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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홍범도 장군 논란 바로보기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뜨겁다. 이념에 따른 역사전쟁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역사를 대상으로 전쟁을 치러 승리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승리가 진정한 승리일까? 여기서 이 논란의 진위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역사 해석의 문제이고, 역사의 해석은 오늘을 사는 우리만의 특권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끝없이 해석과 재해석이 반복되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논란이 왜 문제이고,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지에 대한 필자의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논란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중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려는 학교와 국방부의 시도가 발단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해 대전현충원에 모셨고, 그 묘비를 하필이면 좌파의 상징적 인물인 신영복의 글씨체로 만들면서 우파 세력의 심기를 건드렸다. 홍범도 장군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부 우파 역사학자와 군 장성들을 중심으로 그의 자유시 참변에서의 역할과 이후 행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월북한 공산주의자 김원봉의 복권 시도가 여의치 않아 그랬는지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하사받고 이후 공산주의자로 행동한 홍 장군의 유해 봉환 과정과 묘지의 크기 등에서 법규를 고쳐가면서까지 환대했다. 또 1962년에 이미 서훈 받은 홍 장군에게 다시 훈장을 추서한 것도 명백한 동일 공적에 대한 이중 서훈이다.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사실상 이념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밝힌 가운데 육사와 국방부의 홍 장군 흉상 이전 시도는 당연하게 좌파 및 야권과의 이념 갈등을 촉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또는 대통령실이 사실상 주도한 것인지는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현재로선 그런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 온 군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자로 평가될 수 있는 홍범도 장군을 국군의 뿌리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과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 또는 이전하려는 시도는 현시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 국민 모두가 수십 년에 걸쳐 자랑스런 독립운동의 하나로 교육받아 온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다. 그런 영웅의 흉상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이전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당장 광복회도 절대 반대를 부르짖고 나서지 않았나. 대다수 국민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배워온 홍범도 장군이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로 평가되는 것을, 그것도 군 일각에서 그런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일부 군과 국방부의 홍 장군에 대한 이해가 유일한 해석일 뿐 이것이 반드시 옳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자유시 참변과 이후의 홍범도 장군의 행적에 대한 다수의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고, 홍 장군의 자서전과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홍 장군에 대한 평가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비록 ‘사실’이라고 해도 사실의 역사적 의미와 해석은 끊임없이 평가와 재평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오늘 군과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거나 이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최종적일 것이라 보는가. 정권이 바뀌고 역사 해석이 달라지면 오늘 홍 장군의 흉상 이전을 주도한 사람들이 단죄되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질 가능성은 없을까. 만일 그렇다면 홍 장군의 흉상은 이리저리 이전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정치가 역사를 해석하고 재단하는 일을 한다면 반대 세력에 의한 동일한 행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될 것이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E칼럼]‘녹색 사다리’, 지속가능 발전의 지렛대 삼아야

최근 굵직한 국제 뉴스들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잇단 재해 소식이 들려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8일 모로코 북동쪽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고, 10일에는 리비아 동부 지역을 할퀸 대홍수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나라 모두 저개발 국가이다 보니 그 피해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26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이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녹색 사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이번 G20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One Earth, One Family, One Future)’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리더에 해당하는 의장국 인도의 외교 역량이 잘 드러난 행사였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 국가 정부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이 G20의 회원국이 됐다. 