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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1차 에너지의 해외의존도를 기준으로 에너지 안보를 따진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다. 기름값이 높을 때는 97%, 떨어지면 93%로 등락은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어떻게 에너지 안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인지 그 근본적인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지난 2013년 감사원은 정부가 형식적으로만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데 치중했으며, 정작 비상시에 국내로 들여올 수 있는 자원 물량을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로 에너지 자원을 들여와야만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는 것일까? 우리가 확보한 해외 에너지를 현지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파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효율적인 에너지 안보라고 할 수 있다. 돈에 꼬리표가 없으므로 수익성이 있으면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너지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은 석유 생산지인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기 위한 사전 군사적 조처로 미군 주력이던 진주만을 공격했다. 독일은 소련과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어 제1차 세계대전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1941년 여름 소련을 침공하게 된다. 기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당시 소련 영토였던 카스피해 연안도시 바쿠에서 기름을 가져오는 것이었지만 이를 위해 소련 지상군의 주력이 있었던 레닌그라드, 모스코바, 스탈린그라드 등을 향해 진격했다. 일본과 독일이 미국과 소련을 공격해서 전선을 확대한 것이 2차 대전에서 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이 안보에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자원은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20세기 말 소련의 붕괴는 또 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1973년과 1979년에 발생한 1·2차 오일쇼크로 가장 큰 횡재를 본 나라는 소련이었다. 국제유가가 무려 10배 이상 급등했는데 소련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아니어서 생산량을 줄일 필요도 없었다. 엄청난 석유판매 수입이 들어왔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이슬람 혁명으로 위협적인 이란으로부터 사우디 아라비아를 군사적으로 보호했다. 그 대가로 석유생산을 최대한 늘리도록 설득해 국제유가가 그 이전의 1/3 수준으로 급락하는 저유가 시대가 도래한다. 석유판매 수입이 하루아침에 급감하면서 소련의 자금은 말라버렸고 그 여파로 소련은 1991년에 해체됐다. 소련은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고, 약점을 간파한 미국이 저유가 정책으로 급소를 때리자 소련이 붕괴한 것이다. 에너지 자원이 많다고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빚어진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에너지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국가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건강한 에너지 시장이 뒷받침된 미국은 엑슨모빌이 68조8000억원이라는 사상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생각보다 그 영향이 크지 않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전기와 가스요금을 대폭 올려 에너지소비를 줄이면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시장원리보다 정부의 계획, 가격규제 그리고 공기업을 통한 명령과 통제로 운영된다. 가격신호가 작동하지 않아 한전은 50조원의 적자와 200조원의 빚을 안고 있다. 가스공사는 미수금이 12조원을 넘는다. 어렵게 들여온 1차 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지만 송전선을 제때 건설하지 못해 수도권으로의 전력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역별로 전기요금이 똑같아 발전소와 송전선 건설을 회피하는 바람에 생긴 문제점이다. 경직적 계획으로 천연가스 장기도입이 결정돼 모자라는 물량을 비싼 현물거래로 들여오고 있다. 천연가스에 대한 사업자간 유연한 거래를 금지하고 있어 값싸게 천연가스를 들여올 기회도 놓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에너지의 생산 및 배달 인프라를 제때 건설하고, 필요한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건강한 에너지 시장의 구축이 에너지 안보를 위한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