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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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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거꾸로 가는 재생에너지 정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31 08:29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신동한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한국의 이동통신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논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등장한다. 이동통신이 시작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시장을 주름잡은 건 핀란드의 노키아와 미국의 모토로라였다. 이들은 아날로그 방식인 주파수 다중접속을 사용했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1989년 통화시험에 성공한 미국 퀄컴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채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이동통신을 통해 본격적인 상용화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이용한 이동통신이 상용화하며 디지털 통화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서 가장 우수한 제품 라인에 삼성 갤럭시폰이 애플의 아이폰과 경쟁을 하고 있다.

선진국은 관세와 지식재산권 등을 빌미로 후발 개도국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 20세기 후반 온 세계가 합의해 자유무역체제(WTO)를 구축했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반도체 산업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국제적 약속을 뒷전으로 미뤘다. 이에 따라 후발국들은 끊임 없이 ‘건너 뛰기(leapfrogging)’를 시도한다. 아직 선진국도 진입 중인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 선두권에 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일본의 전자산업을 뒤따라 가던 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건너뛰기에 성공했다. 원천 기술이나 소재, 부품에서는 미국·일본등과 밸류 체인을 형성하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는 강고하다.

건너뛰기는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저렴한 소비재의 공급처 역할을 하는 중국도 ‘국민경제사회발전 5개년 규획’을 통해 개도국에서 선진산업국으로 도약을 위해 집중 분야를 선정해 지원한다. 그 결과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국내 전기시내버스의 상당수가 중국산이다. 이는 중국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분야를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삼아 건너뛰기 분야로 선정하고 투자를 집중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방향은 명확하다. 94%의 1차 에너지원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나라로 자립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고, 미래 에너지 분야에 대해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액은 지난해 1908억달러, 약 250조원이다. 같은해 총 수입액의 26%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은 유럽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국인 독일은 이미 총 에너지 소비에서 16%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지만 우리는 2%대에 머물고 있다. 북해의 산유국인 덴마크는 40%를 재생에너지로 쓰고 있다. 우리도 에너지 소비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한다면 50조원을 산유국에 퍼주지 않고 국내 경제에서 순환시킬 수 있다.

국내 에너지 산업의 생태계를 살펴보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매장이 빈약하다. 석유와 가스는 동해 7광구 인근에서 극소량을 채굴하는 형편이고, 석탄도 고갈돼 얼마 전 화순탄광이 문을 닫았다. 화석연료 부문에서 국내 기업들은 조선소의 해상플랫폼과 같은 채굴 장비와 시설, LNG선 제조, 그리고 정유 쪽에 참여하고 있다.

원전부문에서는 25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3기를 건설 중인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이어 5위다. 현재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원전이 57기라고 하지만 중국 21기, 인도 8기를 제외하면 10여 개국에서 고작 1~2기를 짓고 있다.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 등 6개국이다. 그러나 5개국이 독자적인 수출권을 가진 반면 한국은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도 웨스팅하우스 및 도시바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었다. 원전은 핵무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국제정치와 안보를 고려해 도입 결정을 한다. 우리나라가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도입국이 미국을 선택했을 때 시공업체로 참여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여전히 80%를 웃돌고 있지만 기후위기의 거센 역풍으로 G7 정상들조차 금세기 안에 화석연료 사용을 종식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화석연료와 원전 부문은 에너지 분야에서 축소 또는 정체하고 있는 시장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부문은 이미 미래 에너지에서 주축으로 자리잡아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빠르게 성장하며 세계 발전량의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국제에너지기구의 연례보고서는 향후 5년간 신규 전력 설비의 90%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부와 여당은 재생에너지 홀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여당은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 재생에너지 지원 항목들을 삭감하겠다고 공언했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선진 산업국은 물론 화석연료가 풍부한 산유국조차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홀대가 가져올 결과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이 남의 일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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