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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뒤늦게 드러나는 탄소중립의 민낯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탄소중립의 덫에 단단히 잡혀버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해야한다는 목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의지를 무작정 탓 할 수는 없다. 인류가 위태롭게 올라서서 버티고 있는 얇은 얼음판이 빠르게 녹고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무거운 경고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의 멋진 ‘막춤’을 국제사회에 자랑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재작년에 어설프게 내놓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부끄러운 민낯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환경사회학자의 어설픈 억지에 우리 사회가 발목을 잡혀 주저앉게 될 판이다. 우리 사회가 무한정 쏟아지는 햇빛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깨끗한 전기를 공짜로 생산한다는 유아적인 유혹에 혼을 빼앗겨 버렸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시작일 뿐이었다. ‘탄소 없는 섬’을 꿈꾸며 재생에너지에 올인했던 제주도가 뒤늦게 마주한 현실은 암울하다. 황금알을 낳아줄 것이라던 태양광·풍력 설비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공짜’ 전기가 오히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출력 제한’이 전남·전북(새만금)으로 번질 기세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섰던 경북·경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적자의 늪에서 빠져 제 코가 석 자인 한국전력이 선뜻 나서서 영세 태양광·풍력 사업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가능성도 없다. 아직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엉터리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태양광·풍력 설비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해줄 ESS 설치비용이 최소 787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루 고작 2.5시간 가동하는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규모다. 정밀 전자설비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ESS의 화재·폭발 위험도 심각하다. 전문성과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자가 그런 ESS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도 의문이다. 바이오연료에 대한 기대도 황당하다. 온실가스 1180만톤을 줄이기 위한 바이오 나프타를 생산하려면 전 세계 생산량의 78배에 해당하는 캐슈넛이 필요하다. 남한 면적의 22배가 넘는 경작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떠들썩하게 내놓았던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사실은 바이오 나프타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엉터리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을 모아놓은 셈이다. 지난 8년 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지구촌 기후 위기의 현실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왔던 이회성 의장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포함한 온실가스 대책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집에 반드시 불이 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총수입을 넘어서는 일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을 포기한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과연 앞으로 7년 안에 포스코 규모의 산업현장 4개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 탄소중립에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서 매달려야 하는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놓은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원전은 탄소중립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유일한 ‘현재 기술’이다. 그런 원전을 빼놓은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 음주운전의 피해가 무섭다고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패배주의로는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한전에게 26조 원의 손실을 떠안긴 탈 원전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탄소중립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IPCC가 우리에게 탄소중립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배출량의 1.51%를 배출하는 우리가 탄소중립을 통해서 지구촌의 기후 위기 극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탄소중립은 이념적인 탈 원전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시급하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커뮤니케이션

[기자의 눈] 실패할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20일(현지시간) 스페이스 X의 대형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이 첫 지구궤도 시험비행에 나섰다. 결과는 실패. 수직으로 솟아오른 비행체는 약 4분만에 폭발했다. 2단 발사체가 계획대로 분리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게 쉬울 리 없다. ‘실패’ 이후 현장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스페이스 X 직원들은 탄식 대신 환호성을 질렀다. 발사 현장 주변에 모인 수천명의 인파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4분간 성공’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몇 달 뒤 있을 다음 시험을 위해 많이 배웠다"고 적었다. 머스크가 2002년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실패할 것을 알지만 스페이스 X를 세웠다." 혹자는 미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실패’에서 찾는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 큰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4차례 파산 경험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게 해고됐을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회상했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실패가 곧 낙인이다. 몸집이 조금만 커져도 신사업 진출에 두려움을 느낀다. 적자라도 났다가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숫자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CEO들은 혁신을 두려워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은 공허하게 들린다. 반도체 분야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기술력이 대만에 뒤진 이유로 "실패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은 정부 차원에서 기술 개발을 독려·지원하며 실패를 유도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게 요지였지만 유독 "많은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실패한다"는 말이 귀에 박혔다. 바야흐로 ‘복합위기’ 시대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다양한 형태로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정치·경제·기업 모두 변화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실패할 줄 알아야’한다.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달 24일 오후 6시24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로 향한다. 성패를 떠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yes@ekn.kr산업부 여헌우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이슈&인사이트]AI로봇시대,G4 진입 지렛대 삼자

