 정책 있었으면 진즉에 발표하지 이제야 내놓는가. 반발하는 업소들의 입막음용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환경부가 이리 뻔뻔해도 되나.

환경부가 스스로 물러선 것 같지 않다. 그런 설명을 하는 게 억울했을 것이다.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었겠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환경부야 규제를 만드는 것이니 굳이 마다할 일도 아니다. 거꾸로 부처 조직과 권한을 늘리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했을 수도 있다.

결국 환경부를 넘어 정권 차원의 정무적인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영업자 등의 반발을 두려워 한 선심성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부는 말도 안 되는 이런 해명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차관이 정책 후퇴를 발표하면서 마치 지나가는 말로 ‘반성’· ‘송구’를 언급한 것 말고 별도 공식 사과한 게 없다. 물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솔직히 이 정도 사안이면 우선 주무 장관이 국민 앞에 진솔하게 공식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물러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게 순리이고 상식이다. 정상적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다. 환경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부처가 모든 책임을 짊어질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럼 국민에 혼란과 피해를 준 이 사달을 만들어놓고도 그냥 넘어가자는 것인가.

국민은 무능하고 영혼 없는 정부엔 성원을 보내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가 개떡같이 일하면서 권한만 내세우고 손쉬운 규제 만들기에 혈안이라면 국민에겐 더 이상 베풀 아량이 없다. 지금 환경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한방에 훅 가기 전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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