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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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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 산업에 필요한 넛지 디자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15 11:11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손성호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최근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자 교육에 참석했다. 바쁘다고 그 동안 미뤄왔던 교육이었지만, 의무적으로 연내에 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이틀이나 꼼짝 없이 교육장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학생의 기분으로 열심히 들어보자는 마음에 수업을 하나하나 수강했는 데 예상외로 재미도 있었고 안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 중 한 수업 시간에 안전 및 보건 분야에 적용된 다양한 디자인적 요소나 인센티브에 대해 들으면서 자유주의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Nudge)’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공동 저서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개념은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지도 이미 10년 이상 됐고,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하고 있지만 경제학, 사회학, 그리고 정책학 분야 등으로 확장되며 큰 호응을 얻은바 있다.

특히 마케팅 차원에서 다양하게 적용된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구매 결정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상품에 대한 홍보를 대놓고 하기 보다는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장난감 가게에 들르지도 않았는데 어김없이 손에 장난감 하나가 들려있는 경우다. 이는 진료를 받은 후에 약국에 들어갔을 때, 부모들이 처방전을 약사에게 내미는 동안 아이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추어 진열돼 있는 장난감이 포함된 비타민 사탕을 손으로 집을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넛지 기반의 디자인적 요소가 에너지 분야에는 어느 정도 적용돼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그다지 효과적인 설계 예시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나오는 동일 면적 세대 대비 에너지 사용량 그래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경쟁 심리를 끌어들여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처음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조차도 그 그래프를 볼 때만 인식할 뿐 에너지 절약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는다.

중장기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향상과 함께 에너지 절약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이나 관심도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것에 비해 절약 부분에 대한 기술개발이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분위기다.

지난달 한 대학에서 에너지산업 및 정책에 대하여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30대 이상의 수강생 30여 명 중에서 2~3명 정도만 자기 집의 전기요금 수준을 알고 있다고 답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일반 국민들의 에너지 요금에 대한 관심도나 절약 차원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넛지 기반의 디자인적 요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경제학적으로 소비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가격이다. 최근에 전기요금이 조정됐지만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인상된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이내 연예계나 정치계의 주요 사건들을 다루는 기사에 덮여 금세 잊히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이달 들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전력사용량이 또 급증할 조짐이다. 이-팔 전쟁으로 ‘에너지 보고(寶庫)’인 중동 지역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 또 다시 에너지 수급의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무 쪼록 에너지 절약을 위한 넛지 기반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에너지절약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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