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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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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국가 석유비축 체계, 탄소중립에 맞춰 손질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25 09:38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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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11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관련 최상위 법정 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됐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지난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그대로 가져와 부문별 감축목표를 일부 조정한데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계획에 대한 기후환경단체의 공격은 거세다.

논란에 가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석유부문에 가한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탄소중립은 땅속에서 채굴,수입하는 석유가 2050년에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를 위해 수소·전기차의 급속한 보급 및 확산, 산업의 연료 및 원료 전환 등이 탄소중립기본계획의 핵심 축을 이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를 반영해 지난 3월 분석,발표한 ‘장기 에너지수요 전망’을 통해 2035년 국내 석유 수요가 2020년 대비 절반 수준(40~46%)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석유산업의 위축은 물론 인적·물적 관련 투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기에 미래가 없는 산업에 투자가 있을 수 없다. 가뜩이나 석유수요가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만으로도 석유부문 투자에 부정적인데, 감소세 마저 너무 가파르다. 불과 10여년 만에 국내 시장규모가 반토막 나는 현실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석유산업 당사자인 정유사와 주유소 등 민간부문은 그 동안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수소·배터리·재생에너지 등 신 산업으로의 사업 다각화나 바이오·청정합성 연료·원료 개발,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국제 에너지기구(IEA)의 지적 처럼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성보다 규범적인 성격이 강해 우려되는 것 만큼의 투자 축소는 당분간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공공부문, 특히 정부 석유관련 시책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는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10년 단위의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14년 수립된 현행 제4차 석유비축계획은 2025년까지 약 1억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도록 돼 있다. 계획이 달성되면 2035년까지 새로운 목표로 다음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다. 이때 민간부문과 같이 최상위 계획인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부정하고 독립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할까? 그 자체가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정부 스스로가 부정,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인데도 말이다.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했다는 비난은 당연지사다.

지난 40년 동안 비축유 확보목표, 즉 적정 비축유 규모는 하루 평균 순 수입(소비)량 기준으로 석유수입 없이 60일간 경제를 지탱할 수 있게하는 물량으로 규정됐다. 석유수요에 비례해 설정됐기 때문에 2035년 석유수요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면 비축유 규모는 반토막이 나고, 절반을 매각해야 한다. 비축유는 일종의 보험 같아서, 가령 자동차를 두 대 가지고 있다가 한 대를 매각한다면 자동차 보험도 한 대에 한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차는 팔았는데 보험만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당장 급격히 비축유 규모를 줄이는 것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직후에서 볼 수 있듯이 석유시장 교란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석유비축이기 때문이다. 비축규모 축소로 우리 경제가 받게 될 단기적 충격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석유 사용을 줄이자는 탄소중립 시대에 맞게 석유비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탄소중립을 추구하는데 석유비축이 왜 필요한지는 물론이고 석유안보의 개념 자체부터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달라질 석유의 위상을 고려해 ‘석유’ 단독보다 수소·암모니아·배터리 소재광물 등 탄소중립 추진에 필수적인 자원들의 안보 논의와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와 공조를 확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불가피하게 비축유를 매각할 경우,형성된 재원의 활용방안까지 검토돼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의 수레바퀴 앞에서 용감한 저항은 부질없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의미를 새겨 당장 석유비축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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