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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가스시장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이 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려면 4대 보험, 근로시간, 육아휴직 등 챙길 것과 제약은 많으나 해고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기피한다. 이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유연성을 높이면 오히려 정규직 고용이 늘고 노동자의 평균적인 생애 소득도 늘어난다는 것이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노동시장의 규제를 없애 정규직 채용에 대한 기업의 두려움을 없애야 고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가 우리 가스시장에도 적용된다. 한국은 천연가스 생산이 거의 없어서 해외에서 LNG를 수입해서 쓴다. 해외의 LNG 수출업자가 산지에서 천연가스를 액화하는 엄청난 인프라 비용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미리 수요처와 맺는 20년 내외의 장기계약은 현물시장이나 단기계약에 비해 비교적 그 가격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기계약은 물량이 크고 한 번 맺으면 돌이킬 수 없다. 때문에 신중하게 향후의 수요를 예측한 후 맺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장기계약에 모두 의존할 수는 없다. 현실은 계획과 다르고 변수는 항상 생기기 때문이다. 조금 부족하게 장기계약 물량을 정하고 모자라는 물량은 현물시장이나 단기계약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물가격과 단기계약 가격이 장기계약보다 높으므로 이 모든 것을 감안해 적절한 수준의 장기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우리 가스시장의 첫 번째 경직성은 가스공사의 장기계약 물량을 향후 15년간 장기수요를 예측하는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에 따라 결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문제는 수요의 반에 가까운 발전용 수요예측이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망한 LNG 발전량과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기저설비의 정상적인 완공을 전제로 LNG 발전량을 계산하지만, 기저설비의 준공이 지연되면 모자라는 전력 생산량을 LNG 발전이 메워야 하므로 결국 계획 대비 실제 LNG 발전량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LNG 발전량이 갑작스럽게 증가해 천연가스 현물시장 도입물량이 늘어났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급등한 LNG 현물가격이 반영되며 LNG 도입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이번 겨울 난방비 급증의 한 원인이 됐다. 가스시장의 두 번째 경직성은 LNG 직도입 물량의 재판매 금지에서 비롯된다. LNG 도입의 과부족 물량을 사고파는 시장이 개설되면 비싼 해외의 현물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가스공사와 직도입 사업자끼리 수요예측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된다. LNG 직도입 물량의 재판매를 금지한다고 해서 자가용 직도입 사업자의 물량이 크게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2005년 2개였던 LNG 직도입 사업자는 2020년 8개로 늘었고 전체 LNG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에서 22.1%로 증가하였다. 어차피 자가용 물량의 증가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 첫 번째 경직성을 풀기 위해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얽매이지 말고 가스공사가 장기계약 물량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과소예측된 LNG 발전량 규모가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에 반영돼 가스공사의 손발을 묶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2036년 LNG 발전설비 비중은 44.7%지만 발전량 비중은 9.3%에 그쳐 가동률의 심각한 미스매치와 LNG 발전량의 과소예측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가스공사가 장기계약 물량에 제약을 받으면서 LNG 직도입 물량이 꾸준히 증가해 온 셈이다. 두 번째 경직성을 풀기 위해서는 가스공사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직도입 사업자의 무임승차 논란을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LNG 도입업자가 이를 인프라 사용비용으로 분담할 수 있도록 가스공사가 인프라 부문에서 부담하는 공익적 비용을 투명하게 산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가스공사와 직도입 사업자의 이해를 모두 고려하고 무엇보다 가스 소비자의 편익을 고려하는 가스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이 사후적(事後的, ex post)으로 자유로우면 사전적(事前的, ex ante) 효율성이 올라간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행동주의 펀드의 귀환, 기업 대비책 서둘러야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부 행동주의 펀드의 주장이 소수주주와 여론의 지지를 받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행동주의 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첫 번째 시각은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기업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현재 경영진을 견제하여 기업 가치를 높이고 배당을 늘려 소액주주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각은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적 이익 추구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배구조 투명성, 주주가치 제고 등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 수익을 거둔 뒤 발을 빼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 발전, 일자리 창출 등에 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이는 과거 단기차익을 실현하고 해외로 철수한 소위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 사례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SK와 소버린간 분쟁이다. SK측은 자사주 매입, 위임장 경쟁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해 1조원의 비용을 지출한 반면, 소버린 측은 2년 만에 투자금의 5배에 이르는 약 1조원의 수익을 거두고 한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칼 아이칸, 헤르메스, 타이거 펀드 등이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해 짧은 기간에 많은 수익을 내고 우리나라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앞으로도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증명된다.