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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트럼프 대선공약으로 본 미국 에너지 정책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력해지고 있다. 사법 리스크 등 여러 난관이 적지 않게 남아 있지만 민주당의 바이든 현 대통령보다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와는 관계없이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선공약을 통해 미국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공약은 지난해 4월 헤리티지재단이 중심이 돼 작성한 900쪽의 정책과제 보고서인 '리더십을 위한 지킴―보수의 약속(Mandate for Leadership 2025: The Conservative Promise)'에 잘 나타나 있다. 총 30장에 걸쳐 작성된 이 보고서는 분야별로 정책과제를 정리했는데 에너지 부문은 과거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에서 에너지 정책을 담당했고 트럼프 행정부 때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FERC) 위원장을 역임한 버나드 맥나미(Bernard McNamee)가 여러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작성했다. 공화당의 가장 큰 지지세력은 남부지역과 중부 및 중서부 지역이다. 즉, 대도시보다는 농촌과 한물간 공업지대로 흔히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지역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에너지를 왕성하게 생산하고 수출하는 텍사스 일대로 주요 에너지 기업의 영향력이 큰 곳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세력은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등의 동부 대도시와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등 첨단 ICT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이런 지역별 분포에서 짐작되듯이 공화당의 에너지 정책은 민주당이 강조하는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산, 탄소중립 등과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민주당의 환경친화적 에너지 정책이 에너지 가격의 인상을 불러온 것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본 공약집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 정책 방향은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고 국민에게 값싼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도 에너지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활용되고 나아가서 우방국에 대한 에너지 수출을 통해 동맹을 지원하며 미국 에너지 산업의 이해를 증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아무래도 값비싼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에너지와 원전의 활용을 더 강조하게 된다. 특히 텍사스 휴스턴을 허브로 한 미국 석유메이저의 생산과 수출 증대를 미 에너지부의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무탄소 및 탄소저감 기술에 대해 정부가 큰 돈을 들여 지원하는 것도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CCUS, 에너지 저장장치 등과 같은 탄소저감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에는 부정적 입장이다. 특정 기술에 대한 정부 지원은 특정 산업과 이익집단을 위한 것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가격시그널을 왜곡하고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본 공약집에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FERC의 규제원칙이다. FERC는 전력이나 천연가스의 주간(州間) 거래를 규제하는 연방규제기관으로서 주간 거래를 담당하는 전력 송전망과 천연가스 배관망의 사용요금과 거래조건을 규제한다. 그런데 본 공약집은 FERC가 특정 에너지를 지원하지 않는 이른바 '자원 중립성(resource neutrality)'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재생에너지 때문에 보강해야 하는 송전망 투자의 경우 이를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의 분담이라는 모호한 말로 일반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말고 해당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선공약은 송전망 건설계획 및 접속절차에 있어서도 풍력 및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에 편의를 봐주는 것은 자원중립성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복귀한다면 미국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현 바이든 대통령과는 크게 다를 것으로 판단된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보다는 값싸고 안정적인 화석에너지의 생산이 강조될 것이며 적극적인 수출확대로 미국산 LNG의 시장점유율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더 높아질 것이다. 조성봉

[EE칼럼] 배출권거래제의 屋上屋 ‘탄소차액계약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최근 탄소차액계약제도(Carbon Contract for Difference·CCfD)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탄소저감 프로젝트에 안정적인 수익원을 제공함으로써 불확실한 탄소 가격과 관련된 재정적 위험을 줄여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 수단이다. 배출권 이월제한 폐지와 같은 정작 중요한 근본적인 개선방안은 그대로 두고, CCfD를 덧입히려 하니 자못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예산까지 본격적으로 확보한 것을 보면 더이상 늦기전에 진지하게 제도도입의 그 이면도 들여봐야 한다. 전문가 외엔 아무 관심이 없지만, 잠재적·부정적인 파괴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CCfD는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권 가격이 낮을땐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하고, 높을 땐 투자한 기업이 정부에 추가적인 납세를 하는 형식이다. 개념적으로 배출권 가격이란 정부가 제시한 기준가격보다 높을 수도 혹은 낮을 수도 있으니, 얼핏 보기에는 공정해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 제도를 배출권거래제 위에 옥상옥(屋上屋)의 형태로 두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정부가 돈을 주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주체인 기업이 배출권거래제 하의 인센티브 체계로는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런 동기를 틀리다고 할 수 없지만, 언제나 정책은 일단 도입되면 효과여부를 떠나 자생력을 발휘하며 세금먹는 하마가 되기 쉽상이기에, 적어도 당국자와 국민들도 이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 첫째, 기술선택과 관련된 시장 왜곡, 즉 투자 대상인 기술을 신중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특정 기술이나 분야를 다른 분야보다 선호함으로써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일단 CCfD의 수혜대상에서 벗어나면 잠재적으로 혁신과 비용 효율적 감축사업이 저해된다. 