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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윤석열 정부 취임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정치분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은 야당이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지배하는 태생적인 한계와 함께 여당 내 당권을 둘러싼 불협화음도 그 어느 정권보다 컸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직선적인 성격이 국정에 그대로 투영된 1년이었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물려받은 유산부터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3분의 2의 압도적인 국회의석을 앞세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틀을 앞두고 ‘검수완박’ 법안까지 처리해 윤 정부의 검찰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만료 직전까지 수많은 공공기관 임원과 기관장들을 민주당 사람들로 가득 채워 사실상 정부가 바뀌어도 2~3년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문재인 사람이 넘쳐나는 정부가 되었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 온 윤석열은 초보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치적 계산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언급함으로써 비판을 자초하기도 한다. 표를 의식하고 돌아가야 할 길을 무조건 직진하여 불필요한 반발을 초래하기도 한다. 반면 그것이 옳은 길이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치적 이익은 결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인간 윤석열의 특성은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 곳곳에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의해 지배된 분점정부로 출발했다. 분점정부는 협치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기에 어느 쪽이든 양보해야 하지만 서로 양보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직전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대표로 선출했는데, 이 대표는 적어도 7~8개의 의혹과 혐의를 가진 형사피의자 신분으로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도 형사피의자인 이 대표를 만날 생각이 없고, 민주당도 그런 대통령이 원하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의사가 없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민주당은 또 다른 혐의로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될 것이 두려워 단 하루의 공백도 없이 임시국회 회기를 연장해오고 있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 속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제출한 법안은 입법이 무산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년간 국회는 한동훈 법무장관 대 민주당 의원들의 설전이 벌어져 아이들 싸움만도 못한 허접한 일이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국회의 유일한 순기능은 경제적 어려움에 지친 국민을 웃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교육·노동·연금 등 3대 개혁은 이뤄지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운 시급한 사안이지만 제21대 국회의 임기 말까지 어떤 진전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윤 대통령은 이른바 ‘도어스테핑’이라는 출근길 간이 인터뷰 방식으로 기자들과의 즉석 인터뷰를 도입했다. 이는 국정의 주요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어 국민과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발언으로 발목을 잡힐 수도 있고 국정운영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 채택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결국 유엔 방문 때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짧은 만남 직후 실언 파동으로 중단되었다. 주요 정책이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성적표는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문재인 정부에서 많은 덕을 보았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매우 부정적이고, 개혁추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겐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건설노조, 화물연대, 공공운수노조 등의 구조적 악행이나 특권의식에 대한 법치 회복에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전면 투쟁으로 맞서는 식이다. 개혁이나 변화는 기득권을 해체해야 가능하기 에 기존 질서에서 이익을 누리던 기득권 세력의 극심한 반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어떤 개혁이든 찬반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국가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데,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당선이나 정권에 눈이 멀어 국가에 필요한 개혁을 뒤로 미루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국익을 위해 언젠가 (욕을 먹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내가 하겠다’는 입장에서 먼저 일본에 양보한 윤 대통령의 접근은 좋은 예다. 외교적 측면에서의 1년의 성적표는 초반에는 실점이 많았다가 후기에는 만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토정상회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참여, 유엔 방문 등으로 이어진 초기 외교에서는 의전이나 실언이라는 측면에서 점수를 잃었다. 그러나 야권의 반대를 무릅 쓰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했고 국빈 방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공식화한 것은 작지 않은 성과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언급하여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한 것을 두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일각에선 ‘알아서 긴 굴욕 회담’이라고 비난하지만 미중 패권경쟁 속에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가 남은 임기에 성공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인사 문제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정권의 성공과 실패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발굴해 쓰느냐다. 윤 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핵심 자리에 검사 출신들이 과도하게 많다는 비판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대통령실의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이 모두 검사 출신이다 보니 인재를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둘 중 하나는 인사혁신처 국장급이나 민간 헤드헌팅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전문가를 기용하는 것이 좋다. 초보 정치인 윤석열을 도울 정치 자문그룹도 필요하다. 지난 1년 정치적 측면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은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여당 지도부 교체과정의 불협화음이었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력히 외쳤던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독립적으로 조언하기 어렵다. 현실 정치와 무관한, 그래서 자신의 미래와 관계없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황 판단과 대안을 직언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 그들의 조언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최종적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특별기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경제 분야

