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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지방에서 전기차 보기 힘든 이유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기나긴 장마와 역대급 재해를 몰고 온 7월 중순,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가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전기자동차가 화두로 떠올랐다. 개회식에서 전기자동차산업의 미래전망에 대한 전문가 초청강연이 이뤄졌다. 또 본 행사에서는 전기자동차 부문 특별 세션과 자동차 업계 대표이사의 특별 강연이 마련되는 등 전기 산업과 자동차 산업을 함께 연결해서 생각해 보는 지식교류의 행사가 많았다. KPMG 인터내셔널의 ‘Global Automotive Executive Survey’와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등 해외 주요 리서치 기관들은 오는 2030년 세계 전기자동차 점유율이 25~33%에서 최대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점유율 예측치 범위를 이렇게 최대 15%포인트나 넓게 잡은 것은 전기자동차가 각국 정부의 전기차 지원 및 활성화 정책과 배터리 원자재 수급난 여부,이차전지 기술의 진화 정도, 그리고 충전인프라 확충과 소비자 선호도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있고 여기에 변수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서도 전기차 산업 활성화의 가장 큰 변수는 주행거리와 충전인프라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한국전기연구원 본원이 위치한 경상남도 창원에서 학술대회 장소인 강원도 평창까지 이동할 때도 함께 참석하는 동료들과 렌트카를 이용했다. 그런데 차량 선택지에서 전기자동차는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400km가 넘는 거리를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켜고 전기차를 운행하려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충전해야 하는데 충전소가 모든 휴게소에 있지도 않을 뿐 더러 충전 대기와 충전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장거리 이동은 1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우이지만, 그 때 예상될 수 있는 불편함이 전기 자동차를 선택하는 데 많은 제한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전기자동차는 출퇴근 등 근거리나 시내 이동 위주용 자동차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전기자동차가 장거리나 시외 이동용으로 일반화되고 활성화되려면 기본적으로 주행거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도록 배터리 용량이 더 커져야 하고. 충전 시간 단축기술과 충전소 등 기본적인 인프라도 훨씬 더 강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런 제약 때문에 전기자동차 선호도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필자가 지난해까지 근무했던 수도권 지역에서는 주행 중에 전기자동차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전기자동차 주차 공간이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 근무하고 있는 경남 지역에서는 1인당 자동차 등록 비율이 0.6으로 0.5의 경기도 지역이나 0.3의 서울 지역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주행 중에 전기자동차 보기가 쉽지 않다. 전기자동차 주차공간은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여유가 있다. 따라서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 등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상황에 맞춰 차별적인 활성화 전략을 세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구 대비 자동차 등록 비율이 1.0으로 가장 높은 제주 지역이 높은 전기자동차 비율을 달성한 것은 이유가 있다. 물론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기자동차 민간 보급을 시작한 제주 지역도 보급목표의 절반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했기 전략을 수정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필자도 곧 20년이 되어가는 내연기관 차량에서 요즘 안전과 직결될 수 있는 이상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어서 신차 구매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것저것 생각해 볼 때에 선뜻 전기자동차로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마케팅 전략의 주요 공략 대상이며 입소문의 진원지로 알려진 선각 수용자(early adopter) 성향은 아닌 것 같다.손성호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EE칼럼]명분 없는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폐지해야

우리나라의 여름은 고온다습하다. 근래 들어서는 폭염이 더 잦아지고 강도도 세지고 있다. 올해도 장마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후온난화로 6월부터 때 이른 더위와 폭염이 닥치며 냉방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사무실이나 가게는 에어컨을 가동한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의 에어컨 사용은 아직도 적지 않는 부담이다. 폭염에 견디기 어려울 때는 도리가 없지만 가능하면 에어컨 가동을 줄이고 선풍기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전기요금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 상당히 낮지만 주택용은 아직도 누진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전기사용량은 300kWh 정도다. 이 중 2인 이상 가구의 월 전기사용량은 250∼500kWh로 전기요금이 대략 월 4만∼5만원이 든다. 에어컨을 1대를 매일 4시간 정도 가동할 경우 전기사용량이 두배 가까이 늘어나고 여러 대를 가동하면 더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여름철에는 가구당 전기사용량이 500kWh에서 많게는 1200kWh 까지 늘게 된다. 월 400kWh를 사용하는 일반가구에서 에어컨 2대를 매일 사용하면 전기요금은 22만원으로 늘어난다. 전기 사용량은 2배가 조금 넘게 느는 데 비해 요금은 4배로 늘어나는 불합리한 구조다.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는 과거보다는 단계가 많이 축소됐지만 아직도 사용량이 많아질 수록 구간별로 kWh당 120원, 215원, 307원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전력사용량이나 피크수요 기여도가 훨씬 높은 업무용이나 산업용은 계시별 또는 단일요금이다. 아무리 많이 써도 사용량에 따른 단가는 동일하다. 여름철에 빌딩이나 상가에서의 과도한 냉방기 가동도 이런 요금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주택용에만 지금까지도 누진제를 적용해야하는 당위성이나 효과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누진제로 인해 주택용 전력소비는 줄어들겠지만 이 보다는 국민들의 불편과 불합리한 비용부담으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크다. 