더 새롭고 효율적인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최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특정 기술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둘째, CCfD를 구현하고 관리하려면 별도 행정시스템이 필요하므로 정부 및 기관의 행정 부담이 증가한다. 관료주의적 비효율과 지연으로 인해 저탄소 기술의 적시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EU-ETS 속에 일부 멤버가 CCfD를 채택하는 것은 ETS 제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Korea-ETS 전체에서 CCfD 를 택하는것은 더이상 ETS 가 아닌 보조금제도로 변형될 위험이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다. 현재 ETS 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배출권 가격보다는, 정부의 CCfD 기준가격 설정이 훨씬 중요해진다. 여기에 가격결정의 자의성과 규제의 복잡성이 폭증한다. 셋째, 과잉 보상 및 횡재 이익의 위험이 있다. 현재처럼 탄소 가격이 이월제한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하회하면, 프로젝트 개발자가 과도한 보상을 받아 공공이나 환경을 희생시키면서 횡재 이익을 얻을 위험이 있다. 계약 조건을 조정하거나 초과 지급금을 환수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며, 이는 행정적으로 까다롭고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 넷째, 선정 및 자격 기준. 어떤 프로젝트나 기술이 CCfD에 적합한지 결정하는 것은 잘 연결된 산업이나 기업의 로비 및 영향력의 위험으로 인해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선정 기준과 의사 결정 과정은 공공 자원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평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 책임을 모두 질 것인가? 다섯째, CCfD에 필수적인 장기 계약으로 인한 경직성. 장기 계약은 수혜 기업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어 새로운 기술, 시장 발전 또는 국제 기후 정책의 변화에 대한 정책 대응의 유연성을 제한한다. 향후 정책 방향이나 환경 목표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는 특정 프로젝트나 기술에 자원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여섯째, 불평등의 가능성. CCfD의 혜택은 제한된 수의 프로젝트 또는 기업에게만 돌아갈 수 있으며, 이는 저탄소 전환에 대한 공공 지원의 분배에 불평등을 초래한다. 한국과 같은 문화에서 이로 인한 각종 잡음과 책임소재는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시장 지배력을 가진 대형 배출업체는 CCfD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얻고 시장 지배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인센티브가 대기업에 편중되고 잠재적으로 더 혁신적인 소규모 기업에는 돌아가지 않아 탄소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수혜를 받는 기업은 CCfD의 로비를 통해 설계와 이행에 영향을 미쳐 자신들의 운영에 유리하도록 할 수 있으며, 이는 배출권시장 전체의 경쟁구도를 무너뜨린다. 일곱째, 고탄소 인프라에 대한 고착화 위험. 예컨데 대형발전사 혹은 일부 제철사와 같은 대규모 탄소 배출 기업은 본질적으로 탄소 집약적인 중공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혁신적인 저탄소 기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CCfD 사업은 의도치 않게 기존의 고탄소 인프라에 보조금 지급 메커니즘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돈준다는데 싫어할 기업은 없기에 그동안 CCfD를 다룬 여러 관변 연구와 논평을 보면 환영 일색이었다. 보도자료 받아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제도의 도입에 대한 비용효과성, 즉 좀 더 적은 비용으로 같은 효과를 누릴 다른 대책은 없는가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시장에 돈다발이 투입되면 나를 포함한 업계 관계자들은 뜨순 밥을 먹겠지만,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으로 이를 충당해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자문할 수 밖에 없다. 유종민

[EE칼럼] 너나 잘하세요

공자(孔子) 말씀 가운데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글귀가 요즈음 새삼스럽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젊은 후학(後學)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후학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氣力)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어 선배들은 두렵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주 어느 학회 모임에서 에너지 문제는 과학-기술의 영역을 벗어나 경제-사회적 영역을 지나 정치이념문제로 승화되고 있다는 여러 고견에 접하였다. 녹색 에너지전환과 순환경제와 디지털 경제 상관성, 산업혁명 이후 ESG 개념의 진화, 신에너지 전환시대의 물 관리,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 등 다양한 내용이었다. 발표자들도 관련 전문가보다 다방면의 사회 저명인사들이 초청되었다. '공학'이나 과학 영역을 벗어나 학제(Multi-Disciplinary)적 성찰에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좋은 비전 달성을 위한 기반 논리 제시가 부족한 것 같아 좀 허전했다. 화려한 비전 뒤에 숨은 힘든 기초연구에 대한 성찰이 아쉬웠다. 에너지·환경문제는 생성·생산과 추출-활용-환경계 환류라는 에너지 주기 전체에 대한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필요하다. 그것도 열역학적 논리에서 출발한 과학적 연구방법론이라야 한다. 과학적 연구방법론이란 가설을 설정하고 관찰이나 실험을 계획해 실시한 결과로 얻어진 자료를 처리·발표·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는 체계적 이해를 통한 '인과관계의 규명'과 반복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일반화' 그리고 정립된 이론을 통한 '미래예측 능력의 통제'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눈앞의 단기적 부가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에 반해 정부나 기업과 직접 관련된 현업과제에 대한 외부지원이 많고 그만큼 실용화가 쉽다. 정치경제학이나 전략적 선택이론에 경도되는 '비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많다. 이런 여건에서 학계마저도 기초이론보다는 실용적 사례연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당연히 실용 영역의 논문과 연구결과들이 좋은 평가를 받도록 검증과 평가체계를 변경하게 마련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현상 분석 연구는 많으나 과학적 인과관계 추출과 이를 통한 미래예측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우리 에너지·환경정책의 시장실패와 정부 실패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를 선도한다던 지난 정부가 시작한 녹색 경제정책의 효율성 저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국가목표 달성의 혼란에다 경제선진국 중 최하 수준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역량 등이 모두 여기에서 연유된 것일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에너지·환경정책은 과학적 추진 체계라기보다 이념추구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우려에 대한 해외의 유수 전문가들이나 관련 전문지 검증발표 역시 최근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인류 공동의 해결과제라는 지구온난화 문제검증이 대표적 사례다. 2015년 UN 기후변화 당사국 회의(IPCC)는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온도를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가능하면' 1.5도 이하 유지에 노력한다는 조항이 부가됐다. 