고물가·고금리의 위기국면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현안 대응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1년을 준비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공급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에 토대를 두고 있다. 감세와 규제개혁, 경제체질 개선과 미래산업 육성을 추진하여 기업의 활력과 혁신, 투자를 유인한다. 이를 통해 기업 주도의 빠른 성장과 도약을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실현하는 것이 정책목표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에 한국형 산업정책을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 아래 지난 1년간 추진된 정책들이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지를 평가해보자. 먼저 한국경제가 직면한 대표적 과제를 살펴보자. 첫째, 저성장이다. 최근 발표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93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0.9% 성장에 그쳤다. 대통령 표현대로 초저성장이다. IMF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1.5%로 전망했고 OECD는 잠재성장률을 1.8%로 예측했다. 둘째,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1%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수출이 급감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에 월 100억 달러 이상의 높은 실적을 달성한 반도체의 수출이 작년 10월부터 하락세로 접어들고 올해 6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중국 수출도 팬데믹 기간에는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최근 리오프닝이 본격화되고 있는데도 회복 조짐이 안 보인다. 셋째, 금융시스템의 안정화가 중요해졌다. 최근 자산시장 가격 하락과 함께 금융시장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내적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PF 등의 부채 부실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경상수지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1월과 2월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세가지 과제 해결을 위해 정부 정책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를 먼저 감세와 규제개혁부터 점검해보자. 조세감면과 관련해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5%에서 24%로 1%포인트 낮췄으며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는 대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높이고, 올해에 한해 투자증가분에 대해 10%의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거대 야당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낸 정부의 노력에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규제개혁은 초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과 같은 정책의 방향성,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애로의 광범위한 수집과 신속한 해결 등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낡은 규제에 발목 잡힌 K스타트업’이 현 시점의 규제개혁 자화상이다. 실적보다 현장과 전문가 중심의 실용적, 체계적 접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현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 중의 하나는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의 신속한 추진이다. 지난해 10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육성방안을 발표했으며 올해 2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작년 12월에는 미래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신성장 4.0 전략’을 수립하고 15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4월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한미 기술동맹의 추진체가 구성됐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한미일 기술동맹도 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정책 추진과 첨단기술 국제협력의 신기원 수립은 ‘A학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체질 개선과 관련하여 정부는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구조개혁과 금융, 서비스, 공공 등 3대 경제혁신을 제시하고 있는데 아직은 두드러진 성과를 찾기 어렵다. 노동개혁에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주 69시간’ 논란은 아마추어적인 정책추진의 대표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유연근로제는 중소기업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건의사항으로서 정부는 노사 타협안을 만들어 유연화 방안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당면 현안인 수출과 관련해서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금년 통관수출이 작년 대비 4.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2월에 개최된 수출전략회의에서 올해 수출 목표액을 작년 실적보다 0.2% 높은 6850억 달러로 제시하고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일명 수출 플러스 전략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대통령의 각오가 정말 실현될지가 자못 궁금하다. 