필자는 지난 7월 에너지경제신문 기고를 통해 한국에 있는 기후변화 대응 관련 국제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주문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G20를 계기로 윤 대통령이 인천 송도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GCF)에 3억달러를 추가로 공여하기로 한 것과 서울에 소재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및 송도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기후기술센터네트워크(CTCN)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번 ‘녹색 사다리’ 제안이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저개발 후진국 통칭)로의 진출에 실질적인 레버리지가 되기를 주문한다. 첫째,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다극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건곤일척의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조차도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며, 거대한 중국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만한 별도의 단일 시장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국가들이 중국 시장을 대체·보완할 만한 시장을 찾는데 사활을 걸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역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 해당하는 아프리카 전체, 중남미, 동남·남아시아, 중동 지역은 자원이 풍부한 데다 인구가 많고, 개발 잠재력이 높아 앞으로도 그 중요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둘째,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기후변화 대응과 사회기반 시설을 정비하는 것은 해당 국가들의 성장과 시장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복수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성장의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한국에도 도움이 된다. 글로벌 사우스 지역은 개발 잠재력이 높은데도 사회기반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저개발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국가들이 많다. 더군다나 글로벌 사우스는 지리적으로도 기후위기 상황에 더 심각하게 노출되는데 사회기반 시설이 취약하다 보니 재해가 발생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크게 타격 받을 수밖에 없고, 그 피해 때문에 다시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이 지역에 속한 국가들이 사회기반 시설을 잘 갖춰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 것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무역대국인 한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에 ‘녹색 사다리’ 접근을 통해 차세대 원전이나 수소 기술, 탈탄소 해운 기술, 친환경 항만 인프라와 같은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신산업 분야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IT 산업은 물론, 배터리와 같은 기후기술 분야에서도 훌륭한 기술력과 제조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공급망 재편의 국면에서,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리쇼어링, 니어쇼어링 전략에 의해 기업들이 국내 보다는 해외에 생산 시설을 짓고 있어 국내 산업계에 직접적인 낙수효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공동화마저 우려된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이자 최대 시장인 만큼 대세를 따라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산업계를 어떻게 유지 및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절실한 시기이다. 이런 차원에서도 윤 대통령이 언급한 것 처럼 신산업 분야는 국내에서의 일자리와 직결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녹색 사다리 정책이 글로벌 사우스나 한국에게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렛대가 되기를 바란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기자의 눈] 생성형 AI 시대, 실직하지 않으려면

[에너지경제신문=정희순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각종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삼성SDS 행사에 갔다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생성형 AI가 예상보다 더 빨리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삼성SDS가 내놓은 서비스는 생성형AI 기반의 기업 전용 솔루션이다. 창작과 계획, 조사, 분석 등 사람의 힘으로만 가능할 것 같았던 오피스 업무에 생성형 AI를 도입한 것으로, 황성우 삼성SDS 대표는 "업무 생산성 향상과 함께 업무의 틀까지 바꾸는 ‘하이퍼오토메이션(HyperAutomation)’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100년 전쯤에도 비슷한 고민을 한 학자가 있었다.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지난 1928년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전망’이라는 논문에서 생산성과 과학기술의 진보가 후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문제를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빅데이터의 창시자’로 불리는 토머슨 대븐포트(Thomas H Davenport) 미국 밥슨칼리지 교수도 지난 2017년 출간한 ‘AI시대, 인간과 일’이라는 저서에서 ‘3차 자동화 시대’에는 명백히 실직이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안한 마음에 챗GPT에게 AI가 인류의 일자리를 뺏을 것인지를 물었더니 "일부 일자리는 AI에 의해 대체될 수 있지만, 이런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직업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했다. 새로운 기회의 예시로는 AI 시스템을 다루는 전문직, 인간의 창의성과 판단력이 중요한 업무, 상호작용과 감성적인 요소가 중요한 분야를 꼽았다. 뻔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시대에 우리가 실직을 면할 길은 딱 하나다. 컴퓨터가 정복하지 못할 영역을 찾아 기술을 발판삼아 올라서는 것이다. 삼성SDS이 이번에 내놓은 기업전용 자동화 솔루션의 이름은 ‘브리티 코파일럿(co-pilot, 부조종사)’이다. 기술은 부조종사의 역할을 하고, 진짜 조종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의미다. 생성형 AI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넋 놓고 있다가는 대체될지 모른다. hsjung@ekn.kr정희순 정희순 산업부 기자. hsjung@ekn.kr

