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윤하늘 기자] 차액결제거래(CFD)제도의 헛점을 이용해 투자자들을 절망에 빠트린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가 채 정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한번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불거졌다. 과거의 주가조작과는 달리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장기간에 걸친 소위 ‘작전’으로 연이어 증시가 ‘유린’당하자 당국의 감시시스템에도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15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방림·동일산업·만호제강·대한방직과 코스닥시장에서 동일금속 등 5개 종목이 비슷한 시간대에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시장감시규정 제12조 ‘시장감시와 관련한 조치’에 따라 이번 5개 하한가 종목에 대해 15일부터 해제 필요시까지 매매거래를 정지하고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 조작은 있지만 불공정거래는 없다?이들 중 대한방직과 만호제강, 동일산업은 이날 오전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불공정거래와 관련, 현재까지 확인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가조작’ 의혹은 여전한 상황이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만호제강의 주가는 2020년 초(1만5750원)부터 하한가를 맞기 직전 거래일인 13일(6만5400원)까지 315%가 급등했다. 만호제강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억원으로 전년 대비 80%나 떨어졌다. 동일산업, 동일금속, 방림, 대한방직도 2020년 초부터 13일까지 각각 285%, 250%, 242%, 168% 치솟았다. 이들 종목은 최근 3년간 특별한 호재나 실적 개선 없이 우상향하면서 증권가에서 작전 의심주로 꾸준히 언급되기도 했었다. 라덕연 사태에서도 무더기 하한가 사태와 같이 장기간 상승하다 한순간에 폭락하는 주가 조작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인 셈이다. 거래량이 적고 자산가치가 높은 종목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라덕연 사태에서도 주가조작세력들이 유통 가능 주식 비율이 50% 미만인 종목을 타깃으로 삼은 바 있다.
◇ 이번엔 ‘온라인 리딩방’ 개입 정황증권가에서는 한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주식투자 온라인 카페가 연루돼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강모 소장은 지난 3년간 동일산업 동일금속 만호제강 방림 대한방직 등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내용으로 투자를 권했고, 이들 기업에 대해 소액주주운동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전일 벌어진 하한가 사태에서는 라덕연 사태와 달리 외국계 증권사가 아니라 국내 증권사들에서 매도 물량이 나왔다. 4월 말 당시에는 증권사 CFD 계좌에서 발생한 반대매매로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서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반면 이번에는 KB증권·키움증권·신한투자증권 등 다양한 창구에서 매물이 쏟아졌다.올해 의혹이 생긴 주가조작 사태는 과거와 달리 지능화된 형태의 주가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금융당국의 감시시스템을 역으로 파고든 점이 ‘핵심’이다. 투자자 명의의 핸드폰을 수백대 개통하고, 전담 매매팀이 장소를 이동하며 거래함으로써 이를 분산시킨 것이다.◇ 장기보유·대주주 관여는 없어보여 차이특히 장기간 보유했고, 각 종목의 대주주와 결탁한 흔적도 없다는 점이 과거와 상당 부분 다르다. 대표적인 주가조작 사례인 2007년 발생한 루보 사태를 보면, 2006년 10월부터 2007년 3월까지 총 6개월 간 제이유그룹 부회장 등이 다단계 사업 형태로 루보의 주가를 조작했다.당시 이들은 투자설명회를 열고 자금 1441억원을 이용해 728개의 차명 계좌를 만들었다. 또 통정매매를 이용해 루보 주가를 1185원에서 5만1400원까지 끌어올렸고 119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이때 개인투자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대주주와 경영진들은 작전 기간 지분과 경영권을 매각해 많은 차익을 거뒀다. 라덕연 사태와 이번 하한가 사태는 현재까지는 각 종목의 대주주들은 결탁한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책임으로 미루는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작전 전략이 진화하는 현재 상황에서 이를 사전에 적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는 정해진 기준에서 매매거래 데이터상 단기간 갑작스럽게 튀는 종목에 대해 감리가 들어가는데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상승시켜온 종목을 발견하긴 어렵다"며 "종목의 대주주와 결탁되지 않으면 자금 추적도 사실상 힘들어 수사의 난항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yhn7704@ekn.kr사진=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