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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무거운 첫걸음 딛는 임종룡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에는 항상 '합리적', '엘리트 관료'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이력은 말할 것도 없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실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국무총리실 실장,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이른바 공무원이 꿈꾸는 주요 요직은 거의 경험한 셈이다.어떤 자리에 가던 존재감이 확실한 것도 임 내정자가 가진 무기이자 장점이다. 위기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고, 정면돌파를 택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에 기반한 최적의 선택을 한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시절 KB금융을 제치고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것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대표적인 일화다. 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에 1조원을 베팅하며 본입찰 참가기관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면서도 우리투자증권, 생명보험, 저축은행을 묶은 패키지 전체 가격에는 1조700억원을 써내며 고르게 베팅했다. 우리투자증권에 1조2000억원을 제시하고, 다른 계열사에는 마이너스를 써낸 KB금융과는 반대되는 전략을 가동한 것이다. 정부는 당시 우리금융 민영화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계열사를 ‘패키지’로 매각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임 회장은 정부의 이러한 원칙을 정확히 꿰뚫고 현명한 베팅을 했다는 평가다. 금융위원장 재임 중에는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는 임 내정자 특유의 추진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임 내정자는 재임 기간 초대형 투자은행(IB)을 비롯해 자본시장 5대 개혁과제를 힘있게 추진했다. 이 중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초대형 IB에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의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을 통해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경쟁력 있는 금융상품을 공급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랬던 임 내정자가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으로 거론됐을 때, 금융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임 후보자는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현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군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런 임 후보자가 굳이, 5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어수선하고 굴지의 과제들이 산적한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올 이유가 있냐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임 내정자는 이때도 정면돌파를 택했다. 회장직에 도전하겠다고 천명하고, 자신을 관치라고 규정짓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왜 관치냐"고 반문하며 자신이 관치가 아닌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임 내정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보유한 자신만이 우리금융지주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통상 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에 오른 인물들이 향후 혹시라도 낙마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 말을 아끼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임 내정자의 실력과 능력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간의 성공이 앞으로의 성공을 답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임 내정자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큰 과제다. 우리금융을 둘러싼 상황은 10년 전 임 내정자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았을 당시와 비교해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금융권은 현재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치(治)와 씨름 중이며, 우리금융이 거칠게 베팅할 만한 증권사, 보험사 매물도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경영 외적으로는 재임 기간 '관치 인사', '낙하산 인사'라는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조직내 파벌 갈등 봉합, 당국과의 관계 개선 등도 해결해야 한다. 임 내정자는 우리금융 노조와 만나 우리금융의 일원이 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임 내정자가 진정한 '우리금융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 회장과 우리금융 임직원들이 쌓아올린 역사들을 모두 '개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3년 뒤 오늘, 임 내정자가 NH농협금융 회장, 금융위원장을 넘어 누구보다 우리금융 직원들을 사랑했던 회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mediasong@ekn.kr

