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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우리나라 기업들은 현재 외국인력을 구하고 싶어도 쉽게 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선업계는 지난해 수주 호황을 맞고도 배를 만들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다. 조선업계에는 최소 2000여 명의 외국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그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력이 언제 들어올지 예정도 없고 막막하다고 설명한다.정부는 이달 ‘조선업 외국인력 도입애로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행정 절차 소요 기간을 기존 4개월에서 1개월로 줄이고, 외국인력 도입 허용 비율과 연간 쿼터를 확대하기로 했다. 20%에 불과한 기존 기업별 외국인 근로자 도입 허용 비율을 30%로 늘리고 숙련 기능인력에 발급하는 E-7 비자는 기존 2000명에서 4000명으로 늘린다는 내용이다.이 같은 대책은 외국인 근로자를 신속하게 수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서 주장하는 외국인력의 적용 범위 확대와 주 52시간 근로 제도 철폐 등 근본적인 규제를 손보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우리나라 대·중소기업들은 업종별 외국인력 고용한도 상한과 주 52시간 근로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주장하는 ‘외국인력의 악의적인 사업장 변경 대책 마련’은 주 52시간 제도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선업 하청업체 대표는 "외국인력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기 위해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가 잦다"고 주장한다.국내 제조업은 3D 업종으로 분류된다.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라며 기피되는 직종이다. 그렇기에 국내 근로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타 직종 대비 임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지난해 상반기 중소제조업 직종별 임금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30억원 이상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중소제조업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일급은 10만697원이다.외국인력은 더 이상 국내 근로자들의 ‘자리를 뺐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귀한 몸’이 됐다. 업계에서는 멘토 제도를 신설하고 기숙사를 리모델링하며 외국인력 모시기에 분주하다. 일부는 나라별 전통요리도 제공한다.정부는 외국인력이 국내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근무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타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 외국인력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시키고, 안정적인 체류 자격 부여와 근로환경 개선이 정부의 진정한 역할일 것이다.lsj@ekn.kr

[이슈&인사이트] 지역 혁신과

스포츠는 연대와 통합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경쟁을 통해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막대한 자본이 흐르는 스포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거대한 사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독특한 생태계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 바로 스포츠사회적기업이다. 스포츠사회적기업은 스포츠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이나 장애인, 저소득층, 아동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스포츠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1993년, 런던 그리니치 의회가 지자체 재정 예산을 삭감함에 따라 지역의 7개 레저스포츠센터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였다. 영국 최초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 ’GLL((Greenwich Leisure Limited)‘의 탄생 배경이다. GLL은 30개 이상 지자체와 파트너십 체결을 통하여 250여 개의 공공스포츠시설과 57개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 덕분에 원감 절감과 수익을 극대화하며 흑자 경영을 하는 동시에, 저소득 지역 및 계층에 대한 스포츠 서비스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국내의 경우 2018년 스포츠산업 사회적경제조직 육성계획이 처음으로 수립되면서 사회적 약자의 삶의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필자는 스포츠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국내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축구, 골프, 수영장 시설을 운영하는 S 스포츠센터는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축구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구청에 문의했으나 지원정책과 법률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스포츠 복지 제공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가 인증하는 사회적기업이 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여 육성기관 문을 두드렸고 2022년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었다. 발달장애인들은 협동과 협업이 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깨고 대그룹 발달장애인 팀 스포츠를 아이템으로 창업한 팀도 있다. 창업 당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는 기염을 토했고 올해 발달장애인 핸드볼팀 창단을 준비 중이다. 여성 취약계층을 필라테스 강사로 양성하여 일자리를 제공하고, 비정규직 스포츠 강사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수강생과 강사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양극화, 비인간화, 계급화를 완화하기 위해 스포츠사회적기업은 존재한다.필자가 주목한 점은 스포츠사회적기업 창업자들의 이력이다. 