최근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전자제품 등 제조 산업 분야의 생산공정을 거의 100%에 가깝게 자동화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로봇의 눈’으로 불리는 머신비전 기술 혁신과 인간 작업자와 함께 작업하는 협동로봇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다. 산업용 로봇은 이제 제조산업을 넘어 식음료 등 전 산업 분야의 자동화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미국, 독일, 일본 등 로봇산업 선진국들은 전 산업을 혁신하고,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보고 로봇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제 로봇연맹(IFR)은 세계 로봇산업 시장이 2021년 기준 282억 달러(약 30조원)에서 2030년에는 831억달러(약 100조원)로 10년간 3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제조용 로봇 비중이 70% 정도고 비제조업 분야인 서비스 로봇 산업의 시장도 그 비중이 점차 커질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고 모자라는 인력의 대부분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서비스도 등장할 것이다. 미래 로봇 시대의 모습은 SF 영화에서 꿈꾸었듯이 AI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런 모습이 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처럼 현실로 다가올 미래 로봇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당연히 사회와 산업전반에 걸쳐 다각적이고 총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로봇의 이동성(mobility) 강화에 따른 안전 규정 등 각종 법제도부터 우선 정비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학습을 시작해야 하고, 기업과 대학·연구기관·전문직 인력 양성기관들도 로봇시대에 맞춰 혁신이 필요하다. 준비 안된 기업에게는 쓰나미 처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생존경쟁의 게임판을 덮칠 것이다. 더욱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기술의 메가트렌드에 걸맞은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를 놀라게 하는 ChatGPT기술은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 수준의 인공지능은 이른바 자아가 없는 매우 약한 인공지능이다. AI 스스로 자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심지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한 마디로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컴퓨터의 자판과 같이 누르는 대로 작동하는 수동기계다. 따라서 모든 명령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수행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탠리큐브릭 감독의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나온 HAL이라는 강력한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가 출현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하는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아(ego)는 자체가 매우 철학적 개념이다. 인공지능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인간과의 연결은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인간의 명령 없이 작동하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 판단이 인간에게 불리해 지는 순간 인간과 기계의 생존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그날 우리는 정말 AI를 통제할 수 있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인간사회 모든 것이 AI를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가 출현하고,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자동차를 기반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같은 상상이 현실화되려면 빨라도 5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AI를 잘 통제하고 사회전반에 윤리, 안전, 민주 등의 시각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AI를 잘 통제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인간세상은 그야말로 유토피아 세상을 맞게 될 것이다. 혹자는 AI 로봇시대가 대한민국에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는 오직 우리의 판단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구한말의 유학자(성리학)들이 서양문물을 거부하고, 수구적·폐쇄적 정책을 펼치다 결국 주변 열강으로부터 강제로 침탈당한 것 처럼 절체절명의 위기를 다시 맞을 수가 있다.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기업이든 나라든 도태되는 세상이다.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IT 기술과 인프라, 우수한 인적 자산을 기반으로 미래세상의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면 미국,일본, 중국에 이어 G4로 등극하는 꿈 같은 미래강국 대한민국이 실현될 것이다.고경철 세종과학포럼 회장/카이스트 로봇공학연구단 연구교수

[EE칼럼]한미동맹, 에너지-그린테크 분야로 확대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한미동맹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지리라는 기대가 높다. 특히 이번 방문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2명의 경제사절단이 함께한 만큼 양국의 경제 협력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전혀 없다시피하지만 제조업과 수출을 기반으로 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세계화 시대에 한국식 경제 발전 모델은 그 꽃을 피웠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의 심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및 곡물 수급 불안정 등에 의해 대한민국호(號)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구조적인 난맥상에 처해 있다. 지경학적으로 복합적인 위기가 계속 발생할 수 있는 이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의 경제 안보 동맹 강화를 기본 정책 기조로 삼고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편승(bandwagoning)하려는 자세를 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시각들도 존재한다. 