아이디어 하나를 더한다면 수출 불모지인 일본시장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의외의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무방비로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현 정부에서 한미동맹 강화는 불 보듯이 뻔한 방향이었으므로 정부 어느 부서에서는 대중 전략을 준비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이 공식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듯이 한국과 중국과의 교역과 관계는 끊을 수가 없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므로 조만간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금융 안정화와 관련해 부동산PF, 가계부채,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문제 등의 불안요인에 대해 정부는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스템 위기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은 강화되었지만 작년 레고랜드 사태 발발 후 초기진화에 실패한 사례를 볼 때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이 SVB 사태에 즉각 대처하여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뻔한 문제를 조기 진화한 사례를 참고하여 갑작스러운 사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의사결정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현 정부의 노력으로 수출과 저성장, 금융위기 예방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피벗 스테이트’로 도약하기에는 불충분하다.새 시대에 맞게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기업에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정부문화’를 뒤집어야 한다. 기업도 각자도생의 틀을 깨고 ‘혁신을 위한 협력적 상생생태계’로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의 ‘고객만족경영’이 세계 산업계의 로망이었듯이 새 시대의 한국 ‘기업주도 경제문화’가 세계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

[이슈&인사이트]불매 운동보다 사주기 운동이 아름답다

지난 2021년 당시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일본 기업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바 있다. 대리점 갑질이 드러난 기업, 성차별 면접 논란 기업,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던 기업, 공감 능력 부족한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고, 또 불매운동 대상이 된 사례는 매우 많다. 왕따나 학폭 의혹이 불거진 연예인들을 광고계에서 퇴출시킨 사례도 있다. 일방적인 구매에서 벗어나 간섭과 견제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비자들의 실력 행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사례를 살펴 보면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직원들에게 인종차별 반대 시위 복장을 못 입게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에 나선 바 있다. 스타벅스는 이전에도 흑인 차별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21년 3월 여성의 날, 트위터에 올라 온 모 회사 제공 사진 속에 ‘여자는 부엌에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알려져 비판을 받았고, 아동 노동을 착취했다는 신발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벌어진 바 있다. 점차 환경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나 SNS의 발달로 소비자들의 의견이나 대응행동이 빨리 그리고 쉽게 공유되다 보니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행동하는 소비자의 위력은 문제 있는 제품과 브랜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별점 테러, 트럭 시위, 집단소송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적 집단행동이 본격화 된 지도 오래다. 통신과 게임, 식품·유통, 자동차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나 다양한 유형의 대응 사례가 많아지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 마련됐고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움직임이 동시 다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정보력과 지식으로 정보 비대칭이 많이 사라진 현재 소비자의 힘이 막강해 지고 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비자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불만으로도 소비자들의 집단행동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불매운동은 자칫 선량한 특정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국제 분쟁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몇 년전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은 중국 정부의 잔혹한 인권 탄압과 강제노동을 문제 삼아 중국 신장 지역에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조치는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으로 확산됐다. 그러자 중국 소비자들의 분노는 H&M 으로 향했고 H&M은 한 순간에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다. 이 상황에서 H&M은 중국 당국에 불려 갔다. H&M 홈페이지에 베트남과 분쟁 중인 파라셀 군도 표기 사용 때문이었다. 결국 H&M은 중국 당국의 지도 수정 요청, 즉 중국이 그어 놓은 해안선 표시(9단 선) 지도를 즉각 받아들였다. 그러자 H&M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불매운동이 이번에는 베트남 소비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그 후 신장 면화 보이콧 브랜드들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미·중 정부 간 갈등으로도 번졌다. 이 사건은 불매운동의 파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됐으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매운동과 대조적으로 소비자들의 사주기 운동도 자주 일어 난다.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상품이나 서비스 사주기 운동,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나 제품의 탄생을 위한 사주기 운동을 설득하는 소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우이웃을 돕거나, 환경보호를 실천한 가게,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앞장서는 가게나 기업의 제품을 사 주자는 운동은 소비자의 구매력(money vote)을 활용해 힘을 실어 주는 행동이다. 2021년 서울 홍대 근처 착한 치킨집에서 시작된 돈쭐(돈으로 혼쭐) 행렬이 SNS와 유튜브 등을 타고 연쇄적으로 확산된 바 있다. 고등학생 A군이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낸 손 편지의 내용, 즉 본인과 어린 동생에게 무료로 치킨을 건넨 미담이 알려졌던 것이다. 이에 홍대 근처 소재 착한 치킨 가게에 강원,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배달 앱을 통해 돈만 내고 음식은 받지 않는 주문이 이어졌다.가치 소비에 열광하는 MZ세대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행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당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치킨 가게 사장님 힘 내세요’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주문한 음식이나 결제 영수증을 찍어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친 환경, 동물복지, 기부나 봉사 등 사회 기여에 앞장선 가게나 기업의 제품을 사 주는 운동은 아름답다. 벌 주기보다 칭찬하고,불매운동보다 사주기 운동으로 착한 소비문화가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맛의 기준과 규제 그리고 무역 사이의 알고리즘