재화나 서비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받는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를 것이고 반대면 내려갈 것이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냉난방 수요가 높아지는 여름철이나 겨울철에는 연료비가 높고 효율이 낮은 비싼 발전소까지 가동해야 하므로 한계비용, 즉 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수요가 많은 피크시간대에 요금을 높이고 반대일 때 요금을 낮추는 것은 이런 수급여건에 부합한다. 우리나라의 전기 수요패턴은 여름철에는 평일 오후부터 일몰전후까지, 겨울철에는 저녁시간대에 수요가 집중돼 공급비용이 높다. 따라서 이 시간대를 제외하면 수요가 높지 않고 공급비용도 낮아지게 된다. 최근 여름철 전력수요는 평일 주간시간대 8400만 kW를 넘나들고 있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평일에 비해 전력수요가 1000만 kW 이상 줄어든다. 최근 태양광 설비의 영향으로 피크 발생시간이 다소 불규칙하지만 대체로 저녁 8시 이후에는 전력수요가 줄기 시작한다. 주택용 냉방수요는 대체로 가족이 모이는 평일 저녁시간대와 공휴일에 많다. 이 시간대는 전력설비에 여유가 있어 공급비용이 낮은 시간대에 해당한다. 주택용 냉방수요가 늘더라도 전력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택용 요금구조는 전력설비가 남아돌 때는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할 때 사용하게 하는 꼴이다, 수급여건과 비용에 부합되는 요금체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된다면 에어컨 사용에 따른 주택용 전기사용 행태나 요금 부담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주택용에도 실시간요금제나 계시별 요금제가 적용되면 여름철에 ‘요금폭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업무용과 산업용에는 계시별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10여년 전 부터는 주택용에도 시간대별 계량이 가능한 AMI 미터기가 보급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전력수급과 공급비용을 반영한 합리적인 요금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 주택용 요금체계의 개선에 따른 효과는 크다. 첫째, 합리적인 전력소비가 이뤄진다. 구호만으로 소비억제를 외치기보다는 전력수급 여건이 투영된 요금신호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설비가 빠듯해 공급비용이 높을 때는 수요를 억제하고, 설비여유가 많은 시간대로 소비를 유도하는 요금정책이 필요하다. 둘째는 국민의 불편이 줄고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편익이 높아진다. 주택용 수요는 다소 늘어나겠지만 전력수급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셋째는 소비자 요금의 형평성 문제 해소다. 전력설비가 부족할 때 공장가동을 위해 일반가정의 에너지 절감을 강요하던 시대는 이미 옛날 얘기다. 불합리하고 경제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소비자간 차별적인 요금구조를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진화하는 전력에너지시스템에 맞춰간다. 에너지 절약도 무원칙한 방식에서 벗어나 실시간이나 시간대별 요금으로 합리적인 소비반응을 유도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주택용 전력사용을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에너지절감도, 전력수급 정상화도 달성하기 어렵다. 분산에너지, 에너지프로슈머, 섹터커플링 등 전력산업의 변화와 사회경제적 발전에 부합하는 전력시스템 운영과 함께 요금구조를 손질해야 한다.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EE칼럼] 기후위기 극복과 COP28을 앞둔 과제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은 지난 6월26일 기온이 41.1도로 1961년 6월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올해 7월 미국 남서부에서는 49도의 살인적인 고온이 몇 일간 계속됐다. 데스벨리 지역은 16일에 53.3도까지 올랐다.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1만명을 넘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폭염 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 1월에 중국 신장 지역에서는 온도가 영하 52도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지구가 기후 환경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산불과 관련해서는 캐나다 전역이 두 달 넘게 3000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고 그 면적 만도 우리나라 면적(9만8000만㎢)의 5분의 4를 넘는다고 한다. 특히 과거에는 자주 산불이 발생하지 않던 동부에서도 이례적으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며 이재민 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유럽도 그리스와 스페인에 대규모 산불 발생으로 5000여명이 대피하는 등 커다란 피해가 발생했다. 이런 산불은 직접적인 피해 이외에 다른 지역의 공기질에서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캐나다의 산불 연기는 북미 지역을 넘어 중남미와 유럽에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의 이슈가 이제 대기질 문제에 까지 깊이 파고들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폭염과 함께 집중 호우로 인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6월 시작된 장마가 7월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국 연강수량은 1306.3mm인데, 올해 7월 둘째 주 장마전선이 충청권에서 정체하며 지속적으로 장대비를 퍼부으면서 이틀간 충남 청양 450mm, 군산 406mm, 세종 368mm, 부여 353mm 누적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피해를 불렀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 강수량과 더불어 시간당 30~60mm의 집중 폭우가 관측되기도 했다. 이번 폭우는 시간당 폭우와 함께 일일 강수량도 매우 커서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 방식이나 관리 방식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외국의 사례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은 파키스탄이다. 지난해 6월 몇 주 동안 파괴적인 홍수가 파키스탄 전역을 휩쓸며 1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약 3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처럼 폭염, 산불, 폭우, 가뭄 등의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자연 재해는 그 크기와 빈도, 그리고 범위가 갈수록 상상을 넘어가고 있다. 