협정은 더 많은 참여 유도와 급변하는 기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각 국가가 자발적으로 정하는 '자발적 기여결정(NDC)' 제출로 가름한다.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절대량을 26~28%, 40%감축, 중국은 GDP 대비 배출량 기준 60~65% 감축, 한국은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BAU) 37% 감축을 목표로 제출했다. 그러나 NDC 추진상황을 보면 파리협정 목표(2도/1.5도 이하 )달성은 물건너 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 지구는 IPCC 기준인 산업화 이전(1850~1900년)의 평균 기온보다 이미 약 1.2도 더워졌다. 지구온난화 시계를 약 10년 앞당겨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가 인류공영의 공동선으로 합의한IPCC 추진가치의 변화-훼손은 심각한 문명사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IPCC가 추구해온 과학 기술적 문제진단과 해결 노력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 대신 국제 정치질서 변화를 우선해 큰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질서 개편을 통한 에너지·환경문제 해결 노력은 석유기반국가와 전력중심국가의 비교 우위 논쟁으로 번지고 있ㄷ. 미국 중심 서방의 기존 세계질서 유지-발전론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개도국의 새로운 질서 창출 기대론이 대결하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서방의 소극적 대응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BP등 서방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석유수요 정점을 대비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부터 가솔린-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기존 석유 중심국가 행태를 청정연료 중심체제로 바꾸려는 초기 시도수준이다. 반면 세계 탄소배출의 1/4을 담당하는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배출을 아예 하지 않는 '탄소중립' 달성을 공언했다. 태양전지 등 세계 1위 신재생설비생산국 지위를 활용해 화석연료 중심 국가운영체제를 신재생발전으로 대체하는 전력 중심 국가 건설과 이를 통한 탄소 중립달성 의지를 보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래 정보화 사회는 전력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정보전달 융합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산업혁명 이래 혁신요소 누적에 의한 현행 인류문명체계 지속가능성은 뿌리부터 변화될 시기에 접어들었다. 산업혁명 이래 두 세기에 걸쳐 축적된 기술혁신요소들의 누적과 이에 연유한 지속성장을 보장하는 'S 커브' 형태 성장모형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혁신이 아니라 세계질서 개편 등 정치 경제적 요인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모든 에너지·환경부문 논리가 본격적인 후생가외 체제로 개편되고 있다. 점진적 개혁, 연구개발의 혁신성과 파급효과, 가치관 변화의 가교 시대 논리는 구닥다리가 되고 있다. 요소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패러다임'이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든 지금 세계질서 주도권은 새로운 혁신 주체, 즉 정치경제 논리로 무장한 후생들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필자는 현행 주축학자들의 숨은 노력으로 새로운 에너지-환경혁신체계 기반조성이 늦지만 꾸준히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후생이 잘 할 것으로 믿는다. 필자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씨의 명대사인 '너나 잘하세요'를 되새기면서 하릴없던 지난 과오를 반성한다. 최기련

[기고] 신뢰성 높은 기후정보 통해 겨울철 이례적 호우 대비해야

2024년 1월 소양강 댐 상류 빙어호에서 열릴 빙어축제가 2023년 12월 27일에 갑자기 취소됐다. 예년에 비해 많은 겨울철 강수량으로 댐의 수위가 올라 183미터(m)의 수위 이하일 때만 가능한 축제장 조성이 어려워졌다. 2023년 11월과 12월 말 사이 댐 유역의 강수량이 2022년 대비 약 3배 증가해 댐 수위가 빙어 축제 허용치보다 3m 이상 상승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온 변동폭이 5.9도로 1973년 이래 가장 컸다. 12월 전국 강수량은 100밀리미터(mm)를 넘어서 평년보다 최대 5배 이상 많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소보다 눈이 내리는 날도 많았다. 특히 2023년 12월 11일과 15일 전국 일 강수량은 각각 31.5mm, 30.9mm이었다. 두 날 모두 하루 만에 평년 12월 강수량(28.0mm)보다 많은 비가 내렸다. 2020년 1월 27일에 울산에서는 1932년 관측 이래 1월의 일 강수량으로는 최고치인 113.6mm, 부산에서는 73.3mm의 호우로 도로 침수가 발생하여 차량통행이 제한되기도 했다. 이러한 겨울철 극한기후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24년 1월에는 미국 중서부 대부분 지역에서 폭우와 영하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면서 도로가 얼음으로 뒤덮이고, 한때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기록했던 텍사스에서는 혹한이 풀리면서 폭우에 의한 홍수 대피령이 내려졌다. 지구온난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도 향후 동절기 강수량 증가로 인한 각종 사회·경제적 피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도심지 및 하천 인근 유역에 대한 통합적인 도로·방재시설 점검·확충과 같은 장기적인 도심지 및 하천 시설 관리 강화 방안에 대해 새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23년 11월 역대급 홍수를 겪은 프랑스 북부 지방에 2024년 1월 초에 다시 홍수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기존에 이 지역 사람들은 홍수를 자연재해로만 여겼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늘어난 현재의 빗물을 지탱하지 못하는 1000년 묵은 지역 배수 시스템의 처리용량과 반복되는 물난리를 사람들이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점검·관리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기상청과 APEC기후센터의 하천유역별 극한 강수량의 미래변화 분석 결과도 부산 수영강과 울산 회야강 권역에서 현재처럼 탄소배출이 계속 늘면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일(누적) 극한 강수량이 21세기 전반기(2021~2040년)에는 11%, 중반기(2041~2060년)에는 34%, 후반기(2081~2100)에는 무려 57%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탄소배출이 늘지 않으면 일(누적) 극한 강수량이 21세기 전반기에 29%, 중반기에 22%, 후반기에는 단지 18%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발표한 기상청의 지역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서도 탄소배출이 현재처럼 지속되면 우리나라 광역지자체에서 연평균 기온, 강수량, 1일 최대 강수량 및 호우 일수도 늘 것으로 예측했다. 