맥주는 겉보리를 발아시킨 맥아(malt)를 발효시키고 향신료인 홉(hop)을 첨가해 맛과 향을 더한 술이다. 이 술은 기원전 이집트에서도 제조됐을 정도로 곡식을 이용한 발효주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며, 여전히 현대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이제 맥주는 나라마다 고유한 맥주 브랜드가 있을 정도로 보편화 됐다. 맥주는 생산지역의 물과 재료, 주조시설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의 독특한 풍미와 특성이 맥주라는 제품에 녹아있다. 이런 개성을 기반으로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창출한다. 15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공국은 ‘순수한 맥주란 물, 맥아, 효모, 홉만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을 제정했다. 사실 이 법령은 바이에른의 제빵업자와 양조업자가 밀과 호밀을 두고 가격을 경쟁하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1871년 독일이 연방으로 통일되면서 채택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독일의 양조장들은 지금도 이 기준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맥주순수령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수입 맥주의 유통을 제약하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1988년 유럽사법재판소는 맥주순수령을 폐지하도록 권고했고 1993년 이 법령에 일부 사항만 추가된 ‘독일맥주법’이 제정됐다. 한국에서는 최초의 맥주 양조장 1908년에 서울에 문을 열었고, 1930년대에 맥주가 대량생산되며 시장이 형성됐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우리 맥주하면 동양맥주의 OB와 조선맥주의 크라운이라는 브랜드를 먼저 떠올린다.당시 정부가 제한된 일부 기업에만 맥주 제조와 판매를 허용했기 때문에 제품에는 다양성이 없었다. 이 같은 규제는 국내 시장 판매만을 고려한 맥주 제조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품질의 향상이나 해외시장에 대한 수출 등을 고려할 수 없었다. 이후 국내 맥주시장이 크게 성장했지만 국산 맥주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한동안 지속됐다. 최근들어 정부의 주류산업 정책이 규제를 줄이고 수입 다변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규제 완화는 다양한 해외 맥주의 국내 시장 진입으로 국내 맥주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국내 수제 맥주가 등장하며 소비자들은 국내에서 제조된 개성 있는 맥주를 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한국에서는 맥주가 다른 산업이나 문화와 연결돼 독특한 맥주 문화와 산업이 형성됐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K-드라마에서 ‘한국식 치킨’이 소개되며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가운데 이 것이 맥주와 결합한 이른바 ‘치맥’ 문화는 해외수출로 이어지며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독일과 같은 국가들이 맥주순수령과 같은 기준을 고수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 기준이 식품이나 음료 제조와 관련된 자신들의 전통과 맛을 지키려는 노력이자 자긍심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나아가 이런 규제가 다른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여러 지리적 표시에 관한 규제라든지 제조방식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와 같은 사항들은 무역에서 중요한 이슈로, 무역 갈등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무역 갈등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의미라는 것이다. 한국도 막걸리와 같은 전통주류에 관한 규제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김치와 고추장 같은 식품의 맛에 대한 제조기준의 설정과 규제가 장기적으로는 전통의 보호와 함께 무형의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보호막이 될 수 있다. 세계를 석권하는 자동차, 반도체, 휴대전화 만큼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한국의 맛은 다른 가치나 산업을 만나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좋은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중요한 것이다. ‘치맥’을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한국 맥주도 새로운 산업적 경쟁력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만큼 무역에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에서는 ‘한국 맛’에 대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복수의결권제 도입을 환영한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국회에서 논의만 거듭되면서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다가 지난달 27일 드디어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있다. 바로 ‘복수의결권제도’다. 상법에 따르면 주식은 1주당 1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복수의결권제도는 벤처ㆍ스타트업에 한해 그 주주총회에서 창업자에게 1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이 법안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당은 이 제도 도입을 2020년 총선 공약 중 하나로 발표했었다. 그때는 민주당 어느 의원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복수의결권제도를 국정과제로 채택하자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과 일부 시민단체가 돌연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 논리가 너무 황당해 윤석열 정부가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이들의 주된 반대 이유는 복수의결권제도가 재벌의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경영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과 한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은 상법상 1주당 1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1주 1의결권 원칙 및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돼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먼저,재벌의 경영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 재벌ㆍ대기업이 복수의결권을 경영권 승계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복수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을 발행한 기업이 대기업(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되거나, 복수의결권 주식을 상속ㆍ양도하는 경우에는 해당 주식이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하는 내용이 법률안에 이미 들어 있다. 또 벤처기업이 상장한 뒤에도 3년의 유예기간 뒤에는 복수의결권 주식이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했다. 이처럼 소위 재벌의 관여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미국은 재벌이거나 아니거나, 대기업이거나 소기업이거나 차별 없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주주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회사법을 제대로 모르는 소리다. 