중국정부는 탄소중립과 관련해 2030년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최정점에 달하고 2060년까지는 탄소중립사회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탄소중립 사회 실현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중국에 설치된 태양광 용량은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설치 용량보다 크다. 풍력 분야도 설치 용량이 세계 최대규모로 2~7위 국가의 용량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력 안정성이 문제가 되면서 현재 중국에서는 많은 수의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지방 정부는 올해 1분기에 석탄을 이용한 발전을 2021년보다도 많이 승인한 바 있다. 이는 기후문제보다도 시급한 경제성장과 에너지 안보 측면의 결정으로 보인다. 미국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미국은 한편으로 청정에너지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알래스카의 대규모 석유, 가스 시추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양 강대국도 모두 경제 성장과 배출량 감축 목표 감축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어느 정도의 시기에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상습적인 음모론이니 과학자들의 엄청난 거짓말 선동이니 하던 기후 위기의 문제가 이제 전 지구인들이 그 다급성과 합당한 실행 계획에 동의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각국이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는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여러가지 상황을 저울질 하는 모양새다. 올해 11월에는 두바이에서 파리협정의 전지구적 이행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첫번째 회의인 COP28(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 열린다. 이를 염두에 둔 듯 한중간의 마찰 국면에도 미국의 존 캐리 기후 특사가 지난 16일 중국을 공식 방문하며 주요 기후 목표에 집중하고 협력하기 위한 어떤 의견을 도출하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자 기후 환경과 관련해 전세계 오염 물질의 약 40% 정도를 발생하는 최대 오염원이지만 기후 환경의 정책과 우선 순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세계질서 아래서 우리나라는 COP28을 앞두고 원칙과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 등 기초한 국가목표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로 실리를 쵀대한 챙겨야 한다.박기서 전 대기환경학회 부회장

[EE칼럼]탄소중립, 빅데이터 기반 스마트 에너지 절약부터

디지털 자산(Digital Equity) 전략 중심의 포용적 스마트시티로 잘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2011년 새로운 조례를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 권역 내 1만ft²이상의 모든 기축 상용건물의 에너지성능을 규제하는 ‘상용빌딩 에너지성능조례(EPO· Energy Performance Ordinance)’가 그것이다. EPO는 해당 빌딩의 주인(또는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규제로, 도시 내 비슷한 환경 및 규모의 빌딩들과 비교해 해당 빌딩의 에너지 성능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스스로 진단한 결과와 이를 기준으로 향후 건물에너지 성능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실행계획도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조례를 만들면서 권역 내 상용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매년 2.5%씩 줄여 2030년에는 1990년 소비량의 절반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2030년까지 기축 상용건물 중 50% 이상을 넷제로화하겠다는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목표에 부응하는 조례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 세입자가 아닌 건물주와 투자자에게 이런 의무를 부과한 이유는 명백하다. 세 들어 영업하는 사업자들이 에너지 소비 절감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또는 건물의 에너지설비가 노후화하거나 고장으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건물주 입장에서는 매월 부과되는 에너지 비용을 세입자에게 그대로 떠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이 조례 제정 후 에너지 소비 절감이라는 지자체 목표 달성과 함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이어졌다. 건물주들은 대부분 에너지설비 전문가가 아니어서 해당 건물의 에너지성능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줄 감리자와 에너지 소비 저감 계획을 만들어주고 실행할 전문기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는 EPO 같은 조례 도입으로 250개 이상의 에너지 성능평가 및 효율 개선 전문기업이 성업 중이다. 에너지 성능평가 및 효율 개선 기업들은 정확한 건물 에너지성능의 진단과 효율 개선계획 수립에 있어 건물 내외부의 에너지 소비 및 공급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당시 유틸리티 기업들이 독점하던 에너지 빅데이터를 민간에게 과감히 개방하게함으로써(예: 그린버튼얼라이언스) 창업기업들이 차별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애플에서 엔지니어로 있던 토니 파델이 에너지 효율 스타트업인 NEST를 2010년에 창업하고 이를 2014년에 구글에 32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엑시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2년 한해 전 세계는 청정에너지 분야에 약 1조7000억달러(약 2경원) 이상 투자했다. 이 중 대부분이 기존의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을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바꾸는 재생에너지와 분산형 에너지를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전력망 등 에너지 인프라 선진화, 에너지산업을 디지털화하고 수송 분야를 전기화하는 데 집중 투자됐다. 이와 함께 이제는 글로벌 에너지의 주도권이 ‘자원보유국’에서 ‘기술보유국’으로 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도 잘 알 수 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수출 강국인 우리에게는 탄소중립발 에너지 대전환이 큰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무탄소 전력으로의 에너지 대전환에 있어 글로벌 대기업들의 움직임과 함께 신기술 창조의 텃밭인 스타트업들은 더욱 활발하게 창업하며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이 중 특히 주목할 분야는 에너지 효율 분야로, 이 분야에만 6100개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이름을 올렸다. 