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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RE100으로 부활하는 탈원전 정책

RE100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제 20대 대통령 선거 때다.당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RE100을 아는지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영국의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이라는 환경단체가 이끌고 있다. 많은 선량한 기업이 환경을 사랑하고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캠페인에 참여하더라도 당장 RE100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굳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곧 이 캠페인은 사실상 무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 7일 동안 하루 24시간 (24X7) 내내 기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만 공급받을 수 없다.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재생에너지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생에너지 전기가 부족할 때마다 공장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자 이 캠페인은 변질됐다. 기업이 값비싼 재생에너지 전력요금을 치르면 재생에너지를 쓴 것으로 쳐주는 인정제도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발전원에서 생산한 전기는 동일한 전력망에 태워진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재생에너지 전력이고 어떤 것이 석탄전력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의 변동성으로 인해 재생에너지는 전력망의 20%를 초과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필요한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받았다면 누군가는 그만큼 다른 전기를 사용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전력망 전체로 보면 달라질 것도 없다. 구글은 지난 2018년 이미 재생에너지로 구글이 가진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모두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글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재생에너지는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결국 구글은 원자력을 포함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발전원으로부터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공급하기로 하고 CF100(탄소제로)을 선언했다. 이 보고서는 구글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은 지구환경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이용해서 재생에너지 확대만을 꾀한 셈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재생에너지 자원이 충분하지 못한 나라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점이다. RE100에 참여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지 않는다 거나 제품을 사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위협도 가한다. 나라마다 재생에너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RE100이 국제무역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면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는 제조업을 포기하거나 공장을 재생에너지 환경이 좋은 나라로 옮길 수 밖에 없다. 이건 말이 안되는 얘기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 캠페인이 힘을 발휘한다. 탈 원전 정부에서 나서서 RE100을 적극 홍보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유엔(UN)에서는 이미 CFC(Carbon Free Compact)라는 활동이 시작됐다. RE100이 국제무역의 질서를 깨뜨릴 위험을 간파한 것이다. 또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기후변화의 해법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한 것이다. 그 결과 원자력발전을 포함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력을 사용하자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RE100과 CF100은 원자력발전에 의한 이산화탄소 감축을 인정하지 않느냐, 인정 하느냐에 있다. 기후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면서 원자력발전소를 이용해서 줄인 것은 인정해주지 못하겠다는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주장인데도 그게 통했다. RE100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재생에너지는 늘리고 원전은 줄이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그것이 가져온 폐해는 한전의 적자, 전기요금의 인상, 원전수출 부진, 잇따른 난방비 폭탄이다. 매각해 버린 신규원전 부지와 원전산업의 생태계 붕괴는 또 다른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다. 앞으로도 고리 2호기를 위시해 계속운전 준비를 제때 하지 못한 6기의 원전이 수년간 정지하면서 수 조 원, 수십 조 원의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이런데도 여전히 RE100을 외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RE100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RE100 때문에 걱정하는 기업에 대해 CF100 인정제도를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비 정부기구(NGO)의 특이한 주장을 따르기보다 UN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특별 기고] 한미동맹, 기술 안보 분야에서 더욱 공고해져야