은퇴선수뿐 아니라 부상 등의 이유로 운동을 그만둔 중도 탈락 선수, 비인기 종목 출신 선수 등 전직 운동선수 출신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운동선수의 평균 은퇴 나이는 23.6세로 일반인 평균 은퇴 나이 49.5세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은퇴선수 41.9%가 실업 상태이고 취업자 중 55.7%는 비정규직, 46.8%는 월수입이 200만 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에서 운영하는 은퇴선수 진로지원센터를 알고 있는 은퇴선수 비율은 20.6%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은퇴선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20~26세 연령대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13.6%만이 해당 정책을 알고 있을 뿐이다.스포츠사회적기업은 스포츠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운동선수의 은퇴 후 진로를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스포츠산업은 매출액 63조9000억원으로 전년 52조9000억원 대비 20.1% 증가, 종사자 수 역시 40만 6000명으로 전년 37만 6000명 대비 7.9% 증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스포츠산업조사, 2021). 사회적기업 전체 매출액 역시 5조 9,696원으로 전년 대비 12.8% 늘어났다. 이중 문화체육관광부 사회적기업은 전체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양적으로도 꾸준히 증가하여 매년 50개~55개 스포츠사회적기업이 배출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경제적,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인정받아 올해 스포츠사회적기업 지원 예산이 소폭 상승되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스포츠 사회적경제조직은 스포츠 시설뿐 아니라 문화, 예술과 같은 여가활동의 지역 거점으로 기능한다. 공공체육시설 개방 모델 도입 등 스포츠 행정과 거버넌스 조직을 재정비하고 스포츠산업 융복합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는 등 정책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지역 기반 경제·문화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박시현 서원대학교 겸임교수

[EE칼럼] ‘경유=값싼 연료’ 착각 만든 정부 개입의 값비싼 비용

경유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된 경유 차량은 979만5611대였다. 전년(989만3868대)보다 1.0%(9만8257대)나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 휘발유차는 오히려 1318만7649 대로 4.4%(55만7378대)나 늘어났다. 우리 사회에서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훨씬 더 고약한 악동(惡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경유차의 감소는 대부분 스포츠형 다목적차량(SUV)을 포함한 경유 승용차에 한정된 것이다. 실제로 작년 1분기만 하더라도 경유 승용차의 판매량은 한 해 전보다 무려 3만829대나 줄어들었다. 정유사들이 휘발유·경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게 된 2005년부터 허용된 경유 승용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연비와 힘이 좋은 디젤 엔진의 경제성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더 큰 차를 탈 수 있다는 매력도 외면하기 어려웠다.그렇게 시작된 경유 승용차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이제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셈이다. 탄소중립을 비롯한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유차의 매력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서울시는 2035년부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모든 신차의 등록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경유 승용차의 미래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것이다.경유차의 유지·관리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DPF(디젤입자필터)나 SCR(선택적촉매저감장치)과 같은 매연저감 장치도 부착해야 하고, 유지·관리도 감당해야 한다. SCR의 경우에는 연료로 사용하는 경유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요소수를 주입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2021년에는 중국산 요소의 수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요소수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칫하면 멀쩡한 경유차를 세워둬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게 된 것이다.엎친 데 덮친다고 지난해 후반기부터는 경유의 가격이 휘발유보다 더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시작되었다. 경유차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경제성에 급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올해부터 휘발유에 부과하는 유류세를 리터당 100원이나 올렸는데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으로 전국의 주유소에서는 경유의 가격이 휘발유보다 리터당 평균 118원이나 더 비싸게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사실 경유가 ‘값싼 서민 연료’라는 우리의 인식은 정부가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경유 값이 휘발유보다 싸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석유제품 시장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언제나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산업·난방·운송용으로 사용되는 경유의 국제 시장에서의 수요가 운송용으로만 사용되는 휘발유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산업용 수요가 늘어나거나, 난방용 경유의 수요가 늘어나면 국제 시장에서의 경유 가격은 더욱 치솟기 마련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름값을 결정했던 1990년대까지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반값 수준으로 고시했다. 