정부는 최근 ‘스마트 에너지 절약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주요 대상으로 상업 및 공공 부문에 대한 에너지 절약 추진 방안을 마련했다. 첨단 ICT 및 절약 신기술을 활용하고 수요관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으로, 에너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효율향상 핵심기자재 설비투자에 대한 지원 강화도 그 내용에 반영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대형건물 목표 에너지원단위 제도의 도입’이다. 그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과 국내외 스타트업들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에너지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새로 도입될 정부의 바람직한 규제 및 지원 정책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토니 퍼델과 같은 에너지 스타트업 창업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박진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연구부총장

[EE칼럼]산림분야가 선도하는 대규모 온실가스 국외감축활동

우리나라는 파리협정6조에 맞춰 2030년 한해동안 최소 3750만톤의 온실가스 국외감축결과(ITMOs)를 국내로 이전해 달성해야 하는 도전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본격적인 국외감축 활동을 위한 국제사회의 구체적인 규칙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감축 대상지를 정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대규모 국외감축활동을 추진해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야 할 때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CDM(청정개발체제) 사업과 유사한 소규모 프로젝트 단위의 활동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CDM 사업의 결정적인 문제점인 충분한 양의 ITMOs 확보가 어렵다. 소규모 다수의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상대국과의 협의는 물론 국내에서 이를 관리하는 데도 많은 행정비용 발생을 동반한다. 따라서 국외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대규모 감축활동을 협력 상대국에서 추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산림분야는 국제사회에서 2030년까지 가장 비용효과적으로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이 실제로 가능한 분야로 꼽힌다. 국가나 주단위로 대규모 감축활동을 추진할 수 있는 이른바 ‘REDD+ 바르샤바 메커니즘도’ 국가 간 합의로 이미 유엔 차원에서 마련돼 있다. 산림청은 얼마 전에 이 방법을 활용, 대규모 ITMOs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인 라오스의 퐁살리 주를 대상으로 양국 간의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마련을 위한 정부 간 워크숍을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서 개최했다. 앞으로 한 두 차례 워크숍 더 진행한 뒤 양국 간에 필요한 협정체결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2년마다 있을 유엔 보고절차(BTR) 주기를 감안하면 2026년에 첫 국외감축 활용결과를 유엔에 보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섞인 전망도 해본다. 하지만 선례가 없는 새로운 도전이기에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첫째, 파리협정 제6조의 ITMOs는 그 사용목적이 국가 국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활용을 비롯한 3가지 목적 중 하나로 특정돼야 하는 데 일단 사용목적이 특정되면 후에 다른 목적으로 전환이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정부가 라오스에서 국가 온실가스 국외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ITMOs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이를 전제로 계획이 추진돼야 한다. 만일 기업의 ESG 목적 달성을 위한 목적으로 ITMOs를 발행한다면 후에 국외감축목표로의 사용목적 전환이 어렵다. 둘째, 국외 감축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민간부문의 경우 많은 개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자발적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크레딧 발행은 파리협정 제6조 체제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라오스의 경우 기존 자발적 시장메커니즘(VCM)을 활용해서 발행된 크레딧은 현 단계에서는 국가 인벤토리상의 상응조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우리 정부의 국외감축목표 달성 차원에서 국외감축활동에 관심이 있는 민간기업은 처음부터 정부와 함께 유엔에서 개발된 REDD+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기업이 국가의 국외감축 목표가 아닌 ESG 등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자발적 시장메커니즘을 기업차원에서 계속 활용할 수는 있다. 셋째, REDD+ 메커니즘을 파리협정 제6조와 잘 연계해 활용해야 한다. 유엔의 REDD+ 메커니즘은 호스트 국가의 산림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결과(MOs)를 크레딧 형태로 생산하는 방법이지, 이를 ITMOs로서 우리나라와 같은 사용국에 이전해 활용하는 방법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기존의 REDD+ 메커니즘에 더해서 파리협정 제6조 (특히 제6조2항 협력적 접근법)에 따라서 이전 및 보고를 하기 위한 호스트 국가의 제도와 이행 역량을 강화하고, 양국간에 이를 전제로 한 협력 메커니즘 구축 등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ODA 활용, 국내 전문가 양성 등도 필수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라오스에서 추진될 산림분야의 국외감축 노력이 산림분야는 물론 에너지 등 다른 분야의 대규모 국외감축 노력에도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E칼럼]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기술 국산화에 달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산업현장 곳곳을 다녔다. 점차 웅장한 모습으로 위용을 갖추는 LNG 비축기지와 허브 터미널 공사현장의 수많은 근로자들 사이에서 뿜어나오는 활기찬 기운, 수많은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이 에너지 전환과 저탄소·무탄소 기술을 연구하고 실증하는 현장 등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 여러 발전소뿐만 아니라 송전탑, 동해 1기지, CCS 기술개발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수소와 암모니아 혼소발전의 실증 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에너지 발전 분야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역동성은 과거 반세기 전에 포항제철이 만들어지고, 경부고속도로 길이 뚫리고, 조선소가 세워지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과 비슷하다. 