[기자의 눈] 김병준, 전경련 노력에 찬물 끼얹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위상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한국 재계의 맏형’이라는 타이틀을 되찾고자 쇄신에 고삐를 죄는 가운데 지난 23일 총회에서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출된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유착의 고리를 끊으러 왔다"고 선언한 것. 졸지에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산실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까지 유착이 이어지고 있다는 오해의 소지까지 낳게 됐다.실제로 전경련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와 미르재단 후원금 모금으로 논란을 빚으면서 ‘정경유착’ 낙인과 함께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삼성을 비롯해 LG와 현대차, SK 등 4대 그룹이 탈퇴했으며 600곳이 넘었던 회원사가 400여곳으로 감소하는 등 위상과 신뢰가 급속도로 추락했다. 이후 전경련은 최근까지 싱크탱크 중심의 조직 개혁 방안 등을 내놓는 등 신뢰 회복 및 과거 입지를 되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김 직무대행이 던진 말 한마디에 전경련 회원사들과 재계 및 기업들은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 부합을 떠나 그의 발언으로 ‘전경련 회원사=정경유착 기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한편에선 기업을 마치 정치권과 결탁하는 ‘암적 존재’로 낙인찍었다며 전경련 회장 대행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막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경련 회원사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과거 잘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이를 반성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김 직무대행이) 굳이 오해의 소지가 있게끔 단정적으로 얘기해야 했을까 생각한다"며 "특히 아무 죄가 없는데도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정경유착 기업이라는 누명을 쓰게 됐다"면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이쯤되면 차라리 김 직무대행이 기자간담회 말미에 "전경련의 주인은 여전히 기업들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한 만큼, ‘유착의 고리를 끊겠다’ 보단 "내가 갖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소신으로 기업들이 기틀을 단단히 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각오를 던졌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 직무대행의 임무는 무겁다. 직무대행이라고는 하지만, 6개월간 전경련을 대표하는 자리다. 말 한마디 한마디도 결코 쉽게 나와선 안된다. 김 직무대행이 전경련의 신뢰 회복 기반을 닦기 위해 왔다면,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자세로 말의 무게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김성우 칼럼] IRA에 대응하는 EU의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일 ‘탄소중립시대를 위한 그린 딜 산업계획(A Green Deal Industrial Plan for the Net-Zero Age)’ 안을 담은 20장 분량의 통신문을 발표했다. 총 2500억 유로 규모로 즉각적인 세액공제와 청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 대책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린 딜 산업계획은 EU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탄소중립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며, 제조능력 확장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기존의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 EU 기후변화 대응정책 및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로드맵)과 REPowerEU(에너지 안보 향상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 방안 마련을 목표로 하는 행동계획)를 보완한다. 예측 가능하고 간소화된 규제 환경, 재정 지원 가속화, 기술 향상, 탄력적인 공급망을 위한 개방 무역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핵심은 까다로운 기존의 지원 요건 및 절차를 완화해 탄소중립 분야 지원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1월 이미 법안 제출이 예고된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통해 규제 완화 및 시설 승인을 가속화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제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촉진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중기적으로는 청정기술 개발을 위한 유럽국부펀드(European Sovereignty Fund) 신설 추진과 탄소중립 산업에 핵심인 원자재 공급망 확보 및 다변화를 위한 계획도 담겨있다. 이번에 발표된 계획은 전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는 단계로 앞으로 EU 이사회 및 유럽의회가 세부 논의를 하면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탄소중립산업법안은 3월 중순 발표될 예정이다. 이 계획은 미국내 친 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IRA에 대응하기 위해 EU가 공공 자금 뿐 아니라 민간 자금까지 조성해서 지원하는 계획이지만, 새로운 자금을 투입하기 보다는 기존에 조성된 자금의 지출을 조정해 탄소중립 산업을 지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EU내 회원국 간 보조금 지원 격차로 인한 단일시장 균열 우려와 함께 미국과의 보조금 경쟁은 불필요한 노력으로, 보조금 규제 완화는 단기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 만큼 완전한 합의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EU가 IRA에 이렇게까지 대응하는 이유가 있다. 