대중교통과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경유와 달리 휘발유는 상류층에서 사용하는 낭비적 사치품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산업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낭비를 억제하는 1석3조의 묘책이었다.1982년 정유사의 민영화가 시작된 후에도 경유에 대한 정부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지 못했다. 1990년대 말에 시작한 연료소비현대화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차등화해서 경유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휘발유보다 더 낮게 만들어버렸다. 지금도 경유에는 리터당 휘발유 698원보다 훨씬 낮은 475원의 유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정유사의 경유 출고 가격이 휘발유보다 지나칠 정도로 높아진 탓에 ‘가격 역전’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를 통해서 시장 가격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버스·트럭·중장비와 같은 대형 자동차의 경우에는 디젤 엔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경유를 싸게 공급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 전기차·수소차에 대한 과도한 세제 지원도 소비자의 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다. 친환경에 대한 정부의 성급한 강요가 오히려 환경을 망쳐버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데스크 칼럼] 예고된 경기침체, 불가피한 고통분담

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 경제는 위기와 우려로 첫소식을 전했다. 우리나라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급감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경쟁사인 TSMC에 세계 반도체 매출액 1위 자리를 또 다시 내주게 됐다. TSMC는 반도체 업황 둔화에도 작년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세계 반도체 매출액 1위 자리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TSMC의 작년 4분기 매출액이 6255억 대만달러(약 25조6000억원)으로 시장 전망치(6360억 대만달러)를 하회했다고는 하나, 기술력과 규모만으로 반도체 1위 자리라는 성과를 달성한 것은 그들(대만)에겐 자랑이자 우리에겐 뼈아픈 현실이다. 실적 부진은 결코 삼성전자만의 아픔은 아니다. LG전자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6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1% 급감했다. 21조8597억원의 분기 최대 매출액을 달성하고도 원자재값, 물류비 인상 등으로 겨우 영업적자를 면하는데 머물렀다. 기업들의 상황이 이러하니 수출지표도 좋을리 없다.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반도체 등 수출이 급감하면서 3개월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1월 1~10일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138억62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0.9% 감소했다. 이 기간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9.5% 급감했다. 매년 기업들 CEO 신년사에서 반복돼왔던 ‘경제위기’라는 단어가 올해처럼, 연초부터, 즉각적으로 기업들 피부에 와닿았던 적이 있었는지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경제 불안정과 실물경제 위축이 외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한숨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주요국의 금리 인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가격 상승 등 대내외 요인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국내 기업들과 경제를 옴싹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기업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증가세 둔화와 수요부진에 따른 위기가 닥쳐올 것으로 보고 사업 확장보다는 비용 절감, 투자계획 보류 등에 초점을 맞추며 극도로 몸을 사렸다. 주요 기업들이 예년보다 대표이사 및 사장단 인사 시기를 앞당긴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하루라도 빨리 조직 완성도를 높여 대내외적인 경제 현안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행보로 보여진다.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 또한 녹록치 않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 자회사인 SK온은 미국의 완성차 업체 포드, 튀르키예 제조기업 코치와 함께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인근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키로 했지만, 최근에는 사업 계획을 전면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 도는 설대로 사업이 중단될 경우 연초 경기 침체 본격화, 고금리 기조로 글로벌 자금 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실제 투자를 철회한 주요 사례로 남을 것이다.지금 우리나라 기업들은 위기가 위기라고 토로할 만한 여유조차 갖기 어렵다. 이 순간에도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촌각을 다투고 있다. 1분 1초라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거듭 곱씹게 된다. 기업들만 잘해서는 위기를 극복하기 요원한 것처럼, 반대로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없다. 올해도 물가 상승, 금리인상의 영향은 경제주체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 제한적이나마 완충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 추가 인하를 검토한다면 기업들은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 발표된 기업 투자 증가분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집행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것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다. 복합위기로 시작한 2023년이다. 우리 경제가 그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업과 정부 등 개별경제주체가 고통을 분담하며 본연의 역할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mediasong@ekn.kr