지난 한 주 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한 것이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는 이번 국빈 방문을 두고 크게 두 가지 사안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나는 갈수록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였고,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의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우리 기업들에게 미치는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사안과 관련해서는 양국 정상 간의 공동성명과는 별도로 ‘워싱턴 선언’이 발표되는 것으로 일단락된 측면이 있다. 이른바 나토식 핵 공유와 어떻게 다른가, 사실상 ‘핵 공유’냐 ‘아니냐’를 놓고 정치적 해석에서 충돌하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 대통령이 펜타곤 국방부지휘센터(NMCC)를 방문하고 미군 수뇌부로부터 브리핑 받는 장면은 대내외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두 번째 사안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이 없다는 비판과 실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실무 레벨에서 설득과 협상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은 미국의 국익에도 매우 부합한다"고 답변한 만큼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한국의 경제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 이것이 결국 한미 군사 동맹에 조차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을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어필해야 할 것이다. 또 이번 방미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했던 부분으로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도 "핵심·신흥 기술과 사이버안보 협력을 심화하고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고 명기했고, 바이오 분야와 청정에너지, 우주협력의 전 분야에 걸쳐서도 동맹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미 양국이 군사 안보, 경제 안보에 더해 ‘기술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른바 군사용과 민간용 기술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AI나 로보트 기술은 물론 우주, 원자력 관련 기술들은 대표적인 이중활용(dual-use) 기술들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이런 첨단 기술을 둘러싼 ‘기술 패권(technological hegemony)’을 놓고 건곤일척의 경쟁을 하고 있다. 이에 더해 탈 탄소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 역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 요컨대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대응은 지금의 경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와도 같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주요국들은 치열하게 경쟁 중이며, 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국가가 미래 시장에서 표준을 세우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에서 열세로 밀리면 향후 수십 년 동안,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랫동안 후발주자에 머물 수 밖에 없다. 다가오는 인공지능과 우주 개발 시대에 대한민국이 더 잘 대비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의 개발 단계에서는 물론 활용 단계에 있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연결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신뢰할 수 없는 행위자들과의 초 연결된 상태는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리스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의 구축은 한국의 관련 산업의 발전은 물론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국빈 방문 중 윤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의 안내를 받아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한 것이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찾아 디지털바이오 분야의 석학들과 대담을 나눈 것 등은 향후 한미동맹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을 기반으로 협력을 계속하는 것으로 의지를 다잡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과잉 안보화(hyper-securitization)를 우려하며 무슨 분야든 ‘동맹’과 연결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은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국가들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런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국가들과 ‘잘’ 지내기가 지극히 힘든 국면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unipolarity)는 이미 끝났지만, 다극체제(multipolarity) 속에서 세력 재편은 이미 우리의 바람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모두와 잘 지내겠다는 것은 정치적 선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지금은 신뢰할 수 있고 능력이 있는 상대와 힘을 합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더 몰두해야 한다. 지금의 이 전략적 판단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임은정 공주대 교수

[EE칼럼] 쌀 신세가 된 전기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전기가 곧 쌀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무슨 소리냐고? 국제 에너지가격은 계속 치솟는데 국내 전기요금은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보니 이제는 벼농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끊을 수 없게된 것처럼 낮은 전기요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부 자금이 사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입법사태로 보듯이 쌀(벼)농사는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가장 오래된 이슈 중 하나다. 1970년대 이후 정부의 쌀 증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쌀은 100% 자급자족을 넘겨 身土不二를 실천한 농산물이라는 자긍심이 매우 높다. 문제는 벼농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 벼농사를 짓는 농가가 다른 작물로 옮겨가지 않는 데다 기술은 좋아져 쌀 풍년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제적인 경쟁력이 없어 해외에 수출은 어렵고 국내 쌀값 폭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쌀 문제로 인한 국가재정지원이 날로 커지고 있고 정치권과 정부부처들은 수십 년 동안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나랏빚만 늘고 있다. 