즉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극한 강수량이 장기적으로 증가해 한꺼번에 집중하는 강수와 강설로 인한 침수·교통사고 등과 같은 인적·물적 피해가 심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21년의 세계기상기구(WMO)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9년까지 50년간 자연재해가 5배 증가했으나 반대로 사망자 수는 약 3배 줄었다. 이는 그동안 지구온난화로 극단적 극한기후의 발생이 잦아지고 강도가 세어졌지만, 기상·기후에 대한 예측력을 높여 극한기후에 대한 조기경보·대응 역량을 키워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도로관리 및 방재와 관련된 사회기반시설의 구축·관리에 기후의 변화·변동 사항을 예측·반영하는 등 사람들이 인적·물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APEC기후센터도 기후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후예측정보의 신뢰성을 한층 더 높이는 역할과 소명을 다할 계획이다. 집중호우, 이상고온 등 그동안 특정 계절에 집중해 발생하던 극한기후가 연중 사시사철 발생하며 인명과 재산상 피해는 물론 지역 내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지속해서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과 동시에 신뢰성 높은 기후예측정보의 활용을 통해 갑작스럽게 언제든지 찾아오는 극한기후에 잘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의 시대적 과제

욕래조 선수목(慾來鳥 先樹木). 새를 오게 하고 싶으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는 한자 성어다.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원자력이 바로 그 생생한 예다. 우리 원자력 역사의 출발점은 7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미국의 전기기술자 시슬러 박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고 소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었다. “그거 지금 시작하면 몇 년 뒤에 써먹을 수 있는 거요?" 시슬러 박사가 답했다. “한 20년쯤 걸립니다." 원자력의 잠재력에 주목한 81세의 이 대통령은 즉시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우수한 과학 인재를 모아서 1인당 6000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유학을 보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달러 남짓이었다. 4년간 8차례에 걸쳐 150여 명을 보냈다.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공포하고, 이듬해원자력 인력 양성과 기술개발 기반인 연구용원자로 도입을 결정했다. 이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위해,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인 35만 달러를 투자했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 운전이 시작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시슬러 박사를 만난 지 22년이고, 이 대통령의 서거 13년이 지난 때였다. 그 이후 31년이 지난 2009년 우리나라는 UAE에 원전을 수출했다. 혜안을 가진 선각자가 한 세대 앞을 보고 투자하고, 후임자가 계승하면서 지금의 우리나라 원자력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또다시 그러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기후위기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20~30년 후에나 결실을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에 따르면 2023년이 1850년 이후 가장 더운 해라고 한다. 2023년 지구 평균 기온은 14.98도로, 과거 가장 더웠던 2016년보다 0.17도높고, 1850~1900년 평균보다 1.48도 높다고 한다. 각국이 기후위기 원인으로 지목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당국의 통제가 비교적 쉬운 전력 부문 탄소배출 저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양이 여전히 많고, 이것을 줄이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가에너지통계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제품 도입량(100만 배럴)이 2017년 314, 2018년 341, 2019년, 352, 2020년 347로 줄어들 기세가 통 보이질 않는다. 석유는 차량 연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활용품 생산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유 사용량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경제‧사회 대전환이 가능한 현실적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한때 재생에너지가 그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간헐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재생에너지가 기후위기의 진정한 솔루션이 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언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원자력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원자력은 전력 생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필요한 열과 물질을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 대신 원자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이러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형모듈원자로(SMR)다. 기후변화 극복과 에너지 문제 해결의 게임 체인저로서 SMR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 SMR 개발이 완료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안전하게, 그리고 핵확산 위험 없이 사용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의 핵심이 SMR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을 기술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원자력 안전규제와 통제체계다. 그런데 아직 우리 원자력안전법은 SMR 안전규제와 통제 기준을 담고 있지 못하다. 대형 원전 위주의 안전기준 그대로다. 이대로라면 SMR을 SMR답게 활용할 수 없다. 원자력 통제 기준에는 설계단계부터 핵비확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 SMR 특성을 반영한 안전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안전규제 및 통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후세를 위한 시대적 과제다. 문주현