탄소중립 산업을 미국에 내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 등 친 환경 수송, 해상풍력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그린수소 활성화 등 산업 탈 탄소화를 포괄하는 탄소중립 산업에 집중해 왔지만, IRA로 인해 관련 투자가 EU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이 더 싸지면 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 소비 업종도 따라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IRA가 미국 의회를 통과한 지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그 성과를 살펴 보면, EU의 걱정이 이해도 된다. 6개월간 900억달러에 달하는 친환경 산업 투자가 발표됐는 데 이는 약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 20건에 달하는 친 환경 산업 투자 발표 중에는 지난 10월 BMW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17억달러 규모 전기차 설비 투자가 포함돼 있고 한화큐셀의 25억달러 규모 조지아주 태양광 공장 증설도 들어 있다. 이 달에는 포드가 미시간주에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지멘스가메사도 뉴욕주에 5억달러 규모의 해상풍력 터빈공장 계획을 공개했다. 2030년까지 1조달러 규모의 친환경 투자로 10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전망되고 있다. 반면 EU는 IRA에 버금가는 규모의 펀드를 보유한 데도 지원 받는 절차가 까다롭고 세제도 회원국마다 상이한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IRA와의 체감 혜택 차이가 크다. 그러나 IRA를 통해 경제 탈 탄소화, 러스트벨트 활성화, 해외 공급망 의존 감소를 꾀하는 미국도 막상 이행을 하려니 고민이 많다. 동맹국의 반발, 인력수급 차질, 프로젝트 인·허가 지연 등이 해결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제품의 경우 해외 공급망 의존이 불가피한 현실도 난제다. EU도 주요 산업의 유출을 막기 위해 그린 딜 산업계획을 이행하는 데 따른 EU내 탄소가격제도 활용 및 코로나회복기금 집행 등 기존 정책과의 효과적인 믹스가 고민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탄소중립 산업 지원 정책과 고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의 산업은 블루오션으로 모든 국가가 대변혁의 출발점에 서 있고, 승부는 지원금의 규모나 정책의 정교함 보다는 이행 속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이행 속도에 초점을 맞춰,어느 나라보다 국가 배출량을 넓게 커버하고 있는(73%) 탄소가격제도를 활용해 올바른 가격 시그널을 주고, 그 재원을 탄소중립 산업 경쟁력 제고에 빠르고 쉽게 지원한다면, 탄소중립 이행 속도를 높이면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거대한 IRA나 EU의 웅장한 계획을 보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행의 속도다.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이슈&인사이트] 부작용만 키운 중대재해처벌법

요란한 빈 수레가 따로 없다. 중대재해 감소에 효과가 없는 것을 넘어 산업현장 안전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목적으로 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5년간 산재예방행정 인원과 예산이 2.5배나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 법이 중대재해를 줄이는 쪽이 아니라 늘리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엄벌로 공포감을 조성해 재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단선적이자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안전수준이 올라갈 것 같았으면 북한이나 중국 등은 진작 안전 선진국이 됐어야 한다.중대재해처벌법을 밀어붙인 정치인이나 공무원 중 안전원리와 현장안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다른 건 몰라도 안전에는 아마추어였을 게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법을 만들었나 되묻고 싶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정교한 방법론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령 의도가 선하더라도 정반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의도도 선하지 않고 들끓는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부작용이 양산되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중대재해처벌법의 대표적인 부작용 몇 가지만 짚어 보겠다.이 법 제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안전관계법 위반에 따른 처벌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감각해졌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데 집중하느라 많은 비용을 들이지만 실질적인 안전관리는 오히려 후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게다가 사고사망에만 집중하다 보니 직업성 질환과 일반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최근 직업성 질환과 전체 산업재해의 지속적인 증가가 이를 방증한다.안전부서의 외형 확대로 현업부서의 안전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이 등한시되고 품질·환경업무와의 분절화가 야기되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 안전전담조직을 강제하다 보니 현업부서의 안전책임은 되레 약화되고 다른 업무와의 연계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안전관리 비효율과 기능 중복이 초래될 수 밖에 없다.이 법 지지자들에게 여러 의무주체가 착종되는 상황에서 누가 안전조치를 해야 할지에 대해 물어 봤다. 답변을 못하거나 사람마다 답변이 제각각이었다. 같은 질문을 고용노동부에도 했지만 구렁이 담 넘는 듯한 답변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재해가 줄지 않는 이유다.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없다 보니 실효적인 안전관리는 온데간데 없고 외부기관의 형식적 컨설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문제는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이 형사처벌 회피에 주된 관심이 있을 뿐이라면 컨설팅이 재해예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엄청난 자원이 허투루 사용되고 있다. 그 막대한 비용을 현장의 재해예방에 사용한다면 요긴하게 쓰일 텐 데 말이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법이 처벌수준은 높고 의무내용은 불명확하다 보니 수사기관의 권한만 하늘을 찌를 듯 커졌다. 