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이슈&인사이트]복합위기 극복 근본해법은 일자리다

지난 3월 말 S&P Global은 한국의 국가리스크 중 경제리스크부문에 대해 "해외수요 부진 속에 수출이 계속 감소하고 내수도약화하면서 경제에 대한 역풍이 계속 불고있다. 3월에 수출감소 폭이 다소 축소됐지만 세계경제둔화, 중국의 고르지 않은 경제회복, 글로벌 전자 경기침체, 지속적인 재고 조정에다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적어도 2023년 상반기에는 수출 부진이 지속될 것이다.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차입비용, 긴축된 금융상황은 가계의 부채상환부담을 가중시키고 기업의 사업운영 조건을 약화시키며 투자심리와 수요를 해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국가리스크(country risk) 평가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수행에 앞서 진출 관심국가의 거시환경을 사전적으로 진단하고,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기초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S&P Global의 경제 국가리스크부문에서는 각 국의 위험등급을 결정하기 위해 정치, 경제, 법무, 조세, 사업환경, 안전의 6개 기본항목을 포함해 범죄 및 부패수준 등의다양한 평가수치를 집계해 미래지향적 국가별 위험등급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1980년대에 국가리스크는 대체로 정치적 리스크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민관 모두 해외투자와 무역확대로 지식(Intelligence)의 사용자들에게 경제리스크의 활용비중이 커졌다. 한국에서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생산이 많아지고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관심사에서도 경제부문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행복의 가장 기본이 되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엇보다 경제적 만족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국가리스크 등급이 한국인들이 느끼는 행복지표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나타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거시경제 변수요인들 가운데 행복과 관련된 연구들은 국가리스크 평가의 중요항목인 경제부문의 인플레이션과 실업변수로 모아진다.인플레이션은 고통이다. 인플레이션 공포는 서민에게 시름을 안긴다. 지난해 6월 한국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6.0%오르며 23년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일정기간 벌어들이는 소득의 상승보다 물가상승속도가 더 빠른 고통의 세상이다.대다수의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고 생활비도 덩달아 치솟는 데 비해 소득은 정체상태여서 상대적으로는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자산가격을 상승시키고 현금의 가치를 낮춰 실질소득을 낮추는 등 빈부격차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자산가치상승은 물론 기존의 구매상품 보다 질이 떨어져도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생활비 지출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지출을 최대한 줄여 더 이상 생활비 지출을 줄일 수 없는 빈곤층은 최악이다. 빈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상황이 국가리스크 지표에 크게반영되지는 않지만 한국이 행복한 국가인지를 평가하는 행복지표에는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상을 서민의 경제적 고통유발이라고 한다. 절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경제당국은 불확실성 시대에 서민의 경제적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공평하고 공정한 분배와 인플레이션 안정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2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우크라이나전쟁,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고물가, 기후위기는 안타깝게도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계 전체가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유례 없는 복합위기에 빠져 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이른바 ‘3고’에다 가계부채의 증가,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자산가격의 폭락,빈부격차 심화 등의 복합위기를 극복함으로써 국가적 경제리스크를 해소하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묘약은 없을까. 그것은 바로 자본소득이 아닌 노동소득에 기반한 경제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야말로 복합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와 국민을 구할 근본 처방전이다.박세원 S&P글로벌 상무/거시경제 국가리스크 총괄

[이슈&인사이트] 차남(次男) 정신

수년 전 미국케이블 TV HBO의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드라마 중 물불을 안 가리고 전투에 임하는 용감무쌍한 용병단이 등장했는데 그 이름이 차남용병단이었다. 영어명은 분명 차남들(Second Sons)이었다. 왜 용맹무쌍한 용병단에 차남들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차남들이 용맹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차남들이 다소 반항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나. 알아 보니 차남 용병단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어느 정도 근거하고 있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영주였던 바이킹의 후손 노르만공 윌리엄 1세는 1066년 영국에서 벌어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에게 승리하며 잉글랜드의 국왕이 된다. 노르만공 윌리엄 1세는 자신의 잉글랜드 왕위 쟁탈 원정에 동행한 노르만 부하들에게 잉글랜드의 영지를 분배했으나 토지를 상속받지 못하는 차남 이하의 노르만계 기사들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용병으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 위험한 세상에 몸을 던지는 중세 유럽의 차남 전통이 먼 훗날 서구 식민지 개척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차남, 정확히는 귀족집안에서 장남을 제외한 형제들은 성직자, 학자, 법률가, 군인, 사업가 혹은 식민지 경영자로 활약했다. 