이제 전기가 이런 쌀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지만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처분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쌀 신세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 전력망을 건설하고 전국 방방곡곡 집집마다 전깃불을 밝혀 100%에 가까운 보급률을 보이며 21세기 초반까지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과 전력설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은 지난 10여년 만에 빚더미에 쌓여 고장 난 전력설비의 복구조차 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추락하고 있다. 전기의 문제는 21세기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력 수요 패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가정과 상업건물에 겨울철 난방을 전기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겨울철에 전력수요가 최대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전력수요 피크가 나타나면서 발전시설을 세워서 정비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11년 고장이 나고 말았다.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어느 새 20%를 훌쩍 넘어버린 1인 가구는 전기요금 누진제의 불안 없이 그야말로 냉방과 난방을 팡팡 틀어놓고 지내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전력요금체계는 다양한 정책수요에 맞추기 위해 산업용, 농업용, 교육용 및 심야전력용의 전기요금을 정부의 지원으로 낮게 유지해 왔으며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는 4인 가구를 중심으로 누진제가 적용돼 왔다. 그런데 이런 요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수요패턴이 변화했는 데 21세기 들어 전기요금체계는 제대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대와 기획재정부의 물가 타령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신기하게도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기관에도 냉방과 난방온도를 규제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공무원들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이후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게 일하게 하고 있다. 적절한 전기요금 조정으로 이들 전력수요 피크를 조정하거나 1인 가구용 전력요금 체계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없었다. 2020년에는 전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원료의 가격이 폭등하는 공급 위기까지 나타났다. 프랑스는 크리스마스 시즌 에펠탑의 조명을 껐고 독일은 초강도의 절약해야만 했으며 유럽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3~5배로 치솟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권과 기획재정부는 전기요금을 절대로 올리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수준은 OECD 국가 최하위권이 됐고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2022년에만 30조의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랫동안 원가보다도 낮게 유지된 전력가격이다. 21세기 내내 전문가들은 꾸준히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력가격 상향조정은 물론 법으로 보장된 원가연동제의 실시도 하지 않고 있다. 당장에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제 기회를 놓치면 전기는 쌀 신세가 돼 우리 후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은 농촌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전기요금 인상은커녕 벼농사와 같이 오히려 보조금이 더욱 더 늘어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벼농사가 국가보조로 버티듯이 이제 전력산업도 국가보조로 연명하는 산업이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중장기적인 전력가격 상향조정 의지를 발표해 더 이상의 급격한 전력수요증가를 막고 빠른 시한 안에 근본적인 전력가격체계 개선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과 산업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과 산업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낡아 빠진 전력요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EE칼럼]뒤늦게 드러나는 탄소중립의 민낯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탄소중립의 덫에 단단히 잡혀버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해야한다는 목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의지를 무작정 탓 할 수는 없다. 인류가 위태롭게 올라서서 버티고 있는 얇은 얼음판이 빠르게 녹고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무거운 경고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의 멋진 ‘막춤’을 국제사회에 자랑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재작년에 어설프게 내놓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부끄러운 민낯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환경사회학자의 어설픈 억지에 우리 사회가 발목을 잡혀 주저앉게 될 판이다. 우리 사회가 무한정 쏟아지는 햇빛과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깨끗한 전기를 공짜로 생산한다는 유아적인 유혹에 혼을 빼앗겨 버렸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시작일 뿐이었다. ‘탄소 없는 섬’을 꿈꾸며 재생에너지에 올인했던 제주도가 뒤늦게 마주한 현실은 암울하다. 황금알을 낳아줄 것이라던 태양광·풍력 설비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공짜’ 전기가 오히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출력 제한’이 전남·전북(새만금)으로 번질 기세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섰던 경북·경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적자의 늪에서 빠져 제 코가 석 자인 한국전력이 선뜻 나서서 영세 태양광·풍력 사업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가능성도 없다. 아직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엉터리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태양광·풍력 설비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해줄 ESS 설치비용이 최소 787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루 고작 2.5시간 가동하는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규모다. 