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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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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뒤늦게 드러나는 탄소중립의 민낯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27 08:10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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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커뮤니케이션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탄소중립의 덫에 단단히 잡혀버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해야한다는 목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의지를 무작정 탓 할 수는 없다. 인류가 위태롭게 올라서서 버티고 있는 얇은 얼음판이 빠르게 녹고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무거운 경고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의 멋진 ‘막춤’을 국제사회에 자랑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재작년에 어설프게 내놓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부끄러운 민낯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환경사회학자의 어설픈 억지에 우리 사회가 발목을 잡혀 주저앉게 될 판이다. 우리 사회가 무한정 쏟아지는 햇빛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깨끗한 전기를 공짜로 생산한다는 유아적인 유혹에 혼을 빼앗겨 버렸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시작일 뿐이었다. ‘탄소 없는 섬’을 꿈꾸며 재생에너지에 올인했던 제주도가 뒤늦게 마주한 현실은 암울하다. 황금알을 낳아줄 것이라던 태양광·풍력 설비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공짜’ 전기가 오히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출력 제한’이 전남·전북(새만금)으로 번질 기세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섰던 경북·경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적자의 늪에서 빠져 제 코가 석 자인 한국전력이 선뜻 나서서 영세 태양광·풍력 사업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가능성도 없다. 아직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엉터리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태양광·풍력 설비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해줄 ESS 설치비용이 최소 787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루 고작 2.5시간 가동하는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규모다. 정밀 전자설비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ESS의 화재·폭발 위험도 심각하다. 전문성과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자가 그런 ESS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도 의문이다.

바이오연료에 대한 기대도 황당하다. 온실가스 1180만톤을 줄이기 위한 바이오 나프타를 생산하려면 전 세계 생산량의 78배에 해당하는 캐슈넛이 필요하다. 남한 면적의 22배가 넘는 경작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떠들썩하게 내놓았던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사실은 바이오 나프타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엉터리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을 모아놓은 셈이다.

지난 8년 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지구촌 기후 위기의 현실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왔던 이회성 의장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포함한 온실가스 대책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집에 반드시 불이 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총수입을 넘어서는 일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을 포기한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과연 앞으로 7년 안에 포스코 규모의 산업현장 4개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 탄소중립에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서 매달려야 하는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놓은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원전은 탄소중립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유일한 ‘현재 기술’이다. 그런 원전을 빼놓은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 음주운전의 피해가 무섭다고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패배주의로는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한전에게 26조 원의 손실을 떠안긴 탈 원전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탄소중립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IPCC가 우리에게 탄소중립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배출량의 1.51%를 배출하는 우리가 탄소중립을 통해서 지구촌의 기후 위기 극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탄소중립은 이념적인 탈 원전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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