[EE칼럼] 대혼란 겪은 세계 가스시장 새해 나아질까

지난해 세계 에너지 시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대혼란이다. 재작년 말 유럽의 예상 밖 풍력발전 하락으로 시작된 작은 혼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수출 중단에 의해 증폭되어 1970년대 석유 위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대혼란으로 이어진 한 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유럽의 LNG 현물 가격은 MMBtu 당 55달러를 웃돌며 과거 5년간 평균 대비 8배 이상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아시아지역과 미국시장 가격도 각국의 묻지마식 LNG 확보 경쟁으로 말미암아 각각 45달러, 8달러 수준으로 분기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였다. 여기에 더해 가스 대체 수요의 급증으로 석탄 가격도 덩달아 급등하여 톤당 400달러를 훌쩍 넘는 등 믿기지 않은 대혼란이 타 에너지 시장으로도 빠르게 전이되었다. 하지만 10월로 접어들면서 혼란의 양상이 갑자기 뒤바뀌기 시작했다. 가격이 급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유럽 LNG 현물 가격이 10월 한 달 사이에 79% 가량 폭락하며 2021년 6월 이후 최저 가격을 기록하기도 했다. 아무리 단기적 가격변동이었지만 연일 최고 가격을 갱신하며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장에서 발생했다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가격 폭락이었다. 이와 같은 가격 급등락 현상은 샤워 꼭지를 좌우로 틀어대며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맞는 ‘샤워실의 바보’ 가설의 전형이다. 그동안 에너지 안보를 등한시하며 마땅한 에너지위기 대책을 마련해놓지 못했던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 소비의 40% 이상을 의지하던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자, 동절기 대비 가스 비축을 위해 앞 다투어 LNG 탱크 꼭지를 끝까지 틀며 묻지마식 LNG 확보 경쟁에 나섰다. 결과는 목표 재고량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었지만, 미증유의 가격 폭등을 초래했다. 이번에는 LNG 목표 재고량의 90%를 확보하게 되자, LNG 탱크 꼭지를 반대로 틀어 거의 잠가버렸다. 이어지는 결과는 당연히 가스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는 대혼란이었다. 올해도 대혼란이 이어질지 걱정스럽다. 대혼란의 출발점인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공급이 핵심이다. 전문기관들은 대체로 종전의 불확실성, 유럽 국가들의 탈러시아 추세 등을 이유로 올해 러시아산 가스 공급량은 작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맞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가스를 LNG로 대체하기 위한 LNG 확보 각축전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올 겨울 유럽의 예상 밖 따뜻한 날씨로 가스소비가 줄어들어 다음 겨울 준비를 위한 재고 확보 수요는 최초 예상보다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올해는, 갑작스러운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에 당황했던 작년과 달리, 다양한 예측에 기반하여 수급조절에 나서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샤워실의 바보 현상은 상당히 완화되어 가격 변동폭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 세계 LNG 공급은 크게 증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왜냐하면 신규 LNG 시설 확충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가스 가격 약세가 이어졌던 과거 수년 동안 천연가스 개발과 LNG 시설 투자가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에너지기구는 올해 전 세계 천연가스 공급량 증가는 1%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LNG 시장의 또 하나의 변수는 중국의 경제 전망이다.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인 중국은, 코로나19 관련 봉쇄조치, 경기 침체와 높은 가스 가격으로 말미암아, 작년에 LNG 수입물량을 20% 이상 감소시켰다. 중국의 LNG 수입 감소량은 곧 바로 유럽행 LNG 공급 증가로 이어져 유럽의 가스 부족의 일부를 흡수하는 완충 효과를 만들어 냈다. 문제는 중국 경제가 회복되면 작년의 완충효과가 올해에는 증폭효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올해 세계 LNG 시장은 작년에 이어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격은 작년보다는 낮지만 예년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샤워실 바보의 학습효과로 말미암아 가격변동성은 작년보다는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 예상된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尹정부 2년차, 올해도 게임 패싱은 아니길

윤석열 정부가 올해로 출범 2년 차에 들어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다양한 게임 공약을 쏟아내며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높였으나 막상 취임 이후 지금까지도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게임 산업 홀대 논란은 있었지만 이번 정부의 ‘게임 패싱’ 논란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국회, 학계에서도 윤 대통령의 게임 공약이 게이머들 표심 잡기용 공수표였나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앞서 윤 대통령은 공약으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공개, 게임 소액 사기 전담 수사기구 설치, 장애인 게임 접근성 불편 해소, e스포츠도 지역연고제 등의 다양한 게임 공약을 내걸었다. 취임 첫해가 지났지만 현재 약속했던 사안들은 아직 이뤄진 것이 없다.게다가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올해도 게임 패싱은 여전할 것으로 우려된다. 