정밀 전자설비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ESS의 화재·폭발 위험도 심각하다. 전문성과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자가 그런 ESS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도 의문이다. 바이오연료에 대한 기대도 황당하다. 온실가스 1180만톤을 줄이기 위한 바이오 나프타를 생산하려면 전 세계 생산량의 78배에 해당하는 캐슈넛이 필요하다. 남한 면적의 22배가 넘는 경작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떠들썩하게 내놓았던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사실은 바이오 나프타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엉터리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을 모아놓은 셈이다. 지난 8년 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지구촌 기후 위기의 현실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왔던 이회성 의장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포함한 온실가스 대책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집에 반드시 불이 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총수입을 넘어서는 일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을 포기한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과연 앞으로 7년 안에 포스코 규모의 산업현장 4개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 탄소중립에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서 매달려야 하는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놓은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원전은 탄소중립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유일한 ‘현재 기술’이다. 그런 원전을 빼놓은 탄소중립은 의미가 없다. 음주운전의 피해가 무섭다고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패배주의로는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한전에게 26조 원의 손실을 떠안긴 탈 원전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탄소중립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IPCC가 우리에게 탄소중립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배출량의 1.51%를 배출하는 우리가 탄소중립을 통해서 지구촌의 기후 위기 극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탄소중립은 이념적인 탈 원전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시급하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커뮤니케이션

[EE칼럼]한미동맹, 에너지-그린테크 분야로 확대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한미동맹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지리라는 기대가 높다. 특히 이번 방문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2명의 경제사절단이 함께한 만큼 양국의 경제 협력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전혀 없다시피하지만 제조업과 수출을 기반으로 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세계화 시대에 한국식 경제 발전 모델은 그 꽃을 피웠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의 심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및 곡물 수급 불안정 등에 의해 대한민국호(號)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구조적인 난맥상에 처해 있다. 지경학적으로 복합적인 위기가 계속 발생할 수 있는 이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의 경제 안보 동맹 강화를 기본 정책 기조로 삼고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편승(bandwagoning)하려는 자세를 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시각들도 존재한다. 동맹은 본래 군사적인 의미에서 공통의 적을 상정하고 힘을 합쳐 맞서려는 데에 존재 이유가 있는 데 이런 개념을 경제 분야에까지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에 일정 부분 무리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역사가 반드시 군사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 온 만큼 앞으로도 양국의 경제 협력이 경제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호혜적인 방안들이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비로소 군사 동맹도 안정적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한미 협력의 맥락에서 함께 논의돼야 할 것이 에너지-그린테크 부문이다. 에너지-그린테크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간의 쟁점으로 우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관련 부분과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의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간의 소송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피해를 주는 행위를 최소화하고 협력이 원활하게 작동될 때 한국의 그린테크 수출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에너지-그린테크 관련 한미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많이 있다. 중단기적으로는 가스 공급의 안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한국의 1차 에너지 구성에서 천연가스 비중은 20%, 전원구성에서의 비중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화석연료이긴 하지만 석탄에 비해 친환경적인 가스는 에너지 전환의 국면에서도 당분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에너지원이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 전쟁 이후 미국산 LNG의 수출의 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러시아산 도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미국산 LNG가 유럽과 동아시아 시장 모두에게 안정적인 공급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 안정적인 가스도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선진국들이 녹색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 정책 