[EE칼럼] 전력산업 선진화에 사활걸어야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2023년은 역사상 지구 온도가 가장 높은 한해로 기록됐다. 더불어 기상재난으로 개발도상국은 매년 GDP의 1%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며 선진국도 0.1-0.3% 퍼센트까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미래는 저탄소이든, 무탄소이든 탄소배출이 없는 전력을 통한 전기화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20세기의 전기화는 석탄이나 석유 등을 이용하여 전기를 공급하는 중앙집권적 공급방식이었다면, 21세기는 태양, 바람, 물 등을 이용한 지역할거형 자급자족 분산형 형태로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전기를 필요로 하는 지역의 수요가 많이 늘면서 송배전의 문제, 지역 회피의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기차, 인공지능 컴퓨터, 자동화 등도 전기를 더 필요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태양광과 육상 및 해상 풍력, 지열 등이 지역 기반으로 되면서 쓰고 남으면 외부에 판매하는 '선 자력갱생, 후 판매갱생'을 시행하고 있다. 제주도는 예전에는 전기가 부족해 육지에서 공급받다가, 이제는 역전돼 육지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기화가 어려운 곳은 다른 대안을 찾는다. 벙커 C유를 쓰던 선박에서는 연료전지 선박이나 바이오 디젤로 대체하고 있다. 유럽내 모든 항공기는 바이오 항공유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상업용 건물의 전기화도 초기 단계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매우 활발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연방건물성능기준(The Federal Building Performance Standard)'에 근거해 2030년까지 연방 정부 소유 건물 공간의 30%를 100% 전기화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려고 한다. 이 기준에 맞춰 연방 건물은 2025년부터 건물의 에너지 소비와 관련된 현장 배출량을 2003년 배출량의 90%까지 줄여야 한다. 미국환경청은 매년 105억원을 절약하고, 30년간 탄소 186만톤, 메탄 2280만톤 감축효과를 예상한다. 이는 약 30만 가구가 1년동안 배출하는 양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도 건물 성능기준을 만족하는 건축물 소유주와 개발자, 계약자에게 세금공제 해택을 준다. 0.09㎡당 약 2400원이었던 세금공제를 3배인 약 6600원으로 인상된다. 저소득층 지역 건물 전기화를 확대하기 위해 리베이트 인센티브, 저금리 또는 무이자 대출, 지출비 완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국가건물성능기준 연합도 결성돼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로주 등과 워싱턴 D.C., 보스턴, 덴버,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애틀 등 지방도시 30곳이 가입하고 있다. 캐나다 BC 주 빅토리아시는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신축 건물에 대해 화석연료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2025년 7월까지 모든 신축 건물에 '제로 탄소'를 도입하려 한다. 미국은 2040년까지 약 163조원 정도가 건물 전기화와 건설산업에 투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건물에서 LNG 사용을 금지하면서 30개 이상의 도시와 카운티에서 완전 전기식 신규 건설을 요구하거나 권장하는 정책을 시행중이다. 뉴욕시는 지방법 97조에 따라 뉴욕 공공주택청이 관리·소유하는 건물의 규모에 상관없이, 올해 1월 1일부터 7층 이하의 신축 건물, 2027년 7월 1일 이후에는 고층 건물 전기화법 적용을 시작한다. 건물의 거래제도 시행한다. 교통부분 전기화도 중요하다. 핀란드 헬싱키는 2021년부터 142대의 e-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체버스의 약 30%인 400대를 전기화한다. 칠레 산티아고는 2020년 말 현재 2400대의 전기버스를 운행중인데 2040년까지 전역을 전기화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터 마스다르시는 '석유 이후의 시대'라는 전략으로 '탄소 배출, 폐기물 배출, 내연기관 차량'이 없는 3무(蕪)를 지향하면서 모든 교통을 전기화할 계획이다. 대중교통수단은 PRT(Personal Rapid Transit), 오토넘(Autonom) 셔틀, 저상버스 인데 모두 전기차다. 미국 시애틀은 2030년까지 모든 공유 차량뿐만 아니라 배달차량의 3분의 1이 전기차로 전환된다. 또 '주요 도심 지역'은 대부분 자동차 통행이 제한되며 전기차 충전소는 누구나 쉽게 이용하도록 대폭 설치한다. 프랑스 우체국 라 포스테(La Poste)는 4만대의 전기트럭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안에는 USPS에 탄소제로배출 차량 및 충전소 구매에 쓰도록 4조원을 지원한다. USPS는 물류 운송 트럭의 40%를 전기화하는 계획을 발표 했다. 폭스바겐 자회사인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는 2018년부터 미국에 3500개의 충전소를 설치했으며, 2026년까지 미국과 캐나다에 총 1만 개의 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옛날 역사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듯이 미래의 길은 모두 전기로 통한다. 누가 먼저 싸게, 깨끗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미래의 선도자가 될 것이다. 한국도 미래의 선도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세상에 나만 변화지 않는다면 도태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김정인

[EE칼럼] 전기요금, 체계 자체를 손봐야 한다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있기에 적어도 상반기에는 전기요금이 오를 일은 없어 보이지만, 한전의 누적 적자가 여전히 45조 원을 넘는 상황이어서 하반기에는 다시 전기요금 조정과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 자회사로부터 중간배당을 통해 3조2000억 원을 받아 총 채권발행액이 한전채 발행 한도를 초과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송배전망 확충 등 향후 필요한 신규 투자 비용을 고려한다면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2년부터 2023년 2분기까지 전기요금은 kWh당 총 40원이 올랐으며, 2023년 11월에는 산업용 일부에 대해 10.6원 인상한 바 있다. 누적 부채가 200조 원이 넘는 한전의 자금난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필요한 인상 수준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요금 인상 폭을 기록하였기에 정부와 정치권은 전기요금 추가 인상에 대해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정작 더 중요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관련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람직한 전기요금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요금규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한전을 비롯한 전력산업 전반에 걸쳐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 중이기 때문에 거버넌스 체계 정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독립적으로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춘 규제위원회가 설립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총괄원가에 따른 전기요금 조정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총괄원가에 따른 요금조정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것은 2013년 11월이니, 벌써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전기요금 산정원칙과는 별개로 전기요금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후에는 중장기 과제로 총괄원가 규제를 유인규제 체계와 접목하여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연도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전의 전기요금 총괄원가 중 전력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85% 내외이다. 