동맹은 본래 군사적인 의미에서 공통의 적을 상정하고 힘을 합쳐 맞서려는 데에 존재 이유가 있는 데 이런 개념을 경제 분야에까지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에 일정 부분 무리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역사가 반드시 군사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 온 만큼 앞으로도 양국의 경제 협력이 경제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호혜적인 방안들이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비로소 군사 동맹도 안정적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한미 협력의 맥락에서 함께 논의돼야 할 것이 에너지-그린테크 부문이다. 에너지-그린테크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간의 쟁점으로 우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관련 부분과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의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간의 소송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피해를 주는 행위를 최소화하고 협력이 원활하게 작동될 때 한국의 그린테크 수출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에너지-그린테크 관련 한미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많이 있다. 중단기적으로는 가스 공급의 안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한국의 1차 에너지 구성에서 천연가스 비중은 20%, 전원구성에서의 비중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화석연료이긴 하지만 석탄에 비해 친환경적인 가스는 에너지 전환의 국면에서도 당분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에너지원이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 전쟁 이후 미국산 LNG의 수출의 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러시아산 도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미국산 LNG가 유럽과 동아시아 시장 모두에게 안정적인 공급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 안정적인 가스도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선진국들이 녹색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 정책 기조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저탄소 환경에서 조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자체적인 노력과 함께 그린수소와 같은 신에너지 분야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도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국토가 넓어 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으면서도 신뢰 가능한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리튬이나 희토류 같이 그린테크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멕시코를 필두로 최근에는 칠레까지도 리튬을 국유화하는 등 자원보유국들의 자원 보호주의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따라서 미국과 힘을 합쳐 협상력을 제고하고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되 한미는 FTA 체결국인 만큼 무역 정책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기술 협력을 통해 새로운 수출 시장 개척에도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다면 한미동맹이 군사 동맹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동맹’으로서 국익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기자의 눈] 전기요금 인상 지연과 한전채 급증, 피해는 대다수 국민

전·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지연하는 사이 한국전력공사가 3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전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의 인기가 높아졌다. 지난해에만 20조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한 한전은 올해 4월까지 7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추가 발행했다. 한전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면서 발전사 전력거래대금지급 등 비용을 채권 발행으로 충당해왔다. 채권 투자자들은 사실상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AAA등급인 한전채 매수로 큰 금융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전기요금 인상 수준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적자 규모가 커졌고 이는 한전채 발행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 최고 5.99%까지 치솟았다. 이후 올해 초 3.5%까지 떨어졌지만 3월 이후 4%에 근접하게 오르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30일 발행된 한전채의 금리는 3.99%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한전채 매수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적자를 봐도 부도 위험이 없는 만큼 고금리로 이자 수익 기대가 높다는 것이다. 한전채는 6개월 주기로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한다. 투자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정상화로 한전 실적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게 되고 기준금리도 상승세가 멈출 경우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정부가 한전에 요금 인상 전에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고통분담과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양상이다. 한전은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확정적이다. 한전 사장도 1분기에만 수조원대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면 올해 말 자본잠식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는 한전이 올해에도 1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적자를 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와 한전은 수년 내에 국제에너지가격 안정화로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현재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에너지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향후 한전채마저 팔리지 않게 되는 상황이다. 요금 폭등 혹은 재정투입, 민영화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정치인과 투자자들이 아닌 대다수 국민들이 지게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clip20230427101231 전지성 정치경제부 기자.