[데스크칼럼] 대리인 비용과 잼버리 사태

며칠전 지인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 인근 유명 남도 한식당에서 점심 자리를 가졌다. 광화문 인근 회사를 다녔을 적 자주 점심을 했던 단골식당이었다. 지인이 광화문에서 보자고 하길래 오랜만에 가보고 싶기도 했고 해서 주저하지 않고 추천했고, 포털에서도 검색해보면 상위에 뜨는 맛집이다.음식도 깔끔하고 남도 맛을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이 공수돼 올라왔는데 문제는 바로 ‘모기’였다. 식사 전날 예약을 했는데 당일 점심에 갔더니 지하방으로 배정을 받았고 9월 가을의 문턱 손님들을 반기고 있던 건 쫄쫄 굶고 있던 여름의 불청객 모기였다.지인들과 점심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왱왱거리는 모기들이 괴롭히기 시작했고 도저희 참을 수 없어 직원한테 정식 항의를 했다. 모기 때문에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다고. 그가 한 조치는 고작 전기모기채 한 개를 준 것이다였다. 직원이 와서 전기모기채로 직접 모기들을 잡아준 것도 아니었다. 이제 모기한테 뜯기지 않기 위해 전기모기채로 모기를 잡으면서 점심을 먹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거짓말 안하고 적어도 30~40마리 정도 모기를 잡은 것 같다.점심 나오기 전 점심을 먹으면서 계속 전기모기채에 잡혀서 모기가 타 죽는 ‘지찍’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직원들, 식사를 나르는 직원들, 건물을 유지하는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면서도 우리 테이블에서 전기모기채로 모기를 지찍하면서 잡고 있었지만 아무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아! 뭔가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건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없는 것 아닌 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손님이 모기에 뜯기건 말건, "우리는 그냥 돈 받고 받은 만큼 식사만 제공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건 주인 있는 식당이라면 직원들이 이런 마인드로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돼가고 있는 것 아닐까, 특히 이 식당 직원들은 지하방에 모기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에 손님 예약을 받았고, 우리팀 손님 4명이나 모기를 뜯기라고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하방에 모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점심 손님 예약을 받았으니 모기를 미리 퇴치했었어야 했다. 이를 위해 모기약을 뿌리거나, 아니면 전기모기채를 항의하는 손님 손에 직접 쥐어주기 전에 직원들이 직접 손에 쥐고 모기들을 잡았어야 했다. 손님들이 비싼 식대를 지불하고 외식을 하는 이유는 그러한 서비스 비용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이다.이 시점에 다시 상념에 드는 것은 최근 아쉽게 막을 내린 새만금 잼버리 사태이다. 여성가족부, 행전안전부, 전북도, 새만금개발청 등 잼버리와 연관된 모든 정부 기관들이 서로 졸속 운영과 관련된 책임을 떠넘겼는데 그 사이 잼버리 기간 초반 전 세계에서 온 청소년들은 새만금 영지에서 이같은 공무원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모기밥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잼버리 대회 파행의 원인이 됐던 폭염과 모기 등 해충, 분뇨 등의 문제가 대회 준비 때부터 이미 경고됐었다는 것이다. 여가부, 행안부, 전북도, 새만금개발청 등 주무 부처 어느 한 곳에서라도 주인 의식을 발휘했었더라면 새만금 잼버리가 한국 단체 관광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식당 주인이나 우리 국민이나 비슷한 댓가를 치르게 됐다. 경영학에서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주인-대리인 관계에서는 대리인의 선호 혹은 관심 사항과 주인의 그것이 일치하지 않거나 주인이 대리인에 비해 전문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리인이 주인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면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도덕적해이, 역선택, 무임승차 문제 등 ‘대리인 비용’이라는 암묵적 비용이 초래한다. 항상 식당 주인·국민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돈내고 밥 먹는 손님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곽인찬 칼럼]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저성장의 위기

정책 분석가인 미셸 부커는 지난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를 회색코뿔소에 빗댔다(‘회색코뿔소가 온다’). 누구라도 코뿔소를 보면 덜컥 겁부터 난다. 자리에 주저앉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저건 코뿔소가 아냐"라고 애써 부인한다. 그래봤자 피할 도리는 없다. 부커는 코뿔소를 보고도 못 본 척한 결과가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였다고 주장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회색코뿔소는 뭘까. 한두 마리가 아니지만 가장 덩치가 큰 코뿔소는 바로 저성장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낮췄다. 한국은행은 1.4%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부동산 부진이 이어질 경우 1.2%까지 떨어질 걸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초 1.5% 전망치를 1.4%로 낮췄다. 씨티, JP모건 등 대형 투자은행들은 내년에도 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으로 본다. 한국 경제는 2%를 밑도는 저성장에 익숙하지 않다.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위기 등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지난 반세기 우리 경제는 늘 위만 보고 달렸다. 