저명한 심리학자 아들러와 그 학파에 따르면 가족구도와 출생순위가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가 처하는 사회적 조건은 세상의 모든 권위와 칭송을 한 몸에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폐위된 왕이 바로 첫째 아이의 신세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책임감, 배려심 같은 긍정적 요소가 발달되기도 하지만 자신감 상실, 언제나 일이 나빠질 것을 두려워함, 적대적이며 비관적인 성향, 보수적이며 규칙을 중시하는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둘째는 언제나 위의 형제들이 모델이 되고 처음부터 애정을 형제들과 나누어 생활해야 하기에 야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반항적이며 질투가 심하고, 항상 이기려 하고 추종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막내는 항상 많은 자극과 많은 경쟁 속에 성장하게 되고 형제를 앞지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나, 누구에게나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고 과잉보호로 인한 부적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대로라면 둘째의 성향은 창업자가 되기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흔히 둘째의 부정적인 성향으로 간주되는 반항적이며 질투가 심하고, 항상 이기려 하고 추종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성향은 오히려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요구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조직에 예속돼 시키는 일만 복종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성향 중 야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난 점은 확실히 스타트업 창업자로서의 성격에 적합하다. 그렇다고 모든 창업자가 둘째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둘째 성향이 기업가정신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의미다. 기업가정신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부모의 기업가정신이 어린이들의 기업가정신을 60%까지 키운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친부모이건, 양부모이건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기업가정신은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후천적 영향을 두 배나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둘째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기업가정신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즉, 기업가정신은 환경적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얼마든지 우리 스스로 그러한 환경을 만들든지, 아니면 그런 환경에 들어가서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업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기업가정신, 창업문화와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 둘째의 특성을 반영한 시스템이나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창업관련 법·제도 역시 이러한 분위기가 창업 생태계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정비돼야 한다. 나아가 고성장 스타트업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오히려 반항적이고 질투가 심하고 항상 이기려고 하며 추종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비난을 받기보다는 관용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동시에 야심적이면서도 공동체 지향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난 인재로 키우는 조직이라면 전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차남 후손이 될 수 있지 않을까.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이슈&인사이트]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저하의 원인은

취임 1주년이 다가오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정부에 대한 평가를 묻는 여론조사가 자주 시행되고 있다. 조사기관과 주체가 다양하지만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대통령 지지도는 30% 중반에서 40%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여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평가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함정에 빠져 있는 더불어민주당보다도 오히려 10% 포인트 가까이 뒤처지고 있다. 대체로 MZ세대라 불리는 2030세대의 지지가 줄어들고 있고 60대 이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대에서 중도층의 지지도 떨어지고 있다. 더욱 뼈아픈 것은 보수의 본산이라는 영남지역에서도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지지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고 의연한 자세를 보이지만 나름대로 스스로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야속하기만 한 국민의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서울법대 스승인 송상현 교수가 지적한 대로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비롯한 윤 대통령의 여러 정책과 한일관계 회복 등 외교정책은 대부분 옳은 방향이다. 윤 대통령이 소위 번듯한 집안에서 적절한 가정교육을 받았기에 시비와 선악, 미추를 정확히 가릴 줄 아는 심성을 가졌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비록 국민의힘 지도부 개편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예기치 못한 이태원 참사가 있었지만 그로 인한 지지도 하락이라기엔 구조적 성격이 강해 보인다. 올바른 정책 수행에도 왜 그에 대한 지지도는 30%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차분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한두 번은 우연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결같은 우연은 없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문제는 정책이나 외교적 성과, 혹은 내부의 불협화음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행태에 있다. 지지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도 국민 입장에선 교만으로 비친다. 한두 가지 사례를 들어 생각해 보자. 국익을 위해 한일관계의 비정상적 절연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진의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일각의 비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윤 대통령이 사전에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진솔하게 설득하고 야당과도 상의하는 모습을 갖추었다면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어땠을까. 민주당 지지자들은 여전히 강하게 비판하고 반대할지라도 중도적 유권자들까지 등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건설노조나 운송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노동계를 사회적 약자로 취급해 그동안 수많은 불법행위에 눈감아 온 것을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갑자기 막무가내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보다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논의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고 바늘귀에 실을 꿰기도 전에 바느질을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야당이 극구 반대한다면 그 반대 논리의 문제를 국민이 이해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야당이 보유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대국민 설득이 필요하다. 