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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마음 놓고 출근할 수 있는 사회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조합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도 파업을 시작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역시 동참한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선량한 시민이나 기업을 볼모로 잡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출근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매일 아침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게 직장인의 삶이다.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물류가 마비되며 산업 현장도 셧다운 위기에 놓였다. ‘복합 위기’ 시기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 이들도 상당수다. 노조와 장애인 단체의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쟁의 행위를 ‘왜’ 하는지에 대한 논점이 이미 흐려졌다는 점이다. 강자와 협상하기 위해 다른 약자를 억압하며 이용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합리적인 주장도 이런 식으로 하면 정당화될 수 없다. 내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들은 반문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묻고 싶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동수단이 볼모로 잡혀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에 늦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탄생이나 임종을 함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정치권의 공감 능력도 부족하다. 사회적 파장이 큰 부분은 민생 관점에서 면밀히 살펴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무조건 ‘법과 원칙’만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다양한 집단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상황에 맞게 원칙을 재정의 해줘야 한다. 그러라고 국회에 입법권도 줬다. 초겨울 불어오는 바람이 올해는 유난히 더 차갑다. 출근이라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길 간절히 바란다.yes@ekn.kr

[신간도서] 조직 변화 이끌고 신바람 불어넣은

[에너지경제신문 구동본 기자] 송인회(70) 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이 고희를 맞아 자신의 경영 발자취를 담은 회고록 성격의 자전집 ‘말똥구리 경영이야기’(시하기획)를 최근 출간했다. 송 전 사장의 출간 서적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오가며 최고경영자로서 각 조직의 경영혁신을 이끌어 성과를 나타낸 과정을 담고 있다. 또 송 전 사장이 각종 언론을 통해 기고한 글도 부록으로 실었다. 이들 기고문에는 각 조직의 혁신 원천이랄 수 있는 그의 경영철학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송 전 사장은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 창립회원 출신으로서 대한전기협회 부회장, 한국전기안전공사 및 한국전력기술 사장 등을 지낸 에너지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도 역임했다. 그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오가며 경영혁신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세가지 유형 정부산하 기관의 기관장을 각각 맡았다. 웅진홀딩스 사장, 극동건설 회장 등 민간기업 대표를 맡아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LG산전, 현대정보기술, 제종텔레콤, (주)세종, 보령제약, 시공테크, 기보스틸 등에선 고문을 맡아 경영자문을 하기도 했다. 송 전 사장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경영자 인생에서 말똥구리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밝혔다. 책 제목에 ‘말똥구리 경영’을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말똥구리는 뒷발로 음식이 되는 말똥을 굴리는 곤충으로 땅 위의 가장 더러운 것을 굴려 땅 아래로 가져가 생명을 길러낸다. 송 전 사장은 이런 말똥구리를 주목해 경영에 참고한 것이다. ‘혁신의 전도사’로 평가받는 그는 경영자로 재직한 모든 공공기관, 민간기업에 혁신을 이식하고 변화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특히 이 책에서 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있을 때 ‘하이브리드 경영’과 ‘추임새 경영’으로 정부 산하기관 경영평가에서 1위를 차지, 혁신의 모델로 주목받았던 점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경영은 각자의 끊임 없는 자기혁신을 통해 얻어진 개별 역량을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으로 묶어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고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이를 능히 극복하는 자율조절시스템이다. 송 전 사장은 이 하이브리드 경영을 통해 직원들의 혁신 마인드를 일깨웠다. 그는 "넓고 푸른 바다 속에 있는 좁쌀 한 톨처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열정과 자신감 있는 행동은 주위로 전파돼 다른 동료들에게도 똑같은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는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각은 편견, 습관적 사과와 행동을 멈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며 "하루 빨리 자기만의 상자에서 탈출해 눈 앞에 전개되는 신천지를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송 전 사장은 칭찬과 격려로 성과를 만들어가는 ‘추임새 경영’으로 조직에 신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누군가 ‘씨실’이면 또 다른 구성원은 ‘낱실’이 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 옷감을 만들어간다"면서 "각자가 명창이 되고 서로 고수가 되어 모두가 어울림의 장을 열어가자"고 촉구했다. 책은 본문 총 6편과 부록으로 구성됐다. 특히 첫 편에서 전북 고창의 송 교장댁 여덟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가 정치에 입문, 주요 정치인과 맺었던 인연을 그리고 있다. 