그 덕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저성장은 스멀스멀 다가와 우리 옆에 섰다. 돌이켜 보면 경고음은 오래전부터 울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해리 덴트는 "한국의 호황과 불황, 부동산, 산업화 주기는 일본을 22년 뒤처져 따라가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그래왔다"면서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2018 인구절벽이 온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경신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이 번창할 리가 없다. 개인이건 나라건 온통 빚더미에 올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를 넘어섰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미국(74%), 일본(68%)을 앞질렀다. 국가채무는 내년 1196조원으로, GDP 대비 51%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채무 비율 자체는 아직 양호한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빚에 찌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요즘 일본 경제를 보면 부럽다. 올 2분기(4~6월) 실질 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2% 증가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무려 4.8%에 이른다. 일본은 4%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데 거꾸로 한국은 1%대 저성장의 늪으로 달려가는 꼴이다. 올해 성장률 역전이 일어나면 25년만에 처음이다. 일본 경제를 두고 잃어버린 20년이니 30년이니 하던 말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대신 한국이 바통을 이어받을 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구조개혁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법으로 노동, 연금, 교육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문제는 ‘구조’를 바꾸는 개혁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총재는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타협이 어려워서 진척이 안 된다"고 탄식했다. 구체적으로 "저출산, 노인 문제를 생각하면 이민, 해외노동자 활용,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데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구조개혁은 뼈를 깎는 작업이다. 그러나 기득권 카르텔은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재임 1998~2005년)는 하르츠개혁으로 노동시스템을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정권을 잃었다. 만약 구조개혁을 접어둔 채 돈 풀고 금리 내리는 재정·통화 정책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이 총재는 말했다. 과연 우리는 구조개혁을 성사시킬 능력이 있는가? 대답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지금 여야는 상대를 헐뜯느라 여념이 없다. 의회를 지배하는 야당의 대표는 단식 농성 중이고, 대통령 스케줄엔 야당 대표를 만날 일정이 없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정쟁은 더 격화될 게 틀림없다. 타협의 정치는 장기 실종 상태다. 성장률이 1%의 늪에 빠졌지만 아무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걸까? 그러다 큰코다친다. 남미 여러나라에서 보듯 선진국 문턱에서 미끄러진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장기 저성장은 현실이다. 위기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는데도 위기인 줄 모른다. 이게 더 큰 위기다. 코뿔소한테 엉덩이를 들이받힌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려나.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기자의 눈] 증권사의 잘파세대 공략법…균형은 잃지 말아야

한때 모든 기업들이 ‘MZ’를 외쳤다. ‘MZ패션’, ‘MZ간식’, ‘MZ노조’ 등 마케팅 곳곳에 알파벳 M과 Z를 갖다 붙였던 때가 있었다. 과도한 MZ 마케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 기업들의 MZ 바라기 행보는 조금 주춤하는가 했더니 이번엔 더한 놈(?)이 나타났다. 잘파세대의 등장이다. 잘파세대는 Z세대와 알파(α)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로 1996년생부터 2023년생을 말한다. 갓 태어난 0살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27살까지를 묶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잘파세대에 해당한다. UN에 따르면 오는 2025년이면 알파세대는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해 베이비붐세대를 뛰어넘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대가 될 전망이다. 이들은 경제활동인구에 속하지 않는 10대임에도 소비활동과 금융 거래가 꽤 활발하다. 그 비중도 꽤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잘파세대는 인생 학업과 시험, 교우관계에 대한 관심만큼 앱테크나 용돈 마련 등 금융 이슈에도 유사한 수준의 관심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설문조사 결과 이들이 최근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금융 분야로 ‘앱테크’가 55%, ‘주식투자’가 19.3%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은 물론 증권사들까지도 잘파세대 공략에 나섰다. 앱테크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앱에 출석 이벤트를 만들어서 보상 포인트를 지급한다거나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자체 제작 웹드라마를 게재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학교 콘셉트로 꾸민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통해 잘파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주식 투자자들은 본인이 이용해온 증권사 모바일 앱(MTS)을 갈아타기보다는 하나의 증권사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충성고객이 많기 때문에 신규 유입을 늘려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기존 투자자보단 미래 고객에 해당하는 잘파세대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한 셈이다. 하지만 너무 잘파세대로만 관심이 집중돼 기존 고객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뒷전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유입률만 늘리려다보니 MTS·HTS가 먹통되는 등 오류 피해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증권사 전산 오류는 지난 2020년에는 49건, 2021년 60건, 지난해 68건 발생해 매년 증가 추세다. 올해는 7월까지 집계된 오류만 55건에 달했다. 증권사들이 기존 방식에 갇히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young)해지는 건 바람직하다. 다만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주길 바란다.증명사진