주주평등원칙은 모든 주주를 인간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주주가 가진 주식을 평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모든 주식이 평등하게 발행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주식은 의결권이 없거나 제한되고, 어떤 주식은 현금과 맞바꿀 수도 있고, 다른 종류의 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소액주주들이 발행주식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보유하면 주주제안권, 대표소송권, 회계장부열람권 등 특수한 권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제도는 주주평등원칙 위반으로 그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1주 1의결권 원칙’도 허구다. 이미 상법은 의결권이 전혀 없는 주식과 의결권이 일부 안건에서는 배제되는 주식의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앞에서도 예를 든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서는 대주주가 가진 주식은 일부 의결권이 박탈된다. 벤처기업들은 항상 자금에 쪼들린다.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창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도하거나 주식을 추가 발행하는 방법 뿐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벤처기업 창업자의 지분이 점점 희석돼 나중에는 경영권 상실에 이를 정도가 된다. 이들이 경영권 상실에 대한 걱정 없이 혁신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가 복수의결권제도다. 복수의결권주식 도입이 벤처기업의 안정적 경영을 담보하고 벤처기업의 활성화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의 ‘재벌의 지배권 강화’ 주장 같은 턱도 없는 프레임은 반(反) 대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경제활성화의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선진국 제도에 비하면 많이 미흡하지만 지금이라도 법안이 통과돼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민생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런 것이 진정한 협치다. 앞으로도 무엇이 진정 국민을 위하고 한국 경제를 위한 것인지를 살펴 여야의 계속적인 협치를 기대한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AI 시대를 사는 법

우리는 최근 몇 개월 동안 AI가 이룬 놀라운 발전을 목격하고 있다. 챗GPT라는 최첨단 AI 언어모델이 보여준 의사소통(communication)과 문제 해결(problem-solving)을 위한 혁신적인 힘은 개인의 일상적인 삶은 물론이고 조직의 전문적인 일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런 혁신 기술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챗GPT 기술의 가장 큰 성과는 인간과 AI시스템 간의 원활하고 직관적인 의사소통이다. 챗GPT가 인간 언어의 맥락과 뉘앙스를 이해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응답을 제공한다. 사용자 만족도와 AI 기술에 대한 신뢰를 높여 간다면 인간과 AI와의 연결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챗GPT는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고 대안을 탐색하고 여러 출처의 정보를 종합하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돕는 도구라는 점이다. 질문에 답하고 설명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창의적인 통찰력을 제공해 사용자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고 고질적인 인지 편향도 줄여 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AI 언어모델이 제공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 우세하다. 최근 퓨 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는 AI가 근로자 일반에 대해 영향을 미칠 것 이라면서도 자신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근로자는 28%에 불과하다. 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직장에서 AI의 영향이 유익하기 보다는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조사가 작년 말 이뤄졌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AI기반 Bing, 구글의 챗봇 Bard, OpenAI의 새로운 모델 GPT-4 그리고 여타 기업과 독립개발자가 수많은 AI기반 도구를 내놓은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몇 달 전이 아니라 몇 년전 이야기로 느껴질 만큼 진부하다. 분명한 것은 현 상황에 대한 판단과 앞으로의 기대와 상관없이 AI 기반 의사소통 및 문제 해결 접근은 우리가 AI와 함께 상호작용하고 솔루션을 찾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자연어 처리(NLP)를 통한 실시간 번역은 언어 장벽을 허물고, 문화간 연결을 촉진하고, 기업은 감정 분석을 통한 실시간 피드백으로 고객 서비스 개선을 도모할 것이다. AI는 데이터 처리와 패턴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어 금융과 보안 및 환경 부문에서 더 나은 정보에 입각한 의사 결정과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AI의 자동화 및 최적화 기능은 생산성을 높이고 제조, 운송 및 의료 비용을 줄인다. 인간도 고유의 공감과 감성 지능을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소통하는 데 우월하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는 엔터테인먼트, 예술 및 신기술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 공감과 사회적 스킬은 의료, 교육 및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 복잡하거나 모호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인간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한다. 특히 인간의 판단과 도덕적 가치는 데이터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편향, 일자리 대체와 같이 AI가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마법은 AI와 인간의 능력이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에 있어 서로를 보완하면서 협업을 촉진할 때 나타난다. AI의 데이터처리 기능과 인간의 직관 및 판단을 결합하면서 한때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AI로 증강된 창의성은 영감을 제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기존 개념을 개선함으로써 인간을 도울 것이다. 이 강력한 시너지 효과는 의사 소통과 문제 해결의 전례 없는 발전을 열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줄 것이다. AI와 인간 능력 간의 협업을 통해 AI의 혁신적인 잠재력을 활용하고 그것이 제시하는 과제를 탐색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결국 AI와 인간이 함께 혁신적인 솔루션의 새로운 시대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이 협업을 수용하고 점점 더 AI 중심의 세상에서 탐색하고 번성하는 열쇠를 찾아야 한다. 이런 협업을 통해 우리는 AI 기술의 놀라운 가능성을 실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이슈&인사이트]AI로봇시대,G4 진입 지렛대 삼자