가뜩이나 권한이 많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정치권은 말로는 수사기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이들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월 고용부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꾸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TF에 안전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고 주로 형법 전문가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안전을 도외시한 처사이다. 안전기준은 손대지 않고 벌칙만 조정하겠다는 속셈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고용부 스스로 이 법이 처벌이 목적이라는 걸 자인한 셈이다. ‘올바른 개정안이 나오긴 틀렸고 개악안이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이 법을 신주 받들 듯 하는 이들은 현실에서 초래되고 있는 많은 부작용에 대해 눈을 감고 애써 부정하려 한다. 이들의 세계에는 반성과 성찰이 없는 것 같다. 한 국가의 법을 과학과 이성이 아닌 감성과 분노에 편승하여 제정한다는 건 무책임의 극치이다. 21세기 법치국가에서 이런 허접한 법을 두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의 진정성 있는 책임감을 기대한다. 현장 노동자들도 거창하고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놓길 바라고 있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E칼럼] 환경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올해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환경부 장관은 20조원 규모의 환경산업 해외수출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지역별 맞춤형 수출전략을 수립하고, 그간 내수시장에 머물러 있는 환경산업을 해외로 진출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환경부 정책방향에 대해 환경부 본연의 기능과 정책 우선순위 결정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산업은 일반적으로 환경보전 및 관리를 위한 시설과 기기 등을 설계하고 제작·설치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정의된다. 전통적인 환경산업은 폐기물 관리, 대기오염 저감 그리고 수질 개선 등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득수준 증가로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깨끗한 환경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환경산업의 범주와 규모가 커지고 있다. 본연의 환경오염 개선 외에도 자원 절약 그리고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에도 기여하는 등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는 추세다. 환경산업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환경산업 매출액은 2004년 약 21조원에서 2020년 약 102조 원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GDP 대비 환경산업 매출 비중도 2004년 2.4%에서 2020년 5.2%로 높아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환경산업의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다. 환경산업 관련 사업체 중 300인 이상 종사자를 가지고 있는 사업체 비율은 2%에 불과하다. 반면 52%가 4인 이하 영세사업장이다. 매출액 기준으로도 100억원 이상인 사업체 비중은 10곳 중 한 곳에 불과한 데 비해 10억원 미만의 매출 규모를 갖고 있는 사업체가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특히 환경산업 분야 중소기업의 해외 수출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환경산업 기술 수준 또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환경산업과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산업은 전통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산업 영역을 비롯하여 수송부문 그리고 인프라 등 건설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산업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은 관련 시장이 인위적으로 창출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정부의 자동차 배출가스에 대한 규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혹은 친환경차 보조 등은 수송부문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국제 이슈가 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세 도입은 국제무역의 판도를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환경규제와 환경정책은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첫 단추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환경산업 정책은 환경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 15년 동안 규모면에서 괄목 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환경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환경산업 선진국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미래의 환경산업은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 기반의 4차 환경산업으로 변모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환경부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산업통상자원부, 과기정통부, 국토교통부 등 범정부차원의 전략과 협력이 절실하다. 결국 환경부는 선제적인 정책과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새로운 환경산업과 시장의 문을 여는데 집중하고, 그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환경부를 비롯하여 산업통상자원부 등 범부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제는 부처이기주의를 벗어나서 환경산업을 국가적 이젠다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모쪼록 2023년을 기점으로 환경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길 기대한다.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기자의 눈]