국민을 설득하는 사람의 태도는 항상 허리를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어느 입장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뻣뻣하게 당신이 틀렸다는 태도로 일관하면 상대방이 설득될 수 있을까. 지금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 정부 각 부처가 국민에게 설명하는 태도는 전혀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때로는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만한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하면 과연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것이 윤 대통령이나 집권 국민의힘이 갖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고, 동시에 송상현 교수가 지금의 지지율 하락이 쓴 약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하면서 "겸손하면…"이라는 단서를 단 이유다. 3경(三經) 중 서경(書經)에 "만초손(滿招損), 겸수익(謙受益)"이라는 말이 있다. ‘자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교만한 태도로 방자하게 구는 정치인을 지지할 국민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K-반도체, 길을 묻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8년 발효된 기업소득세법(법인세법)에서 외국인투자기업이 입주한 경제개발구에 대한 우대세율을 없애고 첨단업종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15%의 기업소득세율을 적용했다. 일반기업의 기업소득세율이 25%인 점을 감안하면 첨단기업을 유치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통신장비,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뒤늦게 미국은 자국에서 첨단 제조업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갖추기 위한 정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한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 구축에서 시작되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3사는 모두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은 배터리에 이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칩4)과 함께 중국의 반도체 굴기(부상)에 대한 통제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약속(MOU 체결)하고 일부는 공장건설에 들어갔다. 미국은 더 나아가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통제를 통해 단순히 중국 무기의 첨단화는 물론 첨단 제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첨단공정에 사용되는 극 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물론이고 한 세대 이전 장비인 심 자외선(DUV) 노광장비마저 공급을 끊기로 했다.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견제는 반도체 장비 뿐 아니라 반도체 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중국에 대한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하는 이른바 ‘칩4 협의체’ 참여를 요구받고 일단 1년간 유예를 받았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비중이 55%(우회 수출 포함)나 되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를 하기로 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운 ‘반도체지원법’을 내놨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이 법의 ‘가드레일(안정장치)’에 근거해 미국 내에서 초과이익 공유, 영업기밀 제공, 군사 협조 등의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더불어 중국에서 10년 동안 생산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고 기술적 업 그레이드만 허용했다. 한국이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고 하지만 거의 차악 수준의 조건을 제안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보조금을 받아야 하느냐, 미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느냐’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이유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며, 미국의 보조금도 받아야 한다. 우선 미국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이다. 미국 반도체 규모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차량용 반도체 수요와 AI 등 ICT 산업의 발전에 따른 반도체 수요로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를 멈출 경우 보조금을 받은 경쟁기업에게 시장을 빼앗기게 되고 미국에서 한국 반도체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중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일단 버티기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생산시설 확장이 5%로 제한된 상황에서 기술적 업 그레이드를 통해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10년 플랜을 체계적으로 짜야한다. 미국 반도체 보조금 수령 조건은 10년 후에 종료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이 10년만 버티면 중국 내 시설 확충 제한에서 풀린다. 국내에서의 반도체 투자전략은 해외 투자와 차별화해야 한다. 적어도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모두 자유무역의 원리보다는 보호무역의 원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반도체 기업은 기존의 칩 제조 역량을 넘어 설계 기술, 장비제조 능력 등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2042년까지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면 대만에 크게 뒤져있는 시스템반도체에서 크게 약진하는 것은 물론 주기적으로 겪는 메모리 반도체 불황으로 인한 산업 및 경영의 불확실성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위기의 한국경제,돌파구는 과감한 구조개혁