최근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전자제품 등 제조 산업 분야의 생산공정을 거의 100%에 가깝게 자동화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로봇의 눈’으로 불리는 머신비전 기술 혁신과 인간 작업자와 함께 작업하는 협동로봇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다. 산업용 로봇은 이제 제조산업을 넘어 식음료 등 전 산업 분야의 자동화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미국, 독일, 일본 등 로봇산업 선진국들은 전 산업을 혁신하고,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보고 로봇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제 로봇연맹(IFR)은 세계 로봇산업 시장이 2021년 기준 282억 달러(약 30조원)에서 2030년에는 831억달러(약 100조원)로 10년간 3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제조용 로봇 비중이 70% 정도고 비제조업 분야인 서비스 로봇 산업의 시장도 그 비중이 점차 커질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고 모자라는 인력의 대부분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서비스도 등장할 것이다. 미래 로봇 시대의 모습은 SF 영화에서 꿈꾸었듯이 AI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런 모습이 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처럼 현실로 다가올 미래 로봇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당연히 사회와 산업전반에 걸쳐 다각적이고 총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로봇의 이동성(mobility) 강화에 따른 안전 규정 등 각종 법제도부터 우선 정비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학습을 시작해야 하고, 기업과 대학·연구기관·전문직 인력 양성기관들도 로봇시대에 맞춰 혁신이 필요하다. 준비 안된 기업에게는 쓰나미 처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생존경쟁의 게임판을 덮칠 것이다. 더욱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기술의 메가트렌드에 걸맞은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를 놀라게 하는 ChatGPT기술은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 수준의 인공지능은 이른바 자아가 없는 매우 약한 인공지능이다. AI 스스로 자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심지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한 마디로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컴퓨터의 자판과 같이 누르는 대로 작동하는 수동기계다. 따라서 모든 명령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수행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탠리큐브릭 감독의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나온 HAL이라는 강력한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가 출현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하는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아(ego)는 자체가 매우 철학적 개념이다. 인공지능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인간과의 연결은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인간의 명령 없이 작동하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 판단이 인간에게 불리해 지는 순간 인간과 기계의 생존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그날 우리는 정말 AI를 통제할 수 있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인간사회 모든 것이 AI를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가 출현하고,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자동차를 기반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같은 상상이 현실화되려면 빨라도 5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AI를 잘 통제하고 사회전반에 윤리, 안전, 민주 등의 시각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AI를 잘 통제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인간세상은 그야말로 유토피아 세상을 맞게 될 것이다. 혹자는 AI 로봇시대가 대한민국에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는 오직 우리의 판단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구한말의 유학자(성리학)들이 서양문물을 거부하고, 수구적·폐쇄적 정책을 펼치다 결국 주변 열강으로부터 강제로 침탈당한 것 처럼 절체절명의 위기를 다시 맞을 수가 있다.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기업이든 나라든 도태되는 세상이다.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IT 기술과 인프라, 우수한 인적 자산을 기반으로 미래세상의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면 미국,일본, 중국에 이어 G4로 등극하는 꿈 같은 미래강국 대한민국이 실현될 것이다.고경철 세종과학포럼 회장/카이스트 로봇공학연구단 연구교수

[이슈&인사이트]알맹이 빠진 위험성평가 정책

정부는 최근 위험성평가를 산업안전의 대표정책으로 내세웠다. 올바른 방향이고 포인트는 잘 잡았다. 다만 위험성평가를 외형적으로 확대하는 데에만 급급했지 내실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행정예고된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 개정안은 ‘보여주기식’ 일색이다. 일부러 핵심적 내용을 없애려고 작정(?)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위험성평가에서 빈도와 강도 추정은 필수적인 절차다. 이것을 빼면 더 이상 위험성평가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위험성 추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의적인 위험성평가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공부 못하는 자녀에게 공부를 잘하도록 지도해 성적을 끌어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녀의 학습역량을 의심하고 지레 포기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녀도 부모의 체념에 편승하여 학습하는 것을 자포자기할 것이다. 이런 부모의 태도에 자녀는 당장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성인이 되어선 일찌감치 못난 자식 취급하고 방치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이번 행정예고안의 또 다른 큰 문제점은 위험성평가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이다. 현재 대기업에선 위험성평가가 부실하다는 문제의식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행정예고안은 이런 생각마저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구체적인 방법·기준과 작업별 모범사례를 개발해 배포하는 등 위험성평가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위험성평가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행정예고안에서 강조하는 노동자 참여의 실효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노동자 참여가 마치 목적인 것처럼 획일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과 유해위험요인 파악방법, 위험성 추정방법 등에 대한 세부 기준이 제시되지 않으면 노동자 참여가 형식으로 흐르면서 현장감독자와 전문가의 참여를 되레 위축시킬 수 있다. 