그는 고려대 학생으로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게 계기가 돼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로 처음 치러진 민선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의원에 당선,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그 이후 자신이 친구이고 동지라고 생각하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한 과정도 소개했다. 정치를 접고 공공기관 경영자로 나선 배경도 설명했다. 그는 본격적인 정치입문 전후 범양상선 기획실장 및 호주시드니 지사장, 매래해운 대표 등을 지낸 기업인 출신인데다 석사과정에서 안전관리를 공부했고 박사과정에서 공기업 경영평가를 연구했다. 공공기관장을 맡기 전에 이미 대학원에서 재난 안전과 공공기관 경영의 핵심을 학습한 것이다.송인회 이사장님 표지 송인회 이사장님2 송인회 전 사장이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정세균 송인회 전 이사장이 지난 2020년 11월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정세균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슈&인사이트] 금융경색속 흑자부도는 막아야

기업들은 중장기 자금은 은행대출 회사채발행과 증자를 통해 조달하고 외자는 외화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 단기자금은 기업어음(CP) 단기사채(STB) 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건설업체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를 통해 조달한다. 금융시장 경색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연속적인 금리인상과 국내외 경기침체로 수출과 내수가 위축되고 영업이익이 급감하는 등 신용위험이 증가하자 은행대출금리는 치솟고 회사채발행은 연초부터 발행보다 상환이 많은 순상환이 지속되고 있다. 기업어음 단기사채 PF도 대거 만기가 돌아오고 있는데 차환이 어려운 실정이다. 대표적 단기 시장 금리인 CP 금리(A1급 91일물 기준)는 지난 25일까지 45거래일 연속 상승해 5.5%까지 오르는 등 상승(채권값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금융시장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10월 23일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한국증권금융의 증권사 유동성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KDB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한도 증액 (8조원→16조원) 등 50조+α 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이어 한국은행도 지난 10월 26일 은행에 대한 대출적격담보대상 증권 범위를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 은행채 등으로 넓히고 증권사·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약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RP) 채권매입하고 한국은행과의 대출이나 차액결제 거래를 위해 맡겨놓는 담보 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를 추가하는 등 40조+α 대책을 발표했다. 그래도 금융시장경색이 풀리지 않고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하는 연말이 다가오자 11월초 3조원 규모의 채안펀드 1차 캐피털콜(자금 투입 요청)에 이어 추가로 5조원 규모의 2차 캐피털콜을 실시하기로 하고 자금 투입 요청에 응한 금융회사에는 한은이 환매조건부(RP)채권매입을 통해 최대 2조5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동시에 12월 국채 발행 물량은 당초 계획보다 5조7000억원 줄이고 한전, 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의 공사채 발행을 축소하고 필요 자금 일부를 은행 대출로 전환하도록 하는 등 추가대책을 이번주초 내놓았다.그러나 연속되는 금리인상과 경기부진으로 영업이익이 하락하고 자금이 고갈되고 신용도가 하락하고 있어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의 자금사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부 대기업들조차 자산을 매각하는 등 현금확보에 진력하고 있다. 앞으로 6개월 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채권만 233조원에 달하고 PF대출채권 유동화 증권 약 30조원이 올해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3개월 안에 만기가 돌아오고 내년 중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채권도 3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만기를 막지 못하면 수익성이 탄탄한 기업조차 단기 유동성 위기를 버티지 못해 흑자 도산할 우려가 크다. 성장 잠재력이 높지만 기초 체력이 약한 기업들의 줄폐업 위기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의 부실이 증가하면서 금융위기로 치닫게 된다. 정부와 한은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한국은행이 11월 27일 발표한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 따르면 국내외 금융기관 임직원과 주요 경제 전문가 72명 중 58.3%는 1년 이내에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의 대출 이자 부담액은 9월 33조 원대에서 연말엔 42조 원, 내년 말에는 50조 원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중고를 버텨낼 수 있는 해법을 서둘러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 흑자부도는 막되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들을 솎아내는 작업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낼 수 없는 한계기업이 4478개에 이르고 5년 이상 한계기업 신세를 면치 못한 사실상의 ‘좀비기업’이 1762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좀비 기업’의 수명 연장을 위해 우량기업을 살리기 위한 자금 지원에 애로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위기 차단을 위해서는 옥석 가리기와 함께 기업들의 재무 구조 및 경쟁력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과 기업환경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미국의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한은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인상을 자제하면서도 외자유출방지와 환율안정을 도모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안의 하나로 2050억 달러의 외화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의 외화자산에 대해 필요시 긴급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확보 대책을 강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EE칼럼] 전력·배출권 거래, 규제 풀고 시장기능에 맡겨라