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국내기업 수가 2017년 3개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47개로 15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뿐만 아니라 토종 행동주의 펀드도 기존 ‘기업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쇄신 노력과 함께 공모펀드 인수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세계적인 ESG 열풍 등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성숙되고 있다. 문제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에게 골치 아픈 존재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배척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도 엄연한 주주이다. 기업에 대해 다소 과격한 요구를 하는 것은 맞지만 현행 법령이 허용하는 주주권 행사를 임의로 막을 수 없다. 행동주의 펀드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기업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행동주의 펀드에게 공격당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최소화해야 한다. 지배구조, 사회공헌,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건의 사전 예방, 업계 평균 대비 배당 수준 등 기업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ㆍ보완하여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평소에 기관투자자와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주식을 대량으로 확보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무성과가 좋지 않은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책동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상법, 자본시장법, 스튜어드십 코드, ESG 관련 법령과 가이드라인 제ㆍ개정 등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변화를 면밀하게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동향도 살펴야 한다. 국민연금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7%에 달하는 자금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큰 금액이고 그만큼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연금이라는 공적기관이 특정 기업에 대해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면 행동주의 펀드는 국민연금의 의견에 편승해 기업의 경영에 관여 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기업 경영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EE칼럼]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국제공조로 풀어야

임은정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쌓여 있는 오염수를 올 봄부터 태평양으로 방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주변국들의 우려를 의식해 방사능 수치를 철저하게 측정해 공개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도쿄전력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문가 리뷰를 받아 시책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측이 측정 대상 물질 64종에서 스트론튬, 텔루륨, 루비듐 등 37종을 빼고 4종을 새로 추가해 총 31종만 측정하겠다는 계획을 전해 온 데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잡힌 어종에서 기준치가 넘는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방사능 물질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영향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오염수 역시 아무리 희석하고 처리를 하더라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방사능 물질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이런 물질들이 해양 생태계는 물론 주변 국가의 어업이나 국민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금 시점에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더구나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를, 후쿠시마 원전 폐로 과정에서 나오게 될 또 다른 오염물질들을 생각할 때 아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인접한 데다 책임과 공정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일본 측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철저한 모니터링, 나아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의 대응 조치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정당한 권리를 넘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다만 독자적으로 요구하고 대응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유념하며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할 것을 주문한다. 첫째, 이 문제가 한일 양자 간 문제로만 비춰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정권 교체 이후 일본 정치권과 당국이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현저하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일본 측도 아베 신조와 그 뜻을 계승하는 지도자들이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전략적인 파트너로 보지 않는 시각이 강했다. 