미국 전력회사의 총괄원가 중 발전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비중이 다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전의 총괄원가 중 발전비용의 비중이 높은 것은 국토가 좁고 대다수의 인구가 도시에 밀집돼 있어 송배전 비용이 낮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비용은 한전이 통제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모든 전력거래는 전력시장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한전은 전력시장의 가격결정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한전이 거래비용을 낮춰 총괄원가를 낮추고 싶어도 낮출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러한 발전비용은 대부분 국제 연료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한전의 총괄원가는 국제 연료가격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연료비용은 총괄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사업자가 통제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료비용은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그 외의 비용은 사업자가 어떻게 경영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즉 사업자가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은 별도의 유인규제 체계를 적용하여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의 전력산업을 둘러싼 환경에 주요한 변화가 발생함에 따라 정책당국은 안정적 전력공급뿐만 아니라 에너지효율 향상,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등을 추가적인 목표로 설정하게 됐다. 전통적인 전력산업의 목표는 전력공급사 본연의 역할에 기초를 두고 있어 관련 비용이 일반적인 총괄원가의 요건에 부합하면 전력공급을 통해 회수가능한 성격을 지니는 반면, 새로운 정책목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의 경우 유틸리티의 일반적인 원가와 성격을 달리 해당 비용의 규모도 커졌다. 이제 우리 전기요금 규제체계도 선진국 처럼 이원화해 한전이 책임질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해 정말 한전과 한전 직원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도록 바꿔야 할 것이다. 반대로 최근 몇 년의 상황처럼 외부의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적자가 발생했더라도, 내부적으로 통제 가능한 부분에서는 비용효율화를 달성했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해야한다. 또한 전력산업 환경변화로 인해 발생한 추가적인 비용을 적절히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요금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전기요금과 관련한 대부분의 논의는 단순히 요금 인상 폭을 얼마로 할 것이냐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요금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금을 규제하는 전반적인 체계를 손질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연제

[EE칼럼] 소형모듈원자로 사업화는 민간기업 중심으로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의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원자력 선진국들이 모두 SMR 개발에 뛰어들었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이미 여러 기가 운영 또는 건설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에 개발된 SMART의 해외 수출을 모색하는 한편으로 경제성, 안전성, 운전편의성 등을 더욱 강화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i-SMR 개발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총 3992억원(국고 2747억원 포함) 규모의 사업으로, 2028년까지 설계개발과 검증 및 규제기관 인증(표준설계인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해상용 용융염원자로를 비롯한 다른 원자로형 개발은 물론 민간기업과 외국 SMR 개발업체와의 협력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공기업 중심의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통해 대형원전 기술의 독립과 선진화를 이루고, 국내 건설과 해외 수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 공기업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이 기술개발과 검증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이 설비 공급과 건설에 참여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체계의 경쟁력은 국내외 대형원전 사업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현재 i-SMR 개발도 공기업과 국책연구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높고 다양한 전문기술의 도입도 필요해 40여 민간기업이 분담금을 부담하며 참여하고 있다. 개발되는 i-SMR의 사업화에는 민간기업의 역할이 훨씬 더 커져야 한다는 데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i-SMR 최초호기 국내 건설 사업을 공기업 중심으로 민간기업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로 신속하게 착수해야 한다. 둘째, 본격적인 국내외 건설에서는 민간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국가 차원의 원전기술 개발 역량은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중요한 이유를 좀더 살펴본다. 최초호기의 신속한 국내 건설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최대 쾌거인 APR1400형 원전 4기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은 같은 노형인 신고리 3·4호기(현 새울 1·2호기) 국내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에 세계 최초로 규제기관 인증을 획득한 SMART 원자로의 해외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국내 건설계획이 없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i-SMR은 새롭게 도입되는 모듈형 원자로이므로 정부, 공기업, 민간기업이 협력하여 위험을 분담하면서 성능을 실증하고, 향후 본격적인 상용화에 필요한 상세설계, 제작·건설, 운영기술 등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 민간 대기업들은 최초호기 건설사업에 참여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스스로 사업을 주도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주도 사업화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SMR의 이용 분야와 운영 방식이 매우 다양하여 소수의 공기업 중심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철, 반도체, 화학 분야의 에너지 다소비 대기업군은 주도적으로 SMR을 건설·운영하면서 필요한 전력이나 열을 공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폐쇄될 화력발전소를 대체하여 기존 발전공기업이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SMR을 건설·운영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숨어있는 외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민간기업이 더욱 유리할 것이다. 