에너지 산업의 부흥을 통해 국가 신성장동력을 확보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강건함과 경제적으로도 강건한 시스템을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탄소중립은 한두 해로 끝날 과제가 아니다. 우리 기술과 자본과 노동력으로 산업 생태계를 갖춰 나가면서 수십 년간 진행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2050년 무렵에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상당히 비관적으로 바뀐 상황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고갈돼 2060년부터 수백 조 원의 정부 재정이 매년 투입돼야 하고, 경제성장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죽하면 온실가스 넷제로가 경제상황 악화로 달성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 정도다. 주요국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 제조업을 육성 내지 보호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등 거의 모든 자원을 풍부하게 가진 미국 조차 자국의 노동과 기술과 자본으로 자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까지 일관된, 즉 공화당과 민주당을 초월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정책도 ‘코리아 퍼스트 정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발표된 바와 같이 석탄발전기가 LNG 발전기로 전환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국산 발전기 육성 정책이 동반돼햐 한다. 사람도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충족해야 한다고 하는데, 국산 기술의 가스터빈이 7000 시간 이상 운전 확보되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LNG 발전기는 향후 수소혼소나 수소전소를 통한 탄소중립에 기여할 것이다. 언제까지 해외 주기기 제작사에만 의존할 일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에 이어 최근에는 방위산업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그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발전시장이라고 해서 그러지말라는 법은 없다. 기술의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더 나아가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ZTE의 설비를 교체하는 이른 바 ‘Rip and Replace(뜯어내고 교체하기) 프로그램’를 가동 중이다. 초기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의 예산을 넘어서서 이제는 50억 달러 (6조5000억 원)를 넘는 투자를 단행하면서까지 이 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국가안보와 상업기술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태양광뿐만 아니라 인버터까지도 우리 자체의 산업역량을 갖춰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태양광 패널은 사이버 해킹에 취약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보 차원에서도 국내 산업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 모든 것을 국산화하자는 것도 아니며 이는 오늘날 국제분업 체제에서 가능하지도 않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향한 먼 여정 속에서 기술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우리의 주도적인 기술과 산업 생태계 구축 중심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함으로써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연도에 쪼그라든 국민연금으로 걱정하는 나라가 아닌 다시 웅비하는 성장국가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E칼럼]선제적이고 근원적인 기상재난 대응 서둘러야

유례 없는 긴 장마와 폭우로 너무나 안타까운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이상 기후로 인한 재해와 피해가 갈수록 더 빈번하고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해양대기청의 환경정보센터가 발표한 ‘2022년 재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상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160억달러(약 274조원)으로 추산됐다.지난해의 피해규모는 2017년과 2011년에 이어 세번째로 크다.특히 1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초래한 대형재난은 1980년부터 2022년 사이에 연평균 7.9건이었지만 2018∼2022년으로 좁혀보면 17.8건으로 최근 5년 새 2배 이상 늘었고 이 기간 경제적 피해액은 595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2018년 이후 매년 평균 1191억달러(약 150조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그 피해액은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 기상 재난은 뉴 노멀이 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로 올해만 해도 엘니뇨 현상으로 지구 온도가 평균 0.2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엘니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10월과 11월에는 기온이 이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관도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82~1983년 엘니뇨로 인한 이상고온으로 4조1000억 달러의 피해를 초래했으며 1997~1998년에는 피해규모가 5조7000억달러로 늘었다. 에니뇨가 발생했을 때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3% 정도 감소했고, 페루나 인도네시아 같은 열대기후 국가는 GDP가 10%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들고 가뭄과 홍수, 산불 등이 일어나며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언론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엘니뇨가 원자재나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결코 간과 할 수 없다. 기상재난은 유가,철,비철,금속 등에 타격을 준다. 특히 광산의 경우 집중호우 등으로 침수되면 채굴량이 줄어 수급에 영향을 준다. 칠레,페루 등 주요 구리·리튬 산지 등은 이로 인한 공급 차질이 자주 발생한다. 2019년 폭우로 칠레 국영 광산기업의 1분기 구리 생산량은 전년 대비 20%나 줄었다. 