미·중 전략 경쟁의 국면 속에서, 북한의 수위 넘는 도발 속에서, 문 정부가 취하는 입장이 일본의 전략적 판단과는 궤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역사 문제까지 겹치며 한일관계는 꼬일 대로 꼬였다. 이런 경색 국면에서는 일본이 오염수 문제를 한일 관계의 프레임에 가둘 수 있는 여지가 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여러 노력에 의해 한일관계는 개선될 가능성들이 관찰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국면에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활용에 적극적인 현 정부로선 오염수 문제를 계속 언급하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일관계의 문제라기 보다 방사능에 의한 인간의 안전과 해양생태계 보호, 어업의 직·간접적 피해 등 한일관계보다 상위의 이슈를 아우르는 인류와 환경의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인 만큼 회피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해야 한다. 둘째, 공론화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한일 양국 관계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보편적인 우려에 동조하는 주변국, 특히 태평양 도서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 더 나아가 미국의 알래스카주나 캘리포니아주 같이 태평양을 접하고 있어 비슷한 걱정을 함께 하는 곳과 공조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기보다 일본에게 레버리지가 강한 혹은 일본이 협력관계를 중요시 할 수 밖에 없는 행위자들과 연대하여 공론화할 때 더욱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한국 역시 원자력 강국 중 하나로서 방사능 물질에 관한 문제는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일본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삼기보다 인류보편적 가치에 입각하고, 아울러 원자력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협력과 공조의 소재로 삼아 대응해야 한다.임은정 공주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기자의 눈] 주어진 상황을 활용하는 특례보금자리론

1년간 한시 운영하는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 열흘이 지나지 않아 정부 한도 약 25% 이상을 소진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중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4%대 고정금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필요 가치를 인정받는 중이다. 초기 흥행 이유에는 자금계획이 예측 가능한 고정금리라는 이유가 크다. 또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미적용,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 출시 직전 0.5%포인트(p) 금리 인하 등 영향도 있었다. 이같은 특례보금자리론은 신규주택 구입과 기존대출 상환,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중 기존 6~7%대 높은 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차주들이 고정형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려는 기존대출 상환 신청이 가장 많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도 기존대출 상환 비중으로 활용한 차주가 61% 이상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금리 안정화가 곧 올 것이라는 분위기에서 부동산 시장 하락 시기 고정금리 4%대는 ‘빚 내서 집사기’ 대출 상품으로는 크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규주택 구입으로 활용하지 않으란 법은 없다. 최 의원의 발표 자료에서도 신규주택은 30%, 임차보증금은 7.7% 정도가 특례보금자리론으로 활용됐다. 일례로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8억원대 아파트를 소유한 1주택자가 6억원 전세를 줬는데 2년 사이 전세가격이 하락해 역전세가 발생한 상황에서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세입자의 전세퇴거자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실제로 주변 무주택자이자 예비 신혼부부 A씨는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중 하나인 재건축 아파트 급매물 매입을 위해 열심히 임장을 다녔다. 결국 시세보다 10% 이상 저렴하게 매물을 구해 특례보금자리론을 활용했다. A씨는 생애최초주택 구입으로 LTV 80%를 활용해 체증식 상환을 택했다. 초기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들이 이자만 내다가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가 없으니 타 상품으로 갈아타기에 좋다는 생각이다. 인터넷 은행들이 주담대를 잠시 3%대까지 내리는 등 특례보금자리론 금리 경쟁력은 여전히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4%대 높은 금리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활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에 추가 대출 상품으로 기대해볼 만한 것은 부동산 급등기 도입된 전세대출 및 임대보증금 반환대출에 대한 과도한 부동산 대출 규제 정상화일 것이다.2023011701000818500036431

[기자의 눈] 지금, 정부의 방산 세일즈 외교가 빛을 발할 때

K-방산이 지난해부터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다.국내 방산업계는 LIG넥스원이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천궁Ⅱ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이집트(한화디펜스)·사우디아라비아(한화㈜)·폴란드(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산업)와 굵직한 무기체계 수출 계약을 따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호주와 방산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특히 국내 방산업계는 지난해 폴란드와 무기체계 수출 계약으로 유럽 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묶인 유럽 시장은 방산 수출국 10위권 중 6개국이 포진돼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라 여겨졌다. 특히 독일은 이번 계약으로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원할 것 같았던 유럽 시장의 일부를 내줬기 때문이다. 방산 수출은 ‘국가 대 국가(G2G) 사업’이면서 철저한 ‘수요자 우위 시장’이다. 무기를 판매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이전·현지생산·부품발주 등이 논의된다. 