민간 대기업들은 과거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지금은 세계적 영향력이 더 크다. 물론 한수원은 대형 원전 국내 건설·운영 및 수출사업을 계속하면서, i-SMR 최초호기를 포함하여 국내외 i-SMR 건설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즉, i-SMR 사업화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양날개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전 기술개발역량 유지·강화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기적적으로 구축한 원전 개발 및 설계·건설 사업체계는 자유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i-SMR 개발사업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SMR의 개발과 사업화에서 민간기업의 역할이 확대하더라도 국가적인 기술개발역량의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투자자본이 지배한 웨스팅하우스의 사례나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배경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이 i-SMR 사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제도적 측면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SMR이 안전성과 운전유연성 등의 장점을 살리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 제도와 안전규제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전력수급기본계획에 i-SMR 건설을 반영하고, 이를 위한 추진 일정 및 체계 등에 대한 논의를 조속히 착수하기를 기대한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EE칼럼] 해묵은 전력망 문제 해법은?

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지금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해묵은 난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가고 있다. 전력망 문제도 그중 하나다. 동해안 등 일부 지역에서는 송전망 부족으로 이미 발전소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발전이 급격히 늘어난 제주도나 서남해안 지역도 변전소 증설은 물론 남아도는 전기를 융통할 수 있는 송전망 보강이 시급한 실정이다. 더구나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난으로 인해 전력망의 복원력과 신뢰도 유지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의 전력망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정부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발전소 신설에 따른 전력 수송을 위한 송전계획도 함께 수립한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는 계획대로 추진되는 송전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년씩 지연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HVDC, 765kV 등 시급한 국가 기간송전망은 하세월이다. 현재 상태라면 언제 설비 준공이 가능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한전은 오직 대용량 송전망 신증설이라는 접근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하고 있지만, 충분하고 강건한 전력망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발연대인 1970∼1980년대에 시작된 발전소 건설과 전력망 신설은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수요는 늘어나고 대규모 발전소가 해안선을 따라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거리는 멀지만 한꺼번에 많은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것이 비용도 저렴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법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는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력산업의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 수요 또한 산업구조 변동과 인구 등의 영향으로 수년째 거의 정체 상태다. 수도권 집중이 계속된다고 하지만, 전기 다소비 산업의 지역적 분산으로 수도권의 전력 수요 비중은 더 이상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송전망 건설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원거리 송전망은 발전소와 달리 많은 지역을 통과하는 만큼 이해관계자가 많다. 자기가 사는 지역으로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송전망 건설을 위해서는 당연히 각종 보상비용이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나마 비용으로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환경 훼손, 경관 문제 등으로 인해 건설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로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전력산업을 지탱해 오던 대규모 발전과 원거리 송전이라는 패러다임이, 앞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시스템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도 지금까지의 대규모 공급중심의 방식에서 수요중심의 분산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동안 대규모 발송전설비에 대한 기술적 경제적 우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생에너지, 열병합 등 분산형 전원과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거나 심지어 역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몇해 전 분산에너지를 활성화법을 마련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한전이 독점하는 송전사업에 민간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송전망 건설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민간의 역량과 자본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상풍력단지로부터 송전망 건설을 위해 해상풍력 설치 시 송전망운영자(OFTO)를 선정하고 있다. 우리도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송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접근방식을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한계에 달한 한전의 재무적 문제를 제외하면 정부나 한전이 송전망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보다 더 큰 비용이 필요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공급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전기요금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전력수급 구조상 기존의 송전 방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는 필수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 현재의 전력 수급은 지역 간 불균형이 매우 크다.