위험성평가를 작업(공사) 개시 후 1개월 이내에 하라는 것도 위험성 평가의 본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위험성평가는 작업(공사) 개시 전에 실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실시할 경우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제도개편을 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사항마저 제대로 못 짚은 것은 국제기준과 외국법제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도 반대하는 퇴행적인 제도개편을 밀어붙이려는 저의가 뭔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위험성평가 정책의 허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전보건공단은 현재도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위험성평가 인정 비율의 목표를 뜬금없이 예년보다 2배 가량 높게 잡았다. 사업을 내실화하는 것에는 관심 없고 단순히 물량을 확대하는 것에 급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재예방 행정이 덩치는 거구가 됐지만 전문성은 예전보다도 못하다는 세평이 자자하다. 모름지기 산업안전과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에서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의에 찬 우행은 악행으로 통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전문성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많은 산업안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의욕만 앞세운 설익은 대책 일색이다. 그 바람에 산업현장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어설픈 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노동자는 정책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야말로 정책의 미덕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일찍이 공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잘못이다"고 갈파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지만, 미련한 사람은 변명하고 합리화함으로써 두 번 잘못을 저지른다. 정부가 어느 길을 택할지 두고 볼 일이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상호 칼럼]미국의 도·감청과 한국의 대응 방안

최근 미국 공군 메사추세츠 주 방위군 소속의 병사가 게이머들이 애용하는 온라인 채팅 서비스인 디스코드에 대화방을 운영하면서 미국 정부 주요 기밀 문건을 유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출자의 범행 동기는 어처구니 없게 주로 10대 대화방 회원들에게 본인의 능력을 과시하고 온라인 상의 영웅으로 숭배받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현실 사회에서 주목을 못 받는 사람이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온라인에서 자기 과시적 행동을 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패턴이다. 이번 사건도 이와 유사한 온라인 영웅 심리가 배경이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 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우선 미국의 허술한 기밀관리 실태다. 어떻게 예비군 격인 일개 주 방위군에서, 그것도 일반 병사인 일병이 수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전쟁 동향과 미국의 동맹 및 적대국에 대한 최신 정보를 온라인에 유출하는 게 가능했냐는 의문이다. 미국국가정보국(DNI)에 따르면 2019년 미국 정부의 일급비밀 자료에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은 125만 명에 달하고 이들 중에는 일반 병사나 민간사업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2013년 미국 정부가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우방국에 대한 감청도 광범위하게 하고 있다고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도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의 민간인 계약직 직원이었다. 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를 10년 이상 도청했다는 주장도 이때 제기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미국이 계속 기밀 관리 체계 개선을 등한시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국제사회 리더 역할을 하는 미국이 오히려 국제 안보 불안을 초래한 것이다. 미국의 비밀 관리 체계 개선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음으로는 미국이 적대국은 물론이고 동맹과 우방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는 의문이다. 2013년 스노든 폭로의 핵심은 NSA가 ‘프리즘(PRISM)’이란 도·감청 시스템으로 휴대폰과 구글·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채팅 서버 등에 접속해 가입자의 개인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것이다. 당시 도·감청의 주체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앵글로·색슨 국가의 협력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였다. 파이브 아이즈는 1960년대부터 ‘애셜런(Echelon)’이라는 범 세계적인 통신 감청망과 정보 감시망을 운영해 왔다. ‘프리즘’은 ‘애셜런’의 최신 버전으로, 각종 첨단 디지털 기술이 망라된 고도의 정보 수집 체계다. 예를 들어 미국의 첩보위성 기반 감청망이 대상 국가 통신망을 감시하다 ‘테러’, ‘폭탄’ 등의 위협적 단어 사용이 포착되면 휴대폰 기지국 간 주파수를 가로 채 자동 도청하는 식이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추적·사살에 이런 정보 수집·감청망이 적극 활용됐다. 사실 우리나라도 국가정보원과 군 등 안보 관련 핵심 조직에서 주로 북한과 간첩 활동 용의자 등에 대한 합법적 감청을 광범위하게 해 오고 있다. 특히 전방에서 정보작전의 하나로 실시되는 북한 군 통신 감청은 꼭 필요한 조치다. 국익을 위해 외국 인사들에 대한 감시와 추적도 계속하고 있다. 2011년 국가정보원 요원이 한국산 무기 구입 협상을 위해 방한한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머물던 호텔 방에 침입했다가 발각된 사건도 있다. 첨단 정보기술 사회에서 도·감청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게 순진한 것이다. 오히려 국익과 안보를 위해 도·감청을 통한 정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지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우방끼리 서로 첩보전을 수행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로 국익을 위한 활동이다. 정부가 이번 미국의 도·감청에 대해 불쾌해하면서도 비난을 자제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첩보 수집 및 방첩 역량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과 ‘파이브 아이스’ 수준의 정보 공유 확대를 추진해 정보 능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 안보협력 강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11년 국정원 침입 사건에 대해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형식적인 유감을 표명했을 뿐이고 자국에선 ‘별일 아닌 오해’라고 적극 진화하며 양국 협력 강화를 선택했다. 한국도 정쟁에 매몰돼 미국을 무작정 비난하기보다 양국 협력과 국익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기고] 우리는 왜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야 하는가?

