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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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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원전 확충보다 더 급한 사용후 핵연료 처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21 09:37

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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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예교협 공동대표


 1954년 세계 최초로 구소련에서 오브닌스크(Obninsk)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된 이래 원자력 에너지는 세계 주요국에서 에너지믹스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 왔다. 특히 1970년대 석유위기를 계기로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자력 에너지는 국가의 에너지 안전보장 강화에 기여하는 대체에너지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을 거치면서 확산세가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원전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원전 건설 붐이 일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부 국가에서는 여론 악화 등으로 인해 원전 축소 또는 폐기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화석연료 수급 및 가격 불안정성과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대처 수단으로 원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특별 보고서는 원전 이용을 확대하는 길을 선택한 국가에서는 수입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점유율이 확대된 저탄소 전력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원전 없이 지속 가능한 청정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성이 큰 데다 비용도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IEA에 따르면 현재 세계 32개국에서 440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으며, 전세계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은 약 10%로 저탄소 발전량에서 수력(17%)에 이어 제2위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원전을 환경과 기후친화적인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키기로 했고,우리나라도 택소노미에서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규정했다.

주요국 정부의 최근 원전 정책을 보면 미국은 경제적인 이유로 폐쇄위기에 몰린 원자로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개시하는 한편 소형모듈원자로(SMR)나 제4세대 원자로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의해 도입된 생산세 공제 대상에도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영국은 지난해 4월 발표한 에너지안전보장전략에서 2050년까지 최대 24GW의 원전 설비용량을 갖춰 원전 발전량 비중을 현재 15%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신설 계획중인 사이즈웰(Sizewell)-C 원전 프로젝트에는 정부의 직접출자 외에 규제자산 베이스(RAB) 모델에 의한 지원도 적용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2월 원전 의존도를 낮추려던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2035년까지 최소 6기의 대형 경수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7월에는 세계 최대 발전회사인 EDF를 100% 국유화하고,원전 건설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률도 입안했다.

일본은 올해 5월 성립된 ‘GX(Green Transformation)탈탄소전원법’에서 원전을 이용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탈탄소 사회 실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했다. 아울러 ‘원칙 40년, 최장 60년’이라는 원전 운전 기간의 틀은 유지하면서 심사 등으로 원전이 정지됐던 기간을 소정의 운전기간에서 제외해 사실상 그 기간 만큼 연장 운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스웨덴은 43년만에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향후 20년 내 원자로 10기를 건설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5기의 원자로를 갖고 있던 핀란드는 올해 4월에 1600MW 규모의 올킬루오토(Olkiluoto) 3호기 가동을 개시했다. 40년만의 새 원자로 가동이다. 네덜란드는 1~1.6GW 규모의 신규원전 2기를 2028년에 착공, 2035년 완공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3%에서 13%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인류에게 청정에너지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많은 기술적 난제와 불안정성을 갖고 있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온실가스 감축과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두 토끼를 잡을 수 없다. 주요국이 원전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다.

올 여름 폭염 속에서도 우리나라 전력 운영예비력에 여유가 있었던 것은 원전 덕이 크다. 올해 초 수립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원자력 발전량 비중 목표를 2022년 29.6%(실적치)에서 2030년 32.4%, 2036년 34.6%로 끌어 올렸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차질없는 계속운전과 추가적인 원전 건설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급한 것은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폐기물이 포화상태인데도 부지내 임시저장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정책당국의 태도는 일종의 ‘직무유기’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사용 후 핵 연료 공론화를 시작했지만 여지껏 결론을 못내고 있다. 우리 내부의 여건부터 정비한 바탕 위에서 세계 원전 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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