수단, 끝없는 내전의 나라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아프리카 수단에 있던 우리 교민 28명이 무사히 탈출했다.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이다. 수단에선 군벌 간 전투가 한창이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싸울까? 앞으로 전망은? 수단과 한국은 어떤 관계인가?◇ 누가 왜 싸우나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이끄는 신속지원군(RSF·Rapid Support Forces)이 싸우고 있다. 부르한과 다갈로는 2년 전 쿠데타 동지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을 두고 한치 양보 없이 싸우고 있다.신속지원군, 곧 RSF는 준군사조직이다. 말이 준(準) 군사조직이지 군대나 마찬가지다. RSF는 잔자위드(Janjaweed)라는 민병대가 모체다. 잔자위드는 2000년대 초반 수단 내전에서 악명을 떨쳤다. 이때 수단 서쪽 다르푸르(Darfur)에서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는 인종학살 범죄가 저질러졌다. 당시 수단 내전은 2011년 수단에서 남수단이 분리 독립하는 계기가 됐다.◇ 수단의 슬픈 역사역사적으로 수단은 늘 이웃 강대국 이집트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엔 영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956년 독립할 당시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였다. 남수단이 떨어져나간 지금도 영토는 아프리카 3위다. 석유와 희귀자원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쿠데타와 장기독재가 나라를 망쳤다. 2021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71달러(국제통화기금 추계)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4800만명이다.수단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마르 알 바시르다. 알 바시르는 1989년 쿠데타를 일으킨 뒤 2019년까지 30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했다. 2018년 기름값, 빵값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2019년 알 바시르는 쿠데타로 쫓겨났다. 이후 수단에도 민주화 바람이 부는 듯 했으나 2021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지금은 그 쿠데타의 주역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어떻게 될까AP통신은 수단 군벌 간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걸로 본다. 주변 국가들의 이해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수단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가 경쟁국 에티오피아를 견제하는 데 수단 군부는 유용한 도구다. 이웃 차드와 남수단은 파장이 국경을 넘을까 전전긍긍한다. 이미 난민들이 걸어서 차드와 남수단, 이집트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특히 주목할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다. UAE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기는커녕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동쪽에 있지만 RSF와 가까운 사이다. AP통신은 RSF가 예멘 후티 반군과 싸우는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천명을 보내 두 나라를 도왔다고 전했다. 25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보네트워크를 가진 UAE가 아니었으면 육로를 통해서 (수단 교민을) 구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UAE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RSF와 긴밀히 소통하는 UAE가 우리 탈출작전을 측면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한국-수단 관계는수단이 한국에 알려진 건 이태석 신부(2010년 작고)의 공이 크다. 성직자 겸 의사인 이 신부는 2001~2008년 당시 수단 남부 톤즈에서 봉사했다. 이 신부의 헌신은 2010년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톤즈는 현재 남수단에 속해 있다.한국과 수단은 1977년에 수교했다. 한국은 1977년, 수단은 1990년에 각각 현지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수출입을 합한 교역액은 1억6600만달러(2021년 무역협회 자료)로 미미하다. 수단은 원래 한국보다 북한과 먼저 수교(1969년)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현지 대사관을 폐쇄한 채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겸임한다. 수단은 한국에만 대사관을 두고 있다.◇ 탈출작전 프라미스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구출작전에서 일본인 몇 명도 같이 수단을 빠져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4일 "한국, UAE를 비롯한 관계국과 유엔의 협력에 감사하다"라며 사의를 표했다. 잘한 일이다. 탈출 러시 속에서 각국은 자국민 외에 외국인이라도 여건이 되면 기꺼이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 ‘모가디슈’에선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한국 대사관이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도와 함께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이탈리아 대사관의 도움이 컸다. 또 2021년 여름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될 때 우리 정부는 군 수송기를 급파해 아프간인 391명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이들은 현지 대사관, 병원 등에서 수년 간 한국 조력자로 일한 이들이다. 이때 작전명이 ‘미라클’이었다. 수단 탈출 작전은 ‘프라미스’로 명명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해외 긴급사태 속에서 대통령과 정부, 군이 일사불란하게 펼친 신속 대응 능력에 칭찬을 아낄 이유가 없다. <경제칼럼니스트>▲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수단에서 철수한 우리 교민이 도착해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캡처]=연합뉴스▲24일(현지시간) 오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에 수단에서 철수한 우리 교민을 태운 수송기가 도착하고 있다.[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캡처]=연합뉴스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EE칼럼]국가 석유비축 체계, 탄소중립에 맞춰 손질해야

지난 11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관련 최상위 법정 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됐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지난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그대로 가져와 부문별 감축목표를 일부 조정한데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계획에 대한 기후환경단체의 공격은 거세다. 논란에 가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석유부문에 가한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탄소중립은 땅속에서 채굴,수입하는 석유가 2050년에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를 위해 수소·전기차의 급속한 보급 및 확산, 산업의 연료 및 원료 전환 등이 탄소중립기본계획의 핵심 축을 이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를 반영해 지난 3월 분석,발표한 ‘장기 에너지수요 전망’을 통해 2035년 국내 석유 수요가 2020년 대비 절반 수준(40~46%)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석유산업의 위축은 물론 인적·물적 관련 투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기에 미래가 없는 산업에 투자가 있을 수 없다. 가뜩이나 석유수요가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만으로도 석유부문 투자에 부정적인데, 감소세 마저 너무 가파르다. 