한국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수출이 호황을 누리며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장기간 저금리의 덕도 봤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과열로 인한 물가상승, 자산가치의 급등과 같은 저금리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글로벌 경기가 급격하게 식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7%로 0.3%포인트 낮췄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치솟았다. 지난해 9월 전년동기 대비 5.6%까지 오른 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5%대를 유지하다 올해 2월 4.8%로 소폭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기침체기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수출 감소와 생산성 하락이라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제조업 중심의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수출과 생산성은 그 어떠한 경제적 요소보다 중요하다. 수출은 지난해 10월에 전년 동기 대비 -5.8%를 기록하며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올해 1월에는 -16.4%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고 2월에도 -7.5%를 기록한 데 이어 3월에는 다시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이처럼 수출이 맥을 못 추는 것은 글로벌 경기하락과 같은 외부요인과 함께 우리나라 수출구조의 취약성도 크게 작용한다. 우선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지나치다.세계 10대 수출국 가운데 특정 국가에 어느 정도 수출이 집중돼 있는 지를 나타내는 ‘수출 국가집중도’가 우리나라는 캐나다에 이어 2위다. 우리나라는 2020~2022년 연 평균 수출의존도는 중국과 미국이 각각 24.5%, 15.2%로 두 나라에 전체 수출의 약 40%가 편중됐다. 수출 상위 5대 대상국에 대한 수출비중도 한국은 58.6%로, 캐나다(86.1%) 다음이다.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도 높다. 2020~2022년 연 평균 기준으로 전기장치ㆍ기기의 수출 비중이 20.2%, 자동차가 10.5%로,이들 두 품목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전체의 30.7%에 달한다. 수출 상위 10대 품목의 수출 비중은 68.7%로 10대 국가 중 가장 높다. 이 통계치를 보면 우리 수출의 치명적인 약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정 국가의 불경기, 특정 품목의 수출 부진이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흔들 만큼 치명적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산성 마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성 증가율은 2000년대 1.9%에서 2010년대 0.7%로 하락했다. KDI는 생산성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2050년 경제성장률이 0%에 수렴하고, 생산성을 1.0%로 올려도 경제성장률은 0.5%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임금상승률은 2018년 4.3%, 2019년 4.5%, 2020년 1.2%, 2021년 3.9%, 2022년 3.8%로 생산성 증가율을 훨씬 웃돈다. 임금이 생산성보다 높은 현상이 지속되면 기업은 고용을 줄일 수 밖에 없고 경영악화로 이어져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경기 침체기가 도래하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수출감소와 생산성 하락은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이며 이를 방치하면 한국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수출감소와 생산성 하락 문제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정책을 원점에 놓고 구조개혁과 규제 완화라는 근본 처방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면 구조개혁의 당위성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솔직하게 알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미래세대가 산다. 표를 얻기 위해서,인기를 의식해서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이슈&인사이트]착한 소비자 울리는 블랙컨슈머

‘내가 하면 정당한 소비자 권리 행사, 남이 하면 블랙컨슈머.’ 소비자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용이 확산되면서 블랙컨슈머로 인한 폐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블랙컨슈머는 보상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악성민원을 제기하고 SNS를 통해 퍼뜨리는 사람을 말한다. 규정에 없는 환불이나 과도한 보상 등 금전적 대가는 물론 공개 사과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행위, 전화나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하거나 장시간 통화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직원을 협박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블랙컨슈머의 행태다. 그동안 악성 소비자나 감정노동자 보호 등의 이슈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왔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 공공기관, 자영업자들이 블랙컨슈머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들은 이미지 추락 등을 우려해서 악의적인 민원인 줄 알면서도 쉬쉬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블랙컨슈머들은 이를 악용해 무리한 금전보상이나 계약 해지 등을 요구한다. 극소수 블랙컨슈머들은 당국에 부당한 민원을 제기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을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사은품이나 상품권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상담원이나 매장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한국소비자원에 고발하겠다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해서도 이들이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올린다거나 평가 별표를 아주 낮게 부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해 기업이나 자영업자를 골탕먹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블랙컨슈머가 판을 치는 이유는 소비자의 높은 기대수준, 왜곡된 소비자권리 의식, ‘소비자는 피해자, 사업자는 가해자’라는 잘못된 인식, 자기 중심적 사고, 관련 법규·규정·계약 내용에 대한 지식 및 이해 부족, 인터넷 등에 떠도는 보상기준에 대한 잘못된 정보, 사회에 대한 불신과 보상에 대한 주위의 부추김 등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에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부 기업들의 상혼과 소비자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 등도 한 몫을 한다. 허위·과장광고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 놓거나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와 상호소통 미흡, 합리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소비자는 외면하고 목소리 큰 소비자에게는 과다보상을 하는 소비자 대응 행태 등이다. 심지어 일부기업은 소비자들의 정상적인 권리 요구에 대해서는 이를 무시하거나 처리를 한없이 미루고 상담과정에서 감정노동자보호법을 악용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를 협박해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선의의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로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매를 버는’ 웃지못할 상황이 빚어진다. 