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이진솔 기자] 세계적인 반도체 겨울에도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표를 거뒀다. 메모리 반도체를 시작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까지 타격이 가시화되는 상황에 장비업체들이 내놓는 올해 전망은 엇갈린다. 다만 차세대 기술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장비에 대한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ASML, 램리서치 등은 지난해 반도체 업황 다운사이클(하락 전환)에도 견조한 실적을 거뒀다. 세계 반도체 장비 기업 중 매출 부문 1위를 달리는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지난해 회계연도 4분기에 매출 67억5000만달러(약 8조3000억원), 영업이익 19억90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0%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약 1% 줄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수익성에 일부 타격이 있었지만 증권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호실적이라는 평가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개선되고 지난해 수주가 급격히 증가한 결과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시장 침체에도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이어지며 기술력을 갖춘 장비업체에는 활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7월 양산에 돌입한 3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에 적용한 새로운 트랜지스터 기술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램리서치 반도체 시스템 사업부는 지난해 기준 수주 잔고가 1년 전보다 90% 증가했다. 반도체 극자외선(EUV) 장비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네덜란드 ASML도 반도체 한파를 피해 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은 10% 증가한 57억8000만유로(약 7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 증가 19억유로(약 2조5000억원)에 달한다. ASML은 초미세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한 노광장비 시장에서 최첨단 장비를 독과점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EUV 장비 매출은 38억유로(약 5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올해 반도체 한파에 따른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시작으로 고객사 투자 축소와 재고 조정이 본격화될 전망이지만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세계 1위 TSMC는 올해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12% 줄이기로 했고 삼성전자도 투자 규모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선단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 수요는 여전히 높다. ASML은 EUV를 비롯한 장비 수요가 여전히 공급을 상회하고 있다며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8%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장비 비중이 큰 램리서치는 올해 반도체 웨이퍼 및 팹 장비(WEF) 시장이 전년 대비 20% 줄어든 720억달러(약 88조80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회사는 지난해 3분기 매출 50억7000만달러(약 6조2000억원), 영업이익 17억1000만달러(2조1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 21% 성장한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 전망은 불확실성이 높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투자 축소를 공식화한 탓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에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투자 축소를 예고했고, 마이크론은 D램과 낸드플래시 웨이퍼 투입량을 20% 줄이며 감산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도 부정적 변수로 꼽힌다. 미국 정부가 수출 통제 기업뿐만 아니라 장비 수출 제재 범위를 지속 확대하는 추세에 따라 현지 중국 기업에 더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규제 영향권에 들어왔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해당 영향이 올해 매출 기준 최대 25억달러(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램리서치 역시 중국 매출 의존도가 30%에 달해 대중국 제재에 따른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장비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 축소가 커지는 만큼 파운드리용 장비 부문에서 경쟁력이 큰 업체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한 상황"이라며 "다만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따라 직·간접적 여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jinsol@ekn.krunnamed (1)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반도체 금속열처리(RTP) 장비 ‘밴티지 벌컨’이 가동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