우리나라 방산업계는 유럽 시장 수출을 확대하려 했으나 국가 간 이해관계에 무산됐다. 현대로템의 K2 흑표전차는 노르웨이 정부의 신형 전차 도입 사업에서 독일의 레오파르트2 신형 모델과 경쟁했지만, 노르웨이가 독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노르웨이가 한국이 아닌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독일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발(發) 가스관이 막힌 독일에 천연가스 수출을 추진중이다.지금이야말로 정부의 방산 세일즈 외교가 빛을 발할 때다. 국내 방산업계는 기술력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독일에 견줘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국제 정세도 K-방산을 돕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겨냥한 군비 증강을 이어가고 있다.전문가들은 북미와 유럽에 속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과 경제력을 절충교역의 카드로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2027년 세계 4위 방산 수출 국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기대된다.이승주 산업부 기자

[EE칼럼] 기술혁신 꽃피울 에너지 산업정책 기대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오랜만에 대면 형식으로 개최된 ‘Energy Tech 컨퍼런스’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 컨퍼런스는 우리나라 에너지 기술의 연구개발 현황과 주요 계획들을 공유하고 다양한 기관과 연구자들 간에 상호 교류 및 협력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기평)에서 매년 개최하는 행사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국가 핵심 전략이었던 시절에 설립된 에기평은 우리나라 에너지 R&D 사업의 기획·평가, 그리고 관리를 전담하는 기관으로서 연간 1조가 넘는 예산을 에너지 분야의 기술개발, 인력양성 및 기반조성 등을 위해 운용하고 있다. 해당 컨퍼런스에는 한국전기연구원(KERI),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등 에너지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뿐만 아니라 한국전력공사(KEPCO), 한국석유공사(KNOC), 한국가스기술공사 등의 공기업과 민간 부문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기술혁신 주체들이 참석하여, 현재 에기평으로부터 수주해 진행하는 연구과제의 내용을 학회의 포스터 전시 형식을 통해 보여줬다. 이를 통해 태양광 및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전력, 원자력 뿐만 아니라 청정화력, 수소,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분야의 다양한 기술에 대한 현 주소와 미래의 확장 가능성 등을 엿볼 수가 있었다. 기조 강연에서는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이 ‘탄소중립 녹색성장 시대와 Breakthrough Energy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에너지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이어진 토론 시간에서도 학계, 연구계 및 산업계를 대표하는 패널들이 모여 에너지 기술혁신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날 토론을 듣는 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에너지 분야의 기술혁신이 산업정책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업정책은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의 보호나 육성, 조정 등에 개입하는 정부의 일체 행위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이러한 개입의 논리적 근거로는 산업의 초기 발전단계에 존재하는 불확실성, 연관 산업의 개발 및 경제적 파급효과의 기대 등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산업정책은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 방안인 기술 역량의 강화 및 확산 등에 중점을 둔 기술정책, 즉 산업기술정책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는 주로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기술트리 또는 기술로드맵(TRM) 등을 작성하여 핵심기술들을 선정 및 지원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현재 에기평의 기술개발 프로세스도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술혁신은 산업정책의 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고, 독립적이기 힘든 구조다. 특히 에너지 분야의 기술혁신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정부에서 기틀을 잡고 추진해 나아가는 산업정책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산업정책은 해당 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혁신 주체들에게 의사결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해당 산업을 어떠한 판으로 짜고 있는지 알려줌으로써 기술혁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산업정책이 너무 자주, 또는 큰 폭으로 바뀌게 되면 산업 내의 참여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작년 10월에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추진전략 중 하나로 시장원리에 기반한 제도 선진화를 내세운 바 있다. 또한, 기술혁신 전략의 3대 방향 중 하나로 민간 주도를 내세웠다. 이는 곧 에너지 시장 메커니즘에 작용하는 가격 신호를 시장원리에 따라 조정하고, 규제 등을 완화해 나감으로써 민간이 더 참여하여 혁신이 발생할 수 있는 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 쪼록 민관의 활발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에너지 산업의 기술혁신이 꽃피우기를 기대해 본다.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슈&인사이트] 한계돌파형 기술개발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다