문제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해당기업을 거쳐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홈쇼핑이나 백화점 등에서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손실(기회) 비용을 제품가격에 반영한다. 고가의 의류 등에는 업체와 가격수준에 따라 최대 20∼30%까지 기회비용을 얹는다고 알려진다. 선량한 소비자들이 블랙컨슈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셈이다. 더 나아가 기업의 경영의욕 저하와 경쟁력 약화,감정노동자 문제를 유발하는 등 막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한다. 이쯤 되면 ‘정당한 소비자권리 행사’라는 탈을 쓴 블랙컨슈머는 사회악으로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소비자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블랙컨슈머의 심각성과 폐해를 인식하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블랙컨슈머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내 가족이 감정노동자로,자영업자로 블랙컨슈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소비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소비자권리 추구행동이라고 생각되는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감정노동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고, 결국 부메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윤덕균 칼럼]21세기 대한민국 전략 자산은 소프트파워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의 전격 사임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김 실장 사임 전에 김일범 의전비서관,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교체됐다. 공식적 교체 원인은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 등이 함께 공연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는 데, 외교안보 라인이 묵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가는 안보 책임자를 의전 프로그램 문제로 경질하겠느냐는 의심이다. 여기서 미국 일변도 외교의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중국과 미국의 프로토콜을 주장하는 김성한 그룹을 밀친 형태라는 가설이다. 또 다른 가설은 의전이 안보 외교를 흔든 김건희 여사의 개입설이다. 관계자들의 정확한 해명이 없어 모든 추론이 눈이 안보이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평하는 ‘(群盲評象(군맹평상)’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군맹평상은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로 중국의 고사 북송열반경(北宋涅槃經)의 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편에 수록된 이야기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 가운데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무와 같다 하고, 귀를 만져 본 사람은 키와,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절구와, 등을 만져본 사람은 침상과, 배를 만져본 사람은 독과,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새끼줄과 같다고 한다. 각각은 코끼리의 단편만을 말하지만 이를 종합하면 코끼리의 윤곽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김 실장 교체 설을 유추한다.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의전과 안보는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를 안보라인에서 경시했다. 이러한 안보라인의 행태가 문화행사 의전을 중시하는 김건희 여사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김 실장의 정확한 해임 사유다. 김 실장은 미국의 전략자산 특히 하드파워에 익숙하다. 한미 안보 정상회담에서 공연은 도움이 안 된다고 평가한다. 공연을 트집 잡아 안보회담 성과를 폄훼할 야당의 뒤풀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 실장의 소프트파워 인식은 BTS의 병역 문제에서 입증되었다. 김 실장은 전 세계의 1800만의 아미가 BTS 노래를 듣기 위해서 한글을 배운다는 소프트파워의 위력을 형평이라는 이유로 배제했다. 전임 의전비서관이었던 탁현민은 2021년 김정숙 여사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방문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김 여사가 미술품의 기증 의사를 전했을 때 ‘순서를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가 시간이 없다’고 하자 ‘시간이 없으면 다음에 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어쩔 수 없다. 김 여사님과 BTS가 가려고 했는데, 다른 미술관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행사를 하자고 했다가 자기들의 ’루프 가든‘을 내주고, 여사님이 수장고를 보실 수 있게 배려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가 한국의 소프트 파워의 현주소다. 영국 잡지 모노클(2020. 11. 27)은 소프트파워는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단언했다. 모노클은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평가했다. 독일과 한국의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 대만, 스위스, 뉴질랜드, 스웨덴, 그리스, 캐나다 순으로 소프트파워 톱10 국가로 평가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영화와 TV, 음악 역시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한국 소프트파워의 기반이 됐다고 모노클은 2위로 평가한 배경을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K-팝을 듣고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본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 혁신은 이 나라의 핵심 자산이며, 이를 통해서 삼성과 LG, 현대 등의 기업이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를 강화한다. 또한 모노클은 한국이 중국의 하드파워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의 돌파구를 중국이 추월할 수 없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의 핵심세력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진정한 전략자산이 소프트파워라는 것을.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인공지능 서비스 대중화를 위한 조건