어렸을 때 이런 수수께끼를 풀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로부터 각각 500원씩 빌려 1000원을 들고 가게에 갔다. 거기서 나는 970원짜리 과자를 샀고 거스름돈 30원을 받았다. 여기서 10원씩을 엄마와 아빠에게 드렸다. 따라서 엄마와 아빠는 490원씩 사용하였고, 나한테는 10원이 남았다. 그렇다면 490+490+10원으로 990원인데, 나머지 10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독자들 각자 수수께끼를 풀어보길 바란다. 조금만 살펴보면 애초에 수수께끼의 질문 세팅부터 잘못된 문제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내용이 어떤 분들에게는 약간 생소할 수 있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만일 발전사가 국제시장에서 LNG를 100만BTU당 15달러에 구매계약하였는데 당시에는 높은 가격이라 평가받았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평균가격이 30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기존 계약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하자. 그럼 이를 횡재이윤으로 봐서 그 가격 차이를 세금으로 거둬야 할까.만약 그 반대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은 어떠한가. 발전사와 판매사는 전기수요가 있는 곳에 무조건 공급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한다면 그 손실은 어떻게 보상되는 것이 타당할까?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해 예비력을 유지하는 발전기는 어떻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합리적일까. 그 발전기가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한 예비력으로 운영되는지는 또 어떻게 검인증 할 수 있으며, 해당 비용에는 뭘 더하고 빼줘야 하는가? 배출권거래제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이행 비용의 평가에는 어떤 항목이 반영되어야 하나. 의무할당 준수 목적의 거래와 차익거래나 투기적 거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이며, 배출권과 REC의 기준 가격은 뭐로 설정하는 것이 전기요금 반영에 타당할까. 기후환경비용이 시행되면서 간접배출규제와 몇 퍼센트 정도 중복규제일까. 이와 관련한 이중비용 부담의 규모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기후환경비용으로 실시간 환경급전이 가능할까. 만일 전면적인 유상할당으로 간다면 기후환경비용은 전기요금에 얼마만큼 반영해주는 것이 타당할까.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CBAM)에서 요구되는 간접배출량 산정 및 보고 시 우리나라 간접배출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에너지효율향상의무화(EERS) 제도로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이루어졌는데 관련한 scope3 감축성과는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인정해 준다면 얼마나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까. 배출권과 REC의 교환가치를 인정해 줄 것인가. 기업이 RE100 이행을 위해 REC를 구매하면서 전기는 별도로 구매하는데 거기에는 어떠한 모순이 없을까. 이러한 수수께끼가 우리나라 전력과 배출권 시장에는 유달리 많다. 극히 일부만 소개한 것임에도 상당히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주로 시장제도에서 결정하는 사항을 우리나라는 여러 규정과 규제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연료비나 환경열량단가 산정 시 검토되어야 하는 사항들도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성과와 배출권 할당 등과 관련되는 내용도 있다. 또한 전기, 배출권, REC를 사고 팔며 탄소국경세를 지불하는 등의 행위와 관련 있다. 즉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와서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시장을 살펴보면 주머니가 뒤섞이다 보니 누가 진짜 주인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또는 앞서 수수께끼처럼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못 세팅됨으로써 엉뚱한 질문에 엉뚱한 답을 내놓으려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복잡하고 상호 충돌하는 규정을 적용하여 그것도 사후적으로 대응하려다 보면 이미 시기를 놓칠 우려도 있다. 기상조건에 따라 전력수급이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하는 재생에너지의 시대에는 분명 한계가 많은 접근방식이다.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석유와 천연가스 시장에 대응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문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market)에서 작동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시장이 해결할 수 있는 이슈를 규제로 해결하려다 보면 복잡계가 증폭하게 되고 누군가 언젠가는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그 비용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올 것인가 조차도 수수께끼라는 점이다. 귀한 시간에 매번 수수께끼를 풀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세금은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안 중 하나다. 유리지갑을 가진 월급쟁이들은 연봉이 오른 만큼 덩달아 세금도 올라 임금인상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인데, 법인세율이 오르면 국내 투자를 줄이고 세율이 낮은 다른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금이외에 국민과 기업이 정부에 부지불식간에 납부하는 지출이 있는데 바로 ‘법정부담금’이다. 예를 들어 전기 사용료에는 전력산업기반기금부담금, 영화표에는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담금, 담배가격에는 국민건강증긴부담금이 포함되어 있는 등 국민과 기업의 경제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부담금관리기본법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법정부담금은 90개며 징수액은 21.4원으로 법인세 70.4조원, 부가가치세 712.2조원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법정부담금은 규모도 크고 국민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세금만큼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다 보니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다. 