산은 이전 서둘 일 아니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서울에 본점을 둔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동시에 반발도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대선 공약이고, 인수위가 정리한 지역공약에도 들어 있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부산 이전에 힘을 쏟고 있다. 당사자인 산은은 물론 주무부서인 금융위원회, 균형발전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반면 산은 노조는 이전에 결사 반대다.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오세훈 서울시장도 반대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도 부정적이다. 결정적으로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미온적이다. 부산으로 옮기려면 산은법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 도리가 없다. 1954년에 설립된 산은은 지난 70년 가까이 국가 산업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부산 이전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살펴보자.◇ 윤 대통령 수차례 약속 윤 대통령은 부산 이전을 여러번 약속했다. 작년 1월 당시 윤 후보는 "외자를 도입해 재벌 그룹이 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던 산업은행의 기능도 많이 변화했다"며 산은을 서울 여의도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당시 윤 당선인은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제가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시킨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5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부산 지역 공약을 정리하면서 산은 이전을 못박았다. 이어 작년 8월 경남 창원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산업은행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으로 이전해 해양도시화, 물류도시화, 첨단 과학산업 도시화로의 길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강석훈 산은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이 정한 것을 제가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직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푸시하는 정부·여당이전 프로그램은 올들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했다고 고시했다. 이로써 산은은 수도권에 잔류하는 공공기관에서 빠졌다.7월엔 산은이 모든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산은은 3월부터 이전 관련 외부 컨설팅을 진행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9월 7일 "사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올해 초 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고, 용역결과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부산 이전을 무조건 A안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소개했다. 부산에서 열린 ‘부산 금융경쟁력 제고 대책 마련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다. 이어 김 대표는 "모든 준비가 갖춰졌고 법 하나 고치면 되는데 그걸 안 고쳐준다. 참 기막힌 일"이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법 하나’는 산은법 4조①항을 말한다.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내용이다. ◇ 반대 목소리도 커졌다산은 노조는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용역까지 조작했다"며 "부산 이전 컨설팅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사측이 지난 2∼7월 삼일PwC에 의뢰해 진행한 컨설팅 용역 과정에서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지난 7월 노조는 한국재무학회에 자체 의뢰한 컨설팅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산은 기관으로는 7조원, 국가 경제적으론 15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노조는 산은 고객과 협업기관의 83.8%가 부산 이전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했다.민주당의 입장은 지난 3월 이수진 원내 대변인이 내놓은 서면 브리핑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원대대변인은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대통령실 이전을 밀어붙이던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은 본점을 이전해야 한다면 그 권한은 국회에 있다"며 "대통령 한마디에 국회 동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이전 추진하겠다니 깡패가 따로 없다"고 주장했다.오세훈 서울시장의 견해도 주목할 만하다. 