마침내 오존층 파괴를 막아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세계기상기구(WMO)가 올해 초 공동 연구보고서를 통해 "2040년이면 오존층이 1980년대 구멍이 생기기 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반가운 전망을 내놨다. 한 때 ‘꿈의 냉매’로 불리던 프레온가스(CFC)가 오존층 파괴 물질로 밝혀지자, 국제사회는 1987년 CFC 사용 금지와 대체물질 개발을 독려하는 몬트리올의정서를 채택하고 30여 년간 합심해 CFC 사용량을 99% 줄이면서 드디어 오존층 회복을 확인한 것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빚어진 지구환경 파괴를 연구개발과 지구촌 협력을 통해 해결한 최초의 결자해지 방식의 쾌거라 할 수 있다. 이번 몬트리올의정서의 성공은 국제사회가 또 다른 지구환경 문제인 기후변화 해결에도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물론 기후변화는 오존층 파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해 단순한 몬트리올의정서 방식의 도입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이번 성공은 기후변화 대응의 타산지석이 되기에 충분하다. 몬트리올의정서는 체결 당시 신기술이었던 HFC 개발 성과를 고려해 CFC 사용을 점진적으로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규제는 다시 연구개발을 자극해 더욱 발전된 대체물질이 만들어지는 선 순환을 통해 오존층 파괴를 막을 수 있었다. 실제로 의정서 채택 이후 프레온 가스 대체재 개발을 위한 각종 연구 지원 기금이 약 39억 달러가 모였고 지금까지 약 8600개 연구를 지원해, 냉매는 CFC, HCFC, HFC를 거쳐 HFO로 계속 진화할 수 있었다. 결국 오존층 회복은 오존층 파괴 물질인 CFC를 현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신기술의 가용성과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의 경제성 향상으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30년 넘게 노력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였다고 하지만, 이것도 따져보면,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와 같은 온실가스 다 배출 산업을 우리나라, 중국 등으로 이전한 효과가 뒤섞인 결과다. 유럽에 국내산 철강을 많이 수출할수록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탄소중립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배출 총량을 줄이는 것이지, 배출량의 국제간 분산 따위의 숫자놀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계 돌파형 신기술에 의한 이산화탄소의 절대량 감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무탄소기술인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저장장치는 전 세계 에너지소비의 85%를 점하고 있는 화석에너지를 그것도 앞으로 30년 만에 대체하려는 탄소중립 목표 앞에서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 그럴싸해 보여도 실제 탄소중립 달성에는 역부족인 기술 수준이라는 말이다. 한계돌파형 기술개발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기술적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완성 시점이 불투명한 미래 기술을 현실 정책 시나리오에 무분별하게 포함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훗날 탄소중립의 실패를 기술개발 지연 탓으로 돌릴 여지만 줄 뿐이다.인내심이 필요할 때다. 한계돌파형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며, 신기술이 개발할 때까지는 현재의 기술을 적극 활용해 기후변화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기술개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CFC 사용 금지로 극지방 오존층 구멍이 메워지듯이, 한계돌파형 기술이 개발되면 지구온도는 서서히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관건은 한계돌파형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일정 수준의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며 버텨내느냐에 있다. 우리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 여전히 연약한 존재다. 자연의 변화에 맞서기 보다 적응력을 높이는 편이 오히려 현명한 행동일 수 있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특별기고] 세계 에너지경제 석학들이 지적하는 국제에너지 이슈

제44회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Energy Economics) 국제학술대회의 첫 행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의 연설로 시작됐다.그는 사우디가 석유·가스를 넘어 수소, 재생에너지, 배터리 및 전략광물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에너지·자원전략을 수립했고 여기에 수조 원에 이르는 재정을 투자할 것임을 밝혔다. 실로 대단한 계획이다. 그런데 한국 참가자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선언이 아니고 이후 학술대회의 주요 세션에서의 사우디 전문가들의 발표였다. 발표 자료의 세밀함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온 풍부한 정보는 이미 사우디가 수년간 해당 이슈들에 대하여 정부의 지원으로 전략적이고 착실히 연구를 진행하여왔음을 알려준다. 그 범위도 실로 광범위했다. 석유·가스 부문의 발표는 소수였고 수소, 재생에너지, 배터리, 전략광물 등 다양한 부문에서 높은 수준의 논문발표와 기조연설이 진행됐으며, 세계 주요 국가들의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의 발표까지도 세밀한 준비를 했음을 확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장관의 발표가 그냥 적당히 준비한 선언이 아니고 진지하게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저 부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IAEE는 에너지경제학 분야의 세계 최대 학술단체이다. 미국에 본부가 있으며 84개국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국제학술대회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학술적인 발표 뿐만 아니라 에너지기업과 정책분석기관, 그리고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적인 형태로 개최해왔다. 국제 유명 인사의 발표는 물론 DOE, BP, OPEC 등이 발표하는 최첨단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참여도 활발한 편이다. 현재 IPCC의 의장인 이회성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학회장을 맡았었으며, 박희천, 장영호, 허은녕 교수 등이 이사회 구성원과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한국은 2013년 6월에 제34회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한 바 있다.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제44회 IAEE 국제학술대회는 3년 만에 100% 대면으로 열린 데다 중동지방에서 최초로 열렸기에 800여 명의 많은 전문가가 참여했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를 비롯하여 전력회사, 석유화학회사 등 주요 국영기업들이 지원한 이번 학술대회는 일반참가자 전원의 등록비와 모든 편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돈 자랑’ 역시 확실하게 했다. 