기조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저탄소 환경에서 조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자체적인 노력과 함께 그린수소와 같은 신에너지 분야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도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국토가 넓어 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으면서도 신뢰 가능한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리튬이나 희토류 같이 그린테크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멕시코를 필두로 최근에는 칠레까지도 리튬을 국유화하는 등 자원보유국들의 자원 보호주의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따라서 미국과 힘을 합쳐 협상력을 제고하고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되 한미는 FTA 체결국인 만큼 무역 정책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기술 협력을 통해 새로운 수출 시장 개척에도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다면 한미동맹이 군사 동맹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동맹’으로서 국익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E칼럼]국가 석유비축 체계, 탄소중립에 맞춰 손질해야

지난 11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관련 최상위 법정 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됐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지난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그대로 가져와 부문별 감축목표를 일부 조정한데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계획에 대한 기후환경단체의 공격은 거세다. 논란에 가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석유부문에 가한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탄소중립은 땅속에서 채굴,수입하는 석유가 2050년에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를 위해 수소·전기차의 급속한 보급 및 확산, 산업의 연료 및 원료 전환 등이 탄소중립기본계획의 핵심 축을 이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를 반영해 지난 3월 분석,발표한 ‘장기 에너지수요 전망’을 통해 2035년 국내 석유 수요가 2020년 대비 절반 수준(40~46%)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석유산업의 위축은 물론 인적·물적 관련 투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기에 미래가 없는 산업에 투자가 있을 수 없다. 가뜩이나 석유수요가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만으로도 석유부문 투자에 부정적인데, 감소세 마저 너무 가파르다. 불과 10여년 만에 국내 시장규모가 반토막 나는 현실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석유산업 당사자인 정유사와 주유소 등 민간부문은 그 동안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수소·배터리·재생에너지 등 신 산업으로의 사업 다각화나 바이오·청정합성 연료·원료 개발,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국제 에너지기구(IEA)의 지적 처럼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성보다 규범적인 성격이 강해 우려되는 것 만큼의 투자 축소는 당분간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공공부문, 특히 정부 석유관련 시책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는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10년 단위의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14년 수립된 현행 제4차 석유비축계획은 2025년까지 약 1억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도록 돼 있다. 계획이 달성되면 2035년까지 새로운 목표로 다음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다. 이때 민간부문과 같이 최상위 계획인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부정하고 독립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할까? 그 자체가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정부 스스로가 부정,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인데도 말이다.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했다는 비난은 당연지사다. 지난 40년 동안 비축유 확보목표, 즉 적정 비축유 규모는 하루 평균 순 수입(소비)량 기준으로 석유수입 없이 60일간 경제를 지탱할 수 있게하는 물량으로 규정됐다. 석유수요에 비례해 설정됐기 때문에 2035년 석유수요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면 비축유 규모는 반토막이 나고, 절반을 매각해야 한다. 비축유는 일종의 보험 같아서, 가령 자동차를 두 대 가지고 있다가 한 대를 매각한다면 자동차 보험도 한 대에 한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차는 팔았는데 보험만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당장 급격히 비축유 규모를 줄이는 것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직후에서 볼 수 있듯이 석유시장 교란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석유비축이기 때문이다. 비축규모 축소로 우리 경제가 받게 될 단기적 충격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석유 사용을 줄이자는 탄소중립 시대에 맞게 석유비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탄소중립을 추구하는데 석유비축이 왜 필요한지는 물론이고 석유안보의 개념 자체부터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달라질 석유의 위상을 고려해 ‘석유’ 단독보다 수소·암모니아·배터리 소재광물 등 탄소중립 추진에 필수적인 자원들의 안보 논의와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사회와 공조를 확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불가피하게 비축유를 매각할 경우,형성된 재원의 활용방안까지 검토돼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의 수레바퀴 앞에서 용감한 저항은 부질없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의미를 새겨 당장 석유비축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E칼럼]말 뿐인 에너지절감 정책