첫 번째로 부담금관리기본법상 중가산금의 이자율 및 부과기간 한도가 국세기본법상 납부지연가산세보다 높다. 국세기본법에서는 납부기간이 경과한 이후 부과되는 기본가산금은 3%이고, 납부기간 경과 후 1개월이 지날 때마다 추가로 부과되는 중가산금의 이자율은 1일당 0.022%, 월단위로 환산하면 0.66%이고 최대 5년까지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가산금과 중가산금을 합해 이자율은 최대 43%(3%+40%)이다. 부담금관리기본법상 법정부담금의 기본가산금은 3%로 국세와 동일하지만 중가산금의 이자율은 1일당 일 0.025%, 월단위로 환산하는 경우 0.75%로 국세기본법보다 높다. 게다가 중가산금 부과일수의 최대한도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론상으로는 중가산금을 무제한으로 부과할 수 있다. 중가산금 부과일수를 국세기본법과 같이 5년으로 하더라도 최대 48%(3%+45%)로서 국세체납의 경우보다 5%p 높다. 일부 법정부담금은 부담금관리기본법에서 규정한 가산금, 중가산금의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농지보전부담금은 가산금 3%와 월 1.2%를 최대 60개월까지 부과할 수 있는데, 중가산금과 가산금의 최대 이자율이 75%에 달한다. 이는 국세 최대한도 43%의 1.7배에 해당한다. 부담금의 가산금, 중가산금의 이자율과 부과 최대한도를 국세기본법과 동일하게 가산금 3%, 중가산금 1일당 0.022%, 최대 60개월까지만 부과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두 번째로는 부담금 도입취지나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부담금이 있다. 예를 들어 껌에 부과되는 폐기물부담금이다. 껌에 폐기물부담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폐기물부담금은 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하고 자원의 낭비를 방지하기 위하여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거나,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재료·용기 등의 폐기물의 처리에 드는 비용을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이다. 물론 이런 비용은 소비자 가격에 일부 전가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껌은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지 않고 자연상태에서 쉽게 분해되고 소각 시에도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등 폐기물 관리상 환경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없어 폐기물 부담금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 사실 껌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은 껌 자체의 유해성 보다는 과거 시민의식이 지금과 같이 성숙하지 못하던 시절, 씹은 껌을 아무 곳에나 버린 것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시민의식이 성숙해 껌을 마구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 소비량도 줄어드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껌에 부과되는 폐기물 부담금의 타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정한 사업 시행으로 일부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돌아가거나 공익상 필요에 의해 부과되는 법정부담금은 필요하지만 법정부담금은 조세와 같이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부과의 타당성과 징수 절차 등 국민의 권익보호에 미흡한 점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조세에 준하는 수준의 납부자에 대한 보호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EE칼럼] 원전수준 국가안전관리로 안전최강국 만들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이 됐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 있고,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단계로는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여야간 갈등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이태원 참사를 실황중계를 통해 목도한 국민들은 누구나 선진국 반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후진국형 대형재난사고가 왜 반복하여 일어나고 있는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방법은 없는지 깊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전이란 ‘재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숨은 위험을 예측해서 대책이 마련된 상태’라고 정의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08년 세월호 침몰,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170여개의 크고 작은 사고들의 원인이 비슷한 것을 보면 소를 잃은 뒤에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은 잘못이 크다.안전 대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국가의 경쟁력이다. 안전전문가 김석철 박사는 ‘재난반복사회’라는 저서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대형재난에 대한 정부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하고 있다. 먼저 대형재난의 원인을 법규체제미비, 인력부족, 장비부족, 부처간 소통 부재, 콘트롤 타워 부재 등에서 찾고 있다. 이어 서 제시되는 해결책 또한 항상 틀에 박힌 듯 정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즉, 산재되어 있는 안전 및 재난대응 관련 법규의 정비, 안전 및 재난 관련 예산과 인력의 우선 배정, 재난대응 관련 조직 확대 개편, 콘트롤 타워 일원화 등이다.