이번 학술대회의 기조연설자로는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The Prize’의 저자이며 최근 ‘The New Map’을 저술한 대니얼 예긴 (Daniel Yergin)이 초청됐다. 그는 에너지전환으로 인하여 새로운 국제이해관계의 충돌과 경쟁이 나타나고 심화될 것임을, 그리고 상당기간 석유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기관의 예측과 그동안 석유가스부문의 투자가 부족했음을 지적하며 석유가스의 공급부족이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전했다. 학술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저자를 비롯한 한국 참가자들은 이번 학술대회에서의 큰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첫 번째가 전략광물의 등장이다.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에너지원의 경우 그 생산과 소비에 광물이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에너지 안보나 기후변화협약 등의 논의에 전략광물을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하여 증가하는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 등 전력생산 및 배터리 등 저장장치의 증가는 구리와 리튬을 비롯한 여러 광물과 원재료를 엄청나게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됨을 확인한 것이다. 기조연설을 한 대니얼 예긴 역시 구리가 약 15배 이상 더 필요로 하게 된다면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전략광물 문제는 나아가 기존에 화석연료가 사용됐던 물, 식량 등의 생산과 소비과정에도 영향을 주며, 광물의 대량생산은 광산에서의 환경과 불법채굴 등은 ESG로 인한 규제의 대상이 된다. 학술대회에서는 전략광물을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됐으며, 이들 전략광물의 공급망 구축 및 중국의 영향력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히 자국 내 주요 광산의 개발 증대는 물론 세계적 공급망 연계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해 주목받았다. 두 번째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이른바 ‘봉’임을 확인한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중동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수입하지만 학술대회 참여자는 소수였다. 반면 미국, 영국, 인도 등 영연방국가들은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학술대회 훨씬 전부터 현지에 와서 사우디 정부 및 관계자들과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들 간에 수십 년간의 관계가 쌓여 왔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은 늦게 풀린 코로나 방역 탓에 시진핑의 방문이 있었음에도 홍콩 참가자만 있었고 일본도 IEEJ 대표 등 소수 정예의 참가에 그쳤다. 개최 장소인 KAPSARC(King Abdullah Petroleum Studies and Research Center)에는 270여명의 다국적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고 있지만 한·중·일 3국출신 연구자는 한 명도 없다.반면 인도 연구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사우디가 영국의 식민지였음을 고려하더라도 동북아 국가들의 중동 무시와 무지가 심각한 수준임을 느꼈다. 세 번째는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연구가 가지고 오는 매서움이다. 사우디 왕립 석유연구소인 KAPSARC 소속 발표자들이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석유는 물론 전기, 재생에너지, 배터리, 광물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고도의 높은 분석 방법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수준의 연구를 한 적이 언제였던지 크게 반성하게 됐다. 풍부한 자금과 에너지자원, 그리고 장기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사우디가 이루고 있는 연구업적에 제대로 한 방 맞았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전력원 믹스라는 내부 주제에 함몰되어있는 한국의 사정과 사뭇 다른 국제학술대회의 모습에 한국 참가자들은 다시 한 번 에너지가 국제적인 이슈이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90% 이상의 에너지와 전략광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임을 그저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한 학술대회였다.제44차 IAEE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허은녕 서울대 교수·박종배 건국대 교수·장영호 싱가포르과학대 교수·박희천 인하대 교수(왼쪽부터)

[이슈&인사이트]공공임대주택,공공분양 중심으로 전환해야

최근 싱가포르 방문 중 이용한 택시의 운전기사는 공공분양 아파트인 HDB(주택개발청) 아파트에서 편안히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3대 대가족인 일곱 식구는 3침실형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부부, 자녀 2인,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 식모가 각각 한 침실에 거주한다. 그 아파트 가격은 약 4억 정도라고 한다. 존 추 감독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는 싱가포르 거부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세계가 유감없이 그려지고 있다. 최고 부자의 유력한 상속자 남 주인공 닉 영의 사촌인 아스트리드 테오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자기가 가진 14채의 고급 아파트인 콘도미니엄 중 한 곳으로 이사하겠다고 말한다. 여주인공 레이첼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인 펙린 고는 베르사이유 거울의 방과 트럼프의 욕실에서 영감을 얻은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민간 주택인 콘도미니엄과 대저택에는 주로 부자들이 산다. 주택 대란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에서, 두 스토리를 되새겨보자. 싱가포르 국민들의 대다수(90%이상)는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전체 주택수의 70%이상을 차지하는 HDB 덕택이다. 