오 시장은 작년 4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계 어느 나라가 한 나라에 두 개의 금융도시 정책을 구사하는 나라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몇몇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국가적인 견지에서 자해적인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오 시장은 "국토 균형발전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손해 보는 ‘제로섬 게임’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은 지난해 5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강한 어조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산은은 국가 정책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기능이 저해되면 큰 일"이라며 "논리적 토론 없이 주장만 되풀이되고 껍데기만 얘기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두 개의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속내 복잡한 민주당외형상 민주당은 이전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좀 복잡하다. 부·울·경 출신의원들은 총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일 박재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은 산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산은법 1조(목적)에 지역균형개발을 추가하고, 4조(본점)의 ‘서울특별시’를 ‘부산 금융중심지’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내년 봄 총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안에서도 산은 이전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 말이 타당한가산은 본사 이전엔 두가지 논리가 있다. 먼저 국토 균형발전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부산), 국민연금공단(전주), 한국전력(나주), 한국관광공사(원주) 등 많은 공공기관이 서울을 떠나 전국 각지에 둥지를 틀었다. 올해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도권 인구가 시나브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게 그 증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정책은 번짓수를 잘못 짚은 듯하다. ‘부산 금융중심지 육성’은 이전에 찬성하는 또다른 논리다. 2009년 정부는 서울 여의도와 함께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문현동에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들어섰고 거래소,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연달아 본사를 옮겼다. 부산을 파생상품, 선박금융 등에 특화된 금융중심지로 키운다는 전략도 마련됐다. 그러나 부산에 거점을 둔 외국계 금융사가 사실상 전무한 데서 보듯 부산 금융중심지 사업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 ‘정책금융공사’의 교훈산은 이전의 최대 변수는 내년 4·10 총선이다. 이미 국민의힘은 이전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중이다. 민주당도 부산 민심을 고려하면 완강하게 반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지난 2021년 초 여야는 부산시장 보궐선거(4·7)를 앞두고 앞다퉈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경쟁하듯 가덕도를 찾았다. 산은 이전을 두고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여야 모두 6년만에 간판을 내린 한국정책금융공사 사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책금융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가을에 출범했다. 산은에서 정책금융만을 떼어냈다. 정책금융 부담을 던 산은을 국가대표급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정책금융공사를 산은에 재흡수시켰다. 보수 정부가 편 정책을 다른 보수 정부가 뒤집은 셈이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책금융공사 혼선에 대해 "결론적으로 국세가 많이 낭비됐고, 정책 실패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 총재는 "개인적으로 배운 게 있다면 산은 민영화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구조 개혁은 여러 정부에 걸쳐서 해야 한다"면서 "당시에는 맞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추진했는데 큰 피해를 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여러 정부에 걸쳐서 해야 한다’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기능 분리 또는 본점 이전은 산은의 본질을 건드린다. 그런 만큼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성급하게 다루면 정권따라 이러저리 흔들린 정책금융공사 사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 산은 강석훈 회장은 지난 4월 부산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부산경제포럼에서 "갈등 속에서 이전이 아니라 축복받는 이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축복 받는 이전’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청회를 열 번, 스무 번 하더라도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정책금융공사 실책을 반복하지 않는다. 최악은 총선을 앞두고 산은이 정략적 딜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일만은 없길 바란다. <경제칼럼니스트>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6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은행 부산이전 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E칼럼] 발등의 불