윤 대통령이 당선 직후 발표한 110가지 국정과제에서도 게임 산업 정책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 비전으로서 내놓은 ‘신성장 4.0 전략’에서도 게임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 패싱 논란 역시 윤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의 2022년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 게임이 누락되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으며, 문체부가 올해 초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도 구체적인 게임 산업 진흥 정책은 포함되지 않았다.반면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게임은 K콘텐츠 전체 수출의 70% 비중을 차지할 만큼 존재감이 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한국 게임 산업 수출액은 11조원에 달하며 게임 매출 규모는 역대 최초로 20조원을 넘어섰다.여전히 우리나라가 게임 강국이라는 것은 전 세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이미 중국은 뛰어난 기술력과 자본으로 앞서나가고 있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추격도 거세다. 국내 게임사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는 북미·유럽 시장 공략도 PC·콘솔 대작의 부재로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다.지금은 종영한 대한민국 대표 예능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박명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진짜 늦은 거다"라고. 게임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글로벌 시장에서 K게임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윤정부는 무관심에서 벗어나 조속히 게임 패싱 논란을 지우고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실행해주길 바란다.sojin@

[기자의눈] 주52시간제 유연화,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

"사업을 하겠다는데, 기업을 하겠다는데, 근로를 하겠다는데, 국가의 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데 이것을 못하게 하는 민주국가가 과연 대한민국이 맞습니까?"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근로시간제도, 왜?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토론회에서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에 따른 애로사항 발표자로 나선 자동차정비업체 대표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주52시간제를 준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며 "필요할 때 노사 모두가 원하면 더 일할 수 있도록 연장근로체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호소에 중소기업계는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참석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중소기업 대부분은 위탁받아서 납품하는 협력사이고, 중소기업이 일을 많이 해야 될 시기와 좀 적게 할 시기는 물량을 주는 분(위탁 대기업)들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중소기업 대표들이 범법자들이 되지 않도록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을 추가입법이라도 해서 다시 연장해야 한다"고 거들었다.이같은 사업자 입장과 달리 노동계는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재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로 예전처럼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와 근로자 건강권 침해를 꼽는다.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가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된다면 1주 6일 근무 기준 ‘최대 69시간’ 일하게 되고, 특히 연장근로가 특정기간에 집중되면 과로에 따른 질병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노사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주52시간제 유연화 내용이 담긴 ‘2023년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오는 2월 중 입법예고할 예정이다.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 12월 발표한 권고문대로 주 단위인 연장근로시간을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 현행 근로시간제도를 탄력있게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한 것이다.그러나 주52시간제 유연화는 사용자와 근로자 양측 입장이 첨예한 만큼 쉽게 국회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 혁신의 열매를 따먹으려면 ‘이론적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기업 효율성과 국민 행복권을 아우를 수 있는 ‘실천적 실리’로 거대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슈&인사이트] 급발진 사고 규명, 소비자 억울함 없게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운전자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40여 년간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승소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1, 2심에서 승소하고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단 한 가지 사례가 있을 뿐이다.지난 1980년 초부터 시작된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는 자동차 엔진에 전자제어시스템을 탑재하면서 함께 시작된 사건이다. 즉 전자제어에 의한 문제가 자동차 급발진을 유발시킨다는 뜻이고, 이는 미국에서 일부 실험을 통하여 입증되기도 했다. 전자제어시스템에서 발생하다 보니 급발진 사고 이후에도 재연이 불가능하고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는 브레이크 등의 동작이 정상적이고 급발진 관련 증거는 없다고 결론이 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미국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나면 생산업체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 특성으로 최종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도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가 많고 소비자가 보상을 받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운전자가 원인을 밝혀야 하는 구조로 사실상 규명이 불가능해 결국 소비자가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기 십상이다. 