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대책의 실효성과 지속성이 부족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실패의 자산화’에 늘 실패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국민은 안전불감증이 심하므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재난에 대한 관심이 흐려지면 슬그머니 재난안전규제가 완화되고 ‘효율성’ 명분하에 조직과 예산이 축소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후진국형 재난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결국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 시스템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몸 담았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모든 회의와 행사 시작전에 안전본부장이 안전메시지를 간단하게 발표하는 시간, 즉 ‘세이프티 모멘트(Safety Moment)’부터 갖는 것이 제도화돼 있다. 이 시간을 활용해 임직원들이 안전관련 최신 이슈·안전 제도 및 정책 등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공유하면서 안전에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취지다. ‘안전문화(Safety Culture)’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산업에 최초로 도입된 개념으로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조직문화’이다. 체르노빌 원전과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에 안전문화가 큰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이제 정부는 거국적인 안전문화캠페인을 전개하면서 ‘2023년 재난사고 제로시대‘ 를 선언하기를 제안한다. 이태원 참사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발생한 제반 대형사고에 대한 근본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을 통해 실효성과 지속성을 지닌 예방적 시스템의 구축과 국민안전문화의 혁신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예를 들면 국가경영전반에 대하여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 45001)‘의 구축과 한수원 안전문화 실천프로그램의 적용이다. 가능하다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와 정부기관의 모든 주요회의나 행사에 ‘세이프티 모멘트’를 시행하면 어떨까. 안전관련 정부조직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도 정부 재난안전 대책의 상징성을 강화하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원자력분야의 안전시스템은 산업 특성상 가장 앞서 있는 안전설계개념(심층방어·다중성·다양성·독립성 등)과 최고수준의 안전문화 증진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다중복합 안전관리체제 구축에 적극 벤치마킹하길 바란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필자는 원자력발전소장 재임시절 매일 1000여명의 종사자들이 ‘손가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고 안전시스템이 작동된 결과 그렇게 지켜졌었다. 대통령부터 앞장서 우리 국민 5000만명이 한사람도 다치지 않게 매일 소원하고 안전안보 최우선의 국정운영을 해주길 소망한다. 안전 최강국 대한민국을 ‘세이프티 모멘트‘로 시작하자.조병옥 한동대학교 객원교수/기업재난안전협회 부회장

[기자의 눈] 눈살 찌푸려진 10차 전기본 공청회

지난 28일 개최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상황들이 펼쳐졌다. 공청회 질의응답 시간이 산업부 공무원들과 계획 수립에 참여한 위원들에 대한 비난과 성토의 장이 됐다. 공청회 참석자들의 주된 질의 사항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후퇴 등을 지적하거나 원전 확대 반대, 석탄발전 퇴출, 기후위기 대응 대책 강화 등을 요구한 것이었다. 문제는 충분한 발언기회와 답변이 있었음에도 공청회가 끝날 때까지 고성을 질렀다. 당위성이 있고 중요한 문제들이다. 산업부는 에너지안보 위기상황에서 안정적 전력수급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으며 요구사항들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으로 최대한 반영했다고 밝혔다. 다만 하루아침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한 사안들이다. 특히 발전설비들은 크든 작든 단기간에 만들고 없애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생에너지를 보급한다고 하면 그에 따른 계통 확충,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 전력시장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신규석탄발전소의 경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폐지를 하려면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절차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 기존 석탄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원전 계속운전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해관계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장기계획이면서 2년마다 재수립 되는 이유다.현재 지역적으로 충남권에 석탄발전이 많고 앞으로 호남권에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될 예정이다. 원전도 특정지역에 많이 포진해있다. 이렇게 배치된 것은 다 그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게 하루만에 만든 게 아니듯이 하루만에 바꿀 수 없다. 단계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발전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해왔다. 그게 이뤄졌을 때 국가의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담보가 된다. 결과론적으로 지금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까지 실생활에서 전기사용의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비합리적이었고 발전소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릴 수 있었을까. 기후위기 대응, 국제기조 등 상황이 바뀌었으면 그에 따라 또 다시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면 될 노릇이다. 앞뒤 고려 없이 무작정 특정 발전원을 폐쇄하고 특정 발전원은 늘리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를 망칠 것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공청회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기자의 눈] 금융당국의 오락가락…은행·소비자는 혼란