불과 10여년 만에 국내 시장규모가 반토막 나는 현실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석유산업 당사자인 정유사와 주유소 등 민간부문은 그 동안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수소·배터리·재생에너지 등 신 산업으로의 사업 다각화나 바이오·청정합성 연료·원료 개발,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국제 에너지기구(IEA)의 지적 처럼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성보다 규범적인 성격이 강해 우려되는 것 만큼의 투자 축소는 당분간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공공부문, 특히 정부 석유관련 시책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는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10년 단위의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14년 수립된 현행 제4차 석유비축계획은 2025년까지 약 1억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도록 돼 있다. 계획이 달성되면 2035년까지 새로운 목표로 다음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다. 이때 민간부문과 같이 최상위 계획인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부정하고 독립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할까? 그 자체가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정부 스스로가 부정,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인데도 말이다.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했다는 비난은 당연지사다. 지난 40년 동안 비축유 확보목표, 즉 적정 비축유 규모는 하루 평균 순 수입(소비)량 기준으로 석유수입 없이 60일간 경제를 지탱할 수 있게하는 물량으로 규정됐다. 석유수요에 비례해 설정됐기 때문에 2035년 석유수요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면 비축유 규모는 반토막이 나고, 절반을 매각해야 한다. 비축유는 일종의 보험 같아서, 가령 자동차를 두 대 가지고 있다가 한 대를 매각한다면 자동차 보험도 한 대에 한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차는 팔았는데 보험만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당장 급격히 비축유 규모를 줄이는 것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직후에서 볼 수 있듯이 석유시장 교란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석유비축이기 때문이다. 비축규모 축소로 우리 경제가 받게 될 단기적 충격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석유 사용을 줄이자는 탄소중립 시대에 맞게 석유비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탄소중립을 추구하는데 석유비축이 왜 필요한지는 물론이고 석유안보의 개념 자체부터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달라질 석유의 위상을 고려해 ‘석유’ 단독보다 수소·암모니아·배터리 소재광물 등 탄소중립 추진에 필수적인 자원들의 안보 논의와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와 공조를 확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불가피하게 비축유를 매각할 경우,형성된 재원의 활용방안까지 검토돼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의 수레바퀴 앞에서 용감한 저항은 부질없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의미를 새겨 당장 석유비축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알맹이 빠진 위험성평가 정책

정부는 최근 위험성평가를 산업안전의 대표정책으로 내세웠다. 올바른 방향이고 포인트는 잘 잡았다. 다만 위험성평가를 외형적으로 확대하는 데에만 급급했지 내실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행정예고된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 개정안은 ‘보여주기식’ 일색이다. 일부러 핵심적 내용을 없애려고 작정(?)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위험성평가에서 빈도와 강도 추정은 필수적인 절차다. 이것을 빼면 더 이상 위험성평가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위험성 추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의적인 위험성평가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공부 못하는 자녀에게 공부를 잘하도록 지도해 성적을 끌어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녀의 학습역량을 의심하고 지레 포기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녀도 부모의 체념에 편승하여 학습하는 것을 자포자기할 것이다. 이런 부모의 태도에 자녀는 당장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성인이 되어선 일찌감치 못난 자식 취급하고 방치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이번 행정예고안의 또 다른 큰 문제점은 위험성평가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이다. 현재 대기업에선 위험성평가가 부실하다는 문제의식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행정예고안은 이런 생각마저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구체적인 방법·기준과 작업별 모범사례를 개발해 배포하는 등 위험성평가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위험성평가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행정예고안에서 강조하는 노동자 참여의 실효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노동자 참여가 마치 목적인 것처럼 획일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과 유해위험요인 파악방법, 위험성 추정방법 등에 대한 세부 기준이 제시되지 않으면 노동자 참여가 형식으로 흐르면서 현장감독자와 전문가의 참여를 되레 위축시킬 수 있다. 위험성평가를 작업(공사) 개시 후 1개월 이내에 하라는 것도 위험성 평가의 본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위험성평가는 작업(공사) 개시 전에 실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실시할 경우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제도개편을 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사항마저 제대로 못 짚은 것은 국제기준과 외국법제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도 반대하는 퇴행적인 제도개편을 밀어붙이려는 저의가 뭔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위험성평가 정책의 허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전보건공단은 현재도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위험성평가 인정 비율의 목표를 뜬금없이 예년보다 2배 가량 높게 잡았다. 사업을 내실화하는 것에는 관심 없고 단순히 물량을 확대하는 것에 급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재예방 행정이 덩치는 거구가 됐지만 전문성은 예전보다도 못하다는 세평이 자자하다. 모름지기 산업안전과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에서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의에 찬 우행은 악행으로 통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전문성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많은 산업안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의욕만 앞세운 설익은 대책 일색이다. 그 바람에 산업현장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어설픈 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노동자는 정책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야말로 정책의 미덕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일찍이 공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잘못이다"고 갈파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지만, 미련한 사람은 변명하고 합리화함으로써 두 번 잘못을 저지른다. 정부가 어느 길을 택할지 두고 볼 일이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기자의 눈] 허위 사실발(發) 공포, 금융시장 혼란 부추긴다

