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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중국, 중진국 함정에 빠지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20 06:13

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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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중국 경제가 심상찮다. 세계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중국은 수출 세계 1위 국가다. 경제 규모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다른 나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부동산이 불안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무너질 때 집값, 빌딩값이 폭락했다. 그 뒤 일본은 근 30년 동안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도 진앙은 부동산이었다. 리만 브라더스를 비롯해 대형 금융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곧 비우량 주택담보채권에 대량으로 투자했다. 집값이 급락하자 채권은 휴지조각이 됐다. 중국에서 부동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요즘 중국 경제는 여기저기 골병이 든 듯하다. 성장률은 뚝 떨어졌고, 수출은 몇 개월째 감소세다.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온다. 게다가 청년실업률(16∼24세)은 6월에 21%를 넘어섰다. 7월 통계는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쩔쩔매다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세계은행은 10년 전 ‘차이나 2030’이란 보고서를 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 발전연구중심(DRP)과 공동으로 썼다.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보고서에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을 다룬 대목이 있다. 1960년에 중진국이던 101개 국가 가운데 불과 13개국만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한 나라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아일랜드, 대만 그리고 한국 등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의 여러 나라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중간소득 국가에 도달했지만 선진국으로 점프하지 못했다.

보고서가 중진국 함정을 다룬 이유는 명백하다. 중국도 자칫 그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2030년 전에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려면 6대 개혁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시장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구조개혁을 단행하라. 둘째 혁신의 속도를 높여라. 셋째 ‘그린’ 경제로 가는 기회를 잡아라. 넷째 모두를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구축하라. 다섯째 추가 세수를 통해 재정 시스템을 보강하라. 여섯째 세계 시장과 통합을 가속화하라.

말이 쉽지, 구조개혁은 뼈를 깎는 작업이다. 예컨대 보고서는 국가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부문을 강화하라고 주문한다. 실제론 어떤가?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전례없이 민간기업을 옥죄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을 대표하는 혁신기업이다. 그러나 창업자 마윈은 정부에 대고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대에서 사라졌다.

세계 시장과 통합도 갈 길이 멀다.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을 앞세워 독자 노선을 걷자 미국은 디커플링 전략으로 맞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앙숙이다. 그러나 대중 견제만큼은 일심동체다. 바이든은 얼마전 "중국은 똑딱거리는 시한폭탄"이라며 중국을 자극했다. 지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은 첨단기술 공급망 3각 연대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반도체의 경우 대만까지 합해서 칩4 동맹은 사실상 반중 연대다.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세계은행 보고서를 잣대로 재면 선진국 도약은 쉽지 않아 보인다. 40여년 전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네 글자를 외교 기조로 삼았다. 힘을 더 비축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라는 뜻이다. 특히 초강대국 미국과 다투지 말 것을 당부했다.

2200년 전 한나라의 명장 한신은 젊을 때 불량배 바짓가랑이 밑을 긴 적이 있다. 겁쟁이 취급을 받았지만 장차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당장의 치욕을 참았다. 한신과 덩샤오핑은 닮은 구석이 있다.

사실 중국 부동산이 곧 무너질 것처럼 보는 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 돈줄을 조이는 건 보기에 따라선 더 큰 재앙을 막는 과감한 결정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압축성장에 따른 진통기에 들어선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중국은 중진국 중에서도 상위 소득국가에 속한다. 조금 더 참으면 선진 고소득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바로 이런 때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게 과연 현명한 전략일까. 어쩌면 중국은 지금 제 손으로 중진국 함정을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가 뒤틀리면 정치고 뭐고 다 소용없다. 중국이 덩샤오핑의 선견지명과 한신의 지혜를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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