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관세 압박을 기회로, 한미일 협력의 분수령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8.22 14:26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주말부터 중요한 외교 일정을 앞두고 있다. 23-24일 일본을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곧바로 24-26일 미국으로 건너가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첫 한미정상회담을 갖는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 후 한미 정상회담보다 한일 정상회담을 먼저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광복 8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해에 한일 협력의 의지를 드러내는 측면도 있지만, 트럼프의 관세 압박, 동맹 현대화와 같은 요구에 동병상련 처지에 처한 일본과 미리 의견 교환을 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도 읽힌다.


지난 7월 31일 한미 양국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된 바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가로 한국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에너지 구매를 약속하는 내용의 구두 합의가 발표됐다. 문제는 이 약속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행하느냐이다. 이 대통령의 방일·방미에 앞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총수와 경제단체장이 모여 투자 계획을 점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은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에 대한 투자(370억 달러)를 포함해 총 51조 원, SK는 인디애나주 HBM 패키징 공장에 18조 원, 현대차는 2028년까지 배터리 및 전기차 생산기지 확장을 위해 29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 전해진다. 4대 그룹의 미국 내 투자 합계만 126조 원을 넘어서는데, 한화와 HD현대가 참여할 이른바 'MASGA(미국 조선업 재건)'프로젝트도 보다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투자가 단순히 '관세 압박 회피 비용'으로만 쓰인다면 오히려 한국 경제에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이 투자가 궁극적으로 한국의 국익, 즉 에너지 안보나 미래 성장 산업의 동력 강화에 마중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정책 제언을 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미 약속한 바 있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도 상기 투자와 연계할 수 있는 묘안을 발굴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미국산 LNG 구매는 단순 수입 보다는 터미널 지분 참여나 알래스카산 LNG 공동 개발 투자 등과 연계해 장기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겠다. 일본이 이미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참여를 약속한 만큼, 23일 이시바 총리와의 회담에서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원자력발전의 연료 문제도 시급하다. 한국이나 일본, 심지어 미국조차 원자력발전의 연료가 되는 농축우라늄 공급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AI 발전으로 인한 전기 수요 폭증, 기후변화 대응 등의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 추세일 것을 고려한다면, 연료 공급의 안정성 확보는 세 나라에게 모두 매우 중대한 과제가 아니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e Reactor) 시대를 대비한 HALEU(고순도 저농축 우라늄) 생산 체제 구축도 세 나라 모두에게 절실한 과제이다.




한국은 현재 농축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농축우라늄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은 핵무장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합의를 거쳐 농축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본의 자체 농축 능력은 자국의 원자력 발전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의 농축 능력도 한일이 의지할 수준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의 연료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한 구상은 한미일이 반드시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사안이라 하겠다.


이 밖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나 수소 관련 공급망 구축 등도 장기적으로 한미일 협력을 통해 풀어간다면 상호 보완적인 분야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이시바 총리를 먼저 만나는 것은 한미일 삼각 협력에 분명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3500억 달러는 한국 GDP의 약 2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일본도 5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막대한 투자금액을 가지고 한일이 미국을 두고 서로 경쟁하기만 한다면 제로섬 게임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일 간에는 23일 도쿄에서의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정부 간 계속적인 대화를 통해 정책을 서로 조율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미 투자도 한국의 국익은 물론 한미동맹, 한미일 협력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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