한국 사발전사들은 인도네시아의 폭우로 석탄 공급에 차질 빚어 전력생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기상재난은 에너지 공급에도 막대한 차질을 야기할 수 있다. 원자재 수급은 물론이고 지금 처럼 장마가 장기간 지속되면 태양광이나 풍력의 발전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갈수록 악화하는 이상기후에 대응하는 근원적이고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에너지분야에서 신개념의 에너지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의 취약성을 보완하면서 에너지의 공급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분야별로 세밀하면서 다양한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 일부 신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먼저 발전분야에서는 기존의 원전과 화력,태양광 및 풍력 등의 발전원과 함께 바이오메스, 양수발전, 소수력, 조력 발전 등의 다양한 발전원을 확보하는 데 신경써야 한다. 또 수송분야에서는 바이오 연료, 예컨대 바이오 디젤, 특히 바이오 에탄올 등의 대체연료를 적극 개발 보급해야 한다. 바이오 디젤 혼합비율을 5%에서 7%로 늘리기는 했지만 이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바이오 에탄올도 중국, 인도, 미국 남미 등 거의 30개국에서 이용하고 있고 유럽의 항공사는 의무적으로 바이오 항공유 사용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 조선분야에서도 이런 바이오 연료의 공급은 이미 기정사실화 됐다. 폐기물을 이용한 연료나 원료의 대체도 필수적이다. 플라스틱이 대표적이다. 이미 전 세계는 ‘순환경제’라는 슬로건 아래 광물 자산의 재활용(흔히 도시광산이라고 한다), 플라스틱의 이용 극대화와 사용최소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탈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만들어 사용을 최소화 하려한다. 물론 한국도 동참하고 있다. 결론은 명확하다. 한국과 같이 에너지 공급이 취약한 나라 일수록 다양한 에너원을 확보해야 한다. 에너지원의 다양화야말로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부터 국민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유언대신 "청년들 잘 부탁한다"고 했다.에너지안보와 에너지원 확보는 미래의 청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김정인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빚더미 한전, 신재생에너지 비용 감당할 수 있나

재무상태가 극히 나빠진 한국전력이 늘어나는 신재생에너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전은 2012년부터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로 해마다 거액의 RPS 이행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RPS는 500MW 이상의 발전설비(신재생에너지설비는 제외)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올해 초 개정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에 따르면 RPS 의무공급 비율은 올해 13.0%에서 2026년 15.0%, 2030년엔 25.0%로 높아진다. 25% 목표 달성 연도를 당초 2026년에서 4년 뒤로 미뤘지만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이나 일조량, 풍량, 계통여건, 주민수용성 등을 고려할 때 이 목표 달성은 도전적이다. 현행 RPS 제도 아래서 발전사업자는 할당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자체 생산하거나 다른 신재생에너지 생산자로부터 인증서(REC)를 사들여야 한다. RPS 이행 비용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입하는 한전이 1차적으로 부담한다. 이 비용은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전기요금에 얹어 회수되는 게 맞지만 실제로는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한전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한전의 RPS 이행 비용은 2020년 2조31억원에서 지난해엔 3조 7507억원으로 2년 새 87.2%나 급증했다. 한전은 전력시장을 통해서 뿐 아니라 전력시장 외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구입한다.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자로부터 직접전력거래계약(PPA)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일정한 가격(SMP·계통한계가격)으로 구입해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물론 전력시장 외에서 자가용(BTM· Behind the Meter)으로 생산·소비되는 신재생에너지 전력은 한전이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에서 한전이 부담한 PPA 이행 비용은 2020년 8980억원에서 지난해 3조 6054억원으로 2년간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천연가스 가격과 SMP 급등이 주된 원인이다. 지난해이 경우 태양광 에너지가 신재생에너지 부문 PPA의 99.6%(금액 기준)를 차지했을 정도로 태양광 에너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0년에 kWh당 평균 68원이던 SMP가 지난해 200원선을 돌파할 정도로 급등해 한전의 전력구매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정부는 급기야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간 SMP상한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한전의 부담 증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뜩이나 한전은 송·변전 설비 등 계통 확충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올해 초 발표된 제10차 송·변전 설비계획을 보면 송전설비는 2036년까지 5만7681C-㎞로 2021년보다 1.6배 늘리는 것으로 돼 있어 여기에만 56조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막대한 적자와 부채를 짊어진 한전으로선 이 자금을 조달하기가 벅차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아무리 늘려도 계통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전력이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공급될 수 없다. 특히 국내 태양광발전 설비가 밀집된 호남지역은 송·변전 설비 부족 현상이 심각해 계통연계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접속 대기중인 설비만 수십 GW에 달한다. 전력당국은 계통확충이 미흡한 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은 물론 기저전원인 원전의 출력 제한까지 실시하고 있다. 지난 봄철 전력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태양광 전력 공급이 급증해 송·변전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영광 한빛 원전의 출력을 10~25% 낮추기도 했다. 