에너지문제 학습의 두 가지 논리적 기초는 석유를 포함한 천연자원의 고갈성(枯渴性)이론과 기후변화(Climate Change)이론이다. 에너지 시장의 동태적 변화와 위기 도래 가능성을 점검하는 고갈성 이론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복지 창출 주역이라는 논리적 기반을 따른다. 그러나 화석연료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의 주역이다. 이제는 기후변화 차원에서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 이론은 1992년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명제로 열린 UN 리우정상회담이 시발점이다. 악화하는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지구 동반자관계 형성을 국제규범화했다.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1947년 브라질에서 열린 서반구공동방위회의에서 채택하려다 미국의 소극적 대응으로 무산됐다. 이에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유럽은 독자적 전략구성 필요성에 공감했고 EC(유럽공동체·현 EU의 전신) 구성에 이르렀다. 이같은 유럽의 적극적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대기 온도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2.5도 범위에서 유지한다는 2015년 파리협정체결의 바탕이 됐다. 우리는 기후변화대응 논리가 2차 대전 이후 미국 단극(單極) 체재를 변화시켜 현재의 다원적 세계질서 형성의 주요 요인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후변화보다 기상(氣象)변화가 중단기 관점에서는 많은 주목 받는다. 당연히 주요 학습 논리가 된다. 이는 최근 이상기후로 인해 100년 만의 폭우,태풍 등 극한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주에 초강력 허리케인이 강타하고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 지역에는 기습적인 극한 폭우가 내렸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 및 하와이 등에서의 대형 산불, 유럽의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의 극한 폭우 등이 발생했다. 극한 호우와 태풍,폭염 현상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사우디, 남부 아프리카 지구촌 전체에 걸쳐 확산일로다. 이런 비정상적 극한 기상은 주로 열대 태평양 지역에서 유난히 심각하게 발생한 ‘엘니뇨(El Ninos)현상 때문이란다. 남아메리카 페루 및 에콰도르의 서부 열대 해상에서 바닷물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이 경우 대기 상층부 온도를 높이고, 대류현상을 증대시켜 적도 바다 기온을 비정상적으로 높인다. 지구 기상시스템의 원격 소통이 과다하여 지구계 에너지 균형을 깨는 셈이다. 기온이 평년보다 1∼ 2도만 높아도 광범위한 기상이변 발생한다. 이 결과로 남미 아마존 지역과 호주, 인도와 아프리카 남동부 지역은 고온 건조 현상이 많이 발생하며 동부 아시아, 아프리카 북동부, 남미 남동부와 북미 남부지역은 습한 기후가 지속된다. 그 후폭풍은 가혹하다. 2018∼2019년에는 호주에서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고, 2014∼2016년엔 강력한 엘니뇨 발생으로 6000만명 세계인구가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호주 대산호초도 1/3이 소멸했다. 유럽연합(EU)기후변화 통계(C3S)에 의하면 최근 몇 달은 1940년 공식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 세계 해수면 온도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지금의 기온추세는 파리협정의 준수 목표인 산업화 이전 평균보다 약 1.5도를 넘는다. 이에 따라 파리협정에 따른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점쳐진다. 앞의 기상 위기들이 집적돼 부정적 파급효과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기상 위기들이 결합· 집적돼 더욱 강력한 기후 위기로 영속화된다. 엘니뇨와 같은 단기·간헐적인 기상 위기의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엘니뇨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올해 초에 발표된 스탠포드대학 연구에서는 1982∼1983년과 1997∼1998년 중의 엘니뇨는 각각 4조1000억달러와 5조7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1982∼1983년 경기 하락은 미국 연준의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졌고, 1997∼1998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이에 학계는 개발 도상국들에 대한 엘니뇨의 가혹한 폐해에 주목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 중위도(中緯度)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매우 크다는 데 견해가 일치한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결국 고갈성자원과 기후변화,기상 특성을 종합할 때 전력 중심 에너지 체계가 급속히 진전되는 지금 세계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 전력은 급속히 증가하는 데 비해 전력망 안정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원자력, 석탄, 가스 발전과 같은 기저 발전이 감소하며 새롭게 수송부문의 전력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큼 미래 전력 계통 운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향후 증가할 비용 요소를 식별하는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 신규 송배전망, 안정수급 유지 및 에너지 품질 등의 관리비용 등의 최적화를 위한 단중기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연료가격 급등에 직면한 한국전력이 정부 규제의 영향으로 200조 원 넘는 부채가 누적된 것은 전략개선 필요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이런 차원에서 장기 차원 기후변화 전략에 치중해온 기존 정책 기조를 탈피해 단중기 기상변화 대응책 강구가 시급하다. 지금 책임질 일 없는 이념적 기후변화정책보다 화급한 기상악화에 대응하는 민생복지 중심 에너지·환경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영혼 없는 산업안전 정책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기업의 안전문화가 조성되려면 규제기관부터 안전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안전을 제1로 여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래 전부터 강조해 온 말이다. 기업의 안전수준을 높이려면 정부의 인프라 조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인프라 현실은 어떨까. 정부부터 안전에 대한 철학 부재 속에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이는 조악하고 무분별한 안전규제의 반복 재생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효성 없는 땜질식의 규제가 넘쳐나는 이유다. 안전 관련 법제가 거의 누더기 수준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지경이 되었다. 정부에 이론적 수원지 역할을 해야 할 안전학계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사회의 안전부문 중 학계의 존재감이 가장 적다. 무늬만 안전학자인 자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안전전문가 행세를 하며 알맹이 없거나 허황된 자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자문내용이 어떠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훤하다. 