연간 발생하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 신고건수는 약 100건 내외이지만 실제로는 20배 정도로 추정된다. 이중 약 80%는 운전자 실수로 보여지며, 나머지 400∼500건 정도가 실제 급발진 사고로 판단되고 있다. 자동차 사고라는 것이 워낙 급박한 상황에서 발생하다보니 당황한 운전자가 그냥 ‘급발진’이라고 언급하는 사례도 많을 것이다.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중 전체의 약 95%는 가솔린엔진과 자동변속기 조합에서 발생하고 나머지 약 5%는 전자제어 디젤엔진과 자동변속기 조합이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다.얼마전에도 강릉에서 자동차 급발진이 발생하여 운전자의 손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이번 사고처럼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엔진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불완전 연소로 시꺼먼 배출가스가 배출되며, 브레이크는 딱딱하게 굳어서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자동차가 급가속되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번 사고도 이러한 여러 요건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운전자의 안타까운 음성도 녹음되어 있어서 더욱 급발진을 의심하게 한다. 최근 보급이 급신장되고 있는 전기차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전기차는 전기전자장치가 더욱 많은 차량인 만큼 전자파 장애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당연히 차량 운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구조적으로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의 급발진 의심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나면 운전자는 불리한 처지에 몰리기 십상이다. 국내의 경우 전체의 약 80% 차량에 영상 블랙박스가 탑재되어 간접적인 증거가 되고 있지만 결국 운전자가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느냐, 아니면 가속페달을 밟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자동차사고기록장치(EDR)도 중요하게 살펴보고 있지만 증거의 객관성과 신뢰성 등이 떨어져서 일각에서는 자동차 제작사에 면죄부만 제공하고 있는 결과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급발진 사고에서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를 바꾸려면 재판과정이 달라져야 한다, 미국과 같은 재판 과정을 완벽하게 따르지는 않더라도 원인에 대한 입증을 일부라도 제작사가 입증하는 혼용된 방법이 도입된다면 균형 잡힌 재판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최근 이러한 기조가 일부 나타나는 듯 해서 반갑다. 둘째는 자동차 블랙박스를 비행기의 블랙박스 성능에 맞먹게 개발, 탑재하는 방법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자동차 급발진연구회에서 제작한 경험을 보면 약 4~5만원이면 담배갑보다 작게 제작할 수 있어 기존 EDR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다.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적으로도 가장 앞서 있는 영상 블랙박스를 개선하여 운전자의 발까지 찍을 수 있는 블랙박스를 추가하는 방법이다. 최근 기존 블랙박스에 발의 영상을 포함하는 모델과 기존 블랙박스에 추가로 장착하는 저가형 ’페달 블랙박스‘가 출시되어 시장의 관심이 크다. 균형 잡힌 재판과정과 함께 사고를 명확하게 규명할 증거확보에 도움을 줄 첨단장치 보급으로 자동차 급발진에 대한 운전자의 두려움이 덜어지길 기대한다.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EE칼럼] 전기료 현실화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새해 들어서면서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을 모든 소비자에 대해 kWh당 9.5%(11.4원) 인상했다. 기후환경요금은 kWh당 1.7원이 올랐다. 한전에 따르면 4인가구 기준으로 월 4500원 정도 부담이 늘게 됐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연말 국회에서는 한전의 적자 누적을 이유로 회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에서 6배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래저래 올 한해 전기요금은 에너지 분야의 중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한전의 적자는 30조원을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21조8342억원을 기록했는데 4분기에도 추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한전의 이런 역대 최대 적자는 왜 발생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를 만들어 파는 한전이 만드는 값보다 싸게 팔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원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원료값이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원료비가 들지 않지만 화력발전과 원전은 원료를 태우거나 붕괴시켜 열을 내야 한다. 따라서 연초에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면서 한전의 원료비도 급증했기 때문이다.한전이 항상 적자만 보는 건 아니다. 110달러까지 갔던 유가가 급락하여 40~50달러에서 움직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과 연평균 유가가 42.29달러였던 2000년에는 영업이익은 물론 당기순이익에서도 흑자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연평균 유가가 60달러대였던 2018년과 2019년, 2021년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연평균 유가가 96.41달러였으니 역대 최대의 영업이익 손실을 보고 있는 중이다.물론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데 연료비연동제와 총괄원가제를 적용하고 있어 원료비 상승을 반영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및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해야 하므로 물가당국의 입장에서는 인상을 억제해온 것이 현실이다.