오늘날 한국은 역사적 유례를 찾기 힘든 이중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30년의 위기’다. 카(E.H. Carr)는 『20년의 위기』에서 권력정치와 국가이익을 국제법과 국제제도로 대체하여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던 이상주의적·낭만적 발상의 파탄을 지적했다. 한편, ‘30년의 위기’는 대화·협상·타협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던 노력의 붕괴를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북한 핵개발의 진정한 목표와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이 겪었던 딜레마의 귀환이다. 소련의 재래식 전력이 우세했던 1949년 창설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미국 핵무기에 주로 의존(핵우산/확장억제)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소련이 미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게 되자, 미국의 핵억제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파리를 구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다그친 드골 대통령의 돌직구가 이를 상징한다.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확장억제는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인 2006년, 미국의 압도적인 핵전력 우위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미 본토를 핵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1949년의 딜레마’가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미국 핵억제력의 약화로 인한 확장억제 신뢰성의 문제에 대하여 3가지 해법이 제시되었다. 첫째, 미국은 유럽 동맹국에 전술핵 배치를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수천발에 달했으나, 냉전 이후 대폭 줄어 지금은 벨기에·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터키에 100~150발만 남아 있다. 둘째, NATO 동맹국들과의 핵공유 정책이다. 핵심은 동맹국들이 핵전쟁 발발시 자국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의 사용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평시에 통제권을 미국이 보유하므로 NPT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이 아니다. 셋째, 회원국의 독자 핵무기 확보다. 영국(1952년)과 프랑스(1960년)가 핵개발에 나선 이유는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한반도에 ‘1949년의 딜레마’가 반복됨에 따라,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독자 핵개발 등의 대안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중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고정배치 기지가 북한의 선제공격에 노출되고, 배치장소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취약한 문제가 있다. 핵공유도 NATO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남은 대안은 독자적 핵무장이다.우리가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야 하는 다섯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일례로 2021년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북한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며 "완전·검증가능·불가역적 비핵화(CVID)는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1월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6%가 "북한 비핵화 불가능"이라고 답했다. 둘째, 확장억제의 태생적 문제점이다. 확장억제는 상대방(소련·북한)보다 압도적 우위의 핵무력 및 핵억제력을 보유한 상태에서나 가능하다. 억제의 기제가 작동되려면 3C(능력·의사소통·신뢰성)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3C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따라서 3C가 충족되어도 억제가 ‘자동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된다. 아무리 확장억제 공약의 확고함을 강조해도 한국·일본의 동맹국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미국의 ‘의지’를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았다고 해서 안보공약을 지키려고 워싱턴과 뉴욕을 핵보복과 대량살상에 내맡길 미국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확장억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핵무기로 실천하려는 이타적·성서적 개념,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작동이 거의 불가능한 개념이다. 셋째, 북핵 문제와 관련된 "양(量)의 질(質)로의 변환(Transformation from Quantity to Quality)" 현상이다. 아산연구원-RAND의 2021년 보고서에 의하면, 2027년까지 북한의 핵무기는 최대 200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의 핵보유고를 능가하는 양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도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핵군축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북한은 핵군축에 앞서 제재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군축협상은 대미(對美) 핵위협 감소에 기여할 것이나, 우리에게는 북핵 위협에 무한정 노출되는 인질 상태의 영속화라는 악몽의 시나리오다. 넷째, 북한의 제2격(second-strike) 능력 확보가 임박했다. 제2격 능력이란 상대의 제1격으로 심대한 피해를 입더라도, 살아남은 핵무기로 확실히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제2격 능력이 갖춰지면 상호확정파괴(MAD) 시스템이 작동된다. 북한의 대미 핵억제력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최근(4.14일) 고체연료 미사일인 화성-18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액체연료 기반의 화성-17형을 ‘제1격’, 고체연료 기반의 화성-18형을 ‘제2격’으로 역할을 분담시켜, 미 본토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극대화시킬 전망이다. 끝으로, 핵 선제타격의 공식화이다. 작년 9월 북한은 「핵무력정책법령」에서 핵무기를 억제수단에서 선제공격 수단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북한이 자신들이 규정하는 ‘임의의 상황’에서 멋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는 점이다. 미국을 뜻하는 "적대적인 다른 핵 보유국"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남한을 ‘핵선제공격’의 표적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일각에서는 NPT 규범, 한·미동맹과의 충돌, 경제제재 및 역내 핵도미노 우려 등을 제기하며 독자 핵무장에 반대한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자체 핵보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비상한 안보상황에서 비롯되는 위기의식을 암시한다. 지금은 1차 핵시대(핵대결)나 2차 핵시대(핵확산 방지)를 넘어 3차 핵시대(핵전쟁 위험 고조)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핵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터부의 대상이었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는 기존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대전환의 시작은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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