발전설비의 출력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실이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게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정격용량은 2023년 32.8GW에서 2036년에는 108.3GW로 증가한다. 3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설비 용량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폭적인 계통 확충이 불가피하다. 한전은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부채가 192조8000억원, 부채비율이 459.1%에 달한다. 주가도 크게 떨어져 증시 시가총액이 13조여원으로 삼성전자의 33분의 1 수준인 13조여원에 불과한 한전이 계통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신재생에너지 계통설비 투자가 저조할수록 전체 계통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전력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결국 계통확충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전의 재무구조 정상화와 이를 위한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불가피하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EE칼럼] 탄소시장 동맥경화 근원은 한전의 전력시장 독점

근래 들어 흔히들 탄소 배출권 시장이 온실가스 감축에 제 역할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출권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정부가 대주주인 한국전력이 소매전력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 시장이 경직돼 있다 보니 가격 인상요인이 있어도 적시에 전기요금을 올리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전기요금과 분리시켜 배출권 구매비용을 담은 기후환경요금이란 항목을 신설했지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배출권 구매비용이야 객관적으로 나오지만,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각종 효율 개선 시설투자나 이를 위한 인건비 등 다른 모든 비용 요인은 투명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발전사에게 온실가스를 자체 저감해서 배출권을 판매하도록 유도하기는커녕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배출권을 구매해서 써 버리고 소비자에게 기후환경요금으로 청구하도록 간편한 퇴로를 권장하고 있다. 이것이 배출권 수급 균형 불균형의 근본 원인이다. 한때 4만원 넘게 치솟았던 탄소 배출권 가격이 최근 일부 상품은 1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2050 탄소중립까지는 아니더라도 2030 감축목표도 벅찬 상황인데도 탄소배출권 가격이 이처럼 바닥을 기는 것은 2018년부터 도입된 배출권의 이월제한 (잉여 배출권을 미래 연도 사용을 위해 무제한 저축하는 것을 규제) 정책 탓이다. 기업들은 배출권이 남아도 묵혀두려는 경향이 커서 시장에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월제한 정책이 없으면 배출권 매물 공급이 부족해 가격 폭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니 해당 규제를 풀 수 없는 정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배출권 수급불균형의 근본 해법은 일반인들이 거래하는 주식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보통 주식이라는 자산을 살 때는 가치의 증가, 곧 가격의 상승을 기대하고 산다. 그럼 언제 주식을 매각할까? 전업 투기꾼처럼 가격 하락장에 배팅해 공매도라고 하는 방식으로 투자할 수도 있지만, 그런 방식을 제외한다면 결국 다른 투자처가 있다든가 생필품을 구매하는 등 실질적으로 현금이 필요할 때다.배출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일단 할당을 받은 배출권을 기업들이 팔려고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첫째로, 전통적 ETS(Emission Trading Scheme)의 개념대로 온실가스 저감 비용이 배출권의 매각대금보다 저렴할 때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부분 에너지 효율이 최고 수준이므로 저감 비용이 배출권 매각대금보다 적기가 힘들어 조건이 성립되기 쉽지 않다. 더구나 향후 고효율 에너지 저감 사업이 진행될수록 추가적인 저감 잠재력이 더욱 줄어들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둘째는, 온실가스 저감 비용이 상품가격에 쉽게 전가될 수 있을 때 배출권 매도수요 창출이 가능하다. 이것이 핵심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에게 모든 저감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탄소집약적인 제품을 쓰는 최종소비자로 하여금 해당 제품에 대한 가격 부담을 늘려 수요를 줄임으로써 궁극적인 저탄소 사회로 나가자는 게 근본 취지다. 물론 일부 산업부문은 값싼 해외 제품들과 가격 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사리 탄소 저감가격을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부도 무상할당 여부를 결정할 때 해외무역집약도를 감안한다. 또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혹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G7을 정상회의에서도 언급한 기후클럽 등도 무역장벽화을 통해 가격 전가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발전전환 부문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해외와 전력 그리드로 연결이 안돼 경쟁에 노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론 가격 전가가 자유로워야 한다. 늘어난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전력 도소매 시장에 온전히 전가시켜 소비자 요금에 반영만 하면 된다. 오히려 발전사는 온실가스를 감축한 만큼 배출권을 매각해 수익 창출도 가능해진다. 발전사 입장에선 어차피 전기 판매가에 얹어 보전받을 수 있으므로 비록 비싸더라도 적극적인 감축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이 소매시장의 독점으로 막혀 있는 것이다. 물론 한전은 태생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지금도 고스란히 온갖 비용인상 요인을 온몸으로 혼자 막고 있는 고충을 100% 이해한다. 최근엔 고용된 근로자일 뿐인 임직원들까지 고통 분담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강요하는 입장인 대주주로서의 정부도, 독점화된 시장이기 때문에 직접 민생을 보듬고 한전 경영합리화까지 감시해야 한다는 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결국 ‘변을 못 봐서 소화도 안되는’ 상황을 두고, 입맛이 까탈스럽다는 둥 표면적인 문제만 지적하는 상황이다. 말단의 전력 소매 시장으로 가격 전가가 막힘 없이 이뤄질 수 있게 관장(灌腸)을 해줘야, 근본적으로 업 스트림에 존재하는 탄소시장도 원활히 소화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근본 원인을 외면하고 엉뚱하게 탄소 배출권 시장 자체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지에서 오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유연한 에너지 시장, 발칙한 꿈일까?