"기준금리가 높아져서 은행 예금 금리가 더 올라갈 줄 알았는데 안 올라갈 것 같네요." 최근 만난 한 지인은 지난 24일 기준금리 인상 이후 주거래은행 예금 상품 금리가 연 5% 정도로 올라갈 것 같아 가입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금 상품 금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은행들의 예·적금 등 수신금리 인상 기조가 멈췄다는 소식을 알고 있던 그는 지금이 최고점인 것 같다며 금리를 높게 주는 2금융권 상품에 가입할 지, 증시에 더 돈을 넣을 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과도한 자금 조달 경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후 은행권의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은행권에 이자장사 비판이 이어졌고, 은행권은 예대금리차 폭을 줄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신금리를 올렸지만 이달 기준금리 인상 이후로는 분위기가 다르다. 당국은 과도한 자금확보경쟁이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에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렸고 은행들은 28일부터 예금 금리를 높인 케이뱅크를 제외하고 수신금리 인상을 두고 눈치만 보고 있다. 당국의 자제령을 어긴 첫 은행이 되면 당국 눈총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다른 은행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의 기조 변화에 은행권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은행 입장만 보면 수신금리를 높이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반기부터 이어진 은행권에 대한 이자장사 비판에 은행들은 수신금리 인상에 속도를 냈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일주일 정도 시차를 두고 수신금리를 높였다면, 올해는 기준금리와 동시에, 빠르면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수신금리를 높였다. 당국 기조에 따라 움직였지만 지금은 당국이 높아진 수신금리를 문제 삼자 은행권에서는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되는 것이냐"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수신금리의 급격한 인상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등 변동금리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반영돼 대출 금리 또한 빠르게 높였다. 앞서 은행들이 예견한 결과이기도 했는데, 은행들은 이제서야 당국이 대출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감 또한 나타내는 것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또 수신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리면서 예대금리차 공시의 실효성이 낮아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상반기와 하반기 때의 금융시장 분위기가 바뀐 만큼 금융정책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새 180도로 바뀐 당국 기조는 은행권과 금융소비자들에게는 혼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충분한 시장과의 소통 과정이 있었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dsk@ekn.kr

[기자의 눈] 시장안정대책 한 달, 아직 안도하면 안 되는 이유

정부가 10월 23일 변동성이 커진 회사채 시장과 단기 금융시장의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업권별 간담회 및 금융시장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정책지원프로그램의 집행 상황과 금융시장 주요 리스크 요인 등을 계속해서 점검했다. 특히 종합금융투자사업자 9곳이 참여한 1조8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프로그램이 24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중소형 증권사의 유동성 우려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이달 5대 금융지주가 73조원 규모의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를 포함해 총 95조원 규모의 자금 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은 것도 시장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지주사가 내놓은 시장 안정 방안은 단순히 규모를 넘어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과 함께 자금시장 경색 완화라는 당국의 대원칙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금융지주사의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은 남아있다.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 금리가 무려 45일 연속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25일 기준 CP 91일물 금리는 전일 대비 0.02%포인트(p) 오른 연 5.5%를 기록했다. CP 금리는 9월 22일 연 3.15%에서 이달 25일 연 5.5%로 2%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현 CP 금리는 2009년 1월 12일(연 5.66%)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와 별개로 시중은행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당국은 앞서 은행채와 한전채가 시중 유동성을 대거 흡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은행권에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당국의 지침으로 은행권은 예금 금리 인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당국이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이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예금금리 인상마저 자제하라고 발언하면서 은행권의 고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은행의 자금조달 수단은 예금 수신, 은행채 발행 두 가지인데 이미 은행채 발행이 막힌 상황에서 수신금리 인상마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고조됐던 10월과 비교하면 지금 시장은 상당 부분 진정세를 찾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아직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 앞서 언급한 금융시장 불안 요인과 함께 연말 기관투자자들이 북클로징(회계 연도 장부 결산)에 들어가면서 회사채 시장 위축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자금시장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당국은 더욱 더 시장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적시에 시장 안정 대책들을 내놔야 한다.