1970∼80년대 오일쇼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절약은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에서 빠질 수 없는 정책목표 중 하나다. 지금도 이와 관련된 정책이나 계획, 관련 법과 규제는 많다. 에너지이용 합리화, 건축물 규제, 최저효율제, 각종 라벨링, 에너지 공기업 투자계획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에너지절감은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물론 국가온실가스 로드맵 등에서도 항상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계획 수립 때 마다 도달하기 어려울 만큼 의욕적인 목표와 온갖 수단들이 제시되지만 실제로 얼마나 계획대로 달성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절감량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절차도 미비하지만 어차피 정책의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성과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계획으로 계속 추진하는 행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기본에서도 수요관리의 주된 내용인 에너지절감은 수요목표치를 맞추어 주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되돌아보면 에너지절감은 지금보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전에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만해도 전력회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전력 소비량과 피크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능한 신규 발전소 소요를 줄이기 위해 부하관리와 효율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적지 않은 비용도 투입했다. 매년 절감성과의 평가검증을 통한 피드백도 과정도 거쳤다. 그러나 구조개편 이후 전력수요를 줄이려는 유인이 줄었고, 십 여년 전부터는 수요관리 투자도 크게 감소했다. 판매사업자인 한전은 그때 그때 수요에 맞추어 공급되는 전력을 구입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머무르고 있다. 수요입찰을 통해 가능한 비싼 시간대의 수요를 줄여서 구입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실상이 이런데도 수요관리는 전력수급계획, 에너지전망, 온실가스감축 등 에너지와 관련된 계획 수립 때 마다 기준수요(BAU)를 크게 낮추는 수단으로 동원된다. 전력부문만 보더라고 수요를 대폭 줄여서 신규설비 소요를 줄이고 운전 중인 화력설비의 이용률을 낮춰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추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방식이다. 지금까지 국가계획을 통해 제시된 에너지절감의 실상을 살펴보면 최근 다섯 차례의 전력수급계획에서 15% 수준의 절감목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3차 에기본에서도 거의 20%에 가까운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가장 큰 감축수단도 사실 들여다 보면 에너지절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의 실현가능성, 이행에 필요한 비용, 추진을 담보할 만한 시스템이나 거버넌스 체제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외치는데 한쪽에서는 에너지를 펑펑 쓰는 공장들이 산업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서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보다도 가격기능의 회복이다. 에너지 다소비구조는 낮은 가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낮은 전기요금을 먹고 사는 산업이나 시설이 들어설 곳은 많다. 당연히 전기 다소비 산업이나 설비의 확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는 신호등이 고장나든 말든 눈에 보이는 신호를 보고 가게 마련이다. 파란 불이 계속 켜져 있는데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빨간불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는다. 이제라도 고장난 신호등을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본격적인 효율향상 프로그램과 체계적인 규제시스템도 당장 도입해야 한다. 체계적인 성과평가 및 M&V 시스템 개발도 필요하다. EERS를 추진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수요관리 목표는 갈수록 커지는데 여기에 배정된 예산은 초라하다. 의지와 행동이 맞지 않는다.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해 절감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시급하다. 에너지 절감을 위한 규제시스템의 체계화도 필요하다. 그동안 효율기술이나 건물에 대한 기준이나 규제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제도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절감을 가져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분석은 없다. 최저효율제, 고효율기기 인증과 같은 제도와 여러 절감시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국가계획 수립시에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관행처럼 굳어진 절감 목표설정 방식과 절차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정책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준과 프로그램을 통한 객관적 분석과 평가도 수반돼야 한다. 언제까지 말로만 떠들 것인가. 에너지절감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김성우 칼럼] 태양광·수소 산업 경쟁력 강화 서둘러야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대구에서 ‘2023 국제미래에너지컨퍼런스’가 열렸다. 2004년부터 신재생에너지 분야 최신 국내외 기술 및 정보를 나누는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의 연계 행사로, 세계 25개국에서 300개 기업이 참가했다. 필자는 올해도 국내외 태양광 및 수소 전문가들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글로벌 세션의 토론자로 참여해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태양광과 수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은 기술에 속하기 때문에 그동안 코로나19로 방한하지 못했던 12개국 60여명의 해외 전문가들이 직접 참가해 글로벌 시장동향과 정책을 나눈 자리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의 경우 중국, EU, 미국, 인도 등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2021년 175GW이던 세계 태양광 신규 설비량이 지난해 260GW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330GW를 웃돌 것으로 예측되며 2년 새 2배 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3배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설비가 매년 전 세계에 설치되는 셈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런 고속성장의 배경으로 태양광 