LNG 탱크가 꽉 찼다. 이른바 ‘탱크탑’이다. 빨리 탱크를 비우고 값이 싸진 LNG를 채우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가스공사나 LNG 직도입 자가용 발전회사나 지금 탱크를 채우고 있는 값비싼 LNG는 어떻게든 빨리 처분하고 보다 값싼 LNG를 채워 놓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발전용 LNG를 싸게 팔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 도시가스는 쉽지 않다.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이나 산업용 도시가스 요금이 정해져 있어서 단기간에 여기서 판매량을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발전용을 싸게 처분해야 한다. 네거티브 가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저부하 석탄발전 가격보다 싼 값에 팔겠다고 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탱크에 꽉 차 있는 LNG를 매입가격보다 왜 싸게 처분해야 하는가. 언뜻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은 말이 된다. 기왕 사들인 LNG에 쓴 돈은 매몰비용이다. 이미 지불했거나 또는 어차피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비용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매몰비용 건질 생각은 하지 말고 앞으로 가장 수익성 있는 일을 해야 한다. LNG 국제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러니 빨리 탱크를 비우고 날로 싸지는 LNG를 붙잡아서 탱크에 넣어 놓는 것이 좋다. 2020년 봄,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 미국의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있다. 코로나로 수송수요가 격감해서 기름 수요는 떨어졌고 전 세계적인 공급은 큰 변화가 없어서 탱크마다 원유가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비싼 돈을 지불한 기존 원유재고를 빨리 팔아치워 탱크를 비운 다음 더 값싼 원유로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돈을 얹어 주고 탱크에 차 있는 원유를 팔아치우는 마이너스 원유가격이라는 기괴한 현상이 발생했다. LNG 탱크를 빨리 비우는 것이 우리 전력시장에도 좋은 일일까.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선 일시적이나마 전기요금 인하요인이 될 수 있다. 전력시장 도매요금인 SMP를 결정하는 것은 발전용 LNG 가격인데, 가스공사와 LNG 직도입 회사가 LNG를 값싸게 발전회사에게 판다면 당장 SMP는 떨어질 것이고 한전의 구입전력 비용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가스 도입회사, 발전회사, 한국전력 그리고 소비자에게 다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혁명적 사고를 우리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이 감당할 수 있을까? 공기업인 가스공사가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하기는 어렵다. 일단 자체 감사에서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산업부의 부처감사는 물론 감사원의 감사도 무사히 배겨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국제 LNG 시세가 싸더라도 비싸게 사들인 것을 일부러 값싸게 처분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가스공사 뿐 아니라 민간기업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더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전략이긴 하지만 비싸게 산 LNG를 값싸게 처분해 일시적 손해를 감당하는 일은 아직 우리 민간기업의 생리상 경영진이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스공사도 민간기업도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없는 배경에는 제도적 요인이 있다. 바로 전력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다. 현재의 전력시장은 비용평가풀(CBP)로 운영되고 있다. 비싸게 구입한 연료를 쓰고 있으면 발전한 전력을 싸게 팔고 싶어도 싸게 팔 수 없다. 오래전부터 필자는 빨리 비용평가를 벗어나서 가격입찰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담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격입찰은 쉽게 도입되지 않고 있다. 가격입찰 시장이 성숙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나타났을 때 기민한 LNG 발전소는 아주 싼 가격으로, 심지어는 마이너스 가격으로 생산된 전력을 팔고 가스탱크를 비울 것이며 이를 더 싼 LNG로 채우려고 할 것이다. 현재의 공기업 체제와 전력시장은 이 같은 움직임을 수용할 만큼 제도적으로 유연하지 않다. 비전을 갖고 몇 년 내에 가격입찰을 시작한다고 출범했지만 지난 23년 동안 우리 전력시장은 비용평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결국 에너지 시장의 경직적 제도가 그 시장에서 움직이는 기업들의 창의력과 순발력을 제약하고 있는 셈이다. 유연한 에너지 시장, 발칙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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