연초부터 난방비 폭탄 논란이 뜨겁다. 여야는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며 비난하는 동시에 재정투입 방안을 쏟아냈다. 정부도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에너지 시장 대신 당분간 요금을 동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요금 정상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재정 투입은 본인들이 세비를 깎아서 내는 것도 아닌데 ‘ㅇㅇ당이 챙기겠습니다’라는 낯뜨거운 생색내기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려있다. 이쯤 되면 모두가 범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전력공사도 일부러 정쟁의 뒤에 숨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 원가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느니 여야가 서로의 탓을 하면서 정쟁화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한전은 전기요금 산정기준에 따라 총괄원가를 산정하고, 요금조정이 필요한 경우 전기요금 개정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한 뒤 산업통상자원부에 인가를 신청한다. 이후 산업부 장관은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기획재정부장관과 전기요금 조정 방안을 협의한다. 이후 전기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결정한 요금조정인가 결과를 한전에 통보한다. 한전은 산업부로부터 인가받은 전기요금 내역을 공고하고 시행한다.한전의 전기요금 산정방식은 전기공급에 소요된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전 홈페이지를 보면 총괄원가는 ‘성실하고 능률적인 경영 하에서 전력의 공급에 소요되는 적정원가에 적정투자보수를 가산한 금액’이라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한전이나 정부, 국회 모두 이 내역을 국민에게 공개하면서 에너지 위기 상황의 심각성, 전기요금의 현황, 인상 필요성 등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전은 아직 2022년 전기요금 원가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과거 자료에도 원가 정보 수치와 산정 방식에 대한 설명만 나와 있을 뿐 왜 그런 수치가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여야는 서로를, 한전은 국제연료비 상승을 탓하고, 정부는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기 바쁘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5년마다 바뀌는 정부가 최대 주주인데다 사장의 임기도 3년에 불과한 공기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제 봄이 다가오니 그저 정쟁으로 상대를 공격하다가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속에서 폭염이나 한파가 오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의존도는 언제든 치솟을 수 있다. 한전과 발전공기업 사장단 임기와 총선이 1년 남짓 남았다. 다음 겨울에는 달라져 있길 기대해도 될까.jjs@ekn.kr

[기자의 눈] 은행 독과점 비판, 놓쳐서는 안되는 것

은행의 이자장사 비판이 완전경쟁 체제 재편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금융당국에 더해 대통령까지 나서 은행의 영업행위를 ‘약탈적’이라고 규정하고 은행에 대한 집중포화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권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대출 금리가 덩달아 올랐고 이에 따라 이자이익이 크게 늘었다. 금융당국의 수신 경쟁 자제령 등에 예·적금 금리 인상도 중단되며 예대마진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갔지만 이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돼 버렸다. 어느 때보다 거센 파상공세에 은행권은 취약층·중소기업 지원, 사회적 역할 확대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지만 이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독과점.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은행을 정의하는 단어다. 은행들의 독과점에 따라 이자장사가 횡행하고 이를 제재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플레이어들을 시장에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경쟁을 촉진하면 은행의 독과점을 막을 수 있고 은행의 이자장사를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완전경쟁 체제를 만드는 것이 독과점 해소, 이자장사 완화의 해답이 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앞서 혁신금융 촉진 등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했으나 독과점은 여전하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에서 소매금융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바라는 시장 재편을 위해서는 시중은행들에 버금가는 대형 은행의 출범이 필요하지만 은행의 새 출범과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논의되는 스몰 라이선스, 새로운 인터넷은행 등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미 기존 은행들에 대한 믿음이 강한 고객들, 기존 은행을 안전하다고 여기는 충성 고객들이 쉽게 움직일 지도 미지수다. 국내 은행들은 이자이익이 가장 핵심 수익원이다. 정부가 과도한 이자이익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비이자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은행권의 규제를 풀고, 투자은행(IB)이 활발한 외국 사례를 참고하는 등 은행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방안도 논의돼야 한다. 코로나19, 경기 침체의 어려운 시기를 겪는 동안 은행들은 과도한 이익을 취했다는 점은 공분을 살 만 하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은행에게만 돌리면 안된다. 은행산업의 재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만큼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길 바란다. dsk@ekn.kr