발전단가 하락, BIPV(건물일체형태양광) 등 기능성 태양광 상용화, 기업에 대한 RE100 요구 강화,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탄소중립 정책 가속화, 친환경·저탄소·고효율 제품의 집중 출현 등을 꼽았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과 EU가 통상정책으로 탈 중국화를 시도하지만, 경제성을 고려할 때 단기간 내에는 탈 중국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국내에는 태양전지 2개사와 모듈 10여 개사가 있지만 규모의 경제 및 원가 측면에서 중국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보급측면에서도 이격 거리규정, 계통망 지연, 부지확보애로, 고금리 등의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기업이 RE100 이행시 주요 대상인 태양광 발전소가 대부분 중소규모로 분산돼 있어 발전소 모집이 어려운데 비해 최근 소매요금 상승으로 2024년부터는 기업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것 보다 RE100을 이행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수소의 경우 고속 성장 속에 국가별 경쟁력 차이는 심화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수요는 현재 연간 1억톤에서 2050년 5억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그린수소가 대부분의 공급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을 전기분해하는 그린수소의 핵심설비인 전해조 공급은 2021년 0.4GW에서 2022년 0.8GW로 늘었꼬 올해는 3GW로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전해조 제조비용의 경우 중국은 KW당 350달러인데 비해 다른 국가들은 KW당 1000달러가 넘어 그린수소도 국가별로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정 부분 그린수소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주목할 사안이다. 특히 호주로부터 그린수소를 수입할 때 암모니아로 전환해 이송하는 데,이송된 암모니아를 국내에서 그대로 사용하면 경제적이지만 수소로 다시 전환해 사용할 경우 국내에서 직접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것보다 비경제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의 수소 활용 계획은 발전과 도로수송이 대부분이어서 일반적으로 수소가 경쟁력 있는 활용 분야(정유, 암모니아, 철강 등)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한마디로 빅뱅의 서막이다. 이미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EU는 그린딜 산업계획으로 환경과 통상을 연계해 자국 내 친환경 산업 육성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중국은 자국내 친환경 산업의 해외진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공식적인 탄소중립 대외전략이다. 우리나라도 기후-통상, 환경-에너지, 탄소-재정 등 분절돼 있는 정책을 통합하고, 보급확대와 산업육성간 시너지를 기반으로 강력하고 종합적인 탄소중립 산업 정책 패키지 실행이 절실한 시점이다. 탄소중립은 2050년까지 지속되겠지만 태양광과 수소산업은 현재의 폭발적인 성장속도로 볼 때 글로벌 시장에서의 주도권은 몇 년 안에 결판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E칼럼]재생에너지 확대 가로막는 독점 전력사업자의 횡포

작년 말 전기위원회는 한국전력이 제출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고객 요금제 신설’에 관한 기본공급약관 변경을 인가했다. 재생에너지를 직접 PPA(전력구매계약)로 구입하는 기업에 대한 별도의 요금제를 인가한 것이다. 별도의 요금제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직거래하는 전력 사용자들이 한전으로부터 전력을 구입할 때 적용되는 요금제인데 기본요금과 경부하요금은 크게 올리고 최대·중간부하 요금은 낮췄다. 이런 식이면 기존보다 최대 1.5배 비싸게 지불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이를 두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로 인해 한전은 두 차례 그 시행을 유예하고 있다. 이번 일은 한전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 PPA 요금제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습적으로 통과됐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이라면 적어도 몇 차례의 공청회나 토론을 거쳐야 했다. 언론에 따르면 전기위원회 회의 당일 당연직 위원들 조차 안건에 대한 사전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알려진다. 작년 말 전기요금 인상안과 함께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RE100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출업체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한전이 급작스럽게 약관을 변경한 점은 이해되지 않는다. 직접 PPA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입하는 사업자는 어차피 한전의 전력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때문에 24시간 재생에너지 전력만을 공급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재생에너지가 공급될 수 없는 비상 상황에는 한전의 전기를 공급받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업자들이 RE100을 지향하지만 100% 재생에너지 전력만을 공급받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틈을 이용해 한전이 직접 PPA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비싸게 전기를 판다는 것은 전력 독점 판매자의 횡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전은 직접 PPA 고객에게 높은 요금제를 적용하는 이유를 PPA 고객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해 한전 전력 사용량이 감소하면 적정 고정비를 회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즉, 고객의 기본요금 부담완화를 위해 고정비 일부를 전력량 요금으로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력사용량이 예상보다 증가하면 고정비를 많이 받은 셈이니 환불해 주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예상보다 적게 쓴 경우는 추가요금을 징수하겠다는 것인가? 잘못 설계한 기본요금을 근거로 직접 PPA 고객에게 다른 요금을 적용한다는 것은 억지스럽다. 직접 PPA 고객에 대한 요금제는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구입하지 않는 고객에게 불이익을 줘 독점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한전의 가격정책이라고 판단된다. 