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체 발전 설비가 거의없는 지역도 많다. 이는 타 지역 전력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로 전기가 남아도는 지역은 발전 설비 건설이 쉬운데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을 쓰는 산업체나 시설이 적다. 이런 지역 간 불균형이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송전망을 구축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이제는 송전망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새롭게 전력 수요를 유발하는 데이터센터나 대규모 시설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송전수요를 줄일 수 있다면, 막대한 전력망 확충비용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분산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기술경제적 토대는 만들어져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과 시장 신호만 작동하게 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개발시대의 패러다임과 마인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확장의 시각에서 계속 설비 스톡만 늘리는 방식은 시스템의 진화를 저해할 뿐이다. 전력망 구성에 대한 의사결정 기준과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 개발연대의 경험과 사고는 진화하는 기술 변화와 다원화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 전력망 구축에 대한 접근방식도 혁신이 필요하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EE칼럼] 뒷전으로 밀린 열 에너지 정책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우리나라 에너지소비 중에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21.5%로 전체 에너지사용량의 5분의 1에 달한다. 정부가 발표한 다양한 중장기 계획을 살펴봐도 2050년 전력 소비 비중은 25~35% 수준이다. 이는 산업, 가정, 건물, 수송 부문 등 우리나라 에너지사용 각 부문에서 주로 소비하는 에너지 형태가 열이나 동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정 및 건물의 경우 대부분 열 에너지가 차지한다. 수송 부문이 그나마 수소, 전기차 등으로 정책적 이슈를 유지하고 있고 산업의 주요 동력원들 역시 수소환원제철공법 등으로 분석의 대상이 되어있다. 반면 가정과 건물에서 사용하는 열 에너지에 대한 정책은 빈약하다. 겨울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정책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 효과적인 난방 효율 개선 정책이나 새로운 열 에너지 보급 정책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열 에너지에 대한 통계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분석과 정책이 나오기도 어렵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 부문 에너지소비를 100이라고 할 때 난방 및 온수용 에너지 비중은 약 65%를 차지한다. 그리고 취사는 10% 수준이며 냉방은 5%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정용 도시가스 소비의 약 88%가 난방에 쓰인다고 추정된다. 국민이 생활에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대부분은 난방, 온수, 취사 등 열 에너지다. 주거 형태의 변화와 주택 단열 및 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난방 및 온수 관련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는 10%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열 에너지와 난방 부문에 보다 획기적인 정책과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가면 이러한 공백 현상은 더욱 선명해 진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정책만 보일 뿐 열을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보기 어렵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생산량 중 열이 더욱 더 많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를 보면 2021년 전세계 재생에너지 공급량 중 바이오와 폐기물 에너지가 65%, 지열이 5%이며 나머지가 수력, 태양광, 풍력 등이다. 우리도 2021년 재생에너지 공급량 중 바이오 및 지열이 42%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책과 제도는 모두 전력 부문에 치우쳐 있으며 난방에 도움이 될 열을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 때 전국에 보급되었던 태양열 주택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전력 편중 정책은 행정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의 재생에너지 정책 보고서에도 태양광, 풍력 등 전력 부문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이슈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열을 생산하는 태양열, 바이오, 지역, 폐기물 등 재생에너지는 다루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에 밀려 힘을 못쓰고 있는 에너지 재사용(cascading) 및 효율화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에너지원에서 발생한 열을 열 발생원 주변에서 최대한 사용하는 방법은 유럽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산업단지의 남은 열을 주변의 주택에 공급하거나 지하철 터널 공간을 사용하는 열교환, 수입 액화천연가스의 기화열을 사용하는 방안 등이 제안되었으나 이들에 대한 지원은 재생에너지 지원책에 비하면 크게 낮아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1980년대에 시작한 천연가스의 도입은 연탄으로 난방하던 시대를 끝내고 국민들이 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도 편안하게 겨울을 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때 개발된 열 에너지 공급시스템은 아직도 신도시와 아파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열 에너지 옵션 마련과 열에너지 공급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열을 포함한 건축 기술과 신규 건물이 열 및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해 신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패시브하우스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건물의 스마트화를 꾀해야 한다.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열 에너지 정책의 개발과 토론의 장이 활발히 열리기를 기대한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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