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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6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은행 부산이전 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서울에 본점을 둔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동시에 반발도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대선 공약이고, 인수위가 정리한 지역공약에도 들어 있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부산 이전에 힘을 쏟고 있다. 당사자인 산은은 물론 주무부서인 금융위원회, 균형발전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반면 산은 노조는 이전에 결사 반대다.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오세훈 서울시장도 반대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도 부정적이다. 결정적으로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미온적이다. 부산으로 옮기려면 산은법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 도리가 없다.
1954년에 설립된 산은은 지난 70년 가까이 국가 산업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부산 이전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살펴보자.
◇ 윤 대통령 수차례 약속
윤 대통령은 부산 이전을 여러번 약속했다. 작년 1월 당시 윤 후보는 "외자를 도입해 재벌 그룹이 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던 산업은행의 기능도 많이 변화했다"며 산은을 서울 여의도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당시 윤 당선인은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제가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시킨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5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부산 지역 공약을 정리하면서 산은 이전을 못박았다.
이어 작년 8월 경남 창원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산업은행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으로 이전해 해양도시화, 물류도시화, 첨단 과학산업 도시화로의 길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강석훈 산은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이 정한 것을 제가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직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 푸시하는 정부·여당
이전 프로그램은 올들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했다고 고시했다. 이로써 산은은 수도권에 잔류하는 공공기관에서 빠졌다.
7월엔 산은이 모든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산은은 3월부터 이전 관련 외부 컨설팅을 진행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9월 7일 "사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올해 초 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고, 용역결과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부산 이전을 무조건 A안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소개했다. 부산에서 열린 ‘부산 금융경쟁력 제고 대책 마련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다.
이어 김 대표는 "모든 준비가 갖춰졌고 법 하나 고치면 되는데 그걸 안 고쳐준다. 참 기막힌 일"이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법 하나’는 산은법 4조①항을 말한다.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내용이다.
◇ 반대 목소리도 커졌다
산은 노조는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용역까지 조작했다"며 "부산 이전 컨설팅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사측이 지난 2∼7월 삼일PwC에 의뢰해 진행한 컨설팅 용역 과정에서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노조는 한국재무학회에 자체 의뢰한 컨설팅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산은 기관으로는 7조원, 국가 경제적으론 15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노조는 산은 고객과 협업기관의 83.8%가 부산 이전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민주당의 입장은 지난 3월 이수진 원내 대변인이 내놓은 서면 브리핑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원대대변인은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대통령실 이전을 밀어붙이던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은 본점을 이전해야 한다면 그 권한은 국회에 있다"며 "대통령 한마디에 국회 동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이전 추진하겠다니 깡패가 따로 없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견해도 주목할 만하다. 오 시장은 작년 4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계 어느 나라가 한 나라에 두 개의 금융도시 정책을 구사하는 나라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몇몇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국가적인 견지에서 자해적인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오 시장은 "국토 균형발전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손해 보는 ‘제로섬 게임’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은 지난해 5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강한 어조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산은은 국가 정책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기능이 저해되면 큰 일"이라며 "논리적 토론 없이 주장만 되풀이되고 껍데기만 얘기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두 개의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 속내 복잡한 민주당
외형상 민주당은 이전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좀 복잡하다. 부·울·경 출신의원들은 총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일 박재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은 산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산은법 1조(목적)에 지역균형개발을 추가하고, 4조(본점)의 ‘서울특별시’를 ‘부산 금융중심지’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내년 봄 총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안에서도 산은 이전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누구 말이 타당한가
산은 본사 이전엔 두가지 논리가 있다. 먼저 국토 균형발전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부산), 국민연금공단(전주), 한국전력(나주), 한국관광공사(원주) 등 많은 공공기관이 서울을 떠나 전국 각지에 둥지를 틀었다. 올해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도권 인구가 시나브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게 그 증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정책은 번짓수를 잘못 짚은 듯하다.
‘부산 금융중심지 육성’은 이전에 찬성하는 또다른 논리다. 2009년 정부는 서울 여의도와 함께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문현동에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들어섰고 거래소,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연달아 본사를 옮겼다. 부산을 파생상품, 선박금융 등에 특화된 금융중심지로 키운다는 전략도 마련됐다.
그러나 부산에 거점을 둔 외국계 금융사가 사실상 전무한 데서 보듯 부산 금융중심지 사업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 ‘정책금융공사’의 교훈
산은 이전의 최대 변수는 내년 4·10 총선이다. 이미 국민의힘은 이전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중이다. 민주당도 부산 민심을 고려하면 완강하게 반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지난 2021년 초 여야는 부산시장 보궐선거(4·7)를 앞두고 앞다퉈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경쟁하듯 가덕도를 찾았다. 산은 이전을 두고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여야 모두 6년만에 간판을 내린 한국정책금융공사 사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책금융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가을에 출범했다. 산은에서 정책금융만을 떼어냈다. 정책금융 부담을 던 산은을 국가대표급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정책금융공사를 산은에 재흡수시켰다. 보수 정부가 편 정책을 다른 보수 정부가 뒤집은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책금융공사 혼선에 대해 "결론적으로 국세가 많이 낭비됐고, 정책 실패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 총재는 "개인적으로 배운 게 있다면 산은 민영화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구조 개혁은 여러 정부에 걸쳐서 해야 한다"면서 "당시에는 맞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추진했는데 큰 피해를 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여러 정부에 걸쳐서 해야 한다’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기능 분리 또는 본점 이전은 산은의 본질을 건드린다. 그런 만큼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성급하게 다루면 정권따라 이러저리 흔들린 정책금융공사 사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
산은 강석훈 회장은 지난 4월 부산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부산경제포럼에서 "갈등 속에서 이전이 아니라 축복받는 이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축복 받는 이전’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청회를 열 번, 스무 번 하더라도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정책금융공사 실책을 반복하지 않는다. 최악은 총선을 앞두고 산은이 정략적 딜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일만은 없길 바란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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