초대 총리인 리콴유는 "땅은 좁지만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하다"라고 선언하고 자치정부를 수립한 1959년 이후 곧바로 1960년에 HDB를 설립하고 공공분양주택 대량 공급에 나섰다. 이 정책은 현재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 오고 있다. 한국은 자가보유율 60%다. 국토부의 주택실태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의 80% 이상이 주택 소유를 원한다. 이웃 대만은 자가보유율이 90%를 넘었다.싱가포르 사회에서는 펙린 고의 주택과 같은 호화 주택이나, 다주택자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사회와 같지는 않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호화주택이나 다주택자들이 다수 국민의 주거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고급 민간 주택들은 부자들만의 리그이다. 다수 국민들은 공공 주택의 울타리에서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한국 주택은 민간 주택이다.주택 시장에서 고가 주택의 가격이 상승하면 저가 주택도 동조화하여 상승하게 된다. 고가 주택이 서민용 저가 주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강북 서민들의 주거 보호를 위해서라도 강남권에 각종 규제를 겹겹이 쌓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에 비하여 한국 주택 소유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임대주택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민간 임대주택비율 5%인데 반하여 한국은 약 32%다. 싱가포르 임대주택의 비중도 한국보다 매우 낮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한국이 약 8%, 싱가포르는 약 5%이다. 누구나 공공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문재는 ‘임대용으로 할 것이냐, 분양용으로 할 것이냐’다. 문재인 정부는 임대용 중심(10% 이상)의 공공주택 정책을 추진했다. 공공임대주택 중심 정책은 유럽에서 이미 1980∼1990년대에 그 약효가 다 떨어졌다. 유럽 사회는 그 정책으로 인하여 과도한 공공 재정 부담을 겪었으며, 자아 실현이라는 민주사회의 가치 달성에도 미흡한 것으로 보았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영국에 유학하면서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를 경험했지만, 선견지명 있게, 창의적으로 ‘주택 소유 사회’를 싱가포르의 핵심 비전으로 설정했고,대성공했다. 우리 사회의 주택 정책 목표는 ‘주택 소유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5% 수준에서 적정 관리하고 공공분양주택 중심의 정책 전환이 중요한 시점이다. 중장기적으로 2030년 자가보유율(80%)을 설정하고 민간자가율(70%), 민간임대주택비율(15%), 공공분양주택비율(10%), 공공임대주택비율(5%)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에서도 ‘형평성’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시한다. 그런데도 주택 문제로 인한 계층간 갈등은 그리 심하지 않다. 공공분양주택인 HDB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자가보유율을 높여야 하며, 부담가능한 공공분양주택을대량 공급해야 한다. 그럴 때에 주택 문제로 인한 사회 계층간의 갈등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지속가능과학회장

[데스크 칼럼] 與 당권 경쟁 두더지잡기 결말은

"차라리 추대하거나 옹립하라."집권 국민의힘의 최근 당 대표 선거전에 대한 이같은 감상은 필자 만의 생각일까. 본 경선에 돌입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전초전 모습은 한 마디로 가관이다.두더지 잡기를 보는 듯 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두더지들을 망치로 때려 제한된 시간에 얼마나 빨리, 많이 구멍 안으로 밀어 넣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게임 말이다.국민의힘의 차기 당권 유력 주자 중 벌써 3명이 중도 낙마했다. 권성동 의원과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여전히 당권 레이스 중인 안철수 의원까지 포함하면 여권 주류가 두드린 ‘두더지’는 4명이다. 이전으로 멀리 거슬러 가 이준석 전 대표도 그 범주에 넣으면 ‘두더지’는 5명으로 늘어난다. 윤석열 대통령과 처음부터 각을 세운 유 전 의원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맏형으로 윤 대통령과 친구였다는 권 의원도, 윤 대통령과 함께 고시 공부하며 오빠·동생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는 나 전 의원도 가차 없이 찍혀 나갔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딱 그 짝이다. 윤 대통령과 사적인 인간관계에 있는 인사 뿐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안 의원, 이 전 대표도 표적이 됐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1주일 전 후보 단일화로 윤 대통령 당선에 힘을 보태고 인수위에서 5년 국정운영의 밑그림까지 그리지 않았나. 이 전 대표는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윤석열을 국민의힘에 영입해 대통령까지 만든 인사 아닌가.이들이 ‘두더지’ 신세에 놓인 가장 큰 죄라면 당권을 장악했거나 차기 당권을 넘봐 인기를 얻은 것이다.권 의원은 윤핵관 등의 집중 공격을 받은 나 전 의원이나 안 의원, 이 전 대표와는 다소 다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용한 교통정리였다. 권 의원은 사실 이 전 대표를 몰아내는 데 전면에 서지 않았나. 이 전 대표의 중도 퇴진을 이끌어낸 그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이번 조기 전당대회 자체가 치러질 수 없었다. 그런 그조차도 당권 도전을 못하고 밀려났다. 당 대표 선거 출마회견 예정일 하루 전날 스스로 전격 불출마 선언한 것이다. 이를 두고 토사구팽이라면 지나친 해석인가. 그는 불출마 이유로 느닷없이 대통령 국정운영과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꼽았다. ‘윤심’(윤 대통령 마음) 작용의 오해를 피하고 당의 화합과 단결을 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권 의원의 불출마 이후 과연 그의 뜻대로 윤심 논란이 사라지고 당의 화합이 이뤄졌는가.찍어낸 그 과정을 돌아보면 사전 각본 없이 이뤄질 수 없는 한 편의 막장극이었다. 시작은 지난해 7월 이 전 대표 개인 부정 의혹 관련 징계였다. 윤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이었다. 권성동 의원 등 친윤(親윤석열) 그룹은 정치의 사법화까지 부르며 이 전 대표측과 3개월 간 힘겨루기 끝에 지난해 10월 이 전 대표를 대표직에서 몰아냈다. 