안전인프라 조성에 되레 걸림돌이라는 비난을 들을 지경이다. 안전 관련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인 안전자격증·면허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안전자격증·면허가 실력 향상을 위한 기제로 작용하지 못하고 겉멋 부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기본서를 학습하지 않고 기출문제 중심의 단편적 지식만 공부해도 너끈히 자격·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취득한 자격·면허는 스스로 안전전문가가 되었다고 착각하게 하거나 외부에 이들을 안전전문가로 보이게 하는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 시험과목을 보면 점입가경이다. 안전역량과 무관하거나 그 향상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산업안전지도사의 경우 국제적으로 메가트렌드에 해당하는 과목(안전보건경영시스템)조차 포함돼 있지 않고 안전관리에 필수적인 안전심리 과목도 빠져 있다. 그 대신 안전과 별 무관한 경영학, 산업심리와 같은 과목이 들어 있어 수험생에게 큰 혼란과 시간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문제는 자격·면허를 관장하는 당국은 왜곡된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안전인력 부족사태가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안전인력을 벽돌 찍어내듯이 초단기간 속성교육으로 배출하고 있다. 시장에 안전은 별거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뜩이나 미흡한 안전인력의 전문성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정부가 앞장서는 꼴이다. 안전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건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후과를 낳을 수 있다. 안전의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들을 교수진으로 구색만 갖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셈이다. 학생들과 사회를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일은 고용부가 한국기술교육대학교를 통해 앞장서고 있다. 안전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정부가 안전인프라를 훼손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우리나라에서 안전 일류기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기업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의 엉성한 인프라와 시스템 부재 탓이 크다. 이는 고비용 저성과의 산업안전대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정부는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설익은 산업안전 대책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기조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안전 일류기업이 나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정부에 거창한 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 안전을 망가뜨리는 겉멋만 부리는 정책에서 하루빨리 탈피할 것을 바랄 뿐이다. 보여주기식 대책을 양산하고 이행과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먹튀 행정’이야말로 산업안전을 수렁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전문가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산업안전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기를 촉구한다.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기자의 눈] 日 뻗어가는 韓 기업 ‘성공신화’ 새로 쓰길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잃어버린’ 몇십년을 보내고 드디어 경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사실상 벗어났다. 주가가 치솟고 기업들은 활력을 되찾고 있다. 글로벌 분업화 국면에서도 정치·경제적으로 탁월한 선택을 계속하고 있다. 엔저의 착시효과라는 평가도 있다. 대신 우리나라와 수출 시장에서 경합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모습이다. 반대로 소비시장으로서 매력이 커 보인다. 일본 인구는 올해 기준 약 1억2300만명이다. 우리 기업들은 일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에서 미디어 행사를 열고 ‘갤럭시 Z 플립5’와 ‘갤럭시 Z 폴드5’를 출시했다. 현대차는 작년 2월 일본 시장 재진출을 선언하고 아이오닉 5 등 전기차를 판매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달 초 메이크업 브랜드 ‘헤라’를 현지에서 공식 론칭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앞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표적인 ‘아이폰 텃밭’으로 삼성 스마트폰은 존재감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토요타 등 현지 브랜드의 기세에 눌려 14년전 ‘시장 철수’ 카드를 꺼내야 했다. 아모레퍼시픽도 2006년 일본으로 향했지만 안착하지 못하고 2014년 매장 문을 모두 닫았다. 달라진 점은 한국 기업들이 ‘최첨단’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지닌 폴더블폰, 전기차 등이 일본 공략의 선봉장이다. 현지 업체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확실히 뛰어난 만큼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전장으로 향하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과거에 안주할 수 없는 게 우리 기업들이다. 경제성장 기지개를 이제 막 다시 켜고 있는 일본에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해온 게 한국 경제다. 그 중심에는 기업들의 혁신과 도전정신이 있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일본의 수출품 규제 등을 겪으며 체력도 강해졌다. 일본으로 뻗어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눈부신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 yes@ekn.kr산업부 여헌우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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