한전은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재생에너지 전력판매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쌓고 있는 것이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에서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을 담고 있는 약관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RE100 및 K-RE100 관련 기업 32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6.5%는 한전의 PPA 전용 요금제로 손해를 볼 것이라고 답했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PPA로 구입하기로 계획 중이었던 기업들은 PPA 검토 보류, 추진 중단 및 계약 파기 등의 유형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직접 PPA 요금제는 불공정약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8월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 PPA 제도 도입으로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구매 선택 폭이 넓어진다고 홍보했다. 이에 따르면 전력거래소의 거래수수료를 3년간 면제하고 중소·중견기업은 망 이용요금을 1년간 지원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또한 20MW 이상의 설비는 발전량 중 일부를 직접 PPA로, 나머지는 전력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분할거래’를 허용했다. 그러나 한전의 직접 PPA 요금제는 사실상 재생에너지 전력의 직거래를 하지 말라는 우회적 경고와 다름없으며 산업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전력산업의 독점구조가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다목적 양수발전 늘리자

재생에너지 자원의 확대에 따라 양수 발전이 주목받고 있다. 양수발전은 하부댐의 저장물을 상부댐으로 올려 에너지를 저장해두었다가 낙차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주로 심야시간대의 원자력 발전 잉여전기 활용을 위해 주로 이용됐다. 오늘날에는 태양광 발전 변동성 대응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190GW에 달하는 글로벌 전기저장용량 중 약 85%를 양수발전이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펌핑 모드를 통해 가장 비용효과적인 수요측 관리자원으로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터리 다음으로 핵심적인 에너지 저장장치 역할을 하며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7% 더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국의 양수발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보면 놀라운 수준이다. 영국의 재생에너지 기업 SSE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올림픽 규격 수영장의 약 1만1000배에 해당되는 1.5GW 규모의 신규 양수발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저장용량은 30GWh에 달한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2025년까지 200개가 넘는 양수발전을 건설해 270GW규모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의 약 2배에 해당되는 규모다. 우리나라 역시 꾸준히 양수발전 설비를 확충하고 있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대응 목적으로 장주기 에너지 저장장치인 양수발전을 1.75GW 새로 반영하였다. 지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반영된 용량까지 포함하면 2036년까지 8.25GW로 현재(4.7GW)의 1.8배 수준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해도 주요국 양수 설비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양수발전 규모는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양수발전의 특장점을 잘 살려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양수발전은 재생 발전 변동성 대응 자원으로 비용효과적이다. 사실상 양수설비는 수명이 100년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LCOS(Levelized Cost of Storage) 측면에서도 경제성이 높다. IEA도 가장 비용효과적인 저장장치로 인정한다. 변동성 대응 기능을 보면, 현재도 경부하기의 태양광 탈락 대응수단으로는 Fast DR, 발전 제약 외에 양수 펌핑을 활용하고 있다. 주파수 59.75Hz 이하 사태 즉시 펌핑을 차단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추가 탈락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 이런 대응이 신속하고도 규모 있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수발전 설비를 늘려야 한다. 특히 저탄소 고성능 초속응성 예비력 자원 확충 차원에서 주파수 조절 기능을 갖춘 가변속 양수발전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상 2036년에 재생에너지 설비 규모가 100GW 이상으로 확대됨에 따라 유연성 자원으로 신규 양수발전이 1.75GW 반영되긴 했지만 2050 탄소중립까지 감안하면 이 보다 더 늘려야 한다. 양수발전은 현재 진행형인 탄소국경조정제(CBAM),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저탄소 무역라운드에서도 효자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처럼 대규모 양수발전은 더 이상 재생에너지 관련 계통안정을 위한 저장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발전시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잉여 태양광 펌핑의 양수발전이 PPA를 통해 철강산업에 공급되면 한국과 중국의 철강 톤당 탄소배출량은 역전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탄소국경조정제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양수발전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나날이 치열해지는 저탄소 통상전쟁에서 다양한 해결방안 중의 하나로 적극 검토돼야 한다. 양수발전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 국내 일부 양수발전 지역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상·하층부의 저수댐을 테마로 한 관광지로 활용할 수 있다.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영국 SSE의 콰 글라스 양수발전 프로젝트의 경우 건설과정에서 최대 5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평가된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한 환경파괴를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이는 부지 선정단계에서부터 생태계 등급을 고려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양수발전은 물 관리 차원에서도 활용가치가 높다. 최근 호남지역의 극심한 물 부족 사태에서 경험하듯이 양수발전 저장물을 적절히 활용하면 비상 시 농업용수로도 활용가능하다. 시스템 최적화를 통해 기후적응형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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