[EE칼럼] 난방비 논란 끝내기

요즈음 우리 에너지부문은 온통 ‘난방비 논란’에 파묻혀 있다. 통계청 발표로 지난 1월 우리나라 가정에서 지출하는 전기·가스 등 연료비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32%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24년여 만에 가장 큰 폭 상승이다. 더욱이 이 달에도 전기·가스 요금인상이 예고돼 더 큰 ‘연료비 폭탄‘이 걱정된다. 이제 난방비 논란은 민생경제의 주요과제가 되었다. 이에 해결방안을 놓고 백가쟁명(百家爭名)식 처방이 제시되고 있다. 또 다른 인기영합 정치공방이다. 소비자에 대한 보조 확대의견이 가장 많다. 심지어 전체 인구의 60% 쯤 되는 중산층 모두에게 추경을 통해 보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행정부의 강한 반발에 없던 일로 된 것 같다. 이미 완전 개방된 우리 시장개방 확대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지금의 난방비 파동을 몇 년 전에 예견하였다는 자기자랑 같은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몇 차례 에너지파동 극복과정에서 국제 에너지(특히 가스)가격하락과 국내 에너지절약에 의해서만 난방비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자칭 정책전문가들의 현학적(衒學的) ‘이름 알리기’ 경쟁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여기서 우리가 사용하는 LNG(액화천연가스) 시장여건을 살펴보자. 세계 LNG시장은 크게 유럽 현물(Spot)시장, Henry Hub 가격 아래의 미국 내부 LNG 시장, 그리고 1년 이상의 장기도입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한국 LNG시장으로 삼분되어 있다. 열량 기준 가격(달러/백만 BTU)수준은 유럽 현물시장이 가장 높고 미국 내부 자급자족 시장이 가장 낮다. 유럽의 LNG 가격 수준이 미국에 비해 5배 쯤 높다. 이는 LNG 저장시설이 완공되지 않아 현물시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년 중 여름(7∼9월)에 가스가격이 가장 높다. 겨울철에 비해서는 대략 2배 쯤 높다. 이는 여름철 냉방수요 충족을 위한 가스발전 증대와 동계수요 대비를 위한 비축량 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사실 LNG를 포함한 세계천연가스시장은 여전히 수급불안 상황에 빠져 있다. 실물경기 호조와 중국의 시장개방 등으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데 비해 공급확대에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OECD)에 따르면 2021년 세계 가스 생산량은 2019년 대비 겨우 1.7% 증가에 그쳤다. 이에 반해 수요는 최소 3%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러시아 가스공급이 제약이 있는 경우 유럽연합(EU)은 300억㎥의 가스부족이 예상된다. 이에 EU는 비상대응전략(REPowerEU)을 시행했다. 에너지절약 및 신재생 보급 확대. LNG저장설비 확충과 주택단열 등에 3000억 유로를 투자했다. 이에 따라 올해 겨울에도 유럽의 가스부족은 없다는 전망이 커진다. 그러나 LNG시장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EU 사례를 답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전력과 가스수요 급증세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최근 1년 정도 ‘연료비 폭탄’에 움츠려온 잠재수요가 큰 폭의 ‘보복소비’로 변모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비싼 현물시장에서라도 화급하게 물량 학보 할 수밖에 없다. 뒤 이을 가격파동을 걱정할 겨를이 없다. 민생 필수재인 에너지공급을 중단하는 일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스나 전력 등 에너지에 대한 공공재(公共財) 안정화 차원의 접근이 요구된다. 유럽보다 더욱 강력한 비상대응책이 불가피한하다. 소비자 지원 재원을 공급확충으로 돌리는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횡재세(Winfall Tax)까지는 아니지만 공급기업의 일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소비자들에게는 ‘대가 없는’ 공익차원 협조를 당부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나 관련 학계가 과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ALPS 처리수의 해양방류 진실공방

ALPS 처리수의 해양방류에 대한 논란이 수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원자력 과학자들은 "방류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중에는 다른 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이 과학적 능력이 있더라도 후쿠시마에 저장돼 있는 처리수의 정확한 방사능 농도와 배출기준까지 찾아보지 않으면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개중에는 아예 과학적 합리성 없이 강한 주장만 펼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주장이 진실일까? 진실은 과학적 진실이 있고 사회적 진실이 따로 있는 듯하다. 어떤 회사의 실체적 가치와 가능성이 있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가치와 가능성이 있다. 전자가 나쁘더라도 후자가 좋으면 주식시장에서 그 회사의 주가는 믿음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올라갈 것이다. 즉 본질과 관계없이 사회적 진실이 통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사실보다 인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ALPS 처리수 방류의 위험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있다. 후쿠시마 ALPS처리수의 방사성물질의 농도는 얼마인가? 현재 방사성물질의 농도가 배출기준보다 높은가 혹은 낮은가? 일본의 배출기준은 우리나라 배출기준과 같은가 혹은 다른가? 이러한 사실 확인이 과학적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반면 언론에서 종종 논의되는 내용은 ‘수산물이 팔리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걱정을 한다’, ‘단체도 반대를 표명했다’, ‘일본이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도 반대한다’ 등과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정답일까?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당시 교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회적 진실은 천동설이었기 때문이다. 