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원가변동보다도 더 큰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 전기요금은 국제적으로 아주 낮은 수준이다. 우리와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진 독일이나 일본은 물론 우리보다 저소득인 국가, 심지어는 산유국보다도 전기요금이 싸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MWh당 103.9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1번째로 낮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의 61% 수준으로, 가장 비싼 독일에 비해서는 30%, 일본의 4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화석연료에 비해 열량 대비 가격이 낮아지는 수준까지 되었으며 2005년 이후에는 이런 가격 역전이 계속되어 왔다. 즉, 전기값이 석유값보다 싸다는 이야기다. "콩보다 두부값이 더 싸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전기값이 싸다 보니 우리나라의 지난해 전기사용량은 세계 7위이며 1인당 전기사용량은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기를 펑펑 쓰고 있다. 석탄이나 석유, 가스를 사용해도 될 곳에 전기를 사용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93%의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말이다.이제 전기값을 전기를 만드는 석유·가스값 보다 높은 수준으로 되돌리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또한 대기오염 대응 비용과 온실가스 감축 비용 등 외부화되어 있는 비용들을 가격에 반영하여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전기요금 정상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불합리한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 지난해의 적자만 메우려 해도 kWh당 260원은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물가에 줄 충격을 고려하여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지난해 9월 이미 52%를 인상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한편에서는 내년 선거 운운하며 또다시 폭탄 돌리기를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따라서 로드맵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나라 전기요금의 불합리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중기 계획을 수립하여 단계적으로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전과 산자부에만 맡겨 대증적인 요금 인상만 할 것이 아니라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부채를 키워 적자를 메우려는 시도는 눈가리고 아웅이다. 그 빚을 갚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전기요금과 정부의 공적자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기자의 눈] 전통시장과 상생

얼마 전 스타벅스(스벅) 코리아가 서울 경동시장에 방치돼 있던 옛 극장(경동극장)을 활용한 특화매장 ‘경동1960점’을 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한약재 시장으로 알려진 경동시장 약방거리 한복판에 ‘뜬금 없는’ 커피전문점의 등장에 시장상인은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에선 ‘스벅이니까 가능한 시도’라는 평가와 함께 골목상권과 공존을 꾀하는 색다른 시도라고 찬사를 보냈다.경동1960점은 전통시장과 상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역사회에 긍정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품목당 300원씩 적립해 경동시장 상생기금으로 조성하겠다는 결정에서 스타벅스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물론 대기업의 전통시장 진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골목상권 침해에 따른 독과점을 우려하는 반응이 나오지만, 이번엔 환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른바 대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를 업고 전통시장에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시장 활성화와 상점 매출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의 기대감 때문이다. 경동시장에서 약재를 판매해 온 상인 A씨는 "상권 활성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색했다. 폐극장을 살린 복고풍 콘셉트의 이색 매장으로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가며 중장년 세대가 주로 찾는 전통시장에 신규 고객이 유입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유에서다.이처럼 상생을 키워드로 내걸고 전통시장 활성화에 나선 외식업체는 스타벅스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백주부’로 알려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자신의 고향인 충남 예산 지역 전통시장 살리기를 위해 두 팔을 걷었다. 백 대표는 지난 10일 자체 운영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맨날 꿈꾸고 있는 백종원의 꿈입니다"라며 지역 상생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백 대표는 2019년 예산 전통시장을 방문해 느꼈던 "지방이 이렇게 힘들어졌구나, 이러다 잘못하면 지방이 없어지겠구나"라는 절박감이 프로젝트의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더본코리아는 이미 이달 9일 예산시장 내 음식점 5곳의 문을 열었고, 앞으로 2~3개 점포를 더 선보일 계획이다. 갈수록 대기업 마트와 온라인몰에 손님을 빼앗기고 있는 전통시장에 식품 대기업의 ‘상생형 출점’은 상권침해가 아니라 오히려 가뭄 속 단비 같은 동반성장 모델이란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모범사례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inaho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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