[김성우 칼럼] 탄녹위 출범과 에너지 기술혁신

정부가 지난 21일 ‘탄소중립 기술혁신 전략 이행안’(이하 전략이행안)을 발표했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수소 공급, 무탄소 전력공급, 친환경 자동차 등 4개 분야가 대상이다.CCUS 분야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특성상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전략수단으로 글로벌 시장도 초기 형성 단계에서 핵심기술을 조기에 확보해 2050년 연 1500만톤의 세계 최대 규모 이산화탄소 저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에너지는 물론 수송 및 산업까지 다양한 부문의 핵심 감축수단인 수소 분야도 생산·공급과 더불어 수소 액화 기술 국산화 등 전주기의 기술혁신을 통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암모니아 및 수소를 연료로 발전하는 무탄소 전력 확대로 안정적인 기저 발전에 기여한다.또한 2030년까지 친환경자동차 450만대 보급 목표 아래, 리튬-황, 리튬금속 전지 등 차세대 전지 차량 실증을 완료하고 초급속 충전 핵심 기술을 2025년까지 국산화해 충전 시간을 1/3로 단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이번에 발표된 전략이행안은 지난달 26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출범시 공개된 새 정부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술혁신 전략’의 후속조치 중 하나이다. 탄녹위는 탄소중립기본법에 의거해,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함으로써,국가의 탄소중립 이행을 계획하고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위원회 출범식에서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의 추진전략과 더불어 탄소중립 이행이라는 국가의 미션을 기반으로 기술 목표를 설정하고 개발하는 기술혁신 전략이 발표되었고, 이 기술혁신을 실행하기 위한 전략이행안이 후속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특히 주목할 점은 탄녹위 첫 전체회의에서 기술혁신전략을 전체추진전략과 같은 시간 비중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전신 위원회들에도 참여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는 정부가 얼마나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해 준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술혁신 전략’에 따르면,민관이 함께 핵심기술을 타겟팅하고 현장까지 적용할 수 있는 범부처 체계를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한 첫번째 전략은 민간 주도의 임무중심 기술혁신 기반 구축이다. 산업구조 및 에너지안보 등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춰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을 선정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연계해 기한과 목표를 명시한 기술 로드맵을 분야별로 마련한다. 둘째, 신속하고 유연한 연구개발 투자 체계를 적용할 방침이다. 범부처 통합 관점의 예산으로 탄소중립 핵심기술에 우선 투자하고, 예비타당성 기간 단축 및 사업 변경을 허용할 계획이며, 국내 자원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탄소중립 기술협력 추진전략도 마련한다. 셋째, 대규모 실증사업을 지원하고, 창업기업 활성화 지원, ICT 기술 적극 활용, 지역 맞춤형 기술 배치 등 지원을 강화한다. 특히 위원회 산하에 범부처 기술규제 협의회를 운영해 규제 이슈를 사전에 발굴·해소한다.정부는 출범식에서 논의된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 및 기술혁신전략을 토대로, 부문별·연도별 감축 목표 및 감축수단별 구체적인 정책 등을 포함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2023년 3월까지 수립할 예정이다. 이는 탄소중립기본법 제10조에 의한 법정 계획으로 위원회 및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따라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내용이 앞으로 지속 발표될 타 분야 기술혁신 전략이행안이나 타 국가와의 기술협력 전략 등 기술혁신 실행을 위한 후속조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탄녹위 출범식을 마친 후 머리 속에 민간주도·기술혁신·제도개선이라는 키워드가 선명해졌다. 어차피 실행해야 할 탄소중립이기에 정부는 이미 시작된 글로벌 녹색기술 경쟁에서 우리 나라가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해야 한다.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의 핵심 주체인 기업도 이를 미증유의 기회로 삼아 향후 쏟아질 후속 정책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기술경영전략에 반영해야 한다. 민관의 소통과 협력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판단이다.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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