최근 챗GP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챗GPT는 오픈에이아이(OpenAI)라는 회사에서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 채팅서비스로, 발전 속도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기존 인공지능 서비스와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다. 챗GPT가 이렇게 주목을 끄는 이유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인공지능 서비스보다사람들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듣고 그럴싸하게 대답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어 처리와 학습된 지식의 조합을 굉장히 잘하는 인공지능서비스다. 인공지능 기술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연구됐지만 다양한 사회적 데이터 수집과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역량의 한계로 실제 사용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기술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은 생활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감정이 없는 차가운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해 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최근 나오는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이런 인식을 뛰어넘으며 인공지능 서비스가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다만 이것은 다양한 정보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고도화가 사람들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UNDP의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정보 취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소득 수준 격차로 이어진다. 따라서 인공지능 서비스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에서 캐즘(Chasm)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서비스의 사용법을 쉽게 알릴 수 있는 교육 및 안내 등이 제공 돼야 한다. 즉,인공지능 서비스의 기능과 장점을 설명하고, 쉽게 접근 가능한 사용 방법이 제공해야 한다. 아무리 인공지능서비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더라도 일부 지역이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는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나 디지털 기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둘째,인공지능 서비스의 유료화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 서비스 유료화는 기업 수익창출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유료화로 인해 사용자들의 서비스 이용 제한성이 발생하게 된다. 즉, 유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기존의 무료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 정보에 대한 차별성이 존재하게 된다. 이 경우 소비자들이 다양한 비용을 지불하게돼 정보를 얻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거나 서비스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소득수준 격차가 발생하게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합리적인 요금으로 서비스의 가치를 증명하고,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보안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따라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개인정보유출 문제를 우려한다. 따라서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보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용자들에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서비스 이용 시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 사용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안전한 서비스 제공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보호 뿐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의 평판과 신뢰도를 높이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끝으로,다양한 계층에게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높은 수준의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일부 지역이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는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나 디지털 기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학습 데이터나 알고리즘의 문제, 개발자들의 편견 등으로 인공지능 서비스에서 생성되는 정보가 일부 그룹이나 개인에게 편향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그룹이나 개인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고 사회적 차별이나 부정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서비스 기업들은 정보소외 문제에 대해 보다 공정하고 폭넓은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AI 시대에 걸맞은 새 제도 설계해야

인공지능 열풍의 진원지가 된 챗GPT- 3.5는 무려 1750억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해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실제 정보와 일치하는 정보를 출력하는 과정을 거치는 초거대 AI다. 챗GPT-4는 이 보다 더 많은 매개변수에, 텍스트는 물론 영상과 이미지까지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복합 정보처리) 모델로 그 활용도가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미세 조정(Fine-tuning)만 하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해 전이 학습이 가능하다. 이른바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이 본격 출현했다. 최근 인터넷에 챗GPT-4를 이용하면 이용자가 제시한 내용을 알아서 정리해 발표 자료를 작성해준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발표 자료 준비가 한결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 며칠 후에는 챗GPT 이용자들이 입력한 내용에 회사 기밀이나 민감한 개인정보도 많은 데, 이런 내용을 운영사인 오픈AI가 볼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청이 유럽연합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 위반 조사를 위해 챗GPT 접속을 일시 차단한다고 발표해 챗GPT 이용 관련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 국가별로 개인정보로 보호하는 데이터의 범위나 규제 정도는 다르지만,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수집·활용하는 많은 데이터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2020년 개인정보의 식별이 어려운 가명정보 개념이 도입됐지만, 실무에서는 가명 처리 비용이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재식별 위험성으로 인해 애초 기대보다 활용도가 낮다. 