결국 올해 6월까지였던 이 전 대표의 임기가 단축되면서 조기 전대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전대의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유력주자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누가 봐도 특정 주자 배제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친윤 주도의 룰 변경, 국민의힘 소속 전체 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초선의원 50여명의 연판장 돌리기 등 집단 조리돌림 등이 원인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왕조시대도 아닌데 윤심에 대해 마치 전매특허를 낸 것처럼 상표권을 내세웠다. 실제로 친윤 중심의 당이 전대 선거 룰을 ‘당원투표 100%, 결선투표’로 바꾸자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유 전 의원으로선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이어서 나 전 의원이 당심과 민심을 함께 업고 당권 레이스 1위 주자로 떠올랐지만 그 역시 친윤과 대통령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 전 의원은 친윤그룹에 ‘반윤(反윤석열)의 우두머리’, ‘친윤 호소인’ 등으로 낙인찍혀 주저앉혀졌다. 여우를 피했더니 호랑이를 만난 것인가. 안 의원이 나 전 의원의 뒤를 이어 부상하자 이번엔 친윤과 대통령실은 안 의원 두들기기에 나섰다. 안 의원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해꾼이자 적’이란 발언까지 공개됐다.반면 김기현 의원은 당초 후순위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이젠 유력주자에 올랐다. 극적인 연출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배경에 친윤그룹과 대통령실의 유력 경쟁자 내치기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를 꾸렸다. 김기현 의원은 누구인가. 그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 희생자라고 주장해왔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재선 도전을 앞두고 자신에 대해 이뤄진 경찰수사가 문 대통령 친구 송철호 전 울산시장 당선을 위한 청와대의 선거개입 결과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그가 이제는 친윤 그룹과 대통령실로부터 윤심 논란 속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차기 당권에 가까이 가 있다. 친윤과 대통령실이 차기 당 대표 선거에 왜 이리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대선 이전 국민의힘 입당을 고민한 적 있다. ‘차떼기 정당’, ‘국정농단 온실’ 등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의힘이 자신의 철학과 가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같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둥지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자신에게 국민의힘은 한낱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뗏목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현재 무엇보다도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아 성공적인 국정을 이끌고 싶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적어도 국민의힘 재건축이 필요하다. 지금은 헤쳐 모여 식의 정계개편을 통해 정치판을 흔들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그렇다고 얼굴 등 일부 만 성형하는 리모델링 수준에 그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차기 당권을 쥐는 건 국민의힘을 재건축하는데 급선무다. 차기 당권은 내년 총선 물갈이 공천을 통해 국민의힘을 재건축하고 의회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바탕이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당장 당 선관위가 김기현 의원에 대한 지지운동 자제를 경고하고 나섰다. 제 앞가림하기도 바쁜 야당도 남의 당 선거에 숟가락을 얹었다. 대통령의 국민의힘 선거 개입이 헌법상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 등 위반이라며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다.이런 경고나 형사고발 검토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당 선관위 경고의 경우 앞으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되고 야당의 형사고발 검토도 다분히 정치공세 성격이 짙어 보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정당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직 겸임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후 사라졌다. 행정권력은 물론 의회권력까지 장악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막겠다는 것으로 읽혔다. 당정 일체로 국정을 원만하게 이끈다는 명분은 그 부작용에 빛이 바랬다. 그 이전 대통령은 권력을 창출한 집권당을 허수아비 또는 거수기 정당쯤으로 취급했다. 친윤과 대통령실을 앞세운 윤 대통령의 전대 개입 모습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돌리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집무실을 옮긴 것과도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과 관련 제왕적 대통령 직을 내려놓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강조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은 이렇게 해선 안된다. 국민 마음은커녕 당원 마음조차 얻기 어렵다. 지금 상황이라면 진짜 윤심 후보가 당권을 쥔 뒤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심상치 않은 그 위기 조짐이 최근 국민의힘 예비경선 결과로 드러났다. 윤심과 반대편에 선 이 전 대표측 후보들이 모두 본경선에 오른 반면 윤심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던 일부 후보들은 줄줄이 컷오프됐다.윤 대통령에게 당권이 절실할 수 있다. 하지만 당권 차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게 이끌지 못하면 당심과 민심이 모두 떠난다. 솔직히 윤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를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윤핵관들도 국민 밉상으로 찍혔다. 국정도 원내 절대 다수 의석인 야당에 포위돼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이런 때 자꾸 싸움의 전선을 넓히고 뺄셈정치로 시간을 보낸다. 경거망동하다간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했으면 한다.구동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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