교부들이 모두 천동설이 옳다고 생각한 것도 아닐 것이다. 천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회적인 혼란이 예상됐다거나 신학적으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놓은 것이었으리라. 후쿠시마에서 방사성물질을 접한 건물 내 체류수가 발생하는 이유는 건물 주변 지하수의 수위를 건물 내에 체류하는 물의 수위보다 높게 하도록 관리하고 있어,결과적으로 건물 내부에 유입되는 지하수가 폐 연료의 냉각수와 섞이기 때문이다. 건물 주변 지하수 수위를 높게 유지하는 이유는, 마치 음압 병동과 같이, 방사성물질에 접한 물이 지하수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가기보다 지하수가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 물은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물질을 걸러내는 알프스(ALPS)라는 필터를 거쳐 저장된다. 일본의 삼중수소 방류기준은 리터당 6만 베크렐 이하인데 일본은 이를 해수에 희석해 리터당 1500 베크렐 미만으로 방류한다는 것이다.한편 우리나라의 방류기준은 리터당 4만 베크렐로 이 기준에 따라 국내 원전에서도 삼중수소가 방류되고 있다. 참고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수 기준이 리터당 1만 베크렐이고 호주의 음용수 기준이 리터당 6만 베크렐이다. 따라서 일본은 매우 엄중한 기준으로 삼중수소를 방류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제3자 입장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가 참여하는 IAEA 태스크포스가 ALPS처리수 방류가 IAEA의 안전 기준에 맞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기술적 리뷰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아직 ALPS 처리수가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조치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 이해는 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방식으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기자의 눈] 독과점, 주인 없는 기업...금융당국의 비난은 타당하지 않다

연일 금융권이 어수선하다. 작년 말부터 금융지주사 CEO 연임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낸 금융당국이 이제는 그 화살을 은행권과 이사회로 돌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마저 금융지주사를 ‘주인 없는 회사’라고 규정하며 지배구조 선진화를 언급했다. 당국은 금융지주 이사회를 향해 ‘거수기’라고 비판하며 지배구조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각 은행 이사회와 최소 연 1회 면담을 실시하는 등 일명 ‘소통’을 정례화한다고 나섰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이 약탈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은행권이 3년간 10조원 규모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를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3년 후 금송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손에 물 한 모금을 달라는 니즈가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렇듯 금융당국이 금융사를 향해 비난 아닌 비난을 서슴지 않다보니, 은행권의 독과점을 깨고 완전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예고는 오히려 점잖게 들릴 정도다. 당국이 왜 금융지주사를 향해 분노하게 됐는지, 비난에 숨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 길이 없다. 당국은 금융지주사의 모든 행위에 반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신한·KB·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이른바 5대 은행과 4대 금융지주를 옥죄면 그것이 현 정부의 지지율에도 긍정적이라는 ‘오판’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려되는 것은 최근과 같은 신한, KB, 우리, 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길들이기에 대한 근거가 조금도 타당하지 않다는데 있다. 우선 ‘주인 없는 회사’라는 명칭이 그렇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금융지주사의 주인 역시 주주여야 마땅하다. 금융지주사, KT, 포스코와 같은 기업은 엄밀히 말해 오너가 없는 회사, 지배주주가 없는 회사라고 불러야 타당하다. 은행이 독과점 행태를 하고 있다는 당국의 발언도 물론 동의하기 어렵다. 요즘과 같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아직도 금융소비자가 은행의 약탈적 영업행위에 휘둘리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1명당 1곳만 가입할 수 있는 이동통신사와 달리 은행의 경우 금융소비자 1명이 다수의 은행 계좌를 보유할 수 있다. 통신사의 경우 알뜰폰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현재 이용 중인 통신사를 해지해야 하지만, 금융사는 다르다. 금융소비자는 조금만 눈품, 발품을 팔면 자신에게 유리한 혜택을 주는 금융사를 여러 개 이용할 수 있다. 당국이 5대 은행을 ‘독과점 영업’이라고 규정하는 사이 이미 금융소비자들은 시중은행은 물론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다수의 금융사 앱을 이용 중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은행들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비난할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현재의 금융당국 행태는 오너 없는 금융사에 당국이 오너로 군림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금융사를 경영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금융사들이 취약계층을 위해 단기적인 지원책을 내놓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취약계층이 자립심을 갖고 어엿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당장 우리 손에 물 한 모금을 달라는 니즈가 있는 것"이라는 금감원장의 발언 역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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