정보주체의 권리의식이 강해지면서 개인정보 보호 규제 역시 강화되고 있지만, 개인정보를 활용한 사회적 편익과 비례성도 유지돼야 한다. 허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라면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피하고자 원본 데이터의 통계적 변수 분포와 상관관계만 모방한 재현 데이터(합성 데이터)를 만들어 새롭게 생성된 가상의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재현 데이터를 주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해 제공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다만 여러 데이터 항목이 조합되거나 원본 데이터 자체 분포가 편중된 경우에는 아직 정보 주체의 재식별률이 높은 편이라 재현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학습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데이터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GPT 개발사인 오픈AI에서 내놓은 DALL-E 2나 스태빌리티AI사의 스테이블 디퓨전은 이용자가 텍스트로 지시하면 그 내용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학습한 데이터 세트에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이미지 중에는 저작권이 인정되는 이미지가 있고, 심지어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미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이미지 제공업체인 게티이미지는 스테이블 디퓨전이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스테이블 디퓨전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이런 법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국회에서도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저작물에 적법하게 접근해 창작성을 향유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있는 개인정보의 침해 문제나 저작권 위반 문제는 그런 법 제도가 현재처럼 인공지능이 발달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정보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출판업자들이 독점 출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장했던 저작권의 기원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규범이 만들어진 취지를 감안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이슈&인사이트] 한·EU 외교 60년, 향후 과제는

한국과 유럽연합(EU)의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시작된 지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EU는 유럽의 평화와 경제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럽국가 통합기구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시작된 이 통합체는 냉전 시대와 경제위기를 거치며 변화를 거듭했다. 한국전쟁 이후 유럽의 중립국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관여하고 있으며 서울과 평양에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도 있다. 한국과 EU는 1963년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협력을 확대하며 정치·경제·안보와 같은 핵심 분야에서 ‘전략적동반자관계’로 발전했다. 양측은 2011년 발효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주요 무역파트너가 됐고 이제는 공동 군사작전을 실시하며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개발도상국을 돕는 일에 협조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U는 한-EU FTA를 계기로 아시아 지역에서 특혜를 제공하는 통상 규범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019년에 싱가포르, 2020년에는 베트남과 각각 FTA를 발효한 것이 대표적이다. EU는 중국과 일본 등과 투자협정 또는 경제적동반자관계협정(EPA) 등을 체결해 특혜를 제공하는 통상법 인프라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EU 집행위원회는 2018년 12월 한국이 한-EU FTA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며 제13장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조항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규정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EU FTA 제13장에 반영됐다. 이후 EU는 캐나다, 싱가포르, 일본, 베트남 등과의 통상조약에서도 유사한 규정들을 반영했다. 한국에 대한 EU의 조치는 이 규정을 근거로 한 첫 번째 사례다. 이후 한국은 2021년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에 가입했고 결과적으로 양측에 관련된 국제법과 국내법 질서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 EU와 영국은 ‘영국의 회원국 탈퇴’(브렉시트)로 유럽 단일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고 새로운 조약을 체결했다. EU와 제3국 및 영국과 제3국의 특혜무역 관계도 새롭게 설정돼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한국과 영국 정부는 한-EU FTA에 기반한 특혜를 지속하고 안정적인 무역환경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빠르게 한-영 FTA를 체결했다. EU가 한-EU FTA 체결이후 아시아 국가들과 특혜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영 FTA도 영국과 아시아 국가들에게 비슷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한국과 EU의 관계가 확대되는 동안 국제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졌고, EU도 냉전 종식으로 인한 동유럽 회원국의 참여나 브렉시트와 같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는 COVID-19 확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한국과 EU의 관계 및 국제사회에 주요한 도전이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U가 FTA와 같은 특혜협정을 체결하면서 ‘유럽의 가치’를 상대방에게 강조하고 많은 특혜 협정들이 한-EU FTA의 기준들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EU FTA 개정 논의와 같은 미래의 과제들은 양측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수교 60주년이 흐르는 동안 국제사회에 새로운 지형이 형성됐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사회의 지형에서 양측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EU의 관계는 둘 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제사회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협력해야 한다. 양측은 새로운 6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법학박사 EU연구소 소장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