공감가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낯선 사람을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면 요즘에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전화, 문자, 인터넷 등을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은 물론 온라인에서 떠도는 허위 정보가 많아졌는데, 이런 사회를 겪어보지 못한 부모님은 있는 그대로 정보를 믿을 수 있어 자녀들이 부모님께 주의를 당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최근 금융권에 허위 사실이 퍼지는 것을 보고 다시 이 말이 떠올랐다. 특히 지난 12일에는 웰컴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서 1조원대 결손이 발생해 이들 은행 계좌가 지급 정지될 수 있다는 지라시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됐다. 마침 미국의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 이후 금융불안이 확산됐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던 때다. 저축은행과 금융당국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두 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을 보면 웰컴저축은행 6679억원, OK저축은행 1조10억원 규모다. 부동산 PF 연체율과 연체액을 보면 웰컴저축은행은 0.01%에 44억원, OK저축은행은 4.09%에 410억원이다. 애초에 1조원대 PF 결손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이같은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앞서 새마을금고와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에도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며 해당 금융기관에서 적극 해명에 나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좀 더 보수적이고 예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안일하게 대하다가는 잠재됐던 위기가 언제 터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시장에 과도한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실직절인 시장 불안을 오히려 더 키우는 꼴이 된다. SVB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SVB 사태는 소비자 불안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이어져 금융사의 파산까지 이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또 SVB 파산이 전 세계적인 위기로 부각되며 세계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기로 확산되는 모습을 확인했다. 금융에서 심리가 중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신뢰가 떨어지는 정보가 범람할 수록 시장의 혼란은 더해진다. 진짜 믿어야 하는 사실조차 진실인 지 알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악성 루머에는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나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믿을 수 있는 안전한 금융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시장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금융소비자들이 허위 사실에도 쉽게 공포감을 가지지 않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dsk@ekn.kr

[기자의 눈] 전세대책 지원까지...금융사는 ‘만능’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면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물론 정치권,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까지 연일 소란스럽다. 지난해 주택 1139채를 보유하고 있다가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빌라왕 사건을 비롯해 피해자 3명이 사망한 125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인 건축왕 사건까지, 작정하고 사기 행각을 벌인 가해자들 때문에 애꿎은 전세입자만 발을 구르고 있다. 가해자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자본 없이 세입자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로 수도권 다세대주택을 매입한 뒤 전세보증금을 가로챘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정하고 전세입자의 돈을 가로챈 점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과연 ‘왕’ 혹은 ‘신’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타당한지조차 의문스럽다. 왕, 신과 같은 단어는 일정한 분야나 범위 안에서 으뜸이 되는 사람에게만 붙이는 표현 아닌가. 전세사기꾼들의 사기 행각이 이러한 칭호에 가려지지 않도록 적절한 단어 사용이 필요한 듯하다.또 한 가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은 안타깝지만, 향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한 전 금융사들이 금융 및 법률 지원책을 내놓는 것이 당연시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전세사기 피해 건수가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만큼 금융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번 사기 사건의 경우 엄밀히 말해 금융사들에게 판매나 혹은 중개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금융사들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주택구입자금대출을 감면하거나 부대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일은 금융사들이 져야 할 책임, 의무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 이전에도 전세사기 피해는 줄곧 있었다. 과거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그 피해를 온전히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사안의 규모가 커지자 누구는 지원을 받고, 과거 나홀로 전세사기를 당한 이들은 그에 대한 아픔과 피해를 온전히 감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평등하다.금융권 한편에서는 이러다가 보이스피싱까지 금융사들이 모두 보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금융사들의 지원 범위나 책임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일부 있다. 아무리 이자장사로 비난을 받는 금융권이지만, 이번 사건이 금융사와 정부의 지원책만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는 금융권의 지원책